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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6 00:52
수정재업

고3 인터하이 준비하던 늦봄 이명헌과 대1 대학리그 시즌 끝물쯤의 이명헌이 영혼이 바뀌는 게 보고싶다





대1 이명헌은 인터하이 직전의 우성이 진심으로 마음을 부딪혀올 것을 알고 있었음. 그래서 이번에는 매몰차게 거절하지 않고 조금 더 부드럽게 받아주었음. "어디서 나를 심란하게 만들라고 사주받았나용?" 하는 최악의 멘트로 받아치는 일 따위는 없었음. 우성이 사흘동안 세 번의 고백을 내리 단행할 것을 기다리지 않았음. 명헌은 원래의 역사보다 훨씬 일찍 그 마음을 받아들였음. 그리고 미국행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에 한껏 조급하고 타들어갔을 그 젊고 늘씬한 선수의 등을 사랑을 담아 꾹 안아주었음.

어차피 둘의 연애는 시작될 거였음. 다만 원래의 역사에서는 그 세 번의 고백마저도 흘려보낸 후 미국에 간 정우성이 보내오는 편지에야 비로소 마음을 열고 롱디로 시작하는 거였음.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목소리도 제대로 못 듣고, 어떤 추억과 향수와 활자로 편집된 사랑에 응답하는 연애였음. 원래 이 시간대의 명헌이라면 우성의 고백에 진심으로 충격을 받았겠으나 거의 1년이나 지나 비로소 고백을 받아들일 즈음에는 명헌의 가슴도 떠나보낸 시간에 대한 후회로 말이 아니었기에... 명헌은 그 누구의 마음도 곪게 두지 않고 어차피 이어질 사랑이라면 산왕에서 더 추억을 만들 결심을 함. 어여쁜 에이스가 외롭게 비행기를 타도록 두는 일은 없을 것임.

고작 1년이 뭐라고 대1 이명헌은 고3 이명헌과는 달랐음. 본래의 명헌도 충분히 어른스럽다고 여기던 우성은 어떤 미묘함만을 포착하는 듯했으나 명헌 본인은 자신의 성장을 확실히 알았음. 우성과 지지고 볶으며,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고 사람들과 부딪히며 많은 일을 겪으며 얻은 경험치는 고작 1년이라고 퉁칠 수 있는 게 아니었음. 산왕 시절의 정우성의 열기를 여유 있게 받아줄 수 있는 성인이 된 진정한 연상이었음.

열여덟 정우성은 이명헌이 자기한테 가르쳐주는 모든 걸 흡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음. 대체로 미국에서 필요한 농구에 대한 조언과 아직은 명헌도 어설픈 아주 약간의 스킨십. 둘의 전국대회 준비는 본래의 역사보다 조금 더 설레게 이루어졌음. 일주일만에 고3 이명헌이 돌아왔을 때, 본래도 더없이 의지되는 에이스였던 우성이 진실로 의지되는 남자친구가 되어 있을 만큼.





한편 반대편의 상황은 달랐음.


고3 이명헌은 덤덤한 얼굴로 '돌아버리겠네용...' 염불을 외는 중이었음.


갑자기 30분 후 A대 주전으로서 시즌 마지막 경기를 들어가야 한다고 함. 상대 분석도 전혀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대학 선수들이랑 겨뤄야 한다니 성실하게 왕도만을 걸은 이명헌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음. 머릿속으로 꾀병부터 탈주까지 온갖 루트를 검토했음. 그러면서도 아직 스타팅은 아닌 상태에서 후반에 투입될 준비를 하고 몸을 풀고 있는 최동오를 뿌듯하게 훔쳐보았음. A대! 함께할 줄 알았어용! 그리고 틈새로는 동오의 옆에서 친한 척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모르는 슈팅가드에게 눈을 흘겼음.

막상 경기를 무사히 치르고 여러가지 즐거운 사실을 알게 됨. 동오도 명헌도 목표하던 대학에 무사히 안착했을 뿐만 아니라 산왕의 다른 동기생들의 근황이 모두 괜찮았음. 명헌의 평가는 냉정하여 '올해 실적도 그럭저럭 괜찮군용...' 정도였으나 입밖에 내지는 않았음. 돌아가면 더 열심히 해서 동기와 후배들의 길을 닦아놓을 생각을 함. 'H대에 간 그애는 원래 S대를 목표로 했었죵, 내가 보내줄게용.' 주먹 불끈. 이 시절의 명헌은 워커홀릭이었음.

산왕에 입학할 당시 존경하던 3학년 주장 선배와 재회도 함. 선배랑 다시 같이 뛸 수 있다니 영광이에요옹. 대학에 와서도 1학년 때부터 주전을 달았다는 사실도 확정받음. '내가 초고교급 포인트가드라는 말이 맞았네용. 대학리그 별거 아니죵? 케케케...' 시즌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소주의 맛도 살짝 입에 대본 명헌은 비시즌 대학생 농구 선수의 삶을 실컷 즐겼음. 워커홀릭인 거야 산왕에서의 이야기고, 빡센 인터하이 대비에서 잠시 벗어나 합법적으로 몸 관리를 덜 신경써도 되는 상황에서 유흥거리가 많은 대학가 자취생의 꿀같은 삶을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음.

고3 이명헌은 돌아갈 때까지 깨닫지 못했음. 근 1년만에 겨우 마음을 확인하고 사귄지 고작 한달 된 정우성(미국행. 19세)에게 따로 연락할 생각을 전혀 못하는 바람에, 우성이 바다 건너에서 미치고 팔짝 뛰며 다시금 잠수를 탄 명헌에게 환장하고 있다는 것을.





일주일만에 다시 각자의 영혼이 바뀌어 제자리로 돌아오고 고3 이명헌도 대1 이명헌도 모두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은 필연이었음.

고3 이명헌. 겨우 한 살 어린 잘생긴 후배 정우성이 갑자기 자신이 자기 남자친구라고 선언하다. 그리고 풋풋한듯 끈적한 손으로 들러붙다.

"미쳤군용. 돌았군용, 정우성. 현철아 얘 좀 봐용, 암바 걸어 줘용! ......꺅 변태야!"

눈물이 많은 우성이 더 이상은 힘이 없어 꺽꺽 소리를 내며 주저앉을 정도로 진을 뺀 새벽에야 명헌은 대학생 이명헌이 남긴 편지를 발견했음. 귀엽게 호곡... 하고 울다 지쳐 쭈그린 우성에게 슬금슬금 다가가면 뭐하나. 어린애의 마음을 겨우 받아주더니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순식간에 모른 척하고.

엉엉... 형 저 먹버해요...? 어허엉...

세상에 이런 똥차가 없었음.





대1 이명헌. 산왕 동기들은 물론 지나가던 대학동기(북산 슈팅가드이자 동료 슈팅가드)까지 너 우성이한테 그러는 거 아니다. 하고 진지하게 말을 걸어옴. 정우성이 울면서 명헌이형이 잠수를 탔다고 동네방네 연락해서 수소문했다는 사실을 알고 뒷목을 잡음.

그 뒷수습을 하려고 개같이 고생함.

형, 저 진짜 입국해요? 가요? 간다? 나 비행기 표 끊어?
아니, 아니 내가 갈게 삐뇽. 제발 우성아... 제발... 너는 거기 경기가 한창이잖아...

사귀는 사이로 땅땅 확정지은 이래 얼굴을 아직도 제대로 못 본 D+30♡ 남자친구를 안심시키기 위해 갑작스럽게 항공편을 예매함.

우성을 만날 때까지 72시간.

고등학생 이명헌이 먹성으로 찌워둔 살을 빼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음.





그렇게 각자 똥차 남자친구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각자의 우성이한테 최선을 다해주는 그런 또다른 일주일이 펼쳐지면 좋겠다...





우성명헌 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