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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3 14:54
어쩔 수 없지 타탈이 이나즈마에서 놀다가 마침 딱 리월 해등절 기간이라길래 지나가다가 한 번 들렀다고 생각할 수 밖에ㅎ
날조 있음 ㅅㅅㅊㅈㅇ
'그러고보니 이맘때쯤이면... 리월에선 아마 해등절이 한창이겠군.'
타르탈리아는 책상 앞의 문서를 만지작 거리며 고민했다. 맡은 일은 진작에 끝냈고 가족들의 기념품까지 이미 모두 사놓았는데도 임무 기간이 여유롭게 남은 상태였다. 그렇게 남은 기간,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내던 때에 부하들이 리월 해등절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 들렸다. 전에 본 해등절의 풍경은 매우 아름다워 잊을 수 없었다. 가능하다면 그 풍경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전처럼 리월 북국은행 집무실 안에서 풍경을 볼 수도 없을 뿐더러, 자신이 리월에 도착했다는 소문이 돌면 귀에 들리는 모든 말들이 신경쓰이고 거슬릴 것이다.
...
"... 뭐, 상관 없지 않나?"
정 안 되면 예카테리나에게 부탁이나 해봐야지. 타르탈리아는 단순하고 당돌했다. 애초에 그가 남의 시선을 신경쓰고 자신을 남에게 맞추려고 한 적이 있긴 했던가. 타르탈리아는 문밖의 부하를 불러 리월항 배편을 알아보고 내일 당장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지시하고는 문득 머릿속으로 누군가를 떠올렸다. 리월에 머물던 때에 자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냈던 그 사람, 그마저도 불안정해 결국 애매모호하게 끊어진 인연, 한 때 바위의 신 암왕제군이라 불리던...
종려.
아무래도 만나기는 힘들겠지. 그는 명성이 자자한 객경의 신분이며 타르탈리아는 나쁜 쪽으로 명성이 자자한 우인단의 집행관이니. 이상한 소문이 돈다면 손해보는 것은 종려일 것이다. 타르탈리아에게 있어 종려는 호감이었던 사람인 만큼, 그런 식으로 폐를 끼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타르탈리아는 얇고 얇았던 기대를 깔끔히 잘라내고 새로운 기대를 들였다. 내일은 힘들고 멋진 하루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기나긴 항해를 거치고 어두워진 밤의 리월항은 소등이 가득해 평소보다 더 밝고 아름다웠다. 타르탈리아는 사심을 담은 기대는 하지 않으려 했으나 자연스럽게 리월 땅을 밟자 종려 생각이 났다. 그와 동시에 주변 사람들이 벌써부터 자신을 의식하고 수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래, 벌써부터 이렇게 시끄러운데 여기서 종려를 만나 더 귀찮은 일을 벌리는 것은 이쪽도 사양이었다. 타르탈리아는 오히려 다행인건가, 생각하며 왕생당으로 향하려던 발걸음을 돌려 빛과 사람들이 가득한 길거리 속에서 목적없이 걷기 시작했다. 빛은 따뜻했고 밤공기 또한 그러했다. 종려 씨와 함께 걷기도 했었지. 만약 이렇게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다면 가벼운 인사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식사라도 같이 하자 해볼까?
"..."
"아하하하! 그래서 내가 그때... 응? 뭐야, 모락스. 밖에 뭐 특별한 거라도 있어?"
"...이름 부르지 말지. 별거 아니네. 눈에 띄는 소등이 하나 있길래 보고 있었던 것 뿐이야."
"아아~ 그런 거야? 난 또, 말 많던 사람이 갑자기 조용해지길래 무슨 심각한 일이라도 난 줄 알았네~ 아무튼 그래서..."
바깥보다 비교적 조용한 실내의 아늑한 방은 바람의 신 음유시인의 들뜬 목소리로 가득 찼다. 번개의 신과 풀의 신은 차를 마시며 그의 말을 흥미롭게 듣고 있었고 종려 또한 마찬가지였다. 창문 밖으로 익숙한 뒷모습이 보이기 전까지는. 이내 누군가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시선은 음유시인의 말을 끝으로 이만 거둬졌고 종려는 눈을 감고 차의 향과 맛을 한 번 깊게 음미했다. 제 주변의 신들은 그가 평온한 겉모습 뒤에 버거울 정도의 즐거운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종려는 손에 쥔 찻잔을 보며 늦지 않기를 바랐다.
신들끼리의 모임이 끝난 늦은 밤에도 리월항은 여전히 밝고 사람들로 가득했다. 종려는 그 사이를 걸어 눈으로는 사람들을 훑으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편이었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라도 한 건지, 어디 뒷골목에 자리잡고 있기라도 하는 건지 보이지 않아 의아해 하던 참에 옆쪽 상인 무리가 누군가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는 것이 귀에 들렸다.
"그 귀공자를 그냥 놔둬도 되는 거예요?"
"내 말이, 신고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그렇다기엔 너무 멀쩡하게 돌아다녀서 더 이상하지..."
"혹시 북국은행의 귀공자를 본 적 있으십니까."
"아, 객경! 말도 마시오. 아까 전에 뻔뻔하게 내 가게에 들어와 물건까지 사가던데 무서워서 내치지도 못하고 원..."
"그래 그래, 당당하게 길거리를 걸어다니더라니깐."
"흠, 그렇군요. 혹시 그 귀공자가 어느 방향으로 갔는 지 아십니까."
"귀공자요? 뭐... 저어쪽 방향으로 가긴 했는데... 객경, 혹시 그 사람을 만날 생각이시오?"
"조심하세요, 객경. 겉보기엔 저렇게 번지르르 해보여도 극악무도하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알겠습니다. 명심하죠. 즐거운 해등절 보내시길."
타르탈리아의 평판은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평범하게 물건을 사는 것도 길을 걷는 것조차도 질타를 받는다니, 이래서야 혼자 둘 수가 없겠는데.
종려는 인파들 사이에서 걸음을 조금씩 재촉하며 상인들이 가리키던 외진 곳을 향해 걸었다. 그의 성격이라면 분명히 주변의 모진 말들을 마음에 담아둘 것 같지는 않지만, 이런 깊고 어두운 곳에 틀어 박혀 있는 꼴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다. 그는 구석진 곳보다 빛이 밝게 모이는 중앙이 더 어울리는 사람인데. 리월의 외진 곳은 열원이 없어 바람이 꽤 차가웠다. 종려는 걸어가며 바람을 느끼다 외투를 쉽게 벗기 위해 미리 단추를 살짝 풀어놓았다.
타르탈리아는 오가는 사람 없고 빛이 잘 들지 않는 곳에서 난간에 턱을 괴고 기댄 채, 멍하니 하늘에 떠있는 소등을 보고 있었다. 이렇게 소등을 보고 있으니 작년, 종려와 함께 보냈던 해등절이 떠올랐다. 불꽃놀이가 예뻤었지.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축제를 즐긴 건 처음이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재밌어 했던 것 같기도 하고. 타르탈리아는 소등이 하늘에 떠오름과 동시에 자신의 마음도 가볍게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멀리서 보기만해도 이렇게 깊게 빠져드는 것이 불안했다. 이러다간 내년에도 이곳을 그리워하게 될 것 같았다.
종려는 그런 모습의 타르탈리아를 잠시 멀리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워낙 어둡고 광장에서 동떨어진 곳이라 타탈의 푸른 눈엔 노란 빛을 내는 소등이 더 밝게 비쳤고 얕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머리카락과 미세하게 떨리는 속눈썹,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오묘한 표정까지 어둠속에서도 선명하게 눈에 담겼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이 정도의 인기척도 눈치채지 못하는 건지, 기분 좋은 의문이 드는 모습이었다. 무방비한 귀공자는 낯설었다.
"오랜만이군요, 공자."
"! 아. 하하. 네,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죠?"
"해등절을 보러 오셨습니까."
"딴짓 하는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요. 얌전히 구경만 하다 갈 생각이에요."
종려가 타르탈리아의 옆에 다가와 말을 걸자, 타르탈리아는 갑작스러운 인기척과 그 대상에 짐짓 놀라다가도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마지막에 타르탈리아는 두 손을 들고 눈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무해하다는 것을 어필하기도 했고 종려는 그에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타르탈리아는 당연하게도 종려가 자신을 감시하러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섣불리 다른 말을 꺼내지도 못 하는 바람에 답지 않게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어찌 됐든 그 사건이 있고나서는 예전보다 좀 껄끄러운 사이가 된 건 사실이라. 하지만 타르탈리아는 그 자리를 벗어나진 않았고 종려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더 이상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멀리에 떠다니는 소등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종려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타르탈리아의 어깨에 살포시 덮어주었다. 타르탈리아는 이를 거부하지 않았고 순순히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타르탈리아는 종려의 겉옷을 꼭 쥐었다. 쌀쌀한 바람에 종려의 향이 날려 자신의 몸에 은은하게 베이는 듯 했다.
"스네즈나야에 있다가 오신 겁니까."
"아뇨, 이나즈마에 있었어요. 리월은 스네즈나야로 가는 길에 잠깐 들린 거고."
"그렇군요. 그럼 언제 떠나실 건가요?"
"내일 아침에 바로 나가야죠."
"이르군요."
"관광객이 많아서 백마여관에 남는 방이 없더라고요. 어쩔 수 없죠."
"그럼 오늘 하루는 어디서 묵을 생각입니까?"
"북국은행 집무실에 묵기로 했어요. 오래 못 있어요. 지금 북국은행은 제 관할이 아니라서."
"제 집에서 머무셔도 괜찮습니다."
"뭣, 케흑, 켁,"
타르탈리아는 종려의 말을 듣고 놀란 나머지 먹고 있던 음식이 사레가 들려 기침을 연발했다. 그리고는 파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종려를 빤히 쳐다보았다. 건너편의 종려는 태연한 표정으로 타르탈리아를 마주보았다.
"싫으십니까?"
"아니,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피곤하면 배 안에서 자도 되는 거니까..."
"꼭 내일 가셔야 합니까."
"그건 아닌데 제가 좀 불편해서 그래요. 아무래도..."
"흠."
"전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오늘은 제 집에서 주무시지요."
사람 말 안 듣는 건 여전하네... 타르탈리아는 팍 식은 눈으로 종려를 바라보았다.
"괜찮다니까요. 북국은행에도 따로 쉴 수 있는 방이 있"
"그럼 이대로 헤어질겁니까?"
"헤어지지 그럼 뭘 해요."
"북국은행보다 제 집이 백배는 더 편할테니 사양하지 마십시오."
"... 하아... 네네 알겠어요. 그럼 하루만 신세 질게요."
타르탈리아는 종려를 잘 알았다. 이 사람의 고집을 이길 수 없다는 자가 있을까... 타르탈리아는 될 대로 되라지, 라고 생각하며 술 한 잔을 거칠게 들이켰다. 같이 있으면 나야 좋지... 나중에 후회하지나 말라고.
들뜬 기분에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니 취기가 빨리 올랐다. 이 순간도 나중엔 그리워지겠지. 타르탈리아는 슬슬 종려가 하는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고 고단했던 일정의 여파인 지 의식은 점점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타르탈리아는 기지개를 한 번 쭉 펴고 하품을 했다.
"피곤하신가봅니다."
"리월에, 으응... 급하게 오느라 그, 잠을... 못 잤거든요."
"그런 상태로 술을 그렇게 마신 겁니까?"
"원래 기분 좋을 땐... 술을 조금 마셔줘야 되거든요..."
"내일 가실 수 있겠습니까."
"가야죠... 저 숙취도 별로 안 심하다고요."
술에 취해 잔뜩 피곤해진 타르탈리아는 말의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종려는 그런 자신을 보고 웃고 있는 것 같았다. 타르탈리아는 그저 이 기분에 취한 상태로 이만 달콤한 잠에 빠지고 싶었다. 이 속마음을 들은 건지, 종려는 이만 가서 쉬자며 타르탈리아의 축 쳐진 몸을 부축하고 일어섰다. 그럼에도 쉽게 균형을 잃자 종려는 타르탈리아를 아예 제 등에 업었다. 타르탈리아는 종려의 느리고 안정적인 걸음걸이를 느끼며 종려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과장하자면 꿈만 같았다. 그리웠던 사람에게 자신의 몸을 맡긴 채로 잠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욱 기분좋았다. 몽롱해진 정신을 이기지 못한 타르탈리아는 이내 쏟아지는 졸음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타르탈리아는 두통과 근육통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정도 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일어나고 보니 자신이 종려의 집, 종려의 침대 위에서 속옷도 없이 홀딱 벗고 있었다는 것과 붉은 정사의 흔적이 제 온 몸에 가득하고 허리는 끊어질 듯이 욱씬거리고 어떻게 된 건지 기억 조차도 없다는 것 정도. 설마. 아니야. 타르탈리아는 위기감을 직감하곤 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옷을 찾기 위해 일어나려는 순간 침대에서 볼품없게 넘어졌고 동시에 아찔해지는 고통이 몰려와 허리를 부여잡고 작게 신음했다.
"으윽... 아니, 왜 다리에 힘이..."
"타르탈리아?"
우당탕 거리는 소리에 방문을 열고 들어온 종려는 평소와 같이 단정하고 평온한 모습이었다. 알몸인 채로 이불만 둘러쓰고 있는 자신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종려는 바닥에 엎어져 끙끙 앓고 있는 타르탈리아를 안아 들어 다시 침대에 눕혀주었다.
"저... 종려 씨, 저희 혹시 어제..."
"당분간은 일어나기 힘들테니 당분간은 여기서 머물도록 해."
"아니 저 오늘 가야 하는데"
"스네즈나야에는 내가 전갈을 보냈으니 좀 더 머물어도 괜찮아."
"종려 씨 어제 저한테 대체 뭘 한"
"타르탈리아 씨가 너무 급하게 가시려는 것 같길래 제긴 조금 늦춰드렸습니다."
"네? 뭐요? 저기요 이게 무슨"
"어디 가실 수 있다면 가보시지요. 말리지 않겠습니다. 그 몸으론 힘들테지만."
"아니 이런 미친 마신이"
"쉿. 아침을 가져올테니 조금만 기다려."
"야 이 미친놈...!"
종려는 기겁하며 자신의 알몸을 이불로 숨기는 타르탈리아의 고개를 제 쪽으로 돌려 그에게 짧게 키스하고 입술, 뺨, 목, 가슴, 허리까지 내려가 쪽쪽대며 입맞추다가 미소를 지은 채로 황당한 표정을 하곤 거친 말을 내뱉는 타르탈리아를 뒤로 하고 방 밖으로 유유히 걸어 나갔다. 이미 아무 말 없이 한 번 떠났으면서 또 다시 돌아와 얼굴만 비추고 금방 떠난다고 하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서운한데. 그렇다면 나도 내 방식으로 곁에 붙잡아 둬야지.
날조 있음 ㅅㅅㅊㅈㅇ
'그러고보니 이맘때쯤이면... 리월에선 아마 해등절이 한창이겠군.'
타르탈리아는 책상 앞의 문서를 만지작 거리며 고민했다. 맡은 일은 진작에 끝냈고 가족들의 기념품까지 이미 모두 사놓았는데도 임무 기간이 여유롭게 남은 상태였다. 그렇게 남은 기간,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내던 때에 부하들이 리월 해등절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 들렸다. 전에 본 해등절의 풍경은 매우 아름다워 잊을 수 없었다. 가능하다면 그 풍경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전처럼 리월 북국은행 집무실 안에서 풍경을 볼 수도 없을 뿐더러, 자신이 리월에 도착했다는 소문이 돌면 귀에 들리는 모든 말들이 신경쓰이고 거슬릴 것이다.
...
"... 뭐, 상관 없지 않나?"
정 안 되면 예카테리나에게 부탁이나 해봐야지. 타르탈리아는 단순하고 당돌했다. 애초에 그가 남의 시선을 신경쓰고 자신을 남에게 맞추려고 한 적이 있긴 했던가. 타르탈리아는 문밖의 부하를 불러 리월항 배편을 알아보고 내일 당장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지시하고는 문득 머릿속으로 누군가를 떠올렸다. 리월에 머물던 때에 자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냈던 그 사람, 그마저도 불안정해 결국 애매모호하게 끊어진 인연, 한 때 바위의 신 암왕제군이라 불리던...
종려.
아무래도 만나기는 힘들겠지. 그는 명성이 자자한 객경의 신분이며 타르탈리아는 나쁜 쪽으로 명성이 자자한 우인단의 집행관이니. 이상한 소문이 돈다면 손해보는 것은 종려일 것이다. 타르탈리아에게 있어 종려는 호감이었던 사람인 만큼, 그런 식으로 폐를 끼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타르탈리아는 얇고 얇았던 기대를 깔끔히 잘라내고 새로운 기대를 들였다. 내일은 힘들고 멋진 하루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기나긴 항해를 거치고 어두워진 밤의 리월항은 소등이 가득해 평소보다 더 밝고 아름다웠다. 타르탈리아는 사심을 담은 기대는 하지 않으려 했으나 자연스럽게 리월 땅을 밟자 종려 생각이 났다. 그와 동시에 주변 사람들이 벌써부터 자신을 의식하고 수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래, 벌써부터 이렇게 시끄러운데 여기서 종려를 만나 더 귀찮은 일을 벌리는 것은 이쪽도 사양이었다. 타르탈리아는 오히려 다행인건가, 생각하며 왕생당으로 향하려던 발걸음을 돌려 빛과 사람들이 가득한 길거리 속에서 목적없이 걷기 시작했다. 빛은 따뜻했고 밤공기 또한 그러했다. 종려 씨와 함께 걷기도 했었지. 만약 이렇게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다면 가벼운 인사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식사라도 같이 하자 해볼까?
"..."
"아하하하! 그래서 내가 그때... 응? 뭐야, 모락스. 밖에 뭐 특별한 거라도 있어?"
"...이름 부르지 말지. 별거 아니네. 눈에 띄는 소등이 하나 있길래 보고 있었던 것 뿐이야."
"아아~ 그런 거야? 난 또, 말 많던 사람이 갑자기 조용해지길래 무슨 심각한 일이라도 난 줄 알았네~ 아무튼 그래서..."
바깥보다 비교적 조용한 실내의 아늑한 방은 바람의 신 음유시인의 들뜬 목소리로 가득 찼다. 번개의 신과 풀의 신은 차를 마시며 그의 말을 흥미롭게 듣고 있었고 종려 또한 마찬가지였다. 창문 밖으로 익숙한 뒷모습이 보이기 전까지는. 이내 누군가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시선은 음유시인의 말을 끝으로 이만 거둬졌고 종려는 눈을 감고 차의 향과 맛을 한 번 깊게 음미했다. 제 주변의 신들은 그가 평온한 겉모습 뒤에 버거울 정도의 즐거운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종려는 손에 쥔 찻잔을 보며 늦지 않기를 바랐다.
신들끼리의 모임이 끝난 늦은 밤에도 리월항은 여전히 밝고 사람들로 가득했다. 종려는 그 사이를 걸어 눈으로는 사람들을 훑으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편이었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라도 한 건지, 어디 뒷골목에 자리잡고 있기라도 하는 건지 보이지 않아 의아해 하던 참에 옆쪽 상인 무리가 누군가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는 것이 귀에 들렸다.
"그 귀공자를 그냥 놔둬도 되는 거예요?"
"내 말이, 신고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그렇다기엔 너무 멀쩡하게 돌아다녀서 더 이상하지..."
"혹시 북국은행의 귀공자를 본 적 있으십니까."
"아, 객경! 말도 마시오. 아까 전에 뻔뻔하게 내 가게에 들어와 물건까지 사가던데 무서워서 내치지도 못하고 원..."
"그래 그래, 당당하게 길거리를 걸어다니더라니깐."
"흠, 그렇군요. 혹시 그 귀공자가 어느 방향으로 갔는 지 아십니까."
"귀공자요? 뭐... 저어쪽 방향으로 가긴 했는데... 객경, 혹시 그 사람을 만날 생각이시오?"
"조심하세요, 객경. 겉보기엔 저렇게 번지르르 해보여도 극악무도하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알겠습니다. 명심하죠. 즐거운 해등절 보내시길."
타르탈리아의 평판은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평범하게 물건을 사는 것도 길을 걷는 것조차도 질타를 받는다니, 이래서야 혼자 둘 수가 없겠는데.
종려는 인파들 사이에서 걸음을 조금씩 재촉하며 상인들이 가리키던 외진 곳을 향해 걸었다. 그의 성격이라면 분명히 주변의 모진 말들을 마음에 담아둘 것 같지는 않지만, 이런 깊고 어두운 곳에 틀어 박혀 있는 꼴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다. 그는 구석진 곳보다 빛이 밝게 모이는 중앙이 더 어울리는 사람인데. 리월의 외진 곳은 열원이 없어 바람이 꽤 차가웠다. 종려는 걸어가며 바람을 느끼다 외투를 쉽게 벗기 위해 미리 단추를 살짝 풀어놓았다.
타르탈리아는 오가는 사람 없고 빛이 잘 들지 않는 곳에서 난간에 턱을 괴고 기댄 채, 멍하니 하늘에 떠있는 소등을 보고 있었다. 이렇게 소등을 보고 있으니 작년, 종려와 함께 보냈던 해등절이 떠올랐다. 불꽃놀이가 예뻤었지.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축제를 즐긴 건 처음이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재밌어 했던 것 같기도 하고. 타르탈리아는 소등이 하늘에 떠오름과 동시에 자신의 마음도 가볍게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멀리서 보기만해도 이렇게 깊게 빠져드는 것이 불안했다. 이러다간 내년에도 이곳을 그리워하게 될 것 같았다.
종려는 그런 모습의 타르탈리아를 잠시 멀리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워낙 어둡고 광장에서 동떨어진 곳이라 타탈의 푸른 눈엔 노란 빛을 내는 소등이 더 밝게 비쳤고 얕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머리카락과 미세하게 떨리는 속눈썹,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오묘한 표정까지 어둠속에서도 선명하게 눈에 담겼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이 정도의 인기척도 눈치채지 못하는 건지, 기분 좋은 의문이 드는 모습이었다. 무방비한 귀공자는 낯설었다.
"오랜만이군요, 공자."
"! 아. 하하. 네,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죠?"
"해등절을 보러 오셨습니까."
"딴짓 하는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요. 얌전히 구경만 하다 갈 생각이에요."
종려가 타르탈리아의 옆에 다가와 말을 걸자, 타르탈리아는 갑작스러운 인기척과 그 대상에 짐짓 놀라다가도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마지막에 타르탈리아는 두 손을 들고 눈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무해하다는 것을 어필하기도 했고 종려는 그에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타르탈리아는 당연하게도 종려가 자신을 감시하러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섣불리 다른 말을 꺼내지도 못 하는 바람에 답지 않게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어찌 됐든 그 사건이 있고나서는 예전보다 좀 껄끄러운 사이가 된 건 사실이라. 하지만 타르탈리아는 그 자리를 벗어나진 않았고 종려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더 이상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멀리에 떠다니는 소등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종려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타르탈리아의 어깨에 살포시 덮어주었다. 타르탈리아는 이를 거부하지 않았고 순순히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타르탈리아는 종려의 겉옷을 꼭 쥐었다. 쌀쌀한 바람에 종려의 향이 날려 자신의 몸에 은은하게 베이는 듯 했다.
"스네즈나야에 있다가 오신 겁니까."
"아뇨, 이나즈마에 있었어요. 리월은 스네즈나야로 가는 길에 잠깐 들린 거고."
"그렇군요. 그럼 언제 떠나실 건가요?"
"내일 아침에 바로 나가야죠."
"이르군요."
"관광객이 많아서 백마여관에 남는 방이 없더라고요. 어쩔 수 없죠."
"그럼 오늘 하루는 어디서 묵을 생각입니까?"
"북국은행 집무실에 묵기로 했어요. 오래 못 있어요. 지금 북국은행은 제 관할이 아니라서."
"제 집에서 머무셔도 괜찮습니다."
"뭣, 케흑, 켁,"
타르탈리아는 종려의 말을 듣고 놀란 나머지 먹고 있던 음식이 사레가 들려 기침을 연발했다. 그리고는 파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종려를 빤히 쳐다보았다. 건너편의 종려는 태연한 표정으로 타르탈리아를 마주보았다.
"싫으십니까?"
"아니,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피곤하면 배 안에서 자도 되는 거니까..."
"꼭 내일 가셔야 합니까."
"그건 아닌데 제가 좀 불편해서 그래요. 아무래도..."
"흠."
"전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오늘은 제 집에서 주무시지요."
사람 말 안 듣는 건 여전하네... 타르탈리아는 팍 식은 눈으로 종려를 바라보았다.
"괜찮다니까요. 북국은행에도 따로 쉴 수 있는 방이 있"
"그럼 이대로 헤어질겁니까?"
"헤어지지 그럼 뭘 해요."
"북국은행보다 제 집이 백배는 더 편할테니 사양하지 마십시오."
"... 하아... 네네 알겠어요. 그럼 하루만 신세 질게요."
타르탈리아는 종려를 잘 알았다. 이 사람의 고집을 이길 수 없다는 자가 있을까... 타르탈리아는 될 대로 되라지, 라고 생각하며 술 한 잔을 거칠게 들이켰다. 같이 있으면 나야 좋지... 나중에 후회하지나 말라고.
들뜬 기분에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니 취기가 빨리 올랐다. 이 순간도 나중엔 그리워지겠지. 타르탈리아는 슬슬 종려가 하는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고 고단했던 일정의 여파인 지 의식은 점점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타르탈리아는 기지개를 한 번 쭉 펴고 하품을 했다.
"피곤하신가봅니다."
"리월에, 으응... 급하게 오느라 그, 잠을... 못 잤거든요."
"그런 상태로 술을 그렇게 마신 겁니까?"
"원래 기분 좋을 땐... 술을 조금 마셔줘야 되거든요..."
"내일 가실 수 있겠습니까."
"가야죠... 저 숙취도 별로 안 심하다고요."
술에 취해 잔뜩 피곤해진 타르탈리아는 말의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종려는 그런 자신을 보고 웃고 있는 것 같았다. 타르탈리아는 그저 이 기분에 취한 상태로 이만 달콤한 잠에 빠지고 싶었다. 이 속마음을 들은 건지, 종려는 이만 가서 쉬자며 타르탈리아의 축 쳐진 몸을 부축하고 일어섰다. 그럼에도 쉽게 균형을 잃자 종려는 타르탈리아를 아예 제 등에 업었다. 타르탈리아는 종려의 느리고 안정적인 걸음걸이를 느끼며 종려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과장하자면 꿈만 같았다. 그리웠던 사람에게 자신의 몸을 맡긴 채로 잠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욱 기분좋았다. 몽롱해진 정신을 이기지 못한 타르탈리아는 이내 쏟아지는 졸음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타르탈리아는 두통과 근육통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정도 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일어나고 보니 자신이 종려의 집, 종려의 침대 위에서 속옷도 없이 홀딱 벗고 있었다는 것과 붉은 정사의 흔적이 제 온 몸에 가득하고 허리는 끊어질 듯이 욱씬거리고 어떻게 된 건지 기억 조차도 없다는 것 정도. 설마. 아니야. 타르탈리아는 위기감을 직감하곤 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옷을 찾기 위해 일어나려는 순간 침대에서 볼품없게 넘어졌고 동시에 아찔해지는 고통이 몰려와 허리를 부여잡고 작게 신음했다.
"으윽... 아니, 왜 다리에 힘이..."
"타르탈리아?"
우당탕 거리는 소리에 방문을 열고 들어온 종려는 평소와 같이 단정하고 평온한 모습이었다. 알몸인 채로 이불만 둘러쓰고 있는 자신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종려는 바닥에 엎어져 끙끙 앓고 있는 타르탈리아를 안아 들어 다시 침대에 눕혀주었다.
"저... 종려 씨, 저희 혹시 어제..."
"당분간은 일어나기 힘들테니 당분간은 여기서 머물도록 해."
"아니 저 오늘 가야 하는데"
"스네즈나야에는 내가 전갈을 보냈으니 좀 더 머물어도 괜찮아."
"종려 씨 어제 저한테 대체 뭘 한"
"타르탈리아 씨가 너무 급하게 가시려는 것 같길래 제긴 조금 늦춰드렸습니다."
"네? 뭐요? 저기요 이게 무슨"
"어디 가실 수 있다면 가보시지요. 말리지 않겠습니다. 그 몸으론 힘들테지만."
"아니 이런 미친 마신이"
"쉿. 아침을 가져올테니 조금만 기다려."
"야 이 미친놈...!"
종려는 기겁하며 자신의 알몸을 이불로 숨기는 타르탈리아의 고개를 제 쪽으로 돌려 그에게 짧게 키스하고 입술, 뺨, 목, 가슴, 허리까지 내려가 쪽쪽대며 입맞추다가 미소를 지은 채로 황당한 표정을 하곤 거친 말을 내뱉는 타르탈리아를 뒤로 하고 방 밖으로 유유히 걸어 나갔다. 이미 아무 말 없이 한 번 떠났으면서 또 다시 돌아와 얼굴만 비추고 금방 떠난다고 하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서운한데. 그렇다면 나도 내 방식으로 곁에 붙잡아 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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