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업축제]




아이스는 탑건 시절부터 매브를 좋아했겠지. 첫인상은 그리 좋지 못했음. 만나면 으르렁거리고 경쟁하기 바빴으니까. 하지만 매브가 사고로 그의 파트너를 잃고 흔들리기 시작했고 아이스는 그런 매브가 염려스러웠음. 그런 마음이 걱정에서 관심으로, 다시 호감이 되었다가 사랑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 윙맨이라는 건 편리했어. 자신의 윙맨을 챙긴다는 핑계로 늘 매브를 눈으로 좇고 챙겨줄 수 있었으니까. 매브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줘도 괜찮았지. 어차피 그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건 하늘밖에 없었거든. 그렇다고 생각해왔는데, 일방적으로 마음을 쏟기란 그 아이스맨에게도 쉽지가 않아서 점점 지쳐갔을거임. 그렇다고 매브가 그에게 소홀한 것은 아니야. 매브는 아이스의 친구이자 전우이자 윙맨으로서의 소임을 다 하고 있지. 단지 시간이 흘러도 그 이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 뿐이지만.
그래서 아이스는 제 마음을 정리하기로 했음. 이대로 뒀다간 정말 너덜너덜해질 것 같아서. 마침 주변 동료들도 나이가 차면서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는 참이었고, 아이스도 어렵지 않게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었음. 상대는 민간인이었지만 책이나 영화 등 의외로 겹치는 관심사들이 있었고 배려심 많았으며 상냥했지. 함께 있으면 즐거웠음. 그래서 아이스는 다행이라고 이대로 마음을 접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음. 매브가 임무 중 부상을 입어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애초에 그리 어렵고 까다로운 임무는 아니었음. 그간 수행해왔던 작전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쉬운 축이었지. 하지만 귀환하던 중 순찰중이던 적기와 마주하면서 상황은 급변했겠지. 적군에 비해서 아군의 수가 턱없이 부족했고 빠져나오기 위해 처절한 도그파이트를 감행해야 했지. 그러던 중 아군기 하나가 포위되자 매브는 그를 돕기 위해 적진으로 돌아갔던거임. 죽을 걸 알면서도. 다행히 아군을 구했지만 마지막 남은 적기가 격추되기 전 발사했던 미사일이 매브의 전투기에 적중했지. 비상탈출을 했지만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그대로 수면에 곤두박질쳤음. 다행히 항공모함에서 그를 구조했지만 몸에 박힌 파편 수십개와 심각한 타박상 및 골절상을 입은 상태였음. 파편이 혈관을 잘못 건드렸는지 출혈이 심각했고. 군병원에 이송된 후 곧바로 수술실에 들어갔고 중간에 심장이 멎어서 급하게 심폐소생술까지 해야 했지. 아이스가 소식을 들었을 때는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였지. 아이스는 매브가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음.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해서 면회를 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찾아왔지. 그러는 사이 만나던 사람과는 자연스럽게 정리되었음. 이미 마음 속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면서. 며칠이 지나 면회가 가능하게 되어 아이스는 매브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됐음. 혈색 좋던 얼굴은 창백했고 반짝이던 눈은 감겨서 떠지지 않았지. 아이스는 매일 매브에게 말을 걸고 손을 잡았음. 내겐 니가 필요하다고, 제발 돌아와달라고 끝없이 속삭였지. 그러기를 한 2주쯤 했을까, 어김없이 매브를 찾아온 아이스는 맞잡은 손이 꿈틀거리는 걸 느꼈지. 길다란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뜨였고 몇번 깜빡이다 붙잡힌 손을 바라봤지. 그러는 동안 아이스는 마법에 걸려 굳어버린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음. 이윽고 그토록 그리워했던 초록빛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고 산소마스크 아래서 나지막히 "카잔스키." 하고 이름이 불린 순간 아이스는 깨달았음. 난 평생 피트 미첼에게서 벗어날 수 없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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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 아이스매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