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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8 21:42
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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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 행맨 세러신은 그러니까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영원한 사랑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아니 물론 사랑은 하지. 그는 동생 찰리 영 세러신과 레지나 조지 세러신을 사랑했고, 비행을 사랑했고, 자기 자신을 사랑했다. 그리고 지지부진한 관계의 종지부를 맺고 진짜로 연인이 된 루스터-브래들리 브래드쇼를 매우, 엄청 사랑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비밀이지만 약 5년간의 머저리같은 짝사랑 끝에 이어진 관계이니 사실 꽤 절절하고 오래된 사랑이었다.
그럼에도 영원한 사랑의 맹세라던가 결혼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의 아버지인 미스터 세러신때문이었다.
부유하고 저명한 정치인이었던 그의 아비는 외적으로는 매우 가정적인 남자였다. 미국은 정치인들의 가정적이고 의외로 소탈한 모습같은 걸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주일마다 가족들과 교회를 갔고, 제이크의 미식축구 경기의 맨 앞줄에 서서 경기를 지켜봤고 어린 찰리와 함께 농구를 보러 가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크록스를 신고 지친 모습으로 레지나의 바비걸 쇼핑백을 대신 들어주는 파파라치가 찍혀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에는 언제나 결혼반지가 있었다.
하지만 제이크 세러신이 막 해사 입학을 앞두었을 때, 그의 아버지의 불11륜스캔들이 신문사에 의해 폭로되었다.
그 이후 모든 것이 제이크에게 상처였다. 아비의 배신으로 상처를 입었던 와중에 모두가 자신들을 쳐다봤다. 적극적으로 가족의 모습을 셀링했던 아버지 때문에 모두가 그 세남매가 미스터 세러신의 가족이란 것을 알았다. 심지어 꽤 잘난 외모로 인기가 많았고 사진이 찍혀 떠돌기도 했다. 끊임없이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도 그랬지만 더 어린 찰리와 레지나의 귀를 막아주는 손이 하얗게 질렸다.
상처를 받은 어머니는 떠났고 아버지란 작자는 무너지는 모래성을 손으로 막느라 바빴다. 아직 어린 두 동생을 지키기 위해 힘쓴 건오직 제이크 뿐이었다.
어렵게 합격한 해군 사관학교도 동생들을 두고 떠날 수 없어 포기하려던 순간, 친할머니가 그를 찾아왔다. 그들의 친권은 거의 조모에게 넘어갔다. 황혼에 급작스럽게 그의 조부와 이혼하여 세러신 가족과는 연락이 끊겼던 조모였다. 어린 제이크에게는 그녀와의 이별이 꽤 힘든 경험이었으나, 미스터 세러신의 몰락과 찾아온 그녀를 보며 어렵지 않게 그녀의 이혼 결정과 조부의 행적을 추측할 수 있었다. 조모는 찰리와 레지나를 살필 것을 약속했다. 해운 사업을 했던 조부와 결혼했던 그녀는 텍사스 지역 방송사를 시작으로 한 케이블 채널을 가진 집안의 고명딸이었다. 조용히 아이들에 대한 기사와 사진을 내리고 뒤늦게라도 스캔들로 인해 침해된 자녀들의 인권을 보호해달라는 호소어린 기사를 내보냈다.

아무튼 그는 영원히 함께하자는 약속을 믿지 않았다.
사람들이 읊조리는 사랑의 서약들 그 모든 것들이 거짓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진심이었겠지. 하지만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얄팍한 결혼 서약 따위 믿을 수 없다. 애초에 자신은 죽음과 경계가 희미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또 사랑에 빠진 남자도 그랬다. 지금 행복한 것에 집중하자, 행맨 다운 생각이었다.


언제와 같이 흥겨운 하드덱에서 둘만이 살짝 빠져나와, 은근히 잡아오는 손을 내치지 않고 해가 진 해변가를 거닐다 그의 루스터가 무릎을 꿇고, 캐롤의 반지를 내밀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제이크-행맨 세러신. 나와 결혼 해줘.”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언젠가 6개월만에 만나 격한 정사를 벌인 다음날 아침, 함께 느긋하게 루스터가 구운 팬케이를 먹으며 그가 행복하다, 라는 말을 했을 때부터 결심했단다.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은 빨간 볼을 하고 루스터는 굳건하고 진실된 눈으로 올려다 봤다.
이럴수가, 완전히 낭패였다. 그의 루스터는 언제나 올드클래식하고 로맨틱한 낭만이 있던 남자였다.
뒤늦게 그의 아버지였던 구스와 캐롤의 이야기를 듣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던 날, 그가 결혼과 가정에 대한 이상적 모습이 남아 있음을 어렴풋하게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청혼을 할 줄은.
하지만.. 제이크는 루스터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가 가진 꿈을, 어쩌면 이상을 해치고 싶지 않았고, 그래도 결국 그가 지금 나를 사랑해서 하는 고백에 거절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꾹 내리 눌러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 좋아.”
“.. 예스? 정말로? 예스인거야??”
“바보야. 그럼 내가 싫다고 할 줄 알고 청혼한거야?”




웃으며 타박하자 수염을 살짝 꾸물거리며 예전에 결혼 생각 없다고 했던건 기억이 나서..란다. 그래도 참을 수 없었어, 너무 사랑해서. 라고 말을 잇길래 귀여워 입술을 내리 찍었다.
루스터가 변한다면 꽤 슬플 것 같아. 하고 헤어지면 되니까.. 우리는 아이가 생길 것도 아니라서 상처받을 자녀도 없을 거고. 청혼을 받자마자 헤어짐을 생각한 것은 비밀이었다.












“제이크, 대체 이 결혼이 내 결혼이야, 네 결혼이야?”
“내 결혼이지.. 너랑 내가 하는게 아니니까.”
“그걸 아는 사람이 이래?!!”


레지나가 소리지르는 것을 건성으로 들으며 행맨은 브롱코의 방향을 틀었다. 루스터의 청혼을 받은 후 제이크는 그를 찰리와 레지나에게 소개했고 같이 만나 밥을 먹었다. 자연스럽게 결혼식 얘기가 나와 제이크는 진심으로 그냥 하드덱에서, 대충 영건들과 매버릭과 찰리와 레지나 정도만 불러 놀자고 했다가 저를 쳐다보며 소리지르기 직전의 레지나와 황망한 루스터와 눈을 크게 뜬 찰리를 보며 입을 다물었지만.

결혼에 대한 믿음이 없던 만큼 행맨은 결혼식에 대한 로망도 없었다. 할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이니 아는 정보도 원하는 것도 없었고 사실 딱히 해야하나 싶었다. 어차피.. 자연스럽게 나올 뻔한 뒷말을 내리 눌렀다. 그를 바라보는 루스터의 눈은 여전히 곧았으니까.





‘솔직하게 말해도 돼. 제이크. 식은 하지 말까?’
‘그게 아니라..’
‘…’
‘… 너가 기억하는 것처럼 난 애초에 결혼식에 대한 플랜이 없었어. 너도 알잖아.’



열받은 레지나를 찰리가 챙겨 헤어진 뒤 둘만 남은 호텔 방에서 함께 누워 있던 루스터가 조용히 물었다. 이죽이고 자신감으로 속마음을 가리는 것이 익숙했던 행맨은, 이렇게 루스터가 자신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볼 때마다 마치 무장해제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마음을 자각한 루스터는 그 이후엔 숨기는 것 없이 보이며 직선으로 올곶게 뻗어왔고, 그 뜨겁고 넘치는 애정을, 자신같은 상처 투성이가 거절할 수 있을리가.



‘그래도.. 너랑 내 동생들은 하고싶은거 같아서..’
‘다른 사람 때문이면 필요 없어. 너가 중요하지.’



특히 이런 말들.
이런 말들이 특히 나보다 너를 더 우선하게 함을 너는 알까.




‘..나는 그런거 잘 몰라.’
‘응, 그래도 괜찮아.’
‘젠장, 결혼식이라니.. 이러다 탑건에 사진이라도 걸리겠어.’




루스터의 다정은 중독이 강하다. 바보같이 찔러대는 말들을 그는 언제나 무력하게 만들었다. 걔가 나에게 어떤 선택을 종용하는 것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사랑했고, 그래서 그의 애정을 받는 것은 중독성이 컸다. 트라우마, 거절과 실망으로 쌓아올린 방어기제가, 그 불덩이같은 애정 앞에서는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러면 영광이지, 내가 별을 달게 되면 그 사진을 입구에 걸어둘게. 그래도 돼? 몰라, 삼촌-그 아이스맨?-은 그러시던데.

루스터, 나는 너가 변할지 모른다고 생각해. 아직도 나는 무서워, 그런 말들 보다는 그냥. 그의 입맞춤을 받고 또 실없는 소리를 하고 마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 날들을 지나, 하드덱개소리는 농담이었어, 란 말로 동생들에게 무마 하고 나니 어느새 결혼 준비가 진행 중이었다. 생각보다 찰리와 레지나는 결혼식 준비에 진심이었고 -



“근데 루스터가 아무래도 냅킨까지 분홍계열은 싫다고 해서, 베이지 톤으로 갈거야. 내말 듣고 있는 거지??”
“엉.. 듣고 있지, 근데.. 너 안바쁘니?”
“제-이-크!!!!!”
“알았어..”



거기에 루스터까지 죽이 척척 맞아 셋이 매일같이 아이챗에 심지어 페이스타임까지 하며 회의를 하는 모양이었다. 상대적으로 심드렁한 자신을 두고 짧게 항모를 타게 된 루스터는 거의 결혼할 아내를 두고 전장으로 떠나는 것 같이 애절한 표정을 했다. 그 기간동안 닦달을 하는 찰리와 레지나를 통해 몇가지를 결정했지만 내륙에 있는 자신보다 바다 위 루스터가 더 적극적이라니까.. 뭐 말은 다했지. 아니 너 짱인거 알아. 레지나 슈퍼스타 알지.. 겨우 동생을 달래며 항모에서 복귀하는 자신의 남편을 맞이하러 항모가 정박하는 부두 근처에 도착했다.




“루스터-흐업!”
“제이크! 지저스!”


하나 둘 씩 모습을 보이는 대원들 사이에서 곰같은 루스터를 발견하곤 소리치자-엄청나게 용기를 끌어다 썼다-무려 루스터는 달려와 자신을 번쩍 안고 진하게 입맞춤까지 선사했다. 주변 놈들이 휘파람을 불며 지나갔지만 굳건하게 반가움을 표시하는 루스터는 내려달라고 탭하는 자신의 손길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알겠어, 나 보고싶었던거 알겠다고, 하며 웃어도 계속해서 눈가, 볼에 입을 맞추는 루스터의 뜨거운 온도에는 이길 수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자신의 애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느낄때마다 신기하면서도 이런 것들에 익숙해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교차해서, 제이크는 웃으면서도 한숨을 내쉬곤 배고프단 말로 겨우 진정시켜 브롱코로 그를 이끌었다.




“레지나랑 찰리는 거의 미친 거같애. 나 걔네 땜에 메리지 블루온다고.”
“푸후 걔넨 너땜에 미치겠대.”
“아니, 아직 세달이나 남았잖아. 무슨 문자 하나 답장 안하면 둘이 번갈아서 난리를 쳐!”



항모에서도 꾸준히 연락했음에도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니 할 말들이 많았고, 자연스레 요즘 엄청나게 히스테리를 부리는 동생들의 욕을 늘여놨다. 자주 찾던 다이너에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엄청난 양의 립을 먹으면서 승질을 부리는데도 자신을 귀엽단 듯이 바라보는 저 유죄 눈빛은 진짜, 참을 수가 없어. 결국 또 말하다 말고 루스터의 뺨을 냅다 쿡. 찔렀다.
그래도 또 좋다고 웃는다. 진짜 어떡하지. 항모에서 좀 더 두툼해진 루스터는 섹시하고 귀여워졌다. 얠 남편.. 이라고 부르는 건 좀 맘에 드는 것 같기도 해.





“거기다가 갑자기 결혼 식장을 야외로 바꾸질 않나”
“….”
“갑자기 등나무를 무슨 옮겨야 된다고 그랬을땐 걔네가 진짜 미친줄 알았어”
“…. 등나무..”
“뭐?”
“등나무는.. 내가 하자고 그랬어..”






젠장. 제이크가 또 말로 업보를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