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집안에 손 한번 뻗은적 없었던 독고다이 효자 쿠로사와가 처음으로 부모님한테 도움요청했던건 아다치가 아이를 낳고서였겠다
문구가 좋아서 토요카와에 들어온만큼 그 덕업일치의 혐생아닌 혐생 포기하고 싶지 않을 아다치를 알아서 아이 태어나기도 전에 본가에 찾아가 미리 무릎꿇고 부탁했던 쿠로사와, 남편이랑 둘만 있으면 심심하다고 손주보고있으면 얼마나 좋은데- 웃음지으며 첫 손주 안아보시는 어머니 나고야댁에 그제서야 마음 놓았음
손주야 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지만 평생을 일하다 이제 좀 집사람과 둘이서 황혼을 즐겨보나 싶었던 아버지 군마부장은 그런 어머니의 뒤에서 꽤 떨떠름한 표정 짓고 계셨지만서도 쿠로사와 거기까진 신경쓸 겨를도 없었지
어차피 어머니를 이길수 없는 아버지는 좋든 아니든 어머니 말씀대로 하실테고 무엇보다 지금 우리 아다치도 한시가 급함





어머니 죄송해요. 육아가 보통일이 아닌데





괜찮아. 애가 순해서 유이치 키울때보다 훨씬 수월해 얘


그 말이 사실이긴한지 울법도 한데 엄마아빠가 출근하는 뒷모습을 보면서도 커다란 눈만 껌뻑껌뻑하다 말랑한 손을 쭉 뻗어오는 에이지에 쿠로사와와 아다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웃으며 집을 나설 수 있었지





진짜 얼굴보기 죄송해서라도 둘째는 안되겠어





우리 키요 둘째생각 있었어?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미안하지만 나도 둘째는 안돼. 너 고생하는거 두번은 못봐


운전대를 잡지 않은 손으로 아다치의 손을 힘주어 잡은 쿠로사와는 임신내내 물 한번을 편하게 못마셨던 아다치를 떠올리며 살짝 몸서리를 쳤음
사랑하는 사람이 제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몸이 상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해줄수 있는게 지켜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게 끔찍했던 쿠로사와, 아다치 임신기간내내 아다치만큼이나 살 내려서 보는 사람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왔을 정도였지
그렇게 각자 다른 이유로 둘째는 절대 안된다고 했던 둘인데 세상에 절대라는게 어디있겠음?





..유이치 나랑 얘기 좀 해


아이를 낳은지 1년도 지나지않아 또 다시 빨간줄이 선명하게 뜬 임신테스트기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아다치는 지금도 아이를 봐주시고 계시는 시부모님께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눈앞이 깜깜해졌겠다
며칠전만 해도 에이지가 옆집 아이와 부쩍 잘지내더라며 혼자가 외로운걸까? 하고 물어오시던 시어머니께 둘째생각은 없다며 손사레를 치고 하나만 잘 키울 생각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던 아다치는 얼굴이 화끈거려 미칠지경이었지





어머니한테는 내가 말씀 드릴게...


한달쯤 전, 결혼기념일을 맞아 하루종일 호텔에서 보낸 그 날이었을거임
밤새하고도 갈증이 나는지 마무리는 결국 빈상자가 된 콘돔박스를 저멀리 던지고 달려든 쿠로사와의 작품인게 분명했지





내가 진짜 못살아. 어머님아버님 얼굴을 어떻게 봐!


10달의 고됨보다는 한달도 안돼 손바닥 뒤집듯 뒤엎어버린 가족계획이 민망해 더 걱정이 된 아다치는 입술만 잘근잘근 씹고있는데 사고를 친 장본인인 쿠로사와는 제 눈치를 보면서도 슬쩍 웃음꽃이 피어오르는게 둘째고 뭐고 너 힘든거 못본다 싫다더니 둘째소식이 싫지만은 않은듯했음





...웃어?





...키요시. 우리 둘째도 키요 너랑 똑닮은 딸이었으면-





으이그, 빨리 어머님한테 어떻게 말씀 드릴건지 생각이나해!


내가 진짜 못살아 정말 못살아! 아다치 지금만큼은 얄미워죽겠는 제 남편에 잔뜩 삐져서 꿍얼꿍얼 거렸겠다
잔뜩 화가나서 발구르고있는 아다치 눈치 쓱 살피며 본가로 전화넣은 쿠로사와, 제가 소식 전하자마자 '어머, 둘째? 아니 근데 둘째 생각없다며-' 하면서도 축하한다고 이제 에이지 외롭지않겠네 웃으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한시름 놓고 아다치 바꿔줬음





어머님 면목이 없어요. 육아도 힘드실텐데...





'어머, 얘는! 난 요즘 에이지 크는거 보는 재미로 사는데?'


아다치에게 마음쓰지말라고 내가 꽁으로 육아를 하는것도 아니고 우리 아들한테서 용돈도 두둑히 챙기는데 너 마음 불편할 이유 전혀 없다며 오히려 아다치 마음 헤아려준 시어머니 나고야댁, 자꾸 옆에서 쿠로사와 좀 바꿔보라며 끼어드는 군마부장에게 잔소리하면서 얼른 전화 끊었지

근데 저때 전화 안끊었으면 즈그 아들 쿠로사와한테 우리는 언제 황혼을 즐길수 있냐 나 회사 정년퇴임하고 우리 집사람이랑 오붓하게 데이트 즐기려고 했더니 둘이 있을 시간이 없지 않냐고 극대노한 군마부장 목소리 들을 수 있었을 것
하지만 결국 같은 피를 물려받은 쿠로사와도 아부지만큼이나 만만찮은 와이프등신이라 어깨 으쓱하면서 '킹치만-' 시전해서 군마부장 골프채 들고 신혼(아님. 애가 둘일 예정)집까지 달려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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