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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1 04:17
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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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마치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잠에 취한 그대로 눈을 감은 채 손만 뻗어 핸드폰 알람을 끄는 손길이 능숙했다. 협탁 위에 핸드폰을 던져 놓고 다시 잠에 들려고 할 때쯤, 품 안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케이, 일어나요... 지금 안 일어나면 지각인데...”
마찬가지로 잠에 취한 아카소가 눈도 뜨지 못한 채 말했다. 마치다는 알았다고 답하면서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에 먼저 눈을 뜬 아카소가 마치다의 어깨를 잡고 살며시 흔들었다.
“다시 잠들면 안 돼요...!”
“나 못 일어나겠는데...”
“왜요, 혹시 어디 아파요...?”
“아니... 에이지가 뽀뽀를 안 해 줘서 힘이 안 나...”
심각한 얼굴로 묻다가도 뒤이어 들려온 마치다의 말에 결국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린 아카소였다. 하는 수 없이 마치다의 위로 올라타 몸을 겹친 채 입술과 뺨에 몇 번이나 입을 맞췄다. 그 간지러운 행동에 못 참고 웃음을 터트린 마치다가 눈을 떴다.
“이제 일어날 수 있죠? 빨리 씻어요. 안 그럼 진짜 지각이에요.”
“아프다고 하고 쉴까.”
“출근한 지 얼마나 됐다고 쉬어요! 절대 안 돼!”
자신의 어깨를 때리는 말랑한 손에 소리 내어 웃던 마치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덩달아 자신의 다리 위에 앉은 아카소를 끌어안은 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입을 맞췄다.
“좋은 아침, 에이지.”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침 인사를 건네는 마치다에 아카소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좋은 아침이에요, 케이.”
*
“뭐 잊은 거 없어요?”
신발을 신는 마치다의 뒤에서 아카소가 고개를 뺀 채 물었다. 양발에 정갈하게 신발을 신은 마치다가 숙였던 허리를 편 채 아카소를 바라봤다. 자신이 죽고 못 사는 그 안달 내는 눈을 보고 있자니 왠지 순순히 대답해 주고 싶지 않았다.
“잊은 거? 없는데.”
잘 모르겠다는 듯 대답하자 금세 서운하다는 감정이 맴도는 얼굴에 마치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저 순수하기만 한 반응 탓에 자꾸만 장난이 치고 싶어진다는 걸 아마 아카소는 평생 모를 터였다. 마치다가 휘어진 눈으로 웃으며 팔을 벌렸다.
“장난이야. 이리 와, 에이지.”
언제 서운했냐는 듯 뽀르르 다가와 품에 안기는 게 강아지 같았다. 조금의 오차도 없이 맞물린 두 사람의 몸이 가볍게 흔들렸다.
“오늘도 일찍 올 거죠? 저녁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만들어 놓을게요.”
“그냥 있어. 내가 와서 할 테니까.”
“그래도 케이 피곤할 텐데...”
“안 피곤해. 에이지는 그냥 휴가 동안 푹 쉬어.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
남들이 들었으면 닭살이 돋는다며 기겁을 했을 말도 아카소에게는 마냥 달기만 했다. 그래서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덩달아 어깨에 닿는 볼이 볼록 튀어나온 걸 느낀 마치다 또한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냈다.
한참 뒤에야 아카소를 품에서 떼어낸 마치다가 부드러운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제는 정말로 출근을 해야만 했다.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현관문을 열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다녀올게.”
“다녀와요.”
두 사람의 목소리가 가볍게 겹쳐드는 아침이었다.
-
마치다가 새 직장으로 출근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그 사이 계절은 봄을 맞이했고, 둘의 생활은 아무 일도 없던 때처럼 다시 안정을 찾았다. 마치다는 모교인 항공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선생님이라는 직함보다는 실습 강사라는 직함이 더 정확했다. 물론 학생들의 눈에는 학교에서 일하는 모든 어른이 선생님이었지만. 한껏 발랄한 목소리로 자신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쫓아다니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이 일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생각보다 적성에 맞는 듯했다. 어쩌면 마음이 안정된 탓에 모든 걸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걸지도 몰랐다.
아카소는 다음 작품에 들어가기 전까지 짧은 휴가를 받았다. 그동안 제대로 못 채운 수면 시간을 하루 종일 채우기도 했고, 마치다가 출근을 한 사이 밀린 집안일을 하기도 했다. 가끔은 마치다가 올 때까지 참지 못하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채 익숙한 차가 보일 때까지 서 있거나, 도저히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는 날이면 마치다가 일을 하는 학교 근처 카페에서 마치다를 기다리기도 했다. 하지만 예전만큼 힘들지 않았다. 이제는 언제든 마치다를 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조금의 기다림 정도는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지금에서야 알게 된 아카소였다.
그런 날들 사이로 서서히 벚꽃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마냥 봄 같은 날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
복도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리는 소리에 마치다가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학생들이 창문에 딱 붙어 뭔가를 보고 있었다.
“너네 교실 안 들어가고 뭐 해.”
마치다가 학생들에게로 다가가며 물었다. 여전히 창밖에 시선을 둔 학생들이 소리쳤다.
“밖에 아카소 에이지 있어요!”
그 소리에 놀란 마치다가 창밖을 바라봤다. 모자를 푹 눌러 썼지만 누가 봐도 ‘배우 아카소 에이지’인 자신의 남편이 교문 앞에 서 있었다.
“왜 왔지? 촬영하러 왔나?”
“카메라도 없이 혼자 온다고?”
“학교에 아는 사람 있는 거 아냐?”
“설마 남편이 있나?”
교무실 책상에 결혼사진 하나 놓지 않은 마치다 선생님이 아카소의 남편인 걸 알 리 없는 학생들은 저들끼리 추리 문제를 풀 듯 쑥덕거렸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의 뒤로 마치다가 빠르게 지나갔다.
*
역시 평소처럼 카페에서 기다릴 걸 그랬나. 창문 안쪽으로 다닥다닥 붙은 학생들의 시선에 아카소가 땀을 뻘뻘 흘렸다. 마치다의 모교이자 직장이 궁금해서 한 번쯤은 와 보고 싶었을 뿐인데, 공항을 드나들 때보다 더 열렬한 반응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냥 카페에서 기다리자. 그런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릴 때쯤,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지!”
다급한 얼굴로 달려오는 마치다에 아카소가 안절부절못했다. 그 사이 아카소 앞에 선 마치다가 숨을 골랐다.
“왜 여기 있어. 올 거면 카페에서 기다리지.”
“그냥 궁금해서... 미안해요. 내가 케이 곤란하게 한 거죠.”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자신과 학생들을 번갈아 보는 아카소에 마치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카소가 뭘 걱정하는지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 관계를 나쁘게 말하는 이들은 사그라졌다 해도, 여전히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하지만 마치다는 아카소가 혼자 걱정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감당해야 한다면 차라리 자신이 전부 감당하고 싶었다. 예전에도 지금에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손끝만 꼼지락거리는 아카소를 마치다가 끌어안았다. 그 모습에 학생들이 창밖으로 비명 같은 환호성을 질렀다. 화들짝 놀란 아카소가 마치다의 등을 주먹으로 콩콩 두드렸다.
“사람들 다 보는데...!”
“괜찮아. 보라고 해. 내가 내 남편 안겠다는데 뭐.”
뻔뻔한 목소리와 자신을 끌어안는 단단한 팔에 결국 아카소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냥 보라고 하자. 뭐 어때. 한껏 편안해진 마음으로 자신 또한 두 팔을 뻗어 마치다를 끌어안았다. 그대로 눈을 감자 온통 기분 좋은 소리만이 들려와 가슴이 간질거렸다.
-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카소는 내내 마치다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말랑하기만 한 자신과는 달리 단단하고 굳은살이 박인 마치다의 손을 아카소는 좋아했다. 쉴 새 없이 느껴지는 귀여운 손길에 조수석을 힐끔 본 마치다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자꾸 그러면 운전에 집중을 못하는데.”
“그럼 그만할까요...?”
“농담이야. 너 좋을 대로 해.”
동그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릴 때는 언제고, 농담이라는 한마디에 금세 또 기분이 좋아져선 히히 웃는 아카소를 마치다는 이길 수 없었다. 곧 손가락 사이로 아카소의 말랑한 손이 파고드는 게 느껴졌고, 그 온기에 마치다가 시선 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 아카소의 손을 꽉 잡았다.
“오늘 갑자기 가서 미안해요.”
“괜찮다니까. 난 좋았어.”
“그래도 내일부터 시끄러워질 텐데...”
“감당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돌아온 거야, 나.”
일부러 무겁지 않게 말하는 마치다에 아카소가 미소를 지었다. 마치다는 늘 자신에게 단단하다 말했지만, 어쩌면 그렇게 말하는 마치다가 더 단단할지도 몰랐다. 물론 그의 유약함까지도 아카소는 사랑했다.
“이제 다 알았으니까 책상에 결혼사진도 올려둬요.”
“어... 그건 좀 곤란한데.”
심각한 얼굴로 말하는 마치다에 아카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아카소를 힐끔 본 마치다가 진지하게 말했다.
“다들 네 사진 보겠다고 달려들면 어떡해. 안 그래도 결혼사진 잘 나왔는데.”
그 말에 결국 아카소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마치다는 진심이라는 듯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아카소의 웃음소리가 사그라질 줄 몰랐다.
어느덧 집 앞에 도착한 차가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빈자리에 차를 세운 마치다가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 찰나, 갑자기 자신의 옷깃을 잡는 손길에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아카소의 입술이 느껴졌다.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마치다를 아랑곳하지 않는 듯, 아카소는 마치다의 옷깃을 잡은 채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놀란 것도 잠시, 입 안을 파고드는 말랑한 감촉에 마치다가 익숙하게 아카소의 뒷목을 감쌌다. 낯간지러운 소리와 함께 몇 번이나 닿았던 입술이 떨어지면 아카소가 홍조 띤 얼굴을 한 채 말했다.
“어차피 케이 건데 어때요. 이런 것도, 케이랑만 할 건데.”
그러더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차에서 내리는 아카소에 마치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어쩌자고 저러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바보처럼 웃다가, 저 또한 황급히 차에서 내려 아카소에게로 달려갔다.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저녁 공기 사이로 흩어졌다.
마치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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