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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4 22:59
“왔어?”

“응.”


삐리릭. 문이 닫히고 신발을 벗는 소리가 나고 한 박자 뒤, 도어락이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잠긴다. 남망기는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겨우 ‘응’ 따위의 성의 없는 인사만을 남긴 채 바깥 욕실로 직행. 그러는 나도 연예인들이 제비뽑기로 특이한 음식을 먹는 유치한 예능 프로그램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으니 할 말은 없다.


“모칭ㅡ!”


선잠에 들었던 사윤이 깼나보다. 칭얼대는 애를 안고 몇번 얼러주고 잠에서 깨게 했다. 괜히 지금 더 재웠다가 밤에 요란하게 뛰어다니면 나만 죽어난다. 크게 억울한 일이라도 당한 듯 서럽게 울어대던 아이가, 저녁으로 카레를 주겠다는 말에 신이나서는 쫑알대는데 아주 귀여워 죽겠다.


남편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애초에 남망기가 날 사랑했던 적은 없다. 남망기는 오직 그 애만. 그렇다. 모두가 그 애를 사랑했고, 남망기도 그 애를 사랑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그 애를 살아생전에 가장 많이 사랑한 건 나다.

‘피도 안 섞였는데, 똑같은 유전병에 걸릴 건 뭐람.’

창창하던 그 애는 겨우 열여덟에 죽어버렸다. 두 살 때부터 나와 같이 살던, 내 첫번째 기억 속에서부터 존재하던 그 애는 얄궂은 병마에 걸려서 그냥 그렇게 죽어버렸다. 매일같이 붙어다녀서 학교 선생님과 슈퍼 아저씨, 학원 버스 기사님이 나와 쌍둥이냐고 물어봤던 그 아이. 사지가 연결된듯 텔레파시라는 게 실존하는 듯 소울메이트가 사실이라는 듯 착각을 하게 해준 그 아이.

젊을 수록 치사율이 높은 병이란다. 그러니까 그 애는 발병 사실을 안 지 겨우 서너달만에 그냥 끝. 나는 대략 1년이 남았다고 했다. 사윤이는 겨우 네 살이다.


“카레 괜찮지?”

“강만음 니가 하게?”

“응.”

“…”


남망기는 딱히 대답할 거리가 아니라는 듯 몸을 돌려 장난감과 사투를 벌이는 사윤이에게 다가간다. 아빠가 번쩍 안아들자 사윤이는 꺄하하 하고 귀여운 웃음을 짓는다.





결혼 사진 속 나는 내가 아닌 것 같다. 어색하고 불편한 입꼬리와 돈이라도 뜯긴 듯 화가 난 눈매가 너무 못났다. 남망기라고 딱히 잘 나온 건 아니다. 무표정, 꼭 나에게 말을 걸 때처럼. 이 사진 속에서 살아남은 건 언제나 아름다운 우리 누나와 귀염성 좋은 조카놈 뿐이다.


“엄마, 이거눈 언제 찌근그거야?”

“엄마 결혼식 때.”

“이거 누구야?”

“여란이 형아잖아. 못 알아보겠어?”

“아니야.”

“아니야?”

“여란이 형아 아니야.”


지금 사윤이 나이와 비슷하던 때의 모습이니, 사윤이 눈에는 낯설만도 하다. 여란은 벌써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니까. 새삼 시간이 빠르다.


“윤이는?”

“응?”

“윤이는 어디써?”

“사윤이는 여기 없지.”

“왜?”


울먹이면서 되묻는 모습이 퍽 웃기다. 입을 삐죽거리면서. 왜 나만 빼고 모여서 사진을 찍었냐고 따지듯이. 넌 임마 그때 존재하지도 않았어.


서로 좋아하지 않아도 결혼할 수 있다. 나와 남망기가 그렇다. 적당한 타이밍에 적당한 조건으로 주변을 맴돌면 부부가 될 수도 있다. 그냥 인생이 그렇다.

“오늘 사윤이랑 잘게.”

“… 그래.”

“…”

“사윤이가 좋아하겠네.”


킹 사이즈 침대는 나 혼자 쓰기에 너무 넓다. 불을 끄고 안방 침대에 누워서 또 생각에 잠긴다. 이번에는 감상적인 기분보다는 아주 현실적인 고민들이 나를 덮친다. 둘이서 돌봐도 체력이 달리는데, 남망기 쟤가 혼자 사윤이를 잘 키울 수 있으려나. 남망기의 공무원 월급으로만 살림을 꾸려나가기에는 택도 없을 텐데 어떡하지? 아냐, 그래도 방학 때 한달 정도 쉴 수 있으니 사윤이랑 여행도 다니고 추억 만들기에는 제일 좋은 직업인데. 아니 근데 그래도 돈이 있어야…. 에라이. 일을 좀 더 늘려야겠다.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야하니까. 시간이 없으니까.



“강만음.”

“왜?”

“내일…. 몇시에 갈 거야?”

“오전에, 10시쯤. 너는?”

“같이 가.”

“누나랑 같이 가기로 했는데.”

“그럼 처형도 같이.”



그 애의 기일은 일 년 중 가장 해가 긴 날이다. 나지막한 산이라지만 그래도 산은 산인지라 금방 숨이 막히고 땀 범벅이 되었다.


“가방 줘.”

“됐어, 괜찮아.”

“줘.”


그 애가 좋아하던 사과를 가득 채워오느라 배낭이 조금 무겁긴 했다. 남망기가 그걸 멋대로 뺏어들고 내 보폭에 맞춘다. 남망기가 날 본다. 남망기가 나를. 이런 날은 얼마 없으니까 충분히 느껴야 한다.

절 같은 건 안 한다. 그 애가 성질을 부리며 내가 노인네냐?하고 욕을 할 거 같다. 가끔 이렇게 그 애가 너무 보고싶어서 화가 날 때가 있다. 하지의 정오, 나도 누나도 그리고 남망기도 그 애가 아주 많이 보고싶은지 모두들 각자 화가 나 있다. 말 소리는 사라진지 오래다.





“윤아, 아빠한테 와. 엄마 오늘 아파.”

“엄마, 아파? 어디 아파?”

“아픈 거 아니고 피곤한 거야. 사윤이 걱정하지 마, 응?”

“엄마 윤이가 호 해줄래!”


몸이 천근만근이다. 눈이 뻑뻑해서 부러 느리게 깜빡였다. 그 뒤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강만음.”

“왜.”

“일 좀 줄여. 알아서 적당히 분배를 해야지. 사윤이 생각은 안 해?”

“돈 벌어야 할 거 아냐?”

“당장 돈 급한 것도 없는데, 건강 챙기는 게 먼저야.”


사윤이 대학 등록금은 어쩌려고 그러나. 남망기는 고지식하고 돈에 어둡다. 그래서 저런 소리를 한다. 날 미워해서 그런 게 아니고. 그냥 그런 성격이라서. 남망기가 날 싫어해서 그러는 게 아니고.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야지. 내가 주말에 몇 건 몰아치는 게 네 월급보다 많잖아?”


남망기가 화가났다. 내가 지를 무시하는 소리를 했다고 그러나. 남망기의 미간이 좁아진다. 실망이 역력한 시선이 아프다.


“강만음, 너 진짜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


아, 또 싸움이 시작됐다. 이번엔 또 오래 버텼는데 우리. 그래도 이주 반 정도 안 싸우고 참았는데 서로. 화가 나서 눈물이 차오른다. 슬픈 게 아니라 화가 나서. 남망기가 날 싫어해서 서러운 게 아니고 그냥 화가 나서 진짜.



서늘한 소리를 늘어놓는 무서운 남망기를 뒤로 하고, 내 작업방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는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마저 코드를 짜려다가 관둔다. 아주 오래전에 시작했다가 몇번 밀린 뒤로 그대로 방치해둔 블로그에 들어간다.


있잖아, 사실 나 너 좋아한다? 열 여덟에 우연히 우리가 짝이 되었을 때부터. 또래 애들이랑 다르게 말이 없고 책을 좋아한다는 걸, 괴롭힘을 당하는 애 옆에 아무 말 없이 하루종일 서 있어준 아이라는 걸, 내가 갑자기 맹장이 터져서 쓰러졌을 때 엠뷸런스가 들어올 수 있는 학교 정문까지 날 엎고 냅다 뛴 게 너라는 걸 알았을 때 즈음이야. 그때부터야. 있잖아, 남망기. 사실 나 너 좋아한다? 우리 엄마아빠 앞에서만 내 손을 잡아주고 팔짱을 껴주는 못되고 영악한 남편이라도 좋고. 사윤이가 없을 때는 나한테 말 한 번을 안 걸고 남처럼 차갑게 구는 너도 좋고. 내 칠칠맞은 생활습관을 보고 양말 빨래는 따로 모아라, 계란 껍데기는 음식물 통에 넣지 마라, 하고 잔소리하는 너도 좋아.

그러니까, 잠깐만. 아주 잠시만. 딱 일 초만 나 사랑하면 안 될까?



나는 남망기에게 내 병을 숨기기로 결정했다.


“이혼하자.”

“뭐?”

“사윤이는 네가 키워, 남망기.”

“강만음!”

“양가에는 내가 전화 드릴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너 미쳤어?”

“미친 게 아니라 지쳤어.”

“강만음 너,ㅡ”

“남망기 너랑 결혼 생활 지옥이었어. 오년 내내 싸우기만 해서 속이 문드러졌어. 이제 못 버텨. 이혼하자.”

“그게 무슨 소리야? 강만음 넌 항상 네 맘대로 뭐든지 결정짓고서,ㅡ”

“집은 내가 나갈게. 일주일 안에 정리할테니까 그렇게 알아.”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는 그 애를 사랑하고. 그 애를 앗아간 병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너는 그 애 생각에 슬퍼서 무너질 거야.


“안녕, 남망기.”


안녕. 정말로 안녕.











망기강징 망징 싸섹비
2022.01.14 23: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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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ㅠㅠ안돼ㅜㅜㅜ강징 죽는거야?ㅠㅠ완치되면 좋겠는데ㅠ
[Code: 78b4]
2022.01.14 23:20
ㅇㅇ
강징 너무 허무해 ㅠㅠㅠㅠ 센세 설마.. 어나더 있는거지????
[Code: 04b7]
2022.01.14 23:24
ㅇㅇ
모바일
으아아아 시작부터 시한부ㅠㅠㅠㅠㅠㅜㅜㅜㅜ
[Code: 01c1]
2022.01.14 23:25
ㅇㅇ
모바일
ㅠㅠ 대화를 해 이것들아!!! 강징 어쩌려고 ㅠㅠㅠㅠ
[Code: adf4]
2022.01.14 23:28
ㅇㅇ
모바일
강징ㅜㅜㅜㅜㅜㅜ 어떻게ㅠㅜㅜ 시작부터 어떻게 그럴수가잇서ㅠㅜㅜ
[Code: 2ece]
2022.01.14 23:29
ㅇㅇ
모바일
벌써부터 눈물각인데...센세 왜 벌써 날 울려....
[Code: 1b28]
2022.01.14 23:29
ㅇㅇ
모바일
센세 나 울어
[Code: 4e2e]
2022.01.14 23:42
ㅇㅇ
모바일
센세,,,,,,센세,,,,아 어떡해 진짜ㅠㅠㅠㅠㅠㅠㅠ징아ㅠㅠㅠ흐어어어어엉
[Code: 1580]
2022.01.15 00:55
ㅇㅇ
모바일
센세ㅠㅠㅠㅠ 어나더가 없으면 윗붕은 죽소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060c]
2022.01.16 13: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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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ㅜㅜ 망기의 마음이 어떻던간에 어쨌든 만음이한테 남은 시간은 1년이 고작이라는게ㅜㅜ
[Code: 4aa3]
2022.01.17 02:05
ㅇㅇ
모바일
어나더 없으면 나 죽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dace]
2022.01.18 20:32
ㅇㅇ
모바일
끄악 서로 대화를 해 ㅠㅠㅠㅠ
[Code: 1b13]
2022.01.18 21: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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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시작부터 시한부ㅠㅠ 강징ㅠㅠ 안쓰럽다ㅠㅠ
[Code: f59d]
2022.02.03 22:4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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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ㅠㅠ 사윤이 남겨두고 가지마 강징ㅠㅠㅠㅠ센세 새해 복 많이 받아 ㅠㅠㅠㅠㅠ어나더ㅠㅠㅠㅠㅠ
[Code: 73ae]
2022.05.19 23:03
ㅇㅇ
센세 나 또 왔어 망징 마음의 고향......흑흑
[Code: 2fd4]
2022.06.20 02:41
ㅇㅇ
센세 나 또 왔어....진심 마스터피스ㅠㅠㅠ
[Code: 545d]
2022.07.08 18:1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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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고향...날이덥다 센세 건강 조심해
[Code: 61d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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