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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4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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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괜찮겠어? 이대로 우리 집에 가도."
"챙길 물건도 없어서요. 방은 나중에 정리할 거고요, 그리고..."

벤은 파이브의 목을 조금 더 껴안았다. 파이브가 하는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진 몰라도 우선은 몸의 떨림을 멈추는 것이 먼저다. 그만 좀 등신같아라. 볼품없는 모습을 보일 바에야 거머리처럼 붙어 이대로 떨어지지 않거나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편이 나았다.

"내가 짐 챙기는 사이에 마음이 바뀌어서 버리고 튈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지금은 방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거기 사는 사람들의 미래처럼 어두운 방들이 다닥다닥 붙은 곳. 멀리서 보면 바퀴벌레 알집 같았다. 거기 사람들은 밤이 찾아오면 새까만 적막에 짓눌려 다들 찍소리 내지 않고 숨을 죽였다. 그러다 간간히 들려오는 뒤척임 소리를 들으며 안도한다. 저 녀석도 나처럼 인생을 원망하느라 잠 못 자고 있구나. 그러다 몇 초 후면 뱃속에서 수백 마리 뱀들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불안해지는 것이다. 저 녀석도 이 쪽의 소리를 들은 거면 어떡하지. 머리카락과 옷자락에서 뚝 뚝 떨어지는 빗물 소리를, 바지 앞이 다 헤쳐진 병신같은 오메가가 혼자 덜덜 떨고 있는 소리를 들어서. 그래서 몸을 일으킨 거면...

벤은 침을 꿀꺽 삼켰다. 파이브의 차가 이보다 부드러울 수 없게 밤길을 주행하고 있었지만 벤은 아직도 제 멱살이 잡혀 종잇장처럼 무력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귓가를 잡아먹던 술집 사장의 뜨겁고 축축한 입바람과 엉덩이에 비벼지던 흉물스러운 살덩이의 감각이 문득문득 선연했다.

그것을 아는지 파이브가 반대편 귀에 목소리를 불쑥 집어넣었다.

"시계 버리고 온 게 아까워서 되돌아갈 사람 같아, 내가?"

웃음기는 조금도 섞지 않은 어투였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파이브가 어떤 표정을 하면서 말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등에 얹어지는 큰 손의 다정하면서도 무심한 쓸어내림에 벤은 눈을 끔뻑거리다 조금씩 몸의 떨림을 멈추어 갔다.

"음. 생각해보니 되돌아갈지도 모르겠네. 그 시계 수십 억 짜리라서."
"... 뭐요?"

드디어 벤이 고개를 떼어내 경악스러운 눈으로 파이브를 쳐다보았다. 파이브는 다음에 무슨 말이 들려올지 기대하는 미소를 뭉근히 띠고 있었다. 벤을 내리깔아보는 녹안의 속눈썹이 우아하리만치 길었다. 벤은 주먹을 꼭 말아쥐고 한 글자 한 글자를 씹듯이 뱉었다.

"수십 억 짜리를 그딴 돼지새끼한테 줘? 씨발, 우리 당장 다시 가지러 가요."

덜덜 떨 땐 언제고 결의에 찬 눈으로 차 안돌리고 뭐하시냐 재촉해대는 벤에 파이브는 짧게 웃었다.

"농담이다. 얼마 안 해. 삼 억이었던가."
"아... 삼 억. 그 정도면 뭐. 얼마 안 하네."

김 빠진다는 콧방귀를 뀐 벤은 다리를 달달 흔들었다. 뭐가 얼마 안 한다는 거야. 애초에 좆만한 시계가 억 단위인 게 말이 돼? 삼 억이면... 나랑 엄마 살 집 한 채랑. 낡았어도 굴러가긴 할 중고차 한 대랑. 내가 겨우 읽는 저학년용 단어책이 무어냐, 읽고 싶은 모든 책들, 아니다, 아예 서점을 통째로 사고 나서도 밥 걱정 평생 안 하겠다. 나는 서점 사장님 하고 직원들만 일 시켜야지. 아닌가? 삼 억으로 그건 좀 부족한가?

어찌됐든 삼 억이란 돈은 단 5년만이라도 쪽방에 사는 모든 시궁쥐들의 인생을 구제하고 남으리라. 벤의 주머니에 꽂히는 상상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그 돈을, 이 부자는 일회용 너클로 사용해서 인간 쓰레기인 술집 사장의 머리 옆에 던져주고 왔다. 이빨 나간 값이라기엔 그 놈의 분수에 차고 넘쳤다. ...코 뼈도 부러졌던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존나 차고 넘쳐.

입이 삐죽 나와 씨근거리는 벤에게로 파이브가 손을 뻗었다. 젖은 옆머리를 느릿하게 쓰다듬는 손길은 소중한 것을 어루만지는 것마냥 조심스러웠다.

"그럼, 얼마 안 하지. 널 얻는 데에 고작 삼 억이라니."
"..."

파이브가 벤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벤은 무언가 이상한 파이브의 분위기에 눈썹을 찌푸렸다. 파이브의 눈에서 여유로움이 사라지고 동공이 조여들어 있었다.

투명한 눈동자 위에서 번득이는 이채는 벤이 익숙하게 봐온 뒷골목 미치광이들의 것 같으면서도 완전히 처음 보는 것이었다. 파이브의 손가락이 벤의 귀 뒤를 문지르다가 멀어지지 말라는 듯 턱을 잡았다.

"삼 억. 삼 억이라니까... 벤. 너 같은 애를, 고작 삼 억에 얻었다고."
"..."
"표정이 왜 그래. 마음에 안 들어?"

아, 시계 때문인가. 파이브가 낮게 말했다.

"수십 억 짜리는 너에게 채워주려고 안 차고 온 거란다."
"..."
"아니면, 네 몸값으로 삼 억은 생각 못 했어?"
"..."
"그래? 정말로?"

그런 거라면, 벤. 이제부터라도 잘 알아둬라. 뺨을 톡톡 두드리는 손길은 비싼 물건을 다루는 것 같았다. 파이브의 녹안이 휘어졌다.

"너는 네 생각보다 훨씬 가치있는 애야."

장난스러운 인정이 담긴 눈 같기도 했고 먹잇감을 잡은 포식자의 눈 같기도 했다.

벤은 파이브의 손을 탁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쳐냈다.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막 대하는 것 같다가 잘 해주고, 안아주다가 턱 쥐면서 흔들고... 내 가치? 지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돈이 썩어나니까 심심해서 건드려보는 주제에.

"그딴 말 듣기 싫어요. 어린 오메가 속여서 정액받이로 쓰려고 데려가는 사람들 전부 처음엔 그 말 하거든요?"
"..."
"방금 꺼 존나 기분 나빴고 피차 계산적으로 같이 가는 거니까 같잖게,"
"입."
"파이브부터 거지같은 말...!"

파이브의 눈매가 서늘하게 바뀌었다.

"입."

벤은 옆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이 목께로 내려와 뱀처럼 기어다니는 것을 느꼈다. 순간 피부 밑에 새겨진, 강자에 대한 굴복이 울렸다. 벤은 파이브의 눈을 피하고 숨을 참았다.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사람은 처음 내가 펠라를 했을 때 입에 싸도 되겠느냐며 머리를 잡고 박아대놓고 몇 분 후 가족이 되어주겠다는 말을 한 사람이다. 앞뒤가 전혀 안 맞는 이상한 사람. 위험할 때마다 날 구해주긴 했지만... 나는 세 번 말하는 걸 싫어해. 기억 속에서 파이브의 목소리가 그르렁거렸다.

"예쁜 입을 하고선."

목에서 어른거리던 손이 다시 올라와 뺨을 감쌌다. 엄지손가락이 긴장한 벤의 입술을 만지작거리다, 묻혀놓은 립스틱을 번지게 하는 것처럼 옆으로 길게 누르며 떨어져 나갔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힐 틈도 없이 들이밀어진 것은 파이브의 명함이었다.

벤은 억울함을 감추지 않은 눈빛으로 째려보며 명함을 받아들었다. 부드러운 미소가 돌아온 걸 보니 눈으론 반항해도 괜찮은 모양이었다. 생명의 은인인데 미친놈이라 할 수도 없고... 명함을 내려다보기 전부터 머리가 복잡했다. 부자, 정신병자, 천문학자. 부자, 정신병자,

천문학자.

난 한낱 천문학자일 뿐이거든.

부정하고 싶지만 실은 저 말을 들은 이후로 내내 한 단어만 생각하고 있었다. 천문학자. 밤하늘처럼 새까만 검은 색인 명함을 다시 마주한 벤은 파이브의 이름 저 밑에 "Ph.D. in Sc."가 적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숫자랑 알파벳들 사이에 섞여있어서 처음 받은 날엔 읽지 못 했었나 보다. 솔직히 말해 읽는다 해도 저 글자의 나열이 뭘 뜻하는지는 모른다. 당연하지, 고양이가 프라이팬에 얻어맞는 만화 영화 이름도 몰랐는데. 벤은 눈치로 저게 천문학자를 뜻하는 어떤 암호일 것이라 생각했다.

뒷면엔 아무 것도 없었다. 청백색으로 빛나는 점 하나가 정 가운데에 찍혀있는 것 빼곤.

"파이브가 천문학자라고요."

명함을 내려다보는 벤이 피식 웃었다.

"별자리 읽어서 점 치고 그러나요? 안 어울리네."
"꽤 잘 쳐."

능구렁이같은 대답에 벤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차창 밖엔 여전히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별 얘기가 나온 것만으로도 벤의 입꼬리가 벌써 씰룩거렸다.

"오늘은 별이 뭐랬는데요."
"검은 구름을 헤치고... 첫째 자리를 빼앗긴 파란 별 하나가 나와서 말했지. 그 뼈에 가죽만 붙은 코흘리개에게 어서 가보라고."

작은 동양인 남자아이는 주술사처럼 말하는 파이브에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 아저씨가 날 놀리네. 겨울비 내리는 추운 밤에 새파란 빛을 번쩍이는 큰 별, 그것도 첫째 자리를 뺏겼다면... 아마 이것이리라.

"오리온자리 베타성. 리겔."

파이브는 허벅지 위에 올라타있는 벤을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벤의 얇은 허리를 두 손으로 잡고 쓸었다. 벤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건 또 무슨 뜻인가 잠시 생각했지만 아무렴 좋았다. 첫만남이 펠라였던 아저씨를 따라가면서 아무 일도 없을 거란 순진한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래, 얼마든지 만져라. 이 아저씨는 날 위해 삼 억이나 길바닥에 버렸다고 하니까. 파이브네 집 사람들에게 난 가족은 개뿔 하인으로 취급받지도 못할 더러운 쥐새끼겠지만, 팔려가도 삼 억을 내던질 줄 아는 부자한테 팔려가야지. 그리고 별 얘기만 더 할 수 있다면야.

"하늘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구나. 공룡 대신인가?"
"줄줄 읊어볼까요? 공룡 이름처럼."
"아니, 사양하마."
"나도 그러고 싶진 않아요. 근데요, 파이브는, 천문학자면... 망원경이 있어요? 그림도, 사진도 많겠네요? 연구소는 어디에요? 뭘 연구해요?"
"그건 들어가서 설명하지."

차가 멈춘 줄도 몰랐던 벤은 흐릿하게 보이는 바깥에 파이브에게서 내려와 오른쪽 뒷문으로 기어갔다. 차창에 얼굴을 붙이자 맺힌 빗방울 사이로 저택의 외관이 가득 들어찼다. 5층이나 6층은 될 법한 높이에 왼쪽 끝과 오른쪽 끝이 한 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저택이었다. 그림책에 나오는 성같은 이 저택은 특이하게도 도시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저 옆으로는 시내 한복판 거리가 보였다. 넓은 마당 대신 벽 가까이 붙은 앉은뱅이 나무가 깔끔하게 관리되어 네모난 모양으로 깎여 있었는데, 이게 이 집이 가진 초록색의 전부인가 벤은 생각했다. 어쨌든 가운데를 보니 현관문의 유리와 철제 장식을 은은히 비추는 고급스러운 주황 등이 따뜻해보이는 빛무리를 뿌리고 있었다. 그러다 현관문 옆에 붙은 저택의 주소가 보였다.

5 King ST, E.

... 6번 방에 살아서 식스라던 내 작명센스를 놀린 게 아니었군.

어느새 왼쪽 뒷자리에서 내려 우산을 편 파이브가 벤이 매달려있는 오른쪽 뒷문을 달칵 열었다. 기대있던 채로 쏟아져내릴 뻔한 벤은 마른침을 삼키고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렸다. 다섯 발걸음만에 닿은 현관문에 파이브는 열쇠를 꽂고 돌렸다. 벤은 뒤를 돌아보고, 다시 앞을 보았다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앞에서 얼어붙었다. 파이브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고급스런 나뭇바닥에 부딪히는 구둣소리가 가슴 속을 쿵 쿵 눌렀다.

벤은 저택의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선 앞에서 발을 주춤거렸다.

먼저 들어간 파이브는 뒤를 돌아보더니, 따라 들어오지 않는 벤에게 손을 내밀었다.

벤은 파이브의 너른 손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여기 들어가도 되는 걸까요?

몇 년 전에 잃어버린 엄마는 머릿속에서도 대답이 없었다.

마침내 벤의 두 발과 바닥에 떨어지는 빗물까지 저택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현관문은 마지막 쿵 소리를 내며 굳게 닫혔다.











매서운 빗소리가 몰아치는 저택 안에는 늦은 저녁시간에도 불구하고 사용인들이 우르르 나와 파이브를 맞이하고 있었다. 벤은 파이브가 어딘가로 연락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벤을 담요로 덮어주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벤이라고 하는 아입니다."

어쩌다 이렇게 젖으셨어요, 도련님? 누군가가 젖은 머리를 닦아주는 손길에 벤은 휘청이면서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도련님이란 단어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잘 대해주세요. 이 애는 내..."

벤이 가는 목에 힘을 주었다. 다음 단어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었다.

사용인들도 모두 파이브만 쳐다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파이브는 대뜸 커다란 궤종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 다음에 자세히 말씀드리죠. 지금은 아버지께 먼저 인사드리고."

그레이스, 벤을 씻기고 입힌 뒤에 불러줘요. 파이브는 벤을 향해 눈짓하고는 뒤돌아 사라졌다. 파이브에게서 뭔가를 받지 못한 사용인 하나는 우왕좌왕 서성이다 물에 빠진 쥐같은 벤의 어깨에 걸쳐져 있는 자켓을 보고 이그, 소리를 내며 벗겨 가져갔다. 벤에게는 그레이스란 사람이 둘러준 담요가 있으니 괜찮았다. 겨울비를 맞은 몸은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으나 벤은 속으로 그깟 자켓에 호들갑이야, 하는 생각을 멀뚱히 했다.

뜨거운 김이 폴폴 나는 물을 계속 틀어놨는데도 끊기지 않았다. 벤은 손잡이를 이리 저리 돌리면서 찬 물과 뜨거운 물이 조금도 지체 없이 휙휙 바뀌게 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런 걸로 감탄하면 너무 초라하잖아. 벤은 혼자 씻겠다 했으나 그레이스는 자애로운 미소를 보이며 어린이는 혼자 두지 않는다 했다. 어린이가 아니라 열다섯이에요. 못 먹고 큰 탓에 삐쩍 마른 열세살 같아 보이는 자신을 잘 아는 벤이 말했다. 열다섯은 아이가 아닌가요, 도련님? 또 습격해온 도련님 소리에 벤은 욕조에 뚱한 얼굴을 담그고 가만히 그레이스의 손길을 받았다.

기어코 머리까지 보송보송하게 말려준 그레이스는 이상한 옷을 꺼내들었다. 무슨 사립학교 교복처럼 생긴 옷. 학교 마크는 없었어도 니삭스에 반바지라니,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지금 겨울인데... 겨울이어도 이게 유니폼이에요. 도련님 체구가 작으셔서 작은 주인님 열세 살때 입던 것밖에 안 맞아 그렇지. 아, 심지어 누가 입었던 거라고요, 더 입기 싫은데...! 죄송해요, 안 입으면 큰 주인님께 혼날 거에요.

벤은 거기서 저항을 멈췄다. 작은 주인님, 큰 주인님. 파이브는 아까 '아버지께 먼저 인사드린다'고 했다. 큰 주인님이란 그 아버지고, 작은 주인님은... 파이브인가? 이제 나이가 많은 파이브를 도련님이라 부르진 않을테니. 그럼 이게 파이브가 열세살 때 입던 옷이라고? 벤이 옷을 만지작거리는 사이 그레이스는 빠른 속도로 벤을 환복시켰다.

벤은 이런 옷을 입어본 적 없어 불편한 것 투성이였다. 특히나 니삭스와 로퍼가 그랬다. 니삭스는 걸을 때마다 줄줄 흘러내렸고 로퍼는 뒷축이 벗겨져 덜그럭거렸다. 한 손으론 니삭스를 부여잡고 다른 손으론 그레이스의 손을 맞잡아 이끌려 간 곳은 어느 컴컴한 복도의 방문 앞이었다. 그레이스가 문을 똑똑 두드리며 준비되었습니다, 하고 말하자 안 쪽에서 알겠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파이브의 목소리였다.

파이브가 문을 열고 나오는 사이로 방 안쪽 풍경이 보였다. 촛불만 켠 것처럼 어두운 안쪽에는 수많은 책과 커다란 책상과 그 뒤로는 집채만한 블랙보드가 있었다.

"저녁 늦게 일을 시켜서 미안합니다, 그레이스."

업무를 마치고 잠자리로 향하는 그레이스에게 다정히 웃어준 파이브가 벤을 내려다보면서는 성에 안 찬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파이브에게로 손이 넘어간 벤은 성큼성큼 걷는 어른의 발걸음에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며 물었다.

"우리 어디 가요?"
"..."
"파이브네 아버지께 인사드린다구요?"
"..."
"저기, 파이브."
"..."
"가족이 되어준다 했잖아요. 나 정확히 뭐 시켜주는 거에요?"

파이브는 대답이 없었다. 벤을 향해 돌아보거나 멈칫거리는 행동도 없었다. 무시하기로 했군, 벤은 눈을 굴리면서 종아리로 흘러내린 니삭스나 움켜쥐었다. 저택은 밖에서 본 것보다 안이 더 넓은 것 같았다. 한 집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복도를 걸을 수 있으리라고 벤은 상상해본 적조차 없었다. 벤이 살던 6번 방은 아마 이 집에서 옷장 하나만큼도 안 될 것이다. 한숨을 폭 쉰 벤이 힘겹게 파이브를 따라가 도착한 곳은 고급 나무로 짜여진데다 우아한 조각이 새겨진 커다란 문 앞이었다. 게다가 양문형인 게, 척 봐도 이 너머에 쉽지 않은 사람이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돌연 파이브가 뒤돌아 벤을 끌어안더니,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우리 아버지는 제정신이 아닌지 오래되었어."
"..."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든 진지하게 듣지 마."

알겠니, 벤? 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인사만 하고 나올 거야. 등을 토닥이는 팔을 덜 여문 손이 움켜잡았다.

"저를 뭘로 인사시킬 건지. 그것만 알려줘요."
"... 보고."

보고? 두 글자는 마치 보고 나서 정한다는 말 같았다. 뭘 보고? 벤이 눈썹을 찌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때 파이브가 커다란 문을 양 손으로 열었다.









아버지, 이 쪽은 벤이라고 합니다. 파이브가 벤을 소개했다. 벤, 하그리브스 경이시다. 벤은 파이브의 입에서 나온 '경'에 저도 모르게 손을 꼼지락거렸다. 경이라는 신분에 놀란 것도 있지만, 마주보고 있는 하그리브스 경의 빛을 잃은 탁한 눈에 정수리까지 소름이 오르는 중이었다.

마찬가지로 서재인 듯한 이 곳은 한 쪽 벽면에서 벽난로가 타고 있었다.

저 눈이 보이는 거야, 안 보이는 거야? 울렁거리는 속에 옆머리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눈치챈 것처럼 하그리브스 경은 벤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보는 건가? 삐뚤어진 모양으로 무릎에 걸쳐진 니삭스로 시선이 유독 오래 머무르는 것 같아 벤은 바닥만 보면서 슬쩍 양말을 올렸다.

"벤이라고."
"네."

하그리브스 경의 목소리에는 위엄이 있었다. 기본적인 골격부터가 좋아 소싯적엔 풍채 또한 대단했을 것 같았다. 지금도 볼품없는 노인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늦은 밤시간에 쓰리피스 정장을 갖춰입고 서재에 여유롭게 앉아있는 하그리브스 경은 비록 늙어 이빨은 빠졌더래도 호랑이는 호랑이라는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벤은 답지 않게 성대를 바들바들 떨면서 대답했다. 그러나 그 다음 말에는 고개를 번쩍 들 수밖에 없었다.

"벤, 하그리브스."

하그리브스 경 쪽에서 먼저 말한 것이다. 벤 하그리브스라는 이름을. 벤은 한 번도 이름과 성이 함께 불려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벤에게 자주 이런 말을 했다. 너는 태어나기 전부터 아빠가 없었어. 그러니까 성은 그만 물어봐. 그럼 저는 혼자 생겨난 건가요? 그래서 벤은 그동안 아빠의 성도 엄마의 성도 모르고 살았다.

"오메가인가. 나쁘지 않군. 가까이 와 봐."

하그리브스 경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벤이 가까이 다가가자 하그리브스 경의 손이 겨울 나뭇가지같은 벤의 팔뚝을 붙들었다.

"그래도 하그리브스 경의 새 부인으로 알리기엔 너무 어리지 않으냐."
"...!"
"밑을 지저분하게 벌리다 온 천박한 오메가는 아니겠지."
"아뇨, 저는...!"
"난 직접 확인하기 전엔 믿지 않아."

벤은 만지지 말라고 소리치려다, 파이브가 가족으로 만들어주겠다는 말이 정말로 늙은 아버지의 좆을 받아낼 어린 오메가로 들이겠다는 말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씨발... 개같은 변태 새끼들, 씨발, 더 개같은 건 알고도 온 나고...

벤은 책상에 걸터앉혀져 변태나 입힌다는 사실이 맞아떨어진 반바지의 앞섶이 풀어헤쳐졌다. 얇고 부드러운 감촉의 속옷 속으로 파이브의 것처럼 크면서도 주름진 손이 거침없이 들어왔다. 굵은 손가락 하나가 갈라진 틈새를 더듬다가, 메마른 질구를 파고들으려 했다. 벤은 눈꼬리에 눈물을 매달고 숨을 흡, 참았다.

손가락은 입구를 문지르며 들어갈듯 말듯 벤을 위협했다. 하그리브스 경의 탁한 눈이 벤을 지켜보고 있었다. 벤은 이를 악물고 손을 아래로 뻗어 하그리브스 경의 손을 밀어내려 힘을 주었다.

입구에서는 물러났으나 위치를 바꿔 음핵을 짓누르는 손가락에 벤은 허벅지를 달달 떨었다. 까치발을 들어봤자 책상에서 몸을 더 띄울 수가 없었다. 손가락이 움직이면서 음핵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제발 더 만지지 마, 제발... 벤의 바람과 달리 신체는 예상치 못한 침입으로부터 연약한 점막을 보호하기 위해 미끄러운 체액을 내고 있었다. 앞뒤로 문질러지는 하그리브스 경의 손가락이 조금씩 젖고 있다는 걸 느낀 벤은 책상을 짚으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등 뒤의 파이브는 여전히 한 마디도 없었다. 어쩌면 벤과 하그리브스 경만 놔두고 이미 나갔을지도 몰랐다. 씨발.

다행히도 하그리브스 경은 거기서 움직임을 멈추고 손을 천천히 빼냈다.

그리고는 투명한 액이 번들거리는 중지를 매만졌다. 눈으로 손을 보고 있긴 하지만 정말로 앞이 보이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감촉을 느끼던 하그리브스 경은, 손을 펴더니, 젖은 손가락에 혀를 내어, 핥았다. 벤은 정말로 미친 노인네에게 걸렸다는 생각에 온몸의 털이 쭈뼛 서고 있었다.

벤의 체액을 맛본 하그리브스 경이 말했다.

"아들이 주는 선물이 맞나 보군. 오메가 향이... 딱 내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아버지."

벤은 뒤통수 위에서 울린 파이브의 목소리에 고양이처럼 펄쩍 튀어오를 뻔 했다.

"아버지 것은 아닙니다."

하그리브스 경은 소리가 난 쪽을 보며 의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초점이 파이브를 미세하게 비껴가 있었다. 그러나 벤에게로 내려올 땐 정확하게 두 눈을 맞추었다. 하그리브스 경이 벤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미안하군. 내가 실수했어."
"..."
"편하게 지내렴. 네 집이라 생각하고."

벤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여기 사람들은 전부 미친 사람들이다. 이래놓고 내 집이라 생각하라고. 파이브나, 그 아버지 하그리브스나 똑같았다. 파이브는 별다른 말 없이 목례만 한 뒤 서재를 걸어 나갔다. 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떠는 손으로 바지 앞을 여미고서 책상을 내려오려 했다. 그 때 하그리브스 경의 손이 팔을 다시 한 번 잡았다. 귓가에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속삭였다.

"내가 조언 하나 하지."
"..."
"저 녀석이 하는 말은 믿지 말거라, 벤."












도망치듯 서재를 뛰쳐나온 벤을 안아든 건 파이브였다.

"이거 놔요."
"벤.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놔 달라고요."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벤을 파이브가 있는 힘껏 껴안았다.

"내가 대신 사과하마. 우리 아버지는 제정신이 아닌 지 오래됐다 했잖아, 이런 식으로라도 확인시키지 않으면 널 의심하다 일을 벌였을 거야."
"일? 무슨 일?"
"오늘 네게 일어날 뻔 했던 일."
"하..."

뭘 의심한다는 것인가. 내가 길바닥에서 몸 팔다 온 애면 지 아들이 데려온 사람이든 말든 날 깔아뭉개고 강간했을 거란 얘긴가? 술집 사장처럼? 왜? 헐렁한 오메가라면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생각해서? 하그리브스 경은 명백하게 벤의 반응을 본 것 같았다. 처음 알파의 손이 닿아서 당황하고 수치스러워하는 반응을.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 나도 통제하기 어려워. 그렇게까지 만질 줄은 몰랐지만... 처음부터 확인시켜 놔야 네가 앞으로 안전할 것 같았다. 미안하구나."
"... 무서웠어요."
"미안해."

파이브의 단단한 가슴에서 울리는 심장박동을 들으며 벤은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파이브는 벤을 두고 아버지의 것은 아니라 했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파이브의 새엄마가 되지는 않겠구나, 생각한 벤은 파이브의 목을 더 끌어안았다.

거기 있던 셋 중 가장 미쳐보인 사람은 하그리브스 경이다. 제멋대로 이상한 행동을 한 것도 하그리브스 경이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듣지 말라 먼저 말한 쪽도 파이브였다.

벤은 파이브를 믿어야 했다. 어차피 파이브 말고는 이 집에서 잡을 줄도 없다. 그러나 파이브가 저를 안심시키면서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확언은 하지 않았음을 벤은 놓치지 않았다.












앞으로 지낼 새 방에 들여보내진 벤은 전에 지내던 곳보다 세 배는 넓어진 공간을 둘러볼 힘도 없어 침대 위로 몸을 풀썩 쓰러뜨렸다.

한때 넓은 방을 가지면 뭘 채워넣을 건지 상상해본 적이 있다.

쥐꼬리만한 방을 다 차지하는 작은 매트리스가 아니라 옆으로 뒹굴어도 떨어지지 않는 큰 침대랑, 옷장, 특히 겨울 옷들을 많이 가진 옷장. 벤이 사 입기에 따뜻한 옷들은 너무 비싸 여름 옷을 여러벌 껴입어 겨울을 났다. 그러면 팔꿈치 아래나 무릎 아래는 얼음처럼 얼곤 했다. 그리고 책. 벤의 키보다 높이 책을 쌓을 수 있는 책장. 책은 벤에게 금덩이같은 사치품이나 다름없었다. 주머니에서 꺼낸 4달러가 전재산인데 하루 끼니를 대신할 햄버거와 종이쪼가리 책 사이에서 고민할 여유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읽고 싶었다. 표지가 예쁜 책을 하나 훔쳤는데, 펼쳐보니 너무 어려워서 하나도 읽을 수가 없었다.

읽지도 못하는 게 책을 훔쳤단 죄책감에 몇날 며칠 잠을 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돈을 조금 번 다음 서점 주인에게 이실직고했었다. 책을 훔쳤노라고. 그런데 하나도 못 읽어서 책과 그 값을 돌려드린다고. 책은... 제가 가지고 있어봐야 쓸 데가 없어요. 우리 집은 좁아서 책을 놓을 데도 없구요. 서점 주인은 벤을 아니꼽게 쳐다보다가, 어린이 책 코너로 데려갔다. 그 때 단어책과 소설책을 받았다.

서점에서 다시는 책을 훔치지 않았다. 서점 주인은 꾀죄죄한 애들 사이에 있던 벤을 불러 손짓하고는, 책은 도서관에 가면 공짜로 볼 수 있으니 그렇게라도 읽으라 했다. 벤은 대충 대답하고 자리를 떴었다. 도서관에 가도 책은 못 빌린다. 성도 없는데 벤이라는 이름을 대서야 신원 확인이 되겠는가.

아마 난 출생신고가 안 되어 있겠지. 그렇지만 보호기관에 가면 엄마를 다시는 못 만날 거고.

그랬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하루아침에 오게 된 이 방은 벤이 원하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원하던 모든 것...

이게 내가 원하던 모든 것인가?

벤은 침대 위에 개어져있는 잠옷으로 갈아입을 기력이 없어 불 꺼진 천장만 올려다 보고 있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숨막히던 낮은 천장이 아니었다. 넓은 천장. 벤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래봤자 천장.

진짜 천장을 보고 싶다. 이대로는 뜬 눈으로 밤만 샐 것 같았다.

벤은 유령처럼 걷는 법을 알고 있었다. 소리 없이 걷는 작은 쥐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 거대한 양 문을 가진 기분나쁜 서재를 지나고, 그레이스가 씻겨줬던 욕실 앞을 거쳐, 컴컴한 복도의 어느 평범한 문에 다다랐다.

벤은 노크하려던 손을 멈추고 바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파이브는 문이 소리 없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안경을 낀 채로 고개를 들자 무표정한 벤이 들어와 등 뒤로 문을 눌러닫았다.

벤은 하늘처럼 새까만 눈동자로 파이브를 바라보며 말했다.

"같이 있어도 돼요? 혼자서는 도저히..."
"..."
"... 못 자겠어요."

그리고는 흰 셔츠의 단추를 툭 툭 풀었다.












하그리브스 경은 새로운 가상인물

우산학원 파이브벤
2021.10.15 00:30
ㅇㅇ
모바일
센세는 천재야
[Code: eca2]
2021.10.15 00:50
ㅇㅇ
미치겠음 나 지금 반 울고 반은 미친사람처럼 웃고 잇음 이게 말이 되냐 지금 이전까지는 한낱 천문학자라며 사람을 안심시켜놓고 집구석 분위기 왜이래 하그리브스경 미친놈이야ㅠㅠ 갑자기 바지벗겨ㅠㅠ 미친 흥미진진해서 돌아버리겟음 가장 처음 벤이 상상햇던 최악의 상황 그대로 잖아 나이든 할아버지일 늙고 돈 많은 아버지에게 날 붙여서, 엄마로 같은 성을 쓰게 될 뻔했잖아 미친 존나 잼있음 한치 앞도 모름 다음 전개가 상상이 안됨 센세가 천재라는 증거아니냐
[Code: 06ae]
2021.10.15 00:54
ㅇㅇ
파이브는 하그리브스경의 말을 믿지 말라는데, 하그리브스경은 파이브를 믿지 말래, ㅠㅠ 와 마지막에 마빡 개때렸다.... 벤이 저 집구석에서 얻고 싶어한거, 원한거. 파이브가 자기 거둬주는거, 파이브밖에 없어서... 벤은 사실 파이브를 완전히 믿지 않으면서도 파이브랑 자려고 하는거... 이걸 어케 안좋아함.... 센세 너무 사랑해....
[Code: 06ae]
2021.10.15 01:00
ㅇㅇ
모바일
이게바로 행복아닌가싶다 내가 뭘읽고있는지 시발 리겔 찾아보고옴 파란게 딱 파이브같아... 하.... 나이제 오리온자리 못잊어 아니근데 둘 다 쟤 믿지 말래ㅠㅠㅠㅠㅠㅠㅠㅠㅠ어떡하냐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2d40]
2021.10.15 01:48
ㅇㅇ
모바일
미친 세상에 내가 뭘 읽고있는거지...이런무순 처음이야 센세...영화 보는줄 알았어....으악 진짜 다음편이 미친듯이 기다려지는 기분 처음이야ㅜㅜㅜㅜㅜㅡㅠ센세는 천재야ㅜㅜㅜㅜㅡ
[Code: 6686]
2021.10.15 02:01
ㅇㅇ
모바일
센세 제목보자마자 ㄹㅇ가슴이내려앉았어요 존나최고...마스터피스..분위기도랏고ㅜㅜㅜㅜㅜ벤도ㅜㅜㅜㅜㅜ생각하는게 자기주제를 안다고하면서도 괴로워하고 애답지않게구는거ㅜㅜㅜㅜㅜㅜ
[Code: 6ed4]
2021.10.15 03:00
ㅇㅇ
모바일
끼억 벤아 뭐하려고...!!!! 파이브는 무슨 생각인 거야 하그리브스 경 존나 변태쉑 아니 한 화에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너무 좋아요 센세 붕키 배터져 죽는 중
[Code: baf8]
2021.10.15 12:0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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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없으면 난 죽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55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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