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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6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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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터너.

그 애가 그리 양아치처럼 구는 이유가 단지 제 아버지로부터 관심을 사기 위해서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평소에 칼럼 터너에게 자주 깝죽대던 놈의 장난이 유난히 정도가 심했는지 칼럼 터너가 제 눈에 거슬리는 놈을 죽도록 팬 날. 제 자식마저도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다던 그 애의 아버지가 학교를 방문했다. 흉하게 망가진 얼굴을 아무렇지 않게 보던 칼럼 터너의 아버지란 작자는 수표 뭉치를 꺼내고서 한껏 쥐어터진 애의 부모에게 쥐어주며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고 했다. 그러고서는 칼럼 터너를 마구 혼낼 거라는 예상과 달리 바로 뒤돌아 학교를 떠났다고.

 

그때 칼럼 터너의 표정이 어땠다더라.

소문을 그대로 옮기자면 마치 비에 젖은 강아지. 아니다, 마치 어미 잃은 강아지마냥 허망하게 웃으며 제 아버지란 작자의 뒷모습을 바라봤더랬지.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칼럼 터너를 둘러싼 무성한 소문 중 하나일 뿐. 진실인지 아닌지 판별하기가 어려웠으나, 답지 않게 자기 반에서 하루 종일 흉흉한 표정으로 제 자리를 지키던 칼럼 터너의 모습에 난 생각했다. 재벌이라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고. 저 놈도 결핍이란 게 있구나. 그리 지레짐작했다.

 

내가 그리 지레짐작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나도 피차일반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와 걔는 상황이 정말 다르긴 하지만. 내가 열 살 때, 엄마가 별 거 아닌 일로 이상하게 자주 집을 비웠다. 그러다 엄마는 당당하게 자신의 외도를 밝히며 말했다. 당신이랑 사는 거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갈라서자고. 허무하게도 그렇게 아빠는 그 일을 계기로 엄마와 정말 갈라섰다. '갈라섰다'라는 말이 맞는 건지 헷갈리긴 했다. 어떻게 보면 엄마가 아빠를 일방적으로 버린 거나 다름 없었으니까.

 

이후에 아빠는 어린 나를 책임지려고 무수히 많은 노력을 보였다. 못하던 요리를 배우고, 빨래도 직접 하고, 청소도 말끔히 하는. 엄마를 빼닮은 나를 바라보는 아빠의 시선에서 아주 가끔은 혐오가 보였지만, 나는 이해했다. 아빠는 내게 정말 훌륭한 부모였으니까. 나를 버리고 떠난, 우리 가정을 부수고 사라진 엄마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자주 아빠가 불쌍했다. 매일 밤, 혼자 방구석에 숨죽여 술을 마시는 아빠의 등진 뒷 모습에서 나는 외로움을 본 탓이었다.

 

이 일이 폐쇄적인 동네에서 소문이 퍼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고, 당연히 그 누구도 우리 집과 어울리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지은 죄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나를 더러운 애 취급을 했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빠의 응원 덕분이었다.

 

'허니, 이건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사람들이 누가 뭐라든, 넌 공부만 열심히 하렴.'

'...... 죄송해요.'

'아니야. 오히려 내가 미안하구나. 네게... 못 볼 꼴을 자꾸 보이잖니.'

 

그러나 아빠의 사고사. 아빠의 차게 식어버린 몸뚱아리가 내 앞에 놓여졌을 땐 정말이지... 마치 내 인생의 모든 게 한 편의 막장 소설 같아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씨씨티비도 없는 한적한 도로에 공사장에서 퇴근을 하던 아빠가 차에 치여 죽었다. 그 날, 하필 비가 와서 어떠한 증거조차도 남지 않았다고 내게 말하는 형사님의 말에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빠의 죽음을 계기로 전학을 선택했다. 

 

개파탄 난 콩가루 집안.

무튼 우리 집은 그렇다. 정말 엿 같게도.


 

 


*

칼럼 터너는 그 다음 날부터는 다시 사람 좋은 척 싱글생글 웃으며 다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언가 변화된 게 있다면, 칼럼 터너에게 깝치던 애들이 아무도 걔를 건들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딱 하루, 포식자처럼 흉흉한 기색을 보였던 게 꽤나 효과적이었던 건지, 아니면 그 유명한 칼럼 터너의 아버지가 직접 학교에 방문했던 게 영향이 컸던 건진 모르겠지만.

 

웃통을 벗고 운동장을 마구 뛰어다니며 공을 세차게 모는 칼럼 터너의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칼럼!! 패스해, 빨리! 그 애 주위에서 다급한 말들이 오간다. 나는 그 모습을 그냥 멍하게 쳐다봤다. 이상하게 시선이 간다. 평소라면 신경도 안 쓸 놈인데. 혹시 내가 지금 쟬 동정하고 있는 건가? 쟤가 어떤 애인지, 어떤 집에서 어떤 분위기 속에서 사는지 전혀 모르는 데도? 고작 그 소문만 듣고? 그렇다면 참 값싼 동정인데. 그렇게 멍청하게 생각이나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머리로 날아든 공에 순식간에 시야가 암전됐다.

 

"아......,"

 

그러다 눈앞이 번쩍이며 이내 시야가 잡혔을 때, 누군가가 내 앞에 서있다는 게 느껴졌다.

 

"괜찮아? 내가 조준을 잘못해서..."

"......"

"일부러 그런 거 절대 아니고, 아, 씨..."

"... 괜찮은데."

"......."

"진짜 괜찮,"

 

너... 코피 나. 그 말에 황급히 옷 소매로 코를 틀어막았다. 코를 맞은 것도 아닌데 흘러내리는 코피가 꽤나 거세다. 피가 한 번 나면 잘 멈추지 않는 체질에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칼럼 터너가 움찔거린다.

 

"저기, 비켜 줄래."

"어, 어?"

"양호실 좀 가게."

 

야, 칼럼 터너! 공 갖고 빨리 와!!

 

"같이 가자. 데려다 줄게."

"혼자 갈 수 있어."

"그래도..."

"마음 쓰지 마. 놀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런 내 말에 칼럼 터너가 침묵하며 내가 건넨 공을 받아들고 한 걸음 옆으로 옮긴다.

 

"근데..."

".....?"

"너 좀... 인위적이게 웃는다."

".... 뭐?"

"뭔가 억지로 웃는 것 같아서."

 

그런 내 말에 아주 잠깐이지만 칼럼 터너의 얼굴에 어둠이 내린다. 뒤돌아 등진 내 뒤로 계속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괜한 오지랖으로 사람 불편하게 한 것 같아 마음이 썩 편하진 않았지만, 후회 되진 않았다. 어차피 쟨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내가 누군지도 제대로 모를 뿐더러, 같은 학교여도 마주칠 확률이 아주 적으니까. 물론 정말 쓸데없는 동정이란 건 알지만.

 

 

 


*

"너, 점심 시간에 칼럼이랑 얘기 나눴다며?"

"......"

"뭐라고 얘기 나눴어? 네 엄마처럼 몸이라도 대준다고 했니?"

 

깔깔거리는 웃음 소리가 화장실 안을 가득 메운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면, 그것마저 꼴보기 싫은 것인지 손을 들어 내 뺨을 세게 내려친다.

 

"와, 진짜 독한 년. 악 소리 한 번 안 내는 것 봐."

"너, 칼럼이랑 제시카랑 사귀는 거 몰라? 어디서 주제도 모르게."

 

어린 아이들의 어린 괴롭힘들. 적응하려고 해도 적응되지 않는 폭력.

 

"한 번만 더 내 귀에 칼럼이랑 엮였다고 소문 나기만 해. 이번은 그냥 넘어가도 다음은 아닌 거 알지?"

".... 응."

"진짜 같잖은 년. 아- 짜증나!"

 

신경질적으로 화장실 문을 닫고 나가는 제시카 무리를 멍청하게 바라보다 바닥 물기에 축축히 젖은 치마가 느껴져 황급히 일어났다. 다 젖었네. 내일도 입어야 하는데. 물기를 털며 화장실을 나오자, 저 멀리 제시카의 무리에 둘러싸여 웃어 보이는 얼굴을 한 칼럼 터너가 보였다.

 

"......"

"......"

 

시야가 맞물렸지만, 먼저 고개를 돌렸다.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하다.

 

 

 



*

헉, 헉. 저기...! 내 가방을 잡아 채는 손길이 투박하다. 끌어당기는 힘에 이끌려 뒷걸음질한 내가 고개를 돌리면, 땀을 뻘뻘 흘리는 칼럼 터너의 얼굴과 마주할 수 있었다.

 

"... 왜?"

"궁금한 게 있, 어서."

 

헉헉거리는 숨이 꽤나 거칠다.

 

"제시카가 보면 날 쥐잡듯 잡을 것 같은데."

".... 아."

"놔 줄래."

 

가방을 놓는 손이 힘 없이 아래로 추락한다. 숨을 고르는 듯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는 행동을 반복한 칼럼 터너가 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내가 억지로 웃는 게 그렇게 티나?"

 

그리고 그리 말하는 칼럼 터너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한다.

 

"노력한다고 하는데, 잘 안 되네.'

"......"

"네가 허니 비지? 제시카가 싫어하는."

 

빈정거리는 말투다.

 

"그런데?"

"그냥. 아까도 생각했는데 너 누굴 좀 많이 닮은 것 같아서."

".....?"

"근데 세상 진짜 좁은 것 같아. 그치."

 

이상하게 그 말에 기시감이 느껴진다. 당최 알 수 없는 말들이었지만 우리 사이에 뭔가 있는 듯이 얘기하는 칼럼 터너의 말에 아무 말 못하고 서있자, 칼럼 터너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와 나를 내려다 보며 웃는다.

 

"내가 제시카한테 잘 말해둘게."

"......"

"너 괴롭히지 말라고."

 

이 웃음은 이전에 짓던 인위적인 웃음이 아닌 진짜 웃음이다. 마치 정말 기쁘기라도 한 것처럼. 이 상황이 전혀 기뻐할 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칼럼 터너가 계속 웃는다.

 

"내일 보자, 허니."

 

그리 말하며 나를 지나치는 칼럼 터너의 표정이 어땠더라.





*
그래.
먹잇감을 포착한 맹수의 표정.
정말 딱 그랬던 것 같다.









칼럼너붕붕 칼럼 너붕붕


2024.05.06 22:17
ㅇㅇ
모바일
헐 뭐야 칼럼 뭘 숨기고 있는 거야 ㄷㄷ
[Code: 3132]
2024.05.06 22:22
ㅇㅇ
모바일
설마 허니 엄마가 바람난게 칼럼 아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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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7 03: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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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씨 이거면 ㄷㄷ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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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6 23:46
ㅇㅇ
모바일
헐 대작의 시작📸
[Code: 6476]
2024.05.07 00:01
ㅇㅇ
모바일
대작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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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7 01:2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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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미쳐따 미쳐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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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7 03: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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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에게 놓인 허니는 맞맹수인지 가련한 희생물인지 어나더 제발ㅠㅠ
[Code: 2632]
2024.05.07 06: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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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요 센세 ㅜㅜㅜ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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