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95072318
view 4690
2024.05.26 02:48
11 https://hygall.com/594077285



한번 칼럼을 인식하고 나니 그동안 왜 몰랐을까 생각할 정도로 오스팀은 칼럼을 여러곳에서 볼 수 있었음. 소셜미디어의 목격담이나 티비에 나오는 향수 광고, 버스정류장에 걸린 개봉작의 포스터 같은 것들이 곳곳에 있었지. 오스틴은 아주 잠깐 8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음. 학교의 베타라는 존재에 대해서 맹점이라도 존재하는 것처럼 살다가 칼럼을 알게되었던 때처럼. 한번 시선을 주고나면 계속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그 애를 이제 다른 사람들도 다들 쳐다보고 있었고 자신만 몰랐던 거지. 과거가 뒤집어져 재현되는것 같았음. 상처를 줬던 것에 대해서 벌을 받는 것도 같았고. 오스틴이 매일 집에서 나와 공방으로 가는 길에 있는 높은 회벽 건물에는 어느날부턴가 커다란 광고 배너가 걸렸음. 물에 젖은 하얀 셔츠 차림의 칼럼이 눈을 감고 있는 클로즈업샷이 관능적으로 찍힌, 전형적인 알파들만 찍을 수 있는 그런 향수 광고였음. 이런 식이라면 그날 잭의 파티에서 만나는 일이 없었더라도 칼럼이 연예인이 되었다는건 결국 어떻게든 알게되었을 거라고 오스틴은 생각했음. 광고 배너 속 칼럼의 턱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오스틴은 걸음을 옮김. 이렇게 본인만 칼럼의 존재를 알고 우러러보는 입장으로 남을 수 있었다면 차라리 좋았을텐데.

칼럼의 작품을 본 건 우연이면서도 호기심에 선택한 일이었음. 인터뷰 영상을 몇 개 찾아봤다는 이유로 그후론 자주 칼럼의 영상이 알고리즘에 뜨곤 했거든. 그 중에는 칼럼을 조연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유명세를 안겨준 한 드라마의 로맨스 장면을 모아놓은 클립 영상도 있었음. 그 드라마에서 칼럼은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오메가를 사랑하게 되어서 신분차이에 괴로워하면서도 사랑에는 솔직한 젊은 후계자 역할이었고 상대배우는... 솔직히 다른 설정보다 눈에 들어왔던건 금발의 오메가 배우라는 사실이었지. 오스틴은 칼럼이 울면서 사랑을 고백하고 애끓는 눈빛으로 사랑을 나누는 연기를 하면서 그게 자신에게 하던 것과 비슷한지 무의식적으로 비교해보다가 수치스러워져서 그대로 영상을 꺼버렸음. 그러면서도 8년 전의 그 얼굴을 다시 본 것 같아서 심장이 뛰었지. '연기는 경험에서 배우는 편이죠. 나름대로 드라마틱한 인생을 겪었다고 생각하는데 감정을 탐구하는 데 그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다가 배우가 되고 처음 한 연기에서 괜찮은 평가를 받은 것에 대해 칼럼이 그렇게 얘기한 인터뷰가 있었던 것을 기억함. 사랑에 빠진 연기를 할 때의 칼럼이 잠깐이라도 자신을 떠올렸을까. 그런 기대를 가진다는 걸 칼럼이 알면 화를 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함.

물론 오스틴이 칼럼에 대해 더 많이 찾아볼수록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알게 됐지. 칼럼의 애인에 대한 이야기 같은거 말이지. 사귄 지 2년쯤 되어간다는 모델 연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칼럼은 항상 은은하게 웃고 있었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음. '사실 그전까지는 한 사람을 오래 만나지 못했어요. 두세달 정도 만나면 사소한 일을 계기로 헤어졌죠. 성숙하지 못한 시간들이었고 후회도 되고 무엇보다 저의 무례함을 견뎌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요. 지금은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죠. 찰나에 완전히 떠나버리는 것도 있다는 걸 이젠 잘 아니까요.' 그건 아마 칼럼이 자신의 첫사랑에 대해 처음 이야기했던 작년의 토크쇼에서 했던 얘기 같았지. 애절한 로맨스가 주요 소재인 영화가 개봉해서 그 홍보차 나온 터라 아마 그날의 토크쇼는 칼럼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한 모양임. 극복하지 못하고 떠돌고만 있는 자신과는 다르게 칼럼에게 이제 8년 전의 그 시절은 그저 과거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음. 토크쇼에서는 칼럼이 이야기하는 동안 뒤의 스크린으로 칼럼과 애인의 사진을 띄워줬음. 카메라를 보고 발랄하게 웃으며 윙크하는 흑발의 모델. 모든 것이 자신과 정반대의 사람이었고 칼럼하고는 그림으로 그려놓은 한 쌍처럼 잘 어울려서 오스틴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음. 칼럼에게 필요한 사람은 저런 사람인 게 맞을 거라는 걸.

자신이 이제는 칼럼과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도 오스틴의 삶은 평소대로 흘러감. 가게를 열고 흙을 굽고 사람들을 상대하다가 하루를 마침. 어느날은 집으로 가는 길에 냉장고가 꽤 비어있던걸 기억하고 들른 그로서리에서 오스틴은 바구니에 주스팩을 담다가 말을 거는 남자와 잠깐 대화를 해야했지. 오스틴의 공방에 가본 적이 있다면서 어설프게 아는척을 한 남자는 곧 본론을 꺼냈지. 친하게 지내고 싶다면서 전화 번호를 물어봤는데 오스틴은 망설이다가 거절함. 이런 식으로 말거는 사람들을 자주 겪긴 하지만 보통 때 같으면 단번에 미안하다고 했을텐데 그날따라 조금 망설인 건 그 남자에게서 칼럼을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 조금 있어서였겠지. 그래봤자 닮은 거라곤 어두운 색의 곱슬머리와 웃을 때의 입매 정도였고 다른 부분은 하나도 닮지 않았지만 그 정도에도 망설였던건 아마 최근 들어서 지난 몇 년 중 그 어느 때보다 칼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서 그런듯했지. "미안해요. 번호는 줄 수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지금은..." 자신이 연애라는 걸 할 수 없는 이유를 쉽게 들 수가 없어서 오스틴은 말을 조금 흐렸음. 그러자 남자는 지레짐작해서는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긴 당신 같은 사람이 싱글일 리가 없죠." 하며 양손을 흔들더니 사과를 하고 오스틴의 시야에서 사라져주었음. 오스틴은 쓰게 웃으면서 절반도 안 찬 바구니를 들고 계산대로 향함. 사람들은 항상 오스틴이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오메가라고 생각들을 하는 것 같았음. 실상은 유일하게 사랑해줬으면 하는 사람의 기억에선 이미 잊혀진 존재가 되었을텐데 말이지.

그로서리에서의 일이 있고난 후 이틀 정도 후에 오스틴은 잭에게서 전화를 받음. 언제나처럼 기운 넘치고 수다스러운 잭은 딱 몇 주 전에 있었던 생일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했음. 물론 그때 파티 중간에 혼자 집에 가버린 오스틴에게 그 다음날 바로 전화해 장난섞인 타박을 좀 하긴 했지만 그런 사소한 일을 뒤끝있게 가져갈 타입이 아닌 잭이 굳이 그 얘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음. 잭이 자신의 파티에서 오스틴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렇게 해줄 수 없어서 아직까지 아쉬웠다는 것이지. "내가 자기한테 정말 딱 어울리는 알파를 몇 명이나 골라놨었는데 말이야. 자기는 그 중에서 한 명만 골랐으면 됐었다구. 물론 두 명 골라도 되지만 왠지 자기는 그런 건 안 좋아할 것 같으니까." 어디까지가 농담인지 모르겠는 잭의 말에 어색하게 웃는 오스틴에게 전화 속의 목소리가 말을 이었음.

"그런데 내가 소개 안 시켜줬어도 자기를 봤던 사람도 있더라? 아주 정확히 자기를 기억하더라구. 그래, 이해는 가. 워낙 눈길이 갈 거 아니야 자기 정도면."

오스틴은 우습게도, 또 스스로도 허황된 생각이라고 깨달으면서도 칼럼에 대해서 생각했지. 그날 파티에 온 걸 보면 칼럼도 잭의 지인인 것 같고 또 오스틴이 기억하는 한 자신과 그 파티에서 얼굴을 대면했다는 느낌을 받을 만한 사람은 사실상 칼럼이 유일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애인이 따로 있는 칼럼이 굳이 자신의 이야기를 잭에게 할 것 같지도 않아서 오스틴은 혼자서 희망과 실망 사이를 오가고 있었음.

"그 사람이 자기랑 꼭 한번 만나보고 싶대. 내가 자기 공방 주소도 알려줬는데 최근까지 일 때문에 샌 프란에 갔다와서 갈 수가 없었나봐. 어제 뉴욕에 돌아왔다고 해서 내가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했는데 그러면 자기도 오는 게 어떨까 해서 말이야."
"아, 그랬어요? 음... 그런데 저는...."

오스틴은 잭의 초대에 대해선 항상 숙고해보는 버릇대로 일단 망설였음. 그러자 그리 외향적이진 않은 오스틴의 성격을 이미 알고 있는 잭이 말을 덧붙였음. "어머, 물론 단 둘이 만나라는 건 아니지! 내 다른 친구들도 올 거고 그냥 여럿이 만나는 자리니까 가볍게 생각해도 좋아. 꼭 그 사람이랑 자기를 연결시켜주려는 건 아니고. 그냥 그 사람이 정말 좋은 알파고 또 자기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하지만 오스틴의 마음을 바꾼 건 그 다음 이어진 말이었음.

"아참, 그리고 자기 칼럼 터너라고 알아? 배우인데 요즘 좀 유명하구 잘 나가는데. 내 친구 애인이거든? 칼럼도 내 친구랑 같이 올 텐데 내가 저번에 자기 가게 이야기를 했더니 좀 흥미있는 것 같더라구. 요새 이사를 해서 뭐 이것저것 살 게 있는 것 같던데. 친하게 지내두면 나쁠 것도 없잖아 손님도 늘고."

오스틴은 마지막으로 망설였지만 결국 가겠다고 대답하고 말았지. 그런 자리가 없다면 또 언제 칼럼을 만날 수 있겠어. 무슨 취급을 받더라도 마주하고 싶은 첫사랑인데.








"어쨌든 다음 시즌에선 달라지겠다고 제게 약속했으니까 노력하겠죠. 잘 잡아주기만 하면 잘 따라오는 녀석이거든요."
"아.... 네. 음....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지금 오스틴은 잭의 저녁 초대에 응했던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음. 옆에서는 자신은 전혀 관심없는 풋볼 얘기를 하며 끊임없이 말을 거는 알파가 있고 맞은편에는 자신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 칼럼이 있었지. 어느쪽이든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지만 오스틴이 할 수 있는건 옆에서 주절대는 남자에게 맞장구를 치는 것 정도였음. 아니 사실은 아무리 맞은편을 흘긋거려도 눈 한번 마주치기 힘든 칼럼 때문에 자꾸 가슴 속에 뭐가 얹힌것 같아서 애써 주의를 돌려야 해서 그냥 다른 곳으로 신경을 집중시키려는 중이었음.


재회는 거의 하지 않았던 기대보다 더 허무하고 초라했음. 저녁 약속이 다가온 날은 칼럼을 만나게 된다고 생각하니 싱숭생숭해서 하루종일 일도 잘 손에 잡히지 않았음. 물레를 돌리는 족족 작품을 망쳐서 결국 가게는 일찍 닫았음. 예약 손님이 없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집에 가는 동안에는 옷도 새로 삼. 누군가를 만나는 자리에서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한 적 없이 지낸 것도 몇 년이라 항상 단조로운 흰색 티셔츠 차림으로만 지냈었는데 말이지. 긴장이 돼서 점심도 걸렀기 때문에 하루종일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지만 오스틴의 정신은 그런걸 인식하지도 못했음. 눈 색에 어울리는 연한 청색 셔츠 하나를 사와서 입으면서도 스타일링을 백번쯤 고민함. 물론 자기가 잘 꾸며내 보인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 리는 없는 자리겠지만... 그래도 칼럼 앞에서 별볼일없어 보이고 싶지는 않았거든. 평소에는 작품 만드느라 잘 하는 일 없는 팔찌나 반지도 하고 잭에게 선물로 줄 화병도 하나 챙겼지.

잭의 집에 도착했을 땐 오스틴이 가장 먼저 온 손님이었음. 그도 그럴게 예정된 저녁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해버렸으니까. 지난번 파티 때와는 다르게 사람 없이 조용해진 집에서 인테리어 구경도 하다 보니 손님이 하나 둘 왔음. 잭의 말로는 손님이 7명이나 모이는 자리라고 했고 칼럼은 디너테이블의 자리가 4개쯤 찼을 때 도착했음. 현관에서 다이닝룸으로 향하는 복도에 점차 익숙한 목소리가 가까워졌고 오스틴은 긴장한 손끝으로 눈앞의 와인잔 바닥을 매만지고 있었음. 웅얼거리게만 들리던 말소리가 다이닝룸의 열린 문 앞에서 뚜렷해지고 곧 기억보다 조금 더 각이 지고 성숙해진, 한마디로 완연한 알파 같아진 칼럼이 모습을 드러냈음. 오스틴이 앉은 자리탓에 식탁에 있던 사람 중 칼럼하고 가장 먼저 눈이 마주친 건 오스틴이었고 잭에게 웃으면서 "레이가 뉴욕 돌아오면 바로 전화하겠다 하더라고요." 얘기하던 칼럼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음.

어둡고 어지러운 파티 조명이 아니라 밝은 흰색 빛 아래에서 보니 칼럼은 그대로인듯 하면서도 낯설었음. 오스틴이 찾아보던 영상 속에서의 모습하고는 분명 같았지만 기억 속의 앳된 얼굴하고는 또 완전히 달랐고 분위기는 무거워졌지. 아니면 그냥 오스틴의 얼굴을 보자 정색한 탓에 그렇게 보였던지.... 오스틴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칼럼과 다 친분이 있는건지 웃으면서 인사를 했고 오스틴만이 잭에게 소개를 받았음. 칼, 여긴 오스틴이야, 왜 있잖아 내가 말했던 소호 도예가. 잭이 오스틴을 손바닥으로 가리키며 말했고 칼럼은 잠시 오스틴을 쳐다보고는 꾸며낸 것이 역력한 웃음으로 오스틴에게 악수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음.

"안녕하세요. 처음 보네요. 칼럼 터너라고 해요."

선을 긋는 태도에 오스틴 역시 "...만나서 반가워요." 같은 바보같은 인사밖에 할 수 없었지. '처음 보는 사람'으로 정의되어버린 걸 슬퍼할 새도 없이 칼럼이 맞은편의 빈자리에 앉았고 잭에게 와인을 받으며 옆에 있는 사람들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기 시작했음. 칼럼은 옆에 있는 한쌍의 커플하고는 활발히 대화하면서도 오스틴에게는 한번도 말을 걸지 않았고 그건 마지막 손님이 올 때까지도 계속됐지. 그리고 도착했던 마지막 손님. 그가 바로 잭이 오스틴에게 꼭 소개시켜주고 싶다던 알파였음. 풋볼 선수라고 하는데 역시나 오스틴만 모르던 유명인사였던 것인지 오스틴 말고 다른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신기하고 반가워하면서 아는 체를 했음.

오스틴은 간단한 인사를 겨우 건네곤 혼자 어색하게 있었지만 그 남자의 관심은 바로 오스틴에게로 쏠렸지. 잭에게서 얘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남자는 자연스럽게 오스틴의 옆에 앉았고 통성명을 한 후로는 줄곧 오스틴에게 말을 걸었음. 오스틴은 처음 보는 낯선 사람과 그리 오래 얘기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다만 지금으로선 기댈 곳이 그 남자와의 대화밖에 없는것처럼 느껴졌음. 이 자리에 온 유일한 목적인 칼럼은 이미 자신에게는 별 관심도 안 두는 것 같고... 옆자리의 남자가 아니라면 눈치없이 이런 자리에 낀 사람처럼 참 외롭고 초라한 모양새가 됐을 테니까. 혼자만 민망해진 상황에 오스틴에겐 뭐라도 명분이 필요했거든. 칼럼 때문에 온 것이면서도 자신이 그런 생각으로 얼굴을 내비쳤다는걸 칼럼이 모르길 바랐으니까. 그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얼굴 한번이라도 보고싶어서 여기에 온 걸 알면 역시 싫어하겠지 싶어서.


그렇게 이어진 대화는 어느새 남자가 자신의 풋볼팀에서 자신이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또 이번 시즌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가 3위로 떨어진 충격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와 같은 오스틴은 전혀 흥미가 가지않는 이야기로 흘러갔고 오스틴은 예의상 대답을 해주고 있는 상황이었음. 식사가 거의 마칠 때쯤 남자는 그제서야 오스틴의 흥미없음을 알아차린 건지 멋쩍어하다가 말을 함.

"미안해요, 사실은 오늘 잭을 민망하지 않게 해주려고 온 거였는데 그쪽을 보고서는 조금 진지해져서 말이죠. 잭한테서 소개해주고 싶은 오메가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솔직히 당신같은 미인이라고는 생각 안했거든요. 너무 들떴나봐요."

노골적으로 호감을 드러내는 그 말에 오스틴은 당황한 표정을 겨우 감추며 웃었음. "제가 너무 불편하게 굴었을까요?" 하는 남자에게 오스틴은 그런 건 아니라고 대답하면서도 잠깐 시선을 피했지. 그러면서 무심코 앞을 보자 맞은편에서 이쪽을 빤히 보고 있던 칼럼과 눈이 마주쳤음. 식사가 시작한 후로 아마 처음이었을거야 시선이 마주한건. 하지만 곧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다시 옆으로 돌아갔고 오스틴은 괜히 눈밑이 시큰해지려는 걸 느꼈음. 물론 오늘 만난다고 해서 기적처럼 오해가 풀린다거나 예전처럼 이야기할 수 있을 거란 생각 자체도 안해봤지만... 이 정도로 무시당하는 것도 미처 상상하지 못했거든. 오스틴은 속에서 무언가 울컥 차오르려는 걸 참고 다시 옆의 남자가 하는 얘기에 신경을 쏟아보려함. 하지만 시즌이 시작되면 초대해줄 수도 있다는 남자의 얘기에는 대충 감사하다고 대답하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칼럼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점쳐보는 것으로 가득차 있었지. 무엇이든 좋은 방향은 아닐테지만.

식사를 끝내고 사람들은 잭의 집 안마당에 있는 파티오에 모여서 이야기를 더 했음. 잭이 간단한 안주로 담아온 과일 접시가 오스틴이 만든 것이었기에 대화의 화제는 한동안 오스틴이었지. 손님으로 와있던 사람들 중 두쌍의 커플은 잭이 같이 방송을 하며 알게된 두명의 방송인과 그들의 파트너였고 칼럼의 경우도 애인이 잭과 경연 프로그램 심사위원을 했던 적이 있어 애인을 통해 잭을 소개받은 사이였음. 같이 오기로 했다는 애인은 파리에서의 일정이 변경되어서 갑작스레 못 오게 되어서 혼자 왔을뿐 예정대로라면 칼럼 역시 파트너와 동행했을 것이라 이 자리에 싱글로 온 건 오스틴과 오스틴에게 관심이 아주 많은 풋볼선수 두명뿐임. 그러니 사람들이 오스틴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도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이야기를 들려달라 하면서도 사실 가장 궁금해하던 건 오스틴의 연애상황에 대한 것이었겠지.

특히나 잭이 장난을 실어 타박하듯이 자신이 오스틴을 알고 지낸지 1년이 넘는데 그 시간 내내 싱글이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다들 믿지 못하겠다는듯이 반응했겠지. 말도 안 된다고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스틴은 민망해져 웃으면서 그냥 일만 하다 보니 누굴 만날 기회가 없었다 둘러댈 수밖에 없었음. 차마 8년이나 지난 실패한 첫사랑의 기억을 아직도 끌어안고 사느라 아무한데도 정착 못했다고 할 순 없으니까. 사실 오스틴으로선 그런 화제는 너무 불편해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음. 급기야는 잭이 풋볼선수에게 자신에게 고마워하라면서 오스틴이 원래는 이런 자리에 안 오는데 그쪽 얘기를 하니까 오늘 오기로 한 거라는 식으로 약간은 왜곡된 이야기를 하기도 했거든. 그 덕분에 삽시간에 오스틴은 풋볼선수와 묘하게 한쌍처럼 묶이는 분위기가 형성되어버렸고 그건 오스틴에게는 어쩐지 악몽같은 기억을 상기시키는 상황이었음. 다들 떠들썩한 와중에 칼럼은 혼자 아무말 없이 술잔만 기울이다가 애인에게 전화가 와서 받고 오겠다면서 집안으로 들어가버리기까지 해서 오스틴은 더더욱 주눅이 들었음.

칼럼이 전화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다행히 화제가 다른 손님의 일과 관련된 이야기로 넘어가있었고 오스틴은 적당히 분위기에 섞이려 노력하면서 시간을 보냈지. 흥겨운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만 점점 우울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웃고 있으면서도 어쩐지 속은 텅 비어가는 기분이었지만. 모임은 자정이 넘어가기 전에 끝났고 오스틴은 풋볼선수의 차를 얻어타고 집에 가게되었음. 사실 필요하면 우버라도 부를 생각이었는데 그사람이 자꾸만 데려다주고 싶다면서 일부러 술도 안 마셨다고 어필을 했지. 무엇보다도 드라이버 딸린 suv에 타려던 칼럼이랑 눈이 한번 마주쳤는데 그 무감한 얼굴을 보는 순간 갑자기 속에서 뭔가 뜨거운 기운이 올라올 것 같아서... 홧김에 열려있던 조수석 문 안으로 올라타버린 오스틴이었지. 그래놓고는 집에 가는 동안 풋볼선수랑 대화는 거의 하지 않았어 더이상 맞장구쳐줄 기력도 없었고. 무엇보다 칼럼의 얼굴이 계속 생각나서 이젠 짜증까지 났음. 말 한번 안 걸거면서 왜 때마다 눈은 마주치는 건지. 사과할 기회도 안 줄 거면서 도대체 왜 그러는지 생각하면 자꾸만 서러워져서....








잭의 집에서 저녁 모임이 있었던 날 이후로 그 풋볼선수하고 더 진전된 건 없었음. 몇 번 더 연락이 왔지만 오스틴은 그냥 다 거절할 수밖에 없었지. 미안하다고, 내가 아직 누군가를 새로 만날 준비는 안 돼있는것 같다고 하면서 정중하게 선을 그으니 다행히 상대방도 매너있게 연락을 끊어줘서 다행이었음. 오스틴의 지난 8년 간 다가온 알파들이 없던 건 아니지. 아니 오히려 혼자인 걸 알게되면 족족 다가와 들이대는 알파들은 많았는데 개중에는 정말 끈질긴 놈들도 있었거든. 아무래도 잭이라는 중간 지인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런 거겠지만 오스틴은 그 남자가 피곤할 일을 더 만들지는 않아줘서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었음. 그리고 다짐했던 건 앞으로는 잭이 주최하는 파티나 모임 같은 거 안 가야겠다는 거였음. 어차피 자신하고는 너무 다른 업계의 사람이라 친분을 유지하는 것도 피곤했고. 그냥 앞으로는 조용하게 일하면서 지내고 싶었지. 더이상 과거 생각도 하지 말고. 잊어버리기에 이미 충분한 시간은 지났잖아. 미련을 가지고 있던 것도 아무 소용없다는 건 다 확인됐고.

그렇게 훌훌 털어버리기로 작정했던 오스틴이지만 결심은 며칠 안 가서 무너져버렸음. 평소처럼 공방에 나와서 오후까지는 작업을 하다가 잠깐 근처 카페에서 커피나 사올까 하면서 자리를 좀 털고 일어났을 때였지. 문에 걸어놓은 차임벨이 울려서 손을 씻는 채로 잠시만 기다려달라 했는데 가게에 들어온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음. 조용한 손님인가 하고 물기 어린 손을 닦으면서 나갔더니 판매하는 작품을 둔 전시대 앞에 있는 뒷모습이 너무 익숙했던 거야. 파티에서 봤을 때랑은 다르게 이제는 바로 알아볼 수 있어진 뒷모습이었지. 한 손에는 다리를 접은 선글라스를 든 채로 뒤를 도는 칼럼은 며칠 전 잭의 집에서 봤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얼굴이었음. 오스틴한테만 웃어주지 않는 그 얼굴 그대로 칼럼이 인사함.

"오랜만이네, 오스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처음 보네요.' 라더니 이젠 또 '오랜만이네.' 하고 있으니 대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오스틴은 이젠 도저히 모르겠음.






칼틴버
2024.05.26 11:04
ㅇㅇ
모바일
하 마음이 아파...
[Code: bf1e]
2024.05.26 11:18
ㅇㅇ
모바일
센세 제발 저 가슴이 터질것같아요
[Code: 0cdb]
2024.05.26 11:27
ㅇㅇ
하 세상에 내 센세가 왔구나 내 센세가 왔어 ༼;´༎ຶ ۝༎ຶ`༽༼;´༎ຶ ۝༎ຶ`༽༼;´༎ຶ ۝༎ຶ`༽
[Code: 0e46]
2024.05.26 11:42
ㅇㅇ
오스틴 예전처럼 한번 인지하고 나서는 칼럼 존재감을 느끼는거 너무 좋은데ㅠㅠㅠㅠㅠ 사실 오스틴 마음 속에서는 늘 칼럼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제 바깥 세상에서도 그런 존재감을 느끼게 되었으니 진짜 도망갈 구석이 없겠구나 정말 짜릿하다… 잭 얘기 들으면서 혼자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다 결국 승낙해놓고는 평소에는 잘 안하던 팔찌랑 반지도 끼고 눈 색깔이랑 맞춘 셔츠도 사입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는 짓 존나 안쓰러울 정도로 깜찍해서 여전히 고등학생 같은게 오스틴은 확실히 제대로 나아가지 못했구나 싶기도 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칼럼 첫사랑에 대한 얘기 다 알텐데 저기서 아는 척 하기보다는 모른 척 선 긋는 인사를 한게 어쩌면 최선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맘이 찢어지는건 어쩔수가 업따 (˘̩̩̩ㅡ˘̩ƪ)
[Code: 0e46]
2024.05.26 11:53
ㅇㅇ
오스틴한테 추근덕거리는 알파들을 불편해하는걸 칼럼은 옛날에도 멀리서 보고 바로 느꼈었는데.. 또 자기 앞에서 !!!풋볼선수!!!한테 노골적으로 호감 표시 받으며 예의상 대꾸하고 있는 오스틴 보면서 이젠 완연한 알파가 된 칼럼이 무슨 생각했을지 그것도 너무 궁금해서 돌겠다 진짜ㅋㅋㅋ쿠ㅜㅜㅜㅜㅜ 과거에도 알파들이 붙으면 그냥 불편한 표정으로 슬쩍 몸을 빼던 오스틴이 겹치지 않았을까 그래서 쳐다보고 눈 마주친걸까.. 칼럼은 그래도 이제 앞으로 나아간 것 같은데ㅜ 오스틴은 최소 1년 넘게 연애도 안하는 싱글이었고 알파 앞에서 여전히 편해보이지도 않는데다 주위 사람들이 나서서 남과 엮어주려는 모습도 예전 모습과 큰 차이 없어서 그걸 보는 칼럼 심정이 어땠을까 너무 신경쓰여.. 말 한마디 없이 술잔만 기울였다는걸 보면 알것도 같지만ㅠㅠㅋㅋㅋㅋㅋ 하 짜릿하다 센세 어떡해 진짜 미치겠어
[Code: 0e46]
2024.05.26 11:58
ㅇㅇ
말 한번 안걸면서 자꾸 눈이 마주치고.. 그러다 공방까지 찾아가고.. 칼럼 마주한 뒤로 다 소용없다는거 확안하고 이제 훌훌 털어버리기로 결심한 오스틴 앞에 나타나서 오랜만이네 오스틴 이라니..!!!! 그것도 웃어주지도 않는 얼굴로..!!!!!! 하 센세 나 진짜 밖에다 소리 지를거야 내 센세 존나게 사랑한다고..
[Code: 0e46]
2024.05.26 12:42
ㅇㅇ
모바일
센세... 나지금심장이너무뛰어
[Code: 6133]
2024.05.26 13:16
ㅇㅇ
모바일
조낸 머리 쥐어뜯는 포인트에서 끊기 신공….끄야양아아아아ㅏㅏ
아껴읽고 또 앓아누워따 이제 어쩜 좋아 어쩔거야
오스틴이 박복하다 천하제일 미인인데 남자 한명밖에 모른다아아아
걔는 지금 다른 애인있고 오스틴이 밉댄다
그런데 찾아왔지!!! 여기서 끊고 나보고 붕생 일상을 살아가라고오오
[Code: f22c]
2024.05.26 14:25
ㅇㅇ
크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센세오셨다ㅏㅏㅏㅏㅏㅏㅏㅏ엉엉엉 아니 칼럼도 이해되는데 오스틴이 너무 맘아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제발 대화해.....엉엉.............
[Code: 4eaf]
2024.05.26 14:53
ㅇㅇ
모바일
센세.... 기다렷읍니다,,, 와.. 근데 내가 이런 센세의 글에.. 와 쩐다,, 지렷읍니다,, 개슴 절절,, 오틴버 때문에 눈물 줄줄,, 이런 스렉이같은 표현밖에 할 수가 없어서 슬프다,,, 나의 이런 부족한 필력을 센세가 채워줬으먄 해,,, 센세 사,,,사,, 사는 동안 많이 쓰시오,,,!
[Code: 8206]
2024.05.26 15:57
ㅇㅇ
모바일
세상에 선샌님 꼭 또와요
[Code: 3225]
2024.05.26 18:37
ㅇㅇ
모바일
센세 붕부니 입안에 칼틴버 쑤셔넣어조
[Code: 111c]
2024.05.26 18:42
ㅇㅇ
모바일
미친 센세 진짜 걍 좋아서 이마 퍽퍽 침 억나더 가져와줘 진짜 제발 나 숨 안 쉰다
[Code: 9e09]
2024.05.26 21:32
ㅇㅇ
모바일
걍 죽고싶어 나….
[Code: 2fc3]
2024.05.26 21:32
ㅇㅇ
모바일
가슴이 찢어졌는디…
[Code: 2fc3]
2024.05.26 22:55
ㅇㅇ
모바일
이렇게 내 심장이 넝마가 되…
[Code: f9eb]
2024.05.26 23:02
ㅇㅇ
모바일
어나더 보는 꿈이라도 꿔야지 잠들수 있을거 같아... 사랑해 센세
[Code: a0b5]
2024.05.27 03:24
ㅇㅇ
모바일
죽고시퍼...미칠거같음ㅠㅠㅠㅠㅇ응아ㅏ아ㅏ아앙 칼럼 관심없는 것처럼 보이더니 찾아온거 뭔데 보고싶었지?????!!그렇다고해ㅠㅠㅠ붕붕이 가슴 찢어지니까 후...근데 칼럼이 쌀쌀맞게 구는거 너무 좋다 존나 맛있어 하이스쿨때랑 정반대라 진짜 개꼴리고 짜릿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bec4]
2024.05.27 03:30
ㅇㅇ
모바일
알파풋볼선수한테 플러팅당하는 오스틴 과거생각나서 너무 꼴려 칼럼이 그거 보고 ㅈㄴ 거슬렸겠지?헉헉ㅠㅠㅠ후으앙앙 오스틴 그시간동안 칼럼 못잊은거 너무 안쓰럽고 불쌍하지만 더 굴렀으면 좋겠어...오해하는거 좋아 칼럼이 오스틴 괴롭혔으면 좋겠다 헉헉 너무 재밌어 센세 사랑해.....🥹
[Code: bec4]
2024.05.28 02:44
ㅇㅇ
모바일
하 센세 와줘서 고마워 고맙고 진짜...
[Code: d35d]
2024.05.28 13:49
ㅇㅇ
모바일
센세... 나 여기 누웠어 너무 행복하다 하루에 몇번을 읽는건지 모르겠어 오스틴 맘고생하는거 짜릿하다
[Code: dbf5]
2024.06.03 07:08
ㅇㅇ
모바일
진짜 여길 떠날수가없다...
[Code: 038f]
2024.06.04 02:11
ㅇㅇ
모바일
하 진짜 미쳤다 정주행 오나료..........
[Code: bd98]
2024.06.04 23:25
ㅇㅇ
모바일
아 칼럼 한번씩 오틴버 보는 거 진짜 개좋다.... 오틴버 불편해 하는 거 칼럼도 알았을 거 같음 ㅠㅠ 하이스쿨 때 생각도 나고..... 하 오틴버 더 굴려졌으면 좋겠다 개맛있음 ㅠㅠㅠ 센세 나 숨참고 기다릴게..
[Code: f2aa]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