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 생각이 나서요



용케 살아남았더군요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말한 요드가 솔과 눈을 맞추었음 아주 예전에 요드가 아직 황자였을 시절에 꽃을 꺾어온 적이 있는데 그때는 지금과 같지 않았지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답니다 꽃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부러 꺾어 이 아이를 아프게 하지 마세요 그리고 저는 이렇게 화려한 꽃보다 담너머 길가에 핀 이름모를 들꽃에 더 마음이 간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는 꽃을 꺾어오는 일도 없었을 거임 그랬던 요드가 무슨 일인지 조그맣고 수수한 들꽃을 꺾어왔는데 솔은 그가 꽃을 꺾어왔다는 것보다 그가 한 말이 더 마음에 와닿았을 거임
살아남았다
그 말 안에 복잡한 요드의 심경이 모두 담겨있었지
황궁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철저했음 조금이라도 못난 것이 보이거나 기존의 미관이 망가지지 않게 살피고 관리했음 그런 장소에서 어디에서 흘러들어왔는지 모를 작은 꽃이 꽃송이를 활짝 피웠다는 게 대견하고 애틋했던 거임 그래서 꺾지 말라는 솔의 언질도 잠시 덮어두고 솔에게 보여주러고 꺾어왔겠지

사실 솔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 꽃을 보러가자고 청했다면 거절하지 않았을 텐데 요드는 마음이 급해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임 솔도 그런 요드의 마음을 짐작해서 아무말하지 않고 꽃을 받아들었겠지 그게 아니어도 감히 어떻게 황제를 질타할 수 있었겠음 그저 감사하다 고개 숙여 마음을 표현할 뿐이었지

요드가 돌아간 뒤 솔은 그가 준 꽃을 찻잔에 물 담아 담근 뒤 햇볕 잘 드는 곳에 두었음 이러면 오래 갈까 생각한 거지만 기대와 우려만큼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았지 그래도 요드가 섭섭지 않게 좀 버텨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문득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을 거임 늘 단정하고 먼지하나 없던 그의 의복이 흙먼지로 더러워졌었다는 게 떠올랐음

이 꽃은 어디서 찾으셨는가

곧바로 사람을 보내 확인하니 돌아오는 대답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게 했음

후원에서 찾으셨습니다

얼마나...?

한시진(2시간여)이나 찾으셨습니다

국무로 바쁠 사람이 한시진이나 손을 놀렸는데 그게 제게 줄 꽃을 찾기 위해서라니 말문이 막혀 아무말도 할 수 없었지 고민스러워 손을 말아쥐었을 때 조용히 지켜보던 내관이 조언했음

너무 걱정마옵소서 황후마마를 생각해 하신 일이 아닙니까 그러니 조금만 더 황제폐하를 어여삐 여겨주세요

솔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대답하지 않았음 요드를 나무라고 싶었던 건 아님 솔직하게 처음엔 그러려고 했지만 자신은 이제 요드의 스승이 아닐 뿐더러 원인이 제게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됐던 거였음 게다가 미워하지 말라며 애원한 그 밤 이후로 요드의 태도가 무척 조심스러워진 걸 느꼈음 요드는 어떻게든 솔의 환심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지 그게 마음을 아프게 했음 그러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너무나 필사적인 게 보여서 자기가 무엇이기에 그가 그렇게까지 하는지 아득했지

솔은 종일 근심에 빠져있다가 늦은 밤이 되어 찾아온 요드를 맞았음 그리고 직접 흙위를 살피고 뒤지느라 더러워졌을 요드의 손을 감싸잡았지

황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솔은 그저 말없이 웃었음 요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에도 그저 솔이 먼저 제 손을 잡아주었다는 게 기뻐서 마주 웃고 말았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나 솔과 요드가 함께 암행을 나갔을 때였음 궁을 빠져나가 이것저것 살피고 저잣거리를 거닐다가 솔이 뭔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옮겼음 요드가 곧바로 솔의 뒤로 따라붙었고 보이지 않게 주변을 감싼 호위들이 기민하게 움직였지
솔은 길가의 구석진 곳에 쪼그려앉아 하얗고 가느다란 꽃잎을 활짝 피운 꽃을 조심스럽게 꺾었음

미안하구나 내 사람을 즐겁게 하는데 너를 아프게 하여서

솔은 꽃에게 용서를 빌었지

솔의 뒤에서 그림자를 드리운채 지켜보던 요드는 솔이 뮐하는지는 정확하게 보지 못했을 거임 그래서 주저앉아있던 솔이 몸을 일으켜 뒤돌아설 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음
요드는 솔이 제게 직접 꺾은 활짝 핀 꽃을 내밀었을 때 얼떨떨해진 채로 눈만 끔벅거렸음 솔은 어리숙한 황제를 보며 웃었어 곱게 휘는 눈꼬리가 무척 다정하고 어여뻐 요드는 시선을 뺏기고 말았지

폐... 공자께 드리고 싶어서요

혼인한 사이였지만 차마 부군이라 말할 수 없었던 솔이 부끄러움을 밀어내며 말했음 그순간 요드의 눈에 환한 빛이 돌기 시작했음 그런데 어쩐지 속이 울컥해 울고 싶었지

지난 번의 선물에 대한 보답이랍니다

요드는 일그러지는 표정을 애써 감추며 천천히 미소지었음 솔이 제게 보여준 다정함이 자신을 죽이는데도 행복했지







암행을 다녀온 후로 솔과 요드는 조금 더 편안해진 사이가 되었을 거임 여전히 동침은 하지 않았지만 점점 제게 가까워지는 솔을 보며 요드는 이마저도 좋다고 생각했음
그러다 어느날 새벽까지 국정을 논하다가 요드가 돌아간 뒤 솔은 바닥에 떨어진 낡은 복주머니를 발견했을 거임 시종이 떨어뜨린 것도 아니고 제 물건도 아니니 복주머니는 조금 전까지 함께 있던 요드의 것임이 분명했지 그리고 복주머니가 떨어진 건 매듭을 묶는 끈이 낡은 탓이라는 걸 깨달았음

복주머니를 집어든 솔은 그것이 어쩐지 낯이 익었을 거야 앞뒤로 뒤집어가며 살펴보니 엉성하게 꿰맨 것이 황자였던 요드에게 만들어주었던 그 복주머니가 확실했지 다만 의아했던 건 그 오래전에 주었던 걸 어째서 지금까지 요드가 가지고 있었냐는 거였음 솔기가 엉성해 진작 터져도 터졌을 것을 거기다 주머니 안에는 뭔가가 만져지고 있었음 자신이 요드에게 줄 때는 넣은 적 없는 것이었음 솔은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다가 안을 열어보았음 안에서 나온 건 고이 접은 변색된 종이에 쌓여 있었음

고개를 갸웃하며 종이를 펼친 솔은 처음에는 종이 안에 든 게 뭔지 알지 못했음 쪼그라들고 색이 변한 그것은 달큼한 냄새가 났지 그제서야 솔은 그게 사랑이라는 걸 깨달았음 그것도 역시 오래전에 요드에게 둔 것이었지

왜 이게...

벌써 다 먹었거나 썩어 없어졌어야 할 사탕을 어째서 요드가 가지고 있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았음 솔은 검게 내려앉은 밖을 바라보고는 당당 요드에게 가려던 걸 포기했지 늦게까지 일하고 지쳤을 그를 쉬게 해주고 싶었음 이 복주머니가 요드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오르겠지만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게 아니라 제 손에 있으니 그가 오면 바로 주면 될 터였음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았음 눈을 뜬 채로 밤을 샌 솔은 영 신경쓰이는 요드의 복주머니를 돌아봤을 거임 그러지 않으리라 했으면서도 자꾸 요드가 자신이 준 것들을 여지껏 가지고 있는 게 신경쓰였지

밤새 뒤척이느라 무거운 몸을 일으킨 솔은 내관을 불렀음 어쨌든 요드의 것이니 그가 없어진 걸 알게 된다면 찾을 것 같아서였음 그가 상심하지 않도록 내관에게 들려보낼 셈이었는데 낡은 게 영 마음에 걸리는 거임 그래서 고민 끝에 새로 복주머니를 만들어주기로 함 요드에게는 떨어뜨렸다는 걸 알릴 생각이었지 그런데 갑자기 밖이 부산스러워짐 당황한 솔은 예를 갖추기도 전에 훌쩍 날아오듯 들어온 요드를 발견했음

황제폐하를...

솔!

느닷없이 불린 이름이 놀라워 고개를 들자 사색이 된 요드가 물었음

혹시 작은 복주머니를 보지 못하셨습니까

요드가 급하게 온 게 그것 때문이라니 놀랐지 시선만 보내는 솔을 오해한 요드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음

실은 제게 중요한 것이라... 놀라게 했다면 미안합니다 마음이 급하여...

폐하께 중요하다고요

그냥 내어주면 될 걸 솔은 귀찮은 길을 돌아가고 있었음 어쩌면 요드에게서 뭔가를 알아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욕망 때문에 자신을 취한 게 아니라 다른 의미가 있어서일 지도 모른다는 그런 것들
솔은 무의식중에 그렇게 생각했음 요드는 그런 솔의 속을 모르니 그저 초조해 대답했지

어렸을 때부터 간직해 온 부적이었습니다 한시도 몸에서 뗀 적 없이 오랜 시간을 살았더니 이젠 없으면 불안해집니다

오래전부터 가지고 계셨다면 낡았겠군요?

시간이 흘렀으니 그렇게 보일 수는 있겠으나 그렇게 낡지는 않았어요

자신있게 말한 요드였지만 솔은 어이가 없었음 끈이 낡아 끊어질 정도인데 낡지 않았다니 평소 자기 것은 아끼던 요드였으니 그만큼 아껴썼다는 뜻이었을 거임

다른 복주머니라도 만들라 할까요

그렇게 물으니 멈칫한 요드는 그럴 필요는 없어요 함

어찌 그러십니까

그 복주머니만큼 마음놓이는 것이 없어 그럽니다

잃어버린 것을 찾지 못하면 어쩌시려고요

슬쩍 떠본 말인데도 요드는 알아채지 못하고 침울한 얼굴이 됐음 고민하는 듯 싶더니 그럼 어쩔 수 없지요 하는 목소리에 깔린 체념이 꽤 뼈아프게 들렸을 거임 솔은 요드의 의도를 알아내려고 노력했음 이 사람이 왜 자꾸 이리 제 마음을 건드리는 건지 알고 싶었음 눈을 떼지 않으면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시선을 떼지 않았음 그걸 눈치챈 요드가 눈썹을 움찔함

어찌 그리 보세요

폐하께서 새로 만들어 드리는 것도 싫다 하시니 어찌해야하나 생각하는 중이었습니다

예...? 뭐가요

솔은 포기하고 소매에 넣어두었던 요드의 복주머니를 꺼냈음 의아해하던 요드의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았음

이걸 찾으시는 거지요

이걸 어찌 황후께서...

새벽에 돌아가신 뒤 발견하였답니다

다행입니다 정말 잃어버린 줄 알고 어찌나 마음을 졸였던지...

안도해 웃는 요드는 정말 기뻐 보였음 솔은 요드의 작은 표정하나까지 살피다가 두손을 모으고 고했음

하나 용서를 빌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황후께서 용서를 빌 일이 뭐가 있겠어요

황제폐하의 것임을 짐작했으나 낯이 익어 궁금하기에 허락도 없이 안을 열어보았습니다

요드가 눈을 끔벅거렸음 꼭 뭔가를 들킨 사람처럼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

복주머니만 오래된 것이 아니더군요 사탕은 왜 드시지 않으셨습니까 필요하셨다면 더 구해다 드릴 수 있었는데요

사탕에 대한 것을 묻자 요드가 체념한 듯 눈을 꼭 감았다가 떴음 드물게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인 요드는 꼭 솔이 들으면 혼낼 거라는 듯이 조심스러웠음 근래에 이런저런 낯선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요드였지만 오늘 보이는 모습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음

황후께서 준 것이지 않습니까

예...?

생각지도 못했던 답이라 멍청하게 되묻자 숨을 들이마신 요드가 단호한 어투로 말했음

당신께서 내게 준 것이라 먹을 수 없었습니다

...

믿지 못하시겠지만 이상하게도 당신께서 사탕을 주신 뒤부터 좋은 일이 생기기 시작했답니다 그래서 감히 없앨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

그 속에 든 것은 당신이 내게 준 복주머니처럼 저를 지켜주는 부적이었어요

솔직하게 털어놓은 요드는 편안해보였지만 반대로 솔의 마음은 불편해지기 시작했음 자신이 왜 이 착하고 순한 황자에게 사탕을 주게 되었는지 떠올랐기 때문임




그때쯤 요드에게 무심하던 황제가 요드를 불러 독대한적 있었는데 이 이후부터 슬슬 형제들의 황권다툼에 요드의 자리도 생기기 시작했음 그전까지는 없는 이 취급받았다면 그쯤부터는 자리를 마련해줄 테니 너도 한 번 날뛰어보려므나 하고 판을 깐 것에 가까웠음

그 아이는 어떻지? 쓸만한가?

여상한 어조로 묻는 황제는 사실은 요드가 궁금했던 건 아니었음 그걸 핑계로 좀처럼 볼 일이 없던 솔을 보고싶었던 거였지 

총명하시어 뭘 가르쳐도 금방 깨우치십니다

솔은 요드가 처한 처지를 잘 아서 조금이라도 황제의 눈에 차게 만들고 싶었음 그래서 칭찬했는데 그게 황제에게는 거슬린 모양이었음

당연히 그래야지 내 명을 거부하고 너를 데려갔으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돼 널 내어준 내  마음에 차려면 한참 모자라다 이제라도 어떠냐 나는 아직 그때 네게 한 제안을 거두지 않았다

일순 다정하게 들렸지만 황제가 한 것은 제안이 아니었음 강요였지 거기서 솔은 문득 의문이 들었음 자신을 원한다면서 어째서 억지로 자신을 취해 주저앉히지 않는지
내심 바랐다거나 아쉬워서가 아님 그럴만한 권력이 있는데도 하지 않은 게 궁금했을뿐임 그렇다고 천지분간 못하는 멍청이가 아니기에 입밖에 꺼내 묻지는 않았음 직접 묻는다면 이번에야말로 황제는 옳다구나 하며 솔을 붙잡으려고 할 거임 솔은 못 알아들은척 정중하게 고개 숙였음

은혜는 감사하나 저는 황제폐하의 은혜를 온전히 받을만한 인재가 아닙니다 부디 더 받아 마땅한 이에게 베풀어주소서

이미 몇번이나 당한 거절에 역정을 낼만도한데 황제는 별말없이 솔을 내보냈을 거임
정전을 나서자 답답했던 속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음 기별을 했지만 요드의 수업이 늦춰진 것도 신경쓰였음
제게 인사하는 내관과 시종들을 뒤로하고 서둘러 요드의 처소로 발길을 돌리는데 저 멀리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옷자락을 발견했음 어째 낯익다 생각하자마자 설마 하는 의심이 들었음 황제의 인정을 바라는 것과 달리 요드는 황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음 그래서 문안조차 불편해 했는데 그런 요드가 일도 없이 황제가 있을 정전에 올리가 없었음 자신을 마중나왔던 건가 생각했지만 그랬다면 혼자 돌아갈 리 없었지

솔은 서둘러 요드의 처소로 갔음 한데 요드는 묘하게 화난 듯한 기색이었음 설마 기별을 못 받았나 하는 생각에 솔은 정중하게 사과했음

늦어서 죄송합니다 잠시 일이 있어 늦었습니다

사실은 급하게 불려간 거였지만 요드는 알 필요가 없는 문제였지 기별했으니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었음 황제가 부르는데 어쩌겠음

황제폐하를 뵙고 오셨다고요

예 전하

무슨 말씀을 하시더이까

전하께서 어찌 지내시는지 여쭈셨습니다 학업성취가 빠르다 흡족하시다 칭찬도 하셨고요

대화는 별문제 없었을 거임 그랬는데 이상하게 점점 상기된 요드가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음

그게 정녕 저에 대한 칭찬은 맞습니까?

당황한 솔 놀람을 감추었음 이러니저러니해도 황제의 관심을 받고 싶었던 요드였기에 대수롭지 않아보이는 질문에 속이 상했을 지도 몰랐지

그럼요 황제폐하께서는 만백성의 어버이시지만 전하의 아버님이기도 하시잖습니까 자식이 뛰어남을 반기지 않을 부모는 없답니다

하고 애써 달래는데 이상하게 요드가 원망하는 눈으로 노려보는거 처음있는 일이라 솔은 적잖게 당황함

전하....?

스승님께서는...

뭔가 할말이 많은 것처럼 운을 뗀 요드가 입을 꾹 닫았음 어지러운 속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보이는데 아직 서툴러 솔에게는 그대로 보였음
대체 뭐에 이렇게 화가 나셨을까 의아하면서도 걱정됐음

전하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그리 화를 내시면 몸이 상합니다

진정시키려고 하자 우울한 낯빛이 된 요드가 솔을 바라봄

스승님께서는 왜 제 스승이 된 것입니까

...

저는 이 궁에서 가장 하찮은 존재이지 않습니까 입신양명을 원하셨다면 황제폐하께서 어여삐 여기는 한귀비의 소생을 맡으셔야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비하하는 요드의 눈가가 촉촉해졌음 솔은 가만히 다가가 요드 앞에 무릎을 꿇고 올려다보며 손을 잡았음 요드는 움찔했지만 손을 빼내지는 않아서 솔은 손을 살며시 감싸쥐며 그는 안심시키려고 했음

어찌 그리 말씀하세요 스스로 존재를 가볍게 여기는 말은 삼가세요 궁이란 온갖 욕망들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그 안에는 달콤하게 전하를 꾀는 것도 있을 것이지만 전하의 마음을 해치려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

하지만 전하만을 위해 존재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두세요 사람이 많은 곳일수록 마음이 단단하지 못할수록 전하를 괴롭히는 것들이 많아지겠지요

...

그러니 누구도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단단해지세요 그렇게 되면 허튼 소문과 거짓말에 흔들리지 않게 되실 겁니다

그럼 스승님은 어떠합니까 제게 어떤 사람입니까

눈물이 고인 눈으로 요드가 물음

스승님께서는 제 사람입니까? 제가 거짓과 현혹에 흔들리지 않길 원하십니까?

황자전하

아니면 진창에 처박히길 원하십니까

솔의 고민이 깊어졌음 지금껏 잘 이끌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혼자만의 착각인 것같았음 대답없이 침묵이 길어지자 안색이 변한 요드가 억지로 쥐어짜낸 듯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물었음

스승님은 제 사람이지요?

솔은 고개를 갸웃했음 왜 이렇게 묻는 건지 알 수 없었지 솔은 당연히 그렇다며 대답했지만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을 거임

요드는 솔이 황제를 알현하려 갔다는말에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싶어서 황제가 있을 궁까지 직접갔을 거임 고하려는 걸 중지시키고 서성대다가 길어지는 시간에 초조함을 참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갔는데 그게 문제였음 거기서 솔과 황제의 대화를 엿듣게 돼버린 거임

솔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황제는 속셈이 뻔했음 황제가 솔을 원한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요드는 내관을 끌고가 다그쳐 물었을 거임 거기서 아주 예전에 황제가 솔을 황후 후보로 고려했었다는걸 알게됨
충격받아서 정신없이 돌아왔는데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화가 났음 대화를 들어보니 솔도 그 사실을 아는거 같았음 그게 못견디게 괴로웠음

집안이 한미해 권력을 받쳐줄만한 뒷배가 없는 솔은 현실적으로 황후가 될 수 없었을 거고 우여곡절 끝에 된다고 해도 황제에게 도움이 안됐을거임
가문이 부족해서 세도가의 집안으로 입적해 황제와 혼인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건 솔이 정말 혼인을 원하지 않았다는 걸 말해주었음 하지만 그게 솔의 진심을 말해주는건 아니었음

끝도 없이 뻗어나간 생각은 이제 솔이 황제를 사랑하냐 안하냐로 귀결되었음 요드는 배신감에 몸을 떨었음 자기만을 위하는양 굴어놓고서 어째서 황제와 그런 일이 있었단 말임 그것도 자기한테 말도 하지 않고

거기까지 생각하자 깨달을수 밖에 없었음 자신은 솔을 스승으로만 보는게 아니었음 괴로워서 머리를 감싸쥐고 쥐어뜯어 불경한 생각을 없애보려고 했지만 이제 막 자각한 감정은 오히려 반발하듯 거세게 타오르기만 할뿐 사그라들지 않았음
하필이면 자기도 자기 감정이 주체가 안돼서 어쩔줄 몰라하는데 마침 솔이 들어왔던 거고 아무일도 없었다는양 무덤덤한 얼굴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치기어린 질투와 분노가 터져나온 거였음

요드는 불안했음 대답하지 않는 솔이 결국에 부정하거나 황제에 대한 마음을 숨기고 있는걸까 봐 두려웠음  참지 못하고 보채듯이

제 사람인 거지요

하고 물으니 그제야 눈썹을 늘어뜨린 솔이

그럼요 저는 황자전하의 사람이랍니다

했음 요드는 한순간에 긴장이 풀려 솔에게 안겨들었음 대답을 듣는 순간 솔의 감정이 자신과 같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그저 자기 말을 부정하지 않은데 대한 안도가 컸음

솔은 씩씩대는 요드의 등을 천천히 쓸어주며 진정되기를 기다렸음 점점 호흡이 안정돼갔지만 갓 마음을 자각한 요드는 솔에게서 떨어지기 싫었음 향주머니를 달고 다니는지 희미하게 느껴지는 향기가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같아 더 느끼고 싶었음

자기 품에서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안겨오는 요드를 솔은 안타까워하면서도 난감해했음 요드에게서 뭔가가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임 막 혹은 어떤 경계선 안에서 소용돌이치며 울부짖는 터져나오려는 강한 기운과 향기가 강하게 느껴졌음 솔은 그게 음인으로서 느끼는 특별한 감각인걸 알았음

황제의 핏줄이니 으례 양인이 되겠거니 했지만 막상 엿본 요드의 성질이 너무나 격렬하고 강해 당혹스러우면서도 걱정됐음 이렇게 자기 조절 못하고 무방비하게 자극하다가 크게 일을 치를 수 있었기 때문임 요드는 아직 그걸 감당할 수 없을 사람이라 조금 더 안정적으로 발현하도록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음

그날 솔은 요드를 진정시키고 상한 속을 위로하느라 평소보다 더 늦은 시간까지 수업을 진행했을 거임 어떻든 요드가 자신과의 수업을 좋아하는 걸 알기 때문이었음
그러고 돌아가는 길에 시장을 가로질러가다가 알록달록 예쁜 사탕을 발견했음 솔은 사탕 세 알을 사서 그 다음날 요드에게 가져다 주었음

사탕을 받은 요드는 처음엔 무슨 일인지 몰라 의아해했음 그걸 본 솔이 웃으며 접은 종이를 펼쳤고 사탕을 발견한 요드가 솔을  올려다봤음

어제 시장을 지나는 길에 사보았답니다 황자 전하가 생각나서요

위로가 되길 바라며 말한 게 통했는지 요드가 환하게 웃었음

자주 드시지는 말고요

고맙습니다 스승님 소중하게 간직할 것입니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사탕을 쓸어본 요드가 웃었음 어차피 먹으려고 산 것이고 먹으면 없어지는 거라 소중히 간직해봐야 뭘하겠나 싶었음 어린 요드가 사탕을 참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겠지

하나 드시겠습니까

묻는 말에 고민하던 요드가 고개를 끄덕였음 솔은 직접 사탕을 집어 하나 입에 넣어주었음 얌전히 입을 벌려 사탕을 받아먹은 요드의 볼이 발그레해졌음

달콤하여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남은 두개 중에 하나를 집어 솔에게 내밀었음 요드를 위해 산 것을 먹을 수 없어 내민 손을 살며시 밀어 거절하자 요드가 섭섭해하는 게 보였음

그건 전하를 위해 사 온 것이랍니다

요드는 잠시 망설이다가 사탕을 조심스럽게 종이에 다시 쌌음 그리고는 귀한 물건을 대하듯 조심스럽게 허리춤에 맨 복주머니에 넣었지
그때 솔은 자신이 만든 허술한 복주머니를 요드가 내내 차고 다녔다는걸 알게되었음 처음 만들어보는거라 엉망이었는데도 황자씩이나 되는 요드가 가지고 있는 걸보니 수치심이 들어 볼이 화끈거리른 것 같았음

좀 더 좋은 것을 지어 달라고 하세요

뭐가요? 아...

요드는 솔의 시선이 복주머니에 들은 걸 발견했음

스승님께서 주신것이 아닙니까 저는 이것이 제일 좋습니다 언제고 지닐 겁니다

바꾸라니까 좋다는 소리나 하고 솔은 자길 부끄럽게 만든 제자가 귀여웠음


그랬었는데
그때 일이 떠올라 요드에게 물었음

새로 만들어 올리라 할까요

왜요 이것도 아직 쓸만합니다

요드는 아무렇지 않은듯이 솔에게서 복주머니를 가져갔음 요드는 괜찮다는데 솔은 마음이 쓰였음 황제나 되는 사람이 누추한걸 가지고 다는게 영 신경쓰였음 그것도 자기가 만든 허술한거라 더 신경쓰였지

지금까지 용케 잘 버텨주었네요 금방 찢어져버릴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괜히 면구해 솔이 한마디하자 요드가 웃어버림 사실 지금의 복주머니는 솔이 준 처음의 그 복주머니가 아니었음 튼튼하지 못한 바느질 때문에 헐거운 솔깃이 몇번이고 뜯어졌었지
솔이 건네준 것에 다른 이의 손이 닿게 하는 게 싫었고 망가졌다고 버리고 싶지도 않았음 그래서 서툰 손으로 직접 보수하고 지니고 다녔음

손가락 끝에 바늘 구멍이 몇개나 났지만 다 고친 주머니를 보고 얼마나 뿌듯했던지 상처가 난 걸 보면 솔이 마음쓸 걸 알기에 일부러 감추었으면서 문득 이것보세요 하면서 자랑하고 싶은 게 한두번이 아니었을 거임 그래서 더 버릴수가 없었음 솔의 흔적에 제 흔적이 더해진 거라서

솔은 알았다며 순순히 넘어갔음 그러고 다시 주머니를 만들기 시작했음 원래 복주머니를 주고받던 시기는 한참 지났지만 역시 마음에 걸려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음

솔은 성심성의껏 온갖 정성을 다해 주머니에 수를 놓고 만들었을 거임 간단한 바느질은 해본적 있지만 본격적으로 뭔가를 만든 적은 그때 이후 처음이라 피를 여러번 보기도 했을 거임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 며칠 노력한 끝에 드디어 복주머니를 완성했음


그 이후 언제 줄까 기회를 엿보던 솔은 오랜만에 산책하자며 요드가 손을 잡아왔을때 뜨금해져 손을 움찔해버렸음 솔에 대한 일이라면 기민한 요드가 눈치채지 못할리 없었지 숨기려는 솔을 엄하게 만류하며 손을 살핀 요드는 바늘구멍이 난 손을 발견했음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이왕 들킨 거 그냥 줘버리자는 생각이 들었음

먼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부디 너그럽게 봐주세요

왜 그러십니까

솔은 제 손을 잡은 요드의 손을 거꾸로 잡고는 의자에 앉혔음 그러고는 완성한 복주머니를 요드에게 내밀거임 어리둥절해하던 요드는 얼떨떨해져서 눈앞에 내민 복주머니와 솔의 얼굴을 번갈아 돌아보았음 부끄러워진 솔은 시선을 떨어뜨렸지

마음에 걸려서요 아주 잘 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때보다는 나아진 것 같아 만들었답니다 

가만히 내민 것을 보기만 하던 요드의 눈에 복주머니 한쪽이 볼록한 게 들어올 거임 묶은 끈을 풀러 열어보니 뭔가를 감싼 종이가 나왔음 지체없이 종이를 펼쳐보니 사탕 세개가 나왔음

이게...

요드는 말을 잇지 못했음 솔은 볼이 조금 상기된 채 대답했지

주머니만 드리기 허전해 넣었답니다 무척 좋아하셨던 게 떠올라...

...

자주  드시지 마시고 아주 가끔만 드세요

요드는 울컥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꾹 억눌렀음 조심스럽게 종이를 다시 접어서 주머니에 넣자 가슴이 벅차올랐지

잘 간직하겠습니다

언제든 어느 때든 필요하시면 구해다 드릴 테니 저번처럼 그냥 두어 썩히지 마세요

요드는 슬며시 웃었음

제 부적이었던 것을요

그럼 또 드리겠습니다

...

폐하의 주머니가 비지 않도록 언제나 신경쓸 것입니다

요드는 심장이 아리는 기분에 웃음이 배어나오는 걸 참지 못했음 솔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고 감동적이라 그냥 있을 수 없었지 요드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솔의 볼을 감쌌음 조심스럽게 눈을 맞추는 솔이 어느때보다 사랑스럽고 애틋하게 느껴졌음

입맞추어도 되겠습니까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음 두근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지 솔은 물끄러미 간절하게 바라보는 요드를 보며 제 얼굴을 감싼 요드의 손등에 손을 겹쳤음 이상하게 요드의 눈을 보면볼수록 그의 감정이 전해지는것 같았지 솔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가 조용히 말했음 정말 말도 안되게도 지금까지 요드가 보여주었던 것들의 진심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황후로 들였는지 알 것만 같았지

그런 말씀은 이제 하지 마세요

이렇게 말해도 될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에 요드가 입술을 겹쳤음 거칠지는 않지만 억눌렀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입맞춤이었지 솔은 진득하게 자신을 빼앗아가는 요드에게 모든 걸 허락하듯 요드의 얼굴을 감쌌음

그리고 이날은 그동안의 공백을 메꾸듯 황홀하면서도 고통스러운 밤이었을 거임





애콜라이트 요드솔
2024.06.21 18:26
ㅇㅇ
하... 나 이제 센세없이 어떻게 살지 너무 고민이다... 요드솔 평생 행복하게 사랑하고 센세는 나랑 평생 가는거야
[Code: 9d2f]
2024.06.21 19:22
ㅇㅇ
모바일
둘이 연애하네ㅠㅠㅠㅠㅠㅠㅠㅠㅠ달달해서 사탕 100개 먹은 것 처럼 이빨 다 썩음 책임져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40b9]
2024.06.21 19:36
ㅇㅇ
모바일
사탕.. 복주머니… 너무 스윗하고 따뜻하고 좋은 이야기였다 ㅠㅠㅠㅠ 이제 황홀하고 고통스러운 밤 얘기도 길게길게 해주세요 센세
[Code: 5685]
2024.06.21 20:03
ㅇㅇ
모바일
아 진짜 너무 좋아서 가슴 터질거같아!!!!!!!!! 센세 ㅠㅠㅠㅠ 군만두랑 웰치스 박스째로 사다놓을게요 ㅠㅠㅠ 제발 19474772편 써주세요 ㅠㅠㅠㅠㅠㅠ
[Code: be12]
2024.06.21 20:30
ㅇㅇ
모바일
뭐야 나 왜 울컥해 하 넘 행복하다 센세..
[Code: 61c9]
2024.06.21 20:40
ㅇㅇ
모바일
달달해서 죽어.. 행복하게만 해주라ㅠㅠ
[Code: 5843]
2024.06.21 22:51
ㅇㅇ
모바일
달다 못해 녹아내리겠어 ㅠㅠㅠ 센세 너무 좋다
[Code: 433d]
2024.06.22 10:37
ㅇㅇ
모바일
센세 최고야....
[Code: bc6c]
2024.06.22 10:58
ㅇㅇ
모바일
아 세상 살맛난다
[Code: f236]
2024.06.22 11:30
ㅇㅇ
모바일
ㅠㅠㅠㅠㅠㅠㅠ행복 ㅠㅠㅠㅠㅠㅠㅠ어나더 ㅠㅠㅠㅠ
[Code: 1ad5]
2024.06.22 13:12
ㅇㅇ
모바일
사탕ㅜㅜㅜㅜㅜ 사탕이 무엇이길래 이리 내 마음이 뺏기는지요ㅜㅜㅜㅠ 센세 무순이 저에겐 저 사탕과 같답니다 평생 지니고 다니겠습니다 마르고 닳토록 볼 것입니다...
[Code: 153e]
2024.06.23 23:38
ㅇㅇ
모바일
센세는........별이야.....
[Code: 82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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