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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1 11:41
개김
ㅅㅈㅈㅇ






1.


허니는 자신이 아카데미로 끌려온 날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음.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깡시골에서도 유독 구석에 유모와 단 둘이 살고 있던 허니에게 새로운 여왕 후보라며 그를 끌고 갔는데. 

황금색의 날개가 달린 사자가 어깨에 수 놓아진 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일처리가 누구보다 빨랐음. 허니의 유모가 뭔가 잘못 된 것이 분명하다고 소리를 질러도 그들은 허니의 팔을 잡아챘지.

그 때는 왜 자신의 유모가 저렇게도 필사적으로 그 사람들을 막으려는 것인지 알 지 못했음. 아무리 열 넷이라는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도 허니는 모든 것을 이해하기에는 어린 나이였기 때문임.

심지어 마을 사람들도 유모의 행동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음. 누구는 여왕 후보가 된 것이면 이제 인생 핀 것 아니냐며 고개를 갸웃했음. 그리고 울부짖는 유모의 어깨를 잡아채며 말렸음.

솔직히 이야기를 하면 그때가 허니가 자신의 유모의 얼굴을 본 마지막이었음.

허니는 자신이 평생 유모를 이해하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음. 열 일곱이 된 지금까지 허니는 아카데미에서 이렇다 할 일이 없었음. 

물론 여왕 후보라는 사실에 처음에는 다른 학생들과 대우가 다르기는 했음.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 했음. 그야, 허니가 아카데미에 도착해서 알아챈 사실은, 자신을 제외하고도 여왕 후보는 여섯 명이나 더 있었음. 그리고 그 사이에서 경쟁을 통해 1등을 하는 자만이 여왕이 될 수 있었음.

허니에 대한 관심을 금새 식었음. 총 일곱 명의 여왕 후보 중 다섯 번째. 그리 특출나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지도 않은 여왕 후보, 하지만 절대 여왕이 되지는 못 할 자리. 허니의 위치는 딱 거기였음.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했음. 현재 가장 유력한 여왕 후보라는 아이처럼 대대로 여왕을 몇이나 배출했다는 가문 출신도 아니었고, 도대체 어떻게 여왕 후보로 선정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욕을 먹는 것도 아니었거든. 이대로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다가 결국 졸업과동시에 한적한 동네에 있는 수녀원이나 들어가 편하게 삶을 마감하고 싶었음.

그리고 아마 허니가 이대로 졸업을 했다면 그 바람대로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었음.


“…인질이 된 여왕 후보생을 구하는 것을 1순위로 둔다!“


갑작스럽게 아카데미에 처들어 온 악마 하나가 수업을 땡땡이 치던 허니를 인질로 잡지만 않았다면 말이야.

젠장할. 설마 유모는 이걸 알고 허니가 아카데미에 오는 것을 반대했나? 조금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허니는 욕을 씹었음.





2.


언젠가 수업 시간 때 들었던 교수님의 설명이 허니의 머릿속에 떠올랐음.

인간과 악마는 언제나 사이가 좋지 않았고 전쟁을 반복했다. 지금은 조약을 맺고 휴전으로 어설프게나마 평화를 유지 중이다. 특히 아카데미 바로 옆에 여왕의 궁이 위치해 있으므로 감히 악마들이 간 크게 처들어와 공격을 할 수 없다.

시험을 위해 외웠던 구절이었음. 허니는 그 구절을 다시 떠올리며 교과서와 교수님들의 말이 죄다 거짓부렁이라고 생각했음.

못 들어오기는 뭘 못 들어와. 저녁도 아닌 벌건 대낮에 악마임을 숨기지도 않고 급습해서는 자신을 납치했는데. 허니는어이가 없어져서 헛웃음이 나왔음.


“날 왜 납치했어?”


허니의 질문에 정면만을 응시하던 악마의 시선이 허니에게 고정되었음.

곱슬머리에 얇은 골격. 그리고 허니와 마주한 푸른 눈은 시리기까지 했음. 도대체 이 악마가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납치했는지 허니는 알 도리가 없었음. 그리고 어차피 당장 아카데미로 돌아가지도 못 하는 거 그냥 질문이나 하자는 마음에흘러나온 말이었음.

멀리서 들려오던 허니를 찾아헤매는 아카데미 사람들의 말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은지 벌써 조금 지났음. 점이 되어 멀어지던 성 모양의 아카데미 또한 보이지 않았음. 대신 하염없이 풀밭을 걸으며 허니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작게 의문했음. 아마 마계가 아닐까.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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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아프셔.“
”…효자 났네 아주.“


악마의 대답에 허니는 비꼬듯이 대답했음.


악마에게 있어 여왕의 피는 만병통치약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던 전설이나 다름 없는 말이었음. 어찌나 유명한 말인지 인간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말이었지. 


허니도 아카데미에 처음 와서 그 말을 들었을 때 크게 웃었던 기억이 있었음. 나름 허니에게 겁을 준다며 선배들이 허니에게 했던 말이었지만 허니는 그 말을 믿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었음.


아니 근데 그 말을 믿는 사람이 여기 진짜로 존재하네…? 담담하게 허니를 앞에 세우고 따라오는 곱슬머리의 악마를 보자하니 허니는 조금 어이가 없었음.


“여왕의 피가 만병통치약이라는 거, 다 헛소리인 거 알지?”
“…”
“거기다 난 아직 여왕도 못 됐어. 아마 될 일도 없을걸? 잡아올 거면 메이엔을 데려오지 그랬어. 걔가 가장 유력한 후보인데.”


담담하게 이어지는 허니의 말에도 악마는 대답하지 않았음. 너 지금 고작 소문에 완전 속은거야. 따위의 말을 해줘도 미동 하나 없던 악마였음.


“넌 순위가 몇 번 쯤인데?“


악마가 다시 입을 열었음. 아무래도 허니가 여왕을 되지 못 할 것이라는 말에 반응한 것 같았음. 옳다구나. 허니는 그런 악마의 질문에 빠르게 대답했음.


”다섯 번째.”
“…”
“내 앞에 넷이나 더 있어. 그 넷이 어느 날 다 죽어버리지 않는 이상 불가능이지.”
“젠장. 약효가 떨어지겠네.”


악마가 작게 욕을 했음. 아니, 여왕의 피가 만병통치약이라는 것부터가 잘못 된 정보라니까? 허니가 말해도 악마는 듣지않았음. 

어쩌면 듣고 싶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음. 악마는 더 이상 허니의 말을 듣지 않았음. 딱히 대답을 해주지도 않았고, 그저다시 멈췄던 걸음을 옮길 뿐이었음.





3.


과연 아카데미에서 나를 구하러 올까? 악마에게 납치 당한지 사흘 째 밤이 되던 날, 허니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음.

어쩌면 구하러 오지 않을 수도 있었음. 악마에게 언급했듯 허니는 고작 다섯 번째 순위였으니까. 만약 허니 앞의 네 명이 멀쩡하다면 아카데미는 굳이 힘을 들여 허니를 데려 올 필요가 없었음.

하다 못 해 허니가 어디 유명한 가문의 여식이라면 모를까. 그랬다면 허니의 집안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허니를 구해오라며 노발대발 했겠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허니는 유모 손에 큰 고아였음.

악마에게 납치 된 후의 며칠은 그야말로 기묘한 며칠이었음. 악마는 허니를 극진히 대접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대하지도 않았음.

밥을 먹을 시간이면 끼니를 떼울만한 무언가를 가져다주었고 새벽에 허니가 추워하면 제 겉옷을 벗어주었음.

무슨 악마가 이래. 악마를 보며 허니는 그런 생각을 했음. 교과서에서 본 악마들은 하나같이 악랄하고 제 이득을 위해서라면 물, 불 가리지 않는다고 봤는데. 이 악마는 어째서인지 허니가 읽었던 설명들과 달랐음.

아니지, 어쩌면 지금 이 행동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음. 어찌됐든 이 악마에게 있어서 허니는 귀중한 약재였으니까. 최상의 상태로 가져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인지도 몰랐음.

그래도 뭔가 인간적인 악마의 행동에 허니는 마음이 놓였는지도 모르겠음. 그렇지 않고서야 나무 기둥에 기대 쉬던 도중, 악마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임.


“만약에 내 피가 효과가 없으면, 날 죽일거야?”


순수한 궁금증이었음. 아마 죽이겠지? 고생 고생해서 데려갔더니 효과가 없다하면 당연히 죽이겠지. 허니는 그런 생각을했음.

허니의 질문에 감겨있던 악마의 눈이 서서히 떠졌음. 처음 마주했을 때 시리다고 생각했던 푸른 눈이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음.


”말했지만 그거 다 거짓말이라니까? 아무 효과도 없어. 그냥 피야.“


허니가 다시 입을 열어 변명했음. 자신은 한 번도 거짓을 고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만 같았음.

허니는 제 힘으로 악마에게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았음. 아카데미에서 대충 보아도 그는 꽤나 실력자였거든. 그러니까 허니가 선택한 것은 설득이었음.

잠시 침묵을 지키던 악마는 이내 입을 열었음.


”만약 그러면 그냥 풀어줄게.“
“…”
“널 다시 인간계에도 데려다줄게.”


그 대답에 허니는 다시 한 번 생각했음.

하여튼 이상한 악마였음. 피도 눈물도 없다고 배운 악마였지만 그는 인간적이게도 제 아버지를 걱정했고 원수나 다름없는 허니를 살려주겠다고 말 뿐이지만 약속을 하고 있었음.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무슨 바람인지는 모르겠으나 허니는 이내 악마의 이름이 궁금해졌음.


“너, 이름이 뭐야?”


악마는 잠시 침묵을 지켰지만 곧 눈을 맞춰오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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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 티모시 샬라메.”


꽤나 인간같은 이름이잖아. 아마 허니의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았음. 


"내 이름은 허니 비야."


어쩌면 그래서 허니는 자신의 이름을 악마에게 알려 준 것 일지도 몰랐음. 그가 자신과 같은 인간같아 보여서.





4.


서로의 통성명을 했지만 둘 중 그 누구도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이는 없었음. 악마, 그러니까 티모시는 허니를 야, 또는 너 정도로 불렀고 허니 또한 티모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호칭으로 불렀음.

그래, 겨우 이름 하나 텄다고 관계에 얼마나 큰 변화가 있겠음. 어쨌든 허니는 인간이었고 티모시는 악마였는데 두 종족 사이에는 몇 백 년에 걸친 전쟁의 역사가 있었음. 물론 허니가 악마에 대해 배운 것은 고작 3년 전, 그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후 였지만 책에서 보았던 그 혐오와 공포의 존재를 직접 마주하니 그 공포의 크기는 남달랐음.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된 정도로 사이가 한 순간에 좋아졌다면 애초에 인간과 악마 사이의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임.

심지어 티모시는 납치범이었고 허니는 그 피해자였는데 둘 사이가 고작 작은 통성명으로 사이가 개선된다고 하면 그건 둘 중 하나가 머리가 이상해졌다는 증거가 아닐까? 허니는 그렇게 생각했음.



나흘 째 걸으려니 허니의 발이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음. 아카데미 복장 규정 중 하나인 로퍼는 하루 종일 걷기에 전혀 좋은 선택이 아니었음. 거기다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드레스 형식의 교복은 걷기 위해 딱히 도움을 주지 않았음.


“쉬다 가자.”


그냥 신발을 버리고 맨발로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쯤, 티모시의 말이 들려왔음. 그리고 허니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풀밭에 아무렇게나 앉고서는 신고 있던 신발을 벗었지.

아니나 다를까 허니의 발에는 잔뜩 물집이 잡혀 있었음. 심지어 어느 물집은 이미 터져버렸고 뒷꿈치는 까져 피가 나고 있었음. 에라이. 허니의 입에서 작게 불만이 튀어나왔음.


“너 악마면서 마법 못 써?”


허니가 티모시에게 짜증을 냈음. 이제 티모시와 나흘 째 같이 지내다 보니 그가 자신도 모르게 편해진 것이 아닐까, 알 수 없는 객기가 튀어나오기 시작했음. 그에게 납치 되었던 첫 날이었다면 절대 할 수 없었을 반항이었음.

아니 진짜 마법 못 쓰냐고. 허니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음. 모르긴 몰라도 지금까지 허니는 티모시가 꽤나 고위 악마일 것이라고 생각했음. 그렇지 않고서야 아카데미에 혈혈단신 혼자 오지 않았을 것임.

아무리 허니가 아카데미를 욕 해도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어중이 떠중이 악마라면 제 발로, 그것도 혼자 들어올 곳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았음. 아카데미 바로 옆이 여왕이 사는 궁인데, 어느 제정신인 악마가 오겠음? 그것도 혼자. 목숨이 아깝다면 절대 하지 않겠지. 그리고 허니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티모시는 그 미친 짓을 한 악마였음. 그러니 당연하게도 허니는 티모시가 고위 악마일 것이라고 생각했음.

그런데 그런 허니의 가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티모시는 지난 며칠 내내 마법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음. 지금 며칠 째 걷는 이 길도 그랬음. 계속 꿋꿋이 걸어나가는 티모시를 허니는 이해하지 못 했음.

물론 허니가 마법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었음. 기본적으로 인간은 성력을 썼음. 아예 사용 원리가 다르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도 차이가 있으니 악마의 마법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있을리가. 그나마 아는 것은 악마는 마법을 사용하고 고위 악마들은 그 마법을 사용한 장거리 순간이동도 사용할 수 있다고 들었음.

허니의 불만섞인 질문에 티모시는 잠시 허니를 쳐다보았음. 허니의 발은 대충 봐도 더 이상 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었음. 어쩐지 피 냄새가 난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허니의 뒷꿈치가 다 까져있었음.

하, 티모시가 작게 한숨을 쉬었음.일단 오늘은 더 이상 걷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빠를 것 같았음.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 쯤, 티모시의 시야에 작은 호수가 들어왔음.





5.


“뭐야?”
"상처라도 씻어. 안 하는 것 보다는 도움 되겠지."


건조한 티모시의 명령에도 허니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음. 상처를 깨끗한 물에 씻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미 상처 투성이인 발을 물에 집어넣으면 얼마나 아플지 대충 상상이 갔기 때문임.

망설이는 듯한 허니의 행동에 티모시는 미간에 조금 힘을 주었음. 하여튼 손이 많이 가는 인간이었음. 내가 날 탓하지 누굴 탓 해. 그런 생각도 들었음. 차라리 허니의 말대로 메이엔인가 하는 애를 데려왔으면 조금 편했을지도 모르겠음. 가장 유력한 여왕 후보생이라면 이보다 손이 조금 덜 가지 않을까. 차마 입 밖으로는 내뱉지 않을 불평을 속으로 씹으면서도 티모시는 이내 신발을 벗고 제 바짓단을 조금 걷었음.


"야, 뭐 해!"
"뭐 하긴, 너 도와주지."


하여튼 공주님이 따로 없네. 티모시가 그런 생각을 하며 호수에 발을 담그고 들어갔음. 그리고 이내 허니의 발로 손을 뻗어 천천히 물 속에 넣기 시작했음.


“너 기다리다가 하루 다 지나갈 것 같아서.”


건조하게 티모시가 다시 말했음.

허니는 대답할 수 없었음. 부끄럽고 자시고를 떠나서 상처에 물이 닿으니 고통이 밀려왔기 때문임. 그나마 차가운 물이라 퉁퉁 부은 발에 도움이 되겠지만 고통이 상당했음.

허니의 발을 씻기는 티모시의 손은 쓸데없이 섬세했음. 거 참 악마 안 같네… 허니는 다시 한 번 그런 생각을 했음.

티모시는 아무 말도 없이 허니의 발을 씻겼음. 한 쪽을 다 씻기고, 남은 발 하나마저도 다 씻기더니 그는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냐는 듯 호수를 빠져나왔음.


“좀 낫지?”


그리고 허니의 상태까지 확인하는 티모시를 보며 허니는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음.

악마면서 왜이리 쓸데없이 섬세하지?





6.


하염없이 걷는 것이 엿새가 되었을 때, 허니는 티모시에 대한 생각을 고쳐먹었음.

그래, 얘 어쩌면 진짜 하찮은 악마일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음. 그렇지 않고서야 엿새 내내 마법 한 번을 안 쓰고 계속 걷기만 하는 게 말이 되지 않았음.

그냥 내가 제압해볼까? 허니는 잠시 고민했음. 물론 허니의 성력이 대단한 것은 없었음. 여왕 후보생이니만큼 타고난 성력의 양은 많았지만 그것을 다루는 데에는 아주 잼병이었음.

오죽하면 허니와 친했던 선생 중 하나는 그냥 죽을 위기가 다가오면 성력만 죽어라 내뿜으라는 소리까지 할 정도였음.

다루는 요령이라고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불량 여왕 후보생이었지만 만약 허니 앞에 있는 이 악마, 그러니까 티모시가 정말로 별 볼 일 없는 악마라면 충분히 허니 혼자서도 제압할 수도 있을 것이었음.

허니는 잠시 고민했음. 여전히 허니의 발은 엉망이었음. 그러니 달리기를 할 수 없으니 만약 티모시를 제압할 것이라면 한 번에 제대로 해야함을 알고 있었음.

기회는 한 번 뿐. 허니는 작게 심호흡을 했음.


“야.”


그리고 허니의 부름에 티모시가 뒤를 돌자마자 허니는 제 손을 뻗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력을 내뿜었음.





7.


결론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허니는 얼마 도망가지 못 하고 바로 티모시에게 잡혔음.

허니가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력을 사용했는데도 티모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허니를 쫓아왔거든.

겉보기에는 다친 곳도 없어 보였음. 젠장. 허니가 작게 욕을 씹었음. 그래, 고위 악마가 아니라면 아카데미까지 혼자 올 생각도 못 했겠지.

티모시의 아래에 붙잡힌 채로 허니는 다시 고민했음. 그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도망갈 수 있을까? 아주 확률이 희박했음. 그렇게 머리를 잔뜩 굴리며 허니가 다시 입을 열었음.


“난 지금 집에 가고 싶어. 마계에 가고 싶지 않아.”
“…”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내 부모님과 동생들은 내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라셨겠어.”


허니의 입에서 거짓말이 술술 흘러나왔음. 허니는 부모님의 이름은 커녕 얼굴도 몰랐고 동생이라고 부를 존재는 없었음.


“안 그래도 없는 살림에 날 아카데미까지 보내셨는데, 하루 아침에 내가 납치라니.”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거짓말들이 제 형태를 점점 갖춰갔음. 여왕 후보생은 아카데미에 필수 입학이었기 때문에 등록금을 낼 필요도 없었음. 하지만 악마인 티모시는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다고 믿었음.

티모시는 허니의 말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음. 공허한 눈에서 허니는 그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음. 그래서 허니는 입을 멈추지 않고 거짓말을 키워나갔음.

그리고 허니가 또 다른 거짓말을 내뱉으려고 할 때, 티모시의 입이 열렸음.


“미안…”
“뭐?”


뭐라고? 허니는 제 귀를 의심했음. 이 악마가 지금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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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 아버지가 정말 많이 아프셔.”


그렇게 말을 하는 티모시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음.

감정을 읽을 수 없었던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차오르는 것도 같았음.

결국 허니는 티모시의 눈물이 떨어져 제 볼을 적실 때까지 티모시가 울며 자신에게 사과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 했음.





8.


8살이라는 나이부터 아카데미를 다녔다는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허니는 고작 3년을 다녔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기본적인 것들은 어느 정도 배웠음.

쉽게 말을 하면 아카데미 첫 해에 모두가 배운다는 악마에 대한 이야기는 허니 또한 이미 어느 정도 배웠다는 이야기였음.

라면 받침으로 쓰면 딱 좋게 생긴 두께의 교과서에서 본 악마는 항상 나쁜 이야기만 가득했음. 생긴 것은 인간과 다름없이 생겼어도 그 내면은 악으로 가득하다. 달콤한 말로 사람을 꾀어내고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밀어버리는 것이 악마다. 분명 허니는 그렇게 배웠음.

자만으로 가득 찬 악마는 남을 이해하는 마음따위 없었고 제 잘난 맛에 살았으며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음.

분명 허니가 읽은 악마는 그랬는데,

어째서인지 허니가 교과서가 아닌 실제로 마주한 첫 악마는 허니에게 몇 번이고 사과를 했고 심지어 피도 눈물도 없다는 읽었던 묘사와는 다르게 허니가 흘리는 것과 다름 없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음.

허니는 티모시를 보며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지 알 수 없었음. 같은 인간이라면 깊은 고민 없이 위로의 말을 건넸겠지만 과연 이 악마에게도 인간과 같이 대해도 되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임.


"야..."


그래서 조금 고민을 하던 허니는 일단 티모시를 어색하게 불렀음.

그런 허니의 부름에 티모시는 대답하지 않았음. 대신 눈물을 흘리며 시선을 끌어올려 허니를 마주했을 뿐임.

그 눈빛에 무언가 있는 것이 분명했음. 허니는 그렇게 생각했음.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티모시의 눈가를 손가락으로 훑을리가 없었음.

티모시의 눈물을 몇 번 더 닦아낸 허니가 아무 말 없자 이번에는 티모시가 천천히 손을 뻗어 허니의 뒷목을 감쌌음.


"미안해... 정말 미안해."


티모시는 몇 번 더 사과했음.

그리고 허니는 이내 뒷목에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을 느끼며 쏟아지는 잠을 무시할 수 없어 결국 천천히 눈을 감았음.

아득한 심연으로 빠지는 정신 끝에 티모시의 사과가 몇 번 더 들렸던 것도 같음.





9.


허니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시야에 들어온 것은 알 수 없는 천장이었음.

뭐지. 허니가 눈을 몇 번 깜빡이며 자신의 상황을 알아채려 노력했음.

그러니까 마지막 기억은 티모시가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음. 몇 번이고 허니에게 사과를 하다가 이내 뒷목에 따스한 느낌이 들면서 정신이 아득해졌음.

망할 놈. 마법 못 쓰는 척 하더니. 아무리 좋게 생각하더라도 티모시가 허니에게 쓴 것은 마법이 맞았음.

잔뜩 굳은 몸을 일으켜 방 안을 살펴보았음. 많은 가구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널찍한 방과 부드러운 침구를 보고 허니는 여기가 돈 좀 있는 사람의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음.


"일어났네."


침대에서 이제 슬슬 몸을 일으켜볼까 싶을 때 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티모시였음.

허니가 그를 처음 마주했을 때 입고 있던 그 누더기같던 옷은 어디로 버렸는지 대충 봐도 고급진 옷을 티모시는 입고 있었음.


"여기가 어디야?"
"우리 집."


담백한 티모시의 대답에 허니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음.

망할 놈. 진짜 고위 악마가 맞았던 것이 분명했음. 대충 봐도 고급진 가구가 가득 찬 이곳을 자신의 집이라 칭하다니. 허니는 입술을 씹었음. 상황이 생각보다 허니가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았음.

아무래도 허니가 예상하는 것보다 이곳을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음.





10.


"왕자님, 폐하께서 만나보시겠다고 하십니다."


문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허니가 흠칫 놀랐음.

반대로 티모시는 익숙한 듯 한숨을 한 번 푹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허니에게 눈짓했음.

허니는 제 귀를 의심했음. 지금 저 문 밖에 악마가 뭐라고 말한거지? 왕자? 누가? 제 앞에 이 별 거 없어보이는 악마를?

허니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티모시를 바라보았지만 티모시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음.

그저 문 건너의 사용인으로 추정되는 인영에게 알겠다고 건조하게 대답을 하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음. 그리고는 여전히 침대 위에 앉아있는 허니를 빤히 쳐다보았음.


"가자."


그렇게 말을 하는 티모시는 허니에게 잡고 일어나라는 듯, 손을 내밀었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악마였음. 적어도 허니에게 있어서는 그랬음. 악마같다고 느끼면서 인간 같았고 동시에 또 악마같았음. 근데 말도 안 되는 신분을 가진 악마.

자꾸만 시끄러워지는 머릿속을 최대한 비우려 노력했음.

그래, 뭐가 됐든 일단 자신은 저 악마의 소굴에 있었음. 피가 정말로 효과가 없다면 인간계로 다시 데려다주겠다고 했으니. 그 말을 믿을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었지만 지금은 그 말이라도 믿어야 했음.

허니는 잠시의 고민 끝에 결국 티모시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음.





11.


악마의 아버지. 그러니까 마왕은 왕이라는 남자는 그 이름이 주는 위엄에 걸맞지 않게 침대에 누워 겨우 힘들게 숨을 내쉬고 있었음.

굳이 아카데미에서의 수업을 듣지 않더라도, 마왕이라는 이름은 누구에게나 공포를 심어주기 좋은 이름이었음. 그렇지만 지금 허니의 눈 앞에 있는 남자는 제대로 먹지도 마시시도 못 한 듯, 잔뜩 말라있었고 힘겨운 숨을 내쉬었음.


"티모시냐..."
"예 아버지."
"그 인간 아이는 무어냐."


단어 사이 사이에 숨을 몰아쉬는 것이, 간단한 대화조차 힘들어보이는 마왕 앞에서, 티모시는 여전히 그에게 예우를 갖추고 있었음.


"여왕 후보생입니다."


티모시의 대답에 마왕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음. 아마 그 또한 티모시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한 듯 했음.

그래, 그렇게 유명한, 또 동시에 모두가 그저 헛소문인지 뻔히 아는 이야기를 마왕이 모를리가. 허니 또한 마왕 앞이 아니었다면 같이 웃었겠지만 차마 그 앞에서는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음.


"...그렇게도 두려우냐?"


이제는 허니는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 흘러나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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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지요. 그것도 아주 많이요."


떨리는 목소리로 티모시가 대답했음. 여전히 허니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렴풋이 예상만 할 뿐이었음. 티모시가 두려워 하는 것, 그리고 이 자리에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데려 온 만병통치약이라는 여왕의 피를 그나마 가깝게 제공할 수 있는 여왕 후보생.

대충이었지만 아마, 마왕이 죽는 것이 두렵냐고 묻는 것이 아닐까 고민했음.


"그래, 내가 죽으면 네 형들이 널 가만두지 않겠지."
"..."
"난 그래도 네가 왕위를 이었으면 한다."


마왕의 말에도 티모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음.

그런 티모시를 바라보던 마왕은 이내 되었다며 방을 빠져나가는 명 만을 허니와 티모시에게 할 뿐이었음.





12.


막상 여기까지 왔지만 허니가 하는 것은 없었음. 작은 상처라도 내어 피를 마왕에게 줄 것이라고 예상한 것과 다르게 마왕과의 만남은 아주 간결했고 짧았음.

그리고 같이 들어갔던 티모시만이 우울한 표정으로 돌아오는 결과를 가지고 왔음.

티모시의 옆에서 조용히 걷던 허니는 어떤 말을 꺼내야 할 지 몰랐음. 아니, 사실 무슨 말을 꺼내는 것이 맞는지도 확실하지 않았음. 어차피 허니는 제 3자였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어렴풋이 티모시와 마왕의 대화만을 들었을 때는, 티모시 위에 형들이 있음에도 마왕은 티모시를 다음 대의 마왕으로 만들려는 것 같았음. 그리고 티모시는 그 탓에 형들의 분노를 살까 두려운 것 같았음.

여기도 경쟁이구만. 허니는 그런 생각이 들었음. 인간계와 다르게 세습 제도를 따라가는 악마들은 뭐가 다를까 했더니, 그냥 하나는 대놓고 경쟁을 붙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뒤에서 몰래 경쟁을 하는 것 뿐, 크게 다를 것은 없었음.


"난, 마왕이 되기 싫어."


허니의 앞에 걸어가다가 뚝 멈춘 티모시가 갑자기 말을 꺼냈음. 꽉 쥔 주먹은 분노인지, 아니면 혼란스러움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탓에 떨리고 있었음.


"난... 마왕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도 않을거야."


티모시가 다시 한 번 강조하듯 말했음. 마치 누군가가, 어쩌면 그의 형들이 제발 들어줬으면 하는 그의 외침인지도 모르겠음.

그래서였는지, 허니는 작게 티모시에게 대답했음.


"나도야."
"..."
"난 여왕 후보생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어. 시골에서 유모랑 둘이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왕 후보생이라고 아카데미로 끌려왔어. 그러더니 이제부터 다른 여왕 후보생이랑 싸우래."


이어지는 허니의 말에 티모시가 놀란 듯 쳐다보았음. 담담한 말투로 허니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이었음. 분명 여기로 끌려오기 직전에 티모시에게 부모님이네 뭐네 하는 거짓말을 늘어놓았던 것은 까마득하게 잊은 것 같았음.


"그래서 적당히 하다가 나는 졸업이나 하는 게 목표야."


허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음.


"그 이후에는 수녀원이나 들어가서 기도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허니가 하던 말을 멈추고 혀로 한 번 입술을 축였음. 지금 내뱉은 말 중 허니가 거짓을 고하는 것은 없었음. 졸업 후에 수녀원이나 들어가서 대충 시간을 보내는 것. 누구에게도, 심지어 같은 아카데미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허니의 진심이었음.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음. 이런 말을 대놓고 하고 다니면 아카데미에서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알 수 없었음. 불이익이 없다고 하더라도 괜히 열심히 여왕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다른 이들에게 이런 말이나 해서 미움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음.

그런데 왜인지 티모시 앞에서는 그 말이 잘도 튀어나왔음. 허니 또한 이유는 알 수 없었음. 티모시가 아카데미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을 알아서 그런 것일까.

그래, 어쩌면 티모시의 상황이 허니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서일지도 몰랐음. 그냥, 그에게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임.


"너도 같이 갈래?"





13.


허니의 말에 티모시는 그저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음.

그 웃음이 비웃음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음. 그저 동화와도 같은 소리를 하는 여동생을 못 말린다는 듯이 쳐다 본 티모시는 허니의 머리를 한 번 헝클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음.


"조만간 인간계로 다시 데려다줄게."
"..."
"약속은 약속이니까."


그리고 티모시는 다시 앞서 걸어나갔음.

뭔가 기분이 이상했음. 분명 인간계로 돌아가는 것은 허니가 원하던 것이었음. 심지어 여기 오기 직전까지도 티모시에게서 도망치려 했던 허니였으니까.

지금도 그 마음은 같았음. 여기에 남고 싶냐고 물어보면 전혀 아니었음. 그렇지만 뭔가 기분이 이상했음. 티모시를 여기에 남겨두는 게 맞는건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음.


"내가 만약에 가면,"
"..."
"그럼 너는 어떻게 돼?"


그래서 그 질문을 입에서 뱉어냈는지도 모름. 이 악마가 걱정이 되냐고? 그럴리가. 그래봤자 악마는 악마임. 그것도 그냥 악마도 아닌 왕자라고 불리는 악마. 아무리 시궁창같은 인생이라도 허니가 있을 시궁창보다 때깔이 좋을 시궁창이었을 것임.

그럼에도 궁금했음. 두렵다고 했잖아. 추정되는 이유만 있을 뿐,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허니의 질문에 티모시가 건조한 눈으로 허니를 마주보았음. 어쩐지 그 눈빛이 체념을 한 것만 같은 얼굴이었음.


"글쎄."


티모시는 끝까지 허니에게 대답을 해주지 않았음.





14.


악마는 제 말을 지켰음. 정말로 허니를 인간계까지 데려다 줬다는 말임.

심지어 그냥 데려다 준 것도 아니었고 아카데미의 앞까지. 제 목숨을 위험해가면서까지. 


"미안했어."


그리고 그 간단한 인사와 함께 티모시와 허니는 인사를 했음.

그 말에 허니는 딱히 티모시에게 답하지 않았음. 어떤 답을 내놔야 할 지도 몰랐기 때문임. 괜찮다고 하기에는 겪은 일이 많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옳다고 다그치기에는 티모시가 불쌍했지. 그래서 결국 허니가 택한 것은 그저 고개만 작게 끄덕이는 것 뿐이었음.

또한 그에 대한 대답보다는 다른 말을 했음.


"마음 바뀌면 찾아와."
"..."
"기도나 하면서 남은 생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언젠가 말했던 수녀원에 대한 말을 다시 꺼내는 허니를 보며 티모시는 다시 한 번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음.


"악마의 기도를 신이 받아주겠냐."
"어라, 네가 남자인 건 문제가 안 되는거야?"
"그건 너무 당연해서 말도 안 꺼낸거야."
"야, 괜찮아. 네가 나보다 예뻐서 수녀복 입으면 다들 여자라고 생각할거야."


꽤나 진지하게 헛소리를 하는 허니를 보며 티모시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둘 사이에 정적이 내려 앉았다. 이제 마지막이다. 둘 중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둘을 위해서라도 이제 만나면 안 된다. 악마와 인간. 그것도 그냥 인간이 아닌 여왕 후보생. 


"안녕."


결국 그렇게 담백한 인사가 마지막이었음.





15.


납치된 후, 당연히 죽었을 줄 알았던 허니가 멀쩡한 얼굴로 살아돌아오자, 아카데미는 그야말로 뒤집어졌음.

악마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돌아온 허니 비.

허니가 겪지도 않았던 일들까지 이야기가 만들어지며 허니는 아카데미 내에서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버렸음.

그리고 그 탓일까, 악마에게 납치까지 당해 온갖 일을 겪은 허니 비가 불쌍했는지 아카데미 측에서는 어떻게든 허니에게 그에 대한 보상을 해주려 했음.

문제는 허니가 원하는 방식의 보상이 아니었다는 것임. 보상이고 뭐고, 아니면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유모랑 살고 있던 집으로나 보내주면 좋을 것 같은데 그것은 허니에게 허락되지 않았음.

대신 여왕 후보였던 허니에게 주어진 것은 가산점이었음.

하루 아침에 허니는 여왕 후보 순위 5위에서 갑자기 1위가 되어버렸다는 말임.

혹시라도 현 여왕이 죽게 되면 허니가 다음 여왕이었음.

제발 만수무강하세요 여왕님. 허니가 그런 소원을 마음 속으로 열심히 빌었음.





16.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줄 알았던 티모시를 허니가 다시 만난 것은 몇 개월 후였음.

그 동안에 허니는 여전히 여왕 후보 1순위를 유지하고 있었음.

순위에서 내려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봤지만 별로 도움은 되지 않았음. 오히려 허니가 아카데미 내에서 사고를 칠 때마다 악마에게 납치까지 당했던 애가 얼마나 고생했겠냐며 허니를 이해해주는 소리나 들려왔지.

망할. 그럴 때마다 허니가 입술을 씹었음.

그리고 그 날도 허니가 검술 수업 시간에 평소보다 힘을 더 써, 같은 수업을 듣던 동급생을 다치게 만든 날이었음.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동급생이 다쳤는데, 오히려 여왕 후보에게 필요한 검술 실력이라며 가산점을 더 주는 선생들을 보며 허니는 짜증이 잔뜩 밀려온 상태였음.

그리고 방에 돌아왔는데, 익숙한 모습이 창틀에 앉아있던 것이었음.

도둑인가, 하는 마음에 허니가 제 손에 쥐고 있던 칼을 들고 상대방을 제압했음. 

상대방은 놀라울 정도로 쉽게 제압됐음. 오히려 반항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듯.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자했나, 싶은 마음이 들 때 쯤, 창틀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달빛에 허니는 티모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음.

티모시의 얼굴을 보자마자 허니는 자신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뱉을 수는 없었음. 어쩐지 티모시의 얼굴이 어두웠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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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
"..."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그리고 티모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너무도 무거웠음.





17.


"어떻게 할 거야?"


그 질문이 허니의 입에서 가장 먼저 흘러나왔음.

이제부터 모든 것은 티모시의 선택에 달렸음. 허니와 티모시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앞으로 둘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같은 것들까지도.

도망칠까? 같이 도망칠래? 그 말이 허니의 목구멍에 자꾸만 걸려있었음. 하지만 입 밖으로 절대로 흘러나오지는 않았음.


"왕위를... 내가 이으려고..."


어쩌면 허니는 어렴풋이 알았는지도 모름. 티모시의 입에서 저 말이 흘러나올 것을 말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차마 티모시에게 같이 도망가자는 말을 하지 못 할리가 없었음.


"그러니까 너라도 도망 가 허니."
"..."
"혹시라도 우리가 전쟁을 하게 되면..."


티모시가 말을 아꼈음.

아마 그가 허니에게 도망가라고 말을 하는 이유는 뻔했음. 아직도 허니가 5순위에 해당하는 그 여왕 후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음. 


"티모시. 나 이제 1순위야."
"뭐?"
"지금 당장 여왕님이 돌아가시면... 내가 다음 여왕이야."


담담하게 현실을 알려주는 허니의 목소리에 티모시의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음.










예전에 쓴 거 ㅅㅈㅈㅇ
옛날 만화 소녀king이라는 거에서 나온 망사커플 보고 그거 비슷한 거 보고싶어서 쓴 거임

티모시너붕붕
2024.05.21 11:49
ㅇㅇ
모바일
둘이 결혼하면 되잖아 ㅠㅠㅠㅠㅠㅠ
[Code: 0d56]
2024.05.21 14: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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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둘이 결혼해ㅠㅠㅠㅠ 제발 🙏🙏🙏
[Code: 17cb]
2024.05.21 12:3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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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결혼화친이라는 것이 있습죠 나리
[Code: 04ad]
2024.05.21 14:2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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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2 화환이랑 부케는 제가 준비할깝쇼
[Code: 1737]
2024.05.21 15:29
ㅇㅇ
333333 꽃뿌리는 건 제가 하겠슴다
[Code: cb07]
2024.05.21 14: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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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업은 사랑이야 센세 헉헉
[Code: b4dc]
2024.05.21 18: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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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ㅠ결혼하세요
[Code: cc48]
2024.05.21 22:42
ㅇㅇ
허어어어어거 대존잼 대작이야....미쳤어...
[Code: e613]
2024.05.22 00:4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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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 결혼 찬성일세
[Code: 4115]
2024.05.26 20:27
ㅇㅇ
개존잼....사랑해
[Code: b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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