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
끝 페이지
2022.07.14 13:22
ㅇㅇ
정성추 박고갑니다
읽으면서 떠오른 내용 추가하자면 이탈리아, 플랑드르 시기에 유화가 성행했던건 해상무역으로 축적했던 부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임
조각상이나 벽화보다는 운반하기 쉬운 회화작품이 발달하고
물에 강한 소재인 유화가 개발되고, 유화를 캔버스에 그린 이유도 돛으로 쓰던 천을 사용해서 그린 그림이였음
그리고 뒤러 시기쯤에 자화상이 많은 이유는 예술가들의 지위가 엄청나게 상승했기 때문임. 뒤러 자화상보면 화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소위’얼빡샷’으로, 자기 스스로를 예수님처럼 묘사해서 엄청 파격적인 그림이였음. 자신감의 표현이니까
읽으면서 떠오른 내용 추가하자면 이탈리아, 플랑드르 시기에 유화가 성행했던건 해상무역으로 축적했던 부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임
조각상이나 벽화보다는 운반하기 쉬운 회화작품이 발달하고
물에 강한 소재인 유화가 개발되고, 유화를 캔버스에 그린 이유도 돛으로 쓰던 천을 사용해서 그린 그림이였음
그리고 뒤러 시기쯤에 자화상이 많은 이유는 예술가들의 지위가 엄청나게 상승했기 때문임. 뒤러 자화상보면 화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소위’얼빡샷’으로, 자기 스스로를 예수님처럼 묘사해서 엄청 파격적인 그림이였음. 자신감의 표현이니까
[Code: e3c9]
2022.07.14 13:28
ㅇㅇ
화가들끼리 경쟁을 시작하고, 서명도 이때쯤에 하기 시작했음. 그전에는 화가=그냥 기술자였는데 처음으로 그림그리는 아카데미가 처음으로 생기고, 지식인 취급을 받기 시작함
그 상징으로 지금 화가들 보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빵모자잖아? 그런 모자는 마치 우리나라 삿갓처럼 지식인의 상징이거든
그 빵모자를 쓰고다니던 시기가 이 시기임
미켈란젤로 피에타 보면 성모마리아가 두른 띠에 ‘피렌체의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만들었다’라고 서명을 박아놨는데
사람들이 광장에서 피에타를 보고 다른사람 작품으로 착각하고 수군거리는걸 본 미켈란젤로가 빡쳐서 박제한거라고함
그 상징으로 지금 화가들 보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빵모자잖아? 그런 모자는 마치 우리나라 삿갓처럼 지식인의 상징이거든
그 빵모자를 쓰고다니던 시기가 이 시기임
미켈란젤로 피에타 보면 성모마리아가 두른 띠에 ‘피렌체의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만들었다’라고 서명을 박아놨는데
사람들이 광장에서 피에타를 보고 다른사람 작품으로 착각하고 수군거리는걸 본 미켈란젤로가 빡쳐서 박제한거라고함
[Code: e3c9]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