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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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0 00:44
태섭이 버릇이 하나 있는데, 손을 가만두지 못하는 거임. 심심할 때마다 공 튀기거나 펜 돌리는 식으로 손장난 자주 치겠지. 평소엔 손 쓸 일 많은 농구부라 티 안나도, 손 비는 잠깐을 못견뎌서 농구공 안쥐고 있을 때면 하다 못해 페트병이라도 쥐고 놀고 있음. 둘 다 주전이라 훈련 일정 겹치고 서로 코드도 잘 맞아서 농구부 복귀 후 태섭이랑 거의 한 몸처럼 붙어지내다보니, 하루 일과 대부분을 공유하게 된 대만이가 지인 중 태섭이 이런 습관 가장 먼저 알아챌 것 같음.
풀타임으로 경기 뛰고 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서 정대만 포카리조차 제힘으로 못따고 시들거리고 있는데, 그 옆에서 그새 회복한 건지 송태섭 이새끼는 또 다 마신 에너지드링크캔 가지고 장난치고 있음.
“너 그거, 재밌어서 하는거야?”
자긴 체력 딸려 죽겠는데 멀쩡해보이는 태섭이에 약간 질려하며 물어보면 태섭이 캔 휘리릭 돌리던 손 그대로 이거?하듯이 대만이 가까이로 들어보임. 여러 번 보긴했어도 볼 때마다 신기하긴 신기해서 대만이 또 멍하니 태섭이 손재간에 눈길 뺏긴다.
“별로요. 그냥 손 심심해서.”
농구공을 그렇게 튀겨대고도 손이 심심하다니... 손 못써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나 싶음.
“...안 어렵냐?”
태섭이 손 안에서 현란하게 돌아다니는 캔에 시선 고정하면서 물어보는데, 힘들어서 숨 헐떡거리면서도 사탕 본 애 마냥 홀린 듯이 자기 손 끝 따라다니는 대만이 눈동자 가만히 지켜보다가 태섭이 픽 웃을 듯.
“글쎄... 형한텐 어려우려나?”
“이게...”
살짝 발끈하는 대만이 보면서 장난스럽게 큭큭거린 태섭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함.
“손으로 하는 건 다 잘해서, 어떤지 모르겠는데요.”
“뭐냐 그 재수없는 발언은...”
“아니ㅋㅋㅋㅋㅋㅋ 진짜로.”
해보든가요. 하면서 고개 까딱하는데, 정대만 오기로 손뻗은 주제에 캔 받아든 팔 벌벌 떨리고 제대로 들지도 못함. 대만이 부들거리면서 손 내밀 때부터 실실 웃던 송태섭 그거 보고 개쪼개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하는데요.”
“와, 씨... 하 웃지마라.”
“ㅋㅋㅋ형은 진짜 안되겠다. 뭐 좀 주물러줘요?”
측은지심 생겨서 대답듣기도 전에 형 팔뚝 잡아서 주물러주는 태섭이. 땀도 안 말랐는데 덥썩 잡아다가 주물럭대는 바람에 대만이 기겁하고 팔 빼내려했으나 송태섭 손아귀 힘도 좋아서 몇 번 안주물렀는데도 헉 소리나게 시원한 바람에 그만하라는 말 쏙 들어갈 거 같다. 땀범벅인 상태로 몸싸움하는 게 일상이면서 시합만 끝났다하면 새삼스럽게 깔끔을 떨어대는 도련님 꺼림칙해하던 얼굴 슬슬 풀리면서 주물러주는 손길 좋은 거 표정으로 다 티남. 하여단 까탈은. 송태섭 피식 웃으면서 좀 더 본격적으로 콱콱 주물러서 근육풀어준다.
“야.... 너 진짜... 손 잘 쓰긴 하네. 인정.”
“ㅋㅋㅋㅋ맘에 들어요?”
“어.... 근데 그만해라. 힘들잖아.”
“캔도 뺏겼는데, 이거라도 대신 만져야죠 뭐.”
대만이 좋긴 좋은데 슬슬 미안해져서 팔 빼려하니까 태섭이가 잡은 손에 지그시 힘 줘서 막음. 괜찮다 해도 송태섭 대만이 말 귓등으로도 안들으며 캔 뺏어간 책임지라고 손 안놔준다. 그럼 이거 다시 가져가라고 하니까 필요없대. 조그만 물음표 띄운 대만이 얼굴보면서 태섭이 자기 안마 좋아한다고 잘하니까 맡겨보라고 하는데 계속 걱정하는 듯 하니까 아예 대만이 쪽엔 눈길도 안주고 팔목 쥔 손만 움직이면서 나머지 한 손으론 대화차단하듯 폰할 거 같다. 기분 좋은 거랑 별개로 거의 뭐 스트레스볼 대용 취급인데 나쁜 느낌도 아니고 해서 대만이도 그만 포기하고 체력 회복하는 동안 팔 한 쪽 대준 채 멍하니 붙잡혀있겠지. 주물러지면서 정대만 속으로 얘 진짜 손 쓰는거 잘하네... 생각하는데 태섭이가 놔줄 때쯤엔 한참 쪼물락거린 덕에 근육 다 풀려서 극락임. 대만이 팔에 태섭이 지문 묻어나올 정도로 주물러대서 아주 말랑하고 뜨끈뜨끈해져 있겠지. 피로 회복 직빵이라 생각보다 더 즐겨버린 대만이 좀 양심에 찔려서 손 안아프냐고 물어봐도 아무렇지 않은데요. 하고 어깨 으쓱한 뒤 씻으러 가버리는 송태섭. 마사지받고 피가 잘 돌아서 그런지 평소보다 빠르게 회복한 대만이도 얼마 안 있어 샤워장가려고 일어나 자리 뜨는 것으로 그 날의 작은 해프닝은 마무리됨.
-
“형. 좀 만져봐도 돼요?”
미무리.. 된 줄 알았는데.... 정대만 맹하게 뜬 큰 눈만 껌뻑거리고 있지. 별 다른 부정없는 그 반응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건지 송태섭 불쑥 다가온 손이 대만이 팔뚝 위로 올라옴. 지난 주와 똑같이 한 주의 마지막 훈련으로 실전과 다를 바 없는 풀타임 연습경기를 뛴 참이고, 때문에 완전히 녹초가 된 대만은 벤치에 무너진 채로 헐떡이고 있었음. 그 곁으로 슬쩍 다가와 앉은 태섭이 건네온 말이 저런 종류가 아니었다면 솔직히 귀에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을 거란 말임. 근데....., 대만이 숨 넘어가는 와중에도 만져봐도 되겠냐는 태섭이 말이 이상하게 들려서 계속 머리에 맴돌아. 별 뜻 아닌거 알면서도... 그러다 끈적한 피부 위로 뜨겁고 거칠한 손바닥이 닿아오는 순간 반사적으로 움찔하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뭔가 놀란 티내면 안 될 것 같아서 황급히 입술 꼭 물고 고개 숙인다.
“아파요?”
“아, 아니...”
“그럴 일 없을 것 같긴 한데, 아프면 말해줘요.”
그러곤 다시 마사지에 집중하는 송태섭. 얘 또 이러네.... 아무리 만질 게 없다 해도;;... 자기 만족으로 한다기엔 막 손가는 대로 만지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도 꽤나 정성을 다해 근육 풀어줘서 당황스러움이 배가 되는 중임. 대만이만 괜히 심란해져서 눈 도르륵 굴리고 있는데 애써봤자 옆에 앉은 태섭이 의중이 짐작조차 안감. 뭔가 민망해져서 차마 빤히 보지도 못하고 어쩌다 한 번씩 곁눈질로 훔쳐보면 남의 팔 만지작거리고 있는 주제에 태섭이는 내내 평온한 얼굴이겠지.
“너 나한테 뭐 잘 못했냐...?”
“‘내’가 ‘형’한테?”
말이나 되냐는 듯한 얼굴로 코웃음친 태섭이 순식간에 근육 다 풀려 말랑해진 대만이 한 쪽 팔 놓아주겠지. 자연스럽게 다른 쪽 팔 내놓으라는 듯 펼쳐보인 손에 정대만 너무 황당해짐. 그치만 달라니까 순순히 주긴 함. 그럼 또 태섭이 미간 살짝 좁혀가며 집중해서 양 손으로 콱콱 주물러줌. 뭔 전문 자격증 있는 것 마냥 개잘하는게 더 어이없고....
“이게 좋아...?”
아무리봐도 남 좋은 일 같은데 이러는 게 너한테도 좋은 거 맞냐는 긴긴 의미를 함축한 짧은 물음이 정대만다워서 송태섭 집중하다 말고 푸핫 웃음.
“네. 좋은데요.”
“..왜?”
대만이 살짝 얼타서 물으면 태섭이 그제야 피식피식 작게 웃던 얼굴 들어 시선 맞춰온다.
“손 쓰는거 좋아한다 했잖아요. 형은 근육도 잘 뭉쳐서 보람있어.”
근육이.... 잘 뭉치긴 하지 내가... 납득할락 말락하는 표정이 웃겨서 태섭이 내친김에 잡고 있던 대만이 팔뚝 눈높이까지 들어올려 보여줌.
“이거 봐. 사이즈도 딱이야.”
적당히 손에 착 감기는 부피감이 실제로도 매우 흡족했음. 마음에 든 물건을 자랑하는 것 마냥 눈 앞에 들이밀자 한층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대만이 자기 팔뚝 내려다봄.
“그러냐....”
이제는 이해하기를 포기한 대만이 혼란만 가중된 채로 대충 고개 끄덕거리자 형 좀 놀아준 태섭이 픽 웃고는 다시 편하게 손 고쳐잡고 마사지 이어 함. 이게 뭐라고 그새 입도 꾹 다물고 몰두하기 시작한 태섭이 꽤 진지하게 즐기는 것처럼 보여서 대만이도 저번처럼 얌전해짐. 대화가 끊기자 농구공 튀기는 소리와 발소리 가득한 분주한 체육관 한 구석에서 태섭이랑 대만이 앉은 벤치 주변만 고요하고 평화롭겠지. 단순하게 보면 체력 남아도는 성격 좋은 후배가 낡고 지친 선배 안마해주는 제법 바람직한 상황이란 생각이 미치자 대만이도 조금쯤 편하게 힘빼고 앉아 협조해줌.
“됐다. 싫진 않았죠?”
어느새 대만의 양 팔을 완벽하게 풀어놓은 태섭이 만족한 듯한 얼굴로 씩 웃음. 그러고는 대답도 안 듣고 벤치에 걸처뒀던 수건들어 한 쪽 어깨에 척 둘러매더니 샤워실 쪽으로 훌쩍 사라진다. 분명 힘쓴 건 송태섭인데 개운해보이는 것도 송태섭이라.. 할 일 다했다는 듯 미련없는 뒷모습에 대만이만 좀 얼빠져 있겠지. 송태섭의 별 요상한 취미를 알아버렸어.....
그리고 이런 일이 몇 번 더 반복되고 나서는 정대만 어느순간 자연스럽게 송태섭 전용 스트레스볼이 되어있겠지. 대만이도 이게 태섭이 버릇의 일환이라는 걸 파악한 뒤부터는 덥썩 덥썩 잡아대도 가만히 대주고 있을 듯. 버릇이라는데 뭐 어떡하겠음. 객관적으로 보면 좀 이상한 상황인 거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대만이 어쩐지 거부하고 싶진 않을 거임. 대부분 근육 풀어준다는 핑계로 팔뚝이나 어깨 많이 만지작대는데, 말이 마사지지 하도 자주 주물럭거려서 더 풀어줄 근육도 없을 지경임. 송태섭 이자식 얼마나 만져대는지 뭉칠 틈이나 줘야 말이지... 그럼에도 둘이 붙어있을 때마다 태섭이 손은 여지없이 대만이 몸 어딘가에 올라가 있을 거임. 태섭이가 거리낌없이 턱턱 손 올릴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받아주면서 대만이 한편으로 스킨십이 지나치게 친밀하다는 자각은 애써 미뤄두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해버리면 불편해질 거 같고, 불편해지면... 그만하라고 해야 겠지. 그게 맞는 건데...
종아리를 주무르느라 숙인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대만이 몰아쉬는 숨 사이에 티안나는 한숨을 섞었음. 복잡해지려는 기분이 싫었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불편하다는 반증 아닌가 싶은데도 어쩐지 그만두게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 이상했음. 느릿하게 살결을 쓸어내리는 나긋한 손길이 대만을 한층 긴장하게 만들었어.
“형. 아파요?”
“....왜?”
“힘 주길래. 뭐야. 왜 긴장하는데요.”
힐끔 대만을 올려다 보며 웃은 태섭이 힘 빼라는 의미로 손바닥으로 종아리 뒷쪽을 톡톡 가볍게 두드렸음. 의식적으로 힘을 풀어낸 채 다리를 대주고 있는 대만의 머리속은 아까부터 줄곧 뒤숭숭했음. 왜 이렇게까지 지극정성인 건지 모를 태섭의 안마를 받고 있자니 아무 생각 없어야 할 머리속이 점점 뒤엉켜갈 거임. 좋아서하는 거라더니.... 이 정도면 농구선수가 아니라 안마사를 해야할 수준 아냐? 아님 나한테 왜 잘해주는데... 왜왜왜... 송태섭 진짜 나한테 왜이러냐고.... 얘는 이런 걸 좋아서 해줄 수 있는건가, 아무한테나. ...아무한테나 해줄 수 있나 이걸? 이게...??
“너 다른사람한테도 이래?”
“예...?”
불쑥 입밖으로 물음이 튀어나갔음. 자각할 새도 없었으니 막을 수도 없었음. 종아리를 가볍게 주무르던 손이 뚝 멈추고 나서야 자기가 무슨 말을 뱉은 건지 정확히 알게 된 대만은 오히려 속이 다 시원한 기분. 필요한 질문을 떠올리기까지 너무 오래 고민하느라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는데, 순식간에 명쾌해졌겠지.
“다른 사람도 이렇게 만지고 다니냐고.”
대만이 의자를 짚고 있던 양 손을 내려 태섭의 얼굴 답싹 감싸쥐었음. 그대로 들어올려 시선을 맞추고 진위를 가리듯 빤히 들여다보았지. 두 번째 질문은 처음보다 더 확실했기 때문에, 바보같은 표정으로 굳어버린 태섭의 얼굴이 대만의 큰 손 안에서 점점 새빨갛게 익어가는 게 보이겠지.
“뭔, 아니, 무슨... 무슨 뜻이에요?”
“...무슨 뜻이겠냐.”
여즉 종아리를 쥐고 있던 태섭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음. 평안했던 숨소리가 조금쯤 흐트러진 것도 같았어. 태섭이 애써 호흡을 가다듬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둘 모두 눈치챈 순간 사위의 공기가 확 무거워졌음.
“..안 그래요. 형, ...선배한테만 이러고 싶으니까.”
농담하는 기색 없이 진지한 답변에 맥박이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어. 깊어진 태섭의 눈빛을 들여다보며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꼴깍 삼킨 대만이 성급하게 말을 이었음. 둘에겐 낯선 분위기였지만 이런 순간이 싫지 않았지. 평소처럼 깨어지기 전에 끝을 보고 싶었음.
“날, 좋아해서?”
“.....네.”
순순히 대답한 태섭이 더 붉어질 곳도 없을 것 같던 얼굴을 좀 더 빨갛게 물들였음. 이마까지 불긋불긋해져서 곧 터질 것 같은 모습에 대만도 덩달아 심장이 쿵쾅거렸지. 같는 마음이라는 뜻일 테니까. 대만이 홀린 듯이 태섭에게 시선을 붙박고는 숨을 쉬어야한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로 벅차 멈춰있는 사이 태섭이 먼저 시선을 피했어. 다리를 붙들고 있던 손을 옮겨 대만의 손등 위로 머뭇머뭇 겹쳐잡은 태섭이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얽어 대만의 손을 떼어내곤, 그제야 맥이 풀려 고개를 아래로 떨궜지. 바람빠진 풍선처럼 대만의 무릎 위로 쪼그라든 태섭의 드러난 뒷목 또한 붉었음. 솔직하지 못한 후배의 솔직한 몸이 귀여워서 대만이 푸흐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어버렸어. 그 소리에 숙인 뒷통수가 덩달아 피식 웃는 것이 느껴졌음.
"....좋아해요. 티 안날 줄 알았는데...”
“들켜서 쪽팔리냐?”
목을 가다듬은 태섭이 다시 한 번 마음을 건넸음. 여전히 붉었지만 용기내어 시선을 마주해오는 태섭이 좋았지. 민망한지 작게 덧붙이는 말에는 장난스럽게 씩 웃어보였어. 대만의 시원시원한 미소가 언제나처럼 태섭의 가슴을 뛰게 했음. 참지 못한 손길과 숨기지 못한 마음 모두 순전히 제 욕심이었는데, 알아채준 대만이 숨도 못쉴만큼 좋았어. 기꺼운 발각이었지.
“좀... 좋은 거 같기도 하고.”
홀린 듯한 심정이었지만, 싫지 않았을 거야. 조금 얼떨떨했지만 한 차례 폭풍우가 지나가고 난 자리에는 오로지 설렘뿐이겠지. 쑥스러워 하면서도 진심으로 기분좋게 웃는 태섭에게 대만은 좋아한다는 대답 대신 작게 입을 맞췄어. 그리고는 알게 되겠지. 송태섭 이 새끼는 손 말고 혀도 잘 쓴다는 사실을.
풀타임으로 경기 뛰고 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서 정대만 포카리조차 제힘으로 못따고 시들거리고 있는데, 그 옆에서 그새 회복한 건지 송태섭 이새끼는 또 다 마신 에너지드링크캔 가지고 장난치고 있음.
“너 그거, 재밌어서 하는거야?”
자긴 체력 딸려 죽겠는데 멀쩡해보이는 태섭이에 약간 질려하며 물어보면 태섭이 캔 휘리릭 돌리던 손 그대로 이거?하듯이 대만이 가까이로 들어보임. 여러 번 보긴했어도 볼 때마다 신기하긴 신기해서 대만이 또 멍하니 태섭이 손재간에 눈길 뺏긴다.
“별로요. 그냥 손 심심해서.”
농구공을 그렇게 튀겨대고도 손이 심심하다니... 손 못써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나 싶음.
“...안 어렵냐?”
태섭이 손 안에서 현란하게 돌아다니는 캔에 시선 고정하면서 물어보는데, 힘들어서 숨 헐떡거리면서도 사탕 본 애 마냥 홀린 듯이 자기 손 끝 따라다니는 대만이 눈동자 가만히 지켜보다가 태섭이 픽 웃을 듯.
“글쎄... 형한텐 어려우려나?”
“이게...”
살짝 발끈하는 대만이 보면서 장난스럽게 큭큭거린 태섭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함.
“손으로 하는 건 다 잘해서, 어떤지 모르겠는데요.”
“뭐냐 그 재수없는 발언은...”
“아니ㅋㅋㅋㅋㅋㅋ 진짜로.”
해보든가요. 하면서 고개 까딱하는데, 정대만 오기로 손뻗은 주제에 캔 받아든 팔 벌벌 떨리고 제대로 들지도 못함. 대만이 부들거리면서 손 내밀 때부터 실실 웃던 송태섭 그거 보고 개쪼개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하는데요.”
“와, 씨... 하 웃지마라.”
“ㅋㅋㅋ형은 진짜 안되겠다. 뭐 좀 주물러줘요?”
측은지심 생겨서 대답듣기도 전에 형 팔뚝 잡아서 주물러주는 태섭이. 땀도 안 말랐는데 덥썩 잡아다가 주물럭대는 바람에 대만이 기겁하고 팔 빼내려했으나 송태섭 손아귀 힘도 좋아서 몇 번 안주물렀는데도 헉 소리나게 시원한 바람에 그만하라는 말 쏙 들어갈 거 같다. 땀범벅인 상태로 몸싸움하는 게 일상이면서 시합만 끝났다하면 새삼스럽게 깔끔을 떨어대는 도련님 꺼림칙해하던 얼굴 슬슬 풀리면서 주물러주는 손길 좋은 거 표정으로 다 티남. 하여단 까탈은. 송태섭 피식 웃으면서 좀 더 본격적으로 콱콱 주물러서 근육풀어준다.
“야.... 너 진짜... 손 잘 쓰긴 하네. 인정.”
“ㅋㅋㅋㅋ맘에 들어요?”
“어.... 근데 그만해라. 힘들잖아.”
“캔도 뺏겼는데, 이거라도 대신 만져야죠 뭐.”
대만이 좋긴 좋은데 슬슬 미안해져서 팔 빼려하니까 태섭이가 잡은 손에 지그시 힘 줘서 막음. 괜찮다 해도 송태섭 대만이 말 귓등으로도 안들으며 캔 뺏어간 책임지라고 손 안놔준다. 그럼 이거 다시 가져가라고 하니까 필요없대. 조그만 물음표 띄운 대만이 얼굴보면서 태섭이 자기 안마 좋아한다고 잘하니까 맡겨보라고 하는데 계속 걱정하는 듯 하니까 아예 대만이 쪽엔 눈길도 안주고 팔목 쥔 손만 움직이면서 나머지 한 손으론 대화차단하듯 폰할 거 같다. 기분 좋은 거랑 별개로 거의 뭐 스트레스볼 대용 취급인데 나쁜 느낌도 아니고 해서 대만이도 그만 포기하고 체력 회복하는 동안 팔 한 쪽 대준 채 멍하니 붙잡혀있겠지. 주물러지면서 정대만 속으로 얘 진짜 손 쓰는거 잘하네... 생각하는데 태섭이가 놔줄 때쯤엔 한참 쪼물락거린 덕에 근육 다 풀려서 극락임. 대만이 팔에 태섭이 지문 묻어나올 정도로 주물러대서 아주 말랑하고 뜨끈뜨끈해져 있겠지. 피로 회복 직빵이라 생각보다 더 즐겨버린 대만이 좀 양심에 찔려서 손 안아프냐고 물어봐도 아무렇지 않은데요. 하고 어깨 으쓱한 뒤 씻으러 가버리는 송태섭. 마사지받고 피가 잘 돌아서 그런지 평소보다 빠르게 회복한 대만이도 얼마 안 있어 샤워장가려고 일어나 자리 뜨는 것으로 그 날의 작은 해프닝은 마무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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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좀 만져봐도 돼요?”
미무리.. 된 줄 알았는데.... 정대만 맹하게 뜬 큰 눈만 껌뻑거리고 있지. 별 다른 부정없는 그 반응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건지 송태섭 불쑥 다가온 손이 대만이 팔뚝 위로 올라옴. 지난 주와 똑같이 한 주의 마지막 훈련으로 실전과 다를 바 없는 풀타임 연습경기를 뛴 참이고, 때문에 완전히 녹초가 된 대만은 벤치에 무너진 채로 헐떡이고 있었음. 그 곁으로 슬쩍 다가와 앉은 태섭이 건네온 말이 저런 종류가 아니었다면 솔직히 귀에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을 거란 말임. 근데....., 대만이 숨 넘어가는 와중에도 만져봐도 되겠냐는 태섭이 말이 이상하게 들려서 계속 머리에 맴돌아. 별 뜻 아닌거 알면서도... 그러다 끈적한 피부 위로 뜨겁고 거칠한 손바닥이 닿아오는 순간 반사적으로 움찔하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뭔가 놀란 티내면 안 될 것 같아서 황급히 입술 꼭 물고 고개 숙인다.
“아파요?”
“아, 아니...”
“그럴 일 없을 것 같긴 한데, 아프면 말해줘요.”
그러곤 다시 마사지에 집중하는 송태섭. 얘 또 이러네.... 아무리 만질 게 없다 해도;;... 자기 만족으로 한다기엔 막 손가는 대로 만지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도 꽤나 정성을 다해 근육 풀어줘서 당황스러움이 배가 되는 중임. 대만이만 괜히 심란해져서 눈 도르륵 굴리고 있는데 애써봤자 옆에 앉은 태섭이 의중이 짐작조차 안감. 뭔가 민망해져서 차마 빤히 보지도 못하고 어쩌다 한 번씩 곁눈질로 훔쳐보면 남의 팔 만지작거리고 있는 주제에 태섭이는 내내 평온한 얼굴이겠지.
“너 나한테 뭐 잘 못했냐...?”
“‘내’가 ‘형’한테?”
말이나 되냐는 듯한 얼굴로 코웃음친 태섭이 순식간에 근육 다 풀려 말랑해진 대만이 한 쪽 팔 놓아주겠지. 자연스럽게 다른 쪽 팔 내놓으라는 듯 펼쳐보인 손에 정대만 너무 황당해짐. 그치만 달라니까 순순히 주긴 함. 그럼 또 태섭이 미간 살짝 좁혀가며 집중해서 양 손으로 콱콱 주물러줌. 뭔 전문 자격증 있는 것 마냥 개잘하는게 더 어이없고....
“이게 좋아...?”
아무리봐도 남 좋은 일 같은데 이러는 게 너한테도 좋은 거 맞냐는 긴긴 의미를 함축한 짧은 물음이 정대만다워서 송태섭 집중하다 말고 푸핫 웃음.
“네. 좋은데요.”
“..왜?”
대만이 살짝 얼타서 물으면 태섭이 그제야 피식피식 작게 웃던 얼굴 들어 시선 맞춰온다.
“손 쓰는거 좋아한다 했잖아요. 형은 근육도 잘 뭉쳐서 보람있어.”
근육이.... 잘 뭉치긴 하지 내가... 납득할락 말락하는 표정이 웃겨서 태섭이 내친김에 잡고 있던 대만이 팔뚝 눈높이까지 들어올려 보여줌.
“이거 봐. 사이즈도 딱이야.”
적당히 손에 착 감기는 부피감이 실제로도 매우 흡족했음. 마음에 든 물건을 자랑하는 것 마냥 눈 앞에 들이밀자 한층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대만이 자기 팔뚝 내려다봄.
“그러냐....”
이제는 이해하기를 포기한 대만이 혼란만 가중된 채로 대충 고개 끄덕거리자 형 좀 놀아준 태섭이 픽 웃고는 다시 편하게 손 고쳐잡고 마사지 이어 함. 이게 뭐라고 그새 입도 꾹 다물고 몰두하기 시작한 태섭이 꽤 진지하게 즐기는 것처럼 보여서 대만이도 저번처럼 얌전해짐. 대화가 끊기자 농구공 튀기는 소리와 발소리 가득한 분주한 체육관 한 구석에서 태섭이랑 대만이 앉은 벤치 주변만 고요하고 평화롭겠지. 단순하게 보면 체력 남아도는 성격 좋은 후배가 낡고 지친 선배 안마해주는 제법 바람직한 상황이란 생각이 미치자 대만이도 조금쯤 편하게 힘빼고 앉아 협조해줌.
“됐다. 싫진 않았죠?”
어느새 대만의 양 팔을 완벽하게 풀어놓은 태섭이 만족한 듯한 얼굴로 씩 웃음. 그러고는 대답도 안 듣고 벤치에 걸처뒀던 수건들어 한 쪽 어깨에 척 둘러매더니 샤워실 쪽으로 훌쩍 사라진다. 분명 힘쓴 건 송태섭인데 개운해보이는 것도 송태섭이라.. 할 일 다했다는 듯 미련없는 뒷모습에 대만이만 좀 얼빠져 있겠지. 송태섭의 별 요상한 취미를 알아버렸어.....
그리고 이런 일이 몇 번 더 반복되고 나서는 정대만 어느순간 자연스럽게 송태섭 전용 스트레스볼이 되어있겠지. 대만이도 이게 태섭이 버릇의 일환이라는 걸 파악한 뒤부터는 덥썩 덥썩 잡아대도 가만히 대주고 있을 듯. 버릇이라는데 뭐 어떡하겠음. 객관적으로 보면 좀 이상한 상황인 거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대만이 어쩐지 거부하고 싶진 않을 거임. 대부분 근육 풀어준다는 핑계로 팔뚝이나 어깨 많이 만지작대는데, 말이 마사지지 하도 자주 주물럭거려서 더 풀어줄 근육도 없을 지경임. 송태섭 이자식 얼마나 만져대는지 뭉칠 틈이나 줘야 말이지... 그럼에도 둘이 붙어있을 때마다 태섭이 손은 여지없이 대만이 몸 어딘가에 올라가 있을 거임. 태섭이가 거리낌없이 턱턱 손 올릴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받아주면서 대만이 한편으로 스킨십이 지나치게 친밀하다는 자각은 애써 미뤄두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해버리면 불편해질 거 같고, 불편해지면... 그만하라고 해야 겠지. 그게 맞는 건데...
종아리를 주무르느라 숙인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대만이 몰아쉬는 숨 사이에 티안나는 한숨을 섞었음. 복잡해지려는 기분이 싫었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불편하다는 반증 아닌가 싶은데도 어쩐지 그만두게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 이상했음. 느릿하게 살결을 쓸어내리는 나긋한 손길이 대만을 한층 긴장하게 만들었어.
“형. 아파요?”
“....왜?”
“힘 주길래. 뭐야. 왜 긴장하는데요.”
힐끔 대만을 올려다 보며 웃은 태섭이 힘 빼라는 의미로 손바닥으로 종아리 뒷쪽을 톡톡 가볍게 두드렸음. 의식적으로 힘을 풀어낸 채 다리를 대주고 있는 대만의 머리속은 아까부터 줄곧 뒤숭숭했음. 왜 이렇게까지 지극정성인 건지 모를 태섭의 안마를 받고 있자니 아무 생각 없어야 할 머리속이 점점 뒤엉켜갈 거임. 좋아서하는 거라더니.... 이 정도면 농구선수가 아니라 안마사를 해야할 수준 아냐? 아님 나한테 왜 잘해주는데... 왜왜왜... 송태섭 진짜 나한테 왜이러냐고.... 얘는 이런 걸 좋아서 해줄 수 있는건가, 아무한테나. ...아무한테나 해줄 수 있나 이걸? 이게...??
“너 다른사람한테도 이래?”
“예...?”
불쑥 입밖으로 물음이 튀어나갔음. 자각할 새도 없었으니 막을 수도 없었음. 종아리를 가볍게 주무르던 손이 뚝 멈추고 나서야 자기가 무슨 말을 뱉은 건지 정확히 알게 된 대만은 오히려 속이 다 시원한 기분. 필요한 질문을 떠올리기까지 너무 오래 고민하느라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는데, 순식간에 명쾌해졌겠지.
“다른 사람도 이렇게 만지고 다니냐고.”
대만이 의자를 짚고 있던 양 손을 내려 태섭의 얼굴 답싹 감싸쥐었음. 그대로 들어올려 시선을 맞추고 진위를 가리듯 빤히 들여다보았지. 두 번째 질문은 처음보다 더 확실했기 때문에, 바보같은 표정으로 굳어버린 태섭의 얼굴이 대만의 큰 손 안에서 점점 새빨갛게 익어가는 게 보이겠지.
“뭔, 아니, 무슨... 무슨 뜻이에요?”
“...무슨 뜻이겠냐.”
여즉 종아리를 쥐고 있던 태섭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음. 평안했던 숨소리가 조금쯤 흐트러진 것도 같았어. 태섭이 애써 호흡을 가다듬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둘 모두 눈치챈 순간 사위의 공기가 확 무거워졌음.
“..안 그래요. 형, ...선배한테만 이러고 싶으니까.”
농담하는 기색 없이 진지한 답변에 맥박이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어. 깊어진 태섭의 눈빛을 들여다보며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꼴깍 삼킨 대만이 성급하게 말을 이었음. 둘에겐 낯선 분위기였지만 이런 순간이 싫지 않았지. 평소처럼 깨어지기 전에 끝을 보고 싶었음.
“날, 좋아해서?”
“.....네.”
순순히 대답한 태섭이 더 붉어질 곳도 없을 것 같던 얼굴을 좀 더 빨갛게 물들였음. 이마까지 불긋불긋해져서 곧 터질 것 같은 모습에 대만도 덩달아 심장이 쿵쾅거렸지. 같는 마음이라는 뜻일 테니까. 대만이 홀린 듯이 태섭에게 시선을 붙박고는 숨을 쉬어야한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로 벅차 멈춰있는 사이 태섭이 먼저 시선을 피했어. 다리를 붙들고 있던 손을 옮겨 대만의 손등 위로 머뭇머뭇 겹쳐잡은 태섭이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얽어 대만의 손을 떼어내곤, 그제야 맥이 풀려 고개를 아래로 떨궜지. 바람빠진 풍선처럼 대만의 무릎 위로 쪼그라든 태섭의 드러난 뒷목 또한 붉었음. 솔직하지 못한 후배의 솔직한 몸이 귀여워서 대만이 푸흐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어버렸어. 그 소리에 숙인 뒷통수가 덩달아 피식 웃는 것이 느껴졌음.
"....좋아해요. 티 안날 줄 알았는데...”
“들켜서 쪽팔리냐?”
목을 가다듬은 태섭이 다시 한 번 마음을 건넸음. 여전히 붉었지만 용기내어 시선을 마주해오는 태섭이 좋았지. 민망한지 작게 덧붙이는 말에는 장난스럽게 씩 웃어보였어. 대만의 시원시원한 미소가 언제나처럼 태섭의 가슴을 뛰게 했음. 참지 못한 손길과 숨기지 못한 마음 모두 순전히 제 욕심이었는데, 알아채준 대만이 숨도 못쉴만큼 좋았어. 기꺼운 발각이었지.
“좀... 좋은 거 같기도 하고.”
홀린 듯한 심정이었지만, 싫지 않았을 거야. 조금 얼떨떨했지만 한 차례 폭풍우가 지나가고 난 자리에는 오로지 설렘뿐이겠지. 쑥스러워 하면서도 진심으로 기분좋게 웃는 태섭에게 대만은 좋아한다는 대답 대신 작게 입을 맞췄어. 그리고는 알게 되겠지. 송태섭 이 새끼는 손 말고 혀도 잘 쓴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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