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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2 22:16
1 편

엉엉 우는 샤링과 기절한 샹치를 데리고 집에 돌아온 웬우는 참담한 기분으로 밤을 샜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조차 모를 지경이었으니까.

한참 후회와 자괴감 속으로 침잠하던 웬우를 끌어낸 것은 퉁퉁 부은 눈으로 뛰어든 샤링이었어.

"아빠, 오빠가 안 일어나는데, 열이, 이마가 너무 뜨거워...."

웬우는 그 말에 벌떡 일어나 샹치를 보러갔어.

다음 순간 웬우가 정신차리자 그는 이미 잉리를 처음 만난 곳에서 샹치를 안고 잉난에게 간절히 부탁하고 있었지. 샤링도 잔뜩 운 것이 보이는 얼굴로 아빠의 옷자락을 잡고 서 있었어.

"당신 조카가 죽어가고 있어. 제발..."

잉난은 차갑게 웬우를 내려보다 조카라는 말에, 그리고 샹치와 샤링의 모습에 누그러진 눈으로 몸을 돌렸어.

"데리고 들어오시오. 탈로의 사람들은 잉리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노력할 터이니."

잉난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면서도 웬우는 자신이 탈로의 사람에게 빌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어. 탈로의 인간들이 자신을 거부하지만 않았어도 잉리는 아직 살아있을 텐데. 이들을 모두...

다시금 열등감이 등골을 기어오르고 익숙한 증오와 분노에 잠식되려던 참에 웬우의 옷자락이 당겨졌어.

"아빠, 오빠가 뭐라고 말해."

스스로는 몰랐지만 급히 샹치에게 집중하며, 웬우는 잉리가 죽은 후 처음으로 타인을 위해 감정을 제어했어.

대부분 신음으로 이루어진 웅얼거림에서 웬우가 알아들을 수 있던 얼마 되지 않는 단어는 '엄마'와 '나도'였지.

그제서야 웬우는 샹치와 샤링도 잉리의 죽음으로 웬우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상처받았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차라리 잉리와 함께 죽었기를 바랄 만큼이나.

"이쪽이오. 장로들께서 기다리고 계시오."

일시적으로 열을 내리는 탈로의 약초를 먹고 그나마 안정된 아이를 중앙에 놓고 장로들은 이것저것을 분주하게 시험해보며 아이가 깨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내려 했어.

몇 가지 약초와 구슬이 반응하고, 또 지팡이가 검게 죽고, 마침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꺼내든 진주가 푸르게 물들어 웅웅 떨리자 장로들의 표정이 심각하게 가라앉았어.

몇 명은 웬우가 경멸스럽다는 듯 노려봤지.

"이런 책을 본 적 있나?"

중간에 잠시 나갔던, 장로 중 비교적 어려보이는 중년 남자 하나가 무언가를 탁상에 세게 내려놨어.

"너보다 스무 배는 더 오래 살았을 사람에게 무슨 말버릇이지?"

"순리를 거스르고자 자식을 인어에게 팔아넘기려 한 남자에게 보일 존중은 없다."

남자의 말에 위협하듯 웬우의 팔에서 푸르게 웅웅대던 팔찌가 천천히 가라앉았어.

탁상에 놓인 책은 실제로 상당히 익숙했어. 

처음 입수한 후 언제나 그걸 지니고 다니며 잉리를 되찾는 상상을 했던 웬우는 그 둘을 비교해보려 책을 넣어뒀던 안주머니를 더듬었지만 괴상하게도 주머니는 텅 비어있었지.

"사라졌을 게야. 인어의 물건은 그래."

나이 든 여자가 느릿느릿 고개를 저었다.

"인어들의 힘은 상당히 강력해, 우리도 그 책을 일시적으로 붙들어 두는 게 다였지. 거기에 엄중한 경고를 쓰는 게 우리의 최선이었어. 그대도 분명 경고를 읽었을 터인데...?"

웬우는 할 말이 없었어. 사실 경고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그 부분에는 관심이 없었거든. 그 책을 손에 넣은 후부터 웬우는 오로지 죽은 잉리를 되살리는 데만 온 정신을 쏟았었지.

여자가 안타까운 눈으로 샹치의 이마를 쓸어주며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어.

원래 인어라는 종족은 항상 극히 적은 수의 극히 강력한 개체들로 이루어져 있어, 잦으면 백 년에 한 번, 드물 때는 몇백 년에 한 번씩 번식을 했는데, 이는 그만큼 갖춰져야 하는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었어.

이는 남녀 한 쌍의 인어가 성숙했을 때 그들의 힘을 버틸만큼 강력하고 그들을 끝까지 찾아올 만큼 절실한 사연을 지닌 존재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지.

"인어들은 그런 존재를 홀린다네. 저 골짜기에 봉인된 드웰러처럼 말이지." 

인어의 마법은 그런 이들을 이끌어 제게로 불렀어.

"자네가 그 책을 처음 건드린 순간 이미 계약이 시작되었던 게야."

"계약? 무슨 계약 말이지?"

"무슨 계약이겠어! 자네가 잉리의 아들을 팔아넘긴 계약이지!"

남자의 말은 여전히 무례했으나 웬우는 눈썹만 한 번 꿈틀거리고 여자의 말에 집중했어.

"광보의 말이 거칠지만 아주 틀린 건 아니라네."

여자는 혀를 끌끌 찼어.

"이 아이에게 그 연기를 들이마시게 했지? 그건 인간의 방식으로 치자면 청혼의 의식이라 할 수 있어."

아주 맞지는 않지만...

한숨을 쉰 여자는 설명을 재개했다.

계약을 원하는 사람과 계약의 댓가가 모두 마음에 들면 인어들이 나타나 계약의 절차를 마저 밟는 거야.

잉리의 아들이 청한 것을 인어가 나타남으로서 수락했으니 웬우가 잉리의 모습으로 걸어나온 인어를 받아들였으면 모든 절차가 끝나는 거였어.

"만일 그랬다면 우리도 도저히 방법이 없었을 거라네."

하지만 웬우가 마지막에 인어를 거절했기에 계약에 아주 작은 틈이 생겼어.

"보통 거기까지 간 계약은 깨지는 일이 없어. 아니, 단 한 번도 기록된 적이 없지."

계약이 성사되기 직전, 극에 달한 인어의 홀리는 힘과 사랑하는 사람 앞에 인간의 의지 따위 무력하니 말이야.

여자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웬우를 훑어보았어.

"...계약이 성사되면 어찌 되지?"

"이 사람이 아직도!"

욱해서 삿대질을 하려는 광보를 눈빛으로 제압하며 잉난이 설명했어. 

웬우가 계약에 미련이 남아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제 어리석음이 불러왔을 재앙을 온전히 알기 위한 질문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지.

"수컷 인어는 타종족의 개체를 데리고 가 암컷 인어를 낳게 하고 암컷 인어는 육지로 올라와 수컷 인어를 임신하오. 암컷 인어는 씨를 준 이가 죽으면 바다로 아이와 돌아가나..."

"수컷 인어의 경우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누군가 말을 이었어. 

처음보다 시선들이 많이 온화해진 것이 웬우가 자신의 의지로 계약을 멈췄다는 사실에 제법 감명받은 모양이었지.

"단 한 가지 알려진 사실이 있다면 인어들은 집착이 매우 강하다는 거요. 그들은 둘 중 하나가 죽지 않는 한 제 짝을 놓아주지 않소."

"인어를 죽이면 어떻게 되지?"

"죽일 수 있다면 죽여 보시오. 그러나 인어들은 물 밖으로 나오는 일이 극히 드물고 바다에서 그들은 신과 같다오."

웬우는 절망했어.

자신이 인어를 죽일 수 없으리라곤 생각되지 않았어. 

다만 그 인어를 꾀어내는 데 필요한 미끼가 샹치라는 것이, 그리고 단 한 번의 실수가 영원한 상실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 두려웠지. 

"그렇다면 내 아들은 이리 평생 열에 들끓다 죽어야 한단 말인가?"

실수를 저지른 것은, 인어의 거짓에 홀린 것은 나인데.

왜 그 업보를 죄 없는 아이가 치르게 하는가. 

웬우는 신이 있다면 그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어.

"아, 그게 말이지. 방법이 없지 않다네." 

아이를 내려다보던 눈이 천천히 올라와 응시하자 나이 든 여자는 순간 몸을 떨었어. 본능적인 반응이었지.

"아이의 열은 몸이 새끼를 배기 위해 바뀌고 있는 탓이니 막을 도리가 없어. 그걸 막는 순간 아이는 죽을 걸세."

"...그러면?"

"다만 아이의 빼앗긴 혼을 돌려받을 수는 있다네."

혼이 나갔다고, 혹은 빼앗겼다고도 하지. 샹치의 혼의 주인은 더 이상 샹치 자신이 아니게 된 거야.

"아직 온전히 그 인어의 소유도 아니니, 우리가 할 일은 계약을 가로채는 것이야. 자네가 그 소유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지."

웬우는 아이의 손을 꾹 쥐었어. 

아직 희망이 있었어.

"다만..."

......

적막이 흘렀어. 

다시 조금씩 따끈해지는 손을 어루만지던 웬우는 의아해 고개를 들었어. 

"다만?"

웬우는 탈로의 장로들을 돌아봤어. 모두 하나같이 웬우의 눈을 피했지.

"인어의 계약은 반려의 계약이잖나."

그 한마디로 웬우는 이들이 하지 못한 말을 눈치챘어. 

"이런 역겨운...!"

웬우는 아이를 품에 확 끌어안고 일어났어.

"이게 유일한 방법이요!"

"이게 싫다면 애초에 인어와 연관이 되지 말았어야지!"

장로들은 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너도나도 줄줄 꺼냈어.

"그 집요한 것들을 쉬이 속일 수 있다 믿었소?"

"그대의 잉리를 향한 감정도 이 의식을 위해 필요할 거요."

"아이에게 비정상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겠지."

"의식이 성공적으로 끝나도 아이는 그대 곁을 떠나선 안되오."

"바다는 근처도 가지 말아야 하고!"

"자연적인 물가도 피하시오."

점점 견딜 수 없어진 웬우가 자리를 뜨려 하자 잉난이 달래듯 말했어.

"실제로 반려가 되라는 것은 아니요. 단 하루만 버티면 모든 일은 끝나있을 거요."

마지막으로 나이 든 여자가 쐐기를 박았어.

"이나마도 인어의 힘이 가장 강해지는 보름달이 한 번 뜨면 모두 불가능한 일이라네."

정말 잉리의 아이를 죽일 텐가?

분노로 부들부들 떨던 웬우는 이를 악물고 다시 앉았어. 날카로워진 웬우는 여전히 아이를 끌어 안고 사납게 말했어.

"빨리 끝내지."



평범한 부자관계였던 게 일그러지는 거 좋아... 

웬우샹치
2021.09.12 22:17
ㅇㅇ
모바일
선개추 후정독 ㅜ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16f7]
2021.09.12 22:22
ㅇㅇ
모바일
와 존잼ㅠㅠㅠㅜㅠㅠㅠㅠㅠ
[Code: 2b64]
2021.09.12 22:36
ㅇㅇ
모바일
내 센세 오셨네ㅜㅜㅠㅠㅠㅜㅠ
[Code: b1e4]
2021.09.12 23:04
ㅇㅇ
모바일
존잼!
[Code: 9a98]
2021.09.14 01:31
ㅇㅇ
모바일
미쳤다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8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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