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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2 17:58
“받은 게 아니라 놈이 억지로 박은 거지. 나는 박힌 거고.”

조로를 데리고 나타난 샹크스가 미호크의 말을 수정해줬다. 정보 전달은 정확해야 한다면서. 이 둘은 백사장에서 공동으로 돌아온 직후였는데 개돌이는 또 보자며 쿨하게 인사한 샹크스가 사라질 때까지 한자리에서 꿈쩍도 않았다. 그런 녀석이 불쌍해져서 자꾸 돌아봤던 건 조로였고 말이다. 이때 콧노래를 부르며 앞서가던 샹크스는 공동으로 진입하는 입구에서 조로의 손목을 부드럽게 감아쥐기도 했다. 호박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잡은 손은 그대로여서 묘하게 지쳐보이던 로우가 대놓고 싫은 기색을 보이기도 했고. 그렇게 모여 앉은 뒤 샹크스가 미호크의 말을 정정하는 동안에도 조로는 옆자리의 로우를 빤히 쳐다봤다. 지금은 저녁 식사를 코앞에 둔 시간이었다.

“…그렇게 부러워?”
“어.”

씻고 나온 티가 역력한 로우를 보면서 조로는 숨기지도 않았다. 그 역시 로우가 그린비트 섬 반대편에서 미호크의 지도를 받았다는 걸 듣지 않았나. 단둘이 되면 물어볼 게 한가득이라는 시선에는 선망의 감정이 역력했다. 내심 조로가 저만 미호크와 좋은 시간 보냈다며 화내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로우는 이로써 한시름 놨다. 오랜만의 대련에 팔이 다 후들거릴지라도 말이다. 그에 반해 꼿꼿한 자세로 커피를 홀짝이던 미호크는 어디 하나 흐트러진 데가 없었으니 찻잔 드는 것도 버거워해서 다기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한 로우와 대조적이었다.

“시끄럽다, 로우야. 차는 조용히 마시는 거다.”
“나도 알아! 누가 몰라서 이래?”

흰 바탕에 금테를 두른 찻잔 손잡이에 간신히 손가락을 끼워넣은 로우가 성을 냈다. 뜨거운 물에 우려낸 국화과 꽃 하나가 나팔 모양의 찻잔에서 활짝 피어 떠다녔다. 스트레스 및 위염에 좋은 차로 먼저 씻고 나온 미호크가 직접 내온 거였다. 그러니 로우도 차를 잘 마시고 싶은데 사지가 후들거려서 쉽지 않았다. 그 원인은 맞은편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고. 여타 장검과 검신의 폭이 비슷하다 하다 요루는 대검에 속하는 무기였다. 일반 장정은 두 손으로도 간신히 들고 서있는 게 고작일 무기를 저치는 한 손으로 가뿐히 휘두르지 않던가. 거기다 미호크의 패기로 인해 영구 흑도가 돼버린 검의 강함은 산과 바다를 가를 정도라는 소문이 돌았다. 실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다고 해군 함선을 동강내는 걸 본 적 있던 로우는 소문이 사실일 거라 확신하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이러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사지가 멀쩡하겠는가. 지금도 검과 검이 부딪힐 때의 충격이 손에 고스란히 남은 듯한 감각이었으니 로우는 내일이면 근육통에 시달릴 걸 예상할 수 있었다. 때문에 미호크에게 성을 내면서도 그는 스승의 지적에 따라 조용히 찻잔을 마시려 노력했다. 그렇게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조용히 찻잔을 든 순간이었다.

“내가 먹여줄까?”
“무ㅡ! 앗 뜨거!!”

내동 지켜보던 조로는 여기서도 노력하는 로우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찻찬을 대신 들어줄까 물었는데 당황한 녀석이 찻물을 쏟았다. 아직 김이 피어오르던 찻물이 허벅지를 적시고 찻잔이 바닥을 뒹굴 때 잽싸게 일어나 수건을 가져온 건 샹크스였다.

“여긴 우리가 치울 테니까 미호랜드 네가 가서 왕자 다리부터 식혀주도록 해. 저러다 진짜 화상 입을라. 조로를 보내면 왕자가 더 곤란해질 것 같으니까 말이야.”
“하…… 그래, 그러지.”

샹크스의 미호랜드를 지적하려다 포기한 미호크가 긴 숨을 내쉴 때 맞은편에서는 로우를 일으킨 조로가 바지를 벗기네 마네 실랑이 중이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미호크는 제 훈련이 부족했나 싶어졌다.




저녁 식사는 공동 중앙에 자리한 잔디밭에서 이뤄졌다. 조로가 정신을 차린 뒤 인사차 마련된 자리였다. 톤타타 부족의 국왕 내외와 여타 식구들이 함께 자리한 저녁식사는 축제라도 벌이듯 풍요로웠는데 그 사이에서 조로는 익숙한 풀잎 모자를 쓴 소인족을 발견하기도 했다. 레오라는 이름의 소인족은 지난날 조로가 루피를 만나기 위해 궁을 나설 때 리프트 앞의 보초병을 제압하고 워커와 함께 탈출하도록 도와준 이였다. 어리바리한 워커와 달리 빠릿빠릿한 행동력을 지닌 그는 부족 내에 병장이라는 직함도 갖고 있었다. 또한 지난날 로우에게 워커를 추천한 장본인이기도 했고. 정찰부대 출신인 워커가 드레스로자 지형을 전부 꿰고 있음을 높이 샀기 때문이었다. 워커의 뛰어난 방향감각과 공간지각능력은 지하 공동에서 생활하는 톤타타족 중에서도 가히 최고였다.

“몸은 괜찮습리까, 조로랜드?”
“나야 괜찮지. 너도 좋아보여서 다행이네.”
“네, 우리들은 잘 지내고 있습리다. 모두 로우 왕자 덕분입리다. 지난번에 조로랜드가 보내준 쿠키도 맛있었고요. 워커는 궁에서 잘하고 있습리까? 실수하지는 않고요?”
“어, 기특하게도 잘하고 있어. 나도 매번 도움 받고 있으니까.”
“그렇다니 다행입리다, 조로랜드.”

천진난만한 워커와 달리 레오는 어른스러운 데가 있었다. 조로는 현재 식사 후 맨셸리 공주의 면담 요청이 있었다며 안내를 자처한 녀석을 따르던 중이었는데 당연히 함께 오려고 한 로우를 떼어놓을 때도 의젓한 모습이었다. 맨셸리 공주를 만나러 간다고 했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꺼려하던 기색임에도 길치인 조로를 걱정해 따라나서려 한 로우였다. 그런 이를 레오는 제가 귀갓길도 책임지겠다며 안심시키지 않았나. 덕분에 로우 역시 점잖게 수긍했으니 만일 워커가 봤더라면 소인족 차별이라며 방방 뛰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조로는 생각했다.

“그런데 맨셸리 공주가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뭐야?”
“공주님은 원래 오늘 만찬에 함께하고 싶으셨는데 그러지 못했으니까요.”
“그 얘기는 아까 들었어. 로우를 치료하다가 탈진했다면서? 그때 축난 몸이 아직 다 회복하지 못했다던데.”
“네, 그래서 조로랜드가 무사한지 무척 궁금해하고 계십리다.”

레오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맨셸리 공주가 기거하는 집에 다다랐다. 그곳은 저녁 만찬이 있던 잔디밭을 기점으로 호박집과 가장 먼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또한 두꺼운 나무 기둥을 파서 만든 집은 외부를 감싸는 나선형 계단과 함께 드문드문 문과 창문이 있었는데 이중 맨셸리 공주의 방은 삼분의 이쯤 되는 높이에 있었다. 이는 조로가 바닥에 앉으면 딱 눈높이가 맞는 지점이었는데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맨셸리 공주가 얼굴을 내밀고 있은 덕분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창가에 침대를 바짝 붙이고 기다리던 그녀는 발치까지 풍성하게 내려앉는 금발을 한 여성이었다. 동그란 눈과 얼굴형이 귀엽고 순한 인상이기도 했고 말이다.

“공주님,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면 위험합리다!”

풀잎 모자에 녹색 멜빵 바지 차림의 레오가 나무 아래에서 맨셸리 공주를 발견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외부 계단을 타고 오르니 분홍빛 풍성한 드레스 차림을 한 공주의 두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양문 형태로 된 창문은 유달리 커서 여차하면 창틀에 기대 몸을 쭉 빼고 있던 맨셸리 공주가 밖으로 나올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단숨에 창문 근처까지 계단을 오른 레오가 걱정을 담아 잔소리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 앞에 털썩 앉은 조로는 여전히 감색의 실크 잠옷 차림으로 역시 로우의 옷을 입은 채였고. 정신을 차린 지 이틀째라 훈련도 금지된 조로는 로우가 주는 대로 입을 뿐이었다. 평균 신장이 20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톤타타족에게 거인족이나 다름없던 인간들의 옷차림은 딱히 구분되지 않았고 말이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조로가 종일 잠옷 차림으로 다녀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맨셸리라 불러주세요.”
“롤로노아 조로라고 합니다. 덕분에 잘 쉬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우를 치료해줘서 고맙습니다.”

창가로 가까이 얼굴을 가져간 조로가 인사를 전하니 맨셸리는 순수하게 기뻐했다. 여전히 창가 근처의 계단에 있던 레오는 몸을 너무 내밀지 말라는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고 말이다. 그는 맨셸리가 조금 뒤로 물러나는 걸 보고서야 한숨을 내쉬며 후다닥 계단을 내려왔다.

“할 얘기가 있다고…….”
“아, 네! 맞아요! 이렇게 오시라 해서 죄송합니다.”
“아뇨, 로우를 치료하느라 몸이 축났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레오는 두 사람이 편히 얘기 나누라는 양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사주 경계를 하는 모양새가 두 사람 모두를 지키는 듯했는데 이는 로우에게 책임지고 데려다주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음이라. 비록 조로는 보호받는 처지가 어색했다지만 말이다. 그래서 먼저 맨셸리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는 레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대신 월하미인이 꽃을 피운 지금 조로는 빨리 얘기를 끝내고 돌아가자는 생각 뿐이었다.




젊은 왕에게 있어 톤타타족의 두번째 배신은 맨셸리 공주와 치유치유 열매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 로시난테의 거짓말도 함께. 당시 맨셸리 공주의 능력을 젊은 왕이 알았다면 로시난테는 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 마물의 근원이 어둠어둠 열매로 시작되는만큼 같은 악마의 열매인 치유치유 열매의 능력 또한 반감되므로 완치는 기대할 수 없었을 테지만 당시는 이런 것들을 전혀 몰랐다. 로시난테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정도에 그쳤을 거라는 걸 알 수 있는 것도 지금에 와서야 가능한 일이었고. 그러니 이때는 국왕 부부가 맨셸리 공주의 능력만 숨기지 않았더라면 로시난테가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마저 있었다. 다만 젊은 왕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게 로시난테의 죽음 직후라는 게 문제였을까. 그러나 첫번째 배신으로 말미암아 무관심으로 일관한 젊은 왕을 대신해 톤타타족을 보살폈던 로시난테는 맨셸리 공주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그를 도와 톤타타족의 편의를 살핀 크로커다일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로시난테를 이길 수 없던 크로커다일은 설득에 넘어갔다. 뿐이랴, 그가 죽어가는데도 입을 다뭄으로써 비밀을 지키는데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나. 모든 것은 젊은 왕의 전폭적인 믿음을 방패로 로시난테가 꾸민 일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절 지켜주기 위해서였어요.”

순진한 공주는 짓무른 눈가를 또다시 발갛게 열 올리며 슬픔을 토해냈다. 엄지손톱만 한 저 작은 얼굴에서 떨어지는 눈물 방울마다 명약에 버금가는 회복력을 지녔다니 이는 참 대단한 능력이다. 하지만 악마의 열매는 이를 먹은 이와의 상성에서 더 그 패가 좌지우지되는 물건이었다. 수술수술 열매만 하더라도 로우가 먹어서 이만큼 빛을 발한 것이지 않던가. 체력이 곧 양분인 수술수술 열매는 화타가 먹는다 한들 몸이 약하면 소용 없었고 사지 튼튼한 장정이 먹는다 한들 의학 지식을 공부하지 않으면 무소용이었다. 그러니 의학 지식 없이, 단지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어떤 부상자든 바로 일으킬 수 있는 치유치유 열매는 그 자체로 궁극의 열매랄 수 있었다. 단지 문제라면 손바닥만 한 소인족이 이것을 먹었다는 것일까. 개돌이가 두 사람을 뱉어냈을 때 체력을 한계까지 깎아먹은 로우는 저승 문턱에 한발을 걸쳐놓은 상태였다. 그런 이의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맨셸리는 몇번이나 쓰러질만큼의 눈물을 흘려야 했고. 이 여파로 지금도 자리 보전하고 누워있는 것 아니던가. 때문에 조로는 로시난테가 왜 후폭풍을 예상하면서도 맨셸리 공주의 능력을 비밀에 부쳤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성격이라면 맨셸리 공주를 죽여서라도 치유치유 열매를 얻으려 했을 테지.’

여기서 조로는 내심 놀랐다. 로시난테가 죽은 이유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생을 살리기 위해 로우와 수술수술 열매를 찾으러 떠난 사이 로시난테가 죽은 거라는 얘기를 듣게 됐다. 맨셸리가 로우의 과거에 대해 무심코 한 얘기는 이것이 전부였다.

“돈키호테 왕이 제 능력을 알게 된 건 동생의 장례식을 치룬 직후였어요. 그때는 마물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동생의 시체는 화장으로 마무리됐다고…….”

선 화장 후 장례는 방역 관리가 필요할 때의 조치였다. 조로는 이제야 한 나라의 왕자였던 이의 장례가 제대로 된 사인도 밝히지 않고 속행됐던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수술수술 열매를 찾느라 동생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토록 냉혹한 치라도 친동생은 얼마나 아꼈을지 가늠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젊은 왕이 가족에게 얼마나 후한지는 조로도 보아온 일 아닌가. 오늘날 그가 알라바스타에 간 것도 결국에는 로우를 위함이라는 걸 조로는 잘 알고 있었다.

“뒤늦게 제 능력을 알게 된 왕이 우리 부족을 몰살하려 했을 때 목숨을 걸고 막아준 건 크로커다일 경이었어요. 부탁을 받았다고…….”

서투르고 상처 많은 두 사람을 돌봐달라는 말은 로시난테의 유언이었다. 이를 위해 아무리 척박한 곳도 풍요의 땅으로 물들이는 톤타타족은 필요했다. 그리고 도피의 명이라면 불구덩이에도 뛰어들 베르고 등과 달리 크로커다일은 로시난테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왕에게 칼을 들이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이날의 격렬했던 싸움은 크로커다일을 곤죽으로 만들었으나 도피 역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분노한 도피는 당시 크로커다일을 죽이려 했지만 그가 내뱉은 한마디 때문이었다.

‘로시의 유언을 들은 사람은 나뿐이다. 지금 날 죽인다면 넌 평생 로시의 유언을 모른 채 살아야 할 테지.’

숨통을 끊기 직전 희미하게 속삭이던 음성은 도피의 눈빛을 돌려놨다. 대신 이지를 되찾은 눈빛과 함께 그가 긴 손가락을 뻗은 자리에는 네모난 무쇠 틀에 갇힌 톤타타족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무쇠 틀에는 집채만 한 쇠공이 사슬과 함께 연결돼 있었고 젊은 왕은 그들을 산 채로 바다 깊이 수장시킬 생각이었다. 그들의 머리카락 한올조차 영원히 떠오르지 않도록. 도피의 절망은 그만큼 깊어서 이미 죽고 없는 동생에게마저 증오를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책임지고 이 녀석을 치료해라. 그게 너희 부족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도피가 가리킨 건 그들 사이에 보호하듯 가리워진 맨셸리 공주였다.




맨셸리 공주가 부족 전원의 생사를 짊어지고 크로커다일을 살린 나이는 고작 11살이었다. 그러니 로시난테가 그녀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고 비밀을 도모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때 그녀는 9살이지 않았나. 이런 점에서 불평 한마디쯤 할 수 있었을 텐데 맨셸리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이후 크로커다일과 로우 왕자의 도움으로 저희들 살림살이도 나아졌다며 고마워할 정도였다. 그런 점에서 며칠전 로우를 살리기 위해 온종일 울다 쓰러지기를 반복할 때도 눈물이 안 나와서 애먹지는 않았다고 했으니까.

“로시난테 대군이 어렴풋이 기억나요. 절 보면 과자를 주고는 했어요. 가끔 제가 넘어져서 울기라도 하면 능력을 써서 소리를 사라지게도 해줬고요. 그때는 그 능력이 신기하고 재밌어서 울던 것도 멈출 정도였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절 보호해주려는 행동이었더라고요. 제 능력을 왕에게 들키지 않게 해주려고요. 그래서 로우 왕자를 보면 애쓰지 않아도 눈물이 나요. 로시난테 대군이 로우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했으니까요.”

로우가 꺼리는 기색을 보인 이유는 여기 있었다. 로우를 몇번 거론하기 무섭게 또 눈가가 글썽이는 것을 보니 이젠 조로도 눈치챘다. 지금 상황에서는 또 울기 시작했다가는 큰병이 나기 십상일 테니까. 더욱이 로우는 저만 보면 쓸데없이 눈물바람인 맨셸리가 불편한 게 사실이었다. 이젠 조로도 얼추 파악한지라 로우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알 만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왜 내게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얘기하니까 듣기는 했는데 로우의 개인사지 않은가. 본인도 없는 자리에서 제삼자인 자신이 들어도 되는지 조로는 의문이 들었다. 감상에 젖어있던 맨셸리는 냉정한 말 덕분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지만.

“모르다니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로님은 알아주셨으면 했어요! 그날 로우 왕자가 당신을 치료하는데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요!”
“그건 나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기회가 되면 언제든 갚아줄 생각이고. 나 몸으로 하는 건 자신 있거든.”
“세상에!!!”

씩 웃으며 하는 말에 맨셸리는 경악한 얼굴이었다. 종잇장처럼 얇은 두 팔을 창틀에 짚어 상체를 쭉 내민 그녀는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창백함으로 눈에는 분노마저 서려 있었다. 천성이 착하고 순한 톤타타족을, 그중에서도 유순한 편이던 맨셸리 공주를 이토록 화나게 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 밑에서 레오의 잔소리까지 들려왔으니 말이다.

“공주님! 너무 나오면 위험합리다! 요즘 부쩍 무거워져서 떨어지면 받는 쪽도 힘들다고요!”

단지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일지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이번은 아무리 둔한 조로라도 레오가 실수했다고 생각할 정도지 않은가. 역시나 분노로 눈가가 빨갛게 달아오른 맨셸리를 보면서 조로는 괜히 제가 다 뜨끔할 정도였다. 조로보다 더 둔감한 레오만이 빨리 몸을 집어넣으라는 잔소리를 그치지 않았을 뿐. 결국 참다 못한 맨셸리는 작은 얼굴 가득 인상을 쓰며 일침을 날렸다.

“당신이 정말 로우 왕자를 생각한다면 함부로 위험에 몸을 내던진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로우 왕자는 조로님이 본인 대신 다치는 걸 절대 바라지 않을 겁니다! 차라리 본인이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요!”
“하지만 로우는 왕자인걸. 여기서 이미 녀석은 혼자 몸이 아닌 거야.”
‘하지만 당신은 공주이십리다.’

언젠가 저를 보호하다 다친 레오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조로의 음성과 함께 레오의 모습이 덧씌워짐에 맨셸리는 더욱 인상을 쓰며 입을 꾹 다물었다. 로우의 외사랑을 눈치채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던 그녀는 괜히 제 상처만 키운 꼴이 된 모양새다. 하필 저 둘이 나란히 있어 더 밉상이던 맨셸리는 때문에 인사를 고하며 창문을 닫아버렸다.

“얘기는 끝났으니 그만 돌아가세요!”

돌변해 찬소리를 내뱉던 이에 조로가 어리둥절하니 밑에서 한숨을 푹푹 쉬는 게 들렸다.

“어휴, 죄송합리다 조로랜드. 공주님이 아직 철이 없뜹니다.”
“아니, 뭐… 상관은 없는데 그래서 나는 정말 왜 부른 거야?”
“글쎄요. 조로랜드가 건강한지 보고 싶었나 봅리다. 그럼 로우 왕자가 더 걱정하기 전에 일어날까요? 바래다 드리겠뜹니다.”
“아니, 나 혼자 갈 수…….”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왕의 대지에서 조로랜드가 헤매는 걸 다 봤습리다! 사실 워커가 바보라고 한 사람은 당신이 처음입리다!”

말이 심하네 생각했지만 레오가 워낙 정색을 하는지라 조로는 입 다물기로 했다. 지금도 레오는 조로가 저를 잘 따라오는지 수시로 뒤를 살폈으니 괜히 수틀리게 했다가는 미아방지용 실이라도 달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레오는 조로가 호박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하고서야 돌아갔다. 조로가 오기 전에는 문을 모두 닫아두고 있던 로우는 현재 창문을 개방한 상태였고. 식충식물이라 하나 모기나 바퀴벌레 같은 해충을 유인해 처리해주는 월하미인은 이곳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꽃의 아름다움과 은은한 은빛의 신비로운 광채, 무엇보다 폐부 깊숙이 침투하는 향기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형질인자의 향을 분간 못하는 조로일지라도 꽃향기는 맡을 수 있었으니 월하미인의 꽃내음은 드레스로자에서 처음으로 마음에 든 것이기도 했다.

“월하미인은 원래 지하에서만 피는 꽃인데 조로 네가 마음에 들면 궁에도 몇 송이 기르도록 할까?”
“그게 가능해?”
“워커가 있으니까 가능은 하지. 환경 조성은 좀 필요할 테지만.”

로우의 도움을 받아 씻고 나온 조로는 침대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를 다리 사이에 두고 앉은 로우는 머리를 말려주던 참이고. 조로는 지금도 로우가 준 본인의 잠옷을 군소리 없이 입었다. 그 덕에 한벌을 나눠 입은 두 사람은 로우가 하의를, 조로가 상의를 걸친 상태였다. 로우는 지금이 심히 흡족했다.

“그런데 로우 너는 저 꽃 싫다며?”
“한두 송이 정도는 괜찮겠지. ……너도 있고.”
“아냐, 무리 안 해도 돼. 생각 나면 여기 와서 봐도 되, 아. 뭐하냐?”
“아프라고 그랬다.”
“그게?”

위에서 사부작대던 수건을 세게 휘두르니 조로의 머리가 한차례 휘청했다. 이어 냉큼 나온 말에는 뾰족하니 튀어나온 가시가 있었으나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의아해진 조로가 돌아보려 했지만 역시 커다란 손에 의해 막혔다.

“여기 와서 볼 생각이면 그냥 궁에서 봐라.”
“뭐야, 그게. 어이! 수건 너무 펄럭여서 먼지 일잖아.”

조로의 말에 그제야 머리 위로 움직이는 수건이 얌전해졌다. 다시 조용해진 분위기에 먼저 말을 꺼낸 건 로우였다.

“맨셸리 공주랑 얘기는 잘했어?”
“어.”
“무슨 얘기했는지 물어봐도 돼?”
“아니, 뭐 그냥…. 네가 나 치료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해주던데?”
“사람 불러다 쓸데없는 소리를 했네.”
“쓸데없는 건 아니지. 너 고생한 건 맞으니까.”

로우의 개인사에 대해 본인 허락 없이 들은 게 조로는 괜히 미안했다. 좋은 얘기가 아니어서 더 그랬기도 하고. 때문에 거짓이 아닌 선에서 입을 여니 민망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번에는 방해받지 않고 머리를 로우의 가랑이에 기대며 턱을 드니 로우 쪽에서 흠칫했다. 그는 아직 한 눈인 조로를 보는데 익숙해지지 못했다.

“내 모습이 그렇게 어색해?”
“그럴리가! 나는 지금 네 모습도 좋다고 생각한다, 조로야!”
“흠… 그래? 뭐, 하반신은 정직한 것 같네.”
“조로야…….”

아예 로우의 허벅지에 두 팔을 걸친 조로가 장난처럼 뒤통수에 힘을 주니 로우는 귓바퀴를 붉게 물들이며 약한 소리를 냈다. 얼굴에 붙인 거즈는 그대로여도 몸에 두른 붕대는 샤워 후 완전히 벗은 상태였다. 가슴에서 복부를 가로지르는 긴 흉터가 남기는 할 테지만 몸의 상처는 얼굴보다 아무는 것도 빨랐다. 물론 로우의 처치 덕분이었다지만 말이다. 그리고 상대가 조로여서 상처에도 더욱 흥분했던 로우는 동그란 뒤통수에 꾹꾹 눌리던 고간이 반쯤 발기해 있었다. 상대를 시도 때도 없이 발기하는 인간으로 보던 조로는 이번에도 빗나가지 않는 적중률에 시원스런 미소를 지었고 말이다. 한결같은 반응 때문에라도 조로는 로우가 제 달라진 모습에 거부감을 느낀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나 오늘은 다른 것도 가능할 거 같은데. 한번 할래?”
“아ㅡ 조로야, 그게 있잖아…….”

얘는 아는 것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나대는지 모르겠다. 저를 올려다보며 천진난만하게 묻는 조로에 로우는 다섯살 차이가 이렇게 큰 건가 싶다. 그러니 미호크의 눈에 조로는 햇병아리로 보일 테고 말이다. 안 그래도 반나절 동안 호되게 훈련 받으면서 조로가 얼마나 성에 무지렁이 같은 존재인지를 피력했던 로우는 미호크로부터 숙제 아닌 숙제를 받은 뒤에야 풀려났었다. 성에 무지렁이 같은 어린 양의 잘못된 성 관념을 바로잡아주라고 말이다. 형질인자에 대한 공부를 포함해 제대로 된 성교육을 시키라는 스승의 말에 로우는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제 허벅지를 잡고 흔들던 잔디머리를 힐끗 내려다봤다. 어릴 적의 그는 절대 도피처럼 난잡한 인간은 되지 말아야지 다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한 사람한테만 난잡한 건 괜찮지 않을까?’

환자인 조로의 거스러미 일어난 핏기 잃은 입술을 보면서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란 얄팍한 자기합리화였지만.








한조각
2024.04.22 18:02
ㅇㅇ
선댓개추!!
[Code: 81ec]
2024.04.22 18:11
ㅇㅇ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로우야 결론이 왜그래!! 또 쌤한테 혼날라고!!!
[Code: 81ec]
2024.04.22 20:4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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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 자꾸 로우에게 물어보는거, 눈없어진게 로우 보기에만 괜찮으면 나도 신경안쓴다.는거같아 묘하게 좋다 그리고 로시난테가.. 고통스럽게만 죽어간거같아서 더 슬프기도함ㅠ 조금만 달랐더라면.. ㅠㅜ 그러면 .. 로우조로 못만났으려나ㅠ 그래도 로시가 너무 아프고 슬프다 본인은 아니었다고해도 끝까지 너무너무 고통스럽게 죽은거같아서ㅠ
[Code: 0e6d]
2024.04.22 23:0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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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 이 센세는 매번 붕붕이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아주 중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거기다 매번 마음을 훔쳐가 어나더를 가져올때까지 불안 초조 걱정에 밤잠을 못이루게 만든 죄까지 있습니다!!! 그러니 본 센세에게 제 지하실행을 선고해 주십쇼!!!!!!
[Code: 6f84]
2024.04.24 08:4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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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한테만난잡한거난괜찮은것같아로우야응난그래
[Code: 6443]
2024.04.24 10:4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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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뭐야 조로 ㅋㅋㅋㅋ 예상치 못한 곳에서 로시 엮인 왕궁속사정 들음 당했네 ㅋㅋㅋㅋㅋ 이렇게 또 발목잡힐 일이 늘어나고.....근데 샹크스랑 루피 얘기는 한걸까 샹크스 넘 으른이라 또다른 맛이네 ㅋㅋㅋㅋㅋ
[Code: b1e6]
2024.04.28 07: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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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센세 사랑해 너무 재밌어
[Code: 4a43]
2024.04.28 08: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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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 로시난테 얘기만 나오면 눈물나 센세ㅜㅜ 애가 저리 착해빠져서 고통받다 가가지고ㅜㅜ 도피 맘 너무 이해감...제발 돈키호테 형제 살려주세요
미호크 진짜 참스승이네 로우에게 상냥하기만한 것도 아니고 미호크 자체가 스승감이네 조로한테 필요한 거 딱 알고 가르치라하고 근데 로우는 벌 받고도 또 그러냐ㅋㅋㄱㅋ너 임마ㅋㄱㅋㅋ아는 게 없으면 가르치란 말야 세우지말고ㅋㅋㅋㅋ
[Code: e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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