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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2 00:55
사와후카 제외하고 이름 옆에 (*펄럭이름) 없는 등장인물은 전부 가상의 캐임
ㅌㅆ에 올린 적 있음ㅇㅇ

슬램덩크 우성명헌 사와후카





살다 보면 세상이 나에게 악의를 품었나 싶을 때가 있다. 미치도록 억울한데 풀리긴커녕 더 꼬이기만 하는 그런 때. 사와키타 에이지에게 그러한 때는 인생 자체였다. 고작 칠 년에 인생을 운운하자니 우스운가 싶다가도, 사와키타는 이 세상이 자신을 미워한다는 생각을 도저히 떨칠 수 없었다.

사와키타의 숙부는 어린 사와키타를 어지간히 싫어했다. 그의 말로는 사와키타의 아버지가 갓난아기였던 사와키타를 두고 홀랑 도망쳐버린 탓이라 했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숙부는 사와키타의 기억이 시작되는 때부터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 집안의 어른이 그 모양이니 자연스레 다른 가족들마저 사와키타를 무시하고 괴롭혔다. 식사가 엉망인 것은 당연하고, 옷이라고는 당장 버려야 할 넝마가 전부에 제대로 된 교육은 꿈도 꾸지 못했다. 자유가 허락된 공간은 창고로도 안 쓰이는 낡은 쪽방만이 유일했으며 함부로 벗어났다가는 모진 매질을 견뎌야 했다. 어쩌다가 방 밖으로 나가는 날에는 이유 없이 얻어맞거나 모욕당하기 일쑤였다. 집 밖 세상은 애초에 사와키타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와키타는 참았다. 죽도록 서러워도 꾹 참았다. 숙부님은 부모한테도 버림받은 나를 받아준 감사한 분이니까. 숙부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진작 길바닥에 나앉아서 험한 꼴을 당했을 거야. 굳이 떠맡지 않아도 될 짐을 떠맡았으니 숙부님이 나한테 화내는 건 당연해.

사실 어떤 이유를 들어도 숙부의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음을 알았다. 뼈저리게 알지만, 감히 반항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만약 쫓겨난다면 그때야말로 정말 갈 곳이 없으니까. 사랑해 주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이라도 집은 집이다. 사와키타에게 폭력보다 무서운 것은 외로움이었다. 혼자 남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끔찍했다. 더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 숙부의 말이라면 길바닥의 흙을 주워 먹으래도 따랐다. 어떻게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남고 싶었다.

그러나 사와키타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숙부는 예상보다 훨씬 더 사와키타를 싫어한다는― 아니, 증오한다는 것이었다.


"……."


한여름 날씨에 하얀 눈으로 뒤덮인 거대한 산을 하염없이 보던 사와키타가 고개를 돌렸다. 저를 싣고 온 차는 떠난 지 오래고, 옆에는 제 몸뚱이만 한 낡은 가방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중에 때가 되면 데리러 갈 테니 도망칠 생각 말아라. 혹시 도망치면 그때는 집에 발도 못 붙일 줄 알고.'


숙부의 엄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나중에'라니.


"후카츠가에 들어가는데 나중이 어디 있어……."


앳된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설산을 앞에 둔 탓인지, 무더운 햇빛이 쏟아지는데도 하얀 입김이 번져 나왔다. 눈을 찌르는 앞머리가 찬바람에 멋대로 휘날렸다. 은밀하지만 빠르게 몸을 휘감는 한기가 꼭 뱀 같았다. 뱀 소굴이라서 바람도 뱀처럼 부는 걸까. 사와키타는 작게 몸서리치며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하고많은 수인 중에 하필 후카츠가라니.

먼 옛날부터 수인은 각각 가문을 나눠 가주를 내세우고, 나아가 저들끼리 서열을 가렸다. 고리타분해 보여도 그들에게는 절대적인 전통이었다. 필요하다면 피를 보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현대에 들어서는 쓸데없는 힘겨루기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같은 종족 안에서조차 가문으로 서열을 정하는 걸 보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인 듯했다.

그렇다면 철저한 약육강식 판에서 후카츠가는 어떤 위치인가. 절대 불변의 뱀족 우두머리이자 수인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명문가. 제아무리 날고 긴다는 가문도 저자세를 자처하는 압도적인 무력. 힘을 과시하지 않되 기어오르는 자는 자비 없이 처리하는 냉혹함.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세를 대대로 손에 틀어쥔 것이 바로 후카츠가였다. 그러나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덕에 살벌한 위세에도 불구하고 온건파로 분류되는 편이었다.

―만, 문제는 현 후카츠가의 가주인 후카츠 카즈나리가 미쳤다는 거다. 간헐적으로 광증이 도진다고 하는데, 그에 관한 소문이 무성했다. 사람을 산 채로 잡아먹는다거나, 비밀 감옥에 가둬놓고 고문을 즐긴다거나, 혹은 성 노리개로 써먹는다거나……. 터무니없는 내용 같지만 전부 이유가 있었다.

뱀족의 대표인 만큼 대외 활동이 잦던 후카츠가가 어느 날 모든 왕래를 끊고, 심지어는 그들의 영역인 설산 자체를 봉쇄했다. 설상가상 후카츠가의 사용인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로부터 보름 정도가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활동을 재개했으나, 모든 자리에는 가주가 아닌 가주 대리가 나섰다. 설산은 여전히 출입구를 걸어 잠근 채였다. 그 많은 죽음을 해명하지도 않았다. 가주의 근황을 물어도 묵묵부답이었다. 그 와중에 후카츠가에서 일하던 사용인들이 하루아침에 모조리 쫓겨났다. 그들을 붙잡고 물어보면 가주님이 어쩌고저쩌고하며 떨기 바빴다.

결국, 후카츠 카즈나리가 광증에 시달린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온세상을 뒤덮었다. 그리고 소문이 돈 지 딱 열흘째인 오늘, 사와키타는 그 미친 뱀의 영역에 홀로 버려진 것이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와키타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숙부는 후카츠가의 소문을 듣자 기다렸다는 듯 아이를 내쫓았다. 대충 싼 짐가방에 아이를 실어 갈 운전기사를 제외하면 사람조차 붙여주지 않았다. 명목상으로는 예의범절을 가르치기 위한 수행이었으나, 죽으라고 등 떠밀었다는 것을 다들 알았다. 차에 올라타는 사와키타를 두고 구경 나온 집안 사람들이― 생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친척들까지 전부 모여 저마다 수군거렸다.


'불쌍한 것. 버러지 취급 받더니 기어코 사지로 쫓겨나는군. 어린 녀석이 안 됐어.'

'갓난쟁이 때 버림받은 걸로 기억하는데…… 아예 집안에서 저 작은 아이를 내쫓네요. 그래도 가족인데 매정하기도 하지.'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떠들기는."


가식적인 동정을 떠올린 사와키타가 다시금 중얼거렸다. 뿌연 김이 허공에 흩어졌다. 여름의 햇빛 때문에 등은 뜨거운데 설산의 냉기 때문에 코끝은 시리다. 몇 걸음만 더 나아가면 온몸이 시리겠지. 오늘처럼 제 낡아빠진 옷 쪼가리가 미덥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대로는 산을 다 오르기 전에 얼어 죽을 테다. 도망칠까.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막상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혹시 도망치면 그때는 집에 발도 못 붙일 줄 알고.'


이미 버림받은 게 분명하건만, 우습게도 집에 돌아가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숙부의 주먹만 봐도 겁먹는 주제에 다시는 그를 못 볼까 봐 무서웠다. 그야, 혼자는 외로우니까.


"뭐야, 진짜 있잖아."


울적한 마음에 코를 훌쩍이며 눈을 비비는 때였다. 별안간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화들짝 놀란 사와키타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언제 왔는지 모를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가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딱 맞아떨어지는 새카만 정장과 바짝 깎은 머리 탓인지, 인상이 몇 배는 더 매서워 보였다.


"누, 누구세요?"


사와키타가 뒤로 주춤거리며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옷 그게 전부야?"


남자는 대답 대신 엉뚱한 질문을 했다. 살짝 찌푸린 눈썹이 '정말 그 꼴로 왔다고?'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깨를 움츠린 사와키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관이네."


한숨을 푹 내쉰 남자가 대뜸 정장 재킷을 벗더니, 순식간에 아이를 둘둘 감아 안아 들었다. 사와키타는 갑자기 높아진 시야에 놀라 본능적으로 남자의 목을 끌어안았다. 뒤늦게 아차 해서 남자의 얼굴을 살피면, 그는 무심한 낯으로 바닥에 뒹구는 짐가방을 챙겼다.


"이치노쿠라 사토시."

"네, 네?"

"누구냐며."


고개를 까닥이며 말한 남자가 사와키타를 고쳐 안았다. 의외로 아이를 안는 자세가 안정적이었다. 사와키타는 조금 얼떨떨해서 남자, 이치노쿠라(*김낙수)를 쳐다봤다. 이상한 남자다. 말하는 게 뭔가 제멋대로고, 그리고, 나랑 닿아도 화를 안 내. 집안 사람들은 사와키타가 눈에 띄기만 해도 인상을 찌푸렸고, 손이 닿으면 불같이 화를 내며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혼자 걸어갈 수 있는데……."


우물쭈물하던 사와키타가 말했다.


"아서라. 네 다리로 걸으면 사흘 밤낮을 꼬박 새울걸."


듣는 척도 않은 이치노쿠라가 걸음을 뗐다. 사와키타는 더 말하지 않고 이치노쿠라의 품에 슬쩍 기댔다. 사실 몸을 감싸는 온기가 무척 기분 좋았다. 이래서 형들이 숙부님한테 자주 안겼나 봐. 소소한 깨달음을 얻으며 눈을 감았다.


"그나저나―"


얼마쯤 걸었을까, 이치노쿠라가 느긋한 투로 말문을 텄다. 반짝 눈을 뜬 사와키타가 고개를 들었다.


"너, 네 살치고 의젓하구나."


네 살? 예상치 못한 발언에 사와키타의 눈이 크게 뜨였다. 나를 네 살로 아는 거야? 네 살?


"저 일곱 살이에요!"


잠시 뒤, 순식간에 얼굴을 붉힌 사와키타가 빽 소리쳤다. 그러자 이치노쿠라는 되레 예상 못 했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당혹감 어린 두 눈이 품에 안긴 조막만 한 아이를 뚫어지게 봤다. 많이 쳐줘도 다섯 살의 몸집이었다.


"일곱 살은 좀 더…… 크지 않나?"


악의 없는 목소리가 나름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곱 살 맞아요!"


사와키타는 더욱 성이 나서 대꾸했다. 평소 작은 몸집으로 온갖 무시를 당한 탓에, 사와키타에게는 아주 예민한 문제였다. 일곱 살인데, 내 아래로 동생도 둘이나 더 있는데, 어디 가서 꼬맹이 취급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아이가 씩씩거리는 사이, 이치노쿠라는 입안의 여린 살을 살짝 깨물었다. 아, 웃음 터질 것 같아. 머리카락도 삐쭉삐쭉해서는, 분에 차 빨갛게 익은 얼굴이 꼭 불에 달군 밤송이 같았다. 이거 귀엽다고 하면 분명 화내겠지.


"미안, 미안. 인간들 나이는 영 헷갈려서."


무사히 위기를 넘긴 이치노쿠라가 아이를 어르듯 몸을 몇 번 들썩여줬다. 그에 사와키타는 거짓말처럼 화를 꺼뜨리더니, 여태 안고 있던 이치노쿠라의 목을 슬그머니 놓았다. 이치노쿠라가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눅 들어서 손을 꼼질거리던 사와키타가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이, 이치노쿠라 씨는…… 역시 후카츠가의 사람인가요?"


아, 그건가. 이유를 눈치챈 이치노쿠라가 짧은 콧소리를 냈다.


"걱정하지 마. 후카츠는 사람 잡아먹는 일에 관심 없어. 고문이나 몹쓸 짓도 안 해."

"그럼―"

"그런데 얼굴 보면 진짜 죽을 수도 있으니까 볼 생각은 하지 말고."


잠깐 안색이 밝아졌던 아이가 헉, 하며 입을 다물었다. 겁을 잔뜩 집어삼킨 커다란 눈에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이치노쿠라는 무언가 고민하더니, 오래 걸리지 않아 말했다.


"광증 같은 게 아니야. 걔가 정말 닥치는 대로 죽였으면 내가 어떻게 여기 있겠니."


맞는 말이긴 하다. 소문에 따르면 후카츠는 남은 하인들을 내쫓기 직전까지 측근 몇 명을 남기고 죄다 죽여버린 미치광이였다. 하지만 광증에 시달리는데 그런 분별력이 남아있을까? 광증은 말 그대로 광증이다. 미친 와중에 필요한 사람은 살린다니, 그건 광증이 아니라 그냥 살인을 좋아하는 고약한 성질머리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사와키타는 후카츠 카즈나리가 천성이 잔인하여 광증을 핑계 삼는다고 생각했다.


"살인을 즐기는 것도 아니니까 괜한 걱정할 필요 없어."


제 머릿속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이치노쿠라가 덤덤히 덧붙였다. 깜짝 놀란 사와키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데, 정작 사와키타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지금도 어떻게 알았냐는 얼굴이면서. 이치노쿠라는 속이 투명한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작게 키득거렸다.


"아무튼, 후카츠랑 마주치지만 않으면 여기도 나름 살만해."


이치노쿠라가 안심시켜 주듯 말했을 때, 사와키타는 돌연 어떤 의문을 느꼈다. 이치노쿠라 씨는 내가 온 걸 어떻게 알고 마중 나왔을까? 여기도 나름 살만하다는 건 사와키타의 처지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처음 저를 보자마자 '뭐야, 진짜 있잖아.'라고 했으니, 분명 제 방문을 알고 일부러 내려온 것이었다. 숙부님 성격에 미리 연락을 취하진 않았을 텐데. 얼어 죽든 후카츠에게 죽든, 제가 죽기를 바라서 내쫓은 사람이 그런 귀찮은 짓을 할 리 없었다.


"저, 이치노쿠라 씨."

"응?"


바로 대답한 이치노쿠라가 아이의 팔을 다시 제 목에 둘렀다. 그 순간, 사와키타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도 까먹고 멍하니 이치노쿠라를 올려봤다. 이 사람은 나랑 닿는 게 기분 나쁘지 않나? 아까는 어쩌다 보니까 넘어갔다지만 지금은 왜 굳이? 이상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나랑 닿는 걸 싫어했는데. 이 사람은 왜 아무렇지 않은 것 같지? 왜…… 왜 이렇게 친절하지?

사와키타가 경험한 친절이란 기껏해야 집안의 사용인 몇몇이 드문드문 보내는 동정의 시선이 전부였다. 그 누구도 아이에게 먼저 손을 뻗어주지 않았다. 거리낌 없이 아이를 안아 드는 이는 더더욱 없었다. 이치노쿠라 씨는 이상해……. 목에 두른 손을 괜스레 꼼지락거린 사와키타가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왜 그래?"


불러놓고 말이 없으니, 이치노쿠라가 아이의 볼을 쿡 찔렀다. 흠칫 놀란 사와키타가 입술을 달싹였다.


"아니, 그게……. 아, 이, 이치노쿠라 씨는 제가 여기 온 걸 알고 계셨나 해서요."


다행히 하려던 말은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약간 허둥거리며 말한 사와키타가 이치노쿠라를 힐끔 쳐다봤다. 이치노쿠라는 어느새 시선을 앞으로 돌린 채 고개를 까닥였다.


"내가 아니라 후카츠가 알았지."

"가주님이요?"

"응. 이 설산이 걔 거라서 그런가, 누가 오면 바로 알더라고."


'걔 거'? 후카츠가의 설산이 아니었나? 숙부가 저를 후카츠가로 보낼 계획을 짤 때 떠들길, 후카츠가가 이 설산에 자리 잡은 것이 못해도 수백 년 전의 일이라고 했다. 후카츠 카즈나리는 이제 이십 대 중반쯤이라고 들었는데……. 설산이 그의 것이라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았다. 물론 이치노쿠라는 단순히 현재 가주가 후카츠 카즈나리라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지만, 뭐랄까,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설산은 틀림없이 후카츠 카즈나리 개인의 소유일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물려받은 걸까? 그랬다면 소문이 돌았을 텐데.


"……그렇군요."


궁금한 점이 많았으나, 사와키타는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대신 얌전히 수긍하는 쪽을 택했다. 경험상 이런 앞뒤가 다른 문제는 파고들지 않는 편이 나았다. 멋모르고 들쑤셨다가 얻어맞은 적이 한두 번이던가. 이치노쿠라 씨는 좋은 사람이니까 미움받기 싫어. 싫어할 만한 짓은 절대 하지 말아야지. 속으로 다짐한 사와키타가 이치노쿠라의 목을 조금 더 꼭 껴안았다.

 
∞ ∞ ∞


후카츠의 집은 거의 1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내 걸음으로는 사흘 밤낮을 꼬박 새워야 한다더니, 과장이 아니었구나. 얼굴이 발갛게 얼은 사와키타가 뒤늦게 수긍했다. 설산 깊숙이 위치한 집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숙부의 집처럼 고풍스러운 전통 가옥도 아니고, 그렇다고 언젠가 버려진 잡지에서 본 성처럼 휘황찬란한 대저택도 아니었다. 지극히 현대적이고 무난한 구조의 3층짜리 주택이었다. 결코 작은 크기는 아니지만, 어찌 됐든 사와키타나 다른 사람들이 상상했던 위압감 넘치는 분위기와는 정반대였다. 오히려 숙부님네 집이 더 요란한 것 같아.


"아, 그걸 깜빡했네."


집 구경에 정신이 팔려있던 중, 이치노쿠라가 갑자기 혀를 차며 혼잣말했다. 그거? 사와키타가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집에 들어가려면 필요한 건데……."


말끝을 흐린 이치노쿠라가 눈동자를 굴렸다.


"후카츠한테 얘기 듣고 바로 나오느라 못 챙겼어."


깜빡한 것은 물건인 모양이다. 내가 들어가려면 필요한 게 뭘까? 짐은 다 챙겨왔는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면, 픽 웃은 이치노쿠라가 사와키타의 앞머리 끝자락을 가볍게 훑었다.


"별건 아니고, 네 머리카락을 잘라야 해서 그래."


간결한 설명에 사와키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늘 깔끔한 사촌들과 달리 제 머리는 전혀 정돈되지 않아 먼짓덩어리 같았다. 숙부가 아버지랑 똑같아서 재수 없다며 주방 가위로 우악스럽게 자르는 것이 전부였으니 당연했다. 게다가 반년 전에 마지막으로 잘랐지, 아마. 다시 자를 때가 되긴 했을 것이다.

사와키타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이치노쿠라는 사뭇 심각한 얼굴로 아이의 뺨을 감싸 쥐었다. 역시 많이 차가워졌다. 그걸 가져오려면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어쩌지. 다른 녀석들은 뭐 하고 있더라? 한 명은 나가서 저녁에나 돌아온다고 했고, 다른 두 명은 어제 나갔었는데…… 돌아왔나? 요즘은 다들 쥐 죽은 듯이 다녀서 통 모르겠다.


"뭐야, 이치노쿠라. 뭘 가져왔어?"


그때, 뒤에서 누군가 이치노쿠라를 불렀다. 이치노쿠라가 돌아서고, 놀란 사와키타는 이치노쿠라의 품에 바짝 붙었다. 큰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하니 선이 짙은 미남자가 성큼 다가왔다. 이치노쿠라와 마찬가지로 까만 정장 차림에 머리를 바짝 깎은 남자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사와키타를 발견하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애잖아? 물건을 가져온 줄 알았더니……."


어째서인지 무척 당혹스러워 보이는 남자가 턱을 매만졌다.


"미안해. 여기서는 너처럼 작은 애를 볼 일이 없어서 착각했다."


이내 그가 정말로 미안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사과했다. 아, 그런 거였어? 잔뜩 긴장해서 눈치를 살피던 사와키타가 눈을 크게 깜빡였다. 집에서 자신을 물건 취급하는 일이 흔해서 이상한 줄도 몰랐다. 하긴, 사람을 두고 '뭐'라거나 '가져왔다'는 표현은 안 쓰지. 민망한 마음에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래도 이런 사소한 걸로 사과하다니, 나쁜 사람은 아닌가……?


"마침 잘 만났다. 나 집에 들어가야 하니까 네가 잠깐 얘랑 같이 있어 줘."


아이의 경계가 누그러진 것을 알아챈 이치노쿠라가 말했다. 그러자 어깨를 파드득 떤 사와키타는 남자와 이치노쿠라를 번갈아 보더니, 불안한 표정으로 이치노쿠라의 옷깃을 세게 쥐었다. 어, 아직 그 정도로 안심한 건 아니야? 살짝 당황한 이치노쿠라가 사와키타의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쟤도 여기 살아. 내 친구야."

"무슨 일이길래 그래? 이 애는 누구고?"


아이를 퍽 살갑게 대하는 이치노쿠라에 남자가 고개를 까닥이며 물었다.


"우리랑 같이 살 애야."

"뭐?"

"후카츠가 거뒀어."

"뭐라고?"


폭탄 같은 대답이 연달아 돌아왔다. 남자는 벌어진 입을 겨우 다물고, 다시금 이치노쿠라가 안은 아이를 봤다. 포대기처럼 싸맨 정장 재킷 안으로 언뜻 보이는 낡은 옷, 비쩍 마른 몸, 지나치게 위축된 모습, 이치노쿠라가 든 쓸데없이 큰 가방……. 아하. 오래 걸리지 않아 상황을 얼추 짐작한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누가 누구더러 미쳤다고 하는 건지, 원. 어쩌자고 계속 이런대?"

"난들 아냐. 그런 놈들은 이해하려고 하면 안 돼."


떫은 낯으로 말한 이치노쿠라가 사와키타의 뺨에 손등을 댔다. 여전히 차갑다. 곧 해가 질 텐데 더는 지체하면 안 됐다. 후카츠한테 보고도 해야 하고. 시간을 가늠한 이치노쿠라가 남자에게 눈짓했다. 그 뜻을 알아챈 남자가 허리를 숙여 사와키타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의 얼굴에 사람 좋은 미소가 번졌다.


"소개가 늦었네. 나는 마츠모토 미노루라고 해. 이치노쿠라는 급하게 할 일이 있으니까 그동안 나랑 기다릴래?"


자신을 마츠모토 미노루(*최동오)라고 소개한 남자가 팔을 살짝 벌렸다. 이치노쿠라에게 매달리다시피 안긴 사와키타가 몸을 움찔 떨었다. 아무리 마츠모토가 이치노쿠라의 친구라고 해도 둘만 남는 건 불안했다. 다행히 이치노쿠라는 저를 싫어하지 않았지만, 마츠모토는 어떨지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바쁜 이치노쿠라를 계속 붙잡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귀찮은 애가 되고 싶지는 않아…….


"네……."


결국 고집을 굽힌 사와키타가 조그맣게 대답했다. 내키지 않는 티가 역력했다. 아이고, 그새 정이 많이 들었나 보네.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은 마츠모토가 아이를 건네받았다.


"10분이면 돼. 금방 갔다 올 테니까 마츠모토랑 놀고 있어."


시무룩한 아이의 가슴팍을 두드려준 이치노쿠라가 빠른 걸음으로 집에 들어섰다. 그의 등에 대고 손을 흔든 마츠모토가 사와키타를 내려봤다. 이치노쿠라에게는 목까지 끌어안으며 붙어있더니, 제게는 손도 안 대려는 모양이다. 갈색 눈동자는 바닥에 콕 박혀서 올라올 줄 몰랐다.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고…… 낯을 가리나?


"내가 애 안는 게 서툴러서 그렇게 있으면 떨어질지도 몰라."


속으로 가늠하던 마츠모토가 불쑥 말했다. 어깨를 움찔거린 사와키타는 맞잡은 손을 꼼질거리다가, 슬며시 마츠모토를 올려봤다.


"편하게 안아도 돼."


마츠모토는 부러 대수롭지 않게 굴며 천천히 걸음을 뗐다. 후카츠 녀석, 갑자기 웬 변덕인가 했더니…… 귀여워서 데려왔나? 걔도 옛날에는 예쁘고 귀여운 거에 약했지.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느긋하게 마당을 돌았다. 그렇게 하면, 곧 살금살금 다가온 손이 제 옷깃을 쥐는 것이 느껴졌다. 말간 눈동자가 마츠모토의 얼굴과 목 근처를 부산스럽게 오갔다.


"잘했어."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사와키타의 머리 위로 데구루루 굴렀다. 못 들을 말을 들은 것처럼 놀란 사와키타가 눈을 잘게 깜빡였다. 잘했다고? 그건 진짜, 진짜로 잘하고 예쁜 애들한테 해주는 말 아닌가?


'넌 바보잖아!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데 누가 널 예뻐해 주겠어?'

'쟤는 멍청이라서 엄청 쉬운 것도 모른대. 아빠가 뭐 하나 잘하는 꼴을 못 본다고 했어.'



사촌들이 툭하면 던지던 말들이 떠올랐다. 사와키타는 그들의 말이 다 맞다고 생각했다. 그야 혼자서는 정말 아무것도 못 했고, 배운 게 없어서 아는 것도 없었다. 칭찬받고 싶어서 뭔가를 하려고 해도 항상 분노만 샀다. 칭찬은 제 사촌들처럼 부모에게 사랑받고 똑똑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마츠모토 씨는 왜 나한테 잘했다고 한 거지? 아무것도 안 해도 칭찬을 받던가? 제가 알기로는 아니었다. 내가 뭘 잘한 걸까? 무척 궁금했지만, 혹시라도 마츠모토가 귀찮다며 칭찬을 취소할까 봐 걱정됐다. 마츠모토는 씨는 그런 성격이 아닌 것 같긴 한데……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그냥 가만히 있자. 아쉬움에 입술을 일자로 꾹 늘인 아이가 쭈뼛쭈뼛 마츠모토의 품에 기댔다. 그러자 다부진 팔이 제 몸을 더욱 단단히 감싸안았다. 이치노쿠라에게 안겼을 때처럼 따뜻했다. 묘한 어색함이 가슴 가득 차올라서, 사와키타는 괜히 발을 꼼질거렸다. 여긴 다 좋은 사람밖에 없는 것 같아. 어쩐지 얼굴에 열이 홧홧 오르는 느낌이었다.

 
∞ ∞ ∞


정확히 10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치노쿠라는 그가 말한 대로 금방 다시 돌아왔다. 손에는 의자와 보자기, 그리고 검고 네모난 무언가가 들린 채였다. 물 흐르듯 보자기를 두르고 의자에 앉은 사와키타가 이치노쿠라와 마츠모토를 올려다봤다. 검고 네모난 것은 어느새 마츠모토의 손에 넘어가 있었다.


"그게 뭐예요?"


사와키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걸로 머리를 자르는 거야."


아이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겨준 마츠모토가 자상하게 대답했다. 그렇구나. 어라, 그런데 머리는 가위로 자르는 거 아닌가?


"어?"


그런 의문이 든 찰나, 검고 네모난 것이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순식간에 사와키타의 머리를 가로질렀다. 툭 떨어지는 머리카락 뭉치에 사와키타가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그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마츠모토는 거침없이 손을 놀렸다. 더벅거리는 머리카락이 빠르게 보자기 위로 쌓이기 시작했다. 어, 어어…… 어……? 너무 놀란 나머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탄성이 도로 넘어갔다.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까지, 사와키타는 꼼짝없이 굳어 눈을 깜빡이기만 했다.


"자, 다 됐다."


얼마나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얼굴을 털어내는 수건에 퍼뜩 정신 차린 사와키타가 얼른 머리로 손을 가져갔다. 까슬까슬한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밀었어…….


"머, 머리, 머리카락이……."

"응?"

"내, 내…… 내 머리……."


충격에 질려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얼굴이 점점 구겨졌다. 큼직한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오르고, 조그만 턱에 호두 같은 주름이 콕 박혔다. 바로 다음 순간, 사와키타가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왜 그래? 왜 울어, 갑자기?"

"자를 때 아팠어? 어디 다쳤니?"


난데없는 대성통곡에 당황한 이치노쿠라가 아이를 안아 들었다. 이발기를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마츠모토가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냈다. 사와키타는 그들의 손길에 기대거나 쳐낼 생각도 못 하고 엉엉 울기 바빴다.


"머리, 머, 머리가…… 아, 아, 아빠랑, 닮, 은, 머리인데, 그런데, 그런데, 머리가……."


숙부는 사와키타가 머리를 기르면 아버지와 똑같다고 싫어했지만, 사와키타는 그렇기에 매번 엉망일지라도 제 머리를 좋아했다. 아무리 얼굴조차 모르는 부모라고 해도 닮은 점이 있다는 건 굉장히 의지가 됐다. 남몰래 아버지를 상상할 때는 괜히 머리카락을 넘겨보기도 했다. 직접 손대지 못하는 대신 마음으로나마 애지중지했던 머리카락이 한순간에 죄다 잘려 나가다니. 일곱 살 아이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이치노쿠라와 마츠모토는 아직 그러한 속사정까진 알 길이 없었다. 우느라 정신없는 아이가 하는 말 역시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갑작스러운 삭발에 엄청나게 놀랐나보다 짐작만 할 뿐이었다.


"아니야, 괜찮아. 귀여워."


이치노쿠라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우는 아이를 달래며 되는대로 말했다.


"귀엽고 잘 어울리는데, 왜. 아빠도 좋아하실 거야."

"아니, 아니야, 아니야. 엄마랑 아빠가, 나 못, 못 알아보면, 머리가 이렇게 짧으, 면…… 날, 나를 모르고……."


이러다가 숨넘어가게 생겼다. 끙 앓는 소리를 낸 이치노쿠라가 자꾸만 흘러내리는 사와키타를 고쳐 안았다. 눈물방울이 얼마나 굵은지, 이대로 눈물을 따라 작은 몸도 녹아버릴 것 같았다. 부모가 자기 자식이 머리 좀 잘랐다고 못 알아보나? 도통 이해가 안 되지만 눈도 못 뜨고 우는 아이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괜찮아, 얼굴이 잘 보이니까 엄마랑 아빠도 더 잘 알아볼 거야."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는 것에 한계가 온 마츠모토가 손수건을 꺼냈다. 그래봤자 손수건도 흠뻑 젖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귀여운데 어떻게 모르겠어? 이제 멀리서도 널 알아볼 수 있을걸."


그나마 다행히, 마츠모토의 말이 효과가 있었다. 겨우 울음소리를 멈춘 사와키타가 마츠모토를 쳐다봤다. 우느라 가빠진 호흡 탓에 작은 몸이 자꾸만 들썩거렸다. 마츠모토는 아이의 눈물을 조심히 닦으며 상태를 살폈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언제 다시 쏟아질까 불안했다.


"진, 진짜예요……? 진짜 엄마랑 아빠가 저 알아봐요?"


한참을 훌쩍거리던 사와키타가 물었다.


"물론이지. 만약 못 알아보면 우리가 도와줄게."

"어떻게 도와줘요? 저도 제 엄마 아빠 얼굴 모르는데……."


사와키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우물거렸다. 이치노쿠라가 아이의 눈가를 살살 어루만졌다.


"냄새로 알 수 있어. 너랑 같은 냄새가 나는 인간이 있으면 알려줄게."

"냄새……."


이치노쿠라의 말을 따라 한 사와키타가 입을 헤 벌렸다. 그러더니만 제 손등에 코를 묻고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이치노쿠라와 마츠모토는 그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너는 맡아도 모를 텐데."


이치노쿠라가 집중하느라 삐죽 올라간 사와키타의 눈썹을 쓸며 쿡쿡 웃었다. 그럼에도 사와키타는 열심히 손등이며 팔의 냄새를 맡았다. 먼지 냄새밖에 나지 않았으나, 제게 부모와 같은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들으니 멈출 수 없었다. 이러면 나도 나중에 엄마랑 아빠 냄새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귀여운 애가 들어왔네."


직전의 서러움도 잊고 열중한 사와키타를 흐뭇하게 보던 마츠모토가 말했다.


"잘됐지, 뭐."


이치노쿠라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놈의 우중충한 집구석에는 변화가 필요했다. 이렇게 동글동글하고 순한 변화면 두 팔 벌려 환영이지. 정작 후카츠는 그런 생각은 조금도 안 할 테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 녀석이라고 평생 처박혀 지내란 법은 없으니까. 지금쯤 햇빛 하나 안 드는 방에서 무기력함에 빠졌을 후카츠를 떠올렸다. 이 꼬마가 좋은 영향을 끼치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속으로나마 바라며, 여태 팔 안쪽에 코를 묻은 사와키타의 등을 쓸어내렸다.


"정말 저도 엄마 아빠랑 같은 냄새가 나는 거죠?"


고개를 든 사와키타가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다.


"그럼, 정말이지."


이치노쿠라는 설핏 웃으며 사와키타의 발간 콧잔등을 톡 두드렸다. 뭐, 어른들의 복잡한 사정은 차치하고, 단순히 아이가 귀여워서 마음에 드는 것도 있었다. 밤송이 같은 녀석이 이제는 밤톨 같아졌군. 나중에 또 울 수도 있으니까 볼 때마다 귀엽다고 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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