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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3 16:33
동아 지정학은 문명국 일본과 비 혹은 반문명국 조선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세워졌다. 3 · 1운동 이후 일본의 지식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개조』 1920년 6월호에 쓴 「조선의 친구에게 보내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오랫동안 조선의 예술에 대해 진정한 존경심과 친밀감을 품었다. 당신들 마음의 아름다움이나 따뜻함이, 또는 슬픔이나 하소연이 언제나 거기에 감추어져 있다. 나는 그 어떤 곳에도 조선의 예술만큼 사랑을 기다리는 예술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정을 그리워하고 사랑에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의 예술이다. 오랫동안 참혹하고 처참했던 조선의 역사는 예술에 남모르는 쓸쓸함과 슬픔을 아로새겼다. 거기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비애가 있다.” 야나기는 조선 미학을 ‘한’과 ‘비애’로 포착한다. 이 민족의 “말할 수 없는 원한과 슬픔과 동경이 얼마나 은밀하게 그 선을 타고 흘러오고 있는가? 그 민족은 올바르게도 선의 밀의密意에 마음을 표현해낸 것이다. 형태도, 색도 아닌 그것은 이 민족의 정을 호소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야나기는 “당신들과 우리의 결합은 자연 자체의 의지”라고 결론짓는다. 나는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당대 일본의 계몽 지식인의 시선에 포착된 조선의 미학과 서정은 수동성의 감각으로 요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일본 제국주의 남성에게 전이된 서양 남성의 시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이중의 오리엔탈리즘’이다. 즉 일본에 이식된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이 문명론적으로 1차 가공된 뒤 조선에 적용되고, 다시 한번 이 시선권력으로 조선의 미학과 서정을 재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야나기 무네요시는 ‘수동성’을 유지하며 조선을 동아의 식민질서에 순응시켰다.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지점은 ‘한의 정서’가 민족의 대표 정서로 등극해 근대화의 전 과정을 함께했던 것처럼, 해방 후 포스트콜로니얼 사회에 진입한 뒤에도 오리엔탈리즘은 한국의 지정학적 문화에 공고한 지식권력으로 잔존하고 있다는 점이라 하겠다.


일제강점기 이름은 장어덮밥이나 처먹었을 거 같은 쪽바리 학자가 지어낸 말임 이게 아주 유구하게 남아가지고 급식시절 학생들한테 귀 아프도록 가르치고 펄럭 대표정서로 손 꼽히는게 매우 ㅈ가틈
2024.04.23 16: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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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원래 한은 펄럭 고유정서 아님 근데 본문 말대로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보편적인 정서처럼 되버린게 참 별로임
[Code: 77d4]
2024.04.23 16: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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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뭐임??
[Code: d123]
2024.04.23 17: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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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ㅆ 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
[Code: f62b]
2024.04.23 17:3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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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ㅆ 와 상상도 못한 출처....!! ㅋㅁㅋㅁ
[Code: 414d]
2024.04.23 17:44
ㅇㅇ
원래 해학의 정서라고 하지 않냐
[Code: b486]
2024.04.23 22:2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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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 아니고 해학으로 바꿔서 가르치지 않냐?
[Code: b850]
2024.04.23 22:2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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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한의 정서 좆같은 건 공감함 문장 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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