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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8 17:20
비질란테에 유명한 호구가 있다는 소문이 르무어 전기지에 돌았다. 로버트는 딱히 소문을 신경쓰는 부류는 아니었지만, 잘못된 정보를 정정할 만큼 배짱이 좋지도 못했다. 호구는 비질란테가 아니다. 소문의 주인공인 로버트 ‘밥’ 플로이드는 스트리밍 이글의 소속이니까.

제이크 세러신, 그러니까 행맨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 들어봤지? 그러니까 없던 정이 생기길 바란다면 곁에 잘 붙어 있기라도 해야지 않겠어?“ 라고 했다. 로버트는 궤변이라 생각했다. 눈에서 멀어지고 마음에서 멀어지면 오히려 우리 둘 다 좋은거 아닌가? 맹세코 그 이상을 바란적도 없다.

로버트는 제 마음을 알아챈 그 날의 제이크를 기억한다. 눈에 살짝 서렸던 경멸과 호기심. 삐뚜름하게 걸린 미소. 하, 참지 못하고 터져나온 냉소까지. 이렇게 들킬 줄은 몰랐다. 그것도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고 절대 들키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남자한테. 인생에서 그만큼이나 절망적이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또 있기나 할까 싶었다. 한동안은 냉소적인 그 잘난 얼굴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올라 괴로울 정도였는데.

그런 주제에 없던 정이 생기길 바란다면, 이라니. 정말 궤변이 아닐 수가 없지 않나?

그러나 늘 그렇듯이 사랑에 눈이 먼 사람은 판단력이 흐려지고, 결국엔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고 마는 법이다. 로버트가 제이크의 말이 헛소리임을 머릿속으로 인지하고 있음에도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이유였다.

그리고 얼마 후 로버트는 당연하게도 후회했다. 기회가 된다면 그 날의 제 뒷통수를 후려치고 싶을만큼. 정신 차리고 냉정과 이성을 되찾으라고 소리치면서. 그리고 제이크 ‘행맨’ 세러신의 코뼈를 아작낼 것이다. 아니면 이빨을 몽땅 털어버리던가.

***

시선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저를 두고 내기라도 한 건지 테이블 위로 지폐가 왔다갔다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한 풍경이라 그 쪽은 못 본 체한 로버트가 근처에 있던 남자를 불러세웠다. 이 곳을 드나들며 몇번 마주한 얼굴이다. 로버트의 얼굴을 본 남자는 용건을 듣지도 않고 고갯짓했다. 저기. 남자가 가리킨 것은 작은 룸의 문이었고 로버트는 그게 뭘 뜻하는지 알았다.

처음 저 룸 안에서 다른 사람과 몸을 겹친 제이크를 마주했을 때, 로버트는 치미는 구역감을 이기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쳐가야 했다. 그리고 제이크가 그 문을 열고 나오기 전까지 다시 들어가지 못했다. 그 후엔 그냥,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했다. 로버트는 그 날 봤던 일에 대해 묻지 않았고 제이크도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 얘기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제이크는 그 후로도 계속 로버트를 불러냈으니까.

로버트는 행맨의 마수에 걸린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걔의 올가미가 드디어 제 목에 걸려 숨통을 조이는거라고. 벗어날 수도 없는 덫에 걸린 기분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이젠 그 때처럼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지도, 속이 죄다 뒤집어질 것 같은 구토감이 밀려오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건 또 아니어서. 언젠가부터 로버트는 제이크가 룸 안에 있다고 하면 그저 밖에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굳이 나서서 상처받을 필요는 없으니까.

꾹 닫힌 문 앞에 서있기도 뭐해서 로버트는 바 근처에 앉아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빨리 끝내던가. 아님 좀 이따 부르지. 스치는 감상에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이제 이 짓도 익숙해졌나보다. 화장실로 뛰쳐갔던게 몇 번인고, 울컥 올라오는 서러움을 꾹 참던게 몇 번인데. 지금은 속이 잠잠하다 못해 평안했다. 이런 일도 적응이 된다는 사실에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알 수가 없다.

“어이, 밥. 너 정말 행맨한테 약점이라도 잡혔어?”

앞으로 맥주잔이 슥 밀어졌다. 쳐다보니 씩 웃는 얼굴이 낯익었다. 행맨과 자주 붙어있던 비질란테 놈이다. 로버트는 제 앞으로 밀어진 맥주잔을 다시 그 앞으로 밀었다. 게의치 않고 말한다.

“니가 너무 지극정성이니까 다들 궁금해한다고. 너도 알다시피 르무어 전기지에 소문까지 돌 정도니까.”

흥미로 반짝이는 눈이다. 그 속에 담긴 불쾌한 저의를 모른척 해야하는 스스로에게 로버트는 조소했다. 딱히 녀석이 나쁜 게 아니라, 한쪽으로 기울어진 관계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폐쇄적인 집단에서는 더욱 그랬다. 당사자인 두 사람이 입을 다물고 있으니 더욱 은밀하고 저속한 방향으로 퍼져나간 것을 모르진 않는다. 모르진 않는데….

대답할 말을 고르는 사이 기다리던 문이 열렸다. 고개가 별 수 없이 돌아간다. 서로의 허리를 다정하게 끌어안은 남녀가 짧은 키스를 나누며 나왔다. 로버트는 황급히 시선을 떨어뜨렸다. 잠잠했던 속이 다시 울렁거렸다. 아무렇지 않을만큼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나보다.

“저 꼴을 어떻게 다 참아내?“

비질란테 녀석이 얼굴을 가까이 붙이고 속삭였다. 걱정하는 목소리지만 은근한 비웃음을 담고 있는것도 같다. 아니. 나를 비웃는 건 내 스스로인가? 이젠 그조차도 알 수 없다.

“밥.”

선명히 귓가에 꽂히는 목소리에 반사처럼 신경이 곤두섰다.

“밥.”

다시 한 번 부르는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면,

“이리 와.”

제이크가 손짓했다. 고민할 필요 없이 로버트는 몸을 일으켰다. 옆에서 다음에 보자. 하는 가벼운 인삿말이 나왔다. 로버트는 그를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말을 했다. 다음에 봐.

제이크는 성격이 급했다. 그새를 못참고 거리를 좁혔다. 자연스레 어깨를 손아귀에 세게 잡아 쥐고 가까이 끌어당긴다. 로버트는 어깨 위로 기대오는 무게를 버티며 바로 섰다. 제법 다정한 모양새였으나 결단코 그 이상으로 보일 일은 없을거다. 그건 내 몫이 아니니까.

“간다.”

제 동료에게는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선다. 로버트는 문득 그의 기분이 나빠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여자와 키스를 나누던 제이크의 표정은 꽤 만족스러워 보였으니까. 그래. 그럴 리가 없지. 바보같은 착각을 했다.

”혹시 새로 정 줄 데가 필요해?“

…착각이 아니었나? 빈정거리는 목소리에 뒷목이 빳빳해졌다. 갑자기 무슨 말을. 어이가 없어 돌아본 얼굴엔 짜증이 서려있다. 아니 선빵은 지가 쳐놓고 왜 그런 얼굴을 해? 알 수가 없다.

“무슨 소리야.”
“슬슬 그런가 해서.”
“행맨.“
”아니면 됐어. 집에 가자.“

다시 잡아 끄는 탓에 더 따질수도 없었다. 꼭 한 번씩 이렇게 들쑤셔놔야 속이 편한가. 그런거면 진짜 행맨답네. 진짜 좆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로버트는 어깨를 끌어안는 팔을 뿌리치지 못했다. 제이크의 말도 안되는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 순간부터 그랬다.

***

“자고 가.“
”내일 일찍 출근해야 돼.“
“밥.“

피곤하다. 얼른 돌아가서 좀 쉬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게 잡아챈다. 피곤한 두 눈을 꾹꾹 눌렀다.

“늦었어. 자고 가.”

이런 실랑이도 지금은 지겨웠다. 어차피 결말은 같을텐데. 그건 하나의 불문율이다. 내 안의 마지막 선 같은거였다. 절대 깨어져서도 안되고, 넘고 싶지도 않은.

“행맨. 내일 보자.”

제이크가 순간적으로 짜증스러운 표정을 했다. 그러나 더 붙잡지는 않는다. 그래 그럼. 잘 가. 차 문을 닫는 소리가 요란하다. 로버트는 핸들에 팔을 얹고 기대 제이크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그렇게 자고 가라고 하더니. 어차피 돌아보지도 않는 주제에. 집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뒤를 돌지 않는 등이 야속하기만 한데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누군가의 뒤를 보는 건 익숙하다. 그야 로버트 ‘밥’ 플로이드는 백시터니까. 그런데도 제이크 세러신이 보여주는 등은 늘 아팠다. 익숙해져도 그건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보지 않을 수도 없어서.

거실의 불이 켜지는 것을 보고 로버트는 다시 시동을 켰다. 제이크의 집 앞을 빠져나오면서 그는 안도했다.

오늘도 잘버텼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창문을 열었다. 코를 괴롭게 했던 낯선 여자의 향수와 뒤섞인 제이크의 향수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바람이 머리를 죄다 헝크러뜨려서 눈 앞을 가리는 탓에 로버트는 다시 창문을 닫아야했다. 아까보단 덜하지만 옅게 남아있는 향수 냄새는 여전히 머리가 아팠다. 결국 참지 못하고 로버트는 아주 작은 틈새가 생길만큼 창문을 열었다. 강하지 않은 바람이 머리를 약하게 흩뜨렸다. 이 정도면 괜찮다. 이 정도는…

핸들을 꺾으며 생각한다. 너와 내가 서로를 앞으로 얼마만큼 더 견뎌줄 수 있을 지를.






아니 시발탑이 보고 싶어서 썼는데 별로 뭐 나오지도 않네….


행맨밥
2024.04.18 17:2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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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맨 이 나쁜쉑 ㅠㅠㅠㅠㅠㅠㅠㅠ 밥 마음 눈치채고 접근해놓고 다른 사람하고 있는 모습은 왜 자꾸 보여줘 ㅠㅠㅠㅠㅠㅠ
[Code: 3de9]
2024.04.18 17:30
ㅇㅇ
모바일
다른 사람하고 얘기 좀 했다고 기분 나빠하는거 보니까 아예 마음이 없는것도 아니면서... 이렇게라면 밥도 행맨을 얼마나 견뎌줄지 ㅠㅠㅠ 센세 제가 시발탑 좋아하는거 어케 아시고.... 두 사람 어떻게 되는지 꼭 알려주세요...
[Code: 3de9]
2024.04.18 17:43
ㅇㅇ
모바일
하.. 너무 맛있는데..? 센세 필력 무슨 일이야 제발 어나더
[Code: 3cdf]
2024.04.18 17: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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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맨쉑 자기는 밥한테 이런 저런 모습 다 보여줘놓고는 정작 밥이 다른 사람이랑 말만 조금 섞으니까 까칠해지는 거 ㅌㅌㅌ 얼마나 후회하려고 그래 인마 ㅠ
[Code: 3cdf]
2024.04.18 17:5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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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시발탑 좋아했네.... 그치만 저 시발탑이 꼭 후회하고 소문대로 호구가 되는것도 보고싶어요 센세
[Code: 024a]
2024.04.18 18:16
ㅇㅇ
모바일
너와 내가 서로를 앞으로 얼마만큼 더 견뎌줄 수 있을 지를.

와 마지막 문장에서 이마 빡빡 쳤어 센세 너무 좋아 ㅠㅠㅠㅠㅠㅠ
[Code: 5be6]
2024.04.18 18:26
ㅇㅇ
오 행맨 업보스텍 착실히 쌓아가는 거냐 밥은 왜 견디고 있는 걸까 센세 이대로 가시면 안돼ㅠㅠㅠㅠㅠ
[Code: ba4f]
2024.04.18 18: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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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좋은데
[Code: 030b]
2024.04.18 19: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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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진짜 찐사인데......행쪽아 그러다 개같이 후회한다 ㅠㅠㅠㅠ
[Code: 6023]
2024.04.18 21:4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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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기는요 아주 재미잇습니다
[Code: 6e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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