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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5 04:05
알오AUㅈㅇ 연반ㅈㅇ
몇 년 전이었더라. 확실한 건 노부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첫 해였다는 것이다. 당시 변경 상황이 꽤나 어지러웠기 때문에 아버지는 꼼짝없이 변경에 묶여 있었고 노부의 아카데미 입학을 돕고 1~2년 아직 어린 노부를 돌봐주기 위해 수도에 함께 올라왔었던 어머니는 아버지와 영지가 너무 걱정돼서 수도의 저택에는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영지로 돌아가 있었다. 아버지에게 만약의 일이 일어날 때를 대비해서 영지를 지키고 영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막 아카데미에 입학했던 노부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변경으로 가야 하는 게 아닐까 매일 밤마다 잠을 설치던 때였다. 걸음마를 막 뗐던 아주 어린 시절부터 검을 수련했다고 하나 아직 어린 나이였는데도 자기도 변경에 나아가 영지를 지켜야 하는 게 아닐까 걱정할 정도로 변경 상황이 심란했을 때였다.
그렇기에.
아카데미에 들어간 지 1년여가 됐지만 아카데미가 입학한 뒤로는 아버지를 뒷받침할 수 있는 훌륭한 기사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아카데미의 친구들이 휴일마다 아카데미 밖에 나가서 수도를 구경하고 이것저것 군것질을 하거나 수도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장난감 같은 걸 구경하러 갈 때도 따라나서지 않고 늘 수련에 힘쓰느라 아카데미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는데. 여전히 낯설기만 한 수도의 거리를 혼자 걸었던 것은 아버지의 옛 부관으로 현재는 왕립 기사단에 있는 아버지의 친우를 찾아뵙기 위해서였다. 부모님은 늘 괜찮다, 넌 아직 어리니 공부나 하라고 할 뿐 변경의 상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변경의 상세한 상황을 묻기 위해서. 그러나 아버지의 친우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역시 넌 걱정 말고 공부나 하라고 다독이기만 할 뿐 변경 상황을 정확히 알려주려고 하지 않아서 그다지 수확은 없었다. 그래서 비가 쏟아지는 거리를 터덜터덜 걷고 있었을 때.
길가에 앉아 비를 맞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노부의 반 정도 될까 싶을 정도로 작은 아이였다. 우산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이의 바로 앞 나무 아래에 멀쩡한 우산이 펼쳐진 채 놓여 있었으니까. 비가 제법 거세게 내리고 있어서 아이의 작은 머리와 가느다란 목, 조그만 등이 흠뻑 젖고 있었는데도.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라 다가가 보자 아이가 검을 닦는 용도의 수건, 손수건보다는 크고 목욕용 수건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제법 크기가 있는 수건을 착착 접어서 꽤 도톰한 수건을 바닥에 깔아두고 그 위에 누워 있는 새끼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제 우산을 새끼고양이에게 씌워준 모양이었다. 아이의 조그만 몸 위로 우산을 기울여주며 옆에 같이 앉자, 아이가 놀란 듯 동그란 눈으로 돌아봤다.
"어미한테 버림받은 새끼인가?"
"... 엄마가 죽었거나 이사하는 중에 떨어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음..."
노부도 이제 겨우 14살의 아이였지만 노부의 반 밖에 안 될 정도로 아직 많이 어린 아이의 동심에 상처를 낸 것 같아서 머쓱하게 입을 다물자, 아이는 아이치고는 크지만 그래도 작은 제 손에 비해서도 한참 작은 새끼고양이를 조심스럽게 계속 쓰다듬었다.
"데리고 가고 싶어서?"
"그러고 싶은데 고양이를, 그것도 이렇게 작은 고양이는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어서 데리고 가서 잘 못 돌봐줄까 봐."
"동물 키워 본 적 없어서?"
"네. 제 말은 있는데. 강아지도 키워본 적 없어서."
"음."
"형은 키워봤어요?"
"아니, 나도 집에 말만 있어서."
"음."
조그만 미간에 새겨진 쬐끄만 주름이 귀여웠지만 안쓰럽기도 했기 때문에 노부가 데려가서 돌봐줄까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로 변경의 상황이 심각한 것 같았기 때문에 변경 상황이 나아졌다는 연락이 오지 않으면 아카데미를 그만두고 내려갈까 한창 고민 중이었던 터라 이 작은 생명을 데려갈 수가 없었다. 변경까지는 마차로 한 달여를 가야 하는데 이 작은 생명이 계속 흔들리는 마차 여행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그렇다고 두고 가기에는 정말로 며칠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것 같을 정도로 작은 생명이라서 노부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가 결국 결단을 내렸는지 이미 젖고 흙이 묻은 수건으로 조심스럽게 새끼고양이를 감싸려는 걸 보고 노부는 얼른 품에서 검 전용 수건을 꺼내서 내밀었다. 노부는 비를 거의 맞지 않은 데다가 수건은 품 속에 있어서 보송하고 따뜻한 상태인 게 다행이었다. 손수건도 꺼내서 우산을 씌워줬는데도 촉촉하게 젖어 있는 새끼고양이를 꼼꼼히 닦아주고 노부의 검 전용 수건으로 감싸주자 아이는 제 손바닥만한 작은 고양이를 품에 안고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고양이를 쓰다듬느라 우산을 쓸 정신도 없는 것 같아서, 아이에게 집까지 데려다주마 하자 아이는 새끼고양이를 키울 생각에 흥분했는지 볼이 상기된 채로 고개를 저었다.
"마차가 있어요. 사거리에 서점 있잖아요. 거기 앞에 마차가 있어요."
아무리 수도 거리를 잘 모르는 노부라도 서점은 알았다. 아카데미 교재를 사러 나온 적이 있었으니까. 노부는 그날 아이와 새끼고양이를 마차까지 데려다주었다. 노부가 조그만 새끼고양이와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고양이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고 있자, 아이는 노부가 새끼고양이가 잘 살아남을지 걱정한다고 생각했는지 씩씩한 얼굴로 노부를 올려다봤다.
"내가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응."
"잘 돌볼 거예요. 내가 마음을 줬으니까."
제 몸에 비를 다 맞아가며 작은 새끼고양이에게 우산을 씌워주던 아이가 이 아기 고양이를 얼마나 아껴줄지는 안 봐도 알 수 있어서 당연히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 처음 만난 이 작은 생명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웠을 뿐. 손바닥만한 새끼고양이와도, 노부의 반밖에 안 되던 작은 아이와도.
소년은 마차에 오르기 전 감사인사를 하며 새끼고양이를 잘 키워서 나중에 보여주겠다고 거듭 약속했었다.
그리고 노부는 소년의 품에서 하품을 하고 있는 조그만 새끼고양이의 머리를 톡 건드리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 착한 아이는 네 삶에 찾아온 기적이니 놓지 말고 꼭 잡아야 된다. 건강하게 잘 살아남으렴. 언젠가 다시 보자.
노부도 아직 아카데미 1학년이었고, 노부의 반 밖에 안 올 정도로 작았던 아이는 그보다 한참 어렸던 옛날.
그날 그 아이가...
**********
노부는 아카데미로 돌아간 이후에도 며칠간은 그 소년과 아기고양이 생각을 했다. 그 며칠간은 어지러운 변경의 상황에 대한 걱정도 잠시 묻어둘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곧 급변했다.
노부가 그날의 그 소중하고 다정한 기억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실종되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변방에서는 전투가 잦았고, 그 잦은 전투 중에 아버지와 삼촌이 실종됐었다. 어머니도 그 상황이 돼서는 노부에게 계속 상황을 숨길 수 없어서 가문의 기사에게 직접 편지를 들고 노부를 찾아가게 했다. 하루 종일 말을 달리고 말 교환소에 들를 때마다 말을 바꾸며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나흘도 안 돼 노부를 찾아온 기사에게 편지를 받은 노부는 왕립기사단에 있는 아버지의 친우에게 소식을 전하고 바로 영지로 내려갔다. 아카데미에 있는 짐을 챙길 여유도 없었다. 당시 노부와 기숙사 방을 같이 쓰고 있던 마치다가의 장남에게 횡설수설 사정을 설명하자, 마치다가의 장남이 서둘러 노부를 데리고 당시 1학년의 생활 관리를 맡고 있던 교수를 찾아갔다. 아이들에게 엄했지만 어른스럽고 마음씀이 냉정하지 않았던 교사는 핏기 하나 없는 노부를 다독이며 일단 긴급 외출 처리를 해 주겠다고 했다.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버린 집안의 기사를 대신해서 아카데미의 호위 기사 중 두 명을 노부에게 붙여서 같이 돌아가게 해 주기도 했었다.
다행히 아버지와 삼촌은 비가 와서 흙이 약해진 절벽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말이 죽고 본인들도 부상을 당해서 절벽 위로 올라올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뿐, 목숨을 잃은 건 아니었다. 노부가 영지에 도착하기 전에 수색대가 이미 두 사람과 몇몇 기사들을 찾아서 데리고 왔다. 하지만 그건 노부가 영지에 도착해서야 알 수 있었던 일이었고, 아버지의 생사를 모른 채 하루 16-18시간씩 말을 달려서 영지로 가는 내내 마음은 한없이 지옥을 맴돌았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귀족 소년들은 아카데미에서 군사 코스를 모두 수료하고 마지막에 모의 전투와 검술 시합 및 마술 시합 등을 모두 통과한 후에야 기사 서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노부는 당시 기사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직 기사도 못 된 자신이 어머니와 함께 영지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자신이 남편을 잃은 어머니에게 힘이 돼 줄 수 있을지, 아버지는 정말로 다시 볼 수 없는 건지, 이제 자신을 이끌어 줄 아버지는 세상에 없는 건지. 그런 걱정과 절망이 영지로 돌아가는 내내 노부의 마음을 잡아먹고 있어서 밤마다 악몽을 꿨고 낮에는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말을 달리느라 내내 말에 쓸린 다리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고삐를 잡은 손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노부가 영지에 도착했을 때, 노부를 마중하러 나온 건 부상으로 안색이 좀 나쁘긴 했지만 멀쩡하게 서 있는 아버지였다.
노부는 아버지가 제 절박한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이 아니라 정말로 살아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 아버지의 몸을 더듬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온몸이 노부의 손에서 흐른 피로 피범벅이 됐다. 아버지와 함께 나온 어머니가 팔과 다리가 피범벅이 된 노부를 보고 비명을 질렀고 노부는 어머니의 비명을 들으며 아버지의 품에서 기절했다.
그때의 절망적이고 암울했던 일 때문에 소년과 아기고양이가 안겨준 다정한 기억이 묻혀 버린 것이었다.
*****
"그 녀석을 꼭 다시 보고 싶었는데... 다시 볼 기회가 없었네요."
그때 노부는 15살을 코앞에 두고 있었던 14살이었다. 노부보다 7살이 어린 마치다 케이타는 당시 7살이었을 테고, 그때 막 태어났던 그 새끼고양이는 12년이 지나 12살...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다 떠났을까.
"다음에 저희 집에 놀러오세요."
"...?"
"우리집에서 제일 팔자 좋은 녀석이거든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우리집 대장으로 군림하고 살아서 그런지 할아버지가 됐는데도 아직 건강해요."
"... 수도에 있습니까?"
"네, 제가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 데리고 와서 이제 녀석은 수도가 더 익숙할 걸요. 지금은 어머니와 형님까지 전부 수도에 올라와서 영지가 비어 있기도 하고. 어머니도 마차에서 흔들리면서 고생하시면서 오가시는데 써니 녀석은 영지와 수도를 오갈 때 방석을 몇 개나 깔아서 아주 편하게 다니죠."
"써니?"
"비오는 날 만났잖아요. 우리 만난 날은 비가 왔지만 늘 화창한 햇살 같은 삶을 살라고 써니라고 지었죠."
"좋은 이름이네요."
"보고 싶어요?"
"네. 무척."
마치다 후작가의 저택은 꽤나 컸는데도 어떻게 기척을 알아챘는지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총총총총 마중을 나오는 고양이가 보였다.
어째서인지 12년이나 지났는데도 그때 그 아기고양이였다. 손바닥만하던 크기도, 아직 아기고양이라 파란 눈도, 흰색과 노란색이 섞인 털색도 정말로 노부의 먼 기억 속 모습 그대로였다.
이럴 리가 없는데...?
당황한 노부가 얼어붙은 듯 서서 작은 아깽이가 사뿐사뿐 걸어오는 걸 보고 있자, 그 녀석의 뒤로...
진짜 그때의 그 꼬마, '써니'가 다가왔다. 꼬마 아이의 손바닥만하던 고양이는 엄청나게 커졌는데도 얼굴은 노란색의 털로 뒤덮여 있는데 몸은 대부분 하얀색인 익숙한 모색이나 무늬가 확실히 그 녀석이었다. 고양이들은 성장기에 눈색이 한 번 변하는 법이라 어릴 때 새파랗던 눈은 금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지만.
그때 그 녀석이었다.
내 당부대로 네 삶에 찾아온 기적을 꽉 잡고 잘 살았구나. 꼬맹이. 잘했어. 씩씩하네, 꼬맹이.
"이 녀석이 써니고, 요 꼬맹이는."
마치다가 사람을 몹시 좋아하는 건지, 마치다를 좋아하는 거지 곧장 마치다에게 다가와서 치대는 손바닥만한 아깽이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써니의 손자, 갤럭시예요. 다른 녀석들은 게으름뱅이라 자고 있나 본데, 이 녀석은 제가 돌아오면 어떻게 아는지 맨날 마중나와 주죠."
"갤럭시?"
"딸아들, 손녀손자까지 왔거든요. 한 번씩만 출산을 하게 했는데도 세대가 길어지다 보니까 수금지화목토천해명까지 다 써서 이제 은하까지 왔죠."
써니가 태양이라서 전부 우주 시리즈가 된 건가.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발상이 그동안 만나온 마치다와 어울려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노부를 보며 마주웃는 마치다의 얼굴이 상기된 게 그때의 그 소년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때와는 전혀 다른 성숙함도 느껴져서 괜히 가슴이 간질거려서였다. 억지로 고개를 돌리자 노부의 발치에 앉아서 노부를 관찰 중인 써니가 보였다. 노부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내밀자, 녀석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잠깐 만났던 노부를 기억못할 텐데도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냄새를 맡아보고 빤히 관찰하더니 조심스럽게 앞발을 내밀어 노부의 손가락을 톡 건드렸다. 그리고는 노부의 손가락에 다 컸어도 여전히 앙증맞은 머리를 콩 가져다댔다.
녀석이 노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할 걸 아는데도 마음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마치다가 픽 웃으며 옆에 같이 앉았다.
"써니, 너도 기억하지? 네 삶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날 중 하나였잖아. 그치?"
네 삶에서'도'...
써니의 '콩' 덕분에 녹아버렸던 마음이 한껏 부풀어서 두둥실 떠올랐다.
이미 비는 그친 지 오래였는데, 가슴을 촉촉하게 하는 빗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노부마치
#첫사랑과두번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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