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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오AUㅈㅇ 연반ㅈㅇ
황태자가 '그'를 보는 시선의 온도는 어쨌건 간에 황태자가 노부와 마치다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했다. 당연했다. 욕심이 많고 양심이 없어서 그렇지 눈치 하나만큼은 발군인 황태자가 노부를 향한 그의 마음을 몰랐을 리 없으니, 황태자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었을 노부의 팔짱을 확실히 끼고 있는 마치다가 반가울 것은 당연할 터.
"그러고보니 마치다 소후작은 수도에 있는데도 얼굴 보기가 힘들어. 잘 지내고 있나?"
마치다 소후작이 왜 황태자 보기를 꺼리는지 모를 리 없을 텐데. 자기가 한때 마치다 소후작의 회심작이었던 논문을 뺏었던 과거는 깨끗하게 잊은 듯 묻는 뻔뻔함이 역겨울 법도 하건만, 마치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워낙 바쁜 척하는 인사인지라 가족인 저도 얼굴 보기가 어렵습니다만, 별 다른 말이 없는 걸로 보아 잘 지내는 듯합니다."
그의 얼굴을 보기 힘든 건 네가 개새끼여서가 아니라 워낙 바쁜 척 잘하는 이라서 그렇다고 표현해 이 비뚤어진 황태자의 화가 집안에 닿을 것도 막고, 앞으로도 얼굴 보기 힘들 테니 기대도 하지 말라는 말을 우아하게 표현한 마치다는 여전히 그림처럼 아름답게 그러나 미지근하게 웃고 있었다.
노부가 황태자의 시선이 마치다에게 지나치게 오래 머물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그때였다. 그러나 노부의 팔에 얹고 있는 마치다의 손에 제 손을 얹은 건 계획 따위가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마치다의 손에 손이 닿았을 때, 그 위로 다시 마치다의 손이 겹쳐졌다. 그러나 마치다가 노부의 손 위로 손을 겹치고 노부의 손을 움직이자 똑같이 나눠 낀 약혼반지가 서로 닿으며 작게 챙-하는 소리가 울린 건 분명히 이 똑똑하고 눈치 빠른 사람의 계획이었을 것이다.
흘긋 바라본 마치다가 조금 전 미지근하게 웃고 있던 것과 달리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걸 보면... 마치다는 노부처럼 그저 본능대로 움직인 게 아니었으리라. 아니나다를까 황태자 궁의 현재 상황과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해 똑똑하게 분석한 바 있었던 마치다는 황태자의 시선에서 뭔가 느꼈는지 노부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황태자를 바라봤다.
"저희 약혼 연회에 황태자 전하께서 참석해 주지 않으셔서 서운했습니다."
"나도 유감으로 생각하네. 무척 아름다운 연회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 서운하더군. 그런데 마침 태자비가 그때 크게 앓아서 말이야."
마치다의 말에 따르면 태자비와 태자의 두 후궁은 요즘 계속 번갈아가면서 황태자를 소환해대고 있다고 했다. 몸이 아프다. 꿈자리가 사나워 심란하다. 궁에 괴한이 들려 했다 등등. 셋이서 그럭저럭 서로를 견제하며 지내던 장미궁과 백합궁, 히스궁은 튤립궁이 채워지려하자 어떻게든 황태자의 관심을 끌고자 아등바등하고 있다고. 저딴 쓰레기라도 황태자는 황태자니... 황태자의 동생들이 저 쓰레기를 거꾸러뜨리지 못하는 한... 빛나는 쓰레기긴 하겠지.
"태자비께서는 괜찮으십니까?"
"지금은 다 나았네. 여름이라고 창을 열고 자서 앓은 게지."
"다행입니다."
"약혼 연회에는 못 갔으니 결혼식이라도 가고 싶은데, 스즈키가의 영지에서 식을 올린다니 그것도 어렵겠어."
마치다는 다분히 의도적인 듯 마치다의 약혼반지와 노부의 약혼반지가 계속 부딪치도록 손을 움직이고 있어서 금속이 서로 맞닿는 소리가 창 너머에서 들리는 빗소리 사이로 흐르고 있었고, 황태자의 옆에 선 '그'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지고 있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마치다의 얼굴을 노골적으로 바라보던 황태자는 노부의 불편한 헛기침에 멋쩍게 목을 가다듬었다.
"수도에서 결혼을 한다면 본 태자도 가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두 가문의 수장이 기사단과 함께 수도에 입성한다면 많은 이가 놀라지 않겠습니까?"
물론 수도에도 왕립 기사단이 있기는 하나, 적국과 충돌이 많은 변경을 지키는 마치다 후작가나 스즈키 공작가의 기사단과 사병 수에는 댈 바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물론 마치다 후작이나 스즈키 공작이 만 명에 가까운 병사들을 전부 이끌고 변경을 비워둔 채 상경할 일은 당연히 없겠으나.
왕립 기사단보다 월등히 많은 수의 기사단을 거느린 두 가문의 수장이 한번에 수도에 드는 건 누구보다 황실이 제일 먼저 경계할 일이라, 황태자의 얼굴도 불편해졌을 때였다.
"결혼 준비가 바쁘긴 하나, 공작 부인께서 많이 애써 주고 계시고 제 어머니께서도 꼼꼼히 준비해 주고 계신 덕분에 다행히 우리 둘 다 황태자 전하께서 초대해 주신 마지막 연회까지는 수도에 머물 수 있을 것 같으니... 황태자 전하께서 튤립궁의 새 주인을 맞는 것은 보고 영지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가만히 황태자와 마치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공작 부인의 얼굴이 환해지고, 황태자 옆에 있던 그가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황태자는...
마치다를 바라보던 눈을 돌려 그를 잠깐 바라봤을 뿐 다시 마치다에게로 눈을 돌렸다.
"마치다 영식이 참석한다니 어마마마께 마지막 연회는 특별히 더 신경 써 달라고 부탁해야겠군."
마치다는 분명히 튤립궁을 채울 게 기대된다고 말했지만, 황태자는 그 말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마치다에게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공작가는 물론이고 후작가만 되고 들어갈 수 없는 황실이건만, 황태자가 장미궁의 주인이 될 태자비를 정할 때 마치다가의 둘째를 강력하게 요구했었다고 하던가. 마치다 후작과 소후작이 강력하게 반대하지 않았으면 마치다가 장미궁의 주인이 됐을지도 모른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었다. 하지만 물론 그건 황태자의 소망이었을 뿐, 황실도 조정도 동의할 리 없는 요구였다. 게다가 '그'는 공작가의 친자식이 아니라 양자, 그것도 황태자의 후궁에 들어가기에는 가문의 격이 너무 낮아서 어쩔 수 없이 공작가에 입적된 양자인데도 '그'가 튤립궁에 들어가는 문제로 시끌시끌한 지금 후작가 영식인 마치다가 태자의 후궁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마치다 후작가는 물론이고 장미궁과 황제, 황후, 다른 황자 및 황녀들과 황제의 후궁들, 그리고 대신들도 격렬하게 반대할 것이 뻔할 터. 게다가 마치다 후작가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병을 거느린 변경의 귀족 가문인데. 그런데도 한때 마치다 소후작의 논문을 뺏는 데 거리낌이 없었던 황태자는 이미 노부의 약혼자가 된 마치다를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노부는 이제 시체처럼 보일 정도로 창백해진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을 삼켰다.
처음부터 그가 노부를 배신하지 않았고 그의 마음이 온전히 노부에게만 있었다면 부모님이 아무리 반대하다고 하더라도 그가 노부와 혼례를 올리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텐데. 노부의 진심을 저버리고 더 큰 부귀영화를 노린 그에게 남은 건 이제 애증이라고도 할 수 없는 감정 뿐이었다. 씁쓸함과 안타까움, 분노. 그리고 환멸. 너무 큰 배신은 배신감마저 들지 않게 할 정도라는 걸 이 나이가 돼서야 깨달은 노부는 여전히 마치다의 손 위에 얹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며 마치다의 손을 꼭 쥐었다.
"인터미션이 끝날 듯하니 들어가 보시지요. 저는 제 약혼자와 갈 곳이 있어 이만 자리를 떠야겠습니다."
사실 따로 갈 곳은 없었지만 각각 다른 의미의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공작부인과 '그', 황태자의 눈빛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세 사람을 두고 돌아서며 나오는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그리고 세 사람의 탐욕스러운 눈빛도 극장 안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두 사람이 비가 쏟아지고 있는 극장 앞에 세워져 있던 마차 안에 올라탔을 때. 시종들이 우산을 씌워줬지만 옷이 좀 젖었기 때문에 옷에 묻은 비를 가볍게 털어내면서 노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연회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황태자는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마치다 케이타에게 흑심을 품은 듯하니, 마치다의 댄스카드에 제 이름을 적으려 들 것이 뻔해서 한 말이었다. 황태자가 노릴 빈 칸도 없게 자기가 노력해서 댄스카드를 다 채워주겠다고. 그러자 마치다는 작게 웃으며 노부를 바라봤다.
"황실의 올 시즌 마지막 공식 연회니 최소 12곡, 최대 16곡은 될 텐데 전부 저와 추시려고요?"
놀리듯이 묻는 말에 노부는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저는 달리 춤을 같이 출 사람도 없고."
"형님은 아까 그분을 싫어해 연회에 나오기도 싫어하지만. 뭐, 형님을 연회에 강제로 참석시키면 됩니다. 사촌들도 있고."
"아..."
"물론 소공작께서 12곡을 다 춰 주시겠다면 저로서는 감사할 뿐이니... 편한 신발을 준비하시고요."
차라리 12일 동안 전투를 치르라면 치렀지 12곡을 출 자신은 사실 없는 노부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자, 노부의 얼굴을 본 마치다가 웃으며 노부의 손을 토닥였다.
"12곡 내내 추게 하지 않을게요. 나만 믿어요."
그러면서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얼굴이...
마치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노부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지금 들리는 빗소리는 환청이 아니라 창 밖에서 실제로 전해지는 소리라는 걸 알지만. 어째서인지 마치다가 웃는 얼굴을 보자,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떠오르려다 말았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듯해서.
쏟아지는 비.
젖은 머리카락과 하얀 뺨.
기꺼이 누군가에게 내어 준 우산.
비에 젖어서 창백해졌는데도 환하게 장난꾸러기처럼 웃으며 올려다보던 그 얼굴이...
"... 우리 어디서...혹시..."
마치다는 여전히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우리 어디서 혹시 만난 적 있냐고요?"
노부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자 마치다는 짖궂게 웃고는 양 손을 얼굴 앞으로 들더니 손바닥을 쫙 펼쳤다가 오무렸다.
"야옹?"
아.. 그날 그 빗속의 소년....
수인 아님!
#노부마치
#첫사랑과두번째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