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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포원 기반 종전 이후
그외 설정 여기저기서 가져옴 알못주의
오일하우스는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오토봇의 사기 증진이라는 명목으로 간부들에 이끌려 몇 번 온 것을 제외하고는. 그것조차도 스스로의 휴식과 여가를 위한 시간은 아니었다. 친구와 스툴에 앉아서 엔젝스 잔을 부딪히면서 하루의 피로를 푸는 그런 종류의 시간을 언제 마지막으로 가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오라이온은 자신 앞에 놓인 분홍색의 엔젝스를 보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옆에 앉은 재즈를 돌아보았다.
그는 바 테이블에 턱을 괸 채, 오라이온 쪽으로 동체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와 동료이자 친구로 지낸 세월이 길지만 않았다면 꽤 유혹적으로 느껴졌을 자세였다. 다행히 오라이온은 그가 평소에도 이런 매력적인 태도를 지닌 메크라는 걸 알만큼, 그와 오래 알고 지냈다.
오라이온의 '여기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콘적스를 구해야 해'라는 폭탄 발언 후, 오토봇 쪽 청사에는 난리가 났었다. 오랜 내전 동안 부드럽고 강한 리더십으로 오토봇을 이끌고 마침내 평화를 되찾은 전 옵티머스 프라임, 현 오라이온은, 퇴근 시간까지 쩔쩔매며 부관들에게 갈굼을 당했다. 특히 엘리타 원과 프라울에게. 그런 오라이온을 요령껏 빼내 오일하우스에서 한숨 돌리게 해준 건, 그가 언제나 신뢰하는 스펙옵스의 리더였다.
"어울려줘서 고맙군, 재즈."
"천만에요. 이런 정신없는 날을 보내고 나면 엔젝스가 필요하죠."
재즈가 빙긋 웃어보였다. 그리고 오라이온은 재즈가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걸 미소 뒤에 숨긴다는 걸 모를 만큼 그를 얕게 알진 않았다.
"공식석상도 아닌데 존대하는 거야?"
"너도 더 이상 프라임이 아닌데 사령관처럼 말하고."
이제야 내가 알던 오라이온처럼 말해주네. 재즈가 그렇게 말하며 이번엔 조금 더 진심인 미소를 내보이자, 이내 오라이온도 못 당해내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솔라 사이클은 너무 길었어."
오라이온이 옵틱의 전원을 잠시 끄며 한숨을 내쉬었다. 재즈가 옆에서 위로하듯 그의 어깨를 두드렸어.
"프라울한테 어지간히 시달리긴 했지. 하지만 너도 너다, 오라이온. 사이버트론에 머물려면 콘적스를 맺어야 한다는데 누가 안 놀라겠어."
재즈는 바이저 뒤의 옵틱을 의미심장하게 빛냈다. 그는 턱을 괸 상태로 오라이온 쪽으로 동체를 숙이며 말했다.
"뭐, 콘적스 맺을 상대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바이저 너머의 옵틱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재즈 앞에서 오라이온은 옵틱을 깜빡였다. 재즈가 한 말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 시간이 좀 필요했다. ..아! 이내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오라이온이 화답했다.
"물론 오토봇 중에선 날 돕겠다고 기꺼이 희생할 메크가 많겠지.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오토봇은 최대한 피하고 싶어. 애초에 서류에 이름만 올려줄 메크를 찾는건데, 오토봇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고 싶지 않거든. 내가 사령관이었으니 다른 메크들이 위계에 의한 압박을 느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너 표정이 왜 그래?"
재즈의 미소는 어딘가 어색하게 굳어있었다. 요새 저 표정 자주 보는군, 하고 오라이온은 생각했다. 수천 년의 전투 중에도 재즈가 여유를 잃는 순간은 손에 꼽았는데 말이다. 물론 오라이온이 옵틱을 한 번 깜빡일 사이에 표정을 갈무리하는 것 정도야 재즈에겐 일도 아니었다. 다시 자기 페이스를 되찾은 재즈는 이번엔 다른 질문을 던졌다. 꽤 오랫동안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인데 마침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핑계가 생겨서 다행이었다.
"그럼 일이 이렇게 된 김에. '이런 메크랑 콘적스를 맺고 싶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
"글쎄... 그냥, 믿을 수 있는 메크? 대화가 잘 통하면 좋고."
"그럼 그동안 마음에 둔 메크는 없었어?"
"있을리가! 그러다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면 엘리타가 나를 가만 두지 않았을 걸."
오라이온의 장난스러운 말이 끝나자 마자 두 메크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오랜만에 오일하우스에서 여유를 즐기는 두 메크와 함께, 사이버트론에서의 밤은 저물어갔고....
재즈의 브레인 모듈은 아주 바쁘게 돌아갔다.
나쁘지 않다.
지금 마음에 둔 메크가 없고, 서류 상 콘적스가 되어줄 이를 찾는 거라면 처음 계산한 것보다 승산이 있었다.
옵티머스 프라임으로서 사이버트론 전체를 어깨에 짊어졌을 땐 그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를 지킬 수만 있으면 만족했다. 이미 고통받는 그에게 감히 다른 짐을 얹어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젠장, 프라이머스가 오라이온을 돌려줬잖아. 부서져가는 광산에서 날 포기하지 않은 그 조심성 없는 말썽쟁이, 그럼에도 좋아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메크를. 재즈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의 콘적스 자리를 차지할 준비가 되었다. 코그리스 광부였을 때에 비하면 그는 훨씬 나은 위치에 있었다. 오라이온이 일과가 끝난 후 같이 엔젝스를 마실 상대도 자신이고, 편하게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도 자신이고. 지금 물리적으로 오라이온의 '옆 자리'에 있는 건 자신이었다.
'적어도 오라이온으로 돌아온 그가 D16을 원하게 될까봐 걱정하진 않아도 되잖아?’
재즈는 쿠인테슨 잔당을 처리하는 임무 때문에 외부에 출타 중인 호국경이 언제쯤이면 오라이온의 소식을 듣게 될지 가늠했다.
충직한 사운드웨이브를 통해 이미 모든 내용을 전달받았을 것도 같았다.
메가트론의 옵틱이 뒤집히는 소리가 아이아콘까지 들리는 것만 같은 밤이었다. 그래봤자 남은 쿠인테슨을 다 썰 때까지 복귀 못하는 호국경이 뭘 하겠냐만은.
***
출타 중인 호국경의 옵틱이 뒤집어지긴 했다. 재즈가 계산한 수순대로는 아니었지만.
아직 옵티머스 프라임이 오라이온 팩스가 되었다는 소식이 닿기 전, 메가트론은 우주를 유영하며 약간의 안정감과 평화를 느끼고 있었다. 매주 전 오토봇-디셉티콘 간부들이 모여 총회의를 할 때마다 긴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프라임을 보는 게 여간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역외 임무는 그런 시간에서의 훌륭한 도피처였다. 전 오토봇들과 함께 하는 총회의는 사무적이었고, 어떨 땐 아주 건설적이었다. 다만 내려가지 않는 배틀마스크 뒤의 푸른 옵틱은 여전히 메가트론의 스파크를 일렁이게 만들었다. 여러 의미로.
오랜 내전이 끝났다. 하지만 그건 마법같이 모든 앙금이 사라진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메가트론, 전 디셉티콘의 리더이자 현 호국경은 고통스러웠다.
비밀스럽게, 아직도, 많이.
메가트론은 내전 중 종종 비슷한 악몽을 꿨다. 반파된 오라이온의 동체, 깜빡거리는 푸른 옵틱, 결국 분노에 사로잡혀 그의 손을 놓던 순간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반복됐다. 꿈 속에서 메가트론이 아무리 손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똑같은 결말이었다.
가장 끔찍한 부분은, 꿈을 꾸면서 아무리 오라이온을 살리고 싶었어도 리차징 베드에서 일어나는 순간 옵티머스 프라임의 스파크가 꺼지길 바라는 것처럼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전이 모든 변화를 되돌려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었다. 메가트론은 아직도 같은 악몽을 꿨다.
그리고 내전 협상 중에도, 청사를 공유중인 지금도, 옵티머스 프라임은 자신 앞에서 배틀마스크를 내린 적 없었다. 그건 고귀하신 프라임께서 자신을 어떻게 느끼시는지 실로 많이 말해주는 증거가 아니던가?
캐논으로 얼마 안 남은 쿠인테슨 기지를 섬멸하는 무서운 얼굴 뒤로, 메가트론은 주로 이런 잡생각과 잔잔한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사운드웨이브에게 통신채널을 통해 오라이온의 소식을 알기 전까진.
“뭐…?”
메가트론은 사운드웨이브가 보낸 메시지를 멍하니 옵틱을 고정했다.
메시지에는 어떻게 그런 기적같은 일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가장 믿을만한 경위에 대한 설명, 조작된 흔적이 없는 선명한 화질의 영상, 그리고 오라이온이 난민임을 보여주는 서류의 복사본이 첨부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면, 논리적인 데이터를 앞에 두고도 프로세서가 먹통이 될 때가 있다. 메가트론도 그랬다.
감정회로가 과부하된 것만 같았다. 오라이온 팩스가 돌아올 일 없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여야 했던 세월이 너무 길어서, 일단 믿기지 않았다. 그 다음은 주체할 수 없이 기뻤고, 쿠인테슨 기지를 앞으로 열 개는 더 박살낼 수 있을 것처럼 흥분 되었고, 그동안 폭력이라는 형태로 억눌렀던 소유욕이 파도처럼 밀고 들어올 때 즈음-
메가트론은 갑자기 두려워졌다.
오라이온이 옵티머스가 될 수 있도록 그의 손을 놓아버린 건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다시 그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하고 후회한 날들의 개수와는 별개였다. 갑자기 나타난 소망의 실체는 믿기지 않을 만큼 소중하고 두려운 법이다.
그렇지만 메가트론은 전사였다. 공포의 대상이 무엇이든, 그는 결국 맞서싸우기를 결정한다.
‘게다가 사이버트로니안 콘적스가 필요한 상황이라니. 적임자가 나밖에 없잖아.’
몇 메크가 알면 길길이 날뛸 생각이긴 했다.
하지만 메가트론의 사고회로에서, 이건 아주 당연한 계산이었다. 아무리 오라이온 팩스가 어이없는 행정 처리 때문에 난민 신세라고 해도, 그는 여전히 신성하며 정치적인 일종의 상징이었다. 사이버트론의 화합을 공고히 하기 위해 각 진영의 전 수장들끼리 콘적스를 맺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게다가 옵티머스 프라임이 아닌 오라이온 팩스다. 오라이온의 옆자리는 그가 가져야 마땅하다.
아직 오라이온과의 관계가 다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콘적스부터 맺자니 좀 어색하겠지만, 역시 아이아콘에 복귀하기 전에 필요한 절차를 다 끝내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시 강조하지만, 메가트론의 사고회로에서 이건 아주 당연한 계산이었다. 그는 사운드웨이브에게 필요한 일 처리를 알아보라고 명령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고보니 콘적스 의식을 치룰 때 전투로 인해 도색이 벗겨진 상태면 영 보기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은 계약 관계라고 해도 사이버트론 대중의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함께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언론에 포착되도록 같이 다녀야 할 거고, 집도 합치는 편이 좋을 것 같고... 사운드웨이브의 답신이 도착했을 때 쯤, 메가트론은 오라이온의 리차징 베드를 들여놓으려면 자신의 침실 가구 배치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대한 계획까지 완료한 상태였다. 그는 거의 유쾌한 기분으로 통신채널을 확인했다.
:: 오라이온의 콘적스 엔듀라: 예정된 상대 없음
지시한 업무: 콘적스 상대 확정 전까지 불가능 ::
메가트론이 언짢은 듯 옵틱을 좁혔다. 그는 언뜻 평이한 정보전달인 것 같은 메시지에서 뭔가 미묘한 점을 느꼈다.
사운드웨이브가 지금… 뻗대나? 왜?
‘사운드웨이브가 설마…?’
설마.
프라이머스시여.
그래, 그가 옵티머스 프라임이어서 주변에 메크가 많은 게 아니었다. 함께 광부로 일하던 시절에도 오라이온에게 닿는 짜증나는 옵틱이 많았던 걸 메가트론은 서서히 떠올렸다. 그 옵틱의 주인들을 낙담시키고 주변에서 쫓아버릴 수 있었던 건 그가 오라이온의 옆자리를 비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사운드웨이브’만’ 이럴 리 없지. 사운드웨이브’도’가 맞는 표현일 거다.
메가트론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더 이상 오라이온 팩스의 옆자리가 자신에게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리고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려면 꽤 많은 경쟁자를 제쳐야 한다는 사실을.
메가트론의 옵틱이 돌아간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
그 시각 오일하우스.
“근데 메가트론이 복귀하는 게 언제라고 했지?”
재즈가 여상스럽게 묻자 옵티머스가 잠시 옵틱을 굴리며 기억을 더듬고 대답했다.
“사운드웨이브에 의하면, 늦어도 두 솔라 사이클 이내. 다음 총회의 때는 참석할 거야.”
재즈는 그렇구나, 하고 가볍게 대답하고는 남은 엔젝스를 털어넣었다.
‘좀 더 늦게 와주면 좋았겠는데 말이지…
다음 총회의 볼만하겠네.’
***
메옵 메가옵티 재즈옵티
옵티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