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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1 21:48
ㅋㅂㅈㅇ
ㄱㅇㅅㅇㅇ
ㅍㄹㅇㅇ

킬러중위님이보고싶어




도드라진 날개뼈가 아래위로 움직였다. 땀으로 미끈거리는 흉곽은 단단했고 균일하게 갈라진 복직근을 따라 땀방울이 동그랗게 맺혀 흘렀다. 턱까지 차오른 벅찬숨을 내쉴때마다 옅은 분홍으로 물든 울대가 작게 울렁인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위로 뿌연김이 흩어진다.

"내일이면 떠날텐데 너무 무리하는거 아닌가?"

남자의 목소리에 네잇의 고개가 느리게 돌아간다. 간헐적으로 들리던 거친 숨소리가 멈춘다. 더럽게 귀찮게 구네. 중얼거리는 볼맨소리에 남자의 입술이 가로로 쭉 찢어진다. 후드를 대충 껴입은 네이트가 남자를 위아래로 흘겨본다.

"fuck, 나는 개고생하는데 혼자만 신수가 훤해?"

남자의 반들거리는 슈트차림에 네이트는 배알이 꼴렸다. 좆도 내가 뭘안다고 이나이에 입대를해? 어차피 혼자가서 죽일건데. 정부새끼들은 뭐하러 일을 배배꼬아놓냐고.

"다 절차가 있는거라고 몇번을 말해 네잇."

다정히 타이르는 남자가 네이트의 손에 물병을 쥐어준다. 일단 마셔. 성질좀 그만 부리고, 응? 자신을 애새끼 다루듯 어르고 달래는걸 보니 이번 임무가 점점 좆같을거라 생각이든 네이트는 입술을 꾹 말아물었다.

이번 임무는 한마디로 정리하면 군에 잠입해 적군의 수장을 암살한다, 였다. 거기서 포인트는 바로 아무도 몰라야. 에 있었다. 한창 내전중인 나라는 입출국이 까다롭고 자유롭지 못하니 군인으로 위장. 그곳에 있는 조력자의 정보로 타겟을 암살하고 전쟁이 끝나면 군인들과 함께 복귀한다. 네이트는 이점에서 가장 짜증을 부렸다. 위장까진 좋다 이거야 나보고 전쟁이 끝나고 귀국하라니!

"씨발, 안한다고해!"

냄새나고 덥고 밥도 맛없고..줄줄줄 튀어나오는 가기싫은 이유는 실로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말간 얼굴로 두발을 동당거리며 동그란 눈매를 뾰족하게 만드는. 저 철없는 인간을 전쟁터에 보낼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물론 남자가 걱정하는것은 네이트의 안위 따위가 아니였다.

"쯧, 내가 너를 보내고 잠이나 올까싶다.."

지랄하네. 발간 입술사이로 튀어나온 거친 말뽄새에도 남자는 은은한 미소를 잃지 않는다. 저래보여도 입한번 잘못놀렸다 한방에 골로갈수 있었다.

"잘하고와, 걱정안해도되지?"

"근데 나는 계급이 뭔데? 대대장정도 되나?"

말간 얼굴로 개소리를 시전하는 네이트가 남자는 퍽 안쓰러웠다. 물론 네이트의 신분은 그보다 높다고 할수 있었다. 정부의 비밀조직이긴 하지만 네이트의 그간 업적과 포상으로 받은 훈장으로 볼때 대대장보다 위인건 확실했다. 이미 그곳에 가있는 대대장도 이사실을 알고 매우 긴장중이란 소식이 들려올정도니. 그러나 군대란 무엇인가. 철저한 계급제도로 위계질서를 잡는 곳이다. 25살 네이트가 정말 대대장신분으로 그곳에 가려면 10년은 기다려야 할텐데, 그런일은 절대, 죽어도 없을것이다.

"가보면 알아. 만족할거야 네잇."

남자의 답이 미심쩍었지만 네이트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마피아 보스를 죽이러 클럽에 잠입했을때 이미 여장까지 마스터했다. 까짓거, 군인 별거 있어?





*

장교막사안이 분주했다. 새로온 장교를 구경하러 일병들까지 근처를 서성이다 식스타에게 걸려 욕을 한바가지 얻어먹고 떠났다. 네이트는 불편한 군복을 입고 연신 목깃을 쓸어내렸다. 꽉 조인 소매가 불편해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중위는 2소대를 전담하게 될거다. 윗분들도 자네의 활약에 기대가 아주 크다네."

갓파더의 목구멍을 긁는 쇳소리가 거슬렸지만 그보다 짜증나는건 중위라는 직함이었다. 고작 중위 명함 달아주고 어떻게 몰래 작업을해? fuck! 미세하게 경련하는 네이트의 입꼬리를 발견한 페란도 중령은 마른침을 울컥 삼켰다. 정부도 꼼짝못한다는. 말로만 듣던 무시무시한 킬러가 제 눈앞에 꼿꼿히 서있는 모습이 꽤나 이질적이었다. 갓파더의 답지 않은 모습에 패터슨 대위는 의뭉스러운 눈길로 갓파더와 네이트를 번갈아 쳐다본다. 학사 장교라더니. 얼굴은 앳되보이지만 어쩐지 풍기는 아우라가 범상찮았다. 페터슨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나는 중위와 따로 할말이 있으니 모두 나가보도록."

yes sir.

장교들이 막사를 비우자 적막한 공기가 부유한다. 갓파더의 손끝이 잘게 떨렸다. 정부에서 보낸 파일을 보면 네이트 픽 이라는 인물은 너무 위험했다. 순간 특별고지란에 쓰여있던 반듯한 필체가 떠올랐다. 네잇의 성질을 건들지 말것. 무슨 짓을 할지 모름. 별 다섯개. 별다섯개에선 꾹꾹 눌러쓴 자국이 선명했다.

"제가 어떻게 불러드려야 할지..이거 도통 감이 없습니다."

페란도 중령의 옅은 미소에도 네이트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꼿꼿히 서있던 자세를 풀고 목덜미를 주무르는 일련의 행동을 지켜보던 중령은 sir? 작게 중얼거린다.

"당신이 여기 지휘관? 책임자? 뭐 그런건가?"

"yes, sir."

sir.이라 자신을 칭하는 중령의 모습에 네이트의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정부새끼들 일을 하긴 하네.

"내가 여기 왜 왔는진 말안해도 잘알고있지?"

"yes, sir."

"그것들 금방 어떻게 말바꿀지 모르니까 통신에 신경쓰고, 타겟위치는?"

"아직 파악중입니다."

벌써부터 고국이 그리운데 아직 파악중이라니 네이트의 심사가 꼬인다. 그렇다 해도 너무 예의없게 구는건 무례하니까.

"앞으로 거는 기대가 크네! 잘해보고! 아, 우리 관계는..그러니까 뭔말인지 잘알겠지 중령? 티나지 않게. 어?"

네이트가 갓파더의 어깨를 두손으로 꽉 움켜쥔다. 음, 기대가커 기대가. 입꼬리를 늘려 씨익 웃는 모습이 어쩐지 소름끼쳤다. 더구나 이 어마무시한 악력은 대체 뭐란말인가. 갓파더의 얼굴근육이 지멋대로 꿈틀거렸다. 목구멍으로 꿀덕 넘어가는 침소리에 네이트는 왜이렇게 긴장해 라는 말을 여상히 내뱉고 막사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

"네이트 픽이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차 잦아들고 네이트 얼굴에 모든 시선이 따라 붙는다. 학사장교가 새로왔다더니. 소년과 청년 어드메에 머무는 앳된 얼굴과 군복으로 꽁꽁 싸맸지만 언뜻 보이는 허연 속살까지. 전혀 마린스럽지 않은 겉모습에 소대원들의 입이 멍청하게 벌어진다. 마이크가 이제 가서 쉬시면 된다 언질하자 뒤도 안돌아보고 휙하니 막사를 떠나는 네이트의 뒷모습을 보며 소대원들의 환호가 터졌다.

"뭐죠? 방금 내가 뭘 본거죠?"

루디의 자리를 노리는 어마어마한 경쟁자가 왔다며 소란을 떠는 레이를 보며 브래드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생각좀 하고 말하라는 일갈에도 레이는 쉴새없이 떠들었다.나이어린 상사라. 생김새도 그렇고 하는짓도 그렇고 꽤나 까다로울것 같아 내심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학사장교라니 머리는 좋겠다 싶어 안심이었다. 어린상사는 모셔도 멍청한 상사는 거절이었다.





*
지금 여기서 나보고 쉬라는 건가 중사? 소리가 입안에서 나올랑 말랑 난리였다.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거지같은 천막이 팔락팔락 지랄발광을 하며 요란하게도 흔들린다. 떨더름한 네이트의 얼굴을 보곤 추우시면 당장 막사를 손보겠단 마이크의 말에 네이트는 긴 한숨을 뱉었다.

"됬어. 손보나마나 거기서 거기겠지. 나가봐."

"그럼 편히 쉬십시오 sir."

가늣한 손목이 팔랑이며 어서 나가라 재촉한다. 마이크는 조금 특이한 어린상사가 귀여운 참이었다. 막사에 들어갈때 울상인 얼굴이 딱 사탕뺏긴 어린아이의 그것이라. 내일은 막사에 찬바람이 안들어가도록 손봐야겠다 다짐했다. 사막의 서늘한 밤바람에 마이크의 너른 어깨가 바르작 떨렸다.

긴 하루였다. 오랜 비행으로 피곤했고 인사하러 다니느라 곧추세운 허리가 쑤셨다. 아직 임무는 시작도 안했는데 기가 다빨린 기분에 맥이풀렸다. 이럴때일수록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네이트는 불편한 군복을 훌렁훌렁 벗어던졌다. 언제 어떻게 상황이 변모할지 모르는 내전중 군인에게 군복을 벗는다는건 곧 목숨과 직결된 문제였지만 네이트는 진짜 군인도 뭣도 아니니 뭐어때 중얼대며 답답한 군화까지 벗어던졌다.

"하아, 이제 좀 살것같네."

팬티한장 달랑 남기고 홀딱 벗은 네이트는 군장을 열어 짐을 뒤졌다. 총기도 점검하고 수트도 챙겼고 에이씨 이딴거 왜 챙겼어! 허공에 던진 물건이 시간이 지나도 낙하를 안했다. 뭐지, 소리가 왜 안나지. 예민한 네이트의 귀가 쫑긋거렸다. 군장안에 남은 한손으로 총등을 흔든다. 달칵!

재빨리 뒤를 돌아 총구를 겨냥한다. 한손엔 네이트가 집어던진 젤리봉지가 들려있고 한손을 하늘위로 높이올린 남자가 서있다. 누구야, 너.

"콜버트 병장입니다. sir."

네이트의 총구가 브래드의 이마에 닿았다. 딱딱하고 서늘한 감각에 브래드의 옅은 눈썹이 움칫 떨렸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9mm권총은 보급받은적 없는 물품이다. 어째서 저런 물건을 중위님이 갖고있는거지? 그리고 저 몸에 상처들은 대체 뭐야. 팬티한장 떡 입고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 남자의 상체에 진하고 옅은 상처들이 가득했다. 채찍에 맞아서 패인 상처 같기도 했고 칼로 그어진 상처같기도 했다. 잘게 쪼개진 근육들이 꿈틀거릴때마다 이마에 닿는 서늘함에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마이크 중사가 이거 가져다 드리라고."

브래드의 눈동자가 빠르게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툭 불거진 바지 주머니가 뭐가 들었는지 빵빵했다. 한손은 브래드의 바지를 뒤지면서도 네이트의 눈은 여전히 정면을 응시했다. 옅은 올리브색 눈동자가 한치의 흔들림도 없다.

"fuck!핫팩?"

뭐 이딴걸 주러와? 허탈한 웃음과 함께 네이트의 어깨가 들썩이자 브래드는 얼굴을 옆으로 빗겨내 총구를 피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네이트의 정신은 이미 다른데 팔린듯 보였다.

"뭡니까, 그 총은."

"음, 조금 곤란하게 됬네. 콜버트 병장이라고?"

"yes sir."

네이트의 커다란 눈동자가 도르륵 굴렀다. 방아쇠 사이에 손가락을 끼고 권총을 뱅그르르 돌리던 네이트의 눈빛이 일순 돌변한다. 순식간에 성큼 앞으로 달려오는 네이트의 손에 멱살이 붙잡힌 브래드의 이마 위로 푸른 핏줄이 솟아났다. 그대로 끌려가 침상에 내팽겨져 나자빠진 순간에도 브래드는 얼이 빠져 있었다. 네이트의 손은 얄쌍했지만 손바닥에 느껴지는 굳은살은 거칠고 단단했다. 정신 차릴새 없이 두눈만 깜박이던 브래드의 골반위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브래드 위로 올라탄 네이트가 다시한번 그의 이마에 총구를 겨눈다. 꼼작마. 움직이면 쏜다? 브래드의 입술이 작게 달싹이자 위로 길다란 손가락이 올라붙는다. 쉿! 동그랗게 오무렸던 입술이 펴지고 네이트의 양쪽 입꼬리가 위로 올라간다. 씨익 웃는 미소가 예뻐서 브래드는 순간 저도 모르게 따라 웃어버렸다. 멍청하게시리. 자세도 요상하고 상황은 더더 요상했지만 브래드는 순간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고. 그래서 저 해맑고 예쁜 미소나 계속 보고싶다고. 그런 우스운 생각이나 했더랬다.







*

라디오에서 시절지난 컨트리송이 흘러나온다. 박자에 따라 흥얼거린던 레이가 불연듯 운전대를 꺽자 브래드의 짜증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니가 여기서 하는거라곤 좆같은 무전받는거랑 꼴랑 운전인데 이따위로 할꺼냐?"

허허, 머쓱한 웃음과 함께 험비가 뒤뚱거리며 크게 흔들린다. fuck!레이! 브래드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매섭다.

"무서워죽겠네! 오늘 왜이래요?"

그러게 내가 왜이럴까 레이레이. 분명 어제 막사에서 해명을 들었고 수긍했었다. 그런데 왜 이리도 찜찜하고 개운치못한 감정이 머릿속에 맴도냔 말이다. 고개를 세차게 도리질친 브래드가 푹푹 한숨을 내쉰다. 씨바알..고만좀 하라고요! 레이의 볼맨소리가 우렁차다.

해명은 간단명료했다. 네이트는 자신을 페란도 중령을 지키러온 보디가드쯤이라 설명했다. 고위급 간부가 내전중 사살되면 군사들의 기강이 어쩌고 저쩌고..블라블라. 팬티한장 턱 입고 자신의 중요한 부위 바로위에서 꼼지락대며 말을 이어가는 네이트의 얼굴을 보며 브래드는 귀끝이 홧홧해지는 생경한 경험을 했다. 그니까 네이트의 해명은 지금 브래드의 머리속에 제대로 입력되지 않고 있었다. 제발 좀 내려가서 얘기하시라 소리치고 싶지만 꽉 다물린 입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알아들었나? 일급비밀이라고 비밀!"

마지막 비밀에다 조금 힘을실어 언성을 높인 네이트가 그제야 골반위에서 스르륵 빗겨 내려간다. 브래드의 등이 삽시간에 축축히 젖었다. 침상 끄트머리를 붙잡고 간신히 허리를 세운 브래드에게 네이트가 물었다.

입이 무거운 편인가...음, 내가 널 믿어도 될까?

수초 정적이 흐르고 브래드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뭐가됬든 일단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벌개진 귓끝이 여즉 뜨끈했다. 그럼 나가봐. 네이트는 침상에 널부러진 옷가지를 주섬주섬 주워 바닥에 휙 던져버린다. 팬티 허리끈에 고정된 권총이 당장이라도 사타구니 사이로 흘러 떨어지기 일보직전이다. 아니 군복을 저렇게.. 브래드의 눈꼬리가 잘게 떨렸다. 저 인간, 대체 정체가 뭐냐. 잇새로 깊은 신음이 새나온다.

일련의 상황이 그러하다보니 의무적으로 행하는 훈련에 정신이 너덜거렸다.

레이! 제발 라디오좀 끄고 그 입좀 닥쳐!





"브라보2-1 브라보 2-1, 잠시 정차한다."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간지러운 음성에 브래드의 울대가 크게 울렁인다. 그래 네이트 픽. 당신이 바로 뒷차에 있었지. 레이는 얼굴도 예쁜 우리 중위님 목소리까지 꾀꼬리라며 희희낙낙 너스레를 떨었다. 꾀꼬리 좋아하시네 닥치고 험비나 세워! 브래드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펑 터질듯 붉다.

긴다리로 휘적휘적 걸어오는 네이트의 얼굴이 차게 식었다. 그냥 얼른 타켓을 찿아 죽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이곳에서 중위라는 위치는 밤낮없이 존나게 바쁜 모양이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지? 뇌리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온몸에 탈력감이 일었다. fuck!여긴 덥기도 오지게 더웠다.

"퍼슨상병, 거기서 방향을 틀면 저격수가 위험해지잖아."

모래밭 위로 털썩 주저앉은 네이트가 레이와 브래드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린다. 뒤따라 오던 마이크는 네이트의 거침없는 행동에 두눈이 동그래졌다. sir,어디 불편하십니까? 손바닥을 펼쳐 얼굴위를 파닥거리는 모양이 조금 우습기도 했다. 어린 상사의 새초롬한 얼굴이 벌겋게 익었다. 풉, 터지려는 웃음을 기여코 갈무리한 마이크가 네이트에게 생수병을 건냈다.

"오, 땡큐."

여긴 너무 덥단 말이야..대체 이런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냐며 가득찬 생수 한병을 입안으로 탈탈 털어넣은 네이트의 손아귀 사이로 패트병이 우지끈 찌그러졌다. 이제 좀 살것같다며 위로 쑥 뻣어올린 손이 브래드 앞에 멈췄다. 방향도 위치도 참 뭐 같은곳에 멈췄다고. 브래드는 생각했다. 진짜 저한테 왜이러십니까 sir..

"손좀 잡아줘."

바지 앞섶 앞에서 달랑달랑 거리는 손끝을 바라보며 브래드는 어금니를 짓씹었다. 군인정신 1도없는 딱 8살 애새끼 같은 행동에 레이의 입꼬리는 연신 씰룩였고 마이크는 고개를 작게 저었다. 뭔가에 홀린듯 잡아쥔 손바닥 감촉이 여전히 거칠다. 읏차! 빨리 끝내고 밥먹자! 순식간에 빠져나간 손이 조금 아쉽다. 적당히 따끈한 온기와 답지않게 까칠한 감촉에 브래드의 입안이 썻다.







*

지금 나보고 이걸 먹으라고? 네이트는 연신 입술을 꾹꾹 말아문다. 팅팅불어터진 파스타면과 끈적거리는 붉은 소스는 대체 뭘 갈아넣었는지 알수없을만큼 질척였다. 포크로 식판안에 담긴 파스타를 쿡쿡 찌르며 네이트는 고국에 있는 자신의 상사를 떠올렸다. 만족할거라고? fuck! 좆까고있네! 돌아가기만해봐.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거야.

"sir, 갓파더께서 찿으십니다."

기껏 포크에 둘둘 말았던 파스타면이 식판위에 나뒹군다. 하... 정말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한개도 없는 이곳에서 오늘 당장 탈출할거라고 네이트는 다짐했다. 마이크는 상사의 식사를 방해한게 내심 마음 쓰이는지 식판위에 봉긋하게 쌓여 불어터진 파스타를 한참을 바라봤다.





"오늘밤 바로 출병?"

타겟은? 갓파더의 고개가 땅에 처박할듯 아래로 향한다. 면목없습니다. sir. 네이트의 곧은 눈썹이 와락 구겨진다. 본의 아니게 이틀을 굶었고 잠자리도 시원찮았다. 타겟의 정보가 너무도 흐릿했다. 흐지부지 작전에 함께 투입됬다 파병기간이 길어질까봐 네이트의 심사가 뒤틀린다.

"고개들어, 내가 잡아먹어?"

갓파더의 고개가 들리자 네이트는 한숨만 폭폭 쉬어댔다. 그래도 대대장인데 막대할수도 없고. 저렇게 안절부절 못하는 중령의 모습에 네이트는 손을 휘휘 저어보였다.

"출병은 함께한다. 가서는 어떻게 될지 나도 장담못해."

페란도 중령은 그의 파일에서 보았던 별다섯개를 번뜩 떠올렸다. 네잇의 성질을 건들지 말것. 무슨짓을 할지 모름. 갑자기 등뒤로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자신의 막사로 돌아온 네이트는 목을 조이는 단추를 풀었다. 뻑뻑한 단추가 실에 엉켜 풀리지 않자 억세게 뜯어내는 손길이 거칠다. 후두둑 바닥으로 튕겨 떨어지는 단추들을 보며 네이트는 바닥에 발을 쾅 굴렀다. fuck! 짜증나!

네이트는 군장안을 탈탈 털어 누가 챙겼을지 뻔한 젤리봉지를 집어 들었다. 북 뜯어 와라락 입에 쏟아넣고 어금니를 꽉꽉 깨물었다. 질깃한 젤리가 입안에서 잘게 부서졌다. 조악한 달큰함에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그냥 지금 옷갈아 입고 튈까? 나가서 아무나 하나잡아 족치면 뭐라도 단서가 나오지 않겠어? 머리속이 뒤죽박죽 나열되는 생각들로 시끄럽다. 이럴땐 뭐다? 머리속을 비우고 다른곳에 집중한다.

바지 안으로 급하게 들어간 손목이 천천히 움직인다. 개운하게 한번하고 새롭게 시작하자. 프레쉬하게. 두눈이 감기고 사지가 느른하게 풀린다. 잇새로 작은 신음이 튀어나오려는 찰라 네이트의 두눈이 퍼뜩 떠진다. 퍼킹! 성스러운 시간에 왜 걔얼굴이 떠오른거냐고! 자신의 얼굴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던 푸른 눈동자가. 옅게 미소짓던 얄상한 입술이.

단단한 팔둑에 온몸을 결박당한듯 상체가 뻣뻣하게 굳었다. 브래드 콜버트라고 했던가? 자신보다 한뼘정도 컷던 키와 훈련도중 자신의 손을 거리낌없이 잡아주던 커다란 그의 손을 상상하자 빠르게 움직이던 손목이 이내 멈췄다. 아무래도 옷갈아입고 튀는게 좋겠지? 질척한 손안이 찝찝해 이대로 온몸이 파사삭 부서져 사라지고 싶었다.





*

36째 뜬눈으로 밤낮을 새웠지만 여기있는 모두가 마찬가질테니 네이트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 짜증나는건 좆같은 전투식량이었다. 네이트는 하루반을 꼬박 뜬눈으로 보내고도 팔팔하게 돌아다녔지만 반찬투정하는 애새끼마냥 시도때도없이 툴툴거렸다.

시간개념없이 밤낮을 깨어있으면서 받았던 물고문과 몽둥이질에도 네이트는 질기게 살아남았다. 그것이 훈련의 일환일때도 일부러 틈을보여 적에게 납치될때도 그랬다. 정부에서 미리 심어놓은 첩자가 그들의 아지트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납치된 네이트를 지켜봤다. 양손이 철사로 결박되 의자에 묶인 네이트의 얼굴이 피떡으로 망가져도 정부는 개입하지 않았다. 그들의 정확한 목적과 보스가 숨은곳을 알아낼때까지 남자는 작은 모니터로 전송되는 영상을 그저 지켜만 볼뿐이었다. 만약 네이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위태롭다면 모를까. 남자의 표정이 조금 심드렁했다.

일주일째 고문이 이어지고 물한모금 먹지 못한 네이트는 슬슬 이상황이 지루해졌다. 조무래기 새끼들 그냥 잡아다 겁만줘도 술술 불텐데 내가 이짓까지 해야되? 라는 딥한 빡침에 네이트는 머리꼭지가 돌기 일보직전이었다. 그순간 불난데 기름을 때려부어버린 멍청한 새끼가 있었으니 그새끼는 한손엔 치즈버거를 다른 한손엔 잭나이프를 들고 네이트를 희롱했다. 핏물이 얼룩진 하얀 목덜미에 뾰족한 칼날끝이 꾹 박힌다. 잔뜩 곤두선 목빗근을 타고 주르륵 흐르는 검붉은 핏물을 보며 그새끼는 입맛을 다셨다. 네이트의 역치가 끝을 다하는 순간이었다.

양손에 결박된 철사는 진작에 풀어내 주먹안으로 숨겼다. 그러나 아직 의자에 단단히 묶인 밧줄이 남았다. 씨발 칭칭도 감아놨네. 호흡을 가다듬던 네이트의 두눈이 번뜩인다. 긴다리로 그새끼의 배를 뻥 걷어차자 뒤로 발라당 넘어간 그의 손에서 떨어진 치즈버가가 더러운 바닥에 나뒹군다. 같이 뒤로 넘어간 네이트는 허리를 뒤채 밧줄을 풀어낸다. 병신들, 발은 왜 안묶어? 죽을려고 환장했지.

저벅저벅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선득하다. 더러운 바닥에 몸을 옹송그린 남자의 손에서 잭나이프를 뺏어들었다. 손바닥에 날선 칼날이 반듯한 생채기를 낸다. 길게 벌어진 상처사이로 끈적한 핏물이 뚝뚝 흘러 손목위를 축축히 적신다. 살려달라 애원하는 그새끼의 목을 잭나이프로 단번에 그어낸다. 분수처럼 파바박 튀어오르는 선혈을 보며 네이트의 입술이 작게 달싹였다. 씨발, 그니까 적당히좀 하라니까.

모니터를 지켜보던 남자의 입에서 상스러운 욕지기가 흘러나온다. 두손으로 머리카락을 죄 헝클며 입술을 짓씹던 남자는 모니터에 비치는 네이트의 행동에 혀를찼다. 모가지에서 피를 뿜어내는 남자옆에 털썩주저앉아 바닥에 떨어진 치즈버거를 우적우적 씹어먹던 네이트의 시선이 카메라를 응시한다. 가운데 손가락을 펼치며 입술을 중얼거리는게 아마 자신의 욕을 하고있을거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희미하게 스치는 기억에 네이트의 심기가 불편했다. 험비안 룸미러에 비춰지는 자신의 얼굴이 낯설다. 이제는 옅어진 흉터를 찿으려 애써본다. 기억이 점점 아득해져 그때의 감정과 감각을 모두 잊어도 모가지가 반으로 갈라져 피를 뿜던 그새끼의 얼굴은 여태 선명했다. 꺽꺽 숨이 넘어가는걸 지켜보면서 먹었던 치즈버거의 맛도 아직 입속에 선연하다. 혀끝으로 여린 입안을 둥근다. 좆같은 기분이 나아지질 않는다.

"sir?"

누군가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자 그가 서있다. 브래드 콜버트. 그의 눈동자를 보며 네이트는 진짜 파랗다. 라는 단순한 감상을 중얼거렸다. 브래드 콜버트의 눈동자는 어둠이 내리기전 흐릿한 별이 그려진 남청색 하늘 같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그나저나 왜!? 네이트의 기분은 아직 별로였다.

이거. 오늘 보급된 딸기쉐이크. 부스럭 거리는 봉지를 슥 내미는 브래드의 얼굴을 가만 바라보던 네이트는 그의 내민 손을 멀뚱히 쳐다본다. sir?

"그거달어?"

그럼 달죠, 딸쉔데. 라고 말하고 싶지만 꾹 참고 고개나 까닥였다. 그럼 까줘, 같이먹자. 험비 밖으로 훌쩍 뛰어내린 네이트가 앞장서 걷기시작했다. 그럼까줘같이먹자,그럼까줘같이먹자, 그럼까줘같이먹자. 귓가에서 무한반복재생되는 네이트의 음성이 딸기쉐이크보다 더 달큰했다.





*

멍하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브래드의 길쭉한 뒷모습에 레이는 억세게 혀를 차냈다. 나사 풀린 로봇마냥 삐그덕 거리는 꼬라지를 보자니 울화통이 터졌다.

"저별은 레이레이별~ 쪼기 저별은 아이스맨별~"

꺄르륵 웃는 레이의 목젖을 손날로 가볍게 쳐낸 브래드는 진짜 검은 하늘에 콕콕 박힌 별이나 헤아리고 있었더랬다.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을보며 네이트의 말간 얼굴을 잠시 생각한것도 같았다. 하아, 내뱉은 한숨이 짙다.

"어디아파요? 아님 정신이 오락가락한건가?"

좀 꺼져줄래? 브래드의 냉정한 반응에 레이의 툭 튀어나온 입술이 씰룩인다. 그만하고 좀 자둬요! 3시간뒤 이동한데요! 레이는 부러 팔짝거리며 브래드의 귓가에 소리친다. 속시끄러워 죽겠는데 끝까지 장난질인 레이를 보며 브래드는 다이어트약을 죄다 흙바닥에 뿌려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불과 몇시간전 브래드는 정말로 네이트에게 딸기쉐이크 봉지를 북 찢어서 건냈다. 봉지 가까이 코를대고 킁킁거리던 네이트가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끄덕였다. 동그랗게 오물린 입술이 작게 움직인다. 음, 생각보다 더 달다. 몇일만에 꽤나 만족스런 음식을 목구멍안으로 넣는다는 기쁨에 네이트의 옅은 올리브색 눈동자가 반짝 빛난다. 자, 브래드 병장도 한입해. 얼떨결에 받아든 딸기쉐이크 봉지가 브래드의 악력에 팍 구겨지며 안에있던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희멀건한 네이트 얼굴이 온통 핑크빛으로 물든다. 뭐야! 아깝게 다흘리고! 혀끝으로 윗입술을 핥아올리던 네이트는 군복도 얼굴도 몽땅 젖어 더러워졌는데 화내기는커녕 오히려 기분이 좋아보였다.

"여기 묻었다."

브래드의 왼쪽볼에 가늣한 손가락이 닿았다. 일부러 그런거 아냐? 브래드 볼에 묻은 분홍빛 딸기쉐이크가 네이트 입안으로 쏙 들어간다. 그나마 이게 먹을만하다며 헤실거리는 얼굴을 보며 브래드의 울대가 크게 울렁인다.

대체 어떤게 진짜 중위님의 모습일까. 자신의 목덜미를 거칠게 휘감아 침상위로 내팽겨친 억센손길. 온몸에 새겨진 깊고 진한 흉터들과 9mm권총. 쉬이 이해되지 않는 설명들과 널 믿을수 있을까 물어보던 여상한 말투. 만약 거기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면 총알이 머리통에 박혔을까. 끈적한 딸기쉐이크를 몽창 뒤집어 쓰고도 저렇게 예쁘게 웃는데. 브래드의 입술이 고집스럽게 다물린다.





*

거뭇한 땅거미가 내려앉고 흙바닥은 딱딱하게 얼었다. 사막의 날씨는 언제나 그렇듯 가늠하기가 힘들다. 앞으로 2시간후면 험비가 이동한다. 구덩이를 파서 피웠던 불기운이 점차 사그라든다. 떠날 시간이 가까워 오자 브래드의 심중이 갈팡질팡 어지럽다. 아까는 목구멍에 턱 걸렸던 말들이 이제와 하고싶어 죽을것 같았다. 머리속으로 찬찬히 질문 리스트를 정리하던 브래드는 엄청난 상상력으로 질문밑에 빨간줄도 좍좍 그었다.

단단한 흙바닥위로 물기가 스며든다. 투두둑 떨어지는 빗물에 네이트는 옷깃을 꽉 여민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다니는 인생에서 제일 피하고 싶은건 추위와 굶주림이다. 쩝, 입맛을 다신 네이트는 브래드가 줬던 딸기쉐이크의 달콤함을 상상했다. 꽤 먹을만 했는데 말야. 진짜 일부러 흘리거 아냐? 마이크의 빈자리를 흘끔 쳐다보곤 험비에서 두발을 내린 네이트의 얼굴 근육이 일순 딱딱하게 굳는다. 핑크빛 망상에 젖어 정신이 한오백년 나갔었나보다. 푸스스, 허탈한 웃음이 터졌다. 찰라의 달콤함이 아스라이 사라진다. 등뒤로 딱딱한 이물감이 닿았다. 오랜만이야 네잇. 익숙한 음성에 네이트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간다.

"살아있었네?"

"말뽄새 하고는."

"지랄하네, 애꾸새끼."

성질머리도 여전하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됬더라? 네이트의 허리춤을 꾹 짓누르는 딱딱한 물건이 어둠속에서 번뜩인다.

"어떻게 찿았어? 설마 정부에 배신자새끼가있나?"

"그런건 알거없어. 드디어 널 내손으로 끝낸다는게 중요하지."

달그닥, 총등이 앞뒤로 움직이며 총알이 장전되는 소리가 들린다. fuck! 일이 복잡하게됬다. 아니 이새끼가 어떻게 여길왔지? 5년전 네이트가 처음으로 맡은 임무로 조우했던 사내였다. 물론 정부는 사내를 죽이라 명령했지만 임무는 실패로 돌아갔다. 처절한 격투가 있었고 종말엔 네이트의 나이프가 남자의 오른쪽 눈을 찔렀다. 첫임무이자 마지막 실수였다. 이제 막 어른이된 아이의 두손이 붉게 젖었다. 네이트가 숨을 고르는 사이 그의 부하들이 처들어왔고 사내의 행적은 묘연했다. 분명 방금까진 그랬었다.

네이트의 머리속이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다. 저 미친새끼는 어쨌든 총을쏜다. 소대원들이 소리를 듣고 찿아올 가능성 99. 아니 100인가? 씨발 오늘따라 왜이렇게 조용해! 포탄이 터지는 소리도 탱크바퀴가 땅을 울리는 소리도 없다. 어쩔수없지 일단 한발 맞고 시작한다. 검은 어둠속이 적요하다. 20초, 아니 15초안에 결판낸다. 네이트의 입술이 꾹 다물린 순간 멀리서부터 둔탁한 발소리가 들렸다.

"sir?"

오, 브래드! 왜하필 이럴때! 타이밍 한번 기가막혔다. 네이트 앞에 우뚝선 브래드의 푸른 눈동자가 크게 일렁인다. 대체! 이게무슨! 브래드는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묻고싶은 말이 많았다. 온통 분홍으로 물들었던 하얀 얼굴이 보고싶었다. 이렇게 위험에 처해있는 모습이 아니라 말갛게 웃고있는 얼굴이 보고싶었을 뿐이었다.

"적군입니까."

네이트는 브래드의 질문에 눈동자를 도르륵 굴렸다. 그냥 적군이라 하고 쏴죽이라고 할까? 싶어도 브래드의 양손은 텅 비어있었다. 대체 뭐하러 온건데! 딸기쉐이크라도 들고오던지!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되는일이 하나도 없었다. 타겟도 처리못했고 잠도 재대로 못자고 낮엔 덥고 밤엔 춥고 밥도 맛없고..심지어 몇일만에 입으로 들어간 음식은 달디단 딸기쉐이크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누가 다 쏟아서 못먹고! 그래서 지금 이사단이 난거라고. 그니까 브래드, 너는 내 비밀을 지켜줄 의무가 있다고.

내가.. 널 진짜 믿어도 될까?





"브래드, 잠깐 고개돌리고 있어."

sir! 브래드의 절절한 외침에 사내의 어깨가 들썩인다. 낄낄낄 소름끼치게 웃던 사내의 팔이 네이트의 목덜미를 휘감아 조인다. 사내는 브래드가 서있는 방향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 두번의 총성이 울렸고 브래드는 두눈을 부라리며 꼿꼿히 서있었다. 잘게 쪼개진 날카로운 탄창 파편이 브래드의 왼쪽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볼 아래로 가는 핏물이 주륵 흐른다. 사내는 다시 네이트 등허리 위로 총구를 겨냥한다.

씨발. 네이트의 딱딱한 딕션이 귓가에 때려 박혔다. 총성이 울렸고 소대원들이 이쪽으로 달려올것이다. 최대 20초. 브래드 제발 시간좀 끌어줘. 네이트의 두눈이 느리게 감겼다 떠졌다. 작게 고갤 끄덕이며 눈을 깜박인 네이트는 이가 훤히 보이도록 환하게 웃었다.

사내의 손목에 힘이들어가자 네이트는 앞섶에 숨겼던 권총을 꺼내 손목을 안으로 꺽어 자신의 옆구리를 쐈다. 탕! 짧은 총성과 누군가의 신음 소리가 들렸지만 브래드는 그것이 누구의 음성인지 알수가 없었다. 두발이 땅바닥에 딱 달라붙어 한발작도 뗄수없는 공포를 느꼈다. 중위님! 네이트! 네이트 픽! 온몸이 사시나무떨리듯 덜덜 떨렸다. 사내와 동시에 뒤로 넘어진 네이트는 그의 팔을 꺽어 총을 뺏어 집어던졌다. 네이트 아래에 깔려 버둥거리던 사내의 입에서 살려달란 고함이 터졌다. 이새끼가 이제와서 살려달래! 네이트의 살벌한 목소리 뒤로 탕!탕! 두발의 총성이 더 들렸고 브래드의 두눈에서 후두둑 떨어진 눈물이 볼을타고 아래로 흘렀다.

사내의 머리가 박살났다. 이제 누구도 그가 애꾸였단 사실을 모를것이다. 숨을 씨근덕 거리며 옆구리를 붙잡고 일어선 네이트의 허리에 익숙한 손길이 닿았다. 허리를 감은 두팔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네이트,네이트..작게 읇조리는 음성이 잘게 떨린다. 끄응, 얕은 신음을 흘린 네이트가 몸을 돌려 브래드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다. 작은 파편에 스친 왼쪽볼에 흐르는 핏물을 거친 손바닥이 닦아낸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네이트의 음성이 흐릿했다. 간헐적으로 떨어지던 빗물의 속도가 빨라진다.

"..죽는줄..죽는줄 알았습니다."

쉬..이제 괜찮아 브랫. 옆구리에 총상을 입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네이트는 브래드의 얼굴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어둠에 익숙해진 두눈이 네이트의 창백한 얼굴을 담았다.

"중위님이..죽는줄 알았습니다..대체..대체!"

분명 자신의 손으로 옆구리를 쐈다. 총알이 관통하며 뒤에있는 사내에게 그대로 돌진했다. 설마 그걸 노리고 자신의 몸에 구멍을 냈단 말인가? 당신이라는 사람은 정말 어째서! 그의 허리를 감은 두팔이 축축히 젖는다. 쏟아지는 빗물과 네이트의 옆구리에서 흐르는 핏물이 어지럽게 뒤엉킨다. 점점 가까워지는 여러개의 발소리가 들린다.

"...브래드.. 다시 한번만 물어볼게."

..내가... 정말 널 믿어도 될까..?

거칠게 흩뿌리던 빗물도 코끝을 자극하는 비릿한 피냄새와 네이트의 옅은 숨소리도. 모든 자극과 감각이 멈췄다. 거칠게 뛰는 브래드의 심장소리만 어둠을 부유한다. 자신의 얼굴을 감쌋던 그의 두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지고 브래드는 네이트의 가늣한 허리를 힘주어 안았다.





*

"의무병!! fuck! 닥! 닥! 어딨어!"

귓속에 박히는 빗소리가 너무커서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네이트가 지금 숨을 쉬고 있는지도 모를지경이다. 브래드의 목덜미에 솟아난 푸른 핏줄이 벌겋게 달아올라 금방이도 부풀어 터질것 같았다.

"holy fucking shit!!!"

우다다 달려오던 레이의 두다리가 멈추고 거친 욕설이 튀어나온다. 발치에 툭 걸리는 반짝이는 물체를 집어들어 확인한 레이의 두눈이 일순 커다래진다. 네이트의 권총이었다. 퍼킹! 대체 이게 뭐예요! 브랫!아이스맨!

"그거 당장숨겨 레이, 당장!"

검은 어둠속에서도 희번득 거리는 푸른 눈동자가 매섭다. 얼른 품안에 권총을 집어넣은 레이의 뒤로 닥과 마이크다 튀어나온다. 머리가 산산조각난 시체가 더러운 바닥에 나뒹군다. 레이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닥!"

어지러운 비사이를 뚫고 브래드에게 다가간 닥은 아연실색했다. 잠복군한테 당한거야? 네이트의 옆구리에 번진 핏자국을 보자 두손으로 지혈을 시작한 닥의 표정이 어둡다. 일단 중위님부터 옮겨야해! 브래드! 팔에힘빼! 닥의 고함에 브래드의 두팔이 스르륵 풀리자 네이트의 상체가 비스듬이 기울었다. 브래드의 눈동자가 크게 요동친다. 작게 중얼거리는 입술은 그가 이딴일로 죽을리 없다고 끝없이 되뇐다.



*

네이트도 결국은 인간이었다. 한번에 열명정도는 눈감고도 처리하는 무시무시한 괴물이지만 근접거리에서 발포된 총알은 그의 옆구리를 뻥 뚫어놨다. 다행히 장기는 빗겨냈지만 출혈양이 많았고 구멍난 상처는 컸다. 그러나 네이트는 다른 인간들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그가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린건 불과 1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정신력이 강한건지 체력이 좋은건지 그가 일어나서 내뱉은 말은 실로 가관이었다.

fuck! 존나아퍼!

닥은 갓파더에게 상황을 전달했고 당장 그를 스페인으로 수송할거라 했지만 네이트는 기적의 가까운 힘으로 벌떡 일어서더니 수송작전을 취소했다.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갓파더의 갈라진 쇳소리가 어쩐지 조금 떨리는것 같았다. 붕대로 칭칭 감긴 허리춤을 슬쩍 내려다본 네이트의 작은 입술에서 감히 말로 형용할수없는 욕지기가 줄줄 흘러나온다. 닥은 마른침을 꿀덕 삼켰고 마이크는 작게 고개나 저었다. 상황은 간단하게 종료됬다. 그는 적군에게 포섭된 같은 국적의 인물로 페란도 중령을 노리고 잠입했으나 네이트에게 발각되 사살됨. 의뭉스러운 부분이 많았지만 가장 의아한건 네이트가 스페인으로 수송되지 않고 계속 작전에 투입된다는 것이었다. 아니, 옆구리에 구멍이 뻥 뚫렸다니까요? 무전기로 고함을 치는 닥의 목소리는 철저히 묵살됬다.

대충 마련한 간이막사안이 네이트가 뿜어낸 열기로 뜨끈하다. 다들 나가라 소리치는 그의 얼굴은 열에들떠 붉었고 눈빛은 형형했다. 아파서 그런건지 열받아서 그런건지. 아마 후자에 가까울꺼라 마이크는 생각했다. 대충 바닥에 깔린 너덜거리는 침낭위에서 열기운에 몸을 좌우로 뒤채는 네이트의 정신은 모르핀 탓인지 조금 몽롱했다. 불편한지 자꾸만 움직이는 통에 하얀붕대위로 핏물이 넓게 번진다.

"sir, 그러다 상처 벌어집니다."

누구..? 누구지..? 혼몽한 정신에 헛것을 보는걸까. 눈앞에 아른거리는 인영이 두개로 세개로 겹쳐보이다 이내 올곧은 형상을 한다.

"..브래드..?"

불과 몇시간 전만해도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당신의 진짜 정체가 뭐냐고. 그의 온몸을 잠식한 흉터들은 대체 무엇이며 정말 이곳에 온 이유가 뭐냐고. 브래드는 이제 그 물음들이 아무 소용없을거라 생각했다. 당신의 정체가 무엇이든 이제 상관없다고. 네이트 픽 당신이 살아만 있으면 그딴건 아무래도 좋다고. 브래드는 아까의 섬짓한 공포를 뇌리에서 지울수가 없었다. 하마터면 네이트의 말간 미소를 영영 잃을지도 몰랐다.

네이트의 손이 허공에서 잠시 해매다 브래드의 왼쪽볼을 감싼다. 날카로운 파편에 패인 상처가 검붉다. 씨발, 애꾸새끼.. 네이트는 입술을 꾹 말아문다. 아무래도 사내의 머리통을 박살낸걸론 성에 안차는 모양이었다.

"..흉이지려나..?"

뜨끈한 열감이 볼끝에 닿자 브래드의 커다란 손바닥이 네이트의 손목을 말아쥔다. 이깟게 뭐라고. 그의 몸에는 이딴 상처의 배가넘는 흉이 존재했다. 살짝 패인 볼이 이렇게도 따가운데. 대체 이렇게 많은 흉을 만들어 내기위해 그는 어떤 고통을 감내한걸까.

"이딴건 아무ㄹ-"

거칠게 튀어나간 말을 끝까지 이을수 없었다. 순간적인 힘에 브래드의 고개가 아래로 딸려 내려간다. 뜨겁고 거칠한 감촉이 스치고 매끄럽게 밀려들어오는 속살이 진득하고 부드럽다. 브래드의 한쪽 손바닥이 바닥을 짚자 손등에 핏줄이 한줄한줄 곤두선다. 잡은 손목을 풀어내 네이트의 뒷머리를 감싼다.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잠식한다. 붉고 뜨거운 시야가 온통 자극적이다. 여린 속살이 어지럽게 뒤엉킨다. 하아, 터지는 얕은 숨이 브래드의 귓가를 간지른다. 갈급하게 감쳐문 입술이 달았다. 네이트의 양팔이 브래드의 등을 감싸 안는다. 미약한 힘이었다.

스르륵 감기는 두눈과 함께 까무룩 정신을 잃은 네이트를 침낭으로 꽁꽁 감싸는 브래드의 손끝이 급했다. 꽉 깨문 어금니가 금방이라도 산산조각 날 성싶었다. 아이스맨의 냉철함은 개나 줘버렸다. 아래로 느껴지는 뻐근한 감각에 몸서리친다. 자신의 단단한 심연을 손쉽게 꺼내 한손에 쥐고 맘껏 쥐흔드는 그를. 브래드는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

한손에 수액팩을 높이 들고 돌아다는 네이트를 보며 소대원들의 얼굴이 그보다 하얗게 질렸다. 닥의 만류에도 네이트는 저리비켜. 라는 냉정한 말만 내뱉고 사라졌다. 어딘가 묘하게 달라진 텐션에 닥은 네이트를 더는 말리지 못했다. 갓파더와 무전을 주고받으며 이동계획을 세우던 네이트의 손에서 수액팩을 뺏어든 브래드의 옅은 눈썹이 와락 구겨진다.

"sir."

바로 이동한다는 작전이 무전에서 흘러나온다. 이미 알파팀이 적들의 요충지를 장악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리내놔. 작게 읇조리는 입모양에 브래드의 심사가 뒤틀린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보면몰라?"

브래드의 손에 들린 수액팩을 낚아채는 손길이 거칠다. 손등에 연결된 수액줄에 붉은 피가 역류했다. 자신을 빗겨나 걸어가는 네이트의 어깨를 재빨리 붙잡았다.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뜨끈한 열기로 손바닥이 델 성싶다.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겁니까?"

네이트 당신이 무슨 철인이냐고 대체 제정신이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고개를 돌려 브래드의 굳은 얼굴을 응시하는 네이트의 눈밑이 붉다. 어깨에서 힘없이 아래로 떨궈진 브래드의 길다란 팔이 허공에 맥없이 흔들린다.

"험비 점검하고 애들챙겨, 시내로 바로 이동한다."

"sir!"

명령이야. 손등에서 거칠게 뽑아낸 바늘과 함께 수액팩이 질척한 흙바닥에 추락한다. 희게 질린 손등을 타고 손가락 끝에 동그랗게 맺힌 핏물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

민간인들이 험비의 창을 애처롭게 두드린다. 어설픈 영어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사람들과 음식을 구걸하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브래드는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전투식량과 패트에 담긴 물들을 나눠주던 마이크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었다. 끝나지 않은 내전중 이것은 또다른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폭격으로 멀쩡히 서있는 건물을 찿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건물아래 창고가 을씨년스러운 기운을 풍겼다. 이미 알파분대의 험비들과 장갑차가 즐비한 곳에 브라보 중대 험비가 차례로 세워진다. 험비에서 내린 네이트는 소대원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아마 지금 그들에게 내리는 명령이 마지막이 될것이다. 창고 안은 생각보다 더 엉망이었다. 이리저리 나뒹구는 물건들이 제 활용을 다하지 못하고 부서지거나 망가졌다.

"적군의 수장이 이곳에 숨어있다는 첩보가있지만 브라보중대는 민간인 치료와 보호를 맡고 수색은 알파중대가 전담한다."

네이트의 설명에 중대원들이 웅성인다. 수색대는 저희 아닙니까? 또 시시껄렁한 임무나 준다며 툴툴거리는 대원도 있었다.

"갓파더의 명령이다. 불만있는 놈들은 항명해."

네이트의 서슬퍼런 음성에 다들 입을 꾹 다문다. 오직 브래드만이 그의 시선을 좆는다. 파리한 얼굴과 이마에 새어나오는 식은땀이 그의 상태를 대신 말해주었다. 대체 얼마나 강인한 정신력이기에 옆구리에 구멍이 뚫리고도 저렇게 꼿꼿히 서있을까. 당장 그의 몸을 안아다 어디든 눕히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닥은 따라와."

네이트의 발소리가 창고를 떠나자 소대원들은 참았던 숨을 내뱉는다. 네이트가 뿜어내는 위압감이 실로 굉장했다. 네이트를 뒤따른 닥의 뒷모습이 사라질때까지 브래드는 자리에서 떠날수 없었다.





*

"잠깐 얘기좀해요."

브래드의 옷깃을 붙잡는 레이의 눈꼬리가 아래로 축 쳐졌다. 아마 약빨이 떨어진 모양이다. 아무도 없는 공간을 찿아 브래드를 질질 끌고가는 폼이 아마 제가 생각하는걸 물어보겠다싶어 퍽 곤란했다. 층층히 쌓아올린 박스뒤로 커다란 인간 둘이 낑겨 들어간다. 대체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 중얼거리던 레이의 품에서 네이트의 권총이 튀어나온다.

"이거, 이거 뭐냐고요. 시간없으니까 요점만 콕콕 찝어서 설명해요."

브래드의 양손이 얼굴을 감싸 쓸어내린다. 자신도 저 물건이 왜 네이트에게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네이트가 설명한대로 그가 갓파더의 목숨을 지키러온게 진짜 목적이라면 그는 갓파더가 없는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다. 그를 죽이려 했던 신원불명의 사내의 정체도 일사천리로 처리된 총격사건도 모든것이 의문점이되어 브래드의 심중을 어지럽혔다.

"일단 그거 이리줘."

팔을 내미는 브래드의 행동에 레이는 두눈을 가늘게 뜨고 권총을 뒤로 숨긴다. 설명부터요. 빨리요!

"지금은 아무것도 말해줄수가 없어 레이. 나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거든."

"...설마 중위님 총이예요?"

브래드는 차마 레이에게 거짓말은 할수없었다. 레이는 그가 가장 믿고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브래드의 턱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진다. 레이의 잇새로 욕지기가 터진다. fuck! 대체 뭐가 뭔지.레이가 넘긴 총을 넘겨받은 브래드의 입안이 쓰다.







*

"모르핀 양을 줄이고 싶은데. 통증은 상관없으니까 최대한 줄여봐."

sir,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닥의 얼굴근육이 제멋대로 꿀렁인다. 씨발,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냐고요! 말투까지 거침없다.

"대체 니들은 왜 한번에 말귀를 못알아들어. 줄여, 명령이야."

"명령 좋아하십니다! 차라리 목을 졸라 죽여달라 명령하십쇼! 지금 당장 쇼크상태로 죽고싶어 그러십니까?"

숨을 씨근덕 거리며 어깨를 들썩이는 닥의 멱살을 틀어 잡는다. 분명 명령이라 말했어. 하기싫음 당장 여기서 꺼져. 네이트의 손아귀 힘의 뒷걸음 치던 닥의 얼굴이 터질듯 붉다. 금방이라도 마른 기침이 터지려는걸 꾹 참아낸다.

"하여튼 여긴 맘에드는게 하나도 없어."

스르륵 풀린 손아귀에서 벗어나자 닥의 커다란 손이 네이트의 손목을 움켜쥔다. 미약한 열기운이 느껴진다.

"제가 왜그래야 하는지 제대로 설명하십쇼."

네이트의 한쪽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간다. 뭐라고 설명해줄까. 오늘밤 몰래 나가 적군의 수장을 잡아다 죽여야하니 약기운에 취해있으면 안된다고 말해줄까. 하얀 거스름이 올라붙은 입술이 작게 달싹인다. 잡힌 손목을 비틀어 풀어낸다.

"..아직 여기서 할일이 있잖아. 내가 제정신으로 있어야 니네가 사고를 안칠거아냐."

"사고는 누가 치고 지금 저희 핑계를 대십니까."

fuck! 하기 싫으면 관둬! 닥은 획하니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는 네이트를 잡아다 당장 헬기에 쑤셔넣어 스페인으로 보내버리고 싶었다. 윗대가들의 명령은 언제다 좆같다. 그렇다고 정말 그를 쇼크사 시킬수는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거기 서십쇼! 줄여들이면 될꺼 아닙니까! 닥은 새로온 어린 상관에게 두손두발 다들고 항복했다.





*

그나마 편히 쉴수있는 공간은 알파팀 무리들이 엉덩이를 비집고 있었고 두배로 늘어난 소대원들의 머리꼭지가 어딜가나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밤에 몸을 움직이려면 조금이라도 쉬어야했다. 네이트가 고심해 찿은곳은 결국 험비안이다. 딱딱하고 차가운 시트 가죽에 등허리를 대자 앓는소리가 절로 나온다. 무거운 눈꺼풀이 살몃 내려 앉는다.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박동이 온몸에 혈관을 자극해 전신으로 통증이 퍼진다. 혼자 감내하는 고통은 언제나 그렇듯 고독했다. 씨발, 아프긴 존나게 아프네. 사지가 느른하게 풀리며 온몸이 늘어졌다. 옅게 웃는 웃음이 쓸쓸했다.



하얀 달이 검게 그으른 하늘 정중앙에 자리를 틀었다. 네이트는 버석하게 마른 입안을 물로 축였다. 두눈덩이에 홧홧한 열이올라 눈시울이 붉다. 어쩐지 집으로 돌아갈 길이 아득했다. 험비뒤에 대충 쑤셔둔 군장을 꺼내 열었다. 잔뜩 구겨진 수트를 꺼내고 한참을더 가방안을 뒤지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fuck! 한번에 되는 일이 없었다.

"이거 찿으십니까?"

익숙한 저음의 음성이 네이트의 가늘어진 신경줄을 싹뚝, 끊어버린다. 브래드 콜버트. 왜 항상 곤란할때만 그가 나타나는 거냐고. 네이트는 이제 비밀이고 뭐고 될대로 되라로 노선을 바꿨다. 뭣하면 죽여버리면 그만이다. 그래, 죽여버리면 그만이었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뭡니까."

"하아.. 그냥 그거나 주고 돌아가."

네이트의 예상과 달리 브래드는 손쉽게 총을 넘겼다. 아래로 떨어지던 달빛이 브래드의 푸른 눈동자를 스쳤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자신을 좆았다. 총에 맞고 모르핀에 취해 정신이 몽롱했어도 자극적인 감각에 뒷머리가 선뜩했었다. 몸이 아팠고 더큰 자극을 찿아 본능적으로 움켜쥔 쾌락이었다. 네이트는 마음 한켠에 새록이 샘솟는 간지러운 기분을 애써 부정한다. 그저 찰라의 쾌락이었다고 들뜬 마음에 크게 일갈한다. 지금 여기서 그와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타겟이 언제 어디로 이동할지 모른다.

"그걸로 제 머리를 쏘십쇼."

"...뭐?"

"대신 중위님의 비밀을 말씀해주십쇼. 그리고 제 머리를 쏴 죽이십시오."

허! 네이트의 입에서 허탈한 탄성이 터진다. 씨발, 죽이라면 못죽일줄 알아? 총등이 앞뒤로 흔들린다. 브래드 이마에 바싹 다가간 총구의 끝이 날카롭다.

"진짜 듣고싶어?"

브래드의 손아귀 힘에 총신이 잡힌다. 이마를 겨냥한 총구가 억센힘에 비틀려 흔들린다. 피부에 맞닿은 쇠붙이의 시린 이물감에 브래드의 어깨가 흠칫 떨렸지만 눈빛만은 형형했다. 네이트의 옅은 눈동자가 좌우로 크게 흔들린다. 네이트는 말랑하게 물러진 자신의 마음을 힐난한다. 킬러에겐 목숨을 좌지우지 하는 감정. 망설임이 네이트의 마음을 집어삼킨다.

네이트의 손이 총신에서 떨어진다. 대신 갈급히 맞붙은 입술에 브래드의 손에서 떨어진 권총이 바닥에 나뒹군다. 격하게 밀려드는 속살이 브래드의 혀뿌리를 옭아맨다. 지지않고 따라붙는 브래드의 혀끝이 네이트의 고른 치열을 훑는다. 너른 손바닥이 네이트의 뒷머리를 붙잡자 고개가 모로 기운다. 남은 손으로 네이트의 볼을 감싼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손끝을 간지르는 작은 자극에도 브래드의 울대가 크게 일렁인다. 성마른 입맞춤에 네이트의 숨이 헐떡인다. 잠시 떨어진 입술 사이로 작게 읇조린 네이트의 품으로 브래드의 단단한 가슴이 닿았다.

미안해, 브래드. 아무래도 난 널 절대 죽일수 없을것 같다.

손날에 힘을줘 브래드의 뒷목을 강하게 내리쳤다. 거구의 남자가 제 앞으로 맥없이 떨어지자 네이트의 군화가 뒤로 미끌린다. 옆구리로 뭉근히 퍼지는 통증에 미간 사이가 좁게 구겨진다. 어깨 아래로 두팔을 끼워 넣어 질질 끓어다 브래드를 험비에 앉혔다. 이마위로 식은땀이 베어나온다. 다리가 어찌나 긴지 막판엔 그의 다리를 구겨 좌석아래로 꾹꾹 밀어넣었다. 타겟을 잡기도 전에 기운이 탈탈 털렸다. fuck..이제 낡고 지쳤다며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잔뜩 갈라진다. 여기서 더이상 누구와도 엮이면 곤란하다. 흐릿한 달빛을 벗삼아 군복을 벗는다. 균일하게 갈라진 복직근 위로 핏물이 흥건하다. 옆구리에 대충 붙여둔 지혈밴드는 이미 척척하게 젖어 흐물거린다. 군장에서 꺼낸 하얀 붕대을 풀어내 상처위를 압박해 칭칭감는다. 핏발선 흰자 아래로 앝은 물기가 고였다. 극심한 통증에 아랫입술을 피가 나도록 짓씹는다. 고개를 돌려 기절한 브래드의 옆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네이트는 마른 침을 울컥 삼킨다.

브랫. 살아서 널 다시 볼수 있을까.





*

민간인들을 겁박하는 무리들이 검은밤을 장악했다. 간간히 들리는 총성과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이곳이 아직 내전중임을 일깨워준다. 숨죽인 발소리가 재빨리 어두운 골목안으로 사라진다. 오랜만에 입은 작업복이 새삼 어색하고 불편했다. 움직임이 편하게 만들어진 옷인데 어쩐지 영 거슬려 입술을 꾹 말아문다. 몇일 개고생좀 했다고 그새 품이 낙낙해져 목깃에 쓸리는 지퍼가 움직일때마다 도드라진 울대를 긁어댄다.

페란도 중령은 타겟의 위치는 정확이 모르지만 그가 아직 시내안 어딘가에 숨어 있을거라했다. 허술한 정보였지만 하등 상관없다. 총들고 설치는 새끼들 몇잡아다 족치면 뭐라도 건지겠지. 느리게 고개를 둥그러 긴장된 목근육을 풀어낸다. 옆구리 상처때문에 움직임이 둔해진게 마음에 걸렸다. 누가봐도 지금 네이트는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었다. 임무를 잊고 딸기쉐이크나 처먹으며 시시덕거린 벌이라고. 네이트는 생각했다. fuck, 입안에 끈적하게 달라붙던 달큰함이 그리운걸 보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나보다. 입가에 스미는 희미한 미소가 씁쓸했다.

민간인 복장을한 남자의 한쪽 어깨위로 걸쳐진 소총이 보였다. 남자는 소변이 급한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무너진 담벼락 앞에 서서 다리를 벌리고 바지를 급하게 잡아내린다. 봉긋하게 솟아 꿈틀거리는 남자의 엉덩이를 보며 네이트는 눈살을 찌푸린다. 하다하다 오줌 싸지르는 새끼 멱을따게 생겼지만 체력을 아껴야 하니 별 도리가 없다. 발소리를 죽여 남자의 뒤로가 한쪽팔로 남자의 목을 휘감아 조른다. 남자가 소리치기전 입을 틀어 막아 좁은 골목으로 끌고들어간다. 허벅지에 남자의 맨살이 부벼진다. fuck that, 그야말로 좆같은 기분이었다.

네이트가 남자의 목울대 아래로 나이프를 가로세운다. 발버둥 치는 남자의 귀에 닥치라 조근대는 음성이 짐짓 엄했다. 남자는 네이트의 말을 알아들었다는듯 고개를 작게 주억거린다. 소리지르면 모가지 날아가. 네이트의 경고에 남자는 미처 처리못한 소변을 질질 흘렸다. 운좋게 말이 통하는 새끼를 잡아 다행이었다. 입을 막았던 손이 슬며시 아래로 떨어지자 남자가 참았던 숨이 헐떡거린다. 손바닥에 남은 축축한 이물감에 네이트의 눈썹이 와락 구겨진다.

"내말 알아듣지?"

남자의 고개가 아래위로 크게 흔들린다. 꼴깍 넘어가는 침소리에 네이트의 입술 끄트머리가 비틀려 올라간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잘해야해, 알겠어? 남자의 머리통이 요동친다.

"니네 대장 어디 숨어있어?"

네이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자의 촉새같은 주둥이가 나불나불 잘도 날아다닌다. 비열한 새끼, 한번은 튕길줄 알았더니. 나이프 손잡이에 억센 힘이 실린다. 울대가 반으로 갈라지고 연한 살가죽이 벌어지며 남자의 앞섶이 끈적한 액체로 축축하게 젖는다. 남자의 상체가 미끄러지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핏물에 절여진 칼날을 남자의 옷으로 대충 비벼 닦아낸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옆구리 통증은 잊은지 오래였다.



*

민간인들이 응집해있는 시내와는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검은 지프차 몇대가 건물 뒷편에 세워져 있었고 사제폭탄이나 총기류로 가득 차있었다. 네이트는 손에 대충 집히는 수류탄 두어개를 집어 주머니에 챙긴다. 까닥하면 다같이 죽는거지 뭐. 혈관을 돌던 모르핀은 진작에 사라졌지만 네이트의 두뺨은 상기되 붉게 물들었다.

입구에 세명. 안에 몇명이 있는지 정확히 알수없다. 죽은 남자의 말에 의하면 저 건물안에 타겟이 있다. 이곳에 오기전 파일로 살폈던 타겟의 신상을 곱씹는다. 정부는 타겟을 대놓고 사살하는걸 꺼림직하게 생각했다. 아직 그를 따르는 세력이 많았고 민간인들 중에서도 그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니 내전중 군인들 손에 타겟이 죽게된다면 오히려 반발심만 커져 적대적인 관계가 악화될거라는 정부의 판단이었다.네이트는 그게 정부새끼들의 뻔지르한 개소리라 생각했다.결국 지들 손에 더러운 피는 묻히기 싫으니 가만 앉아서 영웅행세나 하려는 거겠지. 이러나 저러나 자신은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 타겟을 처리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영웅놀이하는 정부새끼들 시시덕거리는 기름진얼굴 조금 구경하다 적당한 포상이나 받고 끝내면 된다. 30분, 길어도 1시간안에 모든일을 정리하고 좆같은 이곳을 뜬다. 주먹쥔 손안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긴다리가 휘적휘적 앞으로 움직인다. 발걸음에 속도가 실린다. 입구에 무장한 남자들을 향해 거침없이 도약하는 몸놀림이 날쌔다. 총소리가 나면 곤란하니 무조건 나이프 하나로 끝낸다. 네이트의 칼이 남자의 뒷목을 푹 찌르자 핏물이 허공에 솟구친다. 힘주어 뽑아낸 칼날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벌건 속살이 비릿한 냄새를 풍긴다. 총신을 뒤로빼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나이프가 남자의 가슴팍으로 날아든다. 퍽! 둔탁한 소리와함께 심장에 박힌 칼날을 달려가 뽑아내자 입에서 검붉은 액체가 뿜어나온다. 무장한 두명이 쓰러지자 남은 한명은 전투력을 상실했는지 소총을 잡은 양손을 발발 떨었다. 저벅저벅 흙바닥에 끌이는 발소리가 소름끼친다. 나이프도 필요없었다. 양손으로 머리통을 잡아 비틀어 꺽자 우두둑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뒤로 나가 떨어진다.

터진 옆구리 상처에서 울컥 토해낸 핏물이 자켓위를 검붉게 물들인다. fuck, 벌써부터 이러면 곤란한데. 나이프 하나로는 역시 무리였나. 고조된 흥분감을 강하게 짓누르는 통렬한 통증에 네이트의 두다리가 잠시 휘청거린다. 씨바알... 네이트는 주머니에서 부딪히며 달그락 거리는 수류탄 두개를 집어든다. 잇새로 은색 고리를 물어 핀을 뽑는다. 조금 소란스런 방법이지만 어쩔수 없지. 네이트의 두눈이 번뜩인다. 깨진 창문위로 수류탄 하나를 던졌다. 나머지 하나는 건물 입구로 굴려 보낸다. 다라라락,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가던 구가 멈춘다. 네이트는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입술을 달싹인다. 하나, 둘, 셋.

귀청을 때리는 폭팔음과 함께 와작 박살난 돌덩이가 사방으로 튀기며 회색 먼지가 공기중에 넓게 퍼진다. 약하게 다물린 입술이 들썩인다. 죽었을려나? 고개를 갸웃 거리다 무너진 건물 입구로 달려들어간다. 입안에 들어차는 검은 연기에 숨이 턱턱 막힌다. 피떡이된 살덩이들이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있다. 입구는 간단히 처리됬지만 누가 누군지 식별이 불가능했다. 옆구리 상처만 없었다면 쥐도새도 모르게 일을 끝냈을텐데. 아마 소대원들이 주둔한 시내까지 폭발음이 들렸을것이다. 네이트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윗층에서 들리는 소리에 계단을 밟아 올라간다. 이미 조용히 처리하긴 글렀다. 품안에서 꺼낸 권총 탄창을 장전한다. 탄환은 8개. 총알하나를 남겨야 하니 쓸수 있는건 7개. 남은 총알 하나는 일이 잘못되면 본인 머리에 박힌다. 타지에 남아 타겟의 인질로 잡힐수는 없다. 고문은 견딜수 있지만 정부에게 버려지느니 죽음을 선택하는게 속편했다. 그들은 절대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을것이라는걸 네이트는 잘 알고있다. 이제와 속쓰릴 일도 아니지만 입안이 썻다.

위로 치켜뜬 두눈이 반쯤 열린 문가에 시선을 고정한다. 네이트의 직감이 맞다면 저안에 타겟이 있다. 총머리 끝으로 문을 밀어낸다. 삐그덕 거리는 마찰음과 함께 온전히 열린 문뒤로 타겟의 얼굴이 보였다. 타겟에 상체에 둘러진 사제폭탄에서 빨간불이 급하게 깜박거린다. fuck! 욕지기를 내뱉으며 방아쇠를 당긴다. 총알이 타겟의 머리를 향해 돌진한다. 네이트는 빠르게 몸을 비틀어 창문을 향해 몸을 던진다. 네이트가 창문으로 뛰어듬과 동시에 타겟의 몸에 장착된 폭탄이 터지며 굉음과 함께 건물이 와르르 무너져내린다. 3층 창문에서 튕기듯 튀어나가 바닥에 떨어진 네이트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척인다. 눈앞이 하얀 섬광으로 번쩍거리더니 귀에선 이명이 들린다. 한쪽 고막이 터져 피가 흘렀다. 잘게 깨진 날카로운 파편들이 온몸에 박혔다. 튕기며 바닥에 부딪힌 충격에 옆구리 상처가 터저 핏물이 줄줄 새나온다. 느리게 감겼다 뜨이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눈동자 아래로 얕은 눈물이 고여 눈꼬리를 따라 흐른다. 결국 이렇게 죽는건가.아래위로 일정하게 오르내리던 흉곽의 움직임이 멈추고 입꼬리가 잘게 경련하며 위로 올라붙는다. 마지막으로 그의 푸른 눈동자가 보고싶었다.



네이트!

정신차려! 네이트픽!

혼몽한 정신속 간절하게 듣고싶던 음성이 귓가에 스며든다. 약하게 다물린 눈꺼풀이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

지끈거리는 이마를 넓은 손바닥으로 짚은 브래드의 옅은 눈썹이 팍 구겨진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에 어금니를 사리문다. 버척이며 험비에서 내린 브래드의 시선이 무언갈 집요하게 찿는다. 젠장! 네이트! 진짜 종잡을수 없는 사람이었다. 귀신에 홀린듯한 멍한 기분에 고개를 작게 도리질친다. 꿈결처럼 아스라이 사라진 그의 빈자리를 곱씹자 입안이 버석하게 마른다. 잡을새없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듯 도망쳐버린 그의 흔적을 당장 찿아야했다.

"닥, 닥, 일어나!"

브래드가 닥의 침낭을 붙잡고 거칠게 흔든다. 부스스 일어난 얼굴이 피곤에 절어있다. 네이트가,중위님이 사라졌어. 브래드의 말이 끝나자 마자 벌떡 일어선 닥이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진다. 아니! 그 몸으로 어딜갔는데! 닥의 고함소리에 소대원들의 야유가 터진다. fuck!!잠좀자자!





"그니까 중위님이 아이스맨을 기절시키고 도망쳤다고요?"

차암나.. 그게 말이되요? 덩치차이를 봐요, 누가 누굴 기절시키게 생겼는지. 꿈꿨어요? 레이는 말도안된다 잠깐 자리를 비우신거다 미쳤냐 약먹었냐 입술을 쉴새없이 중얼거렸지만 브래드와 닥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다.

총을 건내줬고 답을 기다렸다. 갑자기 닿은 물컹한 촉감에 정신이 흐트러졌다. 네이트가 모든 진실을 털어놓고 자신의 머리가 구멍나 박살이 난대도 좋았다. 그래, 죽어도 좋을만큼 그의 진심을 원했다.

"잠깐, 무슨 소리 안들렸어요?"

뭐 터지는 소리같은데! 레이의 고개가 좌우로 붕붕 돌아간다. fuck! 미친새끼들이 잠도없나! 희미하지만 두번의 폭발음이 연속으로 들렸다. 소리의 크기를 봐선 그리 멀지 않은곳에서 분명 폭발이 있었다. 브래드는 헛숨을 집어삼킨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속을 스치자 뒷머리가 선득했다.

"픽중위 못봤나?"

알파중대장 패터슨이 급한 발걸음으로 다가와 네이트를 찿았다. 그의 부재를 알아차린 패터슨은 갓파더의 명령을 직접 전달했다.

"여기서 멀지않은 민가에서 폭발을 목격했다는 정보가 입수됬다. 브라보 2소대는 당장 무장하고 생존자 수색에 알파와 함께 투입된다. 비어있는 건물일수도 있지만 민간인 사상자가 나오면 곤란하다. 수색에 만전을 기하도록."

아, 픽중위 찿으면 작전전달하고 수색임무에선 제외한다. 패터슨도 네이트의 몸상태가 좋지 못하다는걸 잘 알고있었다. 일련의 상황을 모르는 패터슨은 그저 아픈 그를 쉬게 해주고 싶었다. 잠들었던 소대원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킨다. 네이트의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험비 바퀴가 고르지 못한 흙바닥을 위를 구른다. 커다란 바퀴에 자갈이 튀어오른다. 브래드는 야시경 너머로 보이는 녹빛 연기에 마른 침을 삼킨다. 레이와 브래드가 타고있는 1호차가 건물앞에 정차한다. 1호차를 선두로 험비들이 차례로 세워진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것 같은 건물 아래로 검은 인영이 보인다. 브래드가 달려가 널브러진 사람들의 생사를 확인한다. 두손가락을 펼쳐 목의 맥을 확인하고 고개를 젓는다. 모두 총으로 무장한 사람들인데 바닥은 빈탄환도 없이 깨끗했다. 단번에 목덜미가 뚫리고 심장이 찔려 즉사했다. 나머지 한명은 아마 목뼈가 부러진것 같았다.

"민간인은 아닌것 같은데요?"

레이가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을 유심히 살핀다. 손바닥에 박힌 딱딱한 굳은살을 보니 분명 훈련받은 적군이었다. 브래드는 고개를 젓혀 연기가 피어오르는 건물위를 올려다본다. 창문 사이로 누군가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브래드가 총신을 잡아 창문을 향해 저격한 순간 쿠르릉-! 소리를 내며 건물이 폭발함과 동시에 유리창이 와장창 깨진다. 흙바닥이 덜덜 진동하며 유리창 너머로 튀어오른 인영이 바닥에 곤두박질친다.기민한 레이가 브래드의 옷덜미를 붙잡아 빗겨나지 않았으면 우르르 떨어지는 돌덩이에 머리통이 와삭 깨질뻔했다. 건물의 윗부분이 몽창 아작나면서 거대한 흙바람이 불었다. 허리를 굽어 몸을 옹송그린 브래드와 레이가 마른기침을 해댄다. "fucking! 브랫! 병장님! 괜찮아요!? fuck! fuck!" 씨발! 뭐가 어떻게 된거예요! 레이가 쿨럭거리며 소리친다. 매캐한 먼지가 사위를 가리자 브래드는 야시경을 벗어던진다. 뿌옇게 피어오른 흙먼지 사이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인다. 브래드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흙바닥을 기었다. 간담이 서늘하고 온몸에 뾰족한 가시가 돋힌다. 뇌리를 스치는 불길한 예감이 제발 기우이길 바래보지만 손바닥 아래로 짓이겨지는 질척한 흙내음에 구역질이 치민다. "...네이트...?" 네이트! 아비규환속 처절한 고함이 터진다. 손바닥이 거친 자갈에 쓸려 너덜거린다. 허리를 비틀며 괴롭게 몸부림치던 움직임이 멈춘다. 네이트! 정신차려 네이트! 억센손길로 그의 어깨를 잡아 흔들어 보지만 꽉 감긴 두눈은 고집스레 열리지 않는다. 그를 영영 잃는것일까. 좁아진 시야가 온통 암흑으로 변한다. 브래드는 차게 식은 네이트의 양볼을 붙잡고 입술 사이로 숨을 불어넣는다. 제발, 제발! 닥이 달려와 둘을 떼어낸다. 거칠게 반항해 보지만 귓가에 파고드는 닥의 서슬퍼런 음성에 브래드는 망연자실했다. 씨발! 진짜 중위님 죽일셈이야? 정신차리고 당장 중위님부터 옮겨 브래드! 목과 무릎 아래로 팔을 밀어넣어 네이트를 안아올렸다. 사지가 축 늘어져 고개가 뒤로 꺽인 네이트의 입술새로 미약한 숨이 새어나온다. 만신창이가된 그의 몰골에 레이마저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험비 뒷자석에 네이트를 눕힌 브래드의 양손이 흙과 핏물로 뒤엉켜 엉망진창이다. 닥이 재빨리 뒷자리에 올라타 네이트의 윗옷을 급하게 벗겨낸다. 씨발! 이거 뭔데 이렇게 안벗겨저! 찢어발겨진 옷가지를 바닥에 거칠게 내팽겨친 닥이 핏물이 줄줄 흐르는 옆구리를 양손으로 지혈한다. 뱃가죽이 꾹 눌리자 네이트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sir! sir!정신차려보십쇼!! 험비바퀴가 자갈위에 거칠게 굴러간다. 레이를 밀쳐내고 운전대를 잡은 브래드의 거친 핸들링에 닥의 두손이 자꾸만 미끄러진다. 브랫! 운전좀 똑바로해!! 갓파더는 당장 헬기를 보내겠다며 네이트의 상태를 재차 확인하고 확인했다. 무전을 마친 닥의 만면이 핏기가 싹 가셔 창백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생각할 여력도 없었다. 당장 목숨이 경각에 달린 네이트의 숨통을 헬기가 올때까지 붙여놔야했다.



*

아득한 정신이 어지럽다. 무의식 속에서도 소란스럽게 귓가를 울리는 음성들이 낯설지 않은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네이트는 생각했다. 혹독한 훈련에도 끄덕없던 단단한 사지가 천근만근 무거웠다. 차라리 이것이 죽음의 일환이라면 거칠게 살았던 삶의 마지막이 조금은 평온하다고 속으로 되뇐다.

네이트의 눈꼬리가 작게 경련하며 속눈썹이 떨린다. 번뜩 떠진 두눈이 선명한 빛에 잔뜩 찌푸려졌다. 희뿌연 시야 사이로 흐릿한 인영이 보이자 네이트는 본능적으로 허리를 뒤챘다. 높은 침상에서 굴러떨어진 몸이 고통의 비명을 질렀지만 고로 살아있다는 증거이기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차가운 바닥에 손바닥을 짚어 몸을 지탱해 고개를 들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씨.발, 너냐? 배신자가?"

꽉 잠긴 목소리가 잔뜩 갈라져 쇳소리가 났다. 네이트의 눈동자가 인영의 동태를 빠르게 살핀다. 남자의 얼굴은 조금 수척해 보였고 옷매무새도 그답지 않게 엉망이었다. 꺼칠한 볼가죽위로 옅은 주름이 새겨진다. 남자는 대답대신 여상히 웃어보였다. 지금 웃어? 웃음이나냐? 네이트는 손등에 꽃힌 주사바늘을 거칠게 뜯어내며 남자의 멱살을 틀어 잡았다.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새들어 푸릇한 나뭇잎 냄새가 풍겼다. 그러니까 결국 본국으로 돌아오게 된건가. 그새 계절이 바뀐걸 보니 자신이 꽤나 오랜시간 잠들어 있었던듯 싶다.

왜 멍청하게 웃고만 서있어. 무슨 말이라도 해봐. 말도 안되는 변명이라도 해보라고. 다 믿을테니까. 믿어줄테니까 그러니까..아니라고해..어? 약하게 들썩이는 입술 사이로 거친 숨소리만 오간다.

"변명, 듣고싶겠지만 할말이 없다. 너 하고싶은데로해 네잇."

"설마 애꾸새끼랑 짜고 나 죽이려고 한거야?"

그럴거면 뭐하러 파병까지 보냈어. 그냥 여기서죽여버리면 그만인데!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나때문에 다른사람이 죽을뻔했어. 브래드. 파란눈. 딸기쉐이크. 불안하게 흔들리던 눈동자가 멈췄다.

"다른 사람들도 돌아왔어?"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는 네이트의 어깨를 붙잡아 부축했다. 당장 죽여버려도 시원찮지만 당장은 밀어낼힘도 없었다. 남자의 손길에 얌전히 침대에 누웠다. 죽으라고 파병보내놓고는 꼼꼼하게 이불까지 덮어준다.

"할말없어도 해봐. 지어내도 좋으니까."

남자는 한참을 골몰했다. 네이트는 채근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숨막히는 정적을 깨고 남자는 입을 열었다.







브랫네잇 슼탘
2024.11.21 21: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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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업은 사랑이에요 와 숨도 못쉬고 읽었네... 애샛기같은 중위님인데 무언가 비밀을 숨기고 브라보에 들오온 위험한 중위님 존섹 브랫이랑 섹텐 장난 아니고 중위님 웃는 모습이나 더 보고 싶은 브랫인데 중위님은 브랫을 믿어도 될까 되뇌이고 그러다 결국엔 파란눈에 빠져버리게 된거 너무 맛있다.... 재업의 꽃말은 어나더라고 배웠습니다 ㅠㅠㅠㅠㅠ 어나더 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b842]
2024.11.21 22:0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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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킬러 중위님이요? 제가 이런거 좋아하는거 어떻게 아시고요.... 너무 좋아서 한 줄 한 줄 아껴 읽음 ㅠㅠㅠㅠㅠㅠ 자기 몸 안가리고 작전에 뛰어드는 네잇이랑 그런 네잇이 존나게 신경 쓰이는 브랫 마지막에 대체 어떻게 된거야 중위님이랑 브랫 둘이 다시 만날 수 있는거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fbda]
2024.11.21 23: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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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재업은 사랑이에요.....
[Code: 3c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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