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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0 06:10


ㅂㄱㅅㄷ 어나더     


까놓고 말해서 녀석이 모르겠다고 땡깡을 부려도 녀석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녀석이 그날 사진이나 영상을 남기려고 할 정도로 매너없게 굴지도 않았고 증거도 없이 마치다와 잤다가 떠들어대 봐야 아니라고 우기면 그만이었다. 그렇다고 녀석이 마치다를 억지로 덮치고 들지도 않을 거고. 단 하루 같이 잤고 겨우 이틀 본 녀석이지만 그런 녀석이 아닐 거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녀석과 보낸 밤의 기억이 결코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달래서 단념시키고 싶었다. 미친 스토커에게 칼빵을 맞은 것도 대충 거절하면 되겠지 하고 안일하게 굴었던 탓이라. 녀석이 그 미친놈처럼 굴 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안전하게. 

"모르긴 뭘 몰라. 없었던 일이야."
"나 20살이에요. 정말로. 학교에 확인해 보면 알걸요."
"20살이든 몇 살이든 넌 학생이야."
"학생이면 어때. 확실히 성인인데."

웃기고 있네. 학생보호조례나 아동보호조례 같은 건 지역마다 다르지만 이 녀석이 학생이란 걸 알고 이미 바로 학교 화장실에 숨어서 검색해 봤었다. 이 지역의 학생보호조례에는 학생이 성인과 성관계를 가졌을 때 성인에게 법적 제재를 가하도록 하는 규정이 확실히 있었다. 그 조례에는 학생의 나이에 관한 별도의 규정은 없었다. 이 녀석이 학생인 한 마치다는 법적인 제재를 받는다는 말이다. 게다가 마치다는 선생이었다. 그것도 이 녀석을 가르치는 선생. 당장 잘리는 건 두 말할 것도 없고 별도의 제재를 받게 될 것도 당연했다. 

"나 잘려."
"안 잘려요. 내가 20살인 건 이 동네 사람은 다 아는데요. 뭐. 나 클럽에 들어가도 아무 문제 없는 거 봤잖아요."
"법이 안 그래. 난 잘려."
"필요할 땐 도움도 안 되는 법 따위."

투정을 부릴 때가 아니라고 화를 내려다가 학교를 못 다녔던 때가 있어서 아직 학생이라고 말했던 게 생각나서 입을 다물었다. 남의 상처를 후벼파는 취미는 없으니까. 하지만 녀석은 마치다의 배려를 쿨하게 걷어찼다. 

"학교 못 다녔던 거 별일 아니었어요. 개새끼 잡으러 다니느라고 바빴던 것뿐이니까."
"누굴 잡으러 다녔길래 학교까지 못 다녔어"
"전국을 뒤지고 다녔거든요. 우리집 구제불능 잡으러."

가족사면 캐묻기가 더 곤란해서 또 입을 다물자 녀석은 커피를 내왔다. 하필이면 마치다가 이 집에서 자고 난 다음 날 아침에 나가기 전에 우유라도 마시고 가라고 내 줬던 컵과 똑같은 컵이어서 흠칫했지만 남자 혼자 자취하는 집에 컵이 많을 리도 없어서 우연이려니 하고 얌전히 받아마시자, 녀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집 노답 인간. 내 친부가 할머니 도장을 훔쳐서 사채업체에서 돈을 빌리고 튀어서 사채업채에서 찾아와서 할머니를 괴롭혔어요."
"도장 훔친 거면 채무 책임이 없으시지 않아? 신고는 했어?"
"했는데 그놈들 법 따위 신경도 안 쓰더라고요. 우리집이 이 지역 토박이라 경찰에 아는 분도 많고 경찰도 많이 도와줬는데 작은 지역이라 경찰력이 그리 강하지 않다 보니. 그래서 그 놈을 직접 잡아와서 놈들에게 넘겨줄 테니 할머니는 놔두라고 했죠. 놈들도 아직 어린 나와 다 늙은 노인네보다 정정한 그놈이 더 쓸만할 테니 3년의 시간을 줬고 난 2년만에 어디 섬에 쳐박혀 있는 그놈 찾아와서 넘겨줬어요."
"어떻게 됐는데."
"배타고 있다는데요."
"배?"
"나한텐 인간말종이라도 할머니한텐 그래도 아들인지라 죽이지는 말아달라고 할머니가 부탁해서. 어디 원양어선 타고 있대요."
"... 그래."

착잡한 마음에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는데 녀석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근데 나한테 사기치는 거 아니에요?"
"뭐?"
"무슨 조례. 그거 사기 아니에요?"
"무슨 헛소리야."
"선생님은 나한테 이름도 속였는데 뭘 또 속일지 어떻게 알아?"

누군지도 모르는 원나잇 상대한테 본명을 가르쳐주는 게 더 정신나간 일인데, 가명을 댄 마치다를 사기꾼 취급하다니! 마치다는 어이가 없어서 낮에 조례를 검색했던 사이트를 열어서 녀석에게 건네줬다. 

"봐라."

녀석은 분명히 처음에는 관련 조례를 열심히 읽는 것 같았다. 뭐 이런 게 다 있냐고 궁시렁거리는 것도 들었고 미간을 찌푸리는 것도 봤다. 그런데 그렇게 투덜거리던 녀석이 조용해졌길래 뭐하냐고 물었더니 녀석은 '아무것도'라고 말하고 쿨하게 핸드폰을 돌려줬다. 핸드폰에 뭘 했나 싶어서 찾아봤더니 새로운 건 없었다. 그냥 조례만 봤나 하고 핸드폰을 잠그려던 마치다의 눈에 이상한 알림이 보였다.  

"네임카드? 이게 뭐야? 네 번호야?"
"예압."
"네 폰으로 나한테 전화했어? 아니지, 내 번호 어떻게 알았어? 내 폰으로 전화했어?"

그러나 통화기록을 보니 전화를 하거나 받은 기록은 없었다. 핸드폰을 뒤지고 있자, 녀석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자, 녀석이 놀리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
"뭐?"
"형인 줄 알았더니 아저씨네, 아저씨야."
"뭐 임마?"

주먹을 치켜들자 녀석은 이게 녀석과 마치다가 쓰는 폰에 있는 기능이라고 순순히 알려줬다. 서로 폰만 갖다대면 연락처가 공유된다나. 전에 무슨 드랍 기능을 켜놨다가 미친놈한테 불쾌한 사진을 받은 경험이 있어서 꺼놨었는데 그 기능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알 게 뭐람. 

"아무튼 내 밥줄이 걸려서 안 돼. 너랑 사귀면 나 잘려."
"누가 사귀자 그랬어요? 난 그런 말한 적 없는데? 나랑 잔 거 되게 좋았나 봐? 그날 밤에도 되게 밝히는 것 같긴 하더라. 야해 빠져서는."
"야!"

이번엔 진짜로 패야겠다 싶었다. 마치다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벌떡 일어나자 녀석은 후다닥 침실 쪽으로 달아났다. 달아났다고 해 봐야 크지도 않은 집, 크지도 않은 침실에 침대까지 있다 보니 쫓아다니던 마치다가 침대에 걸려 침대 위로 풀썩 쓰러지는 건 금방이었다. 그리고 녀석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마치다의 위로 올라타고 마치다의 양손을 틀어잡아 머리 위로 올려서 눌렀다. 

양손이 틀어잡힌 상태라 다리로 걷어차려고 했지만, 눈치가 빠른 녀석은 마치다의 다리도 제 다리로 눌러놓았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채로 한참을 바라보고 있을 때, 녀석의 얼굴이 가까워진다 싶더니 입을 맞춰왔다. 키스는 그날 밤처럼 황홀했다. 녀석은 녀석의 것을 하도 빨아대느라 다 찢어진 마치다의 입술과 입 안을 달래듯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녀석은 마치다의 눈을 바라보며 낮게 속삭였다. 

"사귀자고 한 거 맞아요."
"야..."
"선생님 후회 안 하게 내가 진짜 잘할게. 나 받아줘요."

... 쪽팔리게 어린애한테 좀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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