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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9 06:19




ㅂㄱㅅㄷ   



녀석에게 속은 걸 알게 됐다고 해서 학교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누가 이야기를 들을지도 모르는데 학생이랑 잤다는 이야기를 학교에서 어떻게 해. 바싹바싹 타는 속으로 하루를 보내느라고 종일 속이 답답해서 차가운 음료를 하루 종일 마셔댔더니 퇴근할 때는 뱃속이 차가운 느낌이라 기분도 불쾌했는데 더 문제는 녀석과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여의치 않다는 것이었다. 마치다는 녀석의 담임이 아니고 학생의 개인 연락처를 담임도 아닌 교사가 쉽게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생각해 봐. 개인정보를 함부로 다루다가는 큰일나는 시대라고. 그렇다고 녀석의 집으로 무작정 찾아갈 수도 없고 평일에 교사가 클럽에 드나드는 모습을 보이기도 곤란하고. 

두렵고 짜증나는 기분으로 차가운 배를 문지르며 교문을 나서자 마치다의 고민거리인 녀석이 바이크 위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다는 치밀어오르는 짜증과 설움, 공포에 들고 있던 가방을 녀석에게 후려치려다가 길거리라는 걸, 오늘 첫출근을 하는 직장 앞이라는 걸 생각하고 간신히 참았다. 

"... 여기서 뭐해?"
"선생님 기다렸죠."
"왜?"
"나랑 할 말 있잖아요."

마치다가 스즈키 노부유키를 노려보고 있자, 노부는 뒤에 있던 헬멧을 마치다에게 던져줬다. 

"타요, '쿠로사와 유이치' 씨."

그래, 마치다는 클럽에서 아무렇게나 가명을 둘러댔는데 녀석은 정말로 본명을 댔더라. 출석부에서 녀석의 이름이 진짜 스즈키 노부유키라는 것을 봤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이게 아주 겁도 없지? 역시 칼빵을 안 맞아봐서 그런가. 

"어디 가게."
"갈 데가 어디 있어요. 우리집에 가야지. 밖에서 이야기하다 소문나는 거 금방이에요. 난 상관없지만?"

실실거리는 녀석을 역시 후려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순순히 헬멧을 받아서 썼다. 길거리에서 할 이야기가 아닌 건 사실이고 헬멧을 쓰면 적어도 얼굴은 가려지겠지. 그렇게 마치다가 녀석과 함께 뒹굴었던 방에 다시 들어가자 격렬했던 밤의 흔적은 싹 사라지고 다시 말끔해진 방이 드러났다. 시트와 이불도 갈았는지 못 보던 침구가 올려져 있었고. 

"20살이라며!"

마치다가 방에 들어가자마자 빽 소리를 지르자 녀석은 싱긋 웃었다. 

"학교에서 나에 대해서 물어보고 다니진 않았나 보네요? 20살인 거 맞아요."

물어보고 다녔으면 알았을 거라는 말은 정말 20살이란 건가? 그런데 왜 아직 학생이야? 뭐 18살로 안 보이긴 하지만. 

"사정이 있어서 2년 정도 학교를 안 다녔어요."
"너도 칼빵 맞았냐?"
"흉터가 크다 했는데 칼빵 맞은 거였어요? 어쩌다가?"

녀석은 그날 밤에 클럽에서 내내 까칠거리던 마치다가 녀석이 방에 들어와서 장난처럼 던진 '일단 벗어요'라는 말에 순순히 옷을 벗고 녀석의 앞에 얌전히 앉아서 온순하게 녀석을 올려다보던 걸 봤을 때처럼 삐딱하게 올라갔다. 그때는 마치다의 급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대한 의아함이었다면 지금은 살짝 분노에 가까운 사나운 느낌이긴 했는데. 칼 맞은 사람 따로 있는데 왜 자기가 분노하는지 모르겠다만.
 
"너같은 미친놈 만나서."

마치다가 시니컬하게 대답하자 녀석은 속도 없이 웃었다. 

"난 칼빵 같은 거 놓을 생각 없는데요. 위험한 놈 아니에요."
"충분히 위험해. 너 내가 네 선생이란 거 알고 있엇지."

녀석은 대답을 안 하고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선생님한테 칼빵 놓은 놈은 어디 살아요?"
"감옥에 산다."
"아아..."
"나한테 칼빵 놓고 멀쩡히 돌아다니게 할 것 같아?"

녀석은 키득거리며 웃고는 일어나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니, 선생인 거 알고 있었냐고! 대답은 안 하고 이야기하다 어디 도망가냐고 잡으러 가려고 했는데 곧 군침이 도는 카레향이 났다. 하루 종일 녀석이 신경 쓰여서 차가운 음료 말고는 아무것도 못 먹은 속이 꼬르륵 소리를 내자, 녀석은 그걸 들었는지 금방 준비되니 기다리라고 외쳤다. 내가 지금 너랑 밥 같은 걸 먹고 싶겠냐고 쏘아 주었지만 녀석이 곧 커다란 그릇에 밥과 함께 듬뿍 담아온 카레에 입이 꾹 다물어졌다. 이 와중에 음식에 넘어가냐고 탓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하루 지난 카레가 얼마나 맛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녀석이 전날 만들었다는 카레는 입 안에서 살살 녹았고 차가워졌던 뱃속을 금세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내가 네 선생이란 거 알고 있었냐고."

카레를 입 안에 가득 넣어서 볼이 볼록해진 상태라 위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녀석은 키득거리며 웃었지만 대답은 착실했다. 

"외삼촌이 우리 바이크샵 옆에서 초밥집해요. 외삼촌 심부름으로 토요일 낮에 학교에 선생님들 점심 배달 갔었어요."
"난 널 못 봤는데?"
"교무실에서 밥을 먹진 않잖아요. 휴게실로 배달 갔었는데 나오다가 선생님이 교무실 앞에서 교장 선생님이랑 인사하는 거 봤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휴직한 선생님 대신 새로 온다는 선생님인 거 알았죠."
"바이크샵에서 일하는 건 맞아?"
"맞아요. 하교하고 나서."
"어쨌든."

마치다는 또 카레를 한 입 가득 넣고 나서 입을 열었다가 후회했다. 입 안이 작아서 뭐든 먹으면 볼이 볼록해져서 입 안에 뭐가 든 채로 말하면 위엄이 안 사는데. 그래서 그날도.

입 안이 이렇게 작은데 내 건 잘도 빨고 기특해. 볼이 뽈록해진 거 봐. 음란한 다람쥐같네.

내 머릿속에서 나가라, 스즈키 노부유키.

마치다는 입 안에 든 카레를 다 삼키고 다시 위엄있게 입을 열었다. 

"어쨌든 주말에 있었던 일은 없는 거야. 우리는 교실에서 처음 만난 거야. 알겠어?"
"모르겠는데요."

위엄 따위 없었나 보다.






#노부마치
#학생노부선생님마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