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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7 11:46
한창 마하르 과거 풀리고, 모니카 영웅전도 나오고 해서 알렉세이 과거페코도 나올 줄 알았는데 달라는 페코는 안주고 뭔 개편을 해서... 그 후로도 이것저것 풀리긴 했는데 걍 내맘대로 날조함 ㅎㅎ
소설체ㅈㅇ
날조ㅈㅇ
캐붕ㅈㅇ
천성이 그런 것인지, 주변의 끝없는 압박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 유약하기 그지없는 왕이 있었다. 그런 왕을 재능에서나 인망에서나 진작에 뛰어넘어 이미 왕좌에 오른 듯 구는 그의 장자, 그리고 도의를 내세우며 그런 장자와 맞서려는 차남, 여기까지가 노스 폰 프로스티 왕가 역사서 한 단락을 차지할 주역이다. 무기력하고 무념한 삼남, 알렉세이는 그저 방관자로서 부정적인 말 한마디조차 안 남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흔히 엑소스 대륙 사람들이 노스 폰 프로스티에 대해 착각하는 점이 하나 있다. 대륙 최동부이자 최북부에 위치하는 노스 폰 프로스티는 그 이름처럼 얼어붙어 1년 내내 겨울인 나라라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노스 폰 프로스티에도 그 나름의 4계절이 있다. 믿기지 않게도 봄과 가을뿐 아니라 그사이에 여름도 존재한다는 말이다. 물론 여름이라 해도 그린랜드의 한겨울에 못 미치게 기온이 낮았으며 함부로 옷 두께를 줄였다가는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었지만 어쨌든 눈은 녹았다. 그렇게 눈이 녹을 시기가 다가올 쯤에 마하르가 알렉세이를 찾아왔다.
가정이 따로 없는 알렉세이는 형제의 방문을 반기는 편이었다. 따라서 여느 때와 같이 웃은 얼굴로 마하르를 맞이했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다르게 마음속까지 반가움으로 채울 수는 없었다. 인사를 나누기도 전, 마하르가 던진 말에서 그의 방문이 단순히 가족 간의 만남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지나가다 들렸어. 소문은, 들었는지 모르겠군."
진지한 말에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런 마하르를 보며 말없이 미소 지은 알렉세이는 소문에 대해 되묻기보단 입을 꾹 다문 채 그를 껴안기를 택했다. 그리고서 시종을 불러 그에게 방을 안내해주라 이르는 게 다였다. 알렉세이는 마하르로부터 등을 돌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노스 폰 프로스티는 넓지만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확실하게 권력밖에 서기 위해 소문의 진위가 밝혀지기 전에 적절한 대응은 필수였다. 하지만 마하르가 말하는 소문은 너무나 공공연하여 소문이라기보다는 기정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그 확연함 때문에 오히려 대응을 하면 문제가 되는 부류였다. 그들의 형이자 나라의 제일가는 권력자, 슈프라켄이 곧 왕위에 오른다는 소문이었다. 즉위는 언제나 죽음에서 비롯되는 행사였다. 거기에 현 노스 폰 프로스티의 국왕이 병 하나 없이 건강하다는 점을 더하면 감히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려야 할 단어들의 나열이었다. 그리고 현실은 그와 완벽하게 반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세상에 문제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특히 이런 식으로 권력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라면 알렉세이는 진저리 치게 싫었다. 왕의 자식으로 태어난 이상 숙명이나 다름없는 그것에 질려버렸다 해도 좋았다. 왕족이라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은 삶이여서 소중한 건 목숨뿐인데, 왕족이라 가장 어려운 게 그 목숨 하나 지키기였으니, 어떻게 지긋지긋해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역겨운 지겨움을 이겨내고 항상 삶을 영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알렉세이였다. 단적으로 동토에서 가장 힘 있는 피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후계는 커녕 누구 하나 곁에 두지 않는 모습이 그랬다.
그런 분명한 사실을 마하르가 몰랐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비록 외골수 같은 면이 있는 마하르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알렉세이가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면서도 굳이 그의 안식처에 물의의 씨앗을 심고자 온 것이 분명했다. 그에 알렉세이는 속이 끓었다. 동시에 마하르에게 있어서 이 모든 행위가 물의가 아닌 정의임을 아는 자신이 싫었다. 앎의 뒤에는 따라붙는 이해가 미웠다.
방에 도착한 알렉세이는 목을 죄이는 듯한 타이를 잡아끌렀다.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었다.
"모니카."
알렉세이의 부름에 복도 한구석 창가에서 가죽옷을 손질하던 어린 종자가 고개를 들었다. 알렉세이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바닥에 붙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좁은 폭에 낮은 걸음걸이였다. 마침 갈이입은 옷마저 짙은 밤색이라 막 동면에서 깨어난 곰을 연상시켰다.
"형님은?"
"마하르님이라면 일광욕실에 계십니다."
"이 날씨에?"
알렉세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모니카는 타당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눈을 돌려 바라본 창밖이 어둑했다. 해가 지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빛을 찾기가 어려웠다. 모니카가 다시 알렉세이를 보았을 때, 그는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표정으로 보건대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적어도 알렉세이 본인에게는 좋지 않은 일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녀의 주인이 기분 좋아 보였던 적이 손에 꼽았으므로 모니카는 신경을 끊고 하던 일에 마저 하고자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이 닿는 일은 없었다.
"잠깐 따라와."
모니카는 묵묵히 일어서 알렉세이를 따랐다. 그렇게 알렉세이는 거의 멈춰 선 것이나 마찬가지인 걸음으로 성주의 의무를 다하고자 객을 찾았다. 햇빛은 없고 난로의 열기만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온실이었다. 아무리 왕족이라 하더라도 노스 폰 프로스티의 여건상 실내에서 풀과 꽃을 키우는 것은 정도를 넘는 사치였기에 그저 작은 티테이블과 난로만이 존재하는 온실은 황량했다. 보통 해가 뜨지 않는 날은 아무도 이곳을 찾지 않았고 며칠 간의 궂은 날씨로 관리인들조차 이곳을 방치했기에 그 스산함은 배가 되었다.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존재는 오직 마하르 뿐이었다. 분홍빛 눈동자에 불길이 비쳐 보석처럼 반짝였다. 본디 빛이 없어도 아름다운 사내는 타오르는 불과 함께하니 바다 건너 온화한 땅에서 섬긴다는 전쟁의 신과 같이 보였다. 경첩이 접히는 소리가 유리관 안에 울리자 미청년은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늦었잖아."
크게 타박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알렉세이는 온실 밖에서 한숨짓던 것이 거짓인 양, 방긋 웃으며 손끝으로 옷깃을 훑었다.
"잘 보이고 싶었거든요."
꽤 장난스러운 모습에 마하르도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눈이 모니카에게 닿자 이내 얼굴을 굳혔다. 마하르는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가 손을 옮겨 제 앞에 찻잔을 들어 올렸다.
"알렉세이, 여기 잔이 하나밖에 없어. 네 게 필요하겠는데."
"저는 괜찮습니다. 목마르지도 않고요."
"그럼 천천히 다녀와도 되겠군. 알렉세이의 것을 준비해 줘. 들었듯이 급할 필요는 없어."
모니카는 알렉세이의 눈치를 보았고 알렉세이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며 다녀오라며 손짓했다. 모니카가 명을 이행하기 위해 온실을 나섰다. 그대로 알렉세이는 문 앞에서 서있자 마하르가 말했다.
"뭐 해? 앉아."
알렉세이는 거친 바닥에 의자를 끌었다. 앉고 싶지 않은 기색이 역력한 손이 등받이 위에 과하게 힘이 들어간 채 얹어져 있었다. 알렉세이가 답지 않게 마하르를 똑바로 응시했다.
"햇빛도 없는데 춥지 않으십니까. 안으로 들어가시죠."
"난로를 피웠잖아. 춥기보다는 네가 늦어서 외로웠지."
웃으며 그렇게 말하니 알렉세이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단둘밖에 없는 이 온실에 자신이 잡아끈 의자에 앉을 수밖에. 마하르의 잘생기기 그지없는 미소가 짜증 난다고 알렉세이는 생각했다.
"그래도 얼굴 보니 좋네."
사람의 마음도 모르고 좋다 했다.
"잘 지내고 있던 것 같고."
그 잘 지냄이라는 것을 망치러 와 놓고 마하르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 화를 낼 알렉세이가 아니었다. 그럴만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저야 항상 그렇죠. 형님께서도 잘 지내셨습니까?"
"글쎄, 어땠을 것 같아?"
"꽤 좋아 보이십니다만."
나름 신경 쓰는 척, 알렉세이는 몸을 뒤로 젖히고 마하르를 훑어보았다.
"그래 보여?"
"아닌가요?"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알렉세이는 그런 냉정한 의문이 아닌 걱정의 말을 건넸을 터였다. 눈앞에 마하르는 여전히 곧아 보였으나 육체의 강인함이 감출 수 없을 만큼 얼굴이 위태로움으로 가득했다. 마하르는 무거운 숨을 아래로 내뱉으며 의미 없이 마른 입가를 한 번 쓸었다.
"별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그냥 그렇게 보인다면 다행인 거지."
다시 고개를 든 마하르가 어두워 보였다. 알렉세이는 애써 날이 흐려서 그런 것뿐이라고 넘어가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마하르가 쉽게 말할 수 있는 상황 따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말을 어렵게 하시는군요."
알렉세이는 또 한 번 모르는 척을 했다. 동시에 마하르의 이가 갈렸다.
"하, 이 망할 거짓말쟁이 자식.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잖아. 내가 왜 왔는지도."
"......지나가다 들렸다고요."
알렉세이를 향한 눈이 불처럼 타오르고 있어서 알렉세이는 감히 피하지 못하고 그 불안한 불길을 마주하며 말을 골랐다.
"어디를 가던 중이었습니까."
"오블리아나."
"그건......."
"소문 때문에."
알렉세이가 입을 꾹 다물었다. 가능하다면 귀도 막고 싶었다. 그에 마하르가 웃었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씁쓸해 보였다.
"소문이 마음에 들지 않나 봐, 알렉세이."
"소문은 소문일 뿐입니다. 게다가 거짓된 소문이라면 좋아할 이유가 없죠."
"내겐 확신이 있어. 곧 네게도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거야. 그때가 되면 너도."
마하르가 몸을 앞으로 내밀어가며 빠르게 말하던 참이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온실의 문이 열렸다. 모니카였다. 모니카는 작은 도자기 찻잔을 들고 있었다. 조용하고 태연하게 고개를 숙이고 온실로 발을 들인 모니카였으나 마하르는 그녀의 숨이 작지만 고르지 않음을 알았다.
"발걸음이 빠르네."
모니카는 아무 말 없이 찻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다음 명령을 기다리며 한 걸음 물러서 자리를 잡고 섰다. 알렉세이는 모니카에게 고개를 까닥여 감사를 표했다. 마하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하늘이 잿빛이야."
"네, 눈이."
"내일은 비가 오면 좋겠어."
마하르가 돌아서 알렉세이를 응시했다.
"곧 여름이잖아."
그의 눈이, 말이 어쩐지 간절하게 느껴졌다.
"비가 올까? 알렉세이."
노스폰 프로스티에 비가 오는 일은 없었다. 날이 따뜻해짐과 동시에 건기가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여름이 오기 직전 마지막 눈을 흩뿌리고 나면 다시 겨울이 오기까지 메마른 몇 달간 녹은 눈 버티는 것이 노스 폰 프로스티 국민의 삶이었다.
'눈이 올 겁니다. 항상 그랬잖습니까.'
하지만 그 말을 굳이 입 밖으로 내는 일은 없었다. 그저 글쎄요. 하고 짧게 한마디로 말끝을 늘였을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마하르가 떠났다. 그가 가는 길에 눈이 쌓이고 수많은 눈송이가 그의 어깨를 짓누르듯이 내려앉았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비가 오는 일은 없었다.
다만 얼어붙은 동토에 불길이 치솟을 낌새가 일렁이고 있었다.
마하르에게서 밀서가 왔다. 그는 자신의 확신을 보였고 자식 된 도리를 논하며 슈프라켄의 야망을 저지하는 데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어릴 적 교육받은 충성심에 대한 가치를 떠오르게 하는 글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알렉세이는 아버지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물론 그가 비참해진다면 아들로서 슬픔이 없지는 않겠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 아래에 사라진 슬픔일 뿐이었다. 목숨을 걸 가치는 없었다. 어쨌든 삶은 슬픔보다 긴 법이지 않던가. 적어도 알렉세이에게는 그랬다.
"나는 함께하지 않겠다고 전해라."
왜인지 그 말을 하며 영지의 사람들이, 모니카가 떠올랐다. 쓴웃음이 났다. 아무래도 소중한 게 자신의 목숨만은 아니었나 보다.
"대신 중립을 지키겠다고도."
알렉세이는 탁자 위 촛대에 밀서를 태웠다. 긴 내용은 없었기에 금방 재만 남았다.
"이게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군."
알렉세이랑 모니카 과거 더 내놔... 아니다 다시 운영해주는 건 안바라니까 섭종까지 컨텐츠라도 스팀에 올려놓으라고 이 자식들아ㅠㅠㅠㅠㅠ
소설체ㅈㅇ
날조ㅈㅇ
캐붕ㅈㅇ
천성이 그런 것인지, 주변의 끝없는 압박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 유약하기 그지없는 왕이 있었다. 그런 왕을 재능에서나 인망에서나 진작에 뛰어넘어 이미 왕좌에 오른 듯 구는 그의 장자, 그리고 도의를 내세우며 그런 장자와 맞서려는 차남, 여기까지가 노스 폰 프로스티 왕가 역사서 한 단락을 차지할 주역이다. 무기력하고 무념한 삼남, 알렉세이는 그저 방관자로서 부정적인 말 한마디조차 안 남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흔히 엑소스 대륙 사람들이 노스 폰 프로스티에 대해 착각하는 점이 하나 있다. 대륙 최동부이자 최북부에 위치하는 노스 폰 프로스티는 그 이름처럼 얼어붙어 1년 내내 겨울인 나라라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노스 폰 프로스티에도 그 나름의 4계절이 있다. 믿기지 않게도 봄과 가을뿐 아니라 그사이에 여름도 존재한다는 말이다. 물론 여름이라 해도 그린랜드의 한겨울에 못 미치게 기온이 낮았으며 함부로 옷 두께를 줄였다가는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었지만 어쨌든 눈은 녹았다. 그렇게 눈이 녹을 시기가 다가올 쯤에 마하르가 알렉세이를 찾아왔다.
가정이 따로 없는 알렉세이는 형제의 방문을 반기는 편이었다. 따라서 여느 때와 같이 웃은 얼굴로 마하르를 맞이했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다르게 마음속까지 반가움으로 채울 수는 없었다. 인사를 나누기도 전, 마하르가 던진 말에서 그의 방문이 단순히 가족 간의 만남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지나가다 들렸어. 소문은, 들었는지 모르겠군."
진지한 말에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런 마하르를 보며 말없이 미소 지은 알렉세이는 소문에 대해 되묻기보단 입을 꾹 다문 채 그를 껴안기를 택했다. 그리고서 시종을 불러 그에게 방을 안내해주라 이르는 게 다였다. 알렉세이는 마하르로부터 등을 돌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노스 폰 프로스티는 넓지만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확실하게 권력밖에 서기 위해 소문의 진위가 밝혀지기 전에 적절한 대응은 필수였다. 하지만 마하르가 말하는 소문은 너무나 공공연하여 소문이라기보다는 기정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그 확연함 때문에 오히려 대응을 하면 문제가 되는 부류였다. 그들의 형이자 나라의 제일가는 권력자, 슈프라켄이 곧 왕위에 오른다는 소문이었다. 즉위는 언제나 죽음에서 비롯되는 행사였다. 거기에 현 노스 폰 프로스티의 국왕이 병 하나 없이 건강하다는 점을 더하면 감히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려야 할 단어들의 나열이었다. 그리고 현실은 그와 완벽하게 반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세상에 문제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특히 이런 식으로 권력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라면 알렉세이는 진저리 치게 싫었다. 왕의 자식으로 태어난 이상 숙명이나 다름없는 그것에 질려버렸다 해도 좋았다. 왕족이라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은 삶이여서 소중한 건 목숨뿐인데, 왕족이라 가장 어려운 게 그 목숨 하나 지키기였으니, 어떻게 지긋지긋해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역겨운 지겨움을 이겨내고 항상 삶을 영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알렉세이였다. 단적으로 동토에서 가장 힘 있는 피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후계는 커녕 누구 하나 곁에 두지 않는 모습이 그랬다.
그런 분명한 사실을 마하르가 몰랐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비록 외골수 같은 면이 있는 마하르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알렉세이가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면서도 굳이 그의 안식처에 물의의 씨앗을 심고자 온 것이 분명했다. 그에 알렉세이는 속이 끓었다. 동시에 마하르에게 있어서 이 모든 행위가 물의가 아닌 정의임을 아는 자신이 싫었다. 앎의 뒤에는 따라붙는 이해가 미웠다.
방에 도착한 알렉세이는 목을 죄이는 듯한 타이를 잡아끌렀다.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었다.
"모니카."
알렉세이의 부름에 복도 한구석 창가에서 가죽옷을 손질하던 어린 종자가 고개를 들었다. 알렉세이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바닥에 붙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좁은 폭에 낮은 걸음걸이였다. 마침 갈이입은 옷마저 짙은 밤색이라 막 동면에서 깨어난 곰을 연상시켰다.
"형님은?"
"마하르님이라면 일광욕실에 계십니다."
"이 날씨에?"
알렉세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모니카는 타당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눈을 돌려 바라본 창밖이 어둑했다. 해가 지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빛을 찾기가 어려웠다. 모니카가 다시 알렉세이를 보았을 때, 그는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표정으로 보건대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적어도 알렉세이 본인에게는 좋지 않은 일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녀의 주인이 기분 좋아 보였던 적이 손에 꼽았으므로 모니카는 신경을 끊고 하던 일에 마저 하고자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이 닿는 일은 없었다.
"잠깐 따라와."
모니카는 묵묵히 일어서 알렉세이를 따랐다. 그렇게 알렉세이는 거의 멈춰 선 것이나 마찬가지인 걸음으로 성주의 의무를 다하고자 객을 찾았다. 햇빛은 없고 난로의 열기만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온실이었다. 아무리 왕족이라 하더라도 노스 폰 프로스티의 여건상 실내에서 풀과 꽃을 키우는 것은 정도를 넘는 사치였기에 그저 작은 티테이블과 난로만이 존재하는 온실은 황량했다. 보통 해가 뜨지 않는 날은 아무도 이곳을 찾지 않았고 며칠 간의 궂은 날씨로 관리인들조차 이곳을 방치했기에 그 스산함은 배가 되었다.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존재는 오직 마하르 뿐이었다. 분홍빛 눈동자에 불길이 비쳐 보석처럼 반짝였다. 본디 빛이 없어도 아름다운 사내는 타오르는 불과 함께하니 바다 건너 온화한 땅에서 섬긴다는 전쟁의 신과 같이 보였다. 경첩이 접히는 소리가 유리관 안에 울리자 미청년은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늦었잖아."
크게 타박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알렉세이는 온실 밖에서 한숨짓던 것이 거짓인 양, 방긋 웃으며 손끝으로 옷깃을 훑었다.
"잘 보이고 싶었거든요."
꽤 장난스러운 모습에 마하르도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눈이 모니카에게 닿자 이내 얼굴을 굳혔다. 마하르는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가 손을 옮겨 제 앞에 찻잔을 들어 올렸다.
"알렉세이, 여기 잔이 하나밖에 없어. 네 게 필요하겠는데."
"저는 괜찮습니다. 목마르지도 않고요."
"그럼 천천히 다녀와도 되겠군. 알렉세이의 것을 준비해 줘. 들었듯이 급할 필요는 없어."
모니카는 알렉세이의 눈치를 보았고 알렉세이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며 다녀오라며 손짓했다. 모니카가 명을 이행하기 위해 온실을 나섰다. 그대로 알렉세이는 문 앞에서 서있자 마하르가 말했다.
"뭐 해? 앉아."
알렉세이는 거친 바닥에 의자를 끌었다. 앉고 싶지 않은 기색이 역력한 손이 등받이 위에 과하게 힘이 들어간 채 얹어져 있었다. 알렉세이가 답지 않게 마하르를 똑바로 응시했다.
"햇빛도 없는데 춥지 않으십니까. 안으로 들어가시죠."
"난로를 피웠잖아. 춥기보다는 네가 늦어서 외로웠지."
웃으며 그렇게 말하니 알렉세이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단둘밖에 없는 이 온실에 자신이 잡아끈 의자에 앉을 수밖에. 마하르의 잘생기기 그지없는 미소가 짜증 난다고 알렉세이는 생각했다.
"그래도 얼굴 보니 좋네."
사람의 마음도 모르고 좋다 했다.
"잘 지내고 있던 것 같고."
그 잘 지냄이라는 것을 망치러 와 놓고 마하르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 화를 낼 알렉세이가 아니었다. 그럴만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저야 항상 그렇죠. 형님께서도 잘 지내셨습니까?"
"글쎄, 어땠을 것 같아?"
"꽤 좋아 보이십니다만."
나름 신경 쓰는 척, 알렉세이는 몸을 뒤로 젖히고 마하르를 훑어보았다.
"그래 보여?"
"아닌가요?"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알렉세이는 그런 냉정한 의문이 아닌 걱정의 말을 건넸을 터였다. 눈앞에 마하르는 여전히 곧아 보였으나 육체의 강인함이 감출 수 없을 만큼 얼굴이 위태로움으로 가득했다. 마하르는 무거운 숨을 아래로 내뱉으며 의미 없이 마른 입가를 한 번 쓸었다.
"별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그냥 그렇게 보인다면 다행인 거지."
다시 고개를 든 마하르가 어두워 보였다. 알렉세이는 애써 날이 흐려서 그런 것뿐이라고 넘어가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마하르가 쉽게 말할 수 있는 상황 따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말을 어렵게 하시는군요."
알렉세이는 또 한 번 모르는 척을 했다. 동시에 마하르의 이가 갈렸다.
"하, 이 망할 거짓말쟁이 자식.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잖아. 내가 왜 왔는지도."
"......지나가다 들렸다고요."
알렉세이를 향한 눈이 불처럼 타오르고 있어서 알렉세이는 감히 피하지 못하고 그 불안한 불길을 마주하며 말을 골랐다.
"어디를 가던 중이었습니까."
"오블리아나."
"그건......."
"소문 때문에."
알렉세이가 입을 꾹 다물었다. 가능하다면 귀도 막고 싶었다. 그에 마하르가 웃었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씁쓸해 보였다.
"소문이 마음에 들지 않나 봐, 알렉세이."
"소문은 소문일 뿐입니다. 게다가 거짓된 소문이라면 좋아할 이유가 없죠."
"내겐 확신이 있어. 곧 네게도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거야. 그때가 되면 너도."
마하르가 몸을 앞으로 내밀어가며 빠르게 말하던 참이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온실의 문이 열렸다. 모니카였다. 모니카는 작은 도자기 찻잔을 들고 있었다. 조용하고 태연하게 고개를 숙이고 온실로 발을 들인 모니카였으나 마하르는 그녀의 숨이 작지만 고르지 않음을 알았다.
"발걸음이 빠르네."
모니카는 아무 말 없이 찻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다음 명령을 기다리며 한 걸음 물러서 자리를 잡고 섰다. 알렉세이는 모니카에게 고개를 까닥여 감사를 표했다. 마하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하늘이 잿빛이야."
"네, 눈이."
"내일은 비가 오면 좋겠어."
마하르가 돌아서 알렉세이를 응시했다.
"곧 여름이잖아."
그의 눈이, 말이 어쩐지 간절하게 느껴졌다.
"비가 올까? 알렉세이."
노스폰 프로스티에 비가 오는 일은 없었다. 날이 따뜻해짐과 동시에 건기가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여름이 오기 직전 마지막 눈을 흩뿌리고 나면 다시 겨울이 오기까지 메마른 몇 달간 녹은 눈 버티는 것이 노스 폰 프로스티 국민의 삶이었다.
'눈이 올 겁니다. 항상 그랬잖습니까.'
하지만 그 말을 굳이 입 밖으로 내는 일은 없었다. 그저 글쎄요. 하고 짧게 한마디로 말끝을 늘였을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마하르가 떠났다. 그가 가는 길에 눈이 쌓이고 수많은 눈송이가 그의 어깨를 짓누르듯이 내려앉았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비가 오는 일은 없었다.
다만 얼어붙은 동토에 불길이 치솟을 낌새가 일렁이고 있었다.
마하르에게서 밀서가 왔다. 그는 자신의 확신을 보였고 자식 된 도리를 논하며 슈프라켄의 야망을 저지하는 데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어릴 적 교육받은 충성심에 대한 가치를 떠오르게 하는 글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알렉세이는 아버지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물론 그가 비참해진다면 아들로서 슬픔이 없지는 않겠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 아래에 사라진 슬픔일 뿐이었다. 목숨을 걸 가치는 없었다. 어쨌든 삶은 슬픔보다 긴 법이지 않던가. 적어도 알렉세이에게는 그랬다.
"나는 함께하지 않겠다고 전해라."
왜인지 그 말을 하며 영지의 사람들이, 모니카가 떠올랐다. 쓴웃음이 났다. 아무래도 소중한 게 자신의 목숨만은 아니었나 보다.
"대신 중립을 지키겠다고도."
알렉세이는 탁자 위 촛대에 밀서를 태웠다. 긴 내용은 없었기에 금방 재만 남았다.
"이게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군."
알렉세이랑 모니카 과거 더 내놔... 아니다 다시 운영해주는 건 안바라니까 섭종까지 컨텐츠라도 스팀에 올려놓으라고 이 자식들아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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