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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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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계 아닌 궁중물
과거의 이야기 3
그로부터 얼마후에 강징은 가무에 능한 선생을 초빙해서 노래와 춤을 배우기 시작했어. 노래는 곧잘 했지만 춤은 배우는게 무척 더뎠음. 귀족 가문의 여식들은 대개 십세 전후로 춤을 배우는데 강징은 춤을 배운적이 없었거든. 춤을 배우고자 했을땐 다른 이들보다 늦은 나이인데다가 몸집이 커져서 그런지 습득이 더디고 자꾸만 발이 꼬여서 넘어지기 일쑤였음. 밤잠을 줄여가며 연습에 매진을 했는데도 원체 어려운 춤이다보니 쉽게 늘지가 않았지. 황제의 탄일때 춤을 추는건 포기해야 싶다가도 은애하는 낭군에게 기예에 능한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쉽게 단념을 하지 못함. 황제의 탄일이 보름도 채 남지 않은 어느날에 앞뜰에서 강아지와 놀고 있는데 강아지가 어디론가 가더니 종달새 새끼 한마리를 물고 왔음. 그걸 보고 기겁해서 입에 든걸 뱉게 해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니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어. 이걸 어찌 해야 하나 싶어서 일단 영견으로 새의 사체를 감쌈. 강징은 화단에 새를 묻어주려고 뒷뜰로 향했는데 근처에 작게 삐이이하는 소리가 나서 보니 다른 새끼 한마리가 바닥에 떨어져서 울고 있었음. 나무에 있는 둥지에서 떨어진 모양이라 이대로 두면 다른 짐승이 물어가거나 죽을게 분명해서 고민에 잠김. 그리고 잠시후에 강징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새끼를 향낭에 넣고는 치마를 걷어올린 다음에 나무에 오르기 시작했어. 뒷뜰의 나무가 별로 높지 않으니 조심해서 오르면 괜찮겠지 싶은 마음에 나무에 올랐다가 썩은 나뭇가지를 밟고 미끄러지는 바람에 땅으로 떨어짐.
그 시각 황제는 태후의 궁에 문안을 들었다가 강징의 녹두패를 만드는 문제로 말씨름을 함. 태후는 열다섯이면 마냥 어린 나이도 아니니 이제는 시침을 들어도 된다는 입장이었고 황제는 아직 어리니 성년이 되면 그때에 시침을 들게 하자는 입장이었음. 태후가 귀비가 입궁한지 벌써 두해가 되었는데 아직 시침을 들기전이라 다른 비빈들이 알게 모르게 업신여긴다고 귀비를 생각해서라도 초야는 치뤄야한다고 말함. 황제가 영 내켜하지 않는듯 하자 태후가 귀비가 여인이 아니어서 마뜩찮은거냐고 물음. 황제가 그 말에 웃으며 사내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후궁으로 들이지도 않았을거라고 대답을 했어. 태후가 그럼 전귀비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거냐고 묻는데 황제가 당황스러운듯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냐고 물음. 그러곤 얼결에 전귀비의 미색이 육궁에서 제일인것은 삼척동자가 다 아는 사실인데라고 말을 했다가 태후가 웃음을 터뜨려서 민망해짐. 태후가 영견으로 입을 가리며 웃다가 그럼 성애의 상대로는 느껴지지는 않냐고 묻는데 황제가 굳은 얼굴로 아닙니다라고 하더니 모후께 그런 이야기까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함. 태후가 한숨을 쉬면서 황제가 귀비를 아끼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귀비를 비빈으로 대해야지 어린 아우 대하듯 해선 안된다고 타일렀어. 황제가 한번도 그리 대한적이 없다고 말을 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 이만 물러가보겠다고 자리를 뜸. 그때 승건궁의 태감이 달려와 전귀비께서 나무에서 떨어지셔서 의식 불명 상태라고 고함. 황제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서는 승건궁이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음.
강징은 머리가 깨어질듯이 아파서 끙끙 앓으며 눈을 떴다가 황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려보고 있어서 놀람. 황제가 강징이 정신을 차린것을 보고 품안 가득 끌어안고는 다행이라고 계속 되뇌이다가 밖을 향해 당장 태의를 부르라고 소리쳤음. 잠시후에 태의가 와서 진맥을 한 후에 몇가지 질문을 하고 다리나 팔을 움직여보라고 하더니 요행으로 크게 다치신 곳은 없다고 아뢰었음. 며칠 정도 정양을 하면 괜찮아지실거라는 말과 함께 탕약을 지어올리겠다고 하고 물러감. 강징은 황제의 눈치를 살피다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무에 올라갔냐는 말에 잔뜩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아기새가 나무에서 떨어져서 둥지에 올려주려고 했다고 했어. 황제가 그 말을 듣고 기가 찬지 한숨을 쉬고는 그러다 크게 다치면 어쩌려고 했냐며 버럭 화를 냈음. 강징은 처음 듣는 노호에 움찔해서 고개를 숙이고 심려를 끼쳐드려서 송구하다고 말하고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잘못을 빌었음. 황제가 그런 강징을 보고 마음이 복잡한듯 깊은 한숨을 쉬고는 손을 붙잡음. 그리고는 얼굴을 들게 하고는 짐이 널 탓하려는게 아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그런것이니 울지 말라고 달램. 강징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얼굴에 난 상처가 아픈지 인상을 찌푸림. 황제가 상궁에게 고약을 가져오라고 일러서 직접 손에 고약을 묻혀 발라주는데 얼굴 곳곳에 생채기가 난걸 보고 못마땅한듯 혀를 참. 고운 얼굴에 흉이라도 지면 어쩌냐며 몹시 속상해 할거야. 강징이 그 말을 듣고는 신첩의 용모가 고운편이냐고 묻는데 황제가 콧등을 톡치며 면경도 안보냐고 어이없어 함. 강징이 그 말을 듣고 얼굴이 붉어져선 정원에 핀 모란보다도요? 하고 물으니 황제가 그래하고 웃는데 가슴이 두근두근거림. 강징이 배시시 웃다가 갑자기 시무룩해져서 품에 안김. 황제가 왜 그러느냐고 묻는데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폐하의 탄일 연회때 가무를 선보일수 없어서 속상하다는 말을 하려다가 말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서 그러는거라고 둘러댔어.
강징은 그날 밤에도 황제와 함께 잠에 들었다가 잠에서 깼는데 황제가 제 얼굴을 만지는 것을 느끼곤 계속 자는척을 했음. 황제가 혼잣말을 하는 것을 듣고 울컥 눈물이 치밀었지만 꾹 참았어. 아징 너마저 잃으면 짐이 이 가혹한 세상을 어찌 살겠느냐. 그러니 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말라고 한숨처럼 늘어놓는 말에 그때 처음으로 안도감을 느꼈겠지. 자신을 향한 마음이 연심은 아니지만 언행 하나하나가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왜 이리 서글픈걸까. 강징은 잠결인척 뒤척이면서 황제의 품에 안겨들었어. 헌앙한 내 낭군. 그대의 마음을 가질수만 있다면 풀뿌리를 캐어먹고 넝마를 걸치는 곤궁한 삶을 살아도 좋을텐데. 강징은 속으로 꾸역꾸역 하고 싶은 말들을 삼키며 잠을 청했음.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후에 황제에게 그동안 몰래 가무를 익히고 있었단 사실을 들키고야 말았음. 황제는 승건궁의 궁녀에게 귀비가 배우고 있던 춤을 재현해보라고 했고 그 춤을 보는 순간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가무를 가르친 선생을 신형사로 끌고 가서 장을 치라고 명함. 강징이 당황해서 어찌 그러시냐고 명을 거두어 달라고 매달렸는데 황제가 선생이 가르친 춤이 청루의 기녀들이나 추는 춤이라고 말함. 강징이 그 말을 듣고 넋이 나간채로 어찌 선생이라는 자가 제게 그런 춤을 가르칠수 있냐고 울먹였음. 신형사로 끌려간 이가 겨우 장 열대만에 무상재가 시킨 일이라고 실토를 했고 모든 일의 전말을 안 황제는 이 일에 연루된 자들을 반드시 치죄할거라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음. 무상재는 자신이 시킨 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태후와 황제는 그 말을 믿지 않았어. 결국 무상재는 윗전인 귀비의 위신을 훼손려고 했다는 죄로 답응으로 강등당하고 금족령을 받음.
그리고 그 해 황제의 탄일 연회때 강징은 춤 대신에 비파를 연주하며 비파행을 암송했음. 스스로 하는 말이 본래 경성의 사람으로 하마릉 아래 살았는데 열세 살에 비파를 배워 명성이 교방에서 제일이었고 곡을 끝내면 일찍이 비파의 명수들이 탄복했으며 꾸민 모습에 미녀들의 질투를 받았답니다. 황제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연단을 내려와 강징의 옆에 서서 오늘 밤 그대의 비파 소리를 들으니 신선의 음악을 듣는듯 하오. 사양하지 마시고 한곡 더 타시면 그대를 위해 비파의 노래를 지으리라. 나의 이 말에 감동하여 오랫동안 서 있다가 물러나 앉아 줄을 재촉해 점점 빨리 타니 처절하기가 이전 소리 같지 않아 앉아 있는 모든 사람 듣고는 얼굴 묻고 울었네. 그중에서 누가 가장 많이 눈물을 흘렸는가. 강주사마의 푸른 옷이 흠뻑 젖었네라고 시를 외움. 강징의 연주와 황제의 암송이 끝나자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가 터져나온건 당연한 일이었음. 해귀인은 제 계획과 달리 귀비에게 이목이 집중되자 일그러진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입덧 핑계를 대며 자리를 떴음. 그날 밤 강징은 비파는 언제 배웠냐는 황제의 물음에 후궁으로 간택되었을때 선생을 초빙해서 배운것이라고 어설픈 솜씨지만 폐하를 위해 연주해드릴수 있어서 무척 기쁘다고 대답했음. 황제가 짐이 비파행을 좋아하는건 어찌 알았냐고 신기해하기에 폐하께서 백거이의 비파행을 좋아하시는건 고소 사람들이라면 모두 다 아는 사실이라며 수줍은듯이 웃었지. 황제는 강징이 귀여운듯 뺨을 쓰다듬고는 앞으로 종종 연주를 해다오. 다른 이들이 있을때 말고 단둘이 있을때만. 강징이 순순히 그러겠다고 하지 않고 비파를 연주해드리면 무엇을 주실거냐고 물었는데 황제가 뭐든 다 주겠다고 할거야. 강징이 고심하는 척을 하다가 빗을 선물해달라고 하자 티가 날 정도로 표정이 굳어짐. 굳은 표정을 보고 신첩이 농을 한것이라고 하고는 내년 봄 사냥때 승마를 가르쳐 달라고 했음. 황제가 승마는 위험하다고 낙마라도 하면 큰일이라며 내켜하지 않자 강징이 뭐든지 들어주신다고 하셔놓고 다 아니된다 하시면 어쩌냐고 입을 삐쭉였음. 황제가 못이기는척 알겠다고 하자 강징이 웃으면서 안겨들었어.
그 이듬해 늦봄에 해귀인은 건강한 공주를 출산했음. 해귀인은 황자의 탄생을 고대했던터라 실의에 빠졌지만 강징은 은애하는 낭군의 아이를 낳은 그녀가 그저 부러울뿐이었음. 깅징은 공주의 만월례가 있던 날에 속상한 마음에 먹지도 못하는 술을 거의 들이붓다시피 해서 마셨음. 황제의 품에 안겨있던 어린 아기를 떠올리곤 한참을 서럽게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듬. 그리고 잠시후에 황제가 승건궁에 행차했을때 강징은 술에 몹시 취해서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태였음. 황제의 품에 안겨서 한참동안이나 어리광을 부리다가 제게도 아이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말했지. 섧고 속상한 마음에 맨정신이었으면 하지 않았을 말들을 하고야 말았어. 그로부터 얼마후에 황제는 친자식처럼 생각하고 길러달라고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은 차남을 양자로 입적시켜주었음. 그 소식을 들은 태후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에 귀비가 아이를 가질수 없는 몸도 아니고 아직 어린 나이인데 양자를 들이는게 가당키나 하냐고 거세게 반대를 하고 나섰지만 강징은 황제의 차남을 대면하고 황제의 결정을 흔쾌히 받아들였어. 그리고 어떻게든 태후의 마음을 돌리려고 갖은 애를 썼음. 양자를 들이는 문제로 태후와 황제 사이가 벌어지자 강징은 자녕궁을 매일 찾아가 한시진씩 무릎을 꿇어가며 자신이 주청드린 일이라고 폐하께선 그저 제 청을 들어주신것뿐이라고 빌고 또 빌어서 겨우 태후로부터 허락을 받았음. 하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무엇 하나 쉬운 법이 없었음. 잠저에서 유모와 태감의 손에서만 자란 아이는 궁중에 들어온 날부터 낯가림이 무척 심해서 곁을 주지 않았음. 강징은 유모의 뒤에 숨어서 눈치만 살피던 아이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보고 또래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목검이나 서적들을 선물로 줘봤지만 좀처럼 곁을 내어주지 않았지. 결국 또 한동안 쉽게 해소가 되지 않는 근심과 걱정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야만 했음.
강징은 배나무 밑에서 유모와 함께 놀고 있는 망기를 가만히 보다가 토끼를 끌어안고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음. 제가 친모가 아니어서 좀처럼 정을 붙이지 못하는걸까. 유모가 없으면 곁에 오지 않을 정도라 근심이 사라지지 않았어. 어떻게 하면 아이의 마음을 얻을수 있을까 하다가 토끼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사육장에서 토끼를 받아왔는데 과연 좋아할지 걱정이었음. 강징이 한숨을 푹 쉬고 토끼를 안은채로 망기가 있는 배나무로 향했어. 아잠하고 아이의 애칭을 부르곤 아직 눈도 못뜬 어린 토끼를 내밀었어. 들짐승의 공격으로 가족을 잃고 혼자 된 아기인데 아잠이 돌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눈이 커다래지더니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짐. 토끼를 품에 안고 어루만지느라 정신이 없다가 유모가 모비께 감사 인사를 드리셔야지요 하니 그제야 감사합니다하고 꾸벅 인사를 함.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보는게 처음이라 너무나도 기쁜 마음에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남. 침전에 들어와 서투른 솜씨로 아이의 옷을 짓는데 열중하고 있는데 망기가 들어와선 뭔가 할말이 있는듯 빤히 쳐다보았음. 한참후에야 쭈볏거리며 어머니하고 소매를 붙잡는게 아니겠음. 강징은 어머니라는 말을 듣자마자 너무 놀라고 기쁜 나머지 심장이 터질것만 같았음. 저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어린것이 너무 사랑스럽고 그 행동이 기꺼워서 손에 쥔 천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제 품에 와락 끌어안았어. 강징은 제 품에 안긴 아이에게 제가 가진 모든것을 다 주겠노라고 다짐했음.
청형군강징 망기강징 망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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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얼마후에 강징은 가무에 능한 선생을 초빙해서 노래와 춤을 배우기 시작했어. 노래는 곧잘 했지만 춤은 배우는게 무척 더뎠음. 귀족 가문의 여식들은 대개 십세 전후로 춤을 배우는데 강징은 춤을 배운적이 없었거든. 춤을 배우고자 했을땐 다른 이들보다 늦은 나이인데다가 몸집이 커져서 그런지 습득이 더디고 자꾸만 발이 꼬여서 넘어지기 일쑤였음. 밤잠을 줄여가며 연습에 매진을 했는데도 원체 어려운 춤이다보니 쉽게 늘지가 않았지. 황제의 탄일때 춤을 추는건 포기해야 싶다가도 은애하는 낭군에게 기예에 능한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쉽게 단념을 하지 못함. 황제의 탄일이 보름도 채 남지 않은 어느날에 앞뜰에서 강아지와 놀고 있는데 강아지가 어디론가 가더니 종달새 새끼 한마리를 물고 왔음. 그걸 보고 기겁해서 입에 든걸 뱉게 해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니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어. 이걸 어찌 해야 하나 싶어서 일단 영견으로 새의 사체를 감쌈. 강징은 화단에 새를 묻어주려고 뒷뜰로 향했는데 근처에 작게 삐이이하는 소리가 나서 보니 다른 새끼 한마리가 바닥에 떨어져서 울고 있었음. 나무에 있는 둥지에서 떨어진 모양이라 이대로 두면 다른 짐승이 물어가거나 죽을게 분명해서 고민에 잠김. 그리고 잠시후에 강징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새끼를 향낭에 넣고는 치마를 걷어올린 다음에 나무에 오르기 시작했어. 뒷뜰의 나무가 별로 높지 않으니 조심해서 오르면 괜찮겠지 싶은 마음에 나무에 올랐다가 썩은 나뭇가지를 밟고 미끄러지는 바람에 땅으로 떨어짐.
그 시각 황제는 태후의 궁에 문안을 들었다가 강징의 녹두패를 만드는 문제로 말씨름을 함. 태후는 열다섯이면 마냥 어린 나이도 아니니 이제는 시침을 들어도 된다는 입장이었고 황제는 아직 어리니 성년이 되면 그때에 시침을 들게 하자는 입장이었음. 태후가 귀비가 입궁한지 벌써 두해가 되었는데 아직 시침을 들기전이라 다른 비빈들이 알게 모르게 업신여긴다고 귀비를 생각해서라도 초야는 치뤄야한다고 말함. 황제가 영 내켜하지 않는듯 하자 태후가 귀비가 여인이 아니어서 마뜩찮은거냐고 물음. 황제가 그 말에 웃으며 사내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후궁으로 들이지도 않았을거라고 대답을 했어. 태후가 그럼 전귀비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거냐고 묻는데 황제가 당황스러운듯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냐고 물음. 그러곤 얼결에 전귀비의 미색이 육궁에서 제일인것은 삼척동자가 다 아는 사실인데라고 말을 했다가 태후가 웃음을 터뜨려서 민망해짐. 태후가 영견으로 입을 가리며 웃다가 그럼 성애의 상대로는 느껴지지는 않냐고 묻는데 황제가 굳은 얼굴로 아닙니다라고 하더니 모후께 그런 이야기까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함. 태후가 한숨을 쉬면서 황제가 귀비를 아끼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귀비를 비빈으로 대해야지 어린 아우 대하듯 해선 안된다고 타일렀어. 황제가 한번도 그리 대한적이 없다고 말을 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 이만 물러가보겠다고 자리를 뜸. 그때 승건궁의 태감이 달려와 전귀비께서 나무에서 떨어지셔서 의식 불명 상태라고 고함. 황제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서는 승건궁이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음.
강징은 머리가 깨어질듯이 아파서 끙끙 앓으며 눈을 떴다가 황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려보고 있어서 놀람. 황제가 강징이 정신을 차린것을 보고 품안 가득 끌어안고는 다행이라고 계속 되뇌이다가 밖을 향해 당장 태의를 부르라고 소리쳤음. 잠시후에 태의가 와서 진맥을 한 후에 몇가지 질문을 하고 다리나 팔을 움직여보라고 하더니 요행으로 크게 다치신 곳은 없다고 아뢰었음. 며칠 정도 정양을 하면 괜찮아지실거라는 말과 함께 탕약을 지어올리겠다고 하고 물러감. 강징은 황제의 눈치를 살피다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무에 올라갔냐는 말에 잔뜩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아기새가 나무에서 떨어져서 둥지에 올려주려고 했다고 했어. 황제가 그 말을 듣고 기가 찬지 한숨을 쉬고는 그러다 크게 다치면 어쩌려고 했냐며 버럭 화를 냈음. 강징은 처음 듣는 노호에 움찔해서 고개를 숙이고 심려를 끼쳐드려서 송구하다고 말하고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잘못을 빌었음. 황제가 그런 강징을 보고 마음이 복잡한듯 깊은 한숨을 쉬고는 손을 붙잡음. 그리고는 얼굴을 들게 하고는 짐이 널 탓하려는게 아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그런것이니 울지 말라고 달램. 강징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얼굴에 난 상처가 아픈지 인상을 찌푸림. 황제가 상궁에게 고약을 가져오라고 일러서 직접 손에 고약을 묻혀 발라주는데 얼굴 곳곳에 생채기가 난걸 보고 못마땅한듯 혀를 참. 고운 얼굴에 흉이라도 지면 어쩌냐며 몹시 속상해 할거야. 강징이 그 말을 듣고는 신첩의 용모가 고운편이냐고 묻는데 황제가 콧등을 톡치며 면경도 안보냐고 어이없어 함. 강징이 그 말을 듣고 얼굴이 붉어져선 정원에 핀 모란보다도요? 하고 물으니 황제가 그래하고 웃는데 가슴이 두근두근거림. 강징이 배시시 웃다가 갑자기 시무룩해져서 품에 안김. 황제가 왜 그러느냐고 묻는데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폐하의 탄일 연회때 가무를 선보일수 없어서 속상하다는 말을 하려다가 말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서 그러는거라고 둘러댔어.
강징은 그날 밤에도 황제와 함께 잠에 들었다가 잠에서 깼는데 황제가 제 얼굴을 만지는 것을 느끼곤 계속 자는척을 했음. 황제가 혼잣말을 하는 것을 듣고 울컥 눈물이 치밀었지만 꾹 참았어. 아징 너마저 잃으면 짐이 이 가혹한 세상을 어찌 살겠느냐. 그러니 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말라고 한숨처럼 늘어놓는 말에 그때 처음으로 안도감을 느꼈겠지. 자신을 향한 마음이 연심은 아니지만 언행 하나하나가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왜 이리 서글픈걸까. 강징은 잠결인척 뒤척이면서 황제의 품에 안겨들었어. 헌앙한 내 낭군. 그대의 마음을 가질수만 있다면 풀뿌리를 캐어먹고 넝마를 걸치는 곤궁한 삶을 살아도 좋을텐데. 강징은 속으로 꾸역꾸역 하고 싶은 말들을 삼키며 잠을 청했음.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후에 황제에게 그동안 몰래 가무를 익히고 있었단 사실을 들키고야 말았음. 황제는 승건궁의 궁녀에게 귀비가 배우고 있던 춤을 재현해보라고 했고 그 춤을 보는 순간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가무를 가르친 선생을 신형사로 끌고 가서 장을 치라고 명함. 강징이 당황해서 어찌 그러시냐고 명을 거두어 달라고 매달렸는데 황제가 선생이 가르친 춤이 청루의 기녀들이나 추는 춤이라고 말함. 강징이 그 말을 듣고 넋이 나간채로 어찌 선생이라는 자가 제게 그런 춤을 가르칠수 있냐고 울먹였음. 신형사로 끌려간 이가 겨우 장 열대만에 무상재가 시킨 일이라고 실토를 했고 모든 일의 전말을 안 황제는 이 일에 연루된 자들을 반드시 치죄할거라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음. 무상재는 자신이 시킨 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태후와 황제는 그 말을 믿지 않았어. 결국 무상재는 윗전인 귀비의 위신을 훼손려고 했다는 죄로 답응으로 강등당하고 금족령을 받음.
그리고 그 해 황제의 탄일 연회때 강징은 춤 대신에 비파를 연주하며 비파행을 암송했음. 스스로 하는 말이 본래 경성의 사람으로 하마릉 아래 살았는데 열세 살에 비파를 배워 명성이 교방에서 제일이었고 곡을 끝내면 일찍이 비파의 명수들이 탄복했으며 꾸민 모습에 미녀들의 질투를 받았답니다. 황제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연단을 내려와 강징의 옆에 서서 오늘 밤 그대의 비파 소리를 들으니 신선의 음악을 듣는듯 하오. 사양하지 마시고 한곡 더 타시면 그대를 위해 비파의 노래를 지으리라. 나의 이 말에 감동하여 오랫동안 서 있다가 물러나 앉아 줄을 재촉해 점점 빨리 타니 처절하기가 이전 소리 같지 않아 앉아 있는 모든 사람 듣고는 얼굴 묻고 울었네. 그중에서 누가 가장 많이 눈물을 흘렸는가. 강주사마의 푸른 옷이 흠뻑 젖었네라고 시를 외움. 강징의 연주와 황제의 암송이 끝나자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가 터져나온건 당연한 일이었음. 해귀인은 제 계획과 달리 귀비에게 이목이 집중되자 일그러진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입덧 핑계를 대며 자리를 떴음. 그날 밤 강징은 비파는 언제 배웠냐는 황제의 물음에 후궁으로 간택되었을때 선생을 초빙해서 배운것이라고 어설픈 솜씨지만 폐하를 위해 연주해드릴수 있어서 무척 기쁘다고 대답했음. 황제가 짐이 비파행을 좋아하는건 어찌 알았냐고 신기해하기에 폐하께서 백거이의 비파행을 좋아하시는건 고소 사람들이라면 모두 다 아는 사실이라며 수줍은듯이 웃었지. 황제는 강징이 귀여운듯 뺨을 쓰다듬고는 앞으로 종종 연주를 해다오. 다른 이들이 있을때 말고 단둘이 있을때만. 강징이 순순히 그러겠다고 하지 않고 비파를 연주해드리면 무엇을 주실거냐고 물었는데 황제가 뭐든 다 주겠다고 할거야. 강징이 고심하는 척을 하다가 빗을 선물해달라고 하자 티가 날 정도로 표정이 굳어짐. 굳은 표정을 보고 신첩이 농을 한것이라고 하고는 내년 봄 사냥때 승마를 가르쳐 달라고 했음. 황제가 승마는 위험하다고 낙마라도 하면 큰일이라며 내켜하지 않자 강징이 뭐든지 들어주신다고 하셔놓고 다 아니된다 하시면 어쩌냐고 입을 삐쭉였음. 황제가 못이기는척 알겠다고 하자 강징이 웃으면서 안겨들었어.
그 이듬해 늦봄에 해귀인은 건강한 공주를 출산했음. 해귀인은 황자의 탄생을 고대했던터라 실의에 빠졌지만 강징은 은애하는 낭군의 아이를 낳은 그녀가 그저 부러울뿐이었음. 깅징은 공주의 만월례가 있던 날에 속상한 마음에 먹지도 못하는 술을 거의 들이붓다시피 해서 마셨음. 황제의 품에 안겨있던 어린 아기를 떠올리곤 한참을 서럽게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듬. 그리고 잠시후에 황제가 승건궁에 행차했을때 강징은 술에 몹시 취해서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태였음. 황제의 품에 안겨서 한참동안이나 어리광을 부리다가 제게도 아이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말했지. 섧고 속상한 마음에 맨정신이었으면 하지 않았을 말들을 하고야 말았어. 그로부터 얼마후에 황제는 친자식처럼 생각하고 길러달라고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은 차남을 양자로 입적시켜주었음. 그 소식을 들은 태후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에 귀비가 아이를 가질수 없는 몸도 아니고 아직 어린 나이인데 양자를 들이는게 가당키나 하냐고 거세게 반대를 하고 나섰지만 강징은 황제의 차남을 대면하고 황제의 결정을 흔쾌히 받아들였어. 그리고 어떻게든 태후의 마음을 돌리려고 갖은 애를 썼음. 양자를 들이는 문제로 태후와 황제 사이가 벌어지자 강징은 자녕궁을 매일 찾아가 한시진씩 무릎을 꿇어가며 자신이 주청드린 일이라고 폐하께선 그저 제 청을 들어주신것뿐이라고 빌고 또 빌어서 겨우 태후로부터 허락을 받았음. 하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무엇 하나 쉬운 법이 없었음. 잠저에서 유모와 태감의 손에서만 자란 아이는 궁중에 들어온 날부터 낯가림이 무척 심해서 곁을 주지 않았음. 강징은 유모의 뒤에 숨어서 눈치만 살피던 아이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보고 또래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목검이나 서적들을 선물로 줘봤지만 좀처럼 곁을 내어주지 않았지. 결국 또 한동안 쉽게 해소가 되지 않는 근심과 걱정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야만 했음.
강징은 배나무 밑에서 유모와 함께 놀고 있는 망기를 가만히 보다가 토끼를 끌어안고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음. 제가 친모가 아니어서 좀처럼 정을 붙이지 못하는걸까. 유모가 없으면 곁에 오지 않을 정도라 근심이 사라지지 않았어. 어떻게 하면 아이의 마음을 얻을수 있을까 하다가 토끼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사육장에서 토끼를 받아왔는데 과연 좋아할지 걱정이었음. 강징이 한숨을 푹 쉬고 토끼를 안은채로 망기가 있는 배나무로 향했어. 아잠하고 아이의 애칭을 부르곤 아직 눈도 못뜬 어린 토끼를 내밀었어. 들짐승의 공격으로 가족을 잃고 혼자 된 아기인데 아잠이 돌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눈이 커다래지더니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짐. 토끼를 품에 안고 어루만지느라 정신이 없다가 유모가 모비께 감사 인사를 드리셔야지요 하니 그제야 감사합니다하고 꾸벅 인사를 함.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보는게 처음이라 너무나도 기쁜 마음에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남. 침전에 들어와 서투른 솜씨로 아이의 옷을 짓는데 열중하고 있는데 망기가 들어와선 뭔가 할말이 있는듯 빤히 쳐다보았음. 한참후에야 쭈볏거리며 어머니하고 소매를 붙잡는게 아니겠음. 강징은 어머니라는 말을 듣자마자 너무 놀라고 기쁜 나머지 심장이 터질것만 같았음. 저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어린것이 너무 사랑스럽고 그 행동이 기꺼워서 손에 쥔 천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제 품에 와락 끌어안았어. 강징은 제 품에 안긴 아이에게 제가 가진 모든것을 다 주겠노라고 다짐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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