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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2 20:50
전편 https://hygall.com/597739079
인간은 아무리 터무니없는 일을 당해도 그것이 반복되면 적응을 하는 법이었다.
오늘도 어스름하게 눈꺼풀에 와 닿는 저녁 광선을 느끼며 깨어난 강징은 선잠이 든 상태에서 주변을 자각했다.
완전히 마음을 놓아버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리란 걸 속속들이 알고 있으니.
그리고 그 일이란 것이, 좋은 냄새가 풍기는 고운 옷자락 위에서 한바탕 잠을 자는 것이라면야.
더불어 남희신과 함께 있는 시간에도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역시나 완전히 편한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배려심 없는 모습을 보이거나, 무감정하게 굴었다면 참지 못하고 당장에 때려쳤을지 모른다.
그러나 남희신은 강징이 몇십년간 겪어 왔던 누구보다도 좋은 사람이었다.
인간은 가까워지고 보면 본래 알던 인상보다 조심성 없는 모습을 보이게 마련인데, 이 사람은 오히려 반대였다.
무척이나 어른스러운 한편으로는 여유를 잃지 않는 그의 일면을 겪으면서 강징은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우선은 저와 딴판인 존재에 대해 느끼는 거북함. 여전히 맘속에 안고 있는 부담감이라거나. 그리고는 은근한 질투심도 섞여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중에 좋은 감정도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편한 말상대였고, 믿음직한 사람이며. 또한 상냥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니.
이런 사람이 재수 없어 휘말린 일로 상처를 받아 일생을 고독하게 보낼 것인가 생각하면 안쓰러운 감정 외에도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는 이 상황도 그가 재수없어 휘말린 일 중 하나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한숨이 나왔다.
갑자기 숨을 몰아쉬며 움직였더니 가만히 있던 남희신이 알아채고 시선을 보내는 것이 느껴졌다.
강징이 휙하니 바닥에 뛰어내린 다음 쳐다보자, 남희신은 작달막한 고양이의 모습에도 예의를 잃지 않고 살짝 고개를 숙인 다음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인간으로 돌아온 강징은 얼른 옷을 꿰어 입으며, 치료만 성공하면 그가 싫다고 해도 어떻게든 산더미같은 보답을 해야겠다고 두번 세번 다짐했다.
받은 것은 반드시 돌려주어야지.
스스로의 머릿속에 엄격한 지론을 내세우는 강징은 알지 못했다.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서, 혹은 단순히 어딘가에서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마음 한 구석이 터진 듯 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끼면 친구가 된 거란 걸.
인생에서 자연스럽고 흔하게 일어나는 그 일들을 강징은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이만큼 만나 개인적인 일을 다투고, 마음을 주고 받았다면 친구가 된 것이고. 친구라면 다소 무리한 일도 서로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거라는 당연한 사실과, 감정을 몰랐다.
그래서 남희신에게 익숙해져가는 한편의 마음 속에서는 떨쳐낼 수 없는 부채감이 계속해서 따라왔다.
그래도 언뜻 그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느낄때마다, 그것이 싫지는 않았다.
의외로 택무군에게 짓궂은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도 강징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은근히 즐거웠다. 가벼운 농을 칠 정도의 재치는 있는 사람이라는 거야 전부터 알았지만, 그 속에서 새콤하게 느껴지는 심술기를 느끼곤 괜시리 들뜬 기분이 들었다.
-꽤나 잦게-만나, 그의 품 속에서 아기처럼 꾸벅꾸벅 졸고 깨는 절차를 거치고 나면 잠시간은 어색했지만. 그가 건네는 몇 마디를 듣다 보면 금세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밤이 되어 침상에 누웠던 강징은 언뜻 아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갓 덮어쓴 이부자리가 조금 차갑다고 느꼈을 뿐인데 곧장 그의 품이 생각날 정도로 익숙해졌다는 건지. 괜시리 열적어진 강징은 뺨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만큼 남희신을 편안하게 느끼게 되었다는 뜻이니, 각성을 위해서는 이로운 상태가 아닐까.
무안한 느낌에 가능한 학문적인 쪽으로 사고를 끌어가려고 애를 써 보던 강징은 이내 한숨과 함께 놓아버렸다.
남에게 변명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었다.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마치 아이가 놀러 나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그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드는 때가 많았다.
고리타분하고 엄격한 가문의 사람이라 말을 가려야 하긴 하지만, 그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남희신과 있을 때 강징은 제가 이렇게 수다스러운 인간이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 많았다.
마침 이번에는 채의진에서 만나자고 선수를 친 것이 성공했으니. 며칠 후 그를 만날 날이 기대되었다. 아이처럼 옆으로 돌아누운 강징은 머리를 괴고서, 볼일이 다 끝나면 일전에 택무군이 언급했었던 방죽을 보여 달라고 해도 될까 이런저런 고민을 했다.
전에 없이 들뜬 기분으로 생각하다 보니 마치 남희신에게 안겨 있을 때와 같이 수마가 덮쳐왔다.
예전에는 잠자리에 늦게 들어도 불면증에 엎치락뒤치락하거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는데, 요즘은 쉽게 잠들 수 있는 것은 물론이며 악몽도 잘 꾸지 않게 되었다.
날이 좋아 볕이 점점 여물어가는 느낌이었고, 바람은 선선했다.
남희신과 나란히 걸어서 물가에 도착한 강징은 단잠을 자고난 것도 이유겠지만 아무튼 드물게 기분이 좋았다.
“그건 설계자가 아니라 설계가 다른 겁니다.”
“기능적인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저 방죽은 경작지만을 고려하여 만든 거니까요. 하지만 초래사 부근에는 홍수가 자주 나지 않습니까?”
“참으로 잘 아시는군요...”
열심히 그의 설명을 듣던 강징은, 문득 운몽의 주인된 입장에서 아니꼬운 가시가 말투에 섞여들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희신이 교교한 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잖아도 예전 초래사를 방문했을 때 위화감이 느껴져, 이리저리 개선점을 생각해 봤던 적이 있습니다만.”
“무엇 때문에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스스로의 소임에 대해 집착이 심한 강징은 금방 느꼈던 고까운 감정도 잊고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이번의 변화는 읽힌 듯, 남희신이 눈꼬리를 야릇하게 휘었다.
“저와 의론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흠. 고소 남씨의 말액을 받으신다면 알려드릴 수도 있지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내 싸해지는 눈빛을 본 남희신은 마치 새끼고양이의 코 위에 생기는 잔주름이 보이는 것 같아 웃음을 삼켰다.
강징은 불량하게 윗입술을 움찔거리며 콧숨을 내쉬었다.
그도 남희신의 속을 제법 읽게 되어, 그가 농을 치는 것뿐이지 진정 민생을 위한 비법을 숨기지는 않을 것을 안다.
그건 아무렇든지, 택무군이 저를 놀리는데 재미가 들린 것 같다는 사실에 불끈했다.
“됐습니다! 운심부지처에서 일주일이라도 사느니...”
“예, 고소의 신선이 되느니 청하의 백정이 행복하다는 말씀이시지요.”
천연덕스럽게 그가 내뱉는 말에, 운심부지처 수학으로 삶기던 시절 소년들이 우스갯소리로 지껄이던 얘기를 택무군도 알고 있었던가 하고 강징은 뜨끔했다.
“안타깝네요. 특별히 연꽃 무늬도 넣어드리려고 했습니다만.”
강징은 남희신이 살살 약을 올리듯 놀릴 때마다 욱하고 치밀었지만 자꾸 말문이 막혔다. 혀가 짧은 사람이라 재치있게 받아넘기려 해도 이럴 때에는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장난꾸러기 사형에게도 얼마나 당했던지.
“당신 친구...!”
......들은 당신이 이런 인간인 줄 아느냐.
결국 할말이 없어 유치한 소리로 반박하려던 강징은 흡 입을 다물었다.
한없이 사람이 좋은 택무군임에도 가까이 지내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수진계에서도 가장 존귀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니, 아무나 사귀기 어려울 거란 생각도 들었지만.
근엄한 얼굴의 적봉존과 함께, 훤칠하게 키가 큰 두 사내가 함께 서 있던 모습도 강징의 머릿속에서는 꽤 해묵은 기억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후에는 금광요와 함께 있는 모습이 더 잦게 보였더랬다.
그리고 관음묘 사건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막내동생처럼 치대던 섭회상도 더이상은 남희신의 곁에 서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눈 둘 곳을 모르게 된 강징이 어색한 헛기침을 했다.
다행히 남희신은 듣지 못했는지 제방을 가리키며 무척 전문적인 사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남희신의 옆모습을 바라보는 강징은 착잡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희고 단단하게 빚어져 천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듯한 얼굴. 저 얼굴 안에는 도대체 어떤 심지가 들었을지 궁금했다.
그래, 저 이는 참으로 고상하고 굳세고, 심지어는 나 같은 사람마저 감싸안을 정도로 상냥하기까지 해.
그와 가까워지게 만들어 준 우연이, 강징은 처음으로 감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각성하고 나면 도로 예의만 차리던 관계로 돌아가겠지. 나 같은 인간이 고상한 택무군의 취향에 어울릴 리 없으니까.
모처럼 귀한 지식을 털어주는 남희신의 설명이 이어졌지만, 강징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혼자만의 생각에 골몰했다.
결국,
이런 심란한 감정도 마음을 좀먹는 불행의 한가지가 아닌가.
아무리 무거운 짐을 질 때라도 역시 혼자인 편이 좋은 거다.
스쳐가는 풍경이 아름답다고 다 끌어다 방 안에 꼭꼭 가두어 가질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잠시 스쳐가는 것도 고맙게 여기고 허용된 만큼 누리자고, 강징은 부드럽게 미소짓는 남희신에게 마주 웃어 보였다.
희신강징
인간은 아무리 터무니없는 일을 당해도 그것이 반복되면 적응을 하는 법이었다.
오늘도 어스름하게 눈꺼풀에 와 닿는 저녁 광선을 느끼며 깨어난 강징은 선잠이 든 상태에서 주변을 자각했다.
완전히 마음을 놓아버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리란 걸 속속들이 알고 있으니.
그리고 그 일이란 것이, 좋은 냄새가 풍기는 고운 옷자락 위에서 한바탕 잠을 자는 것이라면야.
더불어 남희신과 함께 있는 시간에도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역시나 완전히 편한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배려심 없는 모습을 보이거나, 무감정하게 굴었다면 참지 못하고 당장에 때려쳤을지 모른다.
그러나 남희신은 강징이 몇십년간 겪어 왔던 누구보다도 좋은 사람이었다.
인간은 가까워지고 보면 본래 알던 인상보다 조심성 없는 모습을 보이게 마련인데, 이 사람은 오히려 반대였다.
무척이나 어른스러운 한편으로는 여유를 잃지 않는 그의 일면을 겪으면서 강징은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우선은 저와 딴판인 존재에 대해 느끼는 거북함. 여전히 맘속에 안고 있는 부담감이라거나. 그리고는 은근한 질투심도 섞여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중에 좋은 감정도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편한 말상대였고, 믿음직한 사람이며. 또한 상냥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니.
이런 사람이 재수 없어 휘말린 일로 상처를 받아 일생을 고독하게 보낼 것인가 생각하면 안쓰러운 감정 외에도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는 이 상황도 그가 재수없어 휘말린 일 중 하나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한숨이 나왔다.
갑자기 숨을 몰아쉬며 움직였더니 가만히 있던 남희신이 알아채고 시선을 보내는 것이 느껴졌다.
강징이 휙하니 바닥에 뛰어내린 다음 쳐다보자, 남희신은 작달막한 고양이의 모습에도 예의를 잃지 않고 살짝 고개를 숙인 다음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인간으로 돌아온 강징은 얼른 옷을 꿰어 입으며, 치료만 성공하면 그가 싫다고 해도 어떻게든 산더미같은 보답을 해야겠다고 두번 세번 다짐했다.
받은 것은 반드시 돌려주어야지.
스스로의 머릿속에 엄격한 지론을 내세우는 강징은 알지 못했다.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서, 혹은 단순히 어딘가에서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마음 한 구석이 터진 듯 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끼면 친구가 된 거란 걸.
인생에서 자연스럽고 흔하게 일어나는 그 일들을 강징은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이만큼 만나 개인적인 일을 다투고, 마음을 주고 받았다면 친구가 된 것이고. 친구라면 다소 무리한 일도 서로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거라는 당연한 사실과, 감정을 몰랐다.
그래서 남희신에게 익숙해져가는 한편의 마음 속에서는 떨쳐낼 수 없는 부채감이 계속해서 따라왔다.
그래도 언뜻 그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느낄때마다, 그것이 싫지는 않았다.
의외로 택무군에게 짓궂은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도 강징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은근히 즐거웠다. 가벼운 농을 칠 정도의 재치는 있는 사람이라는 거야 전부터 알았지만, 그 속에서 새콤하게 느껴지는 심술기를 느끼곤 괜시리 들뜬 기분이 들었다.
-꽤나 잦게-만나, 그의 품 속에서 아기처럼 꾸벅꾸벅 졸고 깨는 절차를 거치고 나면 잠시간은 어색했지만. 그가 건네는 몇 마디를 듣다 보면 금세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밤이 되어 침상에 누웠던 강징은 언뜻 아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갓 덮어쓴 이부자리가 조금 차갑다고 느꼈을 뿐인데 곧장 그의 품이 생각날 정도로 익숙해졌다는 건지. 괜시리 열적어진 강징은 뺨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만큼 남희신을 편안하게 느끼게 되었다는 뜻이니, 각성을 위해서는 이로운 상태가 아닐까.
무안한 느낌에 가능한 학문적인 쪽으로 사고를 끌어가려고 애를 써 보던 강징은 이내 한숨과 함께 놓아버렸다.
남에게 변명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었다.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마치 아이가 놀러 나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그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드는 때가 많았다.
고리타분하고 엄격한 가문의 사람이라 말을 가려야 하긴 하지만, 그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남희신과 있을 때 강징은 제가 이렇게 수다스러운 인간이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 많았다.
마침 이번에는 채의진에서 만나자고 선수를 친 것이 성공했으니. 며칠 후 그를 만날 날이 기대되었다. 아이처럼 옆으로 돌아누운 강징은 머리를 괴고서, 볼일이 다 끝나면 일전에 택무군이 언급했었던 방죽을 보여 달라고 해도 될까 이런저런 고민을 했다.
전에 없이 들뜬 기분으로 생각하다 보니 마치 남희신에게 안겨 있을 때와 같이 수마가 덮쳐왔다.
예전에는 잠자리에 늦게 들어도 불면증에 엎치락뒤치락하거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는데, 요즘은 쉽게 잠들 수 있는 것은 물론이며 악몽도 잘 꾸지 않게 되었다.
날이 좋아 볕이 점점 여물어가는 느낌이었고, 바람은 선선했다.
남희신과 나란히 걸어서 물가에 도착한 강징은 단잠을 자고난 것도 이유겠지만 아무튼 드물게 기분이 좋았다.
“그건 설계자가 아니라 설계가 다른 겁니다.”
“기능적인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저 방죽은 경작지만을 고려하여 만든 거니까요. 하지만 초래사 부근에는 홍수가 자주 나지 않습니까?”
“참으로 잘 아시는군요...”
열심히 그의 설명을 듣던 강징은, 문득 운몽의 주인된 입장에서 아니꼬운 가시가 말투에 섞여들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희신이 교교한 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잖아도 예전 초래사를 방문했을 때 위화감이 느껴져, 이리저리 개선점을 생각해 봤던 적이 있습니다만.”
“무엇 때문에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스스로의 소임에 대해 집착이 심한 강징은 금방 느꼈던 고까운 감정도 잊고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이번의 변화는 읽힌 듯, 남희신이 눈꼬리를 야릇하게 휘었다.
“저와 의론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흠. 고소 남씨의 말액을 받으신다면 알려드릴 수도 있지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내 싸해지는 눈빛을 본 남희신은 마치 새끼고양이의 코 위에 생기는 잔주름이 보이는 것 같아 웃음을 삼켰다.
강징은 불량하게 윗입술을 움찔거리며 콧숨을 내쉬었다.
그도 남희신의 속을 제법 읽게 되어, 그가 농을 치는 것뿐이지 진정 민생을 위한 비법을 숨기지는 않을 것을 안다.
그건 아무렇든지, 택무군이 저를 놀리는데 재미가 들린 것 같다는 사실에 불끈했다.
“됐습니다! 운심부지처에서 일주일이라도 사느니...”
“예, 고소의 신선이 되느니 청하의 백정이 행복하다는 말씀이시지요.”
천연덕스럽게 그가 내뱉는 말에, 운심부지처 수학으로 삶기던 시절 소년들이 우스갯소리로 지껄이던 얘기를 택무군도 알고 있었던가 하고 강징은 뜨끔했다.
“안타깝네요. 특별히 연꽃 무늬도 넣어드리려고 했습니다만.”
강징은 남희신이 살살 약을 올리듯 놀릴 때마다 욱하고 치밀었지만 자꾸 말문이 막혔다. 혀가 짧은 사람이라 재치있게 받아넘기려 해도 이럴 때에는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장난꾸러기 사형에게도 얼마나 당했던지.
“당신 친구...!”
......들은 당신이 이런 인간인 줄 아느냐.
결국 할말이 없어 유치한 소리로 반박하려던 강징은 흡 입을 다물었다.
한없이 사람이 좋은 택무군임에도 가까이 지내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수진계에서도 가장 존귀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니, 아무나 사귀기 어려울 거란 생각도 들었지만.
근엄한 얼굴의 적봉존과 함께, 훤칠하게 키가 큰 두 사내가 함께 서 있던 모습도 강징의 머릿속에서는 꽤 해묵은 기억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후에는 금광요와 함께 있는 모습이 더 잦게 보였더랬다.
그리고 관음묘 사건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막내동생처럼 치대던 섭회상도 더이상은 남희신의 곁에 서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눈 둘 곳을 모르게 된 강징이 어색한 헛기침을 했다.
다행히 남희신은 듣지 못했는지 제방을 가리키며 무척 전문적인 사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남희신의 옆모습을 바라보는 강징은 착잡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희고 단단하게 빚어져 천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듯한 얼굴. 저 얼굴 안에는 도대체 어떤 심지가 들었을지 궁금했다.
그래, 저 이는 참으로 고상하고 굳세고, 심지어는 나 같은 사람마저 감싸안을 정도로 상냥하기까지 해.
그와 가까워지게 만들어 준 우연이, 강징은 처음으로 감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각성하고 나면 도로 예의만 차리던 관계로 돌아가겠지. 나 같은 인간이 고상한 택무군의 취향에 어울릴 리 없으니까.
모처럼 귀한 지식을 털어주는 남희신의 설명이 이어졌지만, 강징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혼자만의 생각에 골몰했다.
결국,
이런 심란한 감정도 마음을 좀먹는 불행의 한가지가 아닌가.
아무리 무거운 짐을 질 때라도 역시 혼자인 편이 좋은 거다.
스쳐가는 풍경이 아름답다고 다 끌어다 방 안에 꼭꼭 가두어 가질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잠시 스쳐가는 것도 고맙게 여기고 허용된 만큼 누리자고, 강징은 부드럽게 미소짓는 남희신에게 마주 웃어 보였다.
희신강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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