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일본연예
- 일본연예
https://hygall.com/597758800
view 4499
2024.06.21 19:50
https://hygall.com/597381181
3
노부의 닦달을 꿋꿋이 버티며 선물을 숨겨둔 마치다는 결국 생일이 되는 자정이 되어서야 상자를 건넸어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선물을 받은 것보다 마치다가 삐뚤빼뚤 쓴 편지가 더 맘에 드는 모양이야
"케이 편지를 쓸 생각도 한 거야?"
"혼자 써서 엉망일 테지만 그래도.. 쓰고 싶었어요."
혹여나 글선생님께 말하면 주제넘는 짓이라고 혼이 날까 봐 혼자 배운 단어들을 조합해 쓴 편지는
마치다의 말처럼 맞춤법이 엉망이라 꼭 어린애가 쓴 것 같았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도 없었지
직접 쓴 편지라니 글을 배우는 중인 케이가 처음으로 쓴 편지를 자신이 받게 되었다는 사실에 소유욕이 차오른 노부는 마냥 좋았어
그 덕에 상자가 뒷전으로 물러나자 마치다는 기분이 묘해졌지
편지를 기쁘게 받아주시는 건 좋은데 선물도 열어보셨으면 해서 슬쩍 상자를 내밀자 노부는 그제야 상자로 관심을 돌렸지
"오, 부채구나 고마워. 그런데 이거 비싸지 않았어?"
제법 고급스러운 부채를 보자 노부는 흡족한 마음보다 마치다가 사기엔 금액이 클 것 같아 걱정이 되었어 사실 그는 편지만으로 충분했을 거야
모르긴 해도 몇 달 치 봉급은 했을 텐데 얘가 이걸 어떻게 산 걸까 티를 내진 않았지만 심각해진 그가 묻자 마치다는 해맑게 입을 열었어
"그동안 모운 봉급으로 샀어요. 저는 그 돈 쓸 일도 없으니까 괜찮아요. 그보다 마음에 드세요?"
자신의 봉급을 거의 털어서 산 부채라고 자랑스레 말하는 마치다 앞에서 노부는 말문이 막혔어 물론 마치다의 말처럼 사사로이 돈을 쓸 일은 제가 만들지 않을 테지만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을 털어서 제주인의 생일선물을 사는 몸종이 어딨담 그 마음을 제가 감히 헤아릴 수 없었어
그저 마음에 드는지 알고 싶어서 눈을 반짝이는 상대에 노부는 와락 마치다를 끌어안았지
"응 정말 마음에 들어. 고마워 케이."
다행이다. 마치다는 그 말을 듣고서야 겨우 안심할 수 있었어 사실 마음에 드시지 않으면 어쩌지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몰라
제 딴에는 제일 귀하고 좋아 보이는 걸 고른 것인데 지체 높은 도련님이 보시기에 조약하다 하실 수 있잖아
하지만 기쁜 마음도 그때뿐이었어 생일이라는 핑계로 그날따라 어찌나 집요하게 구시는지 더는 못한다며 침구 끝으로 기어다가 발목을 잡혀 도련님 밑에 깔린 마치다는 엉엉 울면서 한참을 시달려야 했지
덕분에 퉁퉁 부은 눈으로 힐끔 도련님을 노려보았는데 그날 밤 그의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아침이 되었을 때 그의 허리춤에 제가 선물한 부채가 꽂혀 있어서 마치다는 제가 토라졌다는 것도 잊고 그 모습에 빰을 붉혔지 뭐야
—
도련님의 생일 당일엔 연회가 열렸어
많은 귀족분들도 참석하실 예정이래 게다가 하나뿐인 아들의 생일이니만큼 잠시 지방에 계시던 가주님도 돌아오셔서 하녀장님이 아랫것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셨지 그 바람에 마치다 역시 잔뜩 얼어붙었어
도련님의 몸종인 저는 오늘 연회 때 도련님 옆에서 선물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거든
연회를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마치다는 벌써부터 손이 떨려와 서재 구석에 숨어있고 싶었지
하지만 그런 마치다의 바램과는 달리 연회는 시작되었고 많은 귀족분들을 대접하느라 하인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어 그사이에서 마치다 역시 쏟아지는 선물들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쏙 빠져 제가 긴장했다는 사실도 잊고 말았지
“탄일 축하드립니다. 이번에 귀한 옥이 들어와서 만든 부채랍니다. ”
“감사합니다. 붕팔공.”
그러다 마치다는 부채라는 말에 우뚝 멈춰 섰어 어깨너머로 보기에도 섬세하게 세공된 부채는 제가 선물해 드린 것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귀해 보였지
하필 부채일게 뭐람 도련님 허리춤에 있는 제 부채가 초라해 보여서 마치다는 부끄러워졌어
“허나 저에겐 이미 귀한 부채가 있으니 이 부채는 아버지께 드려도 되겠습니까? ”
“예 예 스즈키 도련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지요. ”
귀한 부채가 이미 있대 옥으로 만든 부채보다 제가 선물한 부채가 더 귀하다니 마치다는 도련님의 말에 얼굴이 화끈거려 어쩔 줄 몰랐지
노부는 곁눈질로 그런 몸종을 쳐다보고는 슬쩍 미소 지었어
하나같이 스즈키 가문의 환심을 얻으려 몰려드는 터라 그 꼴을 여유 있게 받아줄 비위가 그에겐 없었지만 제 뒤에서 팔랑대며 기뻐하는 마치다를 보고 있자니 왠지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것 같았지
간신배처럼 연신 굽실거리던 붕팔공 역시 부채를 스즈키가에 선물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 웃으며 자리를 떠났어
그 뒤로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모를 만큼 마치다는 하늘에 떠있는 기분으로 도련님 뒤에서 묵묵히 일했지 정말 스즈키 가문은 대단했어 이 많은 선물을 다 써볼 수 나 있을까 싶게 싸여있는 선물을 멍하니 바라보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 허리를 누가 확 낚아채는 거야
“꺅! ”
“그만하고 이만 방으로 돌아가자 케이. ”
도련님 정말 간 떨어질뻔 했다구요! 앙칼지게 저를 노려보는 케이가 새끼 여우 같아서 노부는 가소롭게 웃으며 마치다를 데리고 방으로 돌아갔어
언제는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더니 귀엽게 굴긴
침실로 들어선 뒤에도 내내 뽀로통한 마치다를 아량곳 하지 않고 그는 소매 춤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내밀었지
“... 이게 뭐예요?”
“부채준 답례. 열어봐.”
저는 생일선물을 드린 건데 답례라니 생각지도 못한 답례에 눈이 동그래진 마치다가 낼름 상자를 열어 보았더니 안에는 조그마한 꽃 모양 머리핀이 들어있었어
“마음에 들어? ”
“네 예뻐요. 제가 이걸 받아도 될까요?”
그럼 되고 말고 실은 연회 때 어머니 앞으로 온 선물 중 제일 예뻐 보이는 걸 빼돌린 거지만 노부는 아무렇지도 않게 케이 앞에 옥으로 만든 머리핀을 내밀었어
그럼 마치다는 이게 얼마나 귀한 건지도 모르고 도련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에 기분이 좋아 감사히 받았지
그렇게 도련님의 허리춤엔 케이가 준 부채가 마치다의 머리에는 도련님의 주신 머리핀이 꽂히게 되었어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이 준 선물을 상대가 지니게 되어서 마냥 기뻤겠지만 그 모습이 아랫것들에겐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된다는 걸 몰랐어
특히나 하루아침에 귀한 머리핀을 하고 온 마치다는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었지
도련님의 선물을 정리하던 마치다가 마님의 선물이 탐이 나 가로챘다더라
도련님의 총애를 믿고 천한 열성 오메가 주제에 감히 마님께 들어온 선물을 제 것인 양 쓴다더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엔 저마다 살을 붙이기 마련이라 어느새 도련님이 선물해 준 머리핀은 마치다가 마님의 선물을 가로챈 게 되어버렸지 눈덩이처럼 불어난 오해가 차라리 마님의 귀에 들어갔다면 금방 상황이 정리되었을 테지만 하필이면 지금 마님께선 잠시 친정에 가신 참이었어 그래서 기어코 이 말이 가주님의 귀에 들어가 버렸지 뭐야
갑자기 가주님께서 저를 부르신다는 말에 마치다는 깜짝 놀랐어 스즈키 가문의 수장이신 분께서 왜 도련님의 몸종 따위를 찾으시는 걸까
평소엔 무서워 눈도 잘 맞추지 못하는 마님이 간절해질 만큼 마치다는 겁을 먹고 말았어
게다가 말을 전해준 하인의 표정이 저를 비웃는 듯해 예감이 안 좋았지
오들오들 떨면서 본채로 들어서자 보인 건 상석에 앉아계신 가주님의 굳은 얼굴이었어 마치다는 저 표정이 뜻하는 바를 잘 알았지 제가 열성 오메가가 되었을 때 노예시장에서 많은 이들이 지어 보였던 그 표정이었어 경멸 말이야
“설마설마했더니 정말 주제도 모르는 오메가구나.”
“....”
날선 말에 마치다는 말문이 턱 막혔어 제가 뭘 잘못했는지 짐작조차 가질 않아 이미 엎드린 몸을 더 납작 숙일 뿐이었지
바닥에 엎드린 오메가의 머리에는 옥으로 만든 꽃 핀 이 꽂혀있어서 가주님은 인상을 썼어 감히 열성 오메가 주제에 부인의 신임을 얻었다고 저런 짓을 하다니 화가 치밀었지
그는 지금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중이었어
지방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간의 사정을 알지 못해 부인이 케이타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뜻을 잘못 이해한 것이 그 오해의 시작이었지
그는 고지식한 알파라 열성 오메가를 며느리로 들이고 싶다는 속뜻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어 그저 부인께서 아들 녀석의 몸종이 마음에 들어 글을 익히게 하여 곁에서 부리는 아이로 쓰고 싶다고 이해해 버린 거야
예쁨을 좀 받기로서니 저것이 감히 부인의 물건을 탐내?
아랫것들이 모여 쑥덕대는 소리를 듣고 설마 하였는데 버젓이 꽃핀을 머리에 꽂고 있는 꼴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지
“네가 감히 부인의 선물을 가로채 놓고도 뻔뻔스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냐? ”
“.. 이.. 이건 도련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입니다.. 마님의 것이 아니에요. 가주님.”
“닥치거라! 누굴 입에 올리는 게냐!”
불호령이 떨어지자 마치다는 눈물이 절로 나왔어
정말 도련님이 부채의 답례로 주신 머리핀인데 왜 가주님께선 이게 마님의 것이라 하시는 걸까 억울한 심정을 제대로 전하고 싶었지만 긴장한 탓에 하고 싶은 말이 입속에서만 맴돌았어
그리고 그 변명은 가주님의 화를 더 돋을 뿐이었지 제 아들까지 들먹거리는 꼴이라니 부인과 아들의 신임을 믿고서 오만방자하게 구는 걸 그는 더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어 잠깐 저택을 비웠을 뿐인데 어쩌다 이런 천한 열성이 집안에 들어와 물을 흐려놓는 건지 쯧
가주님은 곁에 있던 심복을 불러 가서 매를 가져오라 명령했어
이참에 기강을 제대로 잡을 요량이었지
—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들은 노부가 본채로 쳐들어 왔을 땐 이미 마치다의 등에 붉은 줄이 어지럽게 그어진 뒤였어
널브러져 울고 있는 자신의 몸종과 그 옆에서 아버지의 하인이 회초리를 들고 있는 모습에 눈이 반쯤 돈 그가 성큼성큼 다가가 회초리를 뺏어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친 뒤 하인을 거칠게 밀쳤지
“.. 아버지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불꽃 효자 등장☆
노부마치
3
노부의 닦달을 꿋꿋이 버티며 선물을 숨겨둔 마치다는 결국 생일이 되는 자정이 되어서야 상자를 건넸어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선물을 받은 것보다 마치다가 삐뚤빼뚤 쓴 편지가 더 맘에 드는 모양이야
"케이 편지를 쓸 생각도 한 거야?"
"혼자 써서 엉망일 테지만 그래도.. 쓰고 싶었어요."
혹여나 글선생님께 말하면 주제넘는 짓이라고 혼이 날까 봐 혼자 배운 단어들을 조합해 쓴 편지는
마치다의 말처럼 맞춤법이 엉망이라 꼭 어린애가 쓴 것 같았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도 없었지
직접 쓴 편지라니 글을 배우는 중인 케이가 처음으로 쓴 편지를 자신이 받게 되었다는 사실에 소유욕이 차오른 노부는 마냥 좋았어
그 덕에 상자가 뒷전으로 물러나자 마치다는 기분이 묘해졌지
편지를 기쁘게 받아주시는 건 좋은데 선물도 열어보셨으면 해서 슬쩍 상자를 내밀자 노부는 그제야 상자로 관심을 돌렸지
"오, 부채구나 고마워. 그런데 이거 비싸지 않았어?"
제법 고급스러운 부채를 보자 노부는 흡족한 마음보다 마치다가 사기엔 금액이 클 것 같아 걱정이 되었어 사실 그는 편지만으로 충분했을 거야
모르긴 해도 몇 달 치 봉급은 했을 텐데 얘가 이걸 어떻게 산 걸까 티를 내진 않았지만 심각해진 그가 묻자 마치다는 해맑게 입을 열었어
"그동안 모운 봉급으로 샀어요. 저는 그 돈 쓸 일도 없으니까 괜찮아요. 그보다 마음에 드세요?"
자신의 봉급을 거의 털어서 산 부채라고 자랑스레 말하는 마치다 앞에서 노부는 말문이 막혔어 물론 마치다의 말처럼 사사로이 돈을 쓸 일은 제가 만들지 않을 테지만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을 털어서 제주인의 생일선물을 사는 몸종이 어딨담 그 마음을 제가 감히 헤아릴 수 없었어
그저 마음에 드는지 알고 싶어서 눈을 반짝이는 상대에 노부는 와락 마치다를 끌어안았지
"응 정말 마음에 들어. 고마워 케이."
다행이다. 마치다는 그 말을 듣고서야 겨우 안심할 수 있었어 사실 마음에 드시지 않으면 어쩌지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몰라
제 딴에는 제일 귀하고 좋아 보이는 걸 고른 것인데 지체 높은 도련님이 보시기에 조약하다 하실 수 있잖아
하지만 기쁜 마음도 그때뿐이었어 생일이라는 핑계로 그날따라 어찌나 집요하게 구시는지 더는 못한다며 침구 끝으로 기어다가 발목을 잡혀 도련님 밑에 깔린 마치다는 엉엉 울면서 한참을 시달려야 했지
덕분에 퉁퉁 부은 눈으로 힐끔 도련님을 노려보았는데 그날 밤 그의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아침이 되었을 때 그의 허리춤에 제가 선물한 부채가 꽂혀 있어서 마치다는 제가 토라졌다는 것도 잊고 그 모습에 빰을 붉혔지 뭐야
—
도련님의 생일 당일엔 연회가 열렸어
많은 귀족분들도 참석하실 예정이래 게다가 하나뿐인 아들의 생일이니만큼 잠시 지방에 계시던 가주님도 돌아오셔서 하녀장님이 아랫것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셨지 그 바람에 마치다 역시 잔뜩 얼어붙었어
도련님의 몸종인 저는 오늘 연회 때 도련님 옆에서 선물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거든
연회를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마치다는 벌써부터 손이 떨려와 서재 구석에 숨어있고 싶었지
하지만 그런 마치다의 바램과는 달리 연회는 시작되었고 많은 귀족분들을 대접하느라 하인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어 그사이에서 마치다 역시 쏟아지는 선물들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쏙 빠져 제가 긴장했다는 사실도 잊고 말았지
“탄일 축하드립니다. 이번에 귀한 옥이 들어와서 만든 부채랍니다. ”
“감사합니다. 붕팔공.”
그러다 마치다는 부채라는 말에 우뚝 멈춰 섰어 어깨너머로 보기에도 섬세하게 세공된 부채는 제가 선물해 드린 것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귀해 보였지
하필 부채일게 뭐람 도련님 허리춤에 있는 제 부채가 초라해 보여서 마치다는 부끄러워졌어
“허나 저에겐 이미 귀한 부채가 있으니 이 부채는 아버지께 드려도 되겠습니까? ”
“예 예 스즈키 도련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지요. ”
귀한 부채가 이미 있대 옥으로 만든 부채보다 제가 선물한 부채가 더 귀하다니 마치다는 도련님의 말에 얼굴이 화끈거려 어쩔 줄 몰랐지
노부는 곁눈질로 그런 몸종을 쳐다보고는 슬쩍 미소 지었어
하나같이 스즈키 가문의 환심을 얻으려 몰려드는 터라 그 꼴을 여유 있게 받아줄 비위가 그에겐 없었지만 제 뒤에서 팔랑대며 기뻐하는 마치다를 보고 있자니 왠지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것 같았지
간신배처럼 연신 굽실거리던 붕팔공 역시 부채를 스즈키가에 선물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 웃으며 자리를 떠났어
그 뒤로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모를 만큼 마치다는 하늘에 떠있는 기분으로 도련님 뒤에서 묵묵히 일했지 정말 스즈키 가문은 대단했어 이 많은 선물을 다 써볼 수 나 있을까 싶게 싸여있는 선물을 멍하니 바라보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 허리를 누가 확 낚아채는 거야
“꺅! ”
“그만하고 이만 방으로 돌아가자 케이. ”
도련님 정말 간 떨어질뻔 했다구요! 앙칼지게 저를 노려보는 케이가 새끼 여우 같아서 노부는 가소롭게 웃으며 마치다를 데리고 방으로 돌아갔어
언제는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더니 귀엽게 굴긴
침실로 들어선 뒤에도 내내 뽀로통한 마치다를 아량곳 하지 않고 그는 소매 춤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내밀었지
“... 이게 뭐예요?”
“부채준 답례. 열어봐.”
저는 생일선물을 드린 건데 답례라니 생각지도 못한 답례에 눈이 동그래진 마치다가 낼름 상자를 열어 보았더니 안에는 조그마한 꽃 모양 머리핀이 들어있었어
“마음에 들어? ”
“네 예뻐요. 제가 이걸 받아도 될까요?”
그럼 되고 말고 실은 연회 때 어머니 앞으로 온 선물 중 제일 예뻐 보이는 걸 빼돌린 거지만 노부는 아무렇지도 않게 케이 앞에 옥으로 만든 머리핀을 내밀었어
그럼 마치다는 이게 얼마나 귀한 건지도 모르고 도련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에 기분이 좋아 감사히 받았지
그렇게 도련님의 허리춤엔 케이가 준 부채가 마치다의 머리에는 도련님의 주신 머리핀이 꽂히게 되었어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이 준 선물을 상대가 지니게 되어서 마냥 기뻤겠지만 그 모습이 아랫것들에겐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된다는 걸 몰랐어
특히나 하루아침에 귀한 머리핀을 하고 온 마치다는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었지
도련님의 선물을 정리하던 마치다가 마님의 선물이 탐이 나 가로챘다더라
도련님의 총애를 믿고 천한 열성 오메가 주제에 감히 마님께 들어온 선물을 제 것인 양 쓴다더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엔 저마다 살을 붙이기 마련이라 어느새 도련님이 선물해 준 머리핀은 마치다가 마님의 선물을 가로챈 게 되어버렸지 눈덩이처럼 불어난 오해가 차라리 마님의 귀에 들어갔다면 금방 상황이 정리되었을 테지만 하필이면 지금 마님께선 잠시 친정에 가신 참이었어 그래서 기어코 이 말이 가주님의 귀에 들어가 버렸지 뭐야
갑자기 가주님께서 저를 부르신다는 말에 마치다는 깜짝 놀랐어 스즈키 가문의 수장이신 분께서 왜 도련님의 몸종 따위를 찾으시는 걸까
평소엔 무서워 눈도 잘 맞추지 못하는 마님이 간절해질 만큼 마치다는 겁을 먹고 말았어
게다가 말을 전해준 하인의 표정이 저를 비웃는 듯해 예감이 안 좋았지
오들오들 떨면서 본채로 들어서자 보인 건 상석에 앉아계신 가주님의 굳은 얼굴이었어 마치다는 저 표정이 뜻하는 바를 잘 알았지 제가 열성 오메가가 되었을 때 노예시장에서 많은 이들이 지어 보였던 그 표정이었어 경멸 말이야
“설마설마했더니 정말 주제도 모르는 오메가구나.”
“....”
날선 말에 마치다는 말문이 턱 막혔어 제가 뭘 잘못했는지 짐작조차 가질 않아 이미 엎드린 몸을 더 납작 숙일 뿐이었지
바닥에 엎드린 오메가의 머리에는 옥으로 만든 꽃 핀 이 꽂혀있어서 가주님은 인상을 썼어 감히 열성 오메가 주제에 부인의 신임을 얻었다고 저런 짓을 하다니 화가 치밀었지
그는 지금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중이었어
지방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간의 사정을 알지 못해 부인이 케이타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뜻을 잘못 이해한 것이 그 오해의 시작이었지
그는 고지식한 알파라 열성 오메가를 며느리로 들이고 싶다는 속뜻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어 그저 부인께서 아들 녀석의 몸종이 마음에 들어 글을 익히게 하여 곁에서 부리는 아이로 쓰고 싶다고 이해해 버린 거야
예쁨을 좀 받기로서니 저것이 감히 부인의 물건을 탐내?
아랫것들이 모여 쑥덕대는 소리를 듣고 설마 하였는데 버젓이 꽃핀을 머리에 꽂고 있는 꼴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지
“네가 감히 부인의 선물을 가로채 놓고도 뻔뻔스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냐? ”
“.. 이.. 이건 도련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입니다.. 마님의 것이 아니에요. 가주님.”
“닥치거라! 누굴 입에 올리는 게냐!”
불호령이 떨어지자 마치다는 눈물이 절로 나왔어
정말 도련님이 부채의 답례로 주신 머리핀인데 왜 가주님께선 이게 마님의 것이라 하시는 걸까 억울한 심정을 제대로 전하고 싶었지만 긴장한 탓에 하고 싶은 말이 입속에서만 맴돌았어
그리고 그 변명은 가주님의 화를 더 돋을 뿐이었지 제 아들까지 들먹거리는 꼴이라니 부인과 아들의 신임을 믿고서 오만방자하게 구는 걸 그는 더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어 잠깐 저택을 비웠을 뿐인데 어쩌다 이런 천한 열성이 집안에 들어와 물을 흐려놓는 건지 쯧
가주님은 곁에 있던 심복을 불러 가서 매를 가져오라 명령했어
이참에 기강을 제대로 잡을 요량이었지
—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들은 노부가 본채로 쳐들어 왔을 땐 이미 마치다의 등에 붉은 줄이 어지럽게 그어진 뒤였어
널브러져 울고 있는 자신의 몸종과 그 옆에서 아버지의 하인이 회초리를 들고 있는 모습에 눈이 반쯤 돈 그가 성큼성큼 다가가 회초리를 뺏어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친 뒤 하인을 거칠게 밀쳤지
“.. 아버지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불꽃 효자 등장☆
노부마치
https://hygall.com/597758800
[Code: b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