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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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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온한 생활에 취해 도련님의 성정을 잊은 마치다는
예전보다 그가 편해졌어 품에 안겨서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볼때면 귀 끝이 달아오르곤 했지 그런 마치다를 도련님은 짓궂게 놀려대서 미운 마음에 주먹으로 어깨를 살짝 쳤다가 놀라 눈치를 봤는데
곧 위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잖아
“그런 손짓으로 어디 기별이나 가겠니?”
“.. 흐응, 놀리지 마셔요.”
나름 용기 낸 반항이 그에게는 하찮게만 느껴진다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마치다는 버릇처럼 어깨에 꿍 이마를 기댔어 그럼 자연스레 머리를 쓸어내리는 커다란 손이 따라왔지 어느새 익숙해진 손길을 받으면서 마치다는 가만히 눈을 감았어 도련님은 다정하신 분 같아
하지만 곧 그 생각이 얼마나 큰 오만이었는지 알게 되었지
“뭐하다 이제 와?”
“그게.. 잠시 시장에 다녀왔어요.”
“누구 맘대로 밖엘 나가? ”
노기 어린 음성과 차가운 눈빛을 마주하자 마치다는 번쩍 정신이 들었어
이전보다 질 좋은 옷을 입고 매번 식사를 거르지 않아도 되는 생활이 꿈만 같아서 그만 잊어버렸나 봐 저는 고작 도련님의 몸종일 뿐이란 걸 그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인데 도련님이 요즘 제게 유해졌다고 생각해 멋대로 밖을 나가다니 제 자만 때문에 도련님을 화나게 한 것 같아 마치다는 자신이 미워졌어
“죄, 죄송해요. 금방 다녀올 줄 알았어요..”
조약한 변명이지만 저는 정말 도련님 모르게 금방 다녀올 생각이었어 그런데 일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몸종인 마치다는 도련님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없어
하인들끼리 모인 곳에서 밥을 먹었지 홀로 먹는 것에 익숙해진 마치다지만 외로웠던 건 사실이라 우연히 마님을 모시는 하녀와 친구가 된 건 정말 기뻤어 만나는 시간은 식사를 할 때뿐이었지만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친해지자 그 아이가 그러는 거야
“오늘 시장에 갈 거야.”
“시장엔 왜?”
“그동안 모운 봉급으로 예쁜 손수건을 살까 해서.”
수줍게 말하는 하녀를 보면서 마치다는 자신의 봉급이 떠올랐어 그러고 보니 이곳에 온 뒤로 차곡차곡 모아둔 돈이 꽤 되었지 전에 있던 곳에선 늘 어른들에게 뺏기기만 했는데 스즈키가 온 뒤로 온전히 봉급을 모을 수 있게 되자 그게 기뻐서 지금까지 전부 모아두고 있었거든
쓸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저 아이의 말을 들으니 저도 무언가를 사고 싶어지는 거 있지
전해 듣기론 곧 도련님의 생일이라고 했어 그럼 나도 이돈으로 뭔가 작은 걸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있지..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정말? 나야 좋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하녀를 바라보며 마치다는 미소 지었어
친구와 시장 나들이라니 처음 있는 일에 설레었지
그래서 조금 들떴나 봐
분명 도련님이 식사를 하시는 동안 얼른 다녀오려 했는데 시장은 볼거리가 너무 많았어 예쁜 풍경소리에 정신이 팔려 한참 구경을 하다 색색깔의 젤리에 그만 선물은 잊고 한 봉지를 사고 말았지
그렇게 겨우 도착한 공예품 가게에서 하녀는 자신의 손수건을 골랐고 마치다는 도련님의 선물을 고심했어
아무리 모았어도 고작 몸종의 봉급으론 값비싼 장신구를 살 순 없어서 열심히 고른 게 부채였지
“그거 꽤 비싸 보이는데 괜찮아?”
“응, 괜찮아.”
“도련님께 드리려고?"
“..! 어떻게 알았어?”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하녀는 웃음을 참았어
몸종이 그렇게 비싼 부채를 쓸 일이 뭐가 있니 그 말을 듣자 마치다는 왠지 창피해서 얼굴을 붉혔지
좋은 향이 나는 나무상자에 담긴 부채를 소중히 쥐고서 돌아온 마치다는 하녀와 헤어지고 저만 아는 곳에 부채를 숨겼어 그렇게 뿌듯한 마음으로 들어선 서재에는 이미 한참 전에 돌아온 도련님이 저를 노려보고 계셨지
—
“네가 밖에 나가도 좋다고 나는 허락한 적 없어.”
“잘못했어요. 도련님.. ”
바보같이 도련님이 조금 잘해준다고 해서 뭐라도 되는 것 마냥 들떠버린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져 마치다는 눈을 꾹 감았어 바보 같은 마치다
“아으, 아파요. 도련님..”
자신의 처지를 잊은 대가는 가혹했어 한동안 혼나지 않아 뽀얗던 엉덩이에 맷자국이 겹겹이 싸여갔지 의지할 건 의자 등받이 하나뿐이라 손끝이 희게 질릴 정도로 꽉 잡아보았지만 아픔이 덜어지진 않을 거야 지금 이렇게 도련님께 매를 맞게 된 건 모두 다 제 잘못이었지만 마치다는 왠지 눈물이 났어
“그래서 시장엔 왜 갔는데.”
“.. 끅, 그냥.. 그냥.. 구경하러 갔어요... 그 아이가 손수건을 산다고 해서.. 흑, 잘못했어요.”
고작 하녀의 손수건을 사러 따라갔다는 말에 노부는 매를 든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어 요즘 예쁘다 예쁘다 해줬더니 한다는 짓이 하녀와 둘이서 시장을 가는 것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지 그는 제가 지금 질투에 눈이 돌았다는 건 생각지도 못하고 그저 버릇없는 몸종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난 거라 그리 여겼어 주인 몰래 나갔다 온 몸종은 혼이 나야 하는 법이라고 말이야
“고작 그런 이유로 주인 몰래 시장에 갔다?”
“악.. 아파.. 흑, 잘못했어요 다, 다신 안 그럴게요, 끅, 용서해 주세요..”
방금 전까지는 장난인 것처럼 거세게 내려쳐진 매질에 마치다는 까무러쳤어 너무 아파서 눈앞에 별이 반짝이는 것 같았지 사실 도련님의 생일선물을 사러 갔다는 말을 할 용기가 나질 않았어 몸종 주제에 주인의 선물을 사러 몰래 나갔다는 걸 알면 분수도 모른다고 화를 내실 것만 같았지 도련님과 밤마다 몸을 섞는다고 해서 내가... 마치.. 뭐라도 된 것 마냥 굴었던 게 창피해졌어 그러니까 부채를 샀다는 건 말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다짐했지만 매가 너무 아파서인지 눈물이 터졌지 아니 실은 마음이 더 아픈 것 같아
결국 끝까지 시장에 간 이유를 밝히지 않은 마치다는 노부의 성질대로 휘두른 매를 고스란히 받아내느라 엉덩이에 맷자국대로 푸른 멍이 들고 말았어
원래라면 약을 발라주어야 했는데
그날은 약도 발라주지 않고 엉망인 마치다를 들어다 침대에 내동댕이 치더니 그대로 거칠게 몸을 섞었지
“말해. 네가 누구 건지.”
“흐끅, 아파, 도련님.. 흑, 저는 도련님의 몸종이에요.."
“그래 잊지 마.”
너는 고작 내 몸종이라고
우왁스레 멍이든 엉덩이를 쥐면서 으르렁대는 노부를 보며 마치다는 엉엉 울음이 터트렸어 아무리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지만 저를 이토록 괴롭히는 노부의 태도가 너무 아팠지 도련님이 원망스러워서 마치다는 눈을 꾹 감았어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으로 말이야 하지만 그것도 노부의 으름장에 얼마 가지 못할거야
관계를 맺을 때마다 꼭 눈을 마주치게 했거든
어젯밤 일로 마치다는 다시 노부품에 안겨도 목석처럼 굴었어 묻는 말에 고분고분 대답했지만 눈을 맞추진 않았지
뒤늦게 제가 심했다고 생각한 그가 약을 발라주겠다고 했으나 마치다는 거절했어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흐르게 됐지
노부는 어찌할 바를 몰랐어 누군가를 이렇게 원했던 적도 없고 상처받은 사람을 어떡해 달래야 하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말이야
—
“케이타 어디 불편하니.”
“아, 아니에요.. 마님.”
불편한 듯 자세를 계속 고쳐앉는 마치다의 얼굴이 퉁퉁 부어 있어서 마님은 눈썹을 가볍게 들어 올렸어 새로 바뀐 글선생이 오늘 내내 집중도 못하고 풀 죽어 있다기에 불렀더니 생각보다 더 얼굴이 엉망이지 뭐야
“노부가 너를 울렸나 보구나?”
“..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잘못한 거라서.. 그런 건.. 데.. 끅.. 흐엉..”
서러움을 내내 눌러 참던 마치다는 마님의 말에 그만 눈물이 터져 나왔어 제가 울어버리자 당황한 마님께서 저를 달래려 자리에서 일어나셨는데 그 다정함 때문에 한참을 울고 말았지 결국 마치다는 도련님에게 털어놓지 못한 일을 마님께 실토하고 말았어
“저런 내 아들이지만 정말 그 못된 성미는 이해할 수 없구나.”
“.. 끅, 제가 멋대로 나가서.. 그래서 그래요..”
내가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니 걱정하지 말렴. 마님의 말에 마치다는 되레 겁이 났어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저 때문에 도련님이 마님께 혼이 날 거라니 그럼 또다시 화가 난 도련님의 감당해야 하는 건 제 몫이 되는 게 아닐까 뭔가 단단히 꼬여버린 일에 마치다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지만 마님은 못 본 척 그런 아이를 돌려보내고 제 아들을 불렀지
“너는 그 아이를 반려로 들일 생각이 있긴 한 거니.”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
“케이타를 반려로 삼고 싶다 한건 너였으면서 왜 그 아이를 네 소유물로 취급하냐고 묻는 거란다.”
“....”
안채로 불려오기 전 왜인지 제 눈치를 보면서 어쩔 줄 모르는 마치다를 보고 어머니께 고자질이라도 했나 싶어 얄미웠는데 막상 저 말을 듣고 보니 노부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어 그동안 저는 케이를 제 손에 쥐기만 급급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반려는 너와 동등한 사람이지 네 아랫사람이 아니야. 알겠니?”
“네 어머니. 명심할게요.”
“알아들었으면 가서 케이타에게 사과하렴.”
하여튼 저 답답한 성격은 지 아비를 닮은 게 분명했어
부자가 생긴 것처럼 속까지 아주 똑같군 그래
아까 케이타처럼 풀이 죽은 채로 나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그녀는 이제 슬슬 그 아이에게 다도를 가르쳐야겠다 생각했어 그전에 두 사람이 잘 화해하길 바랐지
“케이 이리 와봐.”
도련님이 돌아올 때까지 방구석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마치다는 생각보다 누그러진 표정인 그를 보자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갔어 마님께서 뭐라고 하신 걸까 정말 혼이 나신 걸까 나 때문에 괜히 안 좋은 소리라도 들으셨나
머릿속으로 수많은 물음표를 띄우며 얌전히 무릎 위에 앉았는데 도련님은 한동안 말이 없으시지 뭐야
그럼 되려 마치다가 조바심이 났어
“... 도련님? 왜 그러세요..”
“... 내가 어제는 심했어 미안해 케이. ”
네가 하녀랑 둘이 시장에 갔다는 게 화가 났어 그래서 그랬어
세상에 마님께선 도련님을 대체 얼마나 혼내신 거지? 그에게서 사과를 받을 줄은 몰랐던 마치다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도련님을 바라봤어 그렇게 밤새 서운했으면서도 고작 미안하다는 한마디에 어느덧 서운했던 감정들은 휘발되어버렸지
마치다는 굳었던 몸을 노부의 상체에 기대면서 입을 열었어
“... 사실 저도 말하지 않은 게 있어요.”
“... 나한테 숨긴 게 있다고?”
방금 전까지 뉘여져 있던 눈썹이 제 말과 함께 다시 사납게 치켜 올라가려 해서 마치다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지
“도, 도련님 생일 선물을 사러 갔었어요. 조금 뒤면 생일이시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그러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래서.. 그래서 말 못 했어요. 죄송해요..”
생일선물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말에 노부는 놀라고 말았어 그것도 모르고 저는 질투에 눈이 멀어 케이를 몰아붙였다니 후회가 밀려왔지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된 대가는 무거웠어 사과하는 내내 마치다는 다시 삐죽삐죽 울음을 터트려서 달래느라 진땀을 빼야 했거든
그뿐인가 선물이 있다는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노부는 그 선물을 볼 수가 없었어 아직 생일이 아니니까 줄 수 없다잖아 당장 내놓으라는 독촉에도 마치다는 완강히 거부했지 노부는 하는수 없이 질투한 벌을 달게 받기로 했어
노부마치
2
안온한 생활에 취해 도련님의 성정을 잊은 마치다는
예전보다 그가 편해졌어 품에 안겨서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볼때면 귀 끝이 달아오르곤 했지 그런 마치다를 도련님은 짓궂게 놀려대서 미운 마음에 주먹으로 어깨를 살짝 쳤다가 놀라 눈치를 봤는데
곧 위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잖아
“그런 손짓으로 어디 기별이나 가겠니?”
“.. 흐응, 놀리지 마셔요.”
나름 용기 낸 반항이 그에게는 하찮게만 느껴진다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마치다는 버릇처럼 어깨에 꿍 이마를 기댔어 그럼 자연스레 머리를 쓸어내리는 커다란 손이 따라왔지 어느새 익숙해진 손길을 받으면서 마치다는 가만히 눈을 감았어 도련님은 다정하신 분 같아
하지만 곧 그 생각이 얼마나 큰 오만이었는지 알게 되었지
“뭐하다 이제 와?”
“그게.. 잠시 시장에 다녀왔어요.”
“누구 맘대로 밖엘 나가? ”
노기 어린 음성과 차가운 눈빛을 마주하자 마치다는 번쩍 정신이 들었어
이전보다 질 좋은 옷을 입고 매번 식사를 거르지 않아도 되는 생활이 꿈만 같아서 그만 잊어버렸나 봐 저는 고작 도련님의 몸종일 뿐이란 걸 그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인데 도련님이 요즘 제게 유해졌다고 생각해 멋대로 밖을 나가다니 제 자만 때문에 도련님을 화나게 한 것 같아 마치다는 자신이 미워졌어
“죄, 죄송해요. 금방 다녀올 줄 알았어요..”
조약한 변명이지만 저는 정말 도련님 모르게 금방 다녀올 생각이었어 그런데 일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몸종인 마치다는 도련님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없어
하인들끼리 모인 곳에서 밥을 먹었지 홀로 먹는 것에 익숙해진 마치다지만 외로웠던 건 사실이라 우연히 마님을 모시는 하녀와 친구가 된 건 정말 기뻤어 만나는 시간은 식사를 할 때뿐이었지만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친해지자 그 아이가 그러는 거야
“오늘 시장에 갈 거야.”
“시장엔 왜?”
“그동안 모운 봉급으로 예쁜 손수건을 살까 해서.”
수줍게 말하는 하녀를 보면서 마치다는 자신의 봉급이 떠올랐어 그러고 보니 이곳에 온 뒤로 차곡차곡 모아둔 돈이 꽤 되었지 전에 있던 곳에선 늘 어른들에게 뺏기기만 했는데 스즈키가 온 뒤로 온전히 봉급을 모을 수 있게 되자 그게 기뻐서 지금까지 전부 모아두고 있었거든
쓸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저 아이의 말을 들으니 저도 무언가를 사고 싶어지는 거 있지
전해 듣기론 곧 도련님의 생일이라고 했어 그럼 나도 이돈으로 뭔가 작은 걸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있지..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정말? 나야 좋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하녀를 바라보며 마치다는 미소 지었어
친구와 시장 나들이라니 처음 있는 일에 설레었지
그래서 조금 들떴나 봐
분명 도련님이 식사를 하시는 동안 얼른 다녀오려 했는데 시장은 볼거리가 너무 많았어 예쁜 풍경소리에 정신이 팔려 한참 구경을 하다 색색깔의 젤리에 그만 선물은 잊고 한 봉지를 사고 말았지
그렇게 겨우 도착한 공예품 가게에서 하녀는 자신의 손수건을 골랐고 마치다는 도련님의 선물을 고심했어
아무리 모았어도 고작 몸종의 봉급으론 값비싼 장신구를 살 순 없어서 열심히 고른 게 부채였지
“그거 꽤 비싸 보이는데 괜찮아?”
“응, 괜찮아.”
“도련님께 드리려고?"
“..! 어떻게 알았어?”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하녀는 웃음을 참았어
몸종이 그렇게 비싼 부채를 쓸 일이 뭐가 있니 그 말을 듣자 마치다는 왠지 창피해서 얼굴을 붉혔지
좋은 향이 나는 나무상자에 담긴 부채를 소중히 쥐고서 돌아온 마치다는 하녀와 헤어지고 저만 아는 곳에 부채를 숨겼어 그렇게 뿌듯한 마음으로 들어선 서재에는 이미 한참 전에 돌아온 도련님이 저를 노려보고 계셨지
—
“네가 밖에 나가도 좋다고 나는 허락한 적 없어.”
“잘못했어요. 도련님.. ”
바보같이 도련님이 조금 잘해준다고 해서 뭐라도 되는 것 마냥 들떠버린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져 마치다는 눈을 꾹 감았어 바보 같은 마치다
“아으, 아파요. 도련님..”
자신의 처지를 잊은 대가는 가혹했어 한동안 혼나지 않아 뽀얗던 엉덩이에 맷자국이 겹겹이 싸여갔지 의지할 건 의자 등받이 하나뿐이라 손끝이 희게 질릴 정도로 꽉 잡아보았지만 아픔이 덜어지진 않을 거야 지금 이렇게 도련님께 매를 맞게 된 건 모두 다 제 잘못이었지만 마치다는 왠지 눈물이 났어
“그래서 시장엔 왜 갔는데.”
“.. 끅, 그냥.. 그냥.. 구경하러 갔어요... 그 아이가 손수건을 산다고 해서.. 흑, 잘못했어요.”
고작 하녀의 손수건을 사러 따라갔다는 말에 노부는 매를 든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어 요즘 예쁘다 예쁘다 해줬더니 한다는 짓이 하녀와 둘이서 시장을 가는 것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지 그는 제가 지금 질투에 눈이 돌았다는 건 생각지도 못하고 그저 버릇없는 몸종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난 거라 그리 여겼어 주인 몰래 나갔다 온 몸종은 혼이 나야 하는 법이라고 말이야
“고작 그런 이유로 주인 몰래 시장에 갔다?”
“악.. 아파.. 흑, 잘못했어요 다, 다신 안 그럴게요, 끅, 용서해 주세요..”
방금 전까지는 장난인 것처럼 거세게 내려쳐진 매질에 마치다는 까무러쳤어 너무 아파서 눈앞에 별이 반짝이는 것 같았지 사실 도련님의 생일선물을 사러 갔다는 말을 할 용기가 나질 않았어 몸종 주제에 주인의 선물을 사러 몰래 나갔다는 걸 알면 분수도 모른다고 화를 내실 것만 같았지 도련님과 밤마다 몸을 섞는다고 해서 내가... 마치.. 뭐라도 된 것 마냥 굴었던 게 창피해졌어 그러니까 부채를 샀다는 건 말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다짐했지만 매가 너무 아파서인지 눈물이 터졌지 아니 실은 마음이 더 아픈 것 같아
결국 끝까지 시장에 간 이유를 밝히지 않은 마치다는 노부의 성질대로 휘두른 매를 고스란히 받아내느라 엉덩이에 맷자국대로 푸른 멍이 들고 말았어
원래라면 약을 발라주어야 했는데
그날은 약도 발라주지 않고 엉망인 마치다를 들어다 침대에 내동댕이 치더니 그대로 거칠게 몸을 섞었지
“말해. 네가 누구 건지.”
“흐끅, 아파, 도련님.. 흑, 저는 도련님의 몸종이에요.."
“그래 잊지 마.”
너는 고작 내 몸종이라고
우왁스레 멍이든 엉덩이를 쥐면서 으르렁대는 노부를 보며 마치다는 엉엉 울음이 터트렸어 아무리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지만 저를 이토록 괴롭히는 노부의 태도가 너무 아팠지 도련님이 원망스러워서 마치다는 눈을 꾹 감았어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으로 말이야 하지만 그것도 노부의 으름장에 얼마 가지 못할거야
관계를 맺을 때마다 꼭 눈을 마주치게 했거든
어젯밤 일로 마치다는 다시 노부품에 안겨도 목석처럼 굴었어 묻는 말에 고분고분 대답했지만 눈을 맞추진 않았지
뒤늦게 제가 심했다고 생각한 그가 약을 발라주겠다고 했으나 마치다는 거절했어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흐르게 됐지
노부는 어찌할 바를 몰랐어 누군가를 이렇게 원했던 적도 없고 상처받은 사람을 어떡해 달래야 하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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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타 어디 불편하니.”
“아, 아니에요.. 마님.”
불편한 듯 자세를 계속 고쳐앉는 마치다의 얼굴이 퉁퉁 부어 있어서 마님은 눈썹을 가볍게 들어 올렸어 새로 바뀐 글선생이 오늘 내내 집중도 못하고 풀 죽어 있다기에 불렀더니 생각보다 더 얼굴이 엉망이지 뭐야
“노부가 너를 울렸나 보구나?”
“..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잘못한 거라서.. 그런 건.. 데.. 끅.. 흐엉..”
서러움을 내내 눌러 참던 마치다는 마님의 말에 그만 눈물이 터져 나왔어 제가 울어버리자 당황한 마님께서 저를 달래려 자리에서 일어나셨는데 그 다정함 때문에 한참을 울고 말았지 결국 마치다는 도련님에게 털어놓지 못한 일을 마님께 실토하고 말았어
“저런 내 아들이지만 정말 그 못된 성미는 이해할 수 없구나.”
“.. 끅, 제가 멋대로 나가서.. 그래서 그래요..”
내가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니 걱정하지 말렴. 마님의 말에 마치다는 되레 겁이 났어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저 때문에 도련님이 마님께 혼이 날 거라니 그럼 또다시 화가 난 도련님의 감당해야 하는 건 제 몫이 되는 게 아닐까 뭔가 단단히 꼬여버린 일에 마치다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지만 마님은 못 본 척 그런 아이를 돌려보내고 제 아들을 불렀지
“너는 그 아이를 반려로 들일 생각이 있긴 한 거니.”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
“케이타를 반려로 삼고 싶다 한건 너였으면서 왜 그 아이를 네 소유물로 취급하냐고 묻는 거란다.”
“....”
안채로 불려오기 전 왜인지 제 눈치를 보면서 어쩔 줄 모르는 마치다를 보고 어머니께 고자질이라도 했나 싶어 얄미웠는데 막상 저 말을 듣고 보니 노부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어 그동안 저는 케이를 제 손에 쥐기만 급급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반려는 너와 동등한 사람이지 네 아랫사람이 아니야. 알겠니?”
“네 어머니. 명심할게요.”
“알아들었으면 가서 케이타에게 사과하렴.”
하여튼 저 답답한 성격은 지 아비를 닮은 게 분명했어
부자가 생긴 것처럼 속까지 아주 똑같군 그래
아까 케이타처럼 풀이 죽은 채로 나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그녀는 이제 슬슬 그 아이에게 다도를 가르쳐야겠다 생각했어 그전에 두 사람이 잘 화해하길 바랐지
“케이 이리 와봐.”
도련님이 돌아올 때까지 방구석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마치다는 생각보다 누그러진 표정인 그를 보자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갔어 마님께서 뭐라고 하신 걸까 정말 혼이 나신 걸까 나 때문에 괜히 안 좋은 소리라도 들으셨나
머릿속으로 수많은 물음표를 띄우며 얌전히 무릎 위에 앉았는데 도련님은 한동안 말이 없으시지 뭐야
그럼 되려 마치다가 조바심이 났어
“... 도련님? 왜 그러세요..”
“... 내가 어제는 심했어 미안해 케이. ”
네가 하녀랑 둘이 시장에 갔다는 게 화가 났어 그래서 그랬어
세상에 마님께선 도련님을 대체 얼마나 혼내신 거지? 그에게서 사과를 받을 줄은 몰랐던 마치다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도련님을 바라봤어 그렇게 밤새 서운했으면서도 고작 미안하다는 한마디에 어느덧 서운했던 감정들은 휘발되어버렸지
마치다는 굳었던 몸을 노부의 상체에 기대면서 입을 열었어
“... 사실 저도 말하지 않은 게 있어요.”
“... 나한테 숨긴 게 있다고?”
방금 전까지 뉘여져 있던 눈썹이 제 말과 함께 다시 사납게 치켜 올라가려 해서 마치다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지
“도, 도련님 생일 선물을 사러 갔었어요. 조금 뒤면 생일이시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그러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래서.. 그래서 말 못 했어요. 죄송해요..”
생일선물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말에 노부는 놀라고 말았어 그것도 모르고 저는 질투에 눈이 멀어 케이를 몰아붙였다니 후회가 밀려왔지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된 대가는 무거웠어 사과하는 내내 마치다는 다시 삐죽삐죽 울음을 터트려서 달래느라 진땀을 빼야 했거든
그뿐인가 선물이 있다는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노부는 그 선물을 볼 수가 없었어 아직 생일이 아니니까 줄 수 없다잖아 당장 내놓으라는 독촉에도 마치다는 완강히 거부했지 노부는 하는수 없이 질투한 벌을 달게 받기로 했어
노부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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