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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9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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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어.


적비성과 방다병은 보름에 한번씩 만나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고 교차 확인 했어. 대희국의 모든 도읍과 마을과 산천을 안가본데가 없고 심지어 멸망한 남윤도 찾아봤지만 이연화의 흔적을 찾을수가 없었어. 


하루가 1년 같다고 한숨을 내쉬는 방다병의 얼굴은 천진난만하고 윤기가 흐르던 공자의 얼굴은 온데간데 없이 그을음이 내려앉은듯 어두웠어. 10년의 시간에 비하면 별것 아니지. 적비성은 속으로 그렇게 치부하려고 애쓰며 겉으로는 코웃음 치고 말았지만 심정적으로 방다병과 같다는걸 부정할순 없었어. 

- 땅으로 꺼졌을까 하늘로 솟았을까.

방다병은 곁에서 꼬리를 흔드는 불다병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어. 고개를 갸우뚱하던 불여우는 긍정일지 부정일지 가볍게 왕왕 짖었어.

- 그 녀석이라면 둘 다 가능하다.
.
농담할 기분이 아니었지만 그 늙은 여우같은 녀석은 어떤 핑계를 대고 미꾸라지 같이 스르륵 빠져나가버리지. 적비성은 그저 비꼰 말이었지만 방다병은 의외로 피식 웃었어. 아닌게 아니라 몇번이고 속아서 길가에 버려졌었는지. 빌어먹을 이연화가 자신을 어떻게 낚아 연화루를 들고 튀었는지 그리고 흙바닥에서 깨어날때마다 기필코 복수하겠노라 얼마나 벼루었는지, 이제는 그리운 추억이 되버린 일을 방다병은 적비성에게 들려주었어. 


- 너는 그러고도 잘도 붙어있었군.
- 치.. 대결하자고 맨날 따라다니는 사람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네.


예전이라면 강호의 대마두와 술잔을 기울이는 일따윈 상상조차 할수 없었는데. 방다병은 말없이 잔을 비웠어. 정기적으로 만나고 이연화에게 화를 내던, 이연화를 추억할때든, 이연화를 그리워하든 두 사내는 술 기운이 필요했지. 셋이 있을때면 언제나 둘 사이를 채우던 이의 빈공간이 더웃 사무치게 느껴졌으니까. 방다병은 주위를 둘러보았어. 객잔은 사람들로 붐며 시끌벅적하기 그지 없었어.  특히 여긴 수도를 둘러싼 도성이라 여러 다른 지역과 심지어 타국에서 오는 사람들까지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곳이라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그득했어. 하늘 아래 여기고 저기고 사람은 넘쳐나는데 오직 한 사람만이 없다니. 


이번에도 별 소득 없이 헛탕만 치는건가. 술을 마시긴해도 취할정도로 마시지는 않았어. 잠시 서로의 시름을 달래주는 용도일뿐, 일다경도 아까운데 시간을 낭비할수 없지. 다음을 기약하며 일어서는데 불여우가 갑자기 바깥으로 튀쳐나갔어. 누가 또 절인 고기라도 들고 가나 반신반의 하면서 - 불여우는 전에도 그런 전적이 있어. 그때 적비성과 방다병은 혹시 이연화를 찾은게 아닌가 흥분해서 따라갔는데 돼지 뒷다리를 들고 가던 백정만 놀라게 만들었었지-  적비성과 방다병은 반사적으로 불여우를 쫓았어. 희망과 불안감을 동시에 안고서. 


길가에 장사꾼이니, 상인이니, 물건을 사고 팔거나 짐을 실은 수레와 그를 끄는 말등 빈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였어. 그러다보니 개 한마리는 어느순간 꼬리조차 안보였자 아주 제 주인을 똑 닮아 갑자기 사라지는데 비상하다며 방다병은 부아가 치밀었어. 

- 빌어먹을 똥개, 지 주인한테 아주 못된것만 배웠어. 


계속 굳어있던 적비성이 이번엔 피식 웃고 말았어. 개 한마리따위 잃어버려도 전혀 상관업지만 하필이면 그 개가 이연화의 개이고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게 어이가 없는거 있지. 그렇지만 불여우를 잃는다면 이연화도 정말로 영영 잃어버릴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적비성의 미소는 마른 모래에 물이 스며들듯 사라져버렸어.


그때 어디서 악! 짧은 비명 소리가 들렸어.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리니 누군가 뺨을 붙잡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게 보였어. 뭔가 시비가 붙었는지 남들 보다 두 배는 큰 덩치에 배가 불뚝 나와있던 사내는 쓰러져 있는 이에게 거칠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어. 팔을 위협적으로 들며 흔드는게 누가 봐도 명백히 폭력을 쓰는모습었지. 사람이 시끌벅적한 거리에는 언제나 시정잡배가 있기 마련이지. 별다른 특이할 것도 없는 장면이었고 방다병은 불여우를 찾느라 미처 보지도 못했어.

별 감흥없이 보다가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무언가 적비성의 시선의 끝에 걸렸어. 쓰러졌던 이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뭐라 웅얼거렸지만 덩치의 욕지거지에 묻혀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어. 화내는 사내를 말리느라 주변에서 웅성웅성 모여들어 더욱 시야를 방해했는데 적비성의 시선이 가늘어졌어. 긴머리가 흐트러져 얼굴이 잘 안보이는데 왠지 모를 경종이 머리속에서 울렸어. 갑자기 뒷목에 소름이 돋으며 적비성은 불여우를 찾겠다고 소리 지르려던 방다병의 입을 막고 한쪽 구석으로 몸을 숨겼어.


읍읍!! 부지불식간에 입을 막고 자신을 낚아채니 방다병은 놀라 발버둥을 쳤는데 적비성이 나지막히 말했어.

- 조용히 해. 

긴장감 어린 나지막한 목소리에 방다병은 급히 적비성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지. 거기에는 한무리의 사람들과 괄괄하게 거친 말을 내뱉으며 날뛰는 사내와 그 앞에 금방이라도 쓰러질것 같이 위태위태하게 서 있는 뒷모습이 보였어. 화내는 사내가 거구이고 그 앞의 사람은 마른 편이라 더욱 작고 연약해 보였지.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방다병 또한 못 박힌듯 꼼짝도 할 수 없었어.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칼의 이는 겁을 잔뜩 먹은듯 움츠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어. 위축되고 수구린 모습이 전혀 아닌것 같은데... 그런데....


멱살을 잡히니 마른 낙엽처럼 힘없이 끌려간 이는 또 맞을까봐 겁이 났는지 제 몸을 감싸며 웅크렸어. 화를 내는 사내를 아는 듯한 주변 사람 몇이  약한 사람 좀 고만 괴롭히라고 하도 성토를 하니 저 멀리 도성의 치안을 지키는 관군도 보이겠다, 봐주는 척 그를 일부러 세게 내동댕이 쳤어. 제법 세게 부딪혔는지 멱살을 잡혔던 이는 잠시 움직이지 못하다가 겨우겨우 일어났어. 그렇게 후줄그레한 차림새의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만류로 겨우 자리를 떠나게 됬어. 방다병은 소리 내어 그를 부르려다 다시 적비성의 손길에 입이 막혔어. 지금 그일지도 모르는데, 그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왜 적비성은 가만히 있는거지? 급하고 초조한 마음에 방다병을 손을 들어 적비성을 공격하려 했어. 


- 만약... 만약 그 녀석이라면.... 네가 부르면 바로 도망치고 말거다.


방다병을 들었던 손을 떨어트렸어. 알겠다는 듯 힘없이 주억거리자 적비성은 방다병을 놓아주고 급히 허리춤에서 무언가 꺼내 들었어. 작은 상자에 작은 벌레같은게 들어있었어. 적비성은 신중히 떠나는 사람에 등에 벌레를 쏘았어. 이 벌레는 아주 독특한 향을 내는데 사람의 후각으로는 전혀 알수가 없고 동물만이 맡을수 있었지. 인파속으로 사라지는 이의 등을 보며 적비성과 방다병을 당장이라도 이름을 부르며 달려들지 않기위해서 인간힘을 써야만 했어. 방다병은 적비성의 의도를 이해했어. 이연화는 신중하고 또 재빠르지. 이렇게 번화하고 사람이 가득한 곳에서 잡으려 들면 아주 손 쉽게 도망칠수 있어.  


- 이...이연화가 맞을까?

방다병의 목소리가 떨렸어. 사실 적비성도 확실치는 않았어. 이연화가 아무리 죽을 자리를 봐놨다지만 저렇게 쉽게 당할 이도 아니거니와 저렇게 비루한 자세를 취할 인사도 아니었거든. 이연화는 어수룩한척 굴기는 했어도 교묘하여 절대로 남에게 무릎을 꿇지는 않는 사람이었어. 허니 그냥 뒷모습이 좀 닮은 정도일수도 있었어. 비슷한 사람을 찾았을때마다 무수한 실망을 했고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지도 몰라. 적비성은 이를 꽉 물었어. 
 

- 가 보면 알겠지.

어느순간부터인가 불여우가 방다병 옆에서 꼬리를 흔들며 앉아있었어. 가자, 두 사내는 불여우를 앞세우고 누가 먼저라고도 할것 없이 발을 떼었어.




****



불여우는 중간 중간 먹을것에 한눈을 팔기도 하고 팔랑팔랑 장난감 같은것에 딴짓을 하기도 했지만 적비성과 방다병을 참을성 있게 불여우를 따라갔어. 구불구불한 골목을 몇번 지나고 나니 도성 아주 구석진 빈민촌 같은 곳에 당도하게 됬어. 그런데도 한참을 가더니 아예 도성을 벗어나 족히 반나절은 걸었을까, 폭삭 주저앉은 농가 두어군데가 보이는 거야. 그 곳 가장 뒷편에 역시 마찬가지로 금방이라도 쓰러질것 같은 낡은 집 하나가 나타났지. 

담은 부서진지 오래고 깨진 기와는 간신히 매달려있고 그 밑을 바치는 기둥은 옆으로 기울어져 방금 봐왔던 집들처럼 바로 무너져 내려갈것 같았어. 당최 사람이 살수 없을것 같은 곳이라 처음에는 잘못 왔나 싶었는데 여기저기 구멍이 나 간신히 메달려있는 문틈 사이로 어떤 그림자가 보였어. 두 사람은 시선을 교환하고 단 한마디의 상의도 없었지만 적비성은 기척을 숨기고 경공을 사용해 뒷편으로 갔고 방다병은 불여우를 조용히 시키며 살금살금 문으로 향했어.


등뒤에 땀이 흐르며 온몸 긴장으로 점철됬어. 여기 있을까? 예전 처럼 또 헛걸음을 하는것은 아닐까? 매번 어떤 단서를 발견해 찾아갈때마다 불 피웠던 희망은 차가운 재가 되서 사라지곤 했지. 이번에도 기대는 배신 당하고 무정한 빈공간만 있을까, 또 허탈하게 돌아서며 눈물을 삼켜야만 할까. 방다병은 단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지만 실망이 거듭될수록 마음 한구석에 철근이 박힌듯 점점 더 힘이 들었어. 쿵쾅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방다병은 숨을 가다듬었어. 제발 있기를 빌고 또 빌며 방다병은 부러 시끄럽게 문을 열고 뛰어들었어.

그리고 이번엔 간절함이 통한것 같아 탁상에 앉아 있던 이의 놀란 얼굴은 꿈에서조차 그리웠던 그 얼굴이었어.

- 이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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