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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7 23:40
네임의 상대를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과 잘 연애하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음. 네임은 네임이고, 연애는 연애지. 운명의 상대만 기다리면서 젊음을 축낼 순 없잖아. 그 친구들은 그렇게 말하곤 했어. 안타깝게도 고든은 그런 쪽은 아니었음. 딱히 어떤 결심을 하고 연애를 안 하는 건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해. 고든의 경우는 젊음을 축내며 기다린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게 문제였지만. 


그 상대는 요즘 작품을 하나 막 끝내고 시간이 많아졌는지 만나자는 연락을 꽤 자주 해왔음. 딱히 뭘 같이 한다기보다는 밥이나 같이 먹고 떠드는 게 다였지만. 사실 형은 운동을, 그러니까, 어떤 종류의 운동이든지 같이 하고 싶은 눈치였는데 그건 위험부담이 너무 커서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넘어갔지. 남들은 고든이 엄격하게 정해진 루틴을 좋아하는 줄 알겠지만, 그건 그저 형의 이름을 들키지 않으려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뿐이었어. 만에 하나 실수로 이젠 너무 유명해져 버린 형의 이름을 보이게 되면 위험한 건 고든 뿐만이 아니었으니까.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통제하는 게 안심이 됐지. 
 

고든도 배우 활동을 하며 신경 써야할 것이 늘었어. 아니, 신경 써야할 건 그대로 딱 한 가지였지만 난이도가 올라갔다고 해야 할까. 상의를 탈의해야 하는 촬영 같은 건 의외로 쉬웠음. 네임이 있는 사람은 고든 혼자가 아니었고, 네임을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도 고든 혼자가 아니었고, 사회적으로 네임에 대해 묻는 건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고서야 무례하다는 분위기였으니까. 그러니까 그런 촬영은 커버용 테이프를 붙이고 후보정을 부탁하면 그만이었음.


어려워진 건 네임을 가리는 것보다 마음을 숨기는 거였어. 자신의 길을 따라 걷게 된 동생이 꽤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는지, 아니면 다시 만난 동생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도 마음에 들었는지, 형은 고든과의 거리를 점점 더 좁혀왔음. 그렇게 좁혀진 거리에서도 형은 너무 빛나는 사람이었어. 실제로 만나면 단념이 되지 않을까, 친형제를 좋아한다니 징그럽지 않을까, 하던 일말의 희망도 사라져 버렸지. 형은 고든의 마음도 모르면서 마음속 깊이 뚜벅뚜벅 걸어들어와 태평하게 눕더니 나갈 줄을 몰랐어.


그래서 고든은 더 힘들었음. 형은 좋은 사람이고 매력적인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렇게 좋아하게 된 거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조금씩 드러냈다간 자신도 모르게 선을 넘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지. 어디까지가 형제 사이의 사랑이고 어디까지가.. 고든이 느끼는 그런 감정인지는 자신도 정확히 나눌 수 없었어. 그러니까 형제간의 가까움이나 애틋함을 표현하려 했다가는 자칫 보여서는 안 되는 마음을 들켜버릴 것 같았지. 고든이 생각할 수 있는 남은 답은 하나라서, 형한테 벽을 칠 수밖에 없었어. 형이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자, 자꾸 연락해서 이번 휴일에는 뭐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한테.


고든은 가만히 누워 식당에서의 일을 생각했어. 형에게 네임 이야기를 꺼낸 건, 제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음. 형이 네임이 있는지, 네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시라도 형의 네임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 있는지, 그런 게 궁금했던 건데...


괜히 말했어...


네임이 있다는 걸 말해버린 게 잘한 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음. 어찌 됐든 고든이 형과 서핑을 갈 일은 없을 거니까. 맨몸을 보일만한 일은 다 피할 거였으니까. 하지만 결국 형에게 네임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채로 자신의 패만 보여준 게 조금 억울하긴 했음. 고든은 베개를 끌어안고 한숨을 쉬었어.







처음에는 그게 네임인 줄도 몰랐어. 오른쪽 가슴 아래, 낙서처럼 작은 점이 생겼을 뿐이었으니까. 어느 순간 이상한 점이 생겼고, 딱히 아프지도 않았어. 그게 네임이란 걸 안 것은 학교에서 네임이 무엇인지 처음 배운 날이었음. 정확히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학교에 가기엔 아직 어린 동생이 혼자 그림 그리는 걸 봤을 때였지.


동생은 뭣도 모르고 형을 따라 하곤 했어. 학교 숙제로 그림을 그린 맛켄유가 도화지 한구석에 이름을 쓰는 걸 유심히 보던 동생은 낙서에 가까운 자신의 그림에도 자기만의 표시를 그려 넣기 시작했음. 동생이 그림마다 그런 걸 써 놓고 있었다는 것도, 그게 동생 이름의 이니셜이라는 것도, 그게 자신의 오른쪽 가슴에 있는 이상한 점과 똑같이 생겼다는 것도 맛켄유는 그날 알았어. 그게 학교에서 배운 네임이라는 것까지도. 손힘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두꺼운 사인펜으로 꾹꾹 눌러서 쓴 뭉개진 G. 그게 맛켄유 몸에 나타난 이상한 점의 정체였음. 


아주 사소한 일도 저녁 시간마다 가족 전체에게 발표해야 성미가 풀리던 어린 맛켄유가 어떻게 그걸 비밀로 하기로 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스로도 신기했음. 아마 무서웠던 거겠지. 학교에서는 동화 속 공주님과 왕자님처럼 운명적인 사랑의 이름이 몸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고 했지, 왕자님한테 왕자님 동생의 이름이 나타난다고 설명해 주진 않았거든. 운동을 좋아하는 꼬마 아이였던 맛켄유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 이상한 점을 보이지 않으려는 노력이 그날부터 시작됐어. 부모님은 벌써 사춘기가 온 거냐며 놀렸지만 적어도 동생에게만은 이 점을, 이 네임을 보여서는 안 됐지. 


어떤 의미에서 맛켄유는 운이 좋았어. 네임의 상대가 말 그대로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고, 상대의 몸에도 자신의 이름이 있는지 아닌지를 살피기도 좋았으니까. 동생은 제 몸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는 형이 간지럽히기 놀이라도 하려는 줄 알았는지 꺄르륵 웃다가 더 놀아달라며 형을 툭툭 건드렸어. 맛켄유는 동생의 볼을 꾹 누르며 마주 웃었지. 아쉽게도 동생의 몸은 매번 백지처럼 깨끗했음. 자신이 아쉬워하는 이유도 몰랐고, 동생의 몸에 자신의 이름이 나타나길 바라는 건지도 확신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동생의 몸에 다른 사람의 이름이 나타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어린 맛켄유는 안도했어. 


‘고쨩 나랑 정말 서핑 안 갈 거야?’
‘응. 곧 촬영이라 여기서 더 타면 안 돼.’


곧바로 답장이 온 것 치고는 매우 단호한 거절에 맛켄유는 입술을 삐죽였어. 어릴 때는 쉬웠는데. 이렇게 동생의 맨몸을 보려고 온갖 수작을 부리지 않아도 그냥 확인할 수 있었는데. 물론 동생에게 나타났다는 네임이 자신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그랬으면 고든이 굳이 먼저 네임 얘기를 꺼내고, 태연하게 네임이 있다고 밝히고, 어디에 있는지까지 알려주었을 리가. 무엇보다 어른이 된 맛켄유는 동생이 자신의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꽤 컸음. 그게 얼마나 외롭고 마음 아픈 일인지 너무 잘 알았으니까. 


그래도 궁금하다... 고등학교 때였다고...


오른쪽 가슴 아래, 이제는 완벽한 정자체로 또박또박 새겨진 동생의 이름을 손으로 쓸어보며 맛켄유는 한숨을 내쉬었어. 동생이 워낙 어릴 때 네임이 나타난 탓에 동생이 학교에 들어가고, 글씨 쓰기가 익숙해지며 몇 번의 변화가 있었음. 언젠가는 히라가나로, 언젠가는 영어로, 어느 새부턴가는 한자로 이름은 바뀌었어. 그 글자가 의미하는 사람은 항상 그대로였지만. 그럴 때마다 맛켄유는 어떤 핑계를 만들어서든 동생의 몸을 살폈지. 혹시라도 이 변화가 의미하는 게 있지 않을까, 하고.


‘그러면 다른거 하면서 놀아줘.. 형아랑 놀아줘 고짱😢’


아랫입술을 쭉 내민 채로 메세지를 쳐서 보냈는데 이번엔 바로 답장이 오지 않았음. 나 좀 친구 없어 보이나.. 그런 걸 신경 쓸 동생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괜히 찔려서 다시 한숨을 내쉰 맛켄유는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노려봤어.


네임이 먼저였을까, 감정이 먼저였을까, 하고 묻는다면 사실 맛켄유는 네임이 먼저였다고 대답할 거였어. 그도 그럴 것이, 네임이 처음 나타났을 때는 동생은 물론이고 자신도 너무 어렸음. 사춘기가 오기도 한참 전의 맛켄유는 네임이 뜻하는 사랑과 형재애를 구분하지 못했지. 이미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동생이었는걸. 그래서 주변의 누군가가 첫사랑에 앓을 때, 누군가가 첫 연애를 할 때, 누군가가 첫 실연에 아파하고 누군가가 첫 경험을 할 때, 맛켄유는 동생을 생각했어. 이 네임에 따르면 자신의 운명의 사랑은 내 동생인데, 내가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친구들이 겪는 저런 감정과 같은 걸까. 나는 동생을 그렇게 사랑하는 걸까. 그 대답을 찾기도 전에 둘은 떨어져야 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춘기 시절을 넘어 성인이 될 때까지도 맛켄유는 연애나 성에 관심이 없는 편이었어. 학생 때는 고백을 받으면 호기심에 사귀어 보기도 했지만, 곧 자신이 이런 데에 관심이 없다는 것만 더 확실히 알게 되었지. 거기다, 별로 설레지 않는 데이트를 하고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며 몸을 내려다보면, 동생의 이름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 같았어. 형은 내 거잖아, 하고 말하는 것 같았지. 상상 속의 동생은 오래전의 꼬맹이 모습을 하고 있기도 했고, 사진으로만 본 교복 차림에 더 성숙한 모습을 하고 있기도 했어. 우리 그런 사이 아니잖아.. 하고 중얼거리며 옷으로 네임을 덮어버리면, 기억 속의 울보 동생은 입술을 삐죽이며 서럽게 제 이름을 불렀어. 맛켄, 내가 미안해. 가지 마..


그러니까 항상 이런 식이었음. 가끔씩 맛켄유는 자신이 정말로 연애에 관심이 없던 건지 의심했어. 너무 일찍 발현해 버린 네임에 묶여서 시작도 전에 스스로 관심을 접은 걸지도 모른다고. 네임 상대를 두고 다른 연애를 하는 것과, 어린 동생을 연애 대상으로 보는 것. 둘 중 어느 것을 택해도 죄책감에서 벗어날 순 없었지. 그래서 연애와 그걸 둘러싼 모든 걸 마음 한 구석으로 밀어뒀던 걸지도 몰라. 제멋대로 흘러가던 생각이 휴대전화 진동소리에 뚝 끊겼어. 고든이다.


‘어떤 거 하고 싶은데? 뭐 먹으러 갈까?’


동생의 답장을 확인한 맛켄유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음. 요즘 빠진 디저트 가게의 주소를 신나게 찍어 보내고, 어떤 메뉴가 맛있고, 어떤 걸 먹어 보고 싶고 너는 뭘 먹어 보라고 줄줄이 떠들다가, 문득 자신이 광대가 땡기도록 웃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아무튼 많이 먹을 거니까 운동 열심히 하고 와!’
‘오케이. 맛있겠다’


헤헤.. 맛있겠다.


휴대전화 화면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럽게 웃던 맛켄유의 표정은 그 혼잣말을 끝으로 묘하게 바뀌었음. 디저트가 기대돼서 기분이 좋아진 게 아니라는 것쯤은 스스로도 잘 알았지. 하지만 곧 고개를 내저으며 다른 생각은 떨쳐버렸어. 좋아, 동생이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간다. 디저트로 식사를 해주겠어.




어나더노잼의법칙ㅜ
2024.05.18 10:5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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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나 왜 이거 지금 봐써!!!! 주말동안 존나 보고또보고보고또볼거야 ㅜㅜㅜ
[Code: 2242]
2024.05.18 11:45
ㅇㅇ
모바일
센세제발억나더..!!!!!!!!!!!!!!ㅠㅠㅠ너무좋다
[Code: b589]
2024.05.18 12: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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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맛켄 몸에 나타난게 먼저였어;;;;;;; 집요하게 고든 몸 확인하려고 하는 것도 .....
[Code: 8cb5]
2024.05.18 22:5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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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상대 이름 가지고 있으면서 삽질하는거 왜케 존맛이냐 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 형은 내거잖아 뭔데 ㅌㅌㅌ
[Code: 7d81]
2024.05.19 05: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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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맛켄유는 고든이름 가지고 있으면서 니가 가진
이름 주인은 아쉽겠다 같은 소릴 했던거네 ... 와..;; 어나더센세제발....
[Code: e3b6]
2024.05.20 00:3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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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세상존잼이것만기다리면서살았다법칙....ㅠㅠㅠㅠㅠ
[Code: 6249]
2024.05.23 22: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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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나더만 기다리면서 산다..
[Code: 29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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