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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2 23:45
이런걸 내가 보고싶다.... ༼;´༎ຶ ༎ຶ`༽ (역사알못 노잼주의 내가 만약 틀렸다면 그럴수도 있지 않을까)
주자서가 궁에 처음 들어왔을 때 황자들의 호위무사라고 쓰고는 실상은 놀이상대였겠지. 황자들의 나이는 천차만별로 다양하였는데 그 중에 8황자인 온객행과는 나이가 비슷하여 친하게 지냈을 듯.
실력은 주자서가 훨씬 뛰어났지만 둘은 궁 안에서 같은 스승에게 무술을 배우고 공부도 하며 서로를 위해서라면 목을 베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절친이 되었겠지.
하루는 궁 안에 병이 돌아 주자서도 열병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맸을듯. 병이 전염이 될까 황자의 신분인 온객행은 출입을 금지당했지만 그는 밤에 몰래 주자서가 머문 방의 창문을 열고 들어가 주자서를 돌봤지.
땀에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히고 체온이 올라 덜덜떠는 주자서를 밤새 품에 안고 쓰라린 살갖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지. 눈도 못 뜨는 주자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온객행은 물을 묻힌 손가락으로 연신 그의 말라 갈라진 입술을 쓰다듬었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도 주자서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지. 온객행은 약방에 가 황족들만이 쓰는 약재를 얼마없는 자신의 패물과 교환해 구해와 주자서에게 가지고갔지. 물만 먹어도 게워내는 그는 몸이 수척해 있었고 약을 받아들이지 못했음. 그래도 정신은 돌아와 창문을 열고 도둑고양이처럼 들어오는 온객행을 보고 웃을 수 있었지.
“....사나워...”
“응? 뭐라고?”
온객행이 옷의 먼지를 털며 주자서에게 다가왔음.
“뭐라고 했어?”
“...황자가 꼴 사납다고.”
“뭐?”
자신의 말을 듣고 황당하다는 온객행의 표정이 웃겼는지 주자서가 웃음을 터트렸음. 덕분에 말라있던 입술이 찢어지며 피가 베어나왔지.
온객행이 손수건을 꺼내 아파하는 주자서의 입술을 누르며 말했지.
“벌 받은거야. 나보고 꼴사납다니? 네 모습을 보면 나한테 그런 말을 못할텐데.“
농담처럼 던진 말인데 주자서가 말하겠지.
“이런 모습도 이젠 얼마 안 남았어. 내 마지막이나 잘 지켜보라고.”
“그런 소리하지마.”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주자서의 말에 갑자기 온객행의 눈가가 붉어졌고, 그것을 감추기라도 하듯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지.
“내가 약을 가져왔어.”
두툼한 보자기에서 꺼낸 약에서는 김이 났겠지. 숨도 겨우 쉬는 체력 밖에 남지 않은 주자서는 온객행의 정성에 미안한 마음 뿐이었지.
”궁 안에 환자가 많아 이젠 내어 줄 탕약도 없다는데 이건 어디서 구했어?“
”내가 누군데. 그래도 황자잖아.“
황자라해도 그의 입지를 잘 아는 주자서는 마음이 아팠지. 그를 생각해 오늘 당장 죽더라도 저것은 먹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하지만 병에 잠식 된 몸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지. 온객행이 입가에 대어준 약은 채 한모금도 마시고 못하고 뿜어내고 말았음. 한줌 남은 기력은 그걸로 끝이 나버리고 말았지. 침상 위로 힘없이 떨어지는 머리를 온객행이 손을 뻗어 받쳤음. 주자서는 그대로 눈을 뜨지 못하고 기절을 하고 말았지. 온객행이 아무리 부르고 몸을 흔들어봐도 반응이 없었음. 가늘게 붙은 숨은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았지.
“아슈.. 일어나. 약속했잖아. 계속 내 곁에 있겠다고 했잖아. 나는 너 말고는 아무도 없어...”
온객행은 황자의 신분이지만 왕이 아끼는 황자는 아니었고 어머니조차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궁 안에서 의지할 만한 사람은 없었음. 그나마 외가 쪽이 버티고 있기에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온객행이 손에 든 탕약을 입 안에 전부 쏟아 넣었지.
그리고는 주자서를 안고 입을 맞췄음. 한방울도 흘리지 않도록 한참을 그렇게 입을 겹치고는 주자서를 끌어안고 있었지.
그 덕분인지 주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을 회복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음.
온객행은 크게 기뻐하며 주자서를 맞이했지.
소년무사로 들어온 주자서는 실력이 뛰어나 어른의 모습을 갖출때 쯤 전장으로 나가는 일이 빈번했을 것 같다. 궁을 나설 때나 몇 달이 지나 돌아올때, 한결같이 주자서를 맞이한 건 온객행이었지. 힘겨운 나날 속 차갑게 굳었던 얼굴은 온객행을 보고 풀렸겠지.
주자서가 다시 떠날때까지 거의 매일밤을 둘은 같이 식사를 하고 같은 침상을 썼을듯. 서로 말은 꺼내지 못했지만 품은 마음은 같았지.
예전 병을 앓았을 때 주자서는 눈 뜰 기력이 없었을 뿐 어렴풋이 깨어있었지. 매일밤 온객행이 자신을 돌봐주던 것도 알고 있었음. 열에 어쩌지못한 자신을 안고 귓속말로 속삭이던 말도. 탕약이 끊겨 오로지 생으로 홀로 건뎌야 할때 그가 구해온 탕약을 자신에게 어찌 먹었는지도 전부 기억하고 있었지.
“잠이 안 와?”
주자서는 천장에 비추는 촛불의 그림자를 멍하니 보고 있다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바라봤음.
“넌 왜 안 자?”
“그냥.”
“그럼 나도 그냥.”
장난기 하나없는 얼굴로 주자서가 대답하자 온객행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음. 주자서의 굳은 눈가가 부드럽게 풀렸지.
“난 이번에 제병도부서로 이관이 될거야. 거긴 국경 근처라 당분간 돌아오지는 못할거 같아.“
“국경 근처라면 탁무정이 끄는 부대잖아. 거기는 거칠기로 유명한데....네 수장과 탁무정은 사이가 안좋지 않았나? “
“사이가 좋지 않아도 조정이 정한 것을 어길수는 없지. 국경이 요즘 소란스러워. 성격이 불같은 탁무정도 거듭되는 패전에 조정의 결정에 뭐라할 낯짝도 없을거야. 국경이 잠잠해질때까지는 있어야할 것 같아. “
“위험할 것 같으면 그냥 도망쳐. 목숨 앞에 황제가 어디있고 신의가 어디있어? 우선 살고 봐야지.”
깜짝 놀란 주자서가 온객행의 입을 틀어막았음.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온객행의 귓가에 속삭였지.
“너 미쳤어? 누가 들으면 크게 경을 칠거야.”
“대체 이 밤에 누가 우리말을 엿듣겠어?”
“그래도 모르는거야. 궁에는 여러 사건이 일어난다고. 제발 조심해.“
”.......“
”내 말 듣고 있는거야?“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입을 틀어막힌채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음. 방금까지 나눴던 말는 이미 머리속에서 사라졌을듯.
이런 외모를 누가 군인으로 볼까. 전복을 입지 않으면 여인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아름다운데...
입을 막고 있는 주자서의 손에 베인 조두의 향이 그의 살내음과 섞여 달콤한 향을 풍기고 있었지. 향을 깊게 맡기 위해 몇 번 숨을 크게 들이키자 주자서가 이마를 찌푸리며 손을 뗐음.
“뭐하는거야?“
“이상해.”
“뭐가?”
“같은 조두를 썼는데 왜 너만 향이 다른거같지?”
주자서는 방금까지 온객행이 킁킁댔던 손에 냄새를 맡아봤음.
”나는 모르겠는데?“
“내 향도 맡아봐.”
온객행이 손을 뻗어 주자서를 끌어당겼음. 어? 하는 사이 주자서는 온객행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지.
”너, 이거....!“
“어때? 같은 향이 나?”
바둥거리는 주자서를 두 팔로 억누르고 온객행이 다시 물었지.
“......”
“응?”
“나.”
“안들려.”
“향기가 난다고. 이 손 풀어봐. 답답해.“
온객행은 반쯤 걸쳐져있던 주자서의 몸을 아예 제 몸 위로 끌어올리고는 다시 두 팔로 단단히 묶었지.
”이러면 한결 낫지?“
어이가 없던 주자서가 화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음. 두 사람의 얼굴은 꽤 가까웠지. 주자서의 속눈썹이 그의 턱에 닿을정도였음.
”뭐가 나아? 왜 이런 장난을 치는거야?“
”...장난같아?“
주자서의 등에 올려져있던 온객행의 손이 움직였음. 느리게 허리를 쓸며 목까지 훑어올라왔지. 그 생소한 느낌에 주자서의 몸이 부르르 떨렸음.
”장난이 아니면, 아...! 그런거 하지마.“
주자서가 기겁을 하며 몸을 일으키려하자 온객행이 다시 그를 잡아당겨 제 몸에 붙였지.
”오늘 밤만이야. 넌 내일 떠나잖아.“
착각일까. 온객행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이.
주자서는 더이상 저항하지 않고, 그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겠지.
그날 밤은 주자서에게도 온객행에게도 잠들지 못한 밤이었을듯.
부대총관 유림공이 전장에서 세운 주자서의 공을 시기하여 상사에게 건의하기를 “주자서가 끄는 부대가 비록 이번에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관군 역시 사상자가 많고 자신의 용맹을 믿고 경솔하니 그로 하여금 절제를 시키고 반성을 하게 하였습니다.“ 질투가 많았던 상사는 유림공의 말을 믿고 이에 넘어가서 더 이상 주자서를 신뢰하지 않았지.
주자서가 문제를 제기하고 항의하였으나 먹히지 않았을듯. 유림공은 이미 몸을 키운 주자서가 그들의 적이 된다면 커다란 피해를 입을 것이니 상사에게 도성으로 돌아가기 전 그를 죽이고 재물을 취해야 한다고 했지. 하지만 황제로부터 내려온 면봉유지로 주자서는 당장의 죽음은 면한 채 궁으로 끌려오게됐지.
주자서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던 온객행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음. 그는 몇날며칠 밤새 말을 달려 주자서가 탄 호송차를 쫓았지. 주자서는 궁에 도착하기 전까지 낮에는 호송차를 타고 밤엔 관에 있는 감옥에서 밤을 보내는 신세였음. 온객행이 관에 도착해 면회를 신청했으나 거부당하고 말았지. 주자서는, 명령을 따르지 않고 단독으로 행동을 하여 군과 나라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중죄인이었음. 하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이들에게 손에 쥐어준 은자는 커다란 유혹이었지.
험한 몰골의 주자서를 본 온객행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았음. 오히려 먼저 입을 연 건 주자서였지.
”꼴사나워.“
”...꼴사납다고? 내가?“
온객행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나왔음. 옷매무새를 고칠 여유도 없이 그를 만나러 온 자신의 몰골이 그의 말처럼 깔끔하지는 않았지.
”응. 황자가 이런 곳엘 다오고. 꼴사납지.”
“...그러는 너는.”
“...그러게.”
두 사람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음. 주자서는 기쁜 마음에 흐트러진 머리를 대충 넘기며 온객행에게 다가갔지.
“엉망이지?”
주자서의 말에 온객행의 눈빛이 장난스럽게 빛났음. 떨어져있는 동안 보내온 편지 속에 그리웠던 소년은 자신의 기억보다 훌쩍 키가 크고 눈빛이 더욱 깊어져 있었지. 2년만에 만난 주자서는 더 아름다웠음.
“아주 엉망이야. 네 모습을 보면 개방의 거지가 친구하자고 할지도 몰라.“
”마지막엔 깔끔한 모습으로 가고 싶었는데. 방법이 없군. 그래도 이런 걸로 나의 뛰어난 미모는 가릴 수 없지.“
주자서는 피로 얼룩진 자신의 옷을 보고 킥킥거리며 웃었음.
”.......“
온객행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음.
거짓말같은 이 상황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 끓는 속을 혀를 깨물며 억누르는 자신이 참으로 무능하다고 느꼈지. 주자서는 갑자기 조용해진 온객행을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봤음.
”네가 궁에 도착하기 전까지 내가 아버지를 만나볼게.“
그를 살리기 위해 당장 온객행이 매달릴 곳이라고는 황제 밖에 없었지.
”그러지마. 아무 소용이 없을거야. 너만 관리들의 눈밖에 난다고. 나를 내주는 걸로 들끓는 민심을 잠재울 기세야. 이미 나도 모르는 증언과 증거가 넘쳐나. 모두가 부질없는 일이야.”
“전부 날조잖아. 너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나는 그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거야!”
그는 전장에서 나라를 위해 싸워왔을 뿐인데!
온객행은 터져나오는 분노로 주먹으로 옥문을 내리쳤지. 주자서가 옥문 사이로 온객행의 손을 잡고 말했음.
“용서는, 힘이 있는 사람이 하는거야. 로온, 넌 아직 약하지. 섣불리 움직여선 안돼. 힘을 키워. 누구에게도 지지마. 넌 꼭 살아남아야 해.“
담담한 눈빛으로 주자서가 한자한자 힘을 주며 말했음. 온객행은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을 다잡았지만 눈가가 젖어드는 것은 막을 수 없었지. 당장 눈 앞의 정인도 구하지 못하는데 뒤늦게 힘을 가진다한들 무슨 소용일까.
“나는 너 없이는 안 돼... 난,아직...”
온객행은 제모습을 감추려고 고개를 숙였음.
주자서는 차마 그의 눈물을 차마 볼 수가 없었지. 온객행은 황자였고 자신은 무거운 죄명이 씌워진 죄인이었음. 이런 조악한 장소에서, 그의 눈물은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더욱 깨닫게 만들었지. 주자서는 그의 마음을 아는 듯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음.
“이건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번에 황제가 남조에 혼인을 넣어 화의를 성립하고자 할겁니다. 남조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고 딸 뿐이니 황자들 중 한명을 보내겠지요. 그렇다면 황자께서 가십시오. 황제도 누구를 보낼지 골치가 아플때 황자께서 자진해 간다하면 크게 기뻐하시며 작위를 내리실겁니다. 봉작을 받고 황궁을 떠나면 남조에서 입지를 굳히십시오. 남조는 황자의 외가와도 인연이 있으니 잘해줄겁니다. 절대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몸을 낮추지 말고, 당당하게...꿈을...”
순간 목이 메여왔지. 온객행은 버리지도 못하는, 남들이 보기에는 귀한 신분이었지만 실상 궁 안에서는 찬밥도 그런 찬밥이 없었지. 황제는 황후 외에도 부인이 많았고 자식은 수를 세다 지칠정도로 많았음. 그 중에 온객행은 황제가 이름이라도 기억해준다면 영광일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지. 그를 뒷바침해줄 세력은 지방관리로 있는 외가뿐이었지만 뇌물이나 부패와는 거리가 멀어 그 역시 궁 안에서는 입지가 뜬구름이었음.
”어서 가. 마지막으로, 네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사람들에게 들키면 너에게 좋을 것이 없어. 가.”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를 밀며 말했지.
“가라니까, 바보야!“
그 때, 온객행의 눈빛이 어둡게 변하더니 주자서의 손을 쥐어 당기고는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지.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난데없는 행동을 부추겼을듯. 쓸쓸한 애정이 듬뿍 담긴 손짓은 마치 머릿속에 새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몇 번이고 주자서의 얼굴을 만졌지. 결국 온객행은 비통함을 금치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어떤 마음이었던가. 이런 눈빛으로, 이런 몸짓으로, 답을 바라지 않은 연정을 품고 지낸 세월은 길었건만 주저하며 거리를 재는 사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님은 향하네.
돌이킬 수 없는 후회만이 물밀듯이 밀려오는구나.
당황한 주자서의 표정은 복잡한 눈빛으로 바뀌고 끓어오르는 슬픔에 목이 메였지. 한치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삶 아래 두 사람의 거리는 가깝고도 멀었음. 서로의 무딘 두 어깨를 기대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랬건만 전부 거품처럼 사라지는 꿈이었던가.
내일이란 희망이 없는 그에게는 가질수 없는 꿈이었지.
주자서는 칼을 삼키는 마음으로 온객행을 밀어 냈을듯.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같은 옥문을 가운데 두고 두사람의 시선이 얽혔지.
“....어서 가.”
단호한 주자서의 말에 온객행이 다급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음.
“아슈.”
그 때 바깥에서 망을 보던 관병이 들어와 시간이 다 됐다며 온객행을 불렀을듯.
“난...이제 그만 쉬어야겠어. 잘가, 로온.“
등을 돌린 채 주자서는 다시는 온객행을 쳐다보지 않았지. 얼마 후 온객행은 무거운 발걸음을 떼며 자리를 떠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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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객행은 다시 말을 달려 궁으로 돌아갔음. 촉박한 시간 속에 음식을 취하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그에게는 사치였음. 궁에 돌아가 제일 먼저 만난 것은 황제가 아니었지. 온객행은 먼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패물을 전부 챙겨들고 즉시 병필태감을 만나러 갔지. 병필태감에게 남조의 혼사의 이야기를 넌지시 물었음. 처음에 병필태감은 체면을 차리며 온객행이 건네던 보석들을 못본척 했겠지. 질문 하나당 금덩어리를 건네니 능구렁이처럼 머리를 굴리며 어렵게 굴던 태감은 결국 아직 결정이 난 것은 아니지만 서숙비의 아들 원정이 혼기가 차 그 후보에 들었다는 말을 흘렸지. 온객행이 다시 묵직한 금덩어리를 건네며 말했지.
서숙비와의 자리를 만들어주면 이 남은 금들은 자네꺼라고.
아니나다를까 서숙비는 자리에 몸져누워 있었음. 자식이라고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인데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데릴사위로 남조에 간다는건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과 생이별이라니. 여기서 온객행은 거래를 하겠지.
원정대신 남조를 갈테니 뒷배가 없는 자신을 밀어달라고. 자리보전하던 서숙비는 몸을 일으켜 눈빛을 빛냈음. 그 날 서숙비와 온객행은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지.
서숙비는 똑똑했음. 황제의 총애를 적당히 밀고 당기며 이용할 줄 알았지. 황제 앞에서 일부러 슬쩍 흘린 온객행의 이름과 우연인듯 병필태감이 온객행의 외가가 남조와 먼 혈연관계에 있다는 말을 꺼냈지. 남조의 호감을 더욱 살 수 있는 온객행의 존재에 황제의 구미가 당겼을 듯. 황제의 뒤에서 여우같은 서숙비와 능구렁이 병필태감이 은밀하게 눈빛을 교환했지.
온객행이 원하는 건 주자서의 목숨을 구하는 것. 오직 그것 하나 뿐이었음.
그는 궁에 들어오면, 구체적으로 서술하기에는 막연함이 있는 내란죄로 추국을 받아야했지. 추국은 형식적이고 증인들은 있으니 죄는 이미 확정이었을테지.
보고싶은 것을 다 써서 속이 후련하다....휴...
읽어줘서 코맙 ٩( ᐛ )و
산하령
객행자서
주자서가 궁에 처음 들어왔을 때 황자들의 호위무사라고 쓰고는 실상은 놀이상대였겠지. 황자들의 나이는 천차만별로 다양하였는데 그 중에 8황자인 온객행과는 나이가 비슷하여 친하게 지냈을 듯.
실력은 주자서가 훨씬 뛰어났지만 둘은 궁 안에서 같은 스승에게 무술을 배우고 공부도 하며 서로를 위해서라면 목을 베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절친이 되었겠지.
하루는 궁 안에 병이 돌아 주자서도 열병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맸을듯. 병이 전염이 될까 황자의 신분인 온객행은 출입을 금지당했지만 그는 밤에 몰래 주자서가 머문 방의 창문을 열고 들어가 주자서를 돌봤지.
땀에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히고 체온이 올라 덜덜떠는 주자서를 밤새 품에 안고 쓰라린 살갖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지. 눈도 못 뜨는 주자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온객행은 물을 묻힌 손가락으로 연신 그의 말라 갈라진 입술을 쓰다듬었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도 주자서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지. 온객행은 약방에 가 황족들만이 쓰는 약재를 얼마없는 자신의 패물과 교환해 구해와 주자서에게 가지고갔지. 물만 먹어도 게워내는 그는 몸이 수척해 있었고 약을 받아들이지 못했음. 그래도 정신은 돌아와 창문을 열고 도둑고양이처럼 들어오는 온객행을 보고 웃을 수 있었지.
“....사나워...”
“응? 뭐라고?”
온객행이 옷의 먼지를 털며 주자서에게 다가왔음.
“뭐라고 했어?”
“...황자가 꼴 사납다고.”
“뭐?”
자신의 말을 듣고 황당하다는 온객행의 표정이 웃겼는지 주자서가 웃음을 터트렸음. 덕분에 말라있던 입술이 찢어지며 피가 베어나왔지.
온객행이 손수건을 꺼내 아파하는 주자서의 입술을 누르며 말했지.
“벌 받은거야. 나보고 꼴사납다니? 네 모습을 보면 나한테 그런 말을 못할텐데.“
농담처럼 던진 말인데 주자서가 말하겠지.
“이런 모습도 이젠 얼마 안 남았어. 내 마지막이나 잘 지켜보라고.”
“그런 소리하지마.”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주자서의 말에 갑자기 온객행의 눈가가 붉어졌고, 그것을 감추기라도 하듯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지.
“내가 약을 가져왔어.”
두툼한 보자기에서 꺼낸 약에서는 김이 났겠지. 숨도 겨우 쉬는 체력 밖에 남지 않은 주자서는 온객행의 정성에 미안한 마음 뿐이었지.
”궁 안에 환자가 많아 이젠 내어 줄 탕약도 없다는데 이건 어디서 구했어?“
”내가 누군데. 그래도 황자잖아.“
황자라해도 그의 입지를 잘 아는 주자서는 마음이 아팠지. 그를 생각해 오늘 당장 죽더라도 저것은 먹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하지만 병에 잠식 된 몸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지. 온객행이 입가에 대어준 약은 채 한모금도 마시고 못하고 뿜어내고 말았음. 한줌 남은 기력은 그걸로 끝이 나버리고 말았지. 침상 위로 힘없이 떨어지는 머리를 온객행이 손을 뻗어 받쳤음. 주자서는 그대로 눈을 뜨지 못하고 기절을 하고 말았지. 온객행이 아무리 부르고 몸을 흔들어봐도 반응이 없었음. 가늘게 붙은 숨은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았지.
“아슈.. 일어나. 약속했잖아. 계속 내 곁에 있겠다고 했잖아. 나는 너 말고는 아무도 없어...”
온객행은 황자의 신분이지만 왕이 아끼는 황자는 아니었고 어머니조차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궁 안에서 의지할 만한 사람은 없었음. 그나마 외가 쪽이 버티고 있기에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온객행이 손에 든 탕약을 입 안에 전부 쏟아 넣었지.
그리고는 주자서를 안고 입을 맞췄음. 한방울도 흘리지 않도록 한참을 그렇게 입을 겹치고는 주자서를 끌어안고 있었지.
그 덕분인지 주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을 회복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음.
온객행은 크게 기뻐하며 주자서를 맞이했지.
소년무사로 들어온 주자서는 실력이 뛰어나 어른의 모습을 갖출때 쯤 전장으로 나가는 일이 빈번했을 것 같다. 궁을 나설 때나 몇 달이 지나 돌아올때, 한결같이 주자서를 맞이한 건 온객행이었지. 힘겨운 나날 속 차갑게 굳었던 얼굴은 온객행을 보고 풀렸겠지.
주자서가 다시 떠날때까지 거의 매일밤을 둘은 같이 식사를 하고 같은 침상을 썼을듯. 서로 말은 꺼내지 못했지만 품은 마음은 같았지.
예전 병을 앓았을 때 주자서는 눈 뜰 기력이 없었을 뿐 어렴풋이 깨어있었지. 매일밤 온객행이 자신을 돌봐주던 것도 알고 있었음. 열에 어쩌지못한 자신을 안고 귓속말로 속삭이던 말도. 탕약이 끊겨 오로지 생으로 홀로 건뎌야 할때 그가 구해온 탕약을 자신에게 어찌 먹었는지도 전부 기억하고 있었지.
“잠이 안 와?”
주자서는 천장에 비추는 촛불의 그림자를 멍하니 보고 있다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바라봤음.
“넌 왜 안 자?”
“그냥.”
“그럼 나도 그냥.”
장난기 하나없는 얼굴로 주자서가 대답하자 온객행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음. 주자서의 굳은 눈가가 부드럽게 풀렸지.
“난 이번에 제병도부서로 이관이 될거야. 거긴 국경 근처라 당분간 돌아오지는 못할거 같아.“
“국경 근처라면 탁무정이 끄는 부대잖아. 거기는 거칠기로 유명한데....네 수장과 탁무정은 사이가 안좋지 않았나? “
“사이가 좋지 않아도 조정이 정한 것을 어길수는 없지. 국경이 요즘 소란스러워. 성격이 불같은 탁무정도 거듭되는 패전에 조정의 결정에 뭐라할 낯짝도 없을거야. 국경이 잠잠해질때까지는 있어야할 것 같아. “
“위험할 것 같으면 그냥 도망쳐. 목숨 앞에 황제가 어디있고 신의가 어디있어? 우선 살고 봐야지.”
깜짝 놀란 주자서가 온객행의 입을 틀어막았음.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온객행의 귓가에 속삭였지.
“너 미쳤어? 누가 들으면 크게 경을 칠거야.”
“대체 이 밤에 누가 우리말을 엿듣겠어?”
“그래도 모르는거야. 궁에는 여러 사건이 일어난다고. 제발 조심해.“
”.......“
”내 말 듣고 있는거야?“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입을 틀어막힌채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음. 방금까지 나눴던 말는 이미 머리속에서 사라졌을듯.
이런 외모를 누가 군인으로 볼까. 전복을 입지 않으면 여인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아름다운데...
입을 막고 있는 주자서의 손에 베인 조두의 향이 그의 살내음과 섞여 달콤한 향을 풍기고 있었지. 향을 깊게 맡기 위해 몇 번 숨을 크게 들이키자 주자서가 이마를 찌푸리며 손을 뗐음.
“뭐하는거야?“
“이상해.”
“뭐가?”
“같은 조두를 썼는데 왜 너만 향이 다른거같지?”
주자서는 방금까지 온객행이 킁킁댔던 손에 냄새를 맡아봤음.
”나는 모르겠는데?“
“내 향도 맡아봐.”
온객행이 손을 뻗어 주자서를 끌어당겼음. 어? 하는 사이 주자서는 온객행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지.
”너, 이거....!“
“어때? 같은 향이 나?”
바둥거리는 주자서를 두 팔로 억누르고 온객행이 다시 물었지.
“......”
“응?”
“나.”
“안들려.”
“향기가 난다고. 이 손 풀어봐. 답답해.“
온객행은 반쯤 걸쳐져있던 주자서의 몸을 아예 제 몸 위로 끌어올리고는 다시 두 팔로 단단히 묶었지.
”이러면 한결 낫지?“
어이가 없던 주자서가 화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음. 두 사람의 얼굴은 꽤 가까웠지. 주자서의 속눈썹이 그의 턱에 닿을정도였음.
”뭐가 나아? 왜 이런 장난을 치는거야?“
”...장난같아?“
주자서의 등에 올려져있던 온객행의 손이 움직였음. 느리게 허리를 쓸며 목까지 훑어올라왔지. 그 생소한 느낌에 주자서의 몸이 부르르 떨렸음.
”장난이 아니면, 아...! 그런거 하지마.“
주자서가 기겁을 하며 몸을 일으키려하자 온객행이 다시 그를 잡아당겨 제 몸에 붙였지.
”오늘 밤만이야. 넌 내일 떠나잖아.“
착각일까. 온객행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이.
주자서는 더이상 저항하지 않고, 그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겠지.
그날 밤은 주자서에게도 온객행에게도 잠들지 못한 밤이었을듯.
부대총관 유림공이 전장에서 세운 주자서의 공을 시기하여 상사에게 건의하기를 “주자서가 끄는 부대가 비록 이번에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관군 역시 사상자가 많고 자신의 용맹을 믿고 경솔하니 그로 하여금 절제를 시키고 반성을 하게 하였습니다.“ 질투가 많았던 상사는 유림공의 말을 믿고 이에 넘어가서 더 이상 주자서를 신뢰하지 않았지.
주자서가 문제를 제기하고 항의하였으나 먹히지 않았을듯. 유림공은 이미 몸을 키운 주자서가 그들의 적이 된다면 커다란 피해를 입을 것이니 상사에게 도성으로 돌아가기 전 그를 죽이고 재물을 취해야 한다고 했지. 하지만 황제로부터 내려온 면봉유지로 주자서는 당장의 죽음은 면한 채 궁으로 끌려오게됐지.
주자서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던 온객행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음. 그는 몇날며칠 밤새 말을 달려 주자서가 탄 호송차를 쫓았지. 주자서는 궁에 도착하기 전까지 낮에는 호송차를 타고 밤엔 관에 있는 감옥에서 밤을 보내는 신세였음. 온객행이 관에 도착해 면회를 신청했으나 거부당하고 말았지. 주자서는, 명령을 따르지 않고 단독으로 행동을 하여 군과 나라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중죄인이었음. 하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이들에게 손에 쥐어준 은자는 커다란 유혹이었지.
험한 몰골의 주자서를 본 온객행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았음. 오히려 먼저 입을 연 건 주자서였지.
”꼴사나워.“
”...꼴사납다고? 내가?“
온객행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나왔음. 옷매무새를 고칠 여유도 없이 그를 만나러 온 자신의 몰골이 그의 말처럼 깔끔하지는 않았지.
”응. 황자가 이런 곳엘 다오고. 꼴사납지.”
“...그러는 너는.”
“...그러게.”
두 사람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음. 주자서는 기쁜 마음에 흐트러진 머리를 대충 넘기며 온객행에게 다가갔지.
“엉망이지?”
주자서의 말에 온객행의 눈빛이 장난스럽게 빛났음. 떨어져있는 동안 보내온 편지 속에 그리웠던 소년은 자신의 기억보다 훌쩍 키가 크고 눈빛이 더욱 깊어져 있었지. 2년만에 만난 주자서는 더 아름다웠음.
“아주 엉망이야. 네 모습을 보면 개방의 거지가 친구하자고 할지도 몰라.“
”마지막엔 깔끔한 모습으로 가고 싶었는데. 방법이 없군. 그래도 이런 걸로 나의 뛰어난 미모는 가릴 수 없지.“
주자서는 피로 얼룩진 자신의 옷을 보고 킥킥거리며 웃었음.
”.......“
온객행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음.
거짓말같은 이 상황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 끓는 속을 혀를 깨물며 억누르는 자신이 참으로 무능하다고 느꼈지. 주자서는 갑자기 조용해진 온객행을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봤음.
”네가 궁에 도착하기 전까지 내가 아버지를 만나볼게.“
그를 살리기 위해 당장 온객행이 매달릴 곳이라고는 황제 밖에 없었지.
”그러지마. 아무 소용이 없을거야. 너만 관리들의 눈밖에 난다고. 나를 내주는 걸로 들끓는 민심을 잠재울 기세야. 이미 나도 모르는 증언과 증거가 넘쳐나. 모두가 부질없는 일이야.”
“전부 날조잖아. 너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나는 그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거야!”
그는 전장에서 나라를 위해 싸워왔을 뿐인데!
온객행은 터져나오는 분노로 주먹으로 옥문을 내리쳤지. 주자서가 옥문 사이로 온객행의 손을 잡고 말했음.
“용서는, 힘이 있는 사람이 하는거야. 로온, 넌 아직 약하지. 섣불리 움직여선 안돼. 힘을 키워. 누구에게도 지지마. 넌 꼭 살아남아야 해.“
담담한 눈빛으로 주자서가 한자한자 힘을 주며 말했음. 온객행은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을 다잡았지만 눈가가 젖어드는 것은 막을 수 없었지. 당장 눈 앞의 정인도 구하지 못하는데 뒤늦게 힘을 가진다한들 무슨 소용일까.
“나는 너 없이는 안 돼... 난,아직...”
온객행은 제모습을 감추려고 고개를 숙였음.
주자서는 차마 그의 눈물을 차마 볼 수가 없었지. 온객행은 황자였고 자신은 무거운 죄명이 씌워진 죄인이었음. 이런 조악한 장소에서, 그의 눈물은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더욱 깨닫게 만들었지. 주자서는 그의 마음을 아는 듯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음.
“이건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번에 황제가 남조에 혼인을 넣어 화의를 성립하고자 할겁니다. 남조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고 딸 뿐이니 황자들 중 한명을 보내겠지요. 그렇다면 황자께서 가십시오. 황제도 누구를 보낼지 골치가 아플때 황자께서 자진해 간다하면 크게 기뻐하시며 작위를 내리실겁니다. 봉작을 받고 황궁을 떠나면 남조에서 입지를 굳히십시오. 남조는 황자의 외가와도 인연이 있으니 잘해줄겁니다. 절대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몸을 낮추지 말고, 당당하게...꿈을...”
순간 목이 메여왔지. 온객행은 버리지도 못하는, 남들이 보기에는 귀한 신분이었지만 실상 궁 안에서는 찬밥도 그런 찬밥이 없었지. 황제는 황후 외에도 부인이 많았고 자식은 수를 세다 지칠정도로 많았음. 그 중에 온객행은 황제가 이름이라도 기억해준다면 영광일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지. 그를 뒷바침해줄 세력은 지방관리로 있는 외가뿐이었지만 뇌물이나 부패와는 거리가 멀어 그 역시 궁 안에서는 입지가 뜬구름이었음.
”어서 가. 마지막으로, 네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사람들에게 들키면 너에게 좋을 것이 없어. 가.”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를 밀며 말했지.
“가라니까, 바보야!“
그 때, 온객행의 눈빛이 어둡게 변하더니 주자서의 손을 쥐어 당기고는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지.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난데없는 행동을 부추겼을듯. 쓸쓸한 애정이 듬뿍 담긴 손짓은 마치 머릿속에 새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몇 번이고 주자서의 얼굴을 만졌지. 결국 온객행은 비통함을 금치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어떤 마음이었던가. 이런 눈빛으로, 이런 몸짓으로, 답을 바라지 않은 연정을 품고 지낸 세월은 길었건만 주저하며 거리를 재는 사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님은 향하네.
돌이킬 수 없는 후회만이 물밀듯이 밀려오는구나.
당황한 주자서의 표정은 복잡한 눈빛으로 바뀌고 끓어오르는 슬픔에 목이 메였지. 한치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삶 아래 두 사람의 거리는 가깝고도 멀었음. 서로의 무딘 두 어깨를 기대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랬건만 전부 거품처럼 사라지는 꿈이었던가.
내일이란 희망이 없는 그에게는 가질수 없는 꿈이었지.
주자서는 칼을 삼키는 마음으로 온객행을 밀어 냈을듯.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같은 옥문을 가운데 두고 두사람의 시선이 얽혔지.
“....어서 가.”
단호한 주자서의 말에 온객행이 다급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음.
“아슈.”
그 때 바깥에서 망을 보던 관병이 들어와 시간이 다 됐다며 온객행을 불렀을듯.
“난...이제 그만 쉬어야겠어. 잘가, 로온.“
등을 돌린 채 주자서는 다시는 온객행을 쳐다보지 않았지. 얼마 후 온객행은 무거운 발걸음을 떼며 자리를 떠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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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객행은 다시 말을 달려 궁으로 돌아갔음. 촉박한 시간 속에 음식을 취하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그에게는 사치였음. 궁에 돌아가 제일 먼저 만난 것은 황제가 아니었지. 온객행은 먼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패물을 전부 챙겨들고 즉시 병필태감을 만나러 갔지. 병필태감에게 남조의 혼사의 이야기를 넌지시 물었음. 처음에 병필태감은 체면을 차리며 온객행이 건네던 보석들을 못본척 했겠지. 질문 하나당 금덩어리를 건네니 능구렁이처럼 머리를 굴리며 어렵게 굴던 태감은 결국 아직 결정이 난 것은 아니지만 서숙비의 아들 원정이 혼기가 차 그 후보에 들었다는 말을 흘렸지. 온객행이 다시 묵직한 금덩어리를 건네며 말했지.
서숙비와의 자리를 만들어주면 이 남은 금들은 자네꺼라고.
아니나다를까 서숙비는 자리에 몸져누워 있었음. 자식이라고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인데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데릴사위로 남조에 간다는건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과 생이별이라니. 여기서 온객행은 거래를 하겠지.
원정대신 남조를 갈테니 뒷배가 없는 자신을 밀어달라고. 자리보전하던 서숙비는 몸을 일으켜 눈빛을 빛냈음. 그 날 서숙비와 온객행은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지.
서숙비는 똑똑했음. 황제의 총애를 적당히 밀고 당기며 이용할 줄 알았지. 황제 앞에서 일부러 슬쩍 흘린 온객행의 이름과 우연인듯 병필태감이 온객행의 외가가 남조와 먼 혈연관계에 있다는 말을 꺼냈지. 남조의 호감을 더욱 살 수 있는 온객행의 존재에 황제의 구미가 당겼을 듯. 황제의 뒤에서 여우같은 서숙비와 능구렁이 병필태감이 은밀하게 눈빛을 교환했지.
온객행이 원하는 건 주자서의 목숨을 구하는 것. 오직 그것 하나 뿐이었음.
그는 궁에 들어오면, 구체적으로 서술하기에는 막연함이 있는 내란죄로 추국을 받아야했지. 추국은 형식적이고 증인들은 있으니 죄는 이미 확정이었을테지.
보고싶은 것을 다 써서 속이 후련하다....휴...
읽어줘서 코맙 ٩( ᐛ )و
산하령
객행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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