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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7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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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계 아닌 궁중물
후일담
강징은 배나무 아래에서 궁인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망기를 보며 조용히 웃고 있다가 아징하고 자신의 아명을 부르는 소리에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음. 도대체 언제 온건지 황제가 서 있어서 평소처럼 달려가 품에 안기려다가 걸음을 멈추고 토라진척 몸을 돌리고 있으니 황제가 짐이 왔는데 반겨주지도 않을셈이냐고 말함. 강징이 그 말에 못이기는척 달려가 품에 안겨서 강아지마냥 얼굴을 마구 부볐어. 황제가 웃으며 며칠 사이에 키가 더 자란것 같은데 몸만 컸지 아직 아이처럼 군다고 흉아닌 흉을 보았지. 이제 한 아이의 어미가 됐으면 의젓해져야지 아직도 이리 어리광을 부리느냐고 타박함. 그러자 강징이 신첩이 아이처럼 철없이 구는게 좋다고 하셔놓곤 그 사이에 이런 모습이 싫어지신거냐고 황제를 올려다보며 울상을 지음. 황제가 그런 강징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짐은 농도 못하느냐? 날이 아직 찬데 풍한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왜 이리 옷을 얇게 입었냐고 걱정함. 강징이 이제 봄이라 따뜻한데 상궁이 자꾸 두꺼운 옷만 입혀서 더워서 땀띠가 날 지경이라고 툴툴거리다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품에서 빠져나옴. 그리고는 아잠하고 유모와 같이 있는 망기에게 까딱 손짓을 하며 부른 다음에 황제의 손을 붙잡고 흔들며 아잠이 신첩이 키우는 강아지를 그려주었는데 어찌나 잘그렸는지 웬만한 궁정화가보다 솜씨가 뛰어나다고 칭찬을 했음.
잠시후 강징이 얼마나 신이 나게 뛰어놀았는지 땀투성이인 망기의 이마를 영견으로 꼼꼼하게 닦아주고는 콧등을 톡침. 황자 부황께 인사를 올리지 않고 무얼하고 있느냐고 등을 슬쩍 밀어서 예법대로 인사를 올리게 함. 강징이 그런 망기를 보고 무척 기특해하다가 손에 쥔 배꽃을 보고 우리 황자가 도대체 누굴 주려고 이리 예쁜 꽃을 주워왔을까? 하고 기대감에 가득찬 표정으로 웃었어. 망기가 수줍은듯 얼굴을 붉히며 손에 쥔 꽃잎을 내밀자 강징이 그런 망기를 끌어안고 보드라운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춤. 강징이 망기가 준 꽃잎을 귓가에 꽂으며 만지작거리다 아잠이 이리 어미를 생각하니 신첩이 다른 복은 없어도 자식 복은 있나봅니다. 사가의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때론 부군보다 자식이 더 낫다고 하던데 그게 참말인가보다고 툴툴거림. 황제가 당혹스러운듯 금은보화를 안겨주어도 싫다고 할땐 언제고 이제 와서 딴소리냐고 말함. 강징이 웃으면서 그냥 해본 소리라고 황제의 소매를 붙잡고 오늘은 신첩이랑 아잠과 함께 석반을 드시고 승건궁에서 주무시고 가시라고 함. 그리고 유모를 불러 황자를 씻기고 본궁이 만들어놓은 옷이 있으니 그걸로 갈아입히라고 말을 하는데 갑자기 황제가 울컥 피를 토하며 휘청거림. 폐하하고 다급히 안으려는데 황제가 그런 손길이 혐오스러운듯 자식과 붙어먹은 더러운것이 어딜하고 강징을 세게 밀침.
망기는 태의로부터 상처가 깊지 않아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거라는 말을 듣고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쉼. 밤을 꼬박 새우고 내내 곁을 지키고 있다가 잠깐 잠에 들었는데 아잠하고 아명을 부르는 소리에 선잠에서 깨어남. 강징이 무슨 꿈을 꾸는지 희미하게 웃으며 아잠하고 손을 뻗길래 저에 대한 꿈을 꾸나 싶어서 손을 붙잡으려고 했음. 하지만 금방 폐하하고 선대 황제를 찾는것을 보고 손을 잡지 않고 말없이 계수를 가슴팍까지 덮어줌. 도대체 언제까지 죽은 이에 대한 연심을 놓지 못하는건지 가슴을 짓이기는 것만 같아 울컥 치미는 눈물에 눈앞이 흐려짐. 그때 강징이 새된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더니 품에 와락 안겨들고는 뭐가 그리 서글픈지 흐느껴 울었어. 망기가 아무런 말없이 등을 쓸어주자 한참을 슬피 울다가 몸을 떼어냄. 그리고는 눈물 범벅을 하고선 망기의 얼굴을 감싸쥐더니 버석 마른 입술에 쪼듯이 여러번 입을 맞춤. 그러고는 여즉 꿈을 꾸는듯 몽롱한 눈으로 폐하 간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폐하께서 각혈을 하시고 흑, 신첩에게 자식과 붙어먹은 더러운것이라고, 아니지요? 폐하께서 그런 끔찍한 말을 제게 하실리가 없다고 중얼거리다가 힘이 빠진듯 다시 눈을 감는데 그런 강징을 보는 망기는 비참함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짐. 이제는 선대 황제와 함께 한 시간보다 자신과 함께 한 시간이 더 길면서도 아직도 그의 마음속엔 제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는것 같았어. 어쩌면 평생 이렇게 보답받지 못하는 외사랑을 해야겠지. 제겐 마음 한자락 내어주지 않는 무정한 이임을 알면서도 연모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음. 망기는 제 품에서 다시 잠든 강징을 한참동안이나 끌어안고 있었어.
사윤은 자신의 양모인 귀태비가 기거하는 수강궁에 문안 인사차 들렸다가 귀태비의 품에 안긴 아기를 보고 신기하게 여김. 귀태비 소생의 이복 누이인 화선 공주가 얼마전에 해산을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아이인가 해서 유심히 쳐다보았음. 귀태비가 승건궁의 상재가 낳은 공주라며 한번 안아보지 않겠냐고 권하길래 얼떨결에 품에 안았다가 승건궁의 상재라는 말에 제 품에 안긴 아이가 제 누이 동생인것을 깨달음. 사윤이 웃으면서 폐하께서 지난 겨울에 공주를 얻으셨다더니 그 아이가 이 아이냐고 묻고는 공주가 모친을 닮아서 참 어여쁘다고 말함. 귀태비가 그 말에 당황한듯 상재를 본적이 있냐고 캐묻는 바람에 그제야 말실수를 한것을 알아차림. 사윤이 어색하게 웃으며 폐하께서 후궁으로 들인 분이면 미색이 대단한 분일듯 해서 어림짐작으로 해본 소리라며 품안에 안긴 공주의 뺨을 조심스럽게 만짐. 귀태비가 아까전까지만 해도 잠투정을 하느라 칭얼거리더니 네 품에 안기니 이리 순하다고 한숨을 쉬는데 그 말을 하는 귀태비의 얼굴이 무척이나 어두워보였어. 사윤이 공주를 몇번 어르다가 유모에게 안겨주고는 차를 마시는데 강징의 얼굴이 계속 떠올라서 심란해짐. 사윤은 양모에게 인사를 올리고 나와 수강궁의 배나무 아래서 배꽃을 감상했음. 태후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던 배꽃을 보며 승건궁에 있을 강징을 그리워하다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 길로 곧장 황제의 거처인 양심전으로 갔음. 양심전의 총관 태감이 사윤을 보고 반색하며 왕야께서 어쩐일로 오셨냐고 묻는데 사윤이 폐하는? 폐하는 어디에 계시느냐고 물음. 폐하께서는 지금 불당에서 기도를 드리고 계신다는 말에 지체없이 그쪽으로 향함.
망기는 불당에서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다가 사윤이 들었다는 말에 반색을 함. 왕부를 하사받고 출궁을 한 이후로 갖은 핑계를 대며 정해진 입궁 날짜를 어기더니 오늘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지. 사윤이 상기된 얼굴로 들어와서는 대뜸 모친을 뵙게 해달라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기 시작함. 망기가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하니 사윤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모친을 뵙고 싶습니다. 저를 낳아준 생모가 이 황궁에 살아계시는 것을 압니다. 먼발치에서라도 좋으니 한번만 뵙게 해달라고 애원을 하다가 망기가 네 모친이 널 만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자 충격이 컸는지 털썩 주저앉음. 사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제가 세상에 태어나선 안될 존재이기 때문에 모친께서 저를 미워하시는 것이냐고 물음. 망기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다가 사윤이 하는 말에 안색이 하얗게 질림. 사윤이 소제, 아니 소자가 선황의 자식이 아니라 태후마마와 폐하의 사이에서 태어난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거든. 망기가 차마 아니라고 말을 하진 못하고 도대체 누가 너에게 그런 말을 했냐고 물음. 사윤이 눈물을 흘리며 지난해에 우연히 자녕궁에 갔다가 두분이 다투시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고 죽은 노상궁이 제 출생에 관한 진실을 모두 말해주었다고 고함. 망기는 사윤에게만큼은 숨기고 싶었던 참혹한 진실에 눈을 질끈 감고 잠시 생각을 하는듯 하더니 아윤하고 손을 내밀었어. 사윤이 일어나서 제 곁으로 다가오자 사윤의 손을 붙잡고 너를 낳아주신 어머니를 원망해선 안된다 이 모든건 짐이 저지른 죄때문이라고 여전히 울고 있는 사윤의 마음을 달래려고 애를 썼음. 사윤이 그 말에 아이처럼 엉엉 소리를 내어 울면서 두분을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저도 다른 이들처럼 모친과 함께 후원을 거닐고 차를 마시고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고 싶을뿐이라고 대답함. 망기가 그런 사윤을 안쓰럽게 쳐다보다가 떨리는 손으로 사윤의 뺨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짐. 아윤 짐이 너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용서해달라고 말하진 않으마 원망해도 좋으니 가끔 이렇게 네 얼굴만 보게 해다오. 사윤이 예전처럼 형님이라고 하려다가 멈칫하고는 그냥 말없이 품안에 안김.
강징은 창 너머로 보이는 흐드러지게 핀 배꽃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다가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남. 선제의 후궁이자 사윤의 양모인 귀태비가 강징의 모습을 보고는 생각 이상으로 참담한 몰골에 눈물을 뚝뚝 흘림. 사가에 있을적처럼 오라버니하고 다가서려는데 강징이 뒷걸음질을 쳤어. 강징이 몸을 돌리면서 이런 모습을 네게 보여주기 싫으니 당장 나가거라. 나가라질 않아! 소리를 지르다가 밖에서 아이가 우는 소리에 멈칫함. 유모가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소리가 들리자 강징이 한숨을 쉬면서 유모를 불렀어. 유모에게서 아이를 받아 안고 자장가를 불러주니 칭얼거리다가 금세 조용해짐. 강징이 품에 안긴 아이를 물끄러미 보다가 폐하를 많이 닮지 않았느냐? 하고 말을 걸었어. 귀태비가 웃으며 코는 오라버니를 닮았고 이마는 폐하를 닮았다고 하는데 사실 선대 황제보다는 현 황제인 망기를 더 많이 닮았지만 일부러 그점을 짚고 넘어가진 않았음. 강징이 요람에 아이를 눕혀놓고 요람을 살살 흔들다가 이 아이가 자라 네살이 되면 네게 양육을 맡기마 아무래도 나처럼 심성이 어질지 못한 어미보단 너처럼 다정하고 상냥한 성격을 가진 모친이 더 좋을게 아니냐. 네가 아윤과 삼공주를 잘키웠으니 너만한 양모도 없을테지.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아이를 잘키워다오. 귀태비가 그 말을 듣고 공주의 앞날을 생각을 했다는 사람이 목을 그었냐고 어찌 이리 바보같이 구냐고 화를 내는데 강징이 그럼 나더러 이곳에 갇혀서 친아들과 다름이 없는 황제와 살을 섞으며 살란 말이냐고 소리를 지름. 갑작스러운 고성에 아이가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자 귀태비가 아이를 안아서 달램. 강징이 그 모습을 보고 네살이 되길 기다릴 필요도 없겠구나 가는 길에 데리고 가서 키우려무나 그렇게 말하곤 우는 아이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침전안으로 들어가서 침상에 누움. 귀태비가 유모를 불러 아이를 달래게 하고 상처를 없애는데 좋다는 연고를 승건궁의 상궁에게 건네주고 상재를 잘모셔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함. 그러고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한참을 침전의 안쪽을 쳐다보다가 겨우 밖으로 나감.
강징이 늦은 밤이 되도록 침상에 웅크리고 누워있다가 시침을 들 준비를 하셔야 한다는 상궁의 말에 힘없이 일어났어. 궁녀들의 도움을 받아서 세욕을 하고 그 어느때보다 정성껏 치장을 함. 강징은 침상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망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음. 황제 이 어미가 어찌하면 좋겠소. 그대가 원하는게 이 더러운 몸뚱이인게요? 이미 더럽혀졌으니 그대가 질릴때까지 내어주면 그러면 만족하겠냐고 물음. 망기가 굳은 얼굴로 오늘은 이곳에서 쉬고 싶어서 온것일뿐이라고 강징의 팔을 붙잡고 일으킴. 그리곤 침상으로 데리고 그 위에 앉게 하고 신을 벗고 장포도 의가에 걸어두고는 안쪽에 누움. 강징이 한숨을 쉬며 침상의 바깥쪽에 모로 눕자 망기가 그런 강징을 뒤에서 끌어안으며 귓가에 소곤거림. 제가 어릴적엔 이렇게 같이 한 침상에서 잠들었던것 기억이 나십니까. 어느날에 제 키가 당신의 어깨만큼 자랐다고 더 이상 같이 잠들수가 없다고 하셨지요. 그때 제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나십니까. 부친은 어머니보다 키가 더 큰데 왜 두분은 한 침상에 같이 누워 주무시나요? 강징은 그 말을 듣고 헛웃음을 터뜨리며 그대의 연치가 이립이 넘었는데 아직도 어리광이냐고 타박을 하곤 황후를 품는게 내키지 않으면 다른 비빈들과 동침해서 후사를 얻으라고 말함. 이 삭막한 곳에서 그대 하나만 바라보는 황후와 비빈들이 가엾지도 않냐고 함. 그러니 망기가 이 황궁에서 제일 가여운 사람은 당신을 한번도 진심으로 대한적이 없는 무정한 사내를 잊지 못하는 당신과 그런 당신을 연모하는 자신이 아니냐고 되물음. 강징이 그 말에 울컥해서 자리에 일어나 네가 나를 진심으로 연모했다면 겁간을 하지 않았을터! 연모? 연모가 아니라 한순간의 욕정이었겠지. 다 늙은 사내의 가랑이가 어찌 생겼나 궁금해서 품어보니 품을만했던게 아니냐. 시간하는 취미는 없는 모양이구나. 어젯밤에 죽게 내버려두었으면 질릴때까지 실컷 품었을텐데 죽게 내버려두지 그랬어! 어찌 이리 어리석어! 화를 내다가 드러난 팔목에 뭔가로 그은듯한 상흔이 여러개 있어 눈앞이 아득해짐. 아잠! 제발 정신을 차리거라. 이 어미가 어찌하면 되느냐. 네가 원하는대로 하지 않았느냐. 네가 울며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 애원해서 이 모질고 비루한 목숨을 내 손으로 끊지 않았잖니. 사윤도 공주도 세상에 나게 하였는데 무엇을 더 바라냐고 화를 내다가 망기가 입을 맞추는 바람에 굳어버림.
망기강징 망징 약청형군강징
어나더 https://hygall.com/591012741
수선계 아닌 궁중물
후일담
강징은 배나무 아래에서 궁인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망기를 보며 조용히 웃고 있다가 아징하고 자신의 아명을 부르는 소리에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음. 도대체 언제 온건지 황제가 서 있어서 평소처럼 달려가 품에 안기려다가 걸음을 멈추고 토라진척 몸을 돌리고 있으니 황제가 짐이 왔는데 반겨주지도 않을셈이냐고 말함. 강징이 그 말에 못이기는척 달려가 품에 안겨서 강아지마냥 얼굴을 마구 부볐어. 황제가 웃으며 며칠 사이에 키가 더 자란것 같은데 몸만 컸지 아직 아이처럼 군다고 흉아닌 흉을 보았지. 이제 한 아이의 어미가 됐으면 의젓해져야지 아직도 이리 어리광을 부리느냐고 타박함. 그러자 강징이 신첩이 아이처럼 철없이 구는게 좋다고 하셔놓곤 그 사이에 이런 모습이 싫어지신거냐고 황제를 올려다보며 울상을 지음. 황제가 그런 강징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짐은 농도 못하느냐? 날이 아직 찬데 풍한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왜 이리 옷을 얇게 입었냐고 걱정함. 강징이 이제 봄이라 따뜻한데 상궁이 자꾸 두꺼운 옷만 입혀서 더워서 땀띠가 날 지경이라고 툴툴거리다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품에서 빠져나옴. 그리고는 아잠하고 유모와 같이 있는 망기에게 까딱 손짓을 하며 부른 다음에 황제의 손을 붙잡고 흔들며 아잠이 신첩이 키우는 강아지를 그려주었는데 어찌나 잘그렸는지 웬만한 궁정화가보다 솜씨가 뛰어나다고 칭찬을 했음.
잠시후 강징이 얼마나 신이 나게 뛰어놀았는지 땀투성이인 망기의 이마를 영견으로 꼼꼼하게 닦아주고는 콧등을 톡침. 황자 부황께 인사를 올리지 않고 무얼하고 있느냐고 등을 슬쩍 밀어서 예법대로 인사를 올리게 함. 강징이 그런 망기를 보고 무척 기특해하다가 손에 쥔 배꽃을 보고 우리 황자가 도대체 누굴 주려고 이리 예쁜 꽃을 주워왔을까? 하고 기대감에 가득찬 표정으로 웃었어. 망기가 수줍은듯 얼굴을 붉히며 손에 쥔 꽃잎을 내밀자 강징이 그런 망기를 끌어안고 보드라운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춤. 강징이 망기가 준 꽃잎을 귓가에 꽂으며 만지작거리다 아잠이 이리 어미를 생각하니 신첩이 다른 복은 없어도 자식 복은 있나봅니다. 사가의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때론 부군보다 자식이 더 낫다고 하던데 그게 참말인가보다고 툴툴거림. 황제가 당혹스러운듯 금은보화를 안겨주어도 싫다고 할땐 언제고 이제 와서 딴소리냐고 말함. 강징이 웃으면서 그냥 해본 소리라고 황제의 소매를 붙잡고 오늘은 신첩이랑 아잠과 함께 석반을 드시고 승건궁에서 주무시고 가시라고 함. 그리고 유모를 불러 황자를 씻기고 본궁이 만들어놓은 옷이 있으니 그걸로 갈아입히라고 말을 하는데 갑자기 황제가 울컥 피를 토하며 휘청거림. 폐하하고 다급히 안으려는데 황제가 그런 손길이 혐오스러운듯 자식과 붙어먹은 더러운것이 어딜하고 강징을 세게 밀침.
망기는 태의로부터 상처가 깊지 않아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거라는 말을 듣고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쉼. 밤을 꼬박 새우고 내내 곁을 지키고 있다가 잠깐 잠에 들었는데 아잠하고 아명을 부르는 소리에 선잠에서 깨어남. 강징이 무슨 꿈을 꾸는지 희미하게 웃으며 아잠하고 손을 뻗길래 저에 대한 꿈을 꾸나 싶어서 손을 붙잡으려고 했음. 하지만 금방 폐하하고 선대 황제를 찾는것을 보고 손을 잡지 않고 말없이 계수를 가슴팍까지 덮어줌. 도대체 언제까지 죽은 이에 대한 연심을 놓지 못하는건지 가슴을 짓이기는 것만 같아 울컥 치미는 눈물에 눈앞이 흐려짐. 그때 강징이 새된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더니 품에 와락 안겨들고는 뭐가 그리 서글픈지 흐느껴 울었어. 망기가 아무런 말없이 등을 쓸어주자 한참을 슬피 울다가 몸을 떼어냄. 그리고는 눈물 범벅을 하고선 망기의 얼굴을 감싸쥐더니 버석 마른 입술에 쪼듯이 여러번 입을 맞춤. 그러고는 여즉 꿈을 꾸는듯 몽롱한 눈으로 폐하 간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폐하께서 각혈을 하시고 흑, 신첩에게 자식과 붙어먹은 더러운것이라고, 아니지요? 폐하께서 그런 끔찍한 말을 제게 하실리가 없다고 중얼거리다가 힘이 빠진듯 다시 눈을 감는데 그런 강징을 보는 망기는 비참함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짐. 이제는 선대 황제와 함께 한 시간보다 자신과 함께 한 시간이 더 길면서도 아직도 그의 마음속엔 제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는것 같았어. 어쩌면 평생 이렇게 보답받지 못하는 외사랑을 해야겠지. 제겐 마음 한자락 내어주지 않는 무정한 이임을 알면서도 연모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음. 망기는 제 품에서 다시 잠든 강징을 한참동안이나 끌어안고 있었어.
사윤은 자신의 양모인 귀태비가 기거하는 수강궁에 문안 인사차 들렸다가 귀태비의 품에 안긴 아기를 보고 신기하게 여김. 귀태비 소생의 이복 누이인 화선 공주가 얼마전에 해산을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아이인가 해서 유심히 쳐다보았음. 귀태비가 승건궁의 상재가 낳은 공주라며 한번 안아보지 않겠냐고 권하길래 얼떨결에 품에 안았다가 승건궁의 상재라는 말에 제 품에 안긴 아이가 제 누이 동생인것을 깨달음. 사윤이 웃으면서 폐하께서 지난 겨울에 공주를 얻으셨다더니 그 아이가 이 아이냐고 묻고는 공주가 모친을 닮아서 참 어여쁘다고 말함. 귀태비가 그 말에 당황한듯 상재를 본적이 있냐고 캐묻는 바람에 그제야 말실수를 한것을 알아차림. 사윤이 어색하게 웃으며 폐하께서 후궁으로 들인 분이면 미색이 대단한 분일듯 해서 어림짐작으로 해본 소리라며 품안에 안긴 공주의 뺨을 조심스럽게 만짐. 귀태비가 아까전까지만 해도 잠투정을 하느라 칭얼거리더니 네 품에 안기니 이리 순하다고 한숨을 쉬는데 그 말을 하는 귀태비의 얼굴이 무척이나 어두워보였어. 사윤이 공주를 몇번 어르다가 유모에게 안겨주고는 차를 마시는데 강징의 얼굴이 계속 떠올라서 심란해짐. 사윤은 양모에게 인사를 올리고 나와 수강궁의 배나무 아래서 배꽃을 감상했음. 태후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던 배꽃을 보며 승건궁에 있을 강징을 그리워하다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 길로 곧장 황제의 거처인 양심전으로 갔음. 양심전의 총관 태감이 사윤을 보고 반색하며 왕야께서 어쩐일로 오셨냐고 묻는데 사윤이 폐하는? 폐하는 어디에 계시느냐고 물음. 폐하께서는 지금 불당에서 기도를 드리고 계신다는 말에 지체없이 그쪽으로 향함.
망기는 불당에서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다가 사윤이 들었다는 말에 반색을 함. 왕부를 하사받고 출궁을 한 이후로 갖은 핑계를 대며 정해진 입궁 날짜를 어기더니 오늘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지. 사윤이 상기된 얼굴로 들어와서는 대뜸 모친을 뵙게 해달라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기 시작함. 망기가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하니 사윤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모친을 뵙고 싶습니다. 저를 낳아준 생모가 이 황궁에 살아계시는 것을 압니다. 먼발치에서라도 좋으니 한번만 뵙게 해달라고 애원을 하다가 망기가 네 모친이 널 만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자 충격이 컸는지 털썩 주저앉음. 사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제가 세상에 태어나선 안될 존재이기 때문에 모친께서 저를 미워하시는 것이냐고 물음. 망기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다가 사윤이 하는 말에 안색이 하얗게 질림. 사윤이 소제, 아니 소자가 선황의 자식이 아니라 태후마마와 폐하의 사이에서 태어난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거든. 망기가 차마 아니라고 말을 하진 못하고 도대체 누가 너에게 그런 말을 했냐고 물음. 사윤이 눈물을 흘리며 지난해에 우연히 자녕궁에 갔다가 두분이 다투시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고 죽은 노상궁이 제 출생에 관한 진실을 모두 말해주었다고 고함. 망기는 사윤에게만큼은 숨기고 싶었던 참혹한 진실에 눈을 질끈 감고 잠시 생각을 하는듯 하더니 아윤하고 손을 내밀었어. 사윤이 일어나서 제 곁으로 다가오자 사윤의 손을 붙잡고 너를 낳아주신 어머니를 원망해선 안된다 이 모든건 짐이 저지른 죄때문이라고 여전히 울고 있는 사윤의 마음을 달래려고 애를 썼음. 사윤이 그 말에 아이처럼 엉엉 소리를 내어 울면서 두분을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저도 다른 이들처럼 모친과 함께 후원을 거닐고 차를 마시고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고 싶을뿐이라고 대답함. 망기가 그런 사윤을 안쓰럽게 쳐다보다가 떨리는 손으로 사윤의 뺨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짐. 아윤 짐이 너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용서해달라고 말하진 않으마 원망해도 좋으니 가끔 이렇게 네 얼굴만 보게 해다오. 사윤이 예전처럼 형님이라고 하려다가 멈칫하고는 그냥 말없이 품안에 안김.
강징은 창 너머로 보이는 흐드러지게 핀 배꽃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다가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남. 선제의 후궁이자 사윤의 양모인 귀태비가 강징의 모습을 보고는 생각 이상으로 참담한 몰골에 눈물을 뚝뚝 흘림. 사가에 있을적처럼 오라버니하고 다가서려는데 강징이 뒷걸음질을 쳤어. 강징이 몸을 돌리면서 이런 모습을 네게 보여주기 싫으니 당장 나가거라. 나가라질 않아! 소리를 지르다가 밖에서 아이가 우는 소리에 멈칫함. 유모가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소리가 들리자 강징이 한숨을 쉬면서 유모를 불렀어. 유모에게서 아이를 받아 안고 자장가를 불러주니 칭얼거리다가 금세 조용해짐. 강징이 품에 안긴 아이를 물끄러미 보다가 폐하를 많이 닮지 않았느냐? 하고 말을 걸었어. 귀태비가 웃으며 코는 오라버니를 닮았고 이마는 폐하를 닮았다고 하는데 사실 선대 황제보다는 현 황제인 망기를 더 많이 닮았지만 일부러 그점을 짚고 넘어가진 않았음. 강징이 요람에 아이를 눕혀놓고 요람을 살살 흔들다가 이 아이가 자라 네살이 되면 네게 양육을 맡기마 아무래도 나처럼 심성이 어질지 못한 어미보단 너처럼 다정하고 상냥한 성격을 가진 모친이 더 좋을게 아니냐. 네가 아윤과 삼공주를 잘키웠으니 너만한 양모도 없을테지.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아이를 잘키워다오. 귀태비가 그 말을 듣고 공주의 앞날을 생각을 했다는 사람이 목을 그었냐고 어찌 이리 바보같이 구냐고 화를 내는데 강징이 그럼 나더러 이곳에 갇혀서 친아들과 다름이 없는 황제와 살을 섞으며 살란 말이냐고 소리를 지름. 갑작스러운 고성에 아이가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자 귀태비가 아이를 안아서 달램. 강징이 그 모습을 보고 네살이 되길 기다릴 필요도 없겠구나 가는 길에 데리고 가서 키우려무나 그렇게 말하곤 우는 아이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침전안으로 들어가서 침상에 누움. 귀태비가 유모를 불러 아이를 달래게 하고 상처를 없애는데 좋다는 연고를 승건궁의 상궁에게 건네주고 상재를 잘모셔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함. 그러고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한참을 침전의 안쪽을 쳐다보다가 겨우 밖으로 나감.
강징이 늦은 밤이 되도록 침상에 웅크리고 누워있다가 시침을 들 준비를 하셔야 한다는 상궁의 말에 힘없이 일어났어. 궁녀들의 도움을 받아서 세욕을 하고 그 어느때보다 정성껏 치장을 함. 강징은 침상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망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음. 황제 이 어미가 어찌하면 좋겠소. 그대가 원하는게 이 더러운 몸뚱이인게요? 이미 더럽혀졌으니 그대가 질릴때까지 내어주면 그러면 만족하겠냐고 물음. 망기가 굳은 얼굴로 오늘은 이곳에서 쉬고 싶어서 온것일뿐이라고 강징의 팔을 붙잡고 일으킴. 그리곤 침상으로 데리고 그 위에 앉게 하고 신을 벗고 장포도 의가에 걸어두고는 안쪽에 누움. 강징이 한숨을 쉬며 침상의 바깥쪽에 모로 눕자 망기가 그런 강징을 뒤에서 끌어안으며 귓가에 소곤거림. 제가 어릴적엔 이렇게 같이 한 침상에서 잠들었던것 기억이 나십니까. 어느날에 제 키가 당신의 어깨만큼 자랐다고 더 이상 같이 잠들수가 없다고 하셨지요. 그때 제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나십니까. 부친은 어머니보다 키가 더 큰데 왜 두분은 한 침상에 같이 누워 주무시나요? 강징은 그 말을 듣고 헛웃음을 터뜨리며 그대의 연치가 이립이 넘었는데 아직도 어리광이냐고 타박을 하곤 황후를 품는게 내키지 않으면 다른 비빈들과 동침해서 후사를 얻으라고 말함. 이 삭막한 곳에서 그대 하나만 바라보는 황후와 비빈들이 가엾지도 않냐고 함. 그러니 망기가 이 황궁에서 제일 가여운 사람은 당신을 한번도 진심으로 대한적이 없는 무정한 사내를 잊지 못하는 당신과 그런 당신을 연모하는 자신이 아니냐고 되물음. 강징이 그 말에 울컥해서 자리에 일어나 네가 나를 진심으로 연모했다면 겁간을 하지 않았을터! 연모? 연모가 아니라 한순간의 욕정이었겠지. 다 늙은 사내의 가랑이가 어찌 생겼나 궁금해서 품어보니 품을만했던게 아니냐. 시간하는 취미는 없는 모양이구나. 어젯밤에 죽게 내버려두었으면 질릴때까지 실컷 품었을텐데 죽게 내버려두지 그랬어! 어찌 이리 어리석어! 화를 내다가 드러난 팔목에 뭔가로 그은듯한 상흔이 여러개 있어 눈앞이 아득해짐. 아잠! 제발 정신을 차리거라. 이 어미가 어찌하면 되느냐. 네가 원하는대로 하지 않았느냐. 네가 울며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 애원해서 이 모질고 비루한 목숨을 내 손으로 끊지 않았잖니. 사윤도 공주도 세상에 나게 하였는데 무엇을 더 바라냐고 화를 내다가 망기가 입을 맞추는 바람에 굳어버림.
망기강징 망징 약청형군강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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