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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4 21:38
육나더
https://hygall.com/589766632
길이가 너무 긴가 싶어서 좀 끊었는데 미리 미안;;;; ㅋㅋ
그나저나 흑포사 아닌 션웨이 교수님 어색한데 잘어울려
"영직아 일어나보거라. 밥도 먹고 약도 마셔야 기운을 차리지."
하얀 쌀밥과 고깃국물로 차린 밥상을 들고 온 백기가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영직을 조용히 불렀다.
황궁을 나온 후로 하루가 다르게 자라던 영직은 어느새 백기와 키를 나란히할 정도가 되었지만 건장한 청년이어야 할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만 갔다. 처음 산에서 영직이 쓰러지던 날 백기는 영직을 들쳐업고 마을의 의원을 찾아갔었다. 쓰러진 연유를 모르겠다는 의원의 멱살을 잡은 백기를 본 영직은 그제서야 숨겨왔던 사실을 털어놨다. 황궁에서 이미 해독약이 없는 독에 중독되었다고. 백기는 그럴 리 없다며 백방으로 약을 구하러 다녔지만 점차 쇠약해지는 영직이 곁에 있어달라며 붙잡았을 때 그것을 뿌리칠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셔서 어쩝니까?"
눈 덮힌 산 속에서 굴을 파고 숨어들어간 동물들을 사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새벽부터 사냥감을 찾아 산을 타고, 사냥감을 구하지 못한 날이면 나무를 해서 장에 팔아 소화가 잘되는 하얀 쌀을 구해오는 것을 아는 영직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미안하면 차려놓은 밥을 다 먹고 기운을 내면 되지 않느냐. 자, 식기 전에 먹거라."
영직이 아프기 시작한 이후로 영직을 막냇동생 대하듯 하는 백기가 영직의 손에 숟가락을 쥐어주며 어서 먹으라는 듯 재촉했다. 영직은 그런 백기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수저를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지만 반도 먹지 못한 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수저를 내려놓았다.
"내가 잘못했다. 무리하지 말거라."
백기는 영직의 등을 쓸어내리며 영직을 토닥였다. 영직은 속이 울렁거리는 듯 입을 틀어막았고, 백기는 영직이 괜찮아졌다고 할 때까지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영직의 등을 쓸어내렸다.
"이제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은게냐?"
백기는 영직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창백해진 얼굴로 식은땀까지 맺혀있는 영직의 이마는 기분나쁠 정도로 차가웠다.
"잠깐 기다려보거라 금방 약을 데워올테니."
뜨거워진 눈시울을 들킬세라 백기는 영직이 뭐라 답하기 전에 서둘러 방을 나왔다. 찬바람이 들세라 방문을 꼭 닫은 백기가 한 손을 들어 제 눈을 덮었다. 영직은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고 있었고, 백기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백기는 하늘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고, 땅에 발을 구르며 욕을 퍼붓고 싶었다.
"내가 좀 도와줄까?"
허공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백기는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떼고 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봤다. 그 곳에는 하얀 옷을 입은 사람같지 않은 사내가 서 있었다.
"넌 누구냐?!"
야존은 무기라고는 없는 빈 손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질만한 살기를 보이는 백기를 그림보듯 감상하며 말했다.
"저 방 안의 아이가 살기를 바라는 사람? 난 저 아이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한 이유를 알아."
갑작스러운 말에 눈살을 찌뿌린 백기가 날카롭게 야존을 주시했다.
"당신도 느꼈지? 당신과 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
야존의 말을 듣자마자 백기는 무의식적으로 울타리 밖 나무그늘을 쳐다봤다. 전쟁터를 누비며 날카로워진 감은 쉽게 무뎌지지 않았고, 눈으로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백기는 나무그늘 아래에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역시. 알고 있었네."
"당신이었나?"
"글쎄... 나도 구경꾼 중 한 명이기는 하지만, 저 아이를 아프게 만든 건 내가 아니야."
"구경꾼?"
하루하루 야위어가는 영직과, 그런 영직을 낫게 해주려 이 마을 저 마을 의원을 찾아 헤맨 것이 여러 날이었다. 그런 저를 '구경'했다는 말에 백기는 인상을 구겼다.
"그렇게 볼 것 없어. 내가 알려준다니까. 저 아이를 낫게 할 방법."
"그게 뭐지?"
"저기, 저 사람을 죽이는 거야. 아이가 아픈 건 다 저 사람 때문이거든."
야존이 아무도 없는 나무그늘을 가리키며 빙긋 웃었다.
"미친놈."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백기가 등을 돌렸다. 그런 백기의 모습이 난감하다는 듯 야존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인데. 왜 내 말을 안믿을까."
백기는 더이상 야존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야존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지나쳤다.
"어쩔 수 없네."
마치 순간이동을 하듯 서있던 곳에서 사라진 야존이 나무 그늘 밑에서 나타났다. 야존의 손이 허공을 갈랐고, 검정 우산이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또 다른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식어버린 약을 약탕기에 붓던 백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살면서 본 적 없는 옷차림을 하고 얼굴에는 안경을 까 남자는 영직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백기는 불 옆에 놓여있던 장작을 집어들었다.
"야존 너 무슨 생각이야?"
션웨이가 이를 악물고 야존을 쳐다봤다. 야존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구경도 이제 지루해서. 바로 엔딩을 보고 싶어졌어. 그리고 맞는 말이잖아? 형이 나타나고부터 저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어."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떨리는 목소리로 션웨이가 대답했다. 사실이었다. 소년이 청년이 되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션웨이는 몇 번이고 영직의 목을 조르고 싶었고, 그런 생각을 하는 제 자신을 혐오했으나 지켜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고작 우산 따위 아래 몸을 숨기고 둘을 바라본 것이 다였다.
"정말? 형 잘못이 아니라고?"
션웨이의 어깨를 짚고 귀에 입을 가져간 야존이 작게 속삭였다.
"여긴 저 자의 꿈 속이잖아. 형은 저 자가 보지 않는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곳의 나무도, 바람도, 공기도 다 저 자의 것인걸. 이 꿈의 주인이 정말 형의 존재를 모를 거라고 생각해?"
"그게... 무슨 소리야?"
"이 곳과 바깥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지만 바깥의 시간도 벌써 며칠이 지났어. 이 꿈의 주인도 느낀거야. 바깥의 형을 살리려면 이 꿈을 끝내야하지."
션웨이가 몸을 크게 움찔하며 커진 눈으로 백기를 쳐다봤다. 야존은 그런 션웨이의 턱을 쥐어 제 쪽으로 돌렸다.
"내 잘못이야. 형이 바보같이 저자를 지켜보다 죽어버리려할 줄은 몰랐어. 하지만 걱정마. 형이 그런 개죽음을 당하게 놔두지는 않을테니까."
장작을 검처럼 들고 있던 백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턱이 잡힌 채 두려움과 걱정이 뒤얽힌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백기는 충동적으로 들고 있던 장작을 야존에게 집어던졌다. 영직과 똑닮은 얼굴로 저런 표정을 하는 게 싫어서일거라고 백기는 애써 제 행동에 이유를 만들었지만 가슴 한 구석에서 작은 목소리가 정말 그런 것이 맞냐며 속삭였다.
야존은 저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라간 장작을 션웨이 쪽으로 한 걸음 움직이는 것만으로 가볍게 피했다. 목표물을 맞추지 못한 장작이 아쉬움에 비명을 지르듯 둔탁한 소리를 내며 나무에 부딪혀 땅에 떨어졌다. 야존은 그 비명소리가 즐거워 죽겠다는 듯 얼굴이 찢어질듯 크게 웃었다.
"내가 말했을텐데. 방 안의 아이를 구하려면 이쪽이 죽어야한다고. 내가 대신 이쪽을 해쳐주면 당신은 고마워해야지."
영직은 오래전 황궁에서 중독된 독 때문에 쇠약해진 거였다. 사람을 해친다고 거짓말처럼 영직이 나아질리 없었다. 하지만 백기는 야존에게 헛소리 집어치우라고 소리치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산의 나무들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와 이파리들이 부딪히며 속삭이듯 스산한 소리를 냈다.
'저 자를 죽여. 그럼 너와 영직은 이곳에서 계속 행복하게 있을 수 있을거야. 영직이 백발의 노인이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시간 함께 있다가 헤어지면 너도 가야할 곳으로 떠나 쉴 수 있어.'
백기는 무엇에 홀리듯 저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야존은 이 모든 일이 즐거운 유흥거리라도 되는 양 한 걸음 떨어져 나무에 비스듬이 기대어 선 채 팔짱을 끼고 둘을 쳐다봤다. 백기가 느리게 두 손을 들어올려 션웨이의 목을 감쌀 때에야 야존이 불쾌하다는 듯 입가에 띄고 있던 미소를 지웠지만 미간을 찌뿌릴 뿐 둘 사이를 말리려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션웨이는 백기가 제게 다가오는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봤다. 백기를 만지지도, 말을 걸지도 못한 채 보낸 세월이 벌써 몇 년이었다. 저를 온전히 바라봐주는 백기의 시선이 얼어붙은 강에 비치는 한 줄기 태양처럼 션웨이의 얼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션웨이는 제 목을 감싸쥐는 백기의 손 위를 제 손으로 덮어 어루만졌다. 꿈 속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친 백기의 피부결과 뜨거운 체온이 온전히 느껴졌다.
"나도 내가 이렇게 당신을 좋아하는 지 몰랐는데."
션웨이가 손을 뻗어 백기의 뺨을 쓸어내렸다. 백기의 눈에 언제인지 모르게 맺혀있던 눈물이 떨어져 션웨이의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목을 조르는 건 본인이면서, 손에 힘을 줄수록 백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영직을 살리기 위해 국경의 백성들을 저버렸고, 저를 따르던 수하들도 배신한 백기였다. 전쟁터에서 백기의 손에 으스러진 목숨이 수백은 될테니 이제 와 사람 한 명을 죽이는 것쯤 아무일도 아니어야했다. 그런데도 백기는 제 손 아래로 힘차게 뛰는 맥박이 독처럼 제 혈관을 타고 흐르며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션웨이의 목을 감싼 백기의 두 손이 덜덜 떨렸다.
피가 몰려 붉어진 얼굴로 션웨이가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룡백 만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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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가 너무 긴가 싶어서 좀 끊었는데 미리 미안;;;; ㅋㅋ
그나저나 흑포사 아닌 션웨이 교수님 어색한데 잘어울려
"영직아 일어나보거라. 밥도 먹고 약도 마셔야 기운을 차리지."
하얀 쌀밥과 고깃국물로 차린 밥상을 들고 온 백기가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영직을 조용히 불렀다.
황궁을 나온 후로 하루가 다르게 자라던 영직은 어느새 백기와 키를 나란히할 정도가 되었지만 건장한 청년이어야 할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만 갔다. 처음 산에서 영직이 쓰러지던 날 백기는 영직을 들쳐업고 마을의 의원을 찾아갔었다. 쓰러진 연유를 모르겠다는 의원의 멱살을 잡은 백기를 본 영직은 그제서야 숨겨왔던 사실을 털어놨다. 황궁에서 이미 해독약이 없는 독에 중독되었다고. 백기는 그럴 리 없다며 백방으로 약을 구하러 다녔지만 점차 쇠약해지는 영직이 곁에 있어달라며 붙잡았을 때 그것을 뿌리칠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셔서 어쩝니까?"
눈 덮힌 산 속에서 굴을 파고 숨어들어간 동물들을 사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새벽부터 사냥감을 찾아 산을 타고, 사냥감을 구하지 못한 날이면 나무를 해서 장에 팔아 소화가 잘되는 하얀 쌀을 구해오는 것을 아는 영직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미안하면 차려놓은 밥을 다 먹고 기운을 내면 되지 않느냐. 자, 식기 전에 먹거라."
영직이 아프기 시작한 이후로 영직을 막냇동생 대하듯 하는 백기가 영직의 손에 숟가락을 쥐어주며 어서 먹으라는 듯 재촉했다. 영직은 그런 백기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수저를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지만 반도 먹지 못한 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수저를 내려놓았다.
"내가 잘못했다. 무리하지 말거라."
백기는 영직의 등을 쓸어내리며 영직을 토닥였다. 영직은 속이 울렁거리는 듯 입을 틀어막았고, 백기는 영직이 괜찮아졌다고 할 때까지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영직의 등을 쓸어내렸다.
"이제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은게냐?"
백기는 영직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창백해진 얼굴로 식은땀까지 맺혀있는 영직의 이마는 기분나쁠 정도로 차가웠다.
"잠깐 기다려보거라 금방 약을 데워올테니."
뜨거워진 눈시울을 들킬세라 백기는 영직이 뭐라 답하기 전에 서둘러 방을 나왔다. 찬바람이 들세라 방문을 꼭 닫은 백기가 한 손을 들어 제 눈을 덮었다. 영직은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고 있었고, 백기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백기는 하늘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고, 땅에 발을 구르며 욕을 퍼붓고 싶었다.
"내가 좀 도와줄까?"
허공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백기는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떼고 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봤다. 그 곳에는 하얀 옷을 입은 사람같지 않은 사내가 서 있었다.
"넌 누구냐?!"
야존은 무기라고는 없는 빈 손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질만한 살기를 보이는 백기를 그림보듯 감상하며 말했다.
"저 방 안의 아이가 살기를 바라는 사람? 난 저 아이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한 이유를 알아."
갑작스러운 말에 눈살을 찌뿌린 백기가 날카롭게 야존을 주시했다.
"당신도 느꼈지? 당신과 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
야존의 말을 듣자마자 백기는 무의식적으로 울타리 밖 나무그늘을 쳐다봤다. 전쟁터를 누비며 날카로워진 감은 쉽게 무뎌지지 않았고, 눈으로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백기는 나무그늘 아래에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역시. 알고 있었네."
"당신이었나?"
"글쎄... 나도 구경꾼 중 한 명이기는 하지만, 저 아이를 아프게 만든 건 내가 아니야."
"구경꾼?"
하루하루 야위어가는 영직과, 그런 영직을 낫게 해주려 이 마을 저 마을 의원을 찾아 헤맨 것이 여러 날이었다. 그런 저를 '구경'했다는 말에 백기는 인상을 구겼다.
"그렇게 볼 것 없어. 내가 알려준다니까. 저 아이를 낫게 할 방법."
"그게 뭐지?"
"저기, 저 사람을 죽이는 거야. 아이가 아픈 건 다 저 사람 때문이거든."
야존이 아무도 없는 나무그늘을 가리키며 빙긋 웃었다.
"미친놈."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백기가 등을 돌렸다. 그런 백기의 모습이 난감하다는 듯 야존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인데. 왜 내 말을 안믿을까."
백기는 더이상 야존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야존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지나쳤다.
"어쩔 수 없네."
마치 순간이동을 하듯 서있던 곳에서 사라진 야존이 나무 그늘 밑에서 나타났다. 야존의 손이 허공을 갈랐고, 검정 우산이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또 다른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식어버린 약을 약탕기에 붓던 백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살면서 본 적 없는 옷차림을 하고 얼굴에는 안경을 까 남자는 영직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백기는 불 옆에 놓여있던 장작을 집어들었다.
"야존 너 무슨 생각이야?"
션웨이가 이를 악물고 야존을 쳐다봤다. 야존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구경도 이제 지루해서. 바로 엔딩을 보고 싶어졌어. 그리고 맞는 말이잖아? 형이 나타나고부터 저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어."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떨리는 목소리로 션웨이가 대답했다. 사실이었다. 소년이 청년이 되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션웨이는 몇 번이고 영직의 목을 조르고 싶었고, 그런 생각을 하는 제 자신을 혐오했으나 지켜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고작 우산 따위 아래 몸을 숨기고 둘을 바라본 것이 다였다.
"정말? 형 잘못이 아니라고?"
션웨이의 어깨를 짚고 귀에 입을 가져간 야존이 작게 속삭였다.
"여긴 저 자의 꿈 속이잖아. 형은 저 자가 보지 않는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곳의 나무도, 바람도, 공기도 다 저 자의 것인걸. 이 꿈의 주인이 정말 형의 존재를 모를 거라고 생각해?"
"그게... 무슨 소리야?"
"이 곳과 바깥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지만 바깥의 시간도 벌써 며칠이 지났어. 이 꿈의 주인도 느낀거야. 바깥의 형을 살리려면 이 꿈을 끝내야하지."
션웨이가 몸을 크게 움찔하며 커진 눈으로 백기를 쳐다봤다. 야존은 그런 션웨이의 턱을 쥐어 제 쪽으로 돌렸다.
"내 잘못이야. 형이 바보같이 저자를 지켜보다 죽어버리려할 줄은 몰랐어. 하지만 걱정마. 형이 그런 개죽음을 당하게 놔두지는 않을테니까."
장작을 검처럼 들고 있던 백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턱이 잡힌 채 두려움과 걱정이 뒤얽힌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백기는 충동적으로 들고 있던 장작을 야존에게 집어던졌다. 영직과 똑닮은 얼굴로 저런 표정을 하는 게 싫어서일거라고 백기는 애써 제 행동에 이유를 만들었지만 가슴 한 구석에서 작은 목소리가 정말 그런 것이 맞냐며 속삭였다.
야존은 저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라간 장작을 션웨이 쪽으로 한 걸음 움직이는 것만으로 가볍게 피했다. 목표물을 맞추지 못한 장작이 아쉬움에 비명을 지르듯 둔탁한 소리를 내며 나무에 부딪혀 땅에 떨어졌다. 야존은 그 비명소리가 즐거워 죽겠다는 듯 얼굴이 찢어질듯 크게 웃었다.
"내가 말했을텐데. 방 안의 아이를 구하려면 이쪽이 죽어야한다고. 내가 대신 이쪽을 해쳐주면 당신은 고마워해야지."
영직은 오래전 황궁에서 중독된 독 때문에 쇠약해진 거였다. 사람을 해친다고 거짓말처럼 영직이 나아질리 없었다. 하지만 백기는 야존에게 헛소리 집어치우라고 소리치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산의 나무들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와 이파리들이 부딪히며 속삭이듯 스산한 소리를 냈다.
'저 자를 죽여. 그럼 너와 영직은 이곳에서 계속 행복하게 있을 수 있을거야. 영직이 백발의 노인이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시간 함께 있다가 헤어지면 너도 가야할 곳으로 떠나 쉴 수 있어.'
백기는 무엇에 홀리듯 저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야존은 이 모든 일이 즐거운 유흥거리라도 되는 양 한 걸음 떨어져 나무에 비스듬이 기대어 선 채 팔짱을 끼고 둘을 쳐다봤다. 백기가 느리게 두 손을 들어올려 션웨이의 목을 감쌀 때에야 야존이 불쾌하다는 듯 입가에 띄고 있던 미소를 지웠지만 미간을 찌뿌릴 뿐 둘 사이를 말리려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션웨이는 백기가 제게 다가오는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봤다. 백기를 만지지도, 말을 걸지도 못한 채 보낸 세월이 벌써 몇 년이었다. 저를 온전히 바라봐주는 백기의 시선이 얼어붙은 강에 비치는 한 줄기 태양처럼 션웨이의 얼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션웨이는 제 목을 감싸쥐는 백기의 손 위를 제 손으로 덮어 어루만졌다. 꿈 속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친 백기의 피부결과 뜨거운 체온이 온전히 느껴졌다.
"나도 내가 이렇게 당신을 좋아하는 지 몰랐는데."
션웨이가 손을 뻗어 백기의 뺨을 쓸어내렸다. 백기의 눈에 언제인지 모르게 맺혀있던 눈물이 떨어져 션웨이의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목을 조르는 건 본인이면서, 손에 힘을 줄수록 백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영직을 살리기 위해 국경의 백성들을 저버렸고, 저를 따르던 수하들도 배신한 백기였다. 전쟁터에서 백기의 손에 으스러진 목숨이 수백은 될테니 이제 와 사람 한 명을 죽이는 것쯤 아무일도 아니어야했다. 그런데도 백기는 제 손 아래로 힘차게 뛰는 맥박이 독처럼 제 혈관을 타고 흐르며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션웨이의 목을 감싼 백기의 두 손이 덜덜 떨렸다.
피가 몰려 붉어진 얼굴로 션웨이가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룡백 만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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