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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1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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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ㄴㅈㅈㅇ
ㅇㅌㅈㅇ
그로부터 이레 후에 강징은 공주를 데리고 서비의 저수궁으로 향하는 길이었음. 강징이 기거하는 연희궁은 동쪽에 있고 서비의 저수궁은 서쪽에 있는터라 자주 찾아가서 보살필 수가 없었거든. 오늘은 모처럼 시간이 나서 서비를 보러 나서긴 했는데 저수궁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음. 이제 산달이 얼마 남지 않은 만삭의 임부인데다 어린 자식들을 직접 양육하고 황후를 대리해 육궁을 통솔하느라 몸이 무척 고됐으니까. 거기다가 이제는 회임한 다른 비빈까지 살펴야 하니 몸이 둘이어도 모자랄만큼 바빠서 휴식을 취할 겨를이 없기도 했어. 강징은 제 무릎에 앉아서 헝겊으로 만든 호랑이 인형을 가지고 노느라 여념이 없는 공주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매만짐. 그리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가마 옆에서 호종하고 있는 상궁에게 말을 건넸어. 어약방과 어다선방에 일러서 저수궁의 서비에게는 상등품의 재료로 만든 음식과 탕약을 올리라고 말해두어라. 탕약이나 다른 음식에 농간을 부리지 못하게 사람을 써서 감시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강징은 상궁으로부터 이미 조치를 해두었으니 걱정하지 마시란 이야기를 듣고도 좀처럼 걱정이 가시지가 않았어. 서비는 후궁에서 두번째로 높은 지위이나 품계가 높은 이유는 황제의 총애로 인한것이 아니라 그이가 명문가의 자손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더욱 불안했지. 서비는 후궁 간택에서도 원칙상 가장 높은 귀인의 품계를 받고도 입궁한 이후로 총애를 받지 못한 처지였는데 몇번의 시침으로 황손을 회임을 하였으니 다른 비빈들의 질시를 살게 분명했어. 황후나 심상재가 태중의 황손에게 어떤 마수를 뻗칠지 모르니 그것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두어야만 했음.
강징은 제 타들어가는 속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인형 놀이를 하는 공주를 보며 생각이 더 많아졌음. 다른 비빈들이 제 소생인 공주와 황자에게 해코지를 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거늘. 아직 어린 공주와 겨우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황자를 건사하는 것도 버거운데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셋으로 늘어나니 마음이 불안하기만 했지. 강징이 점점 가까워지는 저수궁의 유리 기와를 보고 머리가 아파서 한숨을 푹 쉬는데 그때 공주가 앉은 자리가 불편한지 가마에서 일어나려고 움직임. 강징이 그 모습에 깜짝 놀라서 공주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고 어미가 가마는 위험하니 함부로 움직이면 안된다고 하지 않았냐고 야단을 침. 상궁이 그 모습을 보고 급하게 가마를 맨 태감들에게 가마를 내리라고 명함. 강징이 가마의 뒤를 따르던 유모에게 공주를 넘겨주고는 상궁의 부축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음. 그리고는 저수궁이 가까우니 여기서부터 걸어가자고 말을 하기 무섭게 유모의 품에 안겨있던 공주가 칭얼거리면서 강징의 품에 안기려고 팔을 뻗었어. 강징이 모친의 몸이 무거워서 안아줄수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공주가 그 말을 듣고 심통이 난건지 숨이 넘어갈듯 울어서 결국 품에 안아서 달랬음. 강징이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는 공주의 등을 다정히 쓸어주며 저수궁에 가면 우리 아린이가 좋아하는 사슴이랑 용 동상도 있다고 구슬렀어.
공주는 일각이 다 되도록 울음을 그치지 않다가 강징이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토끼를 보러가자고 했더니 울음을 뚝 그치고 바닥에 내려달라고 함. 강징이 부른 배 때문에 허리를 굽히기 힘들어서 유모가 다시 공주를 건네받아서 바닥에 내려놓음. 공주는 바닥에 내려놓기 무섭게 강징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얼른 저수궁에 가자고 떼를 쓰기 시작했음. 강징은 공주의 손을 붙잡고 눈을 마주치며 서비 어머니 뱃속에 아기가 있으니 저수궁에 가거든 얌전히 있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함. 공주가 아기 동생이 또 생겼냐고 어떻게 또 생길수가 있나며 무척이나 신기해하는데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의 물음이 가슴을 후벼파는듯해서 억지로 웃었음. 그러다 겨우 심란한 마음을 다잡고 후년이면 동생이 또 태어날거라고 말해주었음. 공주는 배다른 동생이 생긴다는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모르는 나이라서 그저 동생이 생긴다고만 해주었지. 강징은 제 손을 붙잡은 공주와 보폭을 맞춰 걸으며 연꽃이 수놓인 단선으로 굳은 입가를 가렸음. 저수궁이 가까워질수록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서 회궁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가야만 해서 겨우 발걸음을 떼었음. 강징은 웃는 낯으로 서비를 대할 생각하니 머리가 터질것만 같았어. 가식을 떠는건 죽을만큼 싫었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투기를 하는 추한 몰골을 보여선 안됐으니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었음.
강징이 저수궁의 내실에 들어서자마자 침상에 누워있던 서비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예법대로 인사를 올리려고 함. 강징이 회임을 하였으니 앞으로 당분간 예는 생략하라고 말을 하고는 저수궁의 궁인이 내어준 의자에 앉았어. 강징이 버거운지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조심스럽게 쓸어내리자 서비가 몸도 무거우신데 어찌 저수궁까지 오셨냐고 걱정을 함. 강징이 그 말을 듣고 눈을 흘기고는 자네가 지금 본궁을 걱정할때냐고 한숨을 쉬었어. 태의로부터 아직도 태기가 불안정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자네의 몸이 이리 허약할줄은 몰랐네. 회임 넉달째면 안정기에 접어들어야 하는데 아직도 조금씩 피가 비친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말했지. 서비가 어두운 낯빛으로 빈첩이 사가에 있을적부터 월경 불순이 심해서 회임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렇게 회임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함. 그리고는 갑자기 침상에서 내려와서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었음. 강징이 그 모습에 당황해서 왜 이러느냐고 말리려고 했는데 서비가 평소답지 않게 눈물을 글썽이며 어렵게 가진 아이니만큼 이 아이를 무사히 낳고 싶다고 말함. 강징이 저수궁의 상궁에게 어서 서비를 일으키라고 하자 서비가 저를 일으키려는 상궁을 밀어내며 강징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을 이어나감. 마마께서는 후궁들중에 으뜸이신데다 폐하께서 육궁 통솔권을 주셨으니 사실상 황후에 준하는 황귀비나 마찬가지 아니십니까? 마마께서도 아시겠지만 빈첩은 요행으로 황손을 잉태하였을 뿐입니다. 폐하께서 빈첩에게 눈길 한번 아니주시는데 태중의 황손을 믿고 거들먹거리거나 혹 황손을 잉태한 공으로 잠시 극진한 대우를 받는다고 해도 그것을 믿고 위세를 떨지 않겠습니다. 저는 마마와 대적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만약에 운이 좋아 황자를 낳는다고 해도 제가 낳은 황자가 황위를 잇길 바라지도 않습니다. 제가 낳은 아이가 헛된 욕심을 품지 않게 제대로 교육하겠습니다. 빈첩이 낳은 아이가 일황자와 태중의 황손의 황위 계승에 위협이 되는 일이 절대 없을테니 빈첩과 태중의 아이를 지켜주세요. 귀비마마, 이렇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발 저와 이 아이를 지켜주세요라고 간청함.
강징은 차가운 바닥에 이마를 대고 간청하는 서비를 보고 마음이 심란해져서 저도 모르게 기나긴 한숨을 내뱉음. 잠시후에 그리 할터이니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고 임부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무엇을 하는거냐 호되게 질책하고 주위의 궁인들에게 얼른 서비를 일으키라고 명함. 서비가 부축을 받으며 침상에 앉자마자 강징이 서비의 손을 붙잡으며 쓸데없는 걱정일랑 하지 말고 태기가 안정될때까지 정양하고 태교에나 힘쓰라고 말했음. 그리고 제 상궁에게 도화첩과 동아아교를 넣어 끓인 죽 그릇이 담긴 찬합을 저수궁의 상궁에게 건네주라고 함. 그리고 서비와 서비의 심복들에게는 어선방에서 가져오는 음식과 저수궁에 들어오는 식재료를 꼭 검수하라고 신신당부를 했음. 강징은 저수궁의 상궁에게 반합을 열으라고 명한 다음에 연희궁의 상궁으로부터 은제 장식을 받아 음식을 찔러서 독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 후에 서비에게 그것을 보여줌. 자네가 본궁을 믿고 의탁할 생각을 한것은 고맙지만 본궁이 자네와 자네 태중의 황손을 질시하여 해칠 생각이었으면 어찌 하려고 그러는 건가? 앞으로는 아무나 덥썩 믿지 말고 매사에 조심을 하여야 하네. 서비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 때에 공주가 후다닥 안으로 뛰어들어와선 강징에게 매달림. 강징이 웃으면서 우리 아가가 도대체 무얼 했길래 이리 땀투성이냐고 영견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주고는 서비에게 얼른 탕약을 마시라고 권함. 강징은 공주가 불쑥 내미는 석안 세송이를 보고 누굴 주려고 이리 예쁜 꽃을 꺾어왔냐고 물음. 공주가 평소답지 않게 우물쭈물하는걸 보고 웃으며 모친이랑 서비 어머니랑 영상재 어머니한테 주려고 꺾어왔냐고 다시 한번 물었어. 공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제 막 탕약을 마시고 영견으로 입가를 닦고 있는 서비를 힐끔 쳐다봄. 서비가 웃으며 공주하고 팔을 뻗으니 공주가 그제야 침상곁으로 다가가서 손에 쥐고 있던 꽃을 건넸어. 서비가 공주에게 꽃을 받고 환하게 미소지으며 이리 아름다운 석안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며 고맙다고 말함. 공주가 부끄러운지 고개만 끄덕이고 다시 강징이 있는 쪽으로 와서 분홍색 연꽃이 수놓인 소맷자락을 꾹 쥠. 강징이 웃으면서 우리 아린이 부끄러워서 그렇구나 말하고 우리 보배 어미한테도 한송이 줘야지하고 손을 내밀었어. 그 말에 공주가 뾰루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질치곤 갑자기 밖으로 달려나가버림. 강징이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며 상궁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어. 그리고 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서비에게 본궁은 날이 더 무더워지기 전에 회궁해야겠으니 자네는 몸조리 잘하게. 마중을 나올 필요 없네라고 말하고 바깥으로 나옴. 공주는 저수궁의 앞뜰에서 영상재와 놀고 있다가 강징을 보자마자 뛰어와 또 다시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졌음. 강징은 영상재가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주고는 공주에게 이제 어미랑 같이 토끼를 보러 가자고 말함. 강징과 공주는 영상재의 배웅을 받으며 가마에 오름.
그로부터 반시진 후에 강징은 사육장의 태감으로부터 방목장에 토끼를 풀어놓고 기른다는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주위를 둘러보았음. 공주가 탄성을 내뱉는 소리에 아래로 시선을 주니 어느새 제 발치에 토끼들이 모여있어서 당황스러움을 느낌. 강징은 태감으로부터 폐하께서 이황자셨을때부터 기른 토끼들이라는 말을 듣고 말없이 웃기만 함. 그리고는 공주가 바닥에 주저앉아 토끼들을 품에 안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는 혼잣말로 우리 아이가 폐하를 닮았구나 하고 중얼거렸어. 강징은 상궁이 내어온 의자에 앉아 공주의 모습을 지켜볼뿐 아이와 어울리지 않았어. 무더운 여름인데다가 산달이 얼마 안남지 않아서 그런지 몸이 무척이나 고단했거든. 공주가 모친하고 불러서 보니 흰 토끼 한쌍을 품에 안고 예뻐하며 이 토끼들을 데리고 가서 키우고 싶대. 강징이 웃으면서 그렇게 하자고 하고 태감에게 암수 한쌍인지 확인을 해서 연희궁으로 데리고 오라고 분부함. 공주는 토끼 이름을 뭘로 지으실거냐는 유모의 물음에 고민을 하는듯 하더니 강징의 다리에 매달림. 강징은 공주가 모친이 토끼들의 이름 지어달라고 조르길래 약간 난처한듯 웃다가 사랑이? 말리? 하고 어릴때 키웠던 강아지들의 이름을 내뱉음. 공주가 고개를 잠시 갸웃거리다가 사랑이? 말리? 이름이 너무 좋다고 앞으로 그렇게 부르겠다고 무척이나 좋아라 함. 강징은 그런 공주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조용히 웃으며 공주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어. 우리 아가 어미가 동생들을 낳고 나면 마음껏 안아주겠다고 그리 말을 하고는 공주의 손을 꼭 붙잡음.
그 시각 황후는 퇴수산에 있는 어경정에 올라서 견우와 직녀에게 제를 올릴 준비를 하는 궁인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느라 정신이 없었음. 중궁인 황후는 칠석이 되면 퇴수산에 있는 어경정에 올라서 견우와 직녀에게 제를 올려야 했어. 이제 칠석이 이틀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했지. 잠시후에 황후는 어경정 밖으로 나와서 담장 너머에 보이는 궐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쉼. 이 나라에서 가장 존귀한 여인이었지만 궁에 갇힌 신세인것은 마찬가지였음. 황후는 제 사가가 있는 동쪽을 한참동안이나 말없이 바라보다가 궁녀가 마마하고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봄. 경인궁의 궁녀 옆에는 얇은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서 있었는데 황후는 그 사람을 보더니 별안간 입꼬리를 올려 웃었음. 그리고 상궁에게 궁인들을 모조리 물리라고 명하고는 멀찍이 서 있는 여인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함. 여인은 황후를 배알하고도 예를 올리지 않았지만 황후는 그런 모습을 보고 노여워하기는 커녕 몹시 기쁜듯 환히 웃었어. 경인궁의 궁녀는 황후의 명대로 궁인들을 통솔해서 퇴수산을 내려가다가 심상재가 기암괴석을 붙잡고 헛구역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의아하게 여김. 심상재의 심복인 운혜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기에 심상재에게 아는체를 하면서 등을 두드려주고 영견을 건넴. 심상재는 그런 호의에 고마워하기는 커녕 영견을 건넨 궁녀의 손을 거칠게 쳐냈음. 궁녀가 아는체를 한 이유는 심상재가 비록 강등당한 비천한 가문 출신의 후궁이긴 하나 황후의 신임을 받고 있는데다 언젠가 황제의 총애를 얻거나 황손을 출산해 존귀해지게 될때를 대비해 연을 만들려는 계산이었음. 심상재는 그런 속셈을 단박에 파악한것은 물론이고 혹시라도 제게 태기가 있음을 궁녀가 알게 되어 황후에게 그 사실이 전해질까 걱정이 되서 한 행동이었음. 궁녀는 심상재의 행동에 당황해 사죄했지만 심상재는 궁녀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퇴수산을 오르기 시작함. 궁녀는 그런 심상재의 뒷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함. 심상재가 급병이 나서 음식을 잘먹지 못한다던데 왜 살이 붙었을까? 의아해하다가 자신을 부르는 다른 궁녀의 소리에 생각을 멈추고 발걸음을 옮김.
그로부터 두시진 후에 심상재는 운혜의 부축을 받으며 퇴수산을 내려오다가 또 불쑥 치미는 헛구역질에 급히 영견을 입을 틀어막았음. 운혜는 그런 심상재를 보고 당황스러워하다가 체기가 너무 오래 가는것 같은데 태의를 불러 진맥을 받으시는게 어떻겠냐고 말을 했다가 심상재가 버럭 짜증을 내는 바람에 입을 다물었음. 잠시후에 심상재가 조금 진정이 됐는지 한숨을 쉬며 운혜에게 황후의 곁에 있던 이가 누군지 아냐고 물어보았어. 심상재가 퇴수산에 있는 어경정에 막 당도했을때 황후가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과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거든. 그 여인은 황제의 비빈인 자신을 보고도 예를 올리지도 않을 정도로 무례했음. 그 무례를 바로 지적하고 따끔하게 혼을 내고 예법을 가르치려고 했는데 황후가 여인의 편을 들어서 몹시 당황함. 황후가 저렇게 자애롭게 남을 대한적이 있던가? 심상재는 황후가 아끼는 여인의 정체가 궁금해졌어. 운혜는 심상재의 심부름 때문에 뒤늦게 퇴수산에 올랐다가 황후의 곁에 있는 여인을 보고 당황스러움을 느낌. 면사로 얼굴을 가리기는 했지만 의복의 연꽃 자수를 보고 운몽의 사람인걸 알았음. 연귀비가 좋아하는 운몽의 자수 기법으로 수놓은 진귀한 비단 의복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은 이 황궁내에 연귀비와 강씨 일족뿐일테니까. 운혜는 귀비의 친척인 그녀가 왜 황후와 같이 있는지 의아했지만 심상재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 잘모르겠다고 대답함. 심상재가 굳은 표정으로 의복이나 장신구를 보면 명문가의 여식인듯 한데 황후의 친정인 오씨 가문에서 천거한 여인일까? 황후가 좀처럼 총애를 받지 못하니 조바심이 일어서 새로운 여인을 들이밀려고 하는게 아니냐고 한숨을 쉼. 운혜는 그 말을 듣고 표정이 심각해졌다가 심상재가 피곤하니 태극전으로 돌아가자는 말에 심상재를 부축했음. 연귀비에게 심상재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과 황후가 강씨 가문의 여인과 은밀히 만났다는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야.
今夜鄜州月 오늘 밤 부주 하늘의 달을
閨中只獨看 규중의 아내만 홀로 바라보겠지
遙憐小兒女 멀리 있는 가엾은 어린 아이들은
未解憶長安 장안의 나를 그리는 마음 이해하지 못하리라
香霧雲鬟濕 구름같은 머릿결이 향기로운 안개에 젖어 있고
淸輝玉臂寒 맑은 달빛에 옥같이 고운 팔 시리겠지
何時倚虛幌 언제쯤 얇은 휘장에 기대어 있는
雙照淚痕乾 눈물 마른 두 얼굴 함께 비춰줄까
망기는 야심한 시각에 양심전의 서재에 앉아서 고금을 연주하며 시를 읊는 중이었음. 강징을 보지 못한지 벌써 이레가 넘었고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연희궁에 달려가 품에 안고 싶었음. 하지만 마지막에 봤던 모습처럼 저를 낭군이 아니라 황제로 대하면 어찌하나 싶어서 강징의 모습을 보는게 두려웠음. 제게 차갑게 대하는 강징의 얼굴을 마주보면 이성을 잃을것 같아서 그리운 마음을 참고 또 참았음. 심란한 마음을 가눌길이 없어 고금을 연주하면서 시를 읊고 또 읊었지. 두보의 월야는 먼곳에서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을 처와 어린 자식을 염려하고 처를 그리워하는 절절한 마음을 표현한 시였음. 망기는 천하를 다스리는 황제였지만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것만큼 필부와 다를바가 없었음. 망기가 강징에게 바라는 것은 진실한 마음과 영원히 변치 않는 애정이었고 단 둘만 있을때는 황제가 아닌 한명의 사내로 백년가약을 맺은 낭군에게 대하듯 격없이 대해주길 바랐음. 강징이 자신을 낭군이 아니라 다른 비빈들처럼 황제로 대하는게 끔찍하게 싫었고 연심이 아닌 경외심을 드러내길 바라지 않았음. 강징이 달라진 언행을 보고나서 가슴이 천갈래 만갈래 찢기는듯 했고 이 삭막한 황궁에서 진실된 사랑을 바란것이 헛된 꿈이었나 싶어서 마음이 너무나 아팠음. 황제이면 무엇을 하나. 사랑 앞에서 이토록 무력한 사내이고 저 또한 어염의 여인이나 황궁에게 여인들처럼 정인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가련한 사람에 불과한것을. 망기는 강징이 연희궁에 발걸음을 하지 않는 자신을 그리워하며 잠을 못 이룬채 앞뜰을 서성이고 있진 않을까 못견디게 궁금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사람을 보내 연희궁의 귀비가 어찌 지내고 있는지 살피고 오라고 명하지 않았어. 만약에 강징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으면 견딜수가 없을것 같았거든. 저에 대한 연심이 식어버린건 아닌지 사실 처음부터 자신을 연모한게 아니라 총애를 받기 위해 연극을 한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품게 되자 도저히 연주에 집중하지 못할 지경이 됨. 망기는 근처에 시립하고 있던 태감에게 고금을 치우라고 명하고 자리에서 일어남.
강징은 늦은 시간까지 잠투정을 하다가 제 품에서 겨우 잠이 든 사윤을 요람에 눕히고 침상의 안쪽에 잠든 공주를 살폈어. 밤이 늦도록 토끼들과 놀더니 많이 피곤했는지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잠든 상태였음. 강징은 아이의 말간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터져나온 눈물에 당황해서 허둥지둥대며 급히 밖으로 나왔음. 궁인들을 거느리지 않고 제비꽃 화원에서 홀로 한참을 숨죽이고 울다가 굳게 닫힌 연희궁의 궁문을 보고 마음이 더 번잡해지는 것을 느낌. 아무리 신분이 존귀하면 무엇을 하나. 황궁의 여인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총비여도 황제의 총애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황손을 둘이나 낳고 또 둘이나 뱃속에 품고 있어도 행복하지 않았어. 삭막한 황궁에서 의지할 자식이 많은것은 큰 복이었지만 다른 이들이 귀한 자식들을 해치기라도 할까봐 한시도 마음이 편한적이 없었음.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서 품에 안고 아낌없이 사랑을 줄수가 있다지만 아이들은 금세 자랄테고 혼인이나 왕부를 마련해 출궁을 한다거나 선대의 공주들처럼 이역만리 타국으로 화친혼을 가게 되겠지. 강징은 황제에게도 제가 열달을 품고 배 아파 낳은 자식들에게도 지나칠 정도로 정을 주어선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정을 떨치기가 힘들었어. 시간이 지나면 황제의 마음은 다른곳으로 향할테고 품안의 자식들도 언젠가 제 품을 떠나는 날이 올테니까. 강징의 둥글게 부푼 배를 쓰다듬으며 이번 일로 황제의 총애를 영영 잃는다고 해도 아이를 더 가질수가 있으면 더 바랄것이 없겠다는 생각을 함. 앞으로 십여년 정도 시간이 흐르면 미모도 퇴색될테고 생식 능력도 떨어져 아이를 더 낳기 힘들어지겠지. 연이은 회임과 출산에 몸이 상해도 좋으니 가능하다면 아이를 더 낳고 싶었어. 연모하는 사내의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어미로서의 삶을 살면 영원하지 않을 연심에 기대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을테니까. 강징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다가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고 시를 읊었음.
君恩如水向東流 임금의 은혜는 물처럼 동쪽으로 흘러가니
得寵憂移失寵愁 은총 얻으면 옮겨갈까 걱정 잃으면 근심
莫向尊前奏花落 임금님 앞에서 꽃이 진 것을 아뢰지 말라
涼風只在殿西頭 서늘한 바람은 다만 궁전 서쪽에 있나니
강징이 우울한 낯빛으로 시를 읊고 있는데 궁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꿈에서도 그리워했던 정인이 나타났음. 망기는 문이 열리기 무섭게 뛰어와 강징이 뭐라고 말을 꺼내기 전에 희게 질린 얼굴을 손으로 감싸쥐고 입을 맞추었음. 강징은 갑자기 벌어진 일에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는데 망기가 소리없이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몸을 맡겼어. 이 가련한 사내를 어찌하면 좋을까. 황제에게 연심을 바라서는 안된다는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이 사내의 손길이 기꺼운 자신을 어찌하면 좋을까. 차라리 이 모든게 꿈이면 좋으련만. 황제의 연심이 너무나 버겁고 제가 모질지 못한 사람이라 연심에 눈이 멀어 아이들을 지키지 못할까 두렵고 서로에게 큰 상처를 받고 산산이 깨진 거울처럼 다시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사이가 벌어지는 날이 올까 무섭기만 했어. 그런 강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달빛은 눈이 시릴 정도로 밝고 망기의 손길은 애틋하고 입맞춤은 달기만 했음. 강징은 눈을 감으면서 소리없이 눈물을 흘림. 연정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다지도 사람을 괴롭게 하는걸까.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소리없이 울면서 입을 맞추고 있었겠지. 이날은 칠석의 전야였기에 훗날 두 사람은 이날의 일을 두고 견우와 직녀가 자신들을 가엾게 여겨서 달밝은 밤에 신묘한 요술을 벌인게 아닐까하며 웃어 넘기곤 했음. 견우와 직녀가 수를 부린게 아니라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너무 깊어서 자기도 모르게 발길이 그쪽으로 향한거지만.
석안의 꽃말은 결속, 덧없는 사랑, 기쁜 소식, 애정으로 맺어진 인연
망기강징 망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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