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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6 10:36
쌍방 유사 센가물 배경으로 다병 비성 현야에게 사랑받는(?) 이연화가 보고 싶어서 머리 풀고 막 나가는 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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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ㅈ 주의, 주화입마된 사파 무순 주의
9편.
이연화는 오후 내내 약을 배합하고 달였다. 얼추 중요한 부분을 마치고 하인들에게 뒷일을 넘긴 이연화는 현기증이 이는 것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처소로 돌아가는 길이 길게만 느껴졌다. 속이 홧홧하게 타오르고 몹시 답답하여 물 한 잔이 간절했다.
발작인가?
한 달여간 잊고 있었던 벽차지독이 발작하려는지도 몰랐다. 이연화는 침상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급히 점혈하여 날뛰는 경맥을 잠시 누르고 심법을 운용했다.
목까지 타고 오른 검은 힘줄이 울끈 돋았다가 사그라들기를 반복했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답답함은 당장 가셨지만 타들어가는 느낌은 사라질 줄을 몰랐다.
'적비성때문인가? 평소와 달라.'
방다병의 경맥은 이연화의 것과 흐름이 유사하여 감응할 때 경맥이 요동치긴 했어도 견디기가 수월했다. 벽차지독에 대항해 내력을 운용하는 것처럼 흐름을 되찾으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 그런데 적비성과는 달랐다. 그의 경맥은 이연화의 흐름과 반대여서 반응이 더욱 격했다. 벽차지독에 대항하기도 버거운데 요력이 흐름을 깨려는 듯 넘실대어 이중고였다.
연형제는 경맥의 흐름이 유사하거나 반대로 역으로 흐른다더니 하필 방다병과 적비성이 그 경우일 줄이야.
수 십년을 제 안의 내력과 요력, 독의 싸움을 진정시키며 살아왔는데 이제 와 무슨 괴이한 일이란 말인가. 이연화는 이리 극단적으로 다른 연형제를 한꺼번에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읏."
괴로운 신음이 잇새를 비집고 나왔다. 균형을 찾지 못해 날뛰는 기운이 제각각 저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아우성이었다. 고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얼굴까지 붉게 달아올랐다.
"이연화, 약은 다 ...이연화!"
이연화가 오기만을 기다리다 기어이 방으로 들어온 방다병이 이 광경을 보고 기겁을 했다. 순식간에 얼굴을 구긴 그는 날듯이 이연화의 곁으로 와 무릎을 꿇어 얼굴을 살폈다.
"괜찮아?"
방다병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바로 이연화의 등 뒤로 가 양손을 써서 내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참아, 이연화."
방다병이 불어넣는 내력이 부드럽게 몸에 퍼지며 독기운을 물러나게 해주었다. 온기가 스미자 날뛰던 속이 가라앉으며 이연화의 얼굴이 조금 편해졌다.
경맥을 통하지 않은 탓인지 독의 영향인지 알 수 없었다. 적비성에 요란하게 감응하는지도 몰랐다. 이연화는 지친 눈을 들어 문을 쳐다보았다. 만일 그 때문이라면...
드르륵-
문이 거칠게 열리며 적비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다병은 본능적인 경계심이 올라와 침상에서 뛰어내려 이연화의 앞을 막아섰다.
"각인하지 않았더군."
적비성의 말에 방다병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치 아직 노릴 법한 사냥감을 대하는 듯 들려와 수컷의 본능이 경고를 해왔다.
"갑자기 쳐들어와서 무례하게 굴지마."
적비성은 대꾸도 하지 않고 침상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방다병이 눈을 부라리며 이연화를 향해 뻗은 적비성의 팔을 거칠게 쳐냈다.
"무슨 짓이야!"
적비성의 시선은 이연화에게만 향해 있었다. 방다병은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보다 이연화를 노리는 듯한 적비성의 행동이 몹시 거슬렸다.
"이연화에게는 내가 필요하다."
적비성이 내력을 실어 방다병을 밀쳐냈다. 그 바람에 방다병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입술마저 파리해진 창백한 얼굴의 이연화가 보이자 방다병은 밀쳐진 것도 잊고 재빨리 몸을 일으켜 튀어왔다.
적비성이 이연화의 가슴팍을 점혈하고 내력을 불어 넣었다. 이연화의 몸이 순간 발작하듯 괴롭게 들썩였다. 미간을 찌푸려 참는 듯한 모습에 안타까워진 방다병이 여차하면 달려들 기세로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이연화의 혈색이 빠르게 돌아오는 것을 보고 놀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잠시 후, 한결 안정된 이연화가 숨을 가쁘게 쉬며 힘겹게 눈을 떴다. 두 남자가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연화는 골치가 아파와 머리를 짚었다. 방다병이 재빨리 물컵을 갖다 주었다.
"어떻게 된거야?"
방다병의 걱정 가득한 물음에 이연화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려 했다.
"지병이..."
"이연화는 내 연형제다."
이연화의 맥아리없는 말을 끊고 적비성이 끼어들었다.
"뭐?"
방다병이 무서운 표정으로 달겨들어 적비성의 멱살을 잡았다.
"무슨 헛소리야? 이연화는 내 연형제야!"
적비성은 파리를 쫓기라도 하듯 방다병의 손을 쳐냈다. 시선은 이연화에 고정된 채였다.
"애송이가 시끄럽군. 경맥이 역류해서 더 괴로웠을거다. 애송이가 다룰 수 있는게 아니야."
방다병은 혼란스러운 듯 이연화와 적비성을 번갈아 보았다. 이연화도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적비성만 침착해 보였다. 유야무야 넘어갈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았다.
"사실이야, 방소보."
자포자기한 듯한 이연화의 말에 방다병의 몸이 굳었다. 이연화의 연형제가 나말고 또 있다고? 그것도 금원맹의 적비성이라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이보다는 덜 놀랄 일일터였다.
경맥의 흐름이 유사하면 감응도 통법도 다소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흐름이 반대면 감응이 발작처럼 격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발작하듯 괴로워하던 이연화가 적비성의 내력으로 혈색이 돌아오는 것을 직접 본 방다병은 증거를 대라할 명분도 없어져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적비성의 말대로 한낱 애송이가 된 기분이었다.
방에 침묵이 흘렀다. 적비성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적비성의 인내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한쪽이 발작을 할 정도면 다른 쪽도 괴로움이 보통은 넘을텐데 적비성은 평소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쉬어라. 다시 오겠다."
적비성이 몸을 돌렸다. 겉으로는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였다. 그저 필요한 행위를 하고 나가는 것으로만 보였다. 하지만 그 역시 경맥이 들끓어 올라 방에서 이미 술병 하나를 깨부순 참이었다. 고통을 참는 일이 익숙해져 있어 초연해 보일 뿐 운기조식을 하는 내내 미간을 찌푸린 채였다. 방금 전 이연화에게 점혈을 하며 등에 손을 댄 것만으로도 적비성은 조금 참을만해졌다. 하지만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는 몰랐다.
연형제니 뭐니 거추장스러운 타인을 달고 다닌다니 귀찮은 짓이라고만 생각해오던 그였다. 무엇보다 남이 있어야 더 강해지거나 진정된다니 이보다 더 걸리적거릴 수는 없었다.
무공과 술법은 연마하면 되고, 적과 싸워 이길수록 강해지는 것이지 누군가에 의존해서 힘을 낸다니 어린아이같은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치유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존재는 모조리 적이었던 적비성에게 연형제라는 개념은 혼자 힘으로 요마와 싸우지 못하는 자들이 편을 만들어 나약함을 가리기 위한나 핑계나 다름 없었다. 정말 강한 연형제가 있다면 그 자부터 적비성과 겨뤄야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연화는 어딘지 다른 구석이 있었다. 그에게서 느껴진 희미한 요력에 호기심이 생겼다. 단지 그 뿐이라 생각했다.
적비성이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인들이 들이 닥쳤다. 그리고는 온갖 탕과 찜, 고기와 약용 음식이 가득한 진수성찬을 탁자 위에 쏟아내다시피 했다. 이연화와 방다병은 적비성이 일찌감치 식사를 준비시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혈을 보하고 경맥을 진정케 하는 약탕이 한 그릇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다병은 눈에 띄게 말수가 줄었다. 가끔 이연화의 안색을 살피고 음식을 덜어주면서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말을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연화는 속이 복잡해 침묵이 고마우면서도 내심 편치가 않았다. 방다병이 이연화의 찻잔에 찻물을 따라주었다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하는 듯 손길이 부드러워 물 따르는 소리조차 잔잔했다.
"몸은 좀 어때."
"이제 괜찮아."
"밥 편히 먹으라고. 힘들었을텐데."
평소에 왕왕대는 강아지같은 구석이 있는 방다병은 이럴 땐 속이 깊었다. 선한 눈망울로 괜찮냐 물어보면 그 진심이 부딪혀와 이연화는 괜시리 대충 넘어가게 되었다.
누굴 지키는 것만 할 줄 알았던 이연화였다. 이상이일 적에는 사고문의 수많은 눈들이 간절하게 그만을 바라보며 도움을 바랬다. 그들의 기대 정도는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만큼의 고수였던 이상이는 자신을 소모해가며 사람들을 지키는 일에 속으로도 토를 단 적이 없었다.
이제는 누군가를 지키기는 커녕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 평범한 처지로 살고 있다고는 하나, 아무렇지도 않게 작은 일로 힘들었겠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방다병에게 불편할 때는 이런 순간들이었다. 두드려본 적조차 없는 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열고 얼굴을 빼꼼 들이밀어 웃는 다정한 무례함이 싫었다.
"미안해, 이연화."
뜬금없는 사과에 상념에서 깨어난 이연화가 한쪽 눈썹을 올렸다.
"네가 미안할게 뭐 있어."
"네가 힘들 때 도움이 안됐잖아. 명색이 연형제인데."
방다병의 이를 악 문 모습이 낭패감을 짐작케 했다. 무력감이 가슴을 온통 헤집어 놓고 있었다.
"연형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야, 방소보. 난 지병이 있고 네가 내력을 줘서 괜찮아졌으니 그걸로 됐어."
이연화는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방다병의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피곤하니 이제 자야겠어."
방다병이 머뭇거리며 일어나 이연화를 부축했다. 부잣집 도련님 방공자는 일개 의원의 이부자리를 꼼꼼히 살피고 이불 아래에 내력을 불어넣어 데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연화는 기가 찼다.
"방다병. 내력을 이런 식으로 낭비하면 어떡해."
"환자 몸이 차면 안되니까."
방다병은 어쩐 일인지 쉬이 나가지 않고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서있었다.
"지금 할 말이 있어?"
"이 방에서 자면 안될까?"
방다병이 어렵게 꺼낸 말에 이연화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인상을 썼다. 방다병이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네 상태가 걱정이 되고, 내가 옆에 있으면 도움이 될거야.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대처할 수도 있고...그리고."
이연화는 방다병이 무얼 걱정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적비성때문에 그래?"
이연화의 입에서 적비성의 이름이 나오자 방다병의 얼굴에 험악해지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자는 무례하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아. 무슨 짓을 당할지 몰라."
이연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일이라 방다병을 안심시킬 적당한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만에 하나 강제로 경맥 통법이라도 쓰려 하면 싸우면 그만이었지만 방다병에게 그리 말할 수는 없었다.
"네가 옆방에 있잖아.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날아오면 되지. 그리고 저 자도 맹주인데 치졸한 짓을 하려고?"
이연화는 피곤한 기색을 누르며 짐짓 쾌활하게 답하고 침상 쪽으로 돌아서 이불을 살피는 척 했다. 이제 돌아가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그때 갑자기 이연화의 등을 커다란 온기가 감싸 안았다. 방다병이 이연화를 뒤에서 안고 팔을 감아 그를 제 품 안에 가두었다. 당황한 이연화가 휘청이자 방다병은 한 팔로 단단히 어깨를 잡은 채 다른 팔로는 부드러이 허리를 감싸 지탱해주었다.
"방소보."
이연화의 말투에 얼르는 기색이 묻었다. 방다병은 팔에 힘을 주었다.
"안돼? 의자에서 잘게."
"그럴 필요 없어."
"불안해."
속을 내비치는 와중에도 방다병은 내력을 돌려 이연화를 감싸주고 있었다. 따스하고 포근한 기운이었다. 너무도 온화하고 부드러워, 이연화는 방다병 옆에서 자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했다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애매한 위로를 하며, 이연화는 천천히 손을 들어 제 가슴을 두른 방다병의 팔을 쓸어주었다.
"괜찮아."
방다병은 한참을 그렇게 이연화를 안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 침상에 누워 밤새 안아주고 싶지만 이연화가 허락할 리가 만무했다. 지금이라도 도움이 되고픈 마음에 방다병은 한껏 내력을 부드럽게 뿜어내 이연화에게 둘러주었다. 이연화는 방다병이 최선을 다해 자신을 배려해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보답으로 방다병의 팔을 잡은 손으로 천천히 제 내력을 불어 넣었다. 이연화의 내력이 팔을 타고 들어오자 방다병의 눈이 커졌다. 화답을 받기라도 한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웃음이 입가에 퍼졌다.
"나만 받을 순 없으니까."
이연화의 목소리가 잠겨들었다. 방다병의 내력이 포근해서, 지친 그가 졸려서 이리 나른하게 처진다고 믿고 싶었다.
"너만 받아도 돼."
방다병이 이연화를 감싸 안은 팔에 부드럽게 힘을 주면서 내력에도 힘을 실었다. 봄의 훈풍같은 기운이 두 사람을 감쌌다. 이연화는 방다병이 제 표정을 보지 못해 다행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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