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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3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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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마 퇴치하는 천사 방다병과 떠돌이 의원 하지만 당연히 과거 이상이인 이연화가 센티넬 가이드스러운 관계인거 bgs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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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

작게 열린 들창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스며 들었다. 붉은 빛가루를 머금은 검은 나비가 바람을 타고 날개를 팔랑이며 들어왔다. 나비는 탁자 앞에 앉아 차를 마시는 남자에게 곧장 날아와 남자의 손끝을 희롱하듯 움직였다.

"전음령."

이연화가 나지막히 속삭이자 구름이 흐트러지듯 나비가 검은 연기로 변하며 형체를 바꾸었다. 검은 형체는 곧 작은 두꺼비같은 모양을 한 연기덩어리로 바뀌어 촛불처럼 일렁이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주인에게 고합니다. 천마왕이 자상을 입었습니다."

"역시 그 자였나."

이연화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화영루에서 만난 요마가 범상치 않다고 여겼다. 채찍을 휘두른 모습이 어딘지 익숙했고 제 기억 속 모습과는 달라도 백발에 기시감이 들었다. 나뭇가지 따위로 상대해도 충분할 엔간할 요마에게 소사검을 빼어든 것은 백발 요마가 제 힘을 제대로 쓰지 않고 그저 시늉만 하고 있다고 여겨서였다. 게다가 요마의 술법을 썼을 때에도 그 자는 놀라지 않았다. 검에 찔려 연기가 난 것도 그 자가 환영을 실체화해서 보내는 환영육화 술법을 썼기 때문이었다. 환영육화는 내력 소모가 심한데다 실체화를 한만큼 환영이 손상을 입으면 본래의 육체에도 같은 상처를 입었다. 원거리로 환영을 육화시켜 보낼수록 실체의 힘이 약해지는데, 그 요마는 본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싸웠다. 이런 수준의 술법을 쓸 수 있는 요마는 칠곡산 요마들의 우두머리인 천마왕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치료를 하지 않고 있어요.'

연기로 된 두꺼비가 우는 소리를 냈다.

"기분 나빠요."

"요마가 요마한테 기분 나빠서 어쩌겠다는거야."

"주인님도 아시잖아요. 저는 그냥 두꺼비 정령일 뿐이지 사악한 요마가 아니라고요. 주인님이 시켜서 칠곡산 연못에서 소식통 노릇을 하는거지 얼른 중원으로 나가고 싶다구요."

"그래, 그래. 네가 받은 은혜가 있으니 조금만 더 참아봐. 금오가 아직 안 와서 어쩔 수 없다고."

두꺼비가 징징대자 이연화가 면박을 주었다. 삼년 전 중원에서 요마에게 뜯어 먹힐 뻔 한 두꺼비 정령을 구해준 것이 인연이 되어 칠곡산 소식을 전해줄 소소한 첩자로 심어두었는데 겁이 많고 소심하여 매번 이 모양이었다. 그래도 칠곡산 요마들의 장터 내 연못에 자리 잡아 온갖 소식을 물어오곤 해서 얼르고 달래가며 연을 이어왔다.

"보옥은?"

"보옥 이야기는 못 들었어요."

하긴 보옥을 가져가려면 환영으로는 불가능할테지.

"수고했어."

이연화가 손가락을 튕기자 연기가 사라졌다. 보옥은 천기당의 보물실에 있을 터였다. 인간이 보기에는 그저 빛깔 고운 옥구슬이지만 요마, 특히 천마왕에게는 봉인을 깰 보물이었다. 보통의 요마는 만지기만 해도 몸이 타들어가기에 칠곡산에서도 보옥을 탐할 수 있는 요마는 얼마 되지 않았다. 보옥은 도성 내 명문 문파 셋이 나누어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었고 그 존재는 당주들만이 알았다. 사고문, 천기당, 금원맹이 보옥을 가진 문파들이었다.

천마왕이 제 환영을 보냈다면 천기산장에 들여보낸 두더지 요마도 천마왕이 보낸 정탐꾼 환영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요기가 옅게 느껴진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천기산장에 들어온 목적도 요마가 보옥을 노릴 것을 염두에 두어서였다. 70년 전 대전쟁 때 만들어진 보옥이 정말 천기산장에 있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로 천기산장에 보옥이 있는 것이 확실해졌고 천마왕이 본격적으로 나선 것 또한 알았다. 천마왕이 70년 전 칠곡산을 둘러친 결계를 깰 작정인 것이다.

앞일이 더 복잡해진 이 마당에 연형제가 나타나 자기를 따라 나선다 하니 이연화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연화로서도 연형제를 찾아 더 막강해질지도 몰랐다. 과거의 이상이는 혼자 몸으로 천마왕에게 검을 찔러 넣었었다. 내력이 약해진 지금 둘이라면 결계를 지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실제로 한 달간 방다병과 있는 동안 벽차지독의 발작이 눈에 띄게 줄었고 내력을 소모하여 천마왕의 환영과 싸웠음에도 무리가 없었다. 연형제와 경맥을 조금 통했을 뿐인데 방다병은 시순독을 해독하고 자신은 벽차지독을 누른 셈이었다.

"이제와서 연형제라."

방다병의 환한 얼굴이 떠올랐다.

[네가 모자란건 내가 채울게, 이연화.]

이상이의 삶은 늘 남의 모자람을 채워주는 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것도 자신을 몰아세워 소모하는 방식으로 채웠다. 이연화로 살아온 세월도 혼자 은둔하며 쇠약해진 몸을 버텨온 시간이었다. 홀로 싸워 온 이연화에게는 너무도 낯선 경험이었다. 무공도 술법도 방다병은 이상이에 비해 한참 모자랐고, 약해진 지금의 이연화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의 존재가 이연화의 몸을 버티게 하고 있었다.

차라리 모든 것을 말하고 협력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방다병이라면 흔쾌히 함께하고도 남을 터였다. 하지만 이연화는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 이상 생각하려면 마음이 고장난 것처럼 거부감이 일었다. 이연화는 머리를 내젓고는 일단 연화루부터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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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듯한 바위산에는 음기가 서려 축축한 기운이 가득했다. 서늘한 안개가 낱게 깔려 장포 자락을 적셨다. 칠곡산의 네번째 봉우리의 가장 높은 곳에는 거대한 성채가 있었다. 붉고 검은 휘장에 천마 글자가 휘갈겨 써있었다. 널직한 회랑에는 시중을 드는 요마들이 바삐 움직여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제 주인의 여흥을 돋우는 자리에 실수란 있을 수 없었다. 쭈글대는 잿빛 피부를 가진 반인반수의 요마가 안절부절하며 동료에게 물었다.

"상처를 입으셨는데 왜 매화주를 내라고 하시지? 잘못 전하는 날이면 죽은 목숨이라고."

붉은 피부에 애꾸눈인 요마가 대꾸했다.

"들어온지 얼마 안 된 놈이로군. 오늘은 천마왕의 기분이 좋으시다. 상처에 좋은 약을 마다하고 매화주를 직접 명령하셨어."

"기분이 좋으셔? 그런 날이 있었던가?"

"이상이를 만났거든."

"이상이? 그게 누군데?"

"어허, 정말 뭘 모르는 놈이네. 칠곡산에 결계 친 인간을 몰라? 천마왕이 그 자 때문에 칠곡산에 갇힌거라고."

회색 요마는 더더욱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수를 만났는데 어째서 기분이 좋아?"

"그야 우리 주인을 찌른 유일무이한 인간이니까. 천마왕이 숨이 끊어지다시피 한 그 자를 살려냈어. 요력도 받아 늙지도 않는다지? 천마왕이 아끼는 유일한 인간이다. 함부로 말하지 않게 조심해."

떨떠름하게 알았다고 한 요마는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얼른 매화주 세 동이를 꺼내어 수레에 실었다.

잔에 매화주를 넘치게 따른 천마왕 현야는 흡족스러운 표정으로 잔을 쳐다보았다. 상의를 벗어 생채기가 난 어깨를 그대로 드러낸 채였다. 구불대는 백발이 어깨와 가슴팍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찬 기운이 상처를 스쳐 욱신댔지만 그만큼 웃음도 비어져 나왔다. 소사검에 찔린 상처가 아릿해올수록 전율이 일었다.

"이상이. 다시 널 만날 줄이야."

현야는 술을 음미하듯 마셨다. 여장을 한 우스운 꼴이었지만 틀림없이 알아보았다. 환영이라 촉감을 바로 느끼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었다. 본체였다면 채찍으로 이상이를 휘어감아 팔로 안고 한껏 살내음을 맡았을 터였다. 강한 생명력과 다른 존재를 위해 결연히 나서는 의지를 가진 인간이 내뿜는 향은 요마에게 없는 그것이라 참을 수 없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상처가 벌어집니다, 마존."

옆에 앉아 시중을 드는 백여우가 조심스레 말했다. 현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놔두거라."

이상이가 두 번 찌른 곳이다. 칠십 년 전의 흉터 위로 재차 새긴 상처다. 현야는 할 수만 있다면 상처를 내내 놔두고 싶었다.

환영으로 본 존재가 붉은 요력으로 술법을 쓸 때 현야는 몸이 달았다. 모자란 인간 하나를 감싸려 나타난 이상이를 움직일 방법은 너무도 잘 알았다. 일부러 이상이가 기억할 법한 비술들을 썼다. 인간을 내동댕이 치니 역시나 그가 정체를 드러내며 달려 들었다. 이상이가 소사검을 뽑았을 때 현야는 몸서리 칠만큼 기뻤다. 그래서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었다. 보옥은 나중 일이었다.

널 대신해서 마셔주마.

현야는 매화주의 달큰한 향을 한껏 들이켜 삼켰다. 잔으로 흐른 매화주를 혀로 핥으며 천마왕은 흡족하게 웃었다.


*

방다병은 부모님에게 통보하다시피 제 결심을 말했다. 처음에 놀라 망설이던 부모님은 곧 아들의 결정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나은 대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연화의 의사를 무시하고 잡아둘 수도 없고, 아들이 연형제 없이 앓는 것을 볼 수도 없었으니 이연화를 따라 나서는 것이 최선이었다.

"연형제가 있다 해서 요마에게 함부로 덤비면 안된다. 이선생은 천사가 아니지 않니. 아무리 의원이라 치료를 하고 경맥을 통한다해도 천사가 아니라 한계가 있을 것이야. 네가 크게 다쳐버리면 손 쓸 도리가 없어. 이선생을 위해서라도 각별히 조심하거라."

하당주의 당부에 방다병은 그러겠다고 맹세를 했다. 소식을 전하러 이연화를 찾은 방다병은 마침 나가려는 그와 마주쳤다.

"어디 가, 이연화? 설마 도망치려고?"

대뜸 어깨부터 잡는 방다병에 이연화가 손사레를 쳤다.

"나를 그리 못 믿어? 약재를 사러 가려고. 상비약이 떨어진데다 이번에 해독약을 다 썼어. 새로 만들어 둬야지."

"그럼 나도 같이 가."

"내가 애도 아니고 시장까지 너와 가야해?"

"해독약 약초는 중원에 있잖아. 혼자 가면 위험해. 도성도 안전치 않은데 중원은 더욱 혼자 못 보내."

이연회는 방다병의 기억력이 쓸데없이 좋다고 생각하며 핑계거리를 찾았다.

"누가 약초 캐러 간대. 지금은 약방에 갈거야. 금방 다녀오니 기다려."

"엣-"

방다병이 더 말을 잇기 전에 이연화가 그를 지나쳐 성큼 걸어갔다. 그런 이연화의 팔을 방다병이 반사적으로 잡았다.

"아!"

무의식중에 잡아서인지 힘이 세서 이연화의 몸이 휘청였다. 방다병 저도 놀랐는지 허둥대며 다른 팔로 이연화를 받쳐 안았다.

"미안."

이연화는 뭐하는거냐는 눈짓을 보내고는 더는 책망하지 않았다. 그저 구겨진 옷을 털어내고 잡혔던 팔을 문댔을 뿐인데 방다병은 큰 잘못이라도 한 아이처럼 당황했다.

"네가 자꾸 날 밀어내니까..."

제 앞에서는 도무지 여유라고는 없는 사내를 보며 이연화는 한숨을 쉬었다. 방다병도 민망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연형제를 만나면 당연히 막역한 지기가 될거라고 기대했지 이렇게 안절부절하고 애가 탈 줄은 몰랐다.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된건지.

"방다병. 네가 나를 따라간다고 선언을 했는데 내가 도망가면 천기당이 날 가만 놔두겠어? 정말 약방에 다녀올거야. 같이 다니려면 혼자 다닐때보다 상비약이 넉넉하게 필요하다고. 게다가 너는 천사고 다니면서 뭘 만날 줄 모르는데 해독약도 종류별로 구비해야지. 무공도 술법도 못하는 연형제가 재주를 살려 제 몫을 해보겠다는데 어찌 이리 길을 막아."

불여우에게 많이 먹으면 살찐다고 잔소리 할 때처럼 무어라 하자 방다병이 눈을 데룩 굴리며 대꾸도 못하고 서서 그 소리를 다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이연화는 그를 확실히 떼놓기 위해 일부러 더 통탄스러운 척을 했다.

"게다가 나도 네가 있어야겠어."

방다병이 얼굴을 번쩍 들었다. 자기 귀를 의심한다는 표정이었다. 이연화는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나는 몸이 약해 반응이 늦어. 최근에나 겨우 느껴지더군. 나도 너한테서 멀리 못 가."

이 정도는 벽차지독과 싸우는 일에 비하면 별게 아니지만. 이연화는 말을 삼키고 이제 됐냐는 눈빛을 보냈다. 방다병의 얼굴에 한 박자 늦게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결국 고기 한 점을 얻은 불여우마냥.

"그러니 여기서 얌전히 기다려."

이연화는 불여우에게 하던 말을 천기당 소당주에게 툭 던지고는 몸을 홱 돌려 밖으로 나갔다.





(이거 어찌 수습한다니. 댓붕들 고마워..)


연화루 이연화 방다병 다병연화 현야연화 센티넬 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