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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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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침상에 누운 방다병의 얼굴이 창백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곁을 지키던 하당주가 손수 수건으로 아들의 이마를 몇 번 찍어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절로 한숨이 나왔다. 연형제를 찾은지 어언 한달인데 요마 앞에서 이리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오다니. 여여 역시 내상을 입긴 했지만 제 짝 덕에 금새 회복했다. 방다병의 실력이라면 연형제와 있을 때 이리 당하지도 않았을테고 지금쯤 침상에서 일어나 앉아 자신에게 신나게 잔소리를 듣고 있을 터였다. 어미로서 속상한 마음과 눈 앞의 연형제라는 이에게 아쉬운 마음이 섞여 입이 썼다. 이를 감추고 입매를 가다듬은 하당주는 일어서서 이연화에게 몸을 돌려 공손하게 말했다.
"마침 이선생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이연화가 송구한 표정으로 답했다.
"시순독이 강하다고는 하나 방소협의 수련 경지가 높고 마침 해독약을 가지고 있어 빨리 손을 쓸 수 있었습니다. 미약하나마 내력을 주었으니 이틀이면 회복할 것입니다."
"연형제가 의술 또한 뛰어나니 다병이 복이 많은가봅니다. 감사합니다, 이선생."
하당주의 말에 이연화가 손사레를 쳤다. 듣기 편한 말은 아니었다. 경맥을 제대로 통해 두었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테니.
"당치 않습니다, 하당주. 제가 일개 의원이라 연형제로서 너무도 미력하여 방소협에게 미안하던 차였습니다. 부족한 의술로나마 도움이 되어 다행이지요."
"그리 빼지 마시지요, 이선생. 저..."
하당주가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곤란한 듯 머뭇거렸다. 그리고 잠시 누워 잠든 아들을 바라보고는 다시 이연화를 쳐다보았다. 곤란하면서도 간절한 눈빛이었다.
"이선생, 정말 천기산장에 남으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수련이 맞지 않는다면 의원으로 계셔도 좋습니다. 그저 저 아이 곁에 연형제로 있어주면 안될까요?"
어미의 마음이 느껴져 이연화는 무어라 쉽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당주의 성정이 선하여 이만한 것이지 많은 문파에서는 연형제를 발견하면 대의명분 하에 우격다짐으로 경맥을 통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겁탈하여 각인해버리는 일도 있었다. 이를 생각하면 이연화에 대한 처우는 보기 드문 것이었다.
이연화는 일부러 방다병에 접근하여 천기산장에 들어온지라 좋은 기회였으나 연형제 후보가 된 이상 계속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쉬이 떠나버릴 수도 없었다. 경맥이 통할 다른 이를 찾지 못한다면 방다병은 어지러이 날뛰는 경맥에 잠식되어 주회입마가 올 수도 있었다. 사정은 이연화도 다르지 않았지만 벽차지독을 누르는 일에 익숙해 있는 그에게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연화가 방다병과 경맥을 나눈다면 제 몸의 벽차지독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몰랐다. 반대로 해독이 될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연화로서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금의 유일한 희망은 다른 연형제가 나타나는 것 뿐이었다. 이연화는 간절한 표정의 하당주에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당주. 방소협은 차기 당주이고 훌륭한 인재라 큰 일을 할 인물입니다. 연형제가 세상에 또 있을터인데 어찌 제가 발목을 잡겠습니까? 저 또한 제 방식대로 사람들을 돕고 있어 갈 길이 다르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연화의 진심 어린 말에 하당주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저 어려운 일이겠지요-라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깨어 구해준 것은 진소와 여여였다. 둘이 들어서자 하당주가 반가이 맞았다.
"상처는 심하지 않고?"
"네, 당주. 이선생 덕분에 후유증도 없었습니다."
여여가 감사 인사를 올렸고 이연화도 이에 답했다. 이연화를 보는 하당주의 눈길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이연화는 눈을 내리깔아 이를 모른 체 했다. 안 그래도 며느리 아끼는 시모같다는 농담을 외면하던 차였다. 하당주는 여여와 진소에게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래, 화영루에 나타난 고수가 천사였다고?"
하당주의 얼굴에 의아함이 묻어났다. 진소가 묘사한 여인은 그 어떤 문파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무공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술법을 쓰고 진을 그렸습니다. 천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해요."
진소의 말에 하당주가 생각에 잠겼다.
"진을 펼칠 정도로 술법에 능한 여인이 있다면 왜 내가 모르겠느냐? 여인 중 가장 뛰어나다는 여여도 진을 그리지는 못한다. 잘못 본 것이 아니더냐? 사내라면 몇 있을 것이다."
"당주님 말씀은 남자가 여장을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인지요?"
"글쎄다. 그럴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 어쨌든 고수가 우리를 도왔으니 적은 아닌 것 같구나."
매화 가지를 든 여인의 정체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어쨌거나 이후로 도성 안팎의 경계가 강화되었다. 천기당의 먹거리를 탐낸 하급요마 이야기나 화영루에서 유흥을 즐긴 요마가 천기당 사람과 충돌했다는 사실은 도성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평화 협정 후 도성 내에 요마가 드나든 적은 거의 없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기루에 드나들었으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각 문파의 천사들 뿐 아니라 수련생들까지 요기를 감지하는 법기를 들고 다니며 순찰을 하는 통에 분위기는 더욱 어수선했다.
이튿날 자리를 털고 일어난 방다병은 눈을 뜨자마자 이연화를 찾았다. 묻고 싶은 일은 많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이연화가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였다. 이연화가 머무는 처소의 덧문을 열어제낀 방다병은 눈을 마주치기도 전에 말부터 꺼냈다.
"이연화, 당분간 더 머무르는게 좋겠어. 도성까지 요마가 들어왔으니 혼자 다니기 위험해."
이연화가 뜰에서 개에게 음식을 주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 홍매화 꽃잎이 날려 한 폭의 그림같았다. 방다병은 잠시 멍하게 그 광경을 바라 보았다. 자신이 낸 말이 이연화를 더 붙들어둘 핑계가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단순히 기다리던 연형제를 만나서일까, 방다병은 눈 앞의 사내에게 여유를 부리지 못하고 늘 조바심을 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연화는 무심하게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불여우야, 네가 아무래도 먹을 복이 있나보다. 안그래도 살이 올랐거늘 천기산장 고기를 더 얻어먹게 생겼구나."
방다병은 그 말에 안도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표정이 한껏 풀어진 그는 입에 웃음이 번지는 것을 느끼며 이연화에게 다가갔다.
"차 마시고 있었어? 발은 좀 어때?"
"괜찮아. 네가 물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너야말로 어때?"
탁자 맞은 편에 앉은 방다병은 이연화가 차를 따라주는 모습을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아주 좋아. 네가 계속 내력을 줬다고 들었어. 혹시..."
이연화가 눈짓으로 뭐냐고 물었다. 방다병이 멋적어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너 모르게 입이라도 맞췄냐고?"
방다병의 귀끝이 순식간에 발갛게 물들었다.
"너, 무,무슨."
"그게 궁금한거잖아. 시순독에 당했는데 회복이 빠르니. 그래. 뭐. 약도 쓰고 내력도 줬지만 그것도 했지. 나는 의원이고 좋은 약이 있는데 어찌 좌시해?"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차를 호록 마시며 이연화가 대꾸했다. 방다병은 바보처럼 그랬구나,하며 목이 탄다는 듯 차를 입에 털어넣었다.
"꿈인 줄 알았어. 분명히 화영루에서 쓰러지고 난 후였는데. 아닌가?"
아, 어렴풋이 기억이 있나보군. 이연화는 괜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 선수를 치며 방다병에게 얼굴을 들이 밀었다.
"자, 이거 보라고."
"뭘?"
갑자기 눈 앞에 가까워진 이연화의 뽀얀 얼굴에 방다병이 숨을 삼켰다. 이연화는 천연덕스럽게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켰다. 왼쪽 아랫입술에 피딱지가 져있었다.
"네가 깨물었어. 알고보니 방공자는 짐승같더군."
화아악- 방다병의 얼굴이 빨개졌다.
"무,무슨! 내가 그랬다고? 거짓말!"
이연화는 눈썹을 팔자로 찡그리며 방다병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민채로 빙글거렸다. 방다병에게 그 자태가 화영루에서 본 기녀의 교태보다 더 자극적으로 보인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였다.
"방소보. 내가 무슨 치한이야? 그런 거짓말로 너를 곤란하게 하게. 정말 네가 문거야. 네 침상에서. 아팠다고."
"미,미안해. 미안하니까 얼굴 좀 치워줄래?"
벌겋게 달아올라 당황하는 젊은이가 조금 귀여워진 이연화는 피식 웃고 몸을 뺐다. 방다병은 괜히 눈을 꿈뻑대며 주변을 보느라 저 혼자 분주했다.
"천사가 그리 쑥맥이어서야 연형제를 어찌 받아들이려고?"
"연형제 할거야?!"
방금 전의 부끄러워하던 모습을 내던지고 금방 눈을 동그랗게 떠 몸을 들이대는 모습이 먹거리를 던져줄 때의 불여우와 다르지 않았다. 이연화가 웃음을 참으며 일부러 한숨 소리를 내고 찻잔을 탁 놓았다.
"나는 계속 떠도는 사람이야, 방소보. 계속 머물 수는 없어."
보이지 않는 꼬리가 처지는 것 같았다. 방다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화가 만발하고 풀내음이 나 차를 마시기에 더없이 좋은 풍경이었지만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어디선가 날아든 홍매화 잎이 방다병의 찻잔에 들어갔다. 방다병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 여인이 혹시 천기산장 사람은 아니겠지?"
"홍매화는 여기저기 많아. 도성 내 매화는 대부분이 같은 수종이라 어디서 따왔다해도 이상하지 않지. 정말 그런 자가 없는거야?"
"진을 그리는 여인은 없어. 있다면 알았을거야. 게다가 딱 봐도 고수였다고."
이연화는 말없이 차를 마셨다. 또 나설 일이 있겠냐마는 그때는 매화를 꽂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며. 안그래도 그 여인에 대한 소문이 천기당 내에서도 파다한데다 낯부끄러운 호칭이 붙어 귀가 민망하던 참이었다.
"매화천녀가 뭐야 매화천녀가..."
"그게 어때서요. 정말 딱이던데요!"
이연화가 중얼거리자 뒤에서 나타난 여여가 진소와 함께 나타나 끼어들었다.
"여누님! 몸은 괜찮으세요?"
"보다시피."
방다병은 더 묻지 않고 차를 건넸다. 여여의 내상은 진소가 도와 치료했을 것이다. 그 이상을 생각하면 두 사람을 볼 낯이 없어진다. 연형제가 있는 천사가 부상에서 회복한다는 것은 성애적인 의미를 포함하기에 천사들 사이에서는 몸 상태에 대해 자세히 묻지 않는 것이 예였다.
"그 매화천녀도 연형제가 없던데. 근거리에 있었는데 뭐 못 느꼈어?"
여여가 방다병을 흘끗 쳐다보며 물었다.
"글쎄요. 기루의 향때문인지 그 전부터인지 경맥이 요동치긴 했어요."
방다병은 이연화와 입을 맞추고 몸이 뜨거워진 것이 다시 떠올라 황급히 차를 들이켰다. 여여는 이연화를 쳐다보았다.
"하긴, 연형제가 옆에 있는데도 경맥도 공유하지 않았으니 내내 불편했을테지. 이선생은 아무렇지 않아요?"
"저는 몸이 허약해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방소협에게 저같은 사람말고 무공 실력을 갖춘 연형제가 나타나면 좋을텐데요. "
"나는 싫..."
방다병이 반사적으로 대꾸하자 여여가 말을 막았다.
"나도 이선생 말에 동의해.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거야? 이선생도 그래요. 한달 넘게 다병이 괴로워하고 있잖아요. 내력은 주고 있어요?"
진소가 여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참으로 대찬 여장부가 아닐 수 없었다. 이연화는 여여의 직설적인 말에도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는 일개 의원이라 방소협에게 적당한 연형제가 못되는데 참으로 곤란하게 되었지요. 방다병. 그 매화천녀가 연형제면 내가 필요없지 않겠어?"
그리고 내가 떠나면 매화천녀도 없겠지만. 방다병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매화천녀에게 관심이 옮아가면 자신이 빠져나가기 수월할지도 몰랐다.
"그래, 방소보. 우리를 부러워했잖아. 매화천녀와 네가 경맥이 통한다면 정말 좋을텐데."
진소가 호의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다병은 심기가 불편했다. 어째서 다들 이연화는 아니라고 하는거야?
"진사형과 여누님이 부러운건 사실이지만 내 연형제는 여기 있는걸요."
우직하게 답하는 방다병이 마음에 안 드는지 여여가 눈을 흘겼다.
"경맥을 트던가 내력이라도 받던가. 걱정되서 그래, 방다병. 지금은 버틸지 몰라도 언제 위험해질지 몰라. "
사실 방다병이 이만큼 강건하게 버티는 것도 남 보기엔 신기한 일이었다. 감응한 연형제를 옆에 두고도 경맥을 공유하지도 않고 내력도 별반 받지 않으면서 고열 발작을 하지 않는 일은 흔치 않았다. 실상은 이연화가 한 번 주입하는 내력이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라 오래 버틸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이는 이연화만 아는 사실이었다.
"이선생, 대체 어쩔 생각인겁니까?"
진소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답하기도 전에 여여가 성질 급하게 나섰다.
"방소협에게 적당한 연형제가 나타날 때까지 내력을 주면서 지내던가 그냥 각인을 하던가요. 정말 답답하네요."
"실례잖아, 여여."
"괜찮습니다. 여낭자가 방소협을 걱정해서 그런 것이지요. 보시다시피 제가 무공도 술법도 못하니 방소협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저 역시 길을 떠나야하니 죄송할 따름입니다."
"돼."
모두가 각자 화내고 민망해하고 미안한 척 하는 가운데, 조용히 찻잔만 바라보던 방다병이 공기를 뚝 끊어 가르며 말했다.
"된다고. 도움. 내력 가끔 넣어줘도 괜찮아. 정말 유람을 떠나야겠다면 나도 같이 가. 어차피 연형제없이는 천사가 될 수도 없고, 널 따라 다니면서 다른 연형제를 찾아다니는게 빠르겠어. 그때까진 네가 옆에서 내력을 나눠 줘. 그건 할 수 있겠지?"
방다병의 말에 침묵이 흘렀다.
"그러니까 정 떠나야겠으면 나도 같이 가."
강직하고 선한 까만 눈동자가 이연화를 향했다. 결심한 듯 표정도 진지했다.
내가 못 살아.
이연화는 눈을 굴리며 아랫입술을 씹었다. 방다병이 물었던 입술이 아릿했다. 천기당 소당주의 제안을 거부할 명분을 찾으려 했지만 당장 떠오르는 것이 없어 말문이 막혔다. 좋은 생각을 해냈구나, 방소보.
여여와 진소는 놀라 입을 다물었고, 방다병은 제가 말해놓고도 뿌듯했는지 입꼬리를 올렸다. 마침 불여우도 배가 부른지 흡족하게 발치에 누워 잠을 청했다. 어쨌거나 겉보기에는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방다병은 내일 문안 때 하당주에게 청하겠노라며 번복은 없다고 선언했다. 더는 말릴 재간이 없다고 판단한 여여와 진소가 자리에서 일어섰고 방다병만 우쭐한 표정이었다.
뜰에 남은 두 사람은 각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연화는 방다병이 어찌해도 자신을 따라나서리란 것을 알고 무엇부터 대비해야할지 떠올리기 바빴다. 우선 중원 숲에 결계를 쳐 숨겨둔 연화루가 문제였다. 평범한 사람이 결계를 친 누각을 비술로 불러낸 말로 끌고 다닐리가 없으니 중원 밖 들판에라도 갖다 놔야했다. 시호를 부려 칠곡산의 제 편인 요마와 연락을 주고 받는 일도 자유롭지 않을 터였다.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연화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않자 방다병이 눈치를 보듯 흘끔 쳐다보았다. 방다병의 머리 속은 그저 이연화와 유람 다닐 생각으로 가득했다. 지금은 저리 밀어내지만 함께 하다보면 생각이 바뀔지도 몰랐다. 경맥을 통하면 자신도 중원에서 활약하는 천사가 될 수 있을테고 무엇보다도 이연화와 각인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까지 생각이 미친 방다병이 얼굴을 붉혔다. 처음부터 다른 연형제를 찾을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는 방다병이었다.
"뭐가 좋다고 혼자 그리 웃어?"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린 이연화가 기이한걸 보기라도 한다는 듯 물어왔다. 백일몽에서 깨어난 방다병이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흠. 난 짐 챙기러 갈게."
"짐?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벌써 짐을 챙긴다고?"
이연화가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어쨌든 연형제가 부담스러우면서도 날 도왔잖아. 그...거 꺼려졌을텐데."
갑작스레 접문을 들고 나오니 이연화라도 태연할 수는 없어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말했잖아. 의원이 어찌 치료를 마다해."
방다병이 갑자기 양손으로 이연화의 어깨를 잡았다. 놀라 고개를 든 이연화의 눈에 방다병의 얼굴이 담겼다.
"네가 모자라면 내가 채울게, 이연화. 그리고 난 너랑 뭘해도 다 좋아."
이연화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훅 찌르고 들어오는 방다병에 초연한 척 하기가 어려웠다. 엔간한 일에는 동요치 않는 그였지만 이렇게 진심을 담고 부딪혀 오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연화는 지금 제 처지가 영 꼴사나운 것 같아 눈을 내리깔고 시선을 피했다.
"자신만만하군."
방다병이 활짝 웃었다. 이연화는 그의 환한 얼굴이 봄과 퍽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당연하지. 내 마음을 내가 몰라? 이제 간다!"
방다병은 이연화를 뒤로 하고 호쾌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단단하고 충직한 뒷모습이 문을 빠져나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제서야 이연화는 저도 모르게 그러쥐었던 주먹을 펴고 숨을 몰아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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