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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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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온객행은 홀로 목욕을 하고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었다. 침상 위에는 알몸으로 엎드려 자는 주자서가 있었다. 한바탕 몸을 섞고 잠든 주자서의 부드러운 몸에는 온객행이 남긴 흔적이 가득했다. 그의 몸에서는 진한 수컷의 냄새가 묻어났다. 온객행의 입꼬리가 작게 올라갔다. 매번 그를 가져도 가시지 않는 갈증이 잠시나마 해소가 되었다. 잠시동안 잠든 주자서의 얼굴을 바라봤다. 은은한 달빛이 그의 몸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자면서 땀을 흘렸는지 두 뺨에 홍조가 올라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그의 얼굴을 가리지 않도록 했다. 온객행은 그를 안고 목욕을 시킬까 잠시 고민하다가, 주자서에게 입을 맞추고는 혼자 몸을 일으켰다.
얼마 후 온객행은 물에 젖은 따뜻한 수건을 가지고 그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의 몸을 닦기 시작했다.
이상한 꿈.
주자서는 넓은 들판 위에 홀로 서 있었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장소. 분명 이 곳에 와 본 적이 있었다는 걸 깨닫자 뭔가 가슴속이 울컥했다.
사방을 둘러보지만 온객행은 없었다. 주자서는 언제나 그와 함께 있기에 꿈에서조차 홀로 있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어디 있어?'
그를 찾기 위해 발을 떼자 몸이 바람처럼 가벼웠다. 갑자기 발 밑에서 바람이 일어 주자서가 입고 있는 옷을 흔들었다. 바람 속에서 젖은 흙냄새와 풀냄새, 생명의 냄새가 느껴진다. 바람은 작은 소용돌이처럼 일어나더니 주자서를 지났고, 그것이 하늘로 올라가 사라질 때는 힘을 더해 용오름처럼 솟았다.
땅과 하늘을 두드리는 소리.
그 바람을 맞으며 주자서는 들판 한복판에 우뚝 서 있었다.
발가락 끝에서부터 솟아나는 힘이 느껴진다. 심장의 고동소리가 점점 커졌다. 주자서는 숨을 헐떡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 곳에 자신을 부르는 무언가가 있다. 솟구치는 피가 그렇게 속삭였다. 몸에 걸쳐진 옷이 거추장스럽다.
몸은 땅에 묶여 속박의 굴레에 갇혀있지만 나는...나는...!
그 때 낯익은 기운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주자서는 그것이 온객행이라 생각해 뒤를 돌아봤지만 틀렸다.
그것은.
용이었다.
태양빛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금빛 용이 바람을 가르며 땅 위를 낮게 날아 주자서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주자서는 거쎈 바람 속에서 시야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거두며 날아오는 용을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몸처럼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에 주자서의 그림자가 비췄다.
용은 처음부터 바람 속에 서 있는 주자서에게 목적이 있는 듯 곧바로 그에게 날아왔다.
주자서는 제 곁으로 오는 용을 만져보고 싶어 손을 뻗었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빠르게 다가온 용은 갑자기 주자서의 다리 사이로 들어가 꼬리로 오른발을 감았다. 그러더니 입을 벌려 주자서의 발목을 깨물었다.
아!
발목이 뚫어지는 고통에 주자서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놀란 몸은 침상 위에서 튀어오르듯 벌떡 일어났고, 동시에 온객행도 눈을 떴다.
덮어진 이불을 걷는 주자서의 손이 정신이 없다. 당황해 자꾸 헛손질을 하는 주자서의 손을 온객행이 잡았다. 반쯤 꿈에 걸쳐져 있던 의식으로 흐릿하던 주자서의 시야에 그가 들어왔다.
"아슈, 왜 그래? 나쁜 꿈이라도 꿨어?"
주자서는 온객행의 손 안에서 제 손을 비틀어 빼고는 서둘러 이불을 걷어 자신의 발목을 살폈다. 발목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제서야 꿈인 것을 인식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온객행의 팔을 붙들었다.
"발이 왜? 저려? 아파?"
주자서가 발을 만지는 걸 본 온객행이 물으며 그의 발을 만졌다. 그러자 주자서가 고개를 저으며 온객행의 손을 끌어다 글을 썼다.
'...안 아파. 꿈을 꿔서 그래.'
"무슨 꿈을 꿨는데?"
주자서는 용에게 다리를 물리던 것을 떠올리자 다시 소름이 끼쳤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젓자 온객행은 그를 끌어다 무릎에 앉히고는 두 팔로 단단하게 안아줬다.
"그냥 꿈이야. 무서워할 필요 없어. 괜찮아."
내가 옆에 있잖아.
주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서늘한 향기가 주는 안도감이 무서운 기억을 날려줬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안고 다시 침상에 누워 그가 잠들 때까지 등을 쓸며 토닥였다. 하지만 주자서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생생했던 꿈이 자꾸만 떠올랐다. 주자서는 잠든 척을 하며 벽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얼마 후 아래 쪽 이불이 걷히더니 온객행이 그의 발을 만지는 것이 느껴졌다. 손가락이 피부를 스치며 꼼꼼하게 다리를 만져보더니 떠났다. 그리고는 이불을 끌어 목 끝까지 덮어주고는 옆에 누웠다.
그는 참으로 세심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
그냥 꿈이 아니었나.
주자서는 발목에 돋은 단단한 금색 비늘 하나를 떼어내면서 생각했다. 비늘은 마치 제 살같아서, 떼어내면 고통이 밀려왔다. 붉은 피가 하얀 피부 위에 동백꽃처럼 번져 나왔다. 주자서는 입술을 깨물며 얼른 손수건으로 발목을 누르고 온객행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온객행은 등을 돌린 채 육과의 끈을 엮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그는 겨울 준비를 하느라 바빠졌다. 남은 꽃들과 약초들을 따서 햇볕에 말리고 음식과 나무들을 쪼개 저장해뒀다. 지붕 아래는 끈에 묶인 육과들이 주렴처럼 매달려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바빠도 주자서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경우가 없고, 늘 시야에 두기 때문에 온객행 몰래 무언가를 하기는 사실 불가능했다. 주자서는 그가 피냄새를 맡지 않도록 미리 주머니에 넣어둔 꽃을 꺼내 짓이겨 주변에 뿌렸다.
꽃은 마지막으로 강한 향을 내뿜으며 스러졌다.
발목에 비늘이 생기는 건 이번이 세 번째였다. 꿈을 꾸고 난 이후 어느 날 발목이 간지러웠고 비늘을 발견했다.
떼버리자 며칠 후 다시 생겨났다. 온객행에게 말할까 생각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그는 요즘 과할 정도로 주자서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딱히 일부러 말을 하는건 아니지만, 종종 그런 것들이 주자서에게는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확신이 든 건 얼마 전 밤에 생긴 일 때문이었다.
그 날 주자서는 자다가 목이 말라 눈이 떠졌다. 보통 주자서가 일어나면 온객행도 마치 잠이 든 적이 없다는 듯 눈을 떴지만, 이 날은 깊은 잠에 빠져 일어나질 못했다. 낮동안 혼자서 많은 일들을 했기 때문이었다. 주자서가 그를 돕고 싶어해도 온객행은 일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주자서의 자잘한 실수가 어느 정도 있었다는 건 인정한다. 누구나 처음에는 실수를 하는 법이지만, 몇 번이고 처음처럼 실수를 하는 주자서에게 온객행은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대하려고 했다. 결국 온객행은 두통이 오는지 머리를 짚으며 눈을 감았다. 참다못한 그는 집 안에서 적당한 화본들을 몇 개 골라오더니 주자서에게 얌전히 읽고 있으라며 안겨줬다.
주자서도 잘 하고 싶었지만 마음먹은 만큼 해내질 못하니 화가 났다.
그래서 보란듯이 얼굴을 최대한 구겨 인상을 쓰고는 그를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둘 사이엔 하루종일 냉랭한 기운이 흘렀다.
자신은 아무래도 손이 야무지지 못하니 그에게 방해만 될 뿐이었다. 주자서는 더이상 조르지 않고 그가 준 화본 속에서 글자를 찾아 띄엄띄엄 읽으며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몰래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주자서는 그를 안고 자던 온객행의 팔을 물리고 그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고양이처럼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떼면서 조용히 물을 마시고 침상에 돌아가려다 창가가 유독 밝은 것을 눈치챘다. 달빛이 쏟아지듯 집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렇게 크고 밝은 달을 본 적이 있던가. 주자서는 눈을 크게 뜨고 창가에 몸을 기대어 하늘을 쳐다봤다.
주자서가 읽었던 책 중에 달에 사는 토끼이야기가 있었다. 노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착한 토끼는 옥황상제가 달나라로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고 있다는 책을 읽었다.
온객행에게는 책이 많았는데 그 중에는 어린 아이들이 읽는 책도 꽤 있었다. 어째서 가지고 있는지 묻자 서적방사 주인이 물건 값이 부족하면 대신 아무 책이나 끼워 함께 값을 치뤘다고 했다.
주자서는 여러 책들 중에 토끼 이야기가 적힌 책을 가장 좋아했다.
정말 달에 사는 토끼가 있다면, 그렇다면 저 그림자가 토끼일까?
하얀 털이 복슬복슬한 귀여운 옥토끼.
만져보고 싶다.
주자서는 자기도 모르게 달을 향해 손을 쭈욱 뻗었다. 이러면 마치 달에 닿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달빛을 향해 손을 뻗은 것-
그것 뿐이었다.
그것 뿐이었는데, 어느 새 자신은 온객행의 품 안에 있었다. 뒤로 끌려가 속도를 이기지 못한 다리가 허공에 떴다. 나오지 못한 소리가 목구멍 근처에서 멈췄다. 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놀란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온객행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한 표정이었다. 등 뒤로 빠르게 뛰는 온객행의 심장이 느껴졌다. 굳어진 몸에서 생생하게 느껴지는 긴장은 주자서에게도 옮겨져, 자신이 보지 못한 위험한 무언가 있는건지 주변을 살피게 했다. 하지만 주자서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몸을 제 쪽으로 돌리고는 얼굴을 만지며 살폈다. 주자서의 눈 주위를 배회하는 손이 작게 떨렸다. 무언가 확인을 하듯 눈두덩이와 눈썹을 만지며 주자서의 시선을 자신에게 고정시켰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말했다.
"괜찮아...."
'응?'
"괜찮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어..."
그가 물기 젖은 목소리로 속삭이던 말의 뜻을 주자서는 알지 못했다. 그저 예전의 자신처럼 그가 나쁜 꿈을 꾼 것이라고 여겼다.
주자서는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온객행의 품에 기대어 여전히 뛰고 있는 심장소리를 들었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의 심장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 온객행이 그리했듯이 주자서는 팔을 들어 그의 등을 감싸고 부드럽게, 그렇게 한참을 토닥였다.
그 후로부터- 온객행은 마치 새끼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어미새라도 된 것처럼, 주자서를 시야에 두고 혼자서는 멀리가지 못하게 했다.
흉터는 금세 사라진다. 다시 비늘이 생긴다면 떼 버리면 그만이다. 이런 걸로 가뜩이나 바쁜 그를 걱정 시키고 싶지 않았다. 주자서는 손에 쥔 비늘을 멀리 숲 속으로 던져버리고 온객행에게 달려갔다.
------
연목치는 눈 앞의 가무를 즐기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가 마시고 있는 술은 백가지 꽃으로 만든다는 백향옥로주로, 값도 값이지만 이런 시골에서 구할 수가 없는 귀한 술이었다.
춤을 추는 여인들은 도성에서 가장 유명한 기녀들로, 그들이 손가락을 하나 움직이면 수많은 남자들이 한숨을 짓고 그녀들의 뒤를 뒤따랐다.
그녀들의 춤은 봄바람처럼 부드러웠고 나비처럼 가벼웠다.
최고급 기루와 아름다운 기녀들 사이로 낯선 용모의 사내들이 있었다. 오랜 시간 햇빛에 탄 퍼석거리는 마른 피부와 못이 박힌 손과 발. 몸에 걸친 낡은 옷에서 나는 동물의 누린내가, 누가봐도 이 사내들은 이 곳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은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리고 앉아 주위를 살피다가 옆에 앉은 기녀들이 따라주는 술을 계속 받아먹고 조금은 풀어진 모습이 되었다.
춤을 추는 무희들은 마치 허공에 떠있는 것처럼 사람들 사이를 지나며 유혹하듯 춤을 줬다. 그 모습에 넋이 나간 얼굴로 보던 남자가 자신을 보며 웃고 있던 연목치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는 팔꿈치로 옆의 앉은 남자를 찔렀다.
"우리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
신이 나 박수를 치며 춤을 구경하고 있던 남자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왜? 난 이런 곳에 평생 있고 싶은데."
"....저 사람 무섭지 않아?"
"인심좋은 공자가 뭐가 무서워."
"그러니까 이상하잖아. 아무 댓가도 없이 우리한테 이런 걸 왜 해 줘."
"저 공자는 분명 한량일거야. 돈은 많고 쓸데가 없어 심심한거지."
그 말이 맞는 듯 했다. 분명 한가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더러운 사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리가 없다.
그들은 산행에서 돌아와 노점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잡은 짐승들을 팔고 돈을 어떻게 나눌지 이야기를 하다가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이번 산행에서 사냥물은 몸이 날쌘 이가 대부분 잡았기에 좀 더 쳐 줘야한다고 성질을 부리면서 시작됐다. 그러자 덩치 큰 남자가 나서 예전의 이야기를 꺼내며 그 때 공평하게 나눠도 자신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고 큰소리를 냈다.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다가 가만히 있던 두목이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치자 모두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두목은 들고있던 술잔을 거칠게 탁자에 내려놓았다. 탁주가 넘쳐흘러 상을 적셨다.
추용이 사라진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 놈은 원래 얍실한 놈이라 이쪽에 붙었다 저쪽에 붙었다하는 일을 밥먹듯이 했다. 저번 사냥에 다같이 나눌 돈이 남아있었지만 그 놈은 입을 싸악 닦고 올무와 덫도 내버린 채 사라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놈을 끼고 있었던 건 남다른 담력과 날렵한 몸놀림으로 사냥에 있었서는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배신을 때리다니. 제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다음에 만나면 당분간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두드려 패주리라.
“두목,피가.....”
아픈지도 몰랐던 두목이 손을 들어보자 검붉은 피가 베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피는 금세 멈췄다. 그 뿐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상처가 닫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서로가 서로를 쳐다봤다.
분명 그 산에서 내려온 후 다들 몸의 변화를 느꼈다.
뚱뚱하여 온몸에 버짐이 폈던 놈은 피부가 깨끗해졌고, 어떤 놈은 고질병이었던 기침병이 나았다.
이상했다. 산의 영험함을 말하면서 다들 떠올리는 건 한 사람이었다. 산에서 자신들에게 범해졌던 소년.
모두들 우물쭈물대다가 한 놈이 말을 시작하자 모두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애랑 그걸 하고 나서부터 진짜 안 아프기 시작했다니까. 너도 알잖아. 내가 맨날 가슴 통증 때문에 나무뿌리를 씹고 다녔던 거 말이야."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던 놈이 떠들어대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알지."
구석에 있던 남자가 바지를 걷으며 말했다.
"예전에 멧돼지에 박혀 찢어진 종아리의 흉터도 연해진거 같아. 니가 보기엔 어때?"
"그건 잘 모르겠다."
"아냐. 확실히 옅어졌다니까. 잘 보라고."
"그런데 요즘 들어 다시 아파. 걔가 진짜 그런 힘이 있는 거라면 다시 한번 가서 시험해 보는 것도 좋지 않아? 어때?"
기침병이 다시 도진 놈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눈 앞에 좆질에 흔들리던 주자서가 떠올랐다. 고통에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젓던 아이.
"걔 말야. 요괴가 아닐까? 애당초 사람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을리가 없잖아. 곱게 생긴 어린 애가 혼자 산 속에 있던 것도 이상하고. 잘못 걸렸다간 죽을 지도 몰라."
"요괴라도 그 놈을 다시 맛만 볼 수 있다면 하다가 죽어도 좋겠네."
뚱뚱한 놈이 히히거리고 웃으며 술을 들이킬 때였다.
"그 요괴는 어디있지? 나도 만나보고 싶은데."
남자들은 대화를 멈추고 자신들의 머리 위로 생긴 그림자의 주인을 올려다봤다.
그림자의 주인은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며 비단주머니를 열어 돈을 꺼내더니 그들이 한번도 가 본적이 없던 기루로 데려갔다.
"정말 이 술자리가 끝나면 돈을 줄까? 우리가 먹은 것만 해도 평생 벌어도 부족한 값을 할 것 같은데."
"약속은 약속이지! 난 그거 없었으면 안 왔다고!"
"저 공자의 품새를 보니 이런 돈은 돈도 아닐 것 같은데. 저 부채를 봐. 저런 접선에까지 보석이 박혀있어."
연목치가 손을 들어 가볍게 꺾자 무희들이 춤을 멈추고 열을 맞춰 방 밖으로 사라졌다.
방금까지 정신을 빼놓을 것 같이 울리던 음악소리가 사라지고 대신 기녀들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연목치가 술병을 들고 단 아래로 내려오자 남자들이 눈치를 보며 벌렸던 다리를 모아 앉았다.
"편하게 있게. 놀려고 온 자리인데 딱딱하게 있을 필요는 없네."
연목치가 가볍게 웃으며 두목에게 술병을 기울이자 두목은 두 손으로 술잔을 들어 받았다.
"아까 들었던 이야기 좀 풀어보게. 산에서 만났다는 요괴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던가?"
연목치는 남자들에게 차례로 술을 따랐다.
두목은 얼른 술잔을 비우고 입술에 묻은 술을 소매로 닦았다. 먼저 술의 향기에 놀랐고 가까이 다가온 연목치의 미모에 두 번 놀란 두목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아, 그게 진짜 요괴라는 말은 아니고 그냥 소...소년인데."
두목은 그 날의 일을 연목치에게 긴장된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객행자서
메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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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온객행은 홀로 목욕을 하고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었다. 침상 위에는 알몸으로 엎드려 자는 주자서가 있었다. 한바탕 몸을 섞고 잠든 주자서의 부드러운 몸에는 온객행이 남긴 흔적이 가득했다. 그의 몸에서는 진한 수컷의 냄새가 묻어났다. 온객행의 입꼬리가 작게 올라갔다. 매번 그를 가져도 가시지 않는 갈증이 잠시나마 해소가 되었다. 잠시동안 잠든 주자서의 얼굴을 바라봤다. 은은한 달빛이 그의 몸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자면서 땀을 흘렸는지 두 뺨에 홍조가 올라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그의 얼굴을 가리지 않도록 했다. 온객행은 그를 안고 목욕을 시킬까 잠시 고민하다가, 주자서에게 입을 맞추고는 혼자 몸을 일으켰다.
얼마 후 온객행은 물에 젖은 따뜻한 수건을 가지고 그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의 몸을 닦기 시작했다.
이상한 꿈.
주자서는 넓은 들판 위에 홀로 서 있었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장소. 분명 이 곳에 와 본 적이 있었다는 걸 깨닫자 뭔가 가슴속이 울컥했다.
사방을 둘러보지만 온객행은 없었다. 주자서는 언제나 그와 함께 있기에 꿈에서조차 홀로 있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어디 있어?'
그를 찾기 위해 발을 떼자 몸이 바람처럼 가벼웠다. 갑자기 발 밑에서 바람이 일어 주자서가 입고 있는 옷을 흔들었다. 바람 속에서 젖은 흙냄새와 풀냄새, 생명의 냄새가 느껴진다. 바람은 작은 소용돌이처럼 일어나더니 주자서를 지났고, 그것이 하늘로 올라가 사라질 때는 힘을 더해 용오름처럼 솟았다.
땅과 하늘을 두드리는 소리.
그 바람을 맞으며 주자서는 들판 한복판에 우뚝 서 있었다.
발가락 끝에서부터 솟아나는 힘이 느껴진다. 심장의 고동소리가 점점 커졌다. 주자서는 숨을 헐떡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 곳에 자신을 부르는 무언가가 있다. 솟구치는 피가 그렇게 속삭였다. 몸에 걸쳐진 옷이 거추장스럽다.
몸은 땅에 묶여 속박의 굴레에 갇혀있지만 나는...나는...!
그 때 낯익은 기운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주자서는 그것이 온객행이라 생각해 뒤를 돌아봤지만 틀렸다.
그것은.
용이었다.
태양빛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금빛 용이 바람을 가르며 땅 위를 낮게 날아 주자서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주자서는 거쎈 바람 속에서 시야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거두며 날아오는 용을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몸처럼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에 주자서의 그림자가 비췄다.
용은 처음부터 바람 속에 서 있는 주자서에게 목적이 있는 듯 곧바로 그에게 날아왔다.
주자서는 제 곁으로 오는 용을 만져보고 싶어 손을 뻗었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빠르게 다가온 용은 갑자기 주자서의 다리 사이로 들어가 꼬리로 오른발을 감았다. 그러더니 입을 벌려 주자서의 발목을 깨물었다.
아!
발목이 뚫어지는 고통에 주자서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놀란 몸은 침상 위에서 튀어오르듯 벌떡 일어났고, 동시에 온객행도 눈을 떴다.
덮어진 이불을 걷는 주자서의 손이 정신이 없다. 당황해 자꾸 헛손질을 하는 주자서의 손을 온객행이 잡았다. 반쯤 꿈에 걸쳐져 있던 의식으로 흐릿하던 주자서의 시야에 그가 들어왔다.
"아슈, 왜 그래? 나쁜 꿈이라도 꿨어?"
주자서는 온객행의 손 안에서 제 손을 비틀어 빼고는 서둘러 이불을 걷어 자신의 발목을 살폈다. 발목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제서야 꿈인 것을 인식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온객행의 팔을 붙들었다.
"발이 왜? 저려? 아파?"
주자서가 발을 만지는 걸 본 온객행이 물으며 그의 발을 만졌다. 그러자 주자서가 고개를 저으며 온객행의 손을 끌어다 글을 썼다.
'...안 아파. 꿈을 꿔서 그래.'
"무슨 꿈을 꿨는데?"
주자서는 용에게 다리를 물리던 것을 떠올리자 다시 소름이 끼쳤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젓자 온객행은 그를 끌어다 무릎에 앉히고는 두 팔로 단단하게 안아줬다.
"그냥 꿈이야. 무서워할 필요 없어. 괜찮아."
내가 옆에 있잖아.
주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서늘한 향기가 주는 안도감이 무서운 기억을 날려줬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안고 다시 침상에 누워 그가 잠들 때까지 등을 쓸며 토닥였다. 하지만 주자서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생생했던 꿈이 자꾸만 떠올랐다. 주자서는 잠든 척을 하며 벽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얼마 후 아래 쪽 이불이 걷히더니 온객행이 그의 발을 만지는 것이 느껴졌다. 손가락이 피부를 스치며 꼼꼼하게 다리를 만져보더니 떠났다. 그리고는 이불을 끌어 목 끝까지 덮어주고는 옆에 누웠다.
그는 참으로 세심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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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꿈이 아니었나.
주자서는 발목에 돋은 단단한 금색 비늘 하나를 떼어내면서 생각했다. 비늘은 마치 제 살같아서, 떼어내면 고통이 밀려왔다. 붉은 피가 하얀 피부 위에 동백꽃처럼 번져 나왔다. 주자서는 입술을 깨물며 얼른 손수건으로 발목을 누르고 온객행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온객행은 등을 돌린 채 육과의 끈을 엮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그는 겨울 준비를 하느라 바빠졌다. 남은 꽃들과 약초들을 따서 햇볕에 말리고 음식과 나무들을 쪼개 저장해뒀다. 지붕 아래는 끈에 묶인 육과들이 주렴처럼 매달려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바빠도 주자서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경우가 없고, 늘 시야에 두기 때문에 온객행 몰래 무언가를 하기는 사실 불가능했다. 주자서는 그가 피냄새를 맡지 않도록 미리 주머니에 넣어둔 꽃을 꺼내 짓이겨 주변에 뿌렸다.
꽃은 마지막으로 강한 향을 내뿜으며 스러졌다.
발목에 비늘이 생기는 건 이번이 세 번째였다. 꿈을 꾸고 난 이후 어느 날 발목이 간지러웠고 비늘을 발견했다.
떼버리자 며칠 후 다시 생겨났다. 온객행에게 말할까 생각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그는 요즘 과할 정도로 주자서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딱히 일부러 말을 하는건 아니지만, 종종 그런 것들이 주자서에게는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확신이 든 건 얼마 전 밤에 생긴 일 때문이었다.
그 날 주자서는 자다가 목이 말라 눈이 떠졌다. 보통 주자서가 일어나면 온객행도 마치 잠이 든 적이 없다는 듯 눈을 떴지만, 이 날은 깊은 잠에 빠져 일어나질 못했다. 낮동안 혼자서 많은 일들을 했기 때문이었다. 주자서가 그를 돕고 싶어해도 온객행은 일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주자서의 자잘한 실수가 어느 정도 있었다는 건 인정한다. 누구나 처음에는 실수를 하는 법이지만, 몇 번이고 처음처럼 실수를 하는 주자서에게 온객행은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대하려고 했다. 결국 온객행은 두통이 오는지 머리를 짚으며 눈을 감았다. 참다못한 그는 집 안에서 적당한 화본들을 몇 개 골라오더니 주자서에게 얌전히 읽고 있으라며 안겨줬다.
주자서도 잘 하고 싶었지만 마음먹은 만큼 해내질 못하니 화가 났다.
그래서 보란듯이 얼굴을 최대한 구겨 인상을 쓰고는 그를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둘 사이엔 하루종일 냉랭한 기운이 흘렀다.
자신은 아무래도 손이 야무지지 못하니 그에게 방해만 될 뿐이었다. 주자서는 더이상 조르지 않고 그가 준 화본 속에서 글자를 찾아 띄엄띄엄 읽으며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몰래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주자서는 그를 안고 자던 온객행의 팔을 물리고 그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고양이처럼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떼면서 조용히 물을 마시고 침상에 돌아가려다 창가가 유독 밝은 것을 눈치챘다. 달빛이 쏟아지듯 집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렇게 크고 밝은 달을 본 적이 있던가. 주자서는 눈을 크게 뜨고 창가에 몸을 기대어 하늘을 쳐다봤다.
주자서가 읽었던 책 중에 달에 사는 토끼이야기가 있었다. 노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착한 토끼는 옥황상제가 달나라로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고 있다는 책을 읽었다.
온객행에게는 책이 많았는데 그 중에는 어린 아이들이 읽는 책도 꽤 있었다. 어째서 가지고 있는지 묻자 서적방사 주인이 물건 값이 부족하면 대신 아무 책이나 끼워 함께 값을 치뤘다고 했다.
주자서는 여러 책들 중에 토끼 이야기가 적힌 책을 가장 좋아했다.
정말 달에 사는 토끼가 있다면, 그렇다면 저 그림자가 토끼일까?
하얀 털이 복슬복슬한 귀여운 옥토끼.
만져보고 싶다.
주자서는 자기도 모르게 달을 향해 손을 쭈욱 뻗었다. 이러면 마치 달에 닿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달빛을 향해 손을 뻗은 것-
그것 뿐이었다.
그것 뿐이었는데, 어느 새 자신은 온객행의 품 안에 있었다. 뒤로 끌려가 속도를 이기지 못한 다리가 허공에 떴다. 나오지 못한 소리가 목구멍 근처에서 멈췄다. 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놀란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온객행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한 표정이었다. 등 뒤로 빠르게 뛰는 온객행의 심장이 느껴졌다. 굳어진 몸에서 생생하게 느껴지는 긴장은 주자서에게도 옮겨져, 자신이 보지 못한 위험한 무언가 있는건지 주변을 살피게 했다. 하지만 주자서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몸을 제 쪽으로 돌리고는 얼굴을 만지며 살폈다. 주자서의 눈 주위를 배회하는 손이 작게 떨렸다. 무언가 확인을 하듯 눈두덩이와 눈썹을 만지며 주자서의 시선을 자신에게 고정시켰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말했다.
"괜찮아...."
'응?'
"괜찮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어..."
그가 물기 젖은 목소리로 속삭이던 말의 뜻을 주자서는 알지 못했다. 그저 예전의 자신처럼 그가 나쁜 꿈을 꾼 것이라고 여겼다.
주자서는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온객행의 품에 기대어 여전히 뛰고 있는 심장소리를 들었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의 심장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 온객행이 그리했듯이 주자서는 팔을 들어 그의 등을 감싸고 부드럽게, 그렇게 한참을 토닥였다.
그 후로부터- 온객행은 마치 새끼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어미새라도 된 것처럼, 주자서를 시야에 두고 혼자서는 멀리가지 못하게 했다.
흉터는 금세 사라진다. 다시 비늘이 생긴다면 떼 버리면 그만이다. 이런 걸로 가뜩이나 바쁜 그를 걱정 시키고 싶지 않았다. 주자서는 손에 쥔 비늘을 멀리 숲 속으로 던져버리고 온객행에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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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목치는 눈 앞의 가무를 즐기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가 마시고 있는 술은 백가지 꽃으로 만든다는 백향옥로주로, 값도 값이지만 이런 시골에서 구할 수가 없는 귀한 술이었다.
춤을 추는 여인들은 도성에서 가장 유명한 기녀들로, 그들이 손가락을 하나 움직이면 수많은 남자들이 한숨을 짓고 그녀들의 뒤를 뒤따랐다.
그녀들의 춤은 봄바람처럼 부드러웠고 나비처럼 가벼웠다.
최고급 기루와 아름다운 기녀들 사이로 낯선 용모의 사내들이 있었다. 오랜 시간 햇빛에 탄 퍼석거리는 마른 피부와 못이 박힌 손과 발. 몸에 걸친 낡은 옷에서 나는 동물의 누린내가, 누가봐도 이 사내들은 이 곳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은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리고 앉아 주위를 살피다가 옆에 앉은 기녀들이 따라주는 술을 계속 받아먹고 조금은 풀어진 모습이 되었다.
춤을 추는 무희들은 마치 허공에 떠있는 것처럼 사람들 사이를 지나며 유혹하듯 춤을 줬다. 그 모습에 넋이 나간 얼굴로 보던 남자가 자신을 보며 웃고 있던 연목치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는 팔꿈치로 옆의 앉은 남자를 찔렀다.
"우리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
신이 나 박수를 치며 춤을 구경하고 있던 남자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왜? 난 이런 곳에 평생 있고 싶은데."
"....저 사람 무섭지 않아?"
"인심좋은 공자가 뭐가 무서워."
"그러니까 이상하잖아. 아무 댓가도 없이 우리한테 이런 걸 왜 해 줘."
"저 공자는 분명 한량일거야. 돈은 많고 쓸데가 없어 심심한거지."
그 말이 맞는 듯 했다. 분명 한가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더러운 사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리가 없다.
그들은 산행에서 돌아와 노점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잡은 짐승들을 팔고 돈을 어떻게 나눌지 이야기를 하다가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이번 산행에서 사냥물은 몸이 날쌘 이가 대부분 잡았기에 좀 더 쳐 줘야한다고 성질을 부리면서 시작됐다. 그러자 덩치 큰 남자가 나서 예전의 이야기를 꺼내며 그 때 공평하게 나눠도 자신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고 큰소리를 냈다.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다가 가만히 있던 두목이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치자 모두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두목은 들고있던 술잔을 거칠게 탁자에 내려놓았다. 탁주가 넘쳐흘러 상을 적셨다.
추용이 사라진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 놈은 원래 얍실한 놈이라 이쪽에 붙었다 저쪽에 붙었다하는 일을 밥먹듯이 했다. 저번 사냥에 다같이 나눌 돈이 남아있었지만 그 놈은 입을 싸악 닦고 올무와 덫도 내버린 채 사라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놈을 끼고 있었던 건 남다른 담력과 날렵한 몸놀림으로 사냥에 있었서는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배신을 때리다니. 제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다음에 만나면 당분간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두드려 패주리라.
“두목,피가.....”
아픈지도 몰랐던 두목이 손을 들어보자 검붉은 피가 베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피는 금세 멈췄다. 그 뿐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상처가 닫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서로가 서로를 쳐다봤다.
분명 그 산에서 내려온 후 다들 몸의 변화를 느꼈다.
뚱뚱하여 온몸에 버짐이 폈던 놈은 피부가 깨끗해졌고, 어떤 놈은 고질병이었던 기침병이 나았다.
이상했다. 산의 영험함을 말하면서 다들 떠올리는 건 한 사람이었다. 산에서 자신들에게 범해졌던 소년.
모두들 우물쭈물대다가 한 놈이 말을 시작하자 모두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애랑 그걸 하고 나서부터 진짜 안 아프기 시작했다니까. 너도 알잖아. 내가 맨날 가슴 통증 때문에 나무뿌리를 씹고 다녔던 거 말이야."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던 놈이 떠들어대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알지."
구석에 있던 남자가 바지를 걷으며 말했다.
"예전에 멧돼지에 박혀 찢어진 종아리의 흉터도 연해진거 같아. 니가 보기엔 어때?"
"그건 잘 모르겠다."
"아냐. 확실히 옅어졌다니까. 잘 보라고."
"그런데 요즘 들어 다시 아파. 걔가 진짜 그런 힘이 있는 거라면 다시 한번 가서 시험해 보는 것도 좋지 않아? 어때?"
기침병이 다시 도진 놈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눈 앞에 좆질에 흔들리던 주자서가 떠올랐다. 고통에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젓던 아이.
"걔 말야. 요괴가 아닐까? 애당초 사람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을리가 없잖아. 곱게 생긴 어린 애가 혼자 산 속에 있던 것도 이상하고. 잘못 걸렸다간 죽을 지도 몰라."
"요괴라도 그 놈을 다시 맛만 볼 수 있다면 하다가 죽어도 좋겠네."
뚱뚱한 놈이 히히거리고 웃으며 술을 들이킬 때였다.
"그 요괴는 어디있지? 나도 만나보고 싶은데."
남자들은 대화를 멈추고 자신들의 머리 위로 생긴 그림자의 주인을 올려다봤다.
그림자의 주인은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며 비단주머니를 열어 돈을 꺼내더니 그들이 한번도 가 본적이 없던 기루로 데려갔다.
"정말 이 술자리가 끝나면 돈을 줄까? 우리가 먹은 것만 해도 평생 벌어도 부족한 값을 할 것 같은데."
"약속은 약속이지! 난 그거 없었으면 안 왔다고!"
"저 공자의 품새를 보니 이런 돈은 돈도 아닐 것 같은데. 저 부채를 봐. 저런 접선에까지 보석이 박혀있어."
연목치가 손을 들어 가볍게 꺾자 무희들이 춤을 멈추고 열을 맞춰 방 밖으로 사라졌다.
방금까지 정신을 빼놓을 것 같이 울리던 음악소리가 사라지고 대신 기녀들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연목치가 술병을 들고 단 아래로 내려오자 남자들이 눈치를 보며 벌렸던 다리를 모아 앉았다.
"편하게 있게. 놀려고 온 자리인데 딱딱하게 있을 필요는 없네."
연목치가 가볍게 웃으며 두목에게 술병을 기울이자 두목은 두 손으로 술잔을 들어 받았다.
"아까 들었던 이야기 좀 풀어보게. 산에서 만났다는 요괴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던가?"
연목치는 남자들에게 차례로 술을 따랐다.
두목은 얼른 술잔을 비우고 입술에 묻은 술을 소매로 닦았다. 먼저 술의 향기에 놀랐고 가까이 다가온 연목치의 미모에 두 번 놀란 두목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아, 그게 진짜 요괴라는 말은 아니고 그냥 소...소년인데."
두목은 그 날의 일을 연목치에게 긴장된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객행자서
메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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