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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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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망기는 외상이 아문 후에도 내력이 흐트러진 상태라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 사실들도 위무선은 남희신이 전해주는 소식으로만 알았다.
  오늘도 남희신은 짬을 내어 위무선을 앉혀 놓고 금단을 다듬어 주고 있었다. 위무선의 금단은 여태 별다른 양상을 띠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흉시의 것이라 신경이 쓰인 남희신은 매일 주의를 기울였다.
  “이제 냉천에 들어가도 좋을 것 같은데. 말을 듣지 않는군요.”
  “냉천이요?”
  위무선이 돌아보며 반문했다. 남희신은 위무선을 되돌려 앉히고 단정히 가부좌를 틀도록 했다.
  “계편에 맞으면 영맥이 손상되지요. 냉천이 큰 도움이 된답니다.”
  그러자 위무선은 손을 풀고 아예 돌아앉아버렸다.
  “그런데 왜 안 들어간다는 거에요? 전에는 수련하러 잘만 가던데.”
  남희신은 한숨을 쉬었다. 이 제자는 금광요에게 버금갈 정도로 똑똑하지만 말을 안 듣고, 주의력도 아주 산만했다.
  “저도 모릅니다. 망기는 원체 고집이 세어서 어쩔 수가 없어요.”
  위무선은 이제 참는 것도 한계였다. 남망기와 재회하며 겪었던 갖가지 감정의 파동이 돌덩이처럼 응어리져서 그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남망기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만나야 했다. 만나서 남망기에게 말하고, 남망기가 자신에게 말하는 걸 듣지 못한다면 그만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해시가 넘어간 후 오랫동안 뜬 눈으로 누워 있던 위무선은 으슥한 밤새 소리를 몇 번 들은 다음 침상에서 일어났다.



  정실로 숨어든 위무선이 조용히 촛불을 당겼다.
  아른거리는 빛이 잠든 남망기의 얼굴을 비추었다.
  살갗의 상처가 아문 남망기는 바른 자세로 누워서 조용히 자고 있었다. 병상에서도 의복이 단정한 남망기가 예전과 달라 보이는 점이라면 너무 야위어서 얼굴에 그늘이 짙어 보인다는 것뿐이었다. 
  “남잠.”
  위무선이 손가락으로 살짝 남망기의 어깨를 건드리며 속삭였다.
  “남잠.”
  남망기가 천천히 눈을 뜨더니 옅은 눈동자가 올려다보았다. 위무선은 너무 기뻐서 가슴이 시큰거렸다.
  “...위영.”
  남망기 역시 속삭이듯 대답했다.
  이윽고 남망기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 앉는 것도 어려워하는 것을 본 위무선이 얼른 부축하며 말했다.
  “남잠, 너 냉천에 들어가. 내가 데려다 줄게.”
  “됐어.”
  “왜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거야? 낫고 싶지 않아?”
  “...”
  “너, 나를 만나지 않으려고 했지. 설마 내가 보기 싫어서 낫기 싫은 거야?”
  이 말에 남망기가 힘들게 고개를 들어 위무선을 노려보았다. 그렇지만 눈꺼풀이 떨려서 노려보는 것조차도 힘이 없었다. 위무선은 너무 속이 상했다.
  “흥, 관둬. 네가 쓸데없는 고집부리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위무선은 남망기의 팔을 잡아당겨 그대로 들쳐메고 일어섰다.
  남망기는 몇 번 밀어내려고 애를 쓰다가 힘을 다 소모해버렸는지 조용해졌다. 축 늘어진 몸인데도 충분히 무거운 것 같지 않아서 위무선은 또 언짢아졌다. 예전에 업었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냉천에 도착한 뒤 조심스레 남망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옷을 벗기려고 하자 그가 다시 손을 들어 막으며 인상을 썼다.
  “방으로 돌아가.”
  하긴 남이 손 대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인데, 옷을 벗기려드니 오죽할까. 
  위무선이 달래듯 말했다.
  “남잠, 그러지 말고.”
  “하지 마.”
  “남잠...”
  “그만둬!”
  마지막 힘을 다 짜낸 듯 휘두른 팔이 땅을 짚으며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화가 난 것 같아서 위무선은 얻어맞은 손을 다시 뻗을 수 없었다.
  “남잠, 미안해.”
  이 말에 남망기가 선뜻 고개를 들며 노려보았다. 
  위무선이 깊은 죄책감이 어린 눈빛으로 참회하듯 말했다.
  “내가 다 잘못했어. 내가 나빠.”
  “...”
  “화내지 마.”
  “...너한테 화 내는 거 아니야.”
  위무선은 남망기의 기세가 수그러드는 것을 보고 싱긋 웃으며 다시 그의 옷깃으로 손을 뻗었다. 
  움츠린 몸이 거부하지 못하면서도 움찔거리는 것을 보고 위무선이 말했다.
  “알았어, 나도 같이 벗을게. 그럼 되겠지? 냉천이 수련에 좋다고 했고, 나도 수련해야 되니까.”
  위무선은 남망기가 또 뭐라고 하기 전에 얼른 웃통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나서 남망기의 옷을 벗기기 시작하니 그는 이제 포기했는지 눈을 감고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남망기를 부축해서 냉천 안으로 발을 담그자 얼음같은 냉기가 파고들었다.
  위무선은 벌써부터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와 너무한다는 듯 내뱉았다.
  “아이고, 대체 이게 어떻게 도움이 된다는 거야!”
  “저기에 앉아.”
  남망기가 손가락을 들어 수면 아래로 투명하게 비치는 바위를 가리켰다.
  “단전까지 담그고. 운기하도록 해.”
  위무선은 조심스레 남망기를 바위에 앉혀 주고 자신도 앉았다. 
  가만히 앉아서 영력을 몇 바퀴 돌리고 나자 과연 추위가 한결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남망기는 단정하게 앉은 품이 오히려 침상에 있을 때보다도 편한 것 같았다.
  위무선은 금세 자세가 구부정해져서 손에 턱을 괴고는 남망기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남망기를 부축할 때 등에서 거친 흉터가 만져졌다. 또한 스스로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주술 사용자의 음습한 냄새가 풍겼다. 
  상대방이 강징이었다면 꽉 끌어안고 머리를 마구 헝클었을 것이다. 어쩌면 때려 주었을 지도 모른다. 그럼 강징도 화를 내면서 맞주먹질을 해댔겠지. 
  그렇지만 남망기와 그런 행위를 주고 받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깊은 마음은 대체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까.
  “남잠. 2년 내내 금단 있는 흉시를 찾아다녔어?”
  남망기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려고 음술을 배웠어?”
  계속 대답이 없었지만 그래도 위무선은 끝까지 물었다.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잠, 왜 이렇게까지 해?”
  남망기는 눈을 감은 채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철통같이 앉아 있기만 할 뿐이었다.
  위무선이 포옥 한숨을 쉬었다. 
  왜긴 왜야. 친구니까지. 무슨 다른 이유가 있을까. 저야말로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건지 몰랐다. 
  공연히 분위기만 어색하게 만든 것 같았다. 그것도 하필 옷까지 훌렁 벗은 상태로.
  ‘이런 민망한 얘긴 다른 때 할 걸 그랬나. 그렇지만 남잠이 날 안 만나줘서 그렇지 뭐.’
  조금 있으려니 몸이 도로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만 돌아갈까 하고 다리를 내리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들려왔다.
  깜짝 놀란 위무선은 곧장 물 속으로 미끄러지며 완전히 잠기고 말았다.
  “형님?”
  남망기가 고개를 돌려 보니 물가에 금광요가 서 있었다.
  “형장.”
  “아아. 망기? 너였구나.”
  “...”
  “혼자서 냉천에 올 수 있을만큼 몸이 나았다니 다행이구나. 그럼 난 이따가 오마.”
  “죄송합니다.”
  금광요는 두 개의 옷무더기에는 일부러 시선을 주지 않고 돌아섰다. 
  잠시 후, 기다려 보아도 위무선이 물 속에서 나오지 않자 남망기가 손을 뻗어 끄집어 내었다.
  “으윽!”
  위무선이 요란하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일어났다.
  “차, 차가워! 이, 이거, 머, 머리는 절대 담그, 담그면 안되. 는 구나!”
  남망기는 신기할 정도로 기운을 차린 것 같았다. 덜덜 떠는 위무선을 쳐다보더니 허리가 꼿꼿한 채로 흠뻑 젖은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위무선은 남망기의 손을 통해 따스한 영력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놀라서 뿌리쳤다.
  “뭐, 뭐하는 거야! 네, 네, 네가 그럴 때냐고!”
  “돌아가자.”
  남망기가 스스로 일어나더니 비틀거리면서도 물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냉천이 그렇게도 효과가 좋은가 하고 신기해하는 위무선의 눈에 남망기의 등에 난 흉터가 들어왔다.
  상처는 완전히 나아서 주변의 피부가 조금 붉은 빛을 띌 뿐이었으나, 계편의 흉한 모양이 그대로 찍힌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이 남았다. 
  죄책감에 어쩔 줄 몰라하던 위무선은 이내 물살을 헤치고 나와 재빨리 옷으로 남망기의 몸을 감싸 주었다.
  냉천의 효과로 절뚝거리나마 걸을 수 있게 된 남망기는 이후 위무선의 부축을 받아서 날마다 냉천에 몸을 담그었다. 
  그리고 다시 한 달이 지나자 멀쩡하게 나다닐 수 있을만큼 회복되었다.
  운심부지처 사람들은 예전처럼 길다란 말액과 흰 옷자락을 조용히 나부끼며 걷는 함광군을 볼 수 있었다. 




희신광요 망기무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