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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5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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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망기가 운심부지처에 닿았을 때는 완전히 어두워진 뒤였다. 
  연무장보다 조금 낮은 곳에 위치한 자제들의 숙소도 새까만 어둠에 덮혔지만 단 한 곳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금광요의 거처였다.
  불쑥 남망기가 들어서자 금광요도 놀랐지만, 옹기종기 쭈그리고 앉아 있던 어린 문하생들은 문자 그대로 혼비백산을 했다. 설마 함광군이 이 곳을 기습할 줄이야!
  소년들은 줄줄이 고개를 숙이고 나가며 내일이면 죽겠구나 하고 기가 팍 죽었다. 그러나 남망기는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금광요는 남망기가 진짜로 연화오에서 파탄을 내고 온 게 아닌가 싶어서 빤히 쳐다보았다.
  “형장, 부탁이 있습니다.”
  남망기는 소년들이 나가자마자 곧바로 말을 꺼냈다. 
  “갑자기 부탁이라고? 무슨 일이냐?”
  “온녕이 난릉 금씨 사람들에게 잡혀갔다고 들었습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십시오.”
  금광요는 어리둥절했다. 위무선을 만나라고 보냈더니 하루도 지나기 전에 들이닥쳐서 한다는 소리가 온녕이라고?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구나. 네가 왜 온녕에게 관심을 갖지?”
  남망기는 가만히 눈을 깔고 있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망기...”
  무겁게 양 손을 맞잡은 남망기가 머리를 숙였다.
  “형장, 부탁드립니다. 알려주십시오. 망기가 추후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남망기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금광요가 재미있다는 듯 미소짓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이윽고 그는 짐승이 굴에 새끼를 몰아넣는 것처럼 웃음을 거두고 부드럽게 말했다.
  “망기, 이건 위공자와 관련된 일이냐?”
  “...예.”
  “알았다. 가르쳐 주마. 하지만 먼저 무슨 일인지 말해주어야 한다.”
  금광요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확고했다. 남망기는 그를 믿어도 될 지 알 수 없었으나 이미 그에게 청을 했을 때부터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는 온정이 나타난 순간부터,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위무선이 위험한 짓을 저지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남망기는 무릎을 꿇은 채로 온정이 운몽으로 찾아온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금광요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위공자에게 천자소를 갖다주었느냐?”
  남망기는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좋아했지?”
  “...예.”
  금광요는 희미하게 웃었다. 
  온녕이 어디 있는지는 금린대로 돌아가서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얼마 전 금린대로 돌아갔을 때 금자훈이 온녕을 포함한 혈족들을 잡아들인 일을 자랑했던 것이다. 그가 온가 사람들을 잡을 때마다 어디로 데려가는지도 알고 있었다.
  금광요는 붓을 들어 짤막한 글을 남긴 다음 문진으로 눌러 놓았다. 
  “그럼 가볼까.”



  한편.
  남망기가 떠나 있는 시간 동안 위무선은 온정을 달래어 음식을 먹이며 쉬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렇지만 온정은 피가 마를 정도로 초조해하며 눈만 떼면 어디론가 달려나갈 것처럼 불안해할 뿐이었다.
  초조하긴 위무선도 마찬가지였다.
  남망기가 금광요에게 물어보겠다고 했지만, 금광요가 순순히 알려 줄까? 알려주지 않는다고 하면 남망기가 그를 다그칠 수 있을까. 이러고 있으면 시간만 잡아먹을 텐데. 최악의 경우에는 금광요가 이 사실을 알고 온녕을 빼돌릴 수도 있었다. 위무선은 내일 아침까지 남망기가 돌아오지 않으면 바로 난릉으로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밤이 깊어갈 무렵 온정은 너무 지친 탓인지 기절하듯 눈을 감았다. 위무선은 어렵사리 아이를 재운 부모 같은 심정으로 그녀의 곁을 지켰다. 그 역시 온녕이 염려되어 걱정이 태산같았다.
  갑자기 발소리가 들리더니 두 남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앞선 사람은 남망기였다. 위무선은 남망기의 뒤를 따라 들어온 사람이 백의 차림이었기 때문에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염방존?”
  금광요에게 물어보겠다더니, 아예 그를 데려왔다고? 그리고 그는 왜 금포를 입고 있지 않는 것이지?
  “위공자.”
  금광요가 예의바르게 인사를 한 다음 죽은 듯 침상에 기대어 있는 온정을 바라보았다. 묘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라도 했는지 온정이 살며시 눈을 떴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금광요와 온정은 기묘한 관계에 있었다. 금광요가 온씨를 안에서부터 좀먹어 무너뜨린 사실로 보면 원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온정은 내심으로 온가의 횡포를 달가워하지는 않았었다. 그래도 온씨가 망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렇게 온녕이 잡혀가는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금광요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상냥한 말투로 말했다. 
  “온정, 온녕은 궁기도에 있어. 내가 도와 줄게.”
  그는 이제 와서야 온녕이 어디 있는지를 털어놓은 것이다. 남망기는 금광요가 따라오는 것이 거북했지만 그가 모른체하며 온녕이 있는 곳을 먼저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금광요가 도와주겠다는 말에 그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 그렇지만 온정은 금방 금광요에게 가졌던 복잡한 감정마저 잊고 쓰러질 듯 다가서며 애타게 외쳤다. 
  “정말이야? 아녕을 구해주겠다는 거야?”
  금광요는 운몽으로 날아오는 시간 동안 꼼꼼하게 생각해 보았고, 결단도 내렸다.
  남망기가 자신을 찾아올만큼 대담한 마음을 먹은 건 의외였고, 조금은 덫에 빠진 듯한 기분도 들었다. 이런 사건에 휘말릴 줄도, 남망기가 이렇게 곤란한 일에 손을 뻗을 정도로 위무선을 위하는 줄도 몰랐다. 이제 와서 모른 체하기는 어렵게 되었고, 아무래도 일이 커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 상책일 것 같았다. 아무튼 남희신을 끌어들이는 건 좋지 않겠다고 생각한 금광요는 조용히 운심부지처를 빠져나왔다.
  그러나 우호적인 결단을 내린 금광요를 바라보는 위무선의 시선은 냉랭했다. 그는 온정처럼 머리가 혼란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의문을 제기했다.
  “염방존. 지금 우리가 뭘 하려는지 아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금광요가 직접 가서 온가 사람들을 풀어주라고 명령한다면 간단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바로 금씨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온녕이 궁기도에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로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도와주겠다고요? 어째서지요?”
  금광요가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야 망기가 도와달라고 했기 때문이죠.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지 몰라 걱정도 됩니다.”
  남망기는 단지 온녕이 어디 있는지를 알려달라고 했을 뿐이었지만 굳이 나서서 정정하지는 않았다. 금광요의 유순하면서도 동요 없는 태도는 언제나 상대방을 안심시키고, 의존하고 싶은 마음마저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었다.
  “그럼 당신이 온녕을 풀어줄 겁니까?”
  금광요는 한숨을 쉬었다.
  “궁기도는 금자훈의 관할입니다. 부끄럽지만 그가 내게 감정이 좋지 않아 감독관들이 순순히 말을 듣지 않을 겁니다.”
  위무선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위공자야말로 어떻게 할 계획인데요?”
  “간단합니다. 가서 온녕을 찾은 다음, 데려오는 거죠.”
  위무선은 말하다가 조바심이 나는지 인상을 썼다.
  “당신이 온녕을 내놓으라고 하면 그들이 순순히 놓아준단 말이지요?”
  금광요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담담한 태도였다.
  위무선이 잇새로 불길한 숨을 내쉬며 말을 끊었다.
  금광요가 다시 물었다.
  “확실하게 해 두어야겠습니다. 궁기도에 가서 온녕만 데려오면 되는 겁니까?”
  그때 그때 장애가 생기면 쳐낼 요량만 하고 있던 위무선은 그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물론 온녕을 구하는 게 주된 목적이지만, 거기엔 온녕의 친지들도 함께 잡혀 있을 테니 하다보면 결국 그 곳을 다 털어버리고 말 것 같았다.
  이에 위무선은 금광요를 적으로 돌릴 각오까지 하고 단호하게 내뱉았다.
  “아니오. 전부 다 구해야겠습니다.”
  금광요는 한숨을 쉬며 답답하다는 듯 몸을 돌렸다. 위무선은 싸늘한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노려보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온정은 불안한 눈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을 쳐다보았고, 남망기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돌아선 금광요는, 그래도 적으로 돌아선 것 같지는 않았다.
  “둘러말해봐야 소용 없겠지요. 위공자, 당신은 사람을 해쳐서라도 그들을 구하겠다는 겁니까?”
  위무선은 여전히 금광요를 노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금광요는 그의 적의마저 흘려버리며 간곡하게 말했다.
  “위공자, 인간은 원한이 생기면 어떻게든 되돌려주려고 하는 법입니다. 당신이 사람을 해치고 온녕들을 구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쫓아와서 두 배, 세 배로 갚으려 할 겁니다. 게다가 당신이 지키려는 사람들이 온씨이기 때문에 온 세상을 적으로 돌리게 될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위공자, 당신은 사람을 지키려는 거잖습니까. 그럼 최대한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지요.”
  위무선이 답답해하며 발을 굴렀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명심할 것은 누구의 목숨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조용히 빼돌리는 수밖엔 없겠지요. ...감독관들을 죄다 기절시킨 다음 도망친다거나.”
  금광요는 뒷말에 조금 자신이 없었지만 남망기가 나서며 힘을 실었다.
  “그렇게 해.”
  위무선은 허리에 손을 얹고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그러자 금광요가 재빨리 덧붙였다.
  “그래요, 그게 좋겠습니다. 온가 사람들만 감쪽같이 사라지면, 보복을 할 명분이 서지 않으니 한동안 찾아보다 포기할 겁니다. 그렇게 합시다.”
  위무선은 영 탐탁치가 않았으나 곧바로 되받아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금광요는 위무선이 망설이는 틈을 타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재촉했다.
  “그럼 옷부터 갈아입어야겠군요. 자, 어서. 서두릅시다!”
  잠입을 하기로 한 이상 흰 의복은 너무 눈에 띈다. 남망기, 금광요 두 사람은 주인을 불러 하인의 옷을 두 벌 가져오게 하여 갈아입었다.
  네 사람이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한밤중이 되어 거리가 썰렁했다. 
  이제부터 당연히 어검을 하여 궁기도로 날아가려는데, 위무선에게 패검이 없었다. 
  남망기가 말했다.
  “바로 옆이잖아. 가서 가져와.”
  위무선은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흔들다가 누가 뭐라할 겨를도 없이 빠르게 말을 쏟아내었다.
  “안돼, 안돼! 이 시간에 들어갔다간, 강징 녀석이 귀신처럼 알고 쫓아나와서 덜미를 잡는다고. 걔가 얼마나 사람 피를 말리는 줄 알아? 게다가 그 녀석이 깨면 사저도 깨고, 거기 붙들리면 죽도 밥도 안 돼. 그러니 남잠, 네가 날 좀 데리고 가야겠어!”
  위무선은 남망기에게 불쑥 팔을 벌리며 마구 밀어붙였다. 다들 어이가 없었지만 여기서 실랑이를 할 때가 아니었다. 
  금광요가 양해를 구하고 온정의 허리를 휘감아 오르자 위무선도 냉큼 남망기의 옆구리에 달라붙었다.
  “자, 가자!”
  남망기는 위무선이 멋대로 매달리는 바람에 휘청했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진을 뽑았다.
  
  

  궁기도의 감독관들은 밤늦은 시간까지 포로들을 괴롭히며 공사를 재촉했다. 하지만 위무선 일행이 도착했을 때는 그 시각도 훌쩍 넘어 보초 외에는 깨어 있는 이가 없었다. 
  주변은 척박한 땅을 다 파뒤집어놔서 사방에 돌덩어리와 먼지 일색이었다. 버석한 토지가 지평선까지 이어져 더욱 춥고 을씨년스러웠다.
  입구에서 보초를 발견한 네 사람은 감시의 눈을 피해 조금 떨어진 숲속으로 내려갔다. 
  “위공자, 그 귀신 피리로 산 사람들을 전부 잠재운다거나 할 수는 없어요?”
  금광요가 묻자 위무선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사람들은 내가 무슨 신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죠.”
  “그래도 무슨 방법이 있겠죠? 감독관들을 꼼짝 못하게 해야 할텐데. 그래도 보초를 제외하곤 다 잠든 모양이니 어렵진 않을 겁니다.”
  “일단은 한 번 돌아봐야겠어요. 온녕이 어디 있는지부터 알아야 하니까.”
  남망기는 위무선의 술법에 대해 맘편하게 말을 주고받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옆으로 비켜선 채 온정을 부축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공사장의 포로들은 깨어 있는 시간 내내 시달렸기 때문에 밤중에 돌아다닐 여력이 없었다. 지키고 선 보초도 단 둘뿐으로 그나마 한 명은 벽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는 형편이었다. 초소 안의 감독관들 역시 하나도 빠짐없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위무선이 빙의된 종이 인형이 포로들의 천막으로 이동했다. 온가 사람들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대부분이 곤히 자고 있었다. 한 명의 노인이 깨어 있긴 했으나 멍하니 앉아서 꼼짝도 않는 것이 꼭 시체같았다. 위무선은 온녕이 있는지 살피려고 했지만 너무 어두웠다. 그래도 남녀로 나누고 보니 숫자가 많지는 않았다.
  작은 인형의 몸으로 열심히 찾아 보았지만 아무래도 천막 안에는 온녕이 없는 것 같았다.
  밖에 나와 주위를 둘러 보니 천막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감옥소처럼 생긴 작은 건물이 있었다. 종이 인형이 그 쪽으로 쪼르르 날아갔다.
  과연 문에는 밖에서 걸쇠가 걸려서 누군가를 가두어 둔 것처럼 보였다. 문 틈을 통해 들어가자 방 한 칸만한 좁은 곳에 몇 명의 사람들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거기서 위무선은 겨우 온녕을 발견했다.
  높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이 온녕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었다. 드러난 얼굴이나 손이 상처투성이였고 눈을 꼭 감고 있었지만 다행히 살아있었다.
  종이 인형은 재빨리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한편으로 위무선이 진지를 살펴보는 동안 금광요는 기묘한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분명 수제자의 범주에 속하는 금광요는 골아픈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타인의 영력을 읽는 수련을 그만두어 버렸지만, 이미 영력을 감지하는 능력이 상당한 수준이었다.
  조금 전 위무선이 종이 인형에 주문을 채우는 도중에 눈이 어두워 그랬는지 비틀거렸다. 남망기가 움찔하고 움직였지만 그를 잡아준 사람은 바로 곁에 서 있던 금광요였다. 
  아주 잠깐 위무선의 팔을 잡았을 뿐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사람의 몸은 긴장하고 힘을 줄 때마다 근육이 움직이고, 이 때 수선인들의 경우 희미한 영력을 끼치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어린 자제들이 장난을 치다가 부딪혀 오며 수도 없이 느꼈던 익숙한 파동이, 그로부터는 전연 느껴지지 않았다.  
  머리회전이 빠른 금광요는 자신이 착각을 했는지 의심하기도 전에 언젠가부터 위무선이 패검을 들고 다니지 않아서 욕을 먹고, 갑자기 마도로 빠져버린 일을 상기했다. 또한 그는 끝까지 뻗대며 어검하는 것을 피하기도 했다. 
  짙은 의혹에, 더 오래된 의문 하나가 겹쳐졌다.
  그는 기산 온씨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온축류가 강징의 금단을 망가뜨린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징은 멀쩡하게 패검을 휘두르고 다니기 시작했다. 모두들 기이하게 생각했지만 아무도 답을 알지 못했다. 
  강징의 금단이 되살아났고, 위무선은 금단이 없어졌다.
  ......그렇다면 금단을 옮기는 방법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온녕을 찾았다고 하니 온정은 흥분을 해서 울다 웃다 했다. 
  금광요와 남망기는 초소로 몰래 다가가 보초 둘을 제압했고 위무선이 부적을 붙여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초소 안으로 들어간 위무선은 자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나하나 부적을 날리기 시작했다. 마침 자기 전에 술이라도 마셨는지 초소 안은 체취가 섞인 악취로 가득했다. 한두 번 깨어나려던 이가 있었지만 부적을 붙이자 이내 조용히 쓰러지고 말았다. 
  그 후에는 포로들을 두들겨 깨우고 온녕을 구출했다. 
  온정이 비명같은 환성을 지르며 온녕에게 달려들자 그가 희미하게 눈을 떴다. 열이 끓고 상처가 많았지만 목숨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위공자...”
  온녕이 위무선에게 안기다시피 부축을 받아 밖으로 나가 보니 잠에서 깬 사람들이 도망갈 준비를 하고 말을 끌어오느라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어떻게...”
  온녕은 정신이 가물가물했지만 위무선이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을 구해내려 한다는 것을 알아보고 조그맣게 말했다. 
  “이... 이러셔도 괜찮을까요?”
  이런 상황에서도 온녕이 소심하게 상대방의 안위를 살피는 것을 보고 위무선이 버럭 화를 냈다.
  “괜찮지 않으면? 너는 어떻게 강징을 구해 주고, 숙부님과 우부인의 시신을 돌려 주었지? 내가 너만 못하단 말이야?”
  남망기가 난리통을 뚫고 튼튼한 말을 끌고 오자 위무선은 온녕을 그에게 맡기고 자신은 온정을 데리고 말에 올랐다. 온정은 불안한지 온녕을 향해 팔을 뻗었지만 위무선이 흥분해서 단호한 태도를 취하자 얌전해졌다.
  사람의 수에 비해 말의 수가 부족했으나 말은 건장하고 사람은 말라빠져 있었기 때문에 두 명, 세 명씩 타니 그럭저럭 정리가 되었다. 
  당연한 듯 그들과 함께 말에 오른 금광요가 물었다.
  “위공자, 어디로 갈 것인지 생각해 둔 데라도 있나요?”
  그러자 위무선이 확신에 찬 말투로 대답했다.
  “난장강으로 갈 겁니다.”
  “뭐라고?”
  이제껏 가만히 있던 남망기가 놀라서 반문했다.
  “난장강이라니 무슨 뜻이지? 산 사람은 그 곳에서 버틸 수 없어.”
  “그럼 난 어떻게 살아 나왔을까? 걱정 말고 따라와.”
  “어떻게 하려고?”
  “거기 가면 흉시를 수백, 수천 구라도 불러낼 수 있어. 그러면 난릉 금씨 사람들이 얼마나 쫓아오든 들어오지 못해. 염방존의 말씀대로 원한이 없으니 조금 난리를 피우다 돌아가겠지.”
  “그럴 듯한 얘기군요.”
  뜻밖에도 금광요가 동의했다. 남망기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들을 데리고 달리 갈 만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해가 뜰 때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구출한 사람들의 수는 50여명, 그 중에서 갈 데가 있다는 십여 명이 떠나갔고, 남은 사람들을 이끌고 난장강으로 향했다.




희신광요 망기무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