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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4 19:35
(1) (2)
금광요가 난릉에 다녀오고 조금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남희신은 또 심기가 불편해진 상태였다. 금광요로 인한 속상함도 아직 더께가 남았는데, 이번에는 친동생인 남망기였다.
요즘 남망기는 아주 미묘한 실수를 하거나,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지만 멍하니 있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남희신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수학시절부터 동생은 별스럽게 위무선에게 관심이 많았다.
남희신은 그가 어려서부터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전생에서 무슨 큰 상처라도 입은 듯 외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숙부가 노발대발하는 위무선이라도, 아니 오히려 그런 위무선이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은 상당히 인연이 있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정이라도 들어야 할 텐데, 이 둘은 아무리 만나고 헤어져도 물과 기름처럼 미끌어질 뿐이었다.
특히 위무선이 사도에 빠진 후 남망기가 그를 질타하는 일이 잦아졌고, 온가가 망한 후에는 마주치는 일도 거의 없게 되었다.
난릉 금씨에서 개최한 백봉산 사냥대회를 마지막으로 남망기가 운심부지처에 틀어박히며 두 사람의 왕래는 완전히 끊어진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남망기의 마음 속 갈등은 더 심해져 가는 듯했다. 남희신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도 위무선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오늘도 그는 남망기의 고금 타는 소리가 한창 감정을 타던 도중에 끊겨버리는 것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그저 한 번 찾아가 보면 될 일인데, 너무 주변머리 없이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금광요는 남희신이 느끼는 것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 곳에 오기 전부터 남망기가 위무선을 쫓는 시선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남망기가 언제까지 운심부지처에 죽치고 앉은 채 버틸 것인지 사뭇 궁금한 중이었다.
금광요는 언제나 살아남기 힘든 곳에 자신을 내던진 뒤, 주변을 자신에 맞추고, 자신을 주변에 맞추는 공작에 익숙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이 곳에 온 후 자신의 신변이란 운심부지처를 감싼 안개처럼 둥실둥실 떠서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것이 그는 오히려 불안했고, 다소는 심심하기도 했다. 꼭 남망기의 일이 아니라도 좋지만 뭐가 되었든 스스로의 힘을 행사하고 확인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수련에 매진할 수 있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너무 열심히 파고들다가 오히려 망칠 뻔하자 남희신은 금광요의 수련 시간을 하루 한 시진으로 제한해 버렸다. 그래서 너무 한가해진 바람에 남희신을 도와 고서를 베끼는 지독하게 재미없는 일까지 했다.
그렇게 남희신의 곁을 지키는 시간이 늘다 보니 그가 보는 것을 함께 보게 되었다.
남희신은 도리가 없어 속앓이만 하는 것 같았다.
그가 남망기에게 묻지 않는 것처럼, 금광요도 남희신에게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보고만 있지도 않았다.
어느 날 오후 늦게 일정이 끝난 아이들은 식당 밖에 모여 금광요에게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그 옆에는 남희신도 있었다.
그 때 마침 남망기가 지나갔다.
남망기는 문하생들이 금광요와 어울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지적할 부분이 한둘이 아니라 아예 외면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남희신과의 관계 때문에 모르는 체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렇듯 허술한 남망기는 역시 정상이 아니었다.
금광요는 졸라대는 아이들에게 건성으로 응수하며 남망기를 곁눈질했다.
이맘때쯤이면 식당 벽에 붙은 의자에 앉아서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볼 때가 많았다.
조금 기다려 보았더니 과연 남망기가 식당 쪽으로 가서 앉는 것이 보였다. 그가 금방 일어나지 않는 것을 확인한 금광요는 못 이긴 듯 입을 열었다.
“예전에 내가 알았던 어떤 남자의 이야기란다. 그 남자는 거지였지.”
순진한 아이들은 금광요가 왜 거리의 거지를 알고 있는지는 궁금해 하지도 않고 잔뜩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아마 이름이 원경이라고 했을 거다.”
남망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들려도 듣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금광요는 물에 미끼를 던지듯 계속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남망기는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전에 일어나서 저 쪽으로 가 버렸다.
실망스러웠지만 애초에 큰 기대를 건 것도 아니어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남희신도 진지하게 듣고 있으니 적당히 멈출 수는 없었다.
금광요는 말하는 재주로 절반 이상의 공을 세웠대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이야기 솜씨도 청자의 감정을 마음대로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능란했다.
잠시 후에는 아이고 어른이고, 금광요 본인조차도 당초의 목적을 잊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뜻밖에도 다시 돌아오는 남망기가 보였다.
“그런데 그 여자가 뜻밖에도 사술을 사용할 줄 알았던 것이지.”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려던 남망기가 우뚝 멈춘 것을, 금광요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제는 아이들 뿐 아니라 일하던 하인들까지 멈추어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절정에 달한 이야기의 급박한 분위기가 주변의 공기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고요한 가운데 담담하게 울리는 금광요의 목소리가 건조하게 느껴지는 것이 오히려 긴장감을 더했다.
“30년이나 함께 살았으면서도 자기 부인이 그런 줄은 몰랐던 거지. 그래, 음술은 사람의 마음 속 깊은 어두운 부분을 근질거리게 만들거든. 그렇지만 시골 사람이 그런 일을 알았을까. 그저 성격이 좀 거칠어졌나 했던 것이지.”
저녁 식후의 시간대에 식당 근처가 이렇게 조용하긴 드문 일이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말을 하는 금광요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남망기도 멀찍이 선 채,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듣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 그의 칼이 꿰뚫어버린 건 바로 그의 부인의 몸뚱이였어. 그 때 목걸이가 잘라져서 땅에 떨어졌는데, 괴상하게 바작거리는 소리가 났지.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한 목걸이였으니까. 그 소리를 듣고 남편은 그만 머리칼이 곤두서는 것 같았어.
입가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돌아보는 귀신같은 얼굴이 자기 부인인 걸 확인하고 남편은 경악을 했지. 그뿐만 아니라 다리에 힘이 풀려서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아버렸어.
‘여보’.”
으스스하고 긴박감이 넘치는 대목에, 평소 금속성의 목소리를 내는 금광요가 간드러지는 여자 목소리를 흉내내자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한 사람들이야말로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자제들 중 한 명이 못 참겠다는 듯 팔을 벅벅 긁었다.
금광요가 소름끼치는 듯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 정말 애를 썼어요. 그런데 어떻게도 할 수가 없었어요. 여보.’”
금광요는 좌중의 혼을 쏙 빼놓는 와중에도 남망기를 살펴보았다. 남망기는 처음 멈춰섰던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새파랗게 날이 선 눈빛이 노을에 반사되어 번쩍였다.
“‘제가 힘들다고 말했잖아요. 왜 들어주지 않았나요. 왜 이렇게...’
그녀는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피칠갑이 된 손을 내밀었단다.
‘또 나갈 건가요? 또 바다로 나갈 거에요? 나를 이 세상에 혼자 남겨 두고?’
남편은 너무 심한 충격을 받아서 제정신이 아니었어. 그러니 벌레처럼 뒤로 기어서 도망친 걸 탓할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그가 나에게 말했단다. 그 때 그녀를 안아주지 못한 게 너무 후회가 되어서 미칠 것 같다고 말이야. 밤이면 밤마다 피투성이가 된 부인이 꿈에 나온다고 했지.”
이야기의 끝은 다소 싱거운 느낌이었지만, 그 사실을 사람들이 느낄 새도 없이 금광요가 자세를 바꾸며 아이들에게 몸을 숙였다.
“너희들 꼭 기억해 두거라.”
아직 끝나지 않았나, 하고 기대하는 올망졸망한 눈빛들을 향해 금광요가 똑똑히 말했다.
“그가 바보라는 걸 기억해 두란 말이다.”
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매정한 말에 어리둥절해했다. 이내 금광요가 가볍게 웃었다.
“그가 정 후회하려면 수십년간 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걸 후회해야지. 죽기 직전에 한 번 안아주지 못한 걸 후회하면 뭐하겠느냐?”
아이들이 하나 둘씩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역시 어린애들에 불과한지라 무섭고 재미있는 부분을 제외하면 썩 마음에 와 닿진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니?”
그래도 알듯 말듯하여 끄덕끄덕 하며 대답은 잘도 하는데.
그러는 동안 남망기가 밖으로 나가려던 방향을 바꾸어 정실로 되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것 참...”
금광요가 돌아보니 남희신이 꿈에서 깨어난 듯 한숨을 쉬고 있었다. 어지간히 달변이어서 빠져든 그는 애들에게 하기에는 요사한 이야기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저녁 식사 후 금광요와 남희신은 종종 산책을 나가곤 했다. 그리고 계곡이나 불에 탄 원림을 통과한 끄트머리에서 먼 산을 바라보았다.
잠시 동안 안개 낀 풍경을 응시하던 남희신이 말했다.
“네 이야기 때문에 가슴이 먹먹하구나. 그래, 그 사람은 결국 어떻게 되었느냐?”
기다려도 답이 없어 돌아보니, 금광요가 입을 다문 채로 웃음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남희신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그는 이내 후 하고 떨리는 숨을 뿜으며 웃음을 털어냈다.
“왜 웃는 거냐?”
“형님. 다 제가 지어낸 얘기에요. 형님까지 속아 넘어가시다니요.”
“뭐라고?”
어이없어하는 남희신을 보고 금광요는 또 입을 꾹 다문 채 웃음 소리를 삼켰다.
남희신은 한참이 걸려서 진실을 받아들이고 난 다음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니, 그럼 그렇다고 할 것이지. 굳이 아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거짓말을 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느냐?”
“그야,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해야 망기가 충격을 받을 게 아닙니까? 어지간해서 행동에 나설 위인인가요.”
그제서야 남희신은 금광요가 남망기를 부추기기 위해 사술이니 뭐니를 섞어 거짓 이야기를 한 사실을 알았다.
“아요, 너는... 대체 어떻게 안 것이냐?”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간단하게 잘라 말하는 금광요가 남희신은 너무도 신기했다. 언제까지 자신을 놀라게 할 것인지, 거듭 감탄하게 된다.
결과야 어찌됐든 하려고 마음먹었던 일을 끝내고 속이 시원해진 금광요는 계속해서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러는 얼굴이 묘하게 어려 보이는데다 자신이 못한 일을 대신 해주었다는 고마움에 남희신은 자칫 그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일이 잘못 되어서 저를 원망하진 말아야 할 텐데요. 그러니 제가 농간을 부린 것은 절대 비밀입니다, 형님.”
“잘못 되다니?”
“저 둘은 만나기만 하면 싸운다면서요. 혹여 운몽까지 가서 싸우고 돌아오면 어떻게 합니까.”
아직 남망기가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만나서 싸울지도 모른다는 얘기만은 그럴싸했으므로 남희신은 또 한숨이 나왔다.
“저 아이는, 하필...”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한 남희신이 고개만 저어도 금광요는 이해하고 침묵으로 동조했다.
다음 날.
미심쩍어하는 두 사람의 생각과 다르게 남망기는 당장에 고소를 떠났다.
남희신은 그가 운몽에 간다는 말에 잔잔하게 웃으며 심기를 건드릴 만한 말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내심, 거기까지 가서 싸우면 어쩌느냐는 금광요의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금광요는 이번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남희신이 운심부지처 안에서 배웅한 뒤 산을 내려가는 남망기의 뒤를 쫓아가서 불쑥 앞을 막아섰다.
“잠깐 나 좀 보자, 망기!”
남망기가 멈춰서자 금광요는 태연하게 그의 손에 든 물건을 낚아채었다.
“뭘 가져가는 거냐?”
남망기가 챙긴 물건이니 분명 도움 안 되는 물건이겠거니, 싶었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금광요가 꾸러미를 헤쳐 보니 민간에선 귀하지만 남가에서는 밥상에 올라 입맛을 떨어뜨리는 귀한 약초로 가득했다.
금광요는 단호하게 그것을 등 뒤로 숨기며 돌려주지 않았다.
“형장.”
남망기가 짧게 질책하며 손을 내미는 것을 무시하고, 금광요가 말했다.
“이런 건 그만 두고, 성내에 들러서 천자소나 사 가거라.”
“?”
“회상이 알려 줬는데, 위무선은 술 중에 천자소라면 사족을 못 쓴다더라.”
천자소 때문에 첫만남부터 싸워댔는데 남망기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고소 남씨 사람이 술을 선물로 들고 가다니.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남망기가 가만히 서서 자신이 뒤로 숨긴 손만 바라보고 있자 금광요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너 말이다... 위공자처럼 맵고 짠 걸 좋아하는 미식가가 이런 걸 들고 가면 반겨줄 것 같으냐?”
아까부터 금광요의 말투는 남망기의 속을 다 알고 있다는 느낌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위무선이 좋아하니 싫어하니 하는 얘기를 남망기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이제껏 그의 마음을 눈치챈 사람은 남희신 뿐이었기에, 누군가가 이 일에 훈수를 두는 건 처음이라서였다.
“너더러 마시라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다른 가문의 사람에게 건네주는 것이고, 마시는 것도 그일 텐데.”
너무도 무료하여 산책을 한답시고 규훈석 앞을 왔다갔다 하다가 가규를 몽땅 외워버린 금광요가 자신 있게 하는 말이었다. 실제로 가규가 지붕으로 이어도 될만큼 방대한 양이라 해도, 거기에 술을 사서 남에게 주는 것도 안 된다는 항목은 존재하지 않았다.
금광요는 절대로 손에 든 것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듯 뒷걸음질을 치며 마지막으로 못을 박았다.
“꼭 내가 일러준 대로 하거라. 누군가의 마음에 들려면 가끔은 그가 좋아하는 일도 해야지. 그게 네 기준에 맞지 않는 일이라 해도 말이다!”
희신광요 망기무선
금광요가 난릉에 다녀오고 조금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남희신은 또 심기가 불편해진 상태였다. 금광요로 인한 속상함도 아직 더께가 남았는데, 이번에는 친동생인 남망기였다.
요즘 남망기는 아주 미묘한 실수를 하거나,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지만 멍하니 있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남희신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수학시절부터 동생은 별스럽게 위무선에게 관심이 많았다.
남희신은 그가 어려서부터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전생에서 무슨 큰 상처라도 입은 듯 외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숙부가 노발대발하는 위무선이라도, 아니 오히려 그런 위무선이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은 상당히 인연이 있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정이라도 들어야 할 텐데, 이 둘은 아무리 만나고 헤어져도 물과 기름처럼 미끌어질 뿐이었다.
특히 위무선이 사도에 빠진 후 남망기가 그를 질타하는 일이 잦아졌고, 온가가 망한 후에는 마주치는 일도 거의 없게 되었다.
난릉 금씨에서 개최한 백봉산 사냥대회를 마지막으로 남망기가 운심부지처에 틀어박히며 두 사람의 왕래는 완전히 끊어진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남망기의 마음 속 갈등은 더 심해져 가는 듯했다. 남희신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도 위무선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오늘도 그는 남망기의 고금 타는 소리가 한창 감정을 타던 도중에 끊겨버리는 것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그저 한 번 찾아가 보면 될 일인데, 너무 주변머리 없이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금광요는 남희신이 느끼는 것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 곳에 오기 전부터 남망기가 위무선을 쫓는 시선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남망기가 언제까지 운심부지처에 죽치고 앉은 채 버틸 것인지 사뭇 궁금한 중이었다.
금광요는 언제나 살아남기 힘든 곳에 자신을 내던진 뒤, 주변을 자신에 맞추고, 자신을 주변에 맞추는 공작에 익숙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이 곳에 온 후 자신의 신변이란 운심부지처를 감싼 안개처럼 둥실둥실 떠서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것이 그는 오히려 불안했고, 다소는 심심하기도 했다. 꼭 남망기의 일이 아니라도 좋지만 뭐가 되었든 스스로의 힘을 행사하고 확인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수련에 매진할 수 있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너무 열심히 파고들다가 오히려 망칠 뻔하자 남희신은 금광요의 수련 시간을 하루 한 시진으로 제한해 버렸다. 그래서 너무 한가해진 바람에 남희신을 도와 고서를 베끼는 지독하게 재미없는 일까지 했다.
그렇게 남희신의 곁을 지키는 시간이 늘다 보니 그가 보는 것을 함께 보게 되었다.
남희신은 도리가 없어 속앓이만 하는 것 같았다.
그가 남망기에게 묻지 않는 것처럼, 금광요도 남희신에게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보고만 있지도 않았다.
어느 날 오후 늦게 일정이 끝난 아이들은 식당 밖에 모여 금광요에게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그 옆에는 남희신도 있었다.
그 때 마침 남망기가 지나갔다.
남망기는 문하생들이 금광요와 어울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지적할 부분이 한둘이 아니라 아예 외면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남희신과의 관계 때문에 모르는 체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렇듯 허술한 남망기는 역시 정상이 아니었다.
금광요는 졸라대는 아이들에게 건성으로 응수하며 남망기를 곁눈질했다.
이맘때쯤이면 식당 벽에 붙은 의자에 앉아서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볼 때가 많았다.
조금 기다려 보았더니 과연 남망기가 식당 쪽으로 가서 앉는 것이 보였다. 그가 금방 일어나지 않는 것을 확인한 금광요는 못 이긴 듯 입을 열었다.
“예전에 내가 알았던 어떤 남자의 이야기란다. 그 남자는 거지였지.”
순진한 아이들은 금광요가 왜 거리의 거지를 알고 있는지는 궁금해 하지도 않고 잔뜩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아마 이름이 원경이라고 했을 거다.”
남망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들려도 듣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금광요는 물에 미끼를 던지듯 계속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남망기는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전에 일어나서 저 쪽으로 가 버렸다.
실망스러웠지만 애초에 큰 기대를 건 것도 아니어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남희신도 진지하게 듣고 있으니 적당히 멈출 수는 없었다.
금광요는 말하는 재주로 절반 이상의 공을 세웠대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이야기 솜씨도 청자의 감정을 마음대로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능란했다.
잠시 후에는 아이고 어른이고, 금광요 본인조차도 당초의 목적을 잊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뜻밖에도 다시 돌아오는 남망기가 보였다.
“그런데 그 여자가 뜻밖에도 사술을 사용할 줄 알았던 것이지.”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려던 남망기가 우뚝 멈춘 것을, 금광요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제는 아이들 뿐 아니라 일하던 하인들까지 멈추어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절정에 달한 이야기의 급박한 분위기가 주변의 공기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고요한 가운데 담담하게 울리는 금광요의 목소리가 건조하게 느껴지는 것이 오히려 긴장감을 더했다.
“30년이나 함께 살았으면서도 자기 부인이 그런 줄은 몰랐던 거지. 그래, 음술은 사람의 마음 속 깊은 어두운 부분을 근질거리게 만들거든. 그렇지만 시골 사람이 그런 일을 알았을까. 그저 성격이 좀 거칠어졌나 했던 것이지.”
저녁 식후의 시간대에 식당 근처가 이렇게 조용하긴 드문 일이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말을 하는 금광요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남망기도 멀찍이 선 채,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듣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 그의 칼이 꿰뚫어버린 건 바로 그의 부인의 몸뚱이였어. 그 때 목걸이가 잘라져서 땅에 떨어졌는데, 괴상하게 바작거리는 소리가 났지.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한 목걸이였으니까. 그 소리를 듣고 남편은 그만 머리칼이 곤두서는 것 같았어.
입가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돌아보는 귀신같은 얼굴이 자기 부인인 걸 확인하고 남편은 경악을 했지. 그뿐만 아니라 다리에 힘이 풀려서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아버렸어.
‘여보’.”
으스스하고 긴박감이 넘치는 대목에, 평소 금속성의 목소리를 내는 금광요가 간드러지는 여자 목소리를 흉내내자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한 사람들이야말로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자제들 중 한 명이 못 참겠다는 듯 팔을 벅벅 긁었다.
금광요가 소름끼치는 듯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 정말 애를 썼어요. 그런데 어떻게도 할 수가 없었어요. 여보.’”
금광요는 좌중의 혼을 쏙 빼놓는 와중에도 남망기를 살펴보았다. 남망기는 처음 멈춰섰던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새파랗게 날이 선 눈빛이 노을에 반사되어 번쩍였다.
“‘제가 힘들다고 말했잖아요. 왜 들어주지 않았나요. 왜 이렇게...’
그녀는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피칠갑이 된 손을 내밀었단다.
‘또 나갈 건가요? 또 바다로 나갈 거에요? 나를 이 세상에 혼자 남겨 두고?’
남편은 너무 심한 충격을 받아서 제정신이 아니었어. 그러니 벌레처럼 뒤로 기어서 도망친 걸 탓할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그가 나에게 말했단다. 그 때 그녀를 안아주지 못한 게 너무 후회가 되어서 미칠 것 같다고 말이야. 밤이면 밤마다 피투성이가 된 부인이 꿈에 나온다고 했지.”
이야기의 끝은 다소 싱거운 느낌이었지만, 그 사실을 사람들이 느낄 새도 없이 금광요가 자세를 바꾸며 아이들에게 몸을 숙였다.
“너희들 꼭 기억해 두거라.”
아직 끝나지 않았나, 하고 기대하는 올망졸망한 눈빛들을 향해 금광요가 똑똑히 말했다.
“그가 바보라는 걸 기억해 두란 말이다.”
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매정한 말에 어리둥절해했다. 이내 금광요가 가볍게 웃었다.
“그가 정 후회하려면 수십년간 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걸 후회해야지. 죽기 직전에 한 번 안아주지 못한 걸 후회하면 뭐하겠느냐?”
아이들이 하나 둘씩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역시 어린애들에 불과한지라 무섭고 재미있는 부분을 제외하면 썩 마음에 와 닿진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니?”
그래도 알듯 말듯하여 끄덕끄덕 하며 대답은 잘도 하는데.
그러는 동안 남망기가 밖으로 나가려던 방향을 바꾸어 정실로 되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것 참...”
금광요가 돌아보니 남희신이 꿈에서 깨어난 듯 한숨을 쉬고 있었다. 어지간히 달변이어서 빠져든 그는 애들에게 하기에는 요사한 이야기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저녁 식사 후 금광요와 남희신은 종종 산책을 나가곤 했다. 그리고 계곡이나 불에 탄 원림을 통과한 끄트머리에서 먼 산을 바라보았다.
잠시 동안 안개 낀 풍경을 응시하던 남희신이 말했다.
“네 이야기 때문에 가슴이 먹먹하구나. 그래, 그 사람은 결국 어떻게 되었느냐?”
기다려도 답이 없어 돌아보니, 금광요가 입을 다문 채로 웃음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남희신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그는 이내 후 하고 떨리는 숨을 뿜으며 웃음을 털어냈다.
“왜 웃는 거냐?”
“형님. 다 제가 지어낸 얘기에요. 형님까지 속아 넘어가시다니요.”
“뭐라고?”
어이없어하는 남희신을 보고 금광요는 또 입을 꾹 다문 채 웃음 소리를 삼켰다.
남희신은 한참이 걸려서 진실을 받아들이고 난 다음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니, 그럼 그렇다고 할 것이지. 굳이 아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거짓말을 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느냐?”
“그야,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해야 망기가 충격을 받을 게 아닙니까? 어지간해서 행동에 나설 위인인가요.”
그제서야 남희신은 금광요가 남망기를 부추기기 위해 사술이니 뭐니를 섞어 거짓 이야기를 한 사실을 알았다.
“아요, 너는... 대체 어떻게 안 것이냐?”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간단하게 잘라 말하는 금광요가 남희신은 너무도 신기했다. 언제까지 자신을 놀라게 할 것인지, 거듭 감탄하게 된다.
결과야 어찌됐든 하려고 마음먹었던 일을 끝내고 속이 시원해진 금광요는 계속해서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러는 얼굴이 묘하게 어려 보이는데다 자신이 못한 일을 대신 해주었다는 고마움에 남희신은 자칫 그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일이 잘못 되어서 저를 원망하진 말아야 할 텐데요. 그러니 제가 농간을 부린 것은 절대 비밀입니다, 형님.”
“잘못 되다니?”
“저 둘은 만나기만 하면 싸운다면서요. 혹여 운몽까지 가서 싸우고 돌아오면 어떻게 합니까.”
아직 남망기가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만나서 싸울지도 모른다는 얘기만은 그럴싸했으므로 남희신은 또 한숨이 나왔다.
“저 아이는, 하필...”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한 남희신이 고개만 저어도 금광요는 이해하고 침묵으로 동조했다.
다음 날.
미심쩍어하는 두 사람의 생각과 다르게 남망기는 당장에 고소를 떠났다.
남희신은 그가 운몽에 간다는 말에 잔잔하게 웃으며 심기를 건드릴 만한 말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내심, 거기까지 가서 싸우면 어쩌느냐는 금광요의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금광요는 이번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남희신이 운심부지처 안에서 배웅한 뒤 산을 내려가는 남망기의 뒤를 쫓아가서 불쑥 앞을 막아섰다.
“잠깐 나 좀 보자, 망기!”
남망기가 멈춰서자 금광요는 태연하게 그의 손에 든 물건을 낚아채었다.
“뭘 가져가는 거냐?”
남망기가 챙긴 물건이니 분명 도움 안 되는 물건이겠거니, 싶었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금광요가 꾸러미를 헤쳐 보니 민간에선 귀하지만 남가에서는 밥상에 올라 입맛을 떨어뜨리는 귀한 약초로 가득했다.
금광요는 단호하게 그것을 등 뒤로 숨기며 돌려주지 않았다.
“형장.”
남망기가 짧게 질책하며 손을 내미는 것을 무시하고, 금광요가 말했다.
“이런 건 그만 두고, 성내에 들러서 천자소나 사 가거라.”
“?”
“회상이 알려 줬는데, 위무선은 술 중에 천자소라면 사족을 못 쓴다더라.”
천자소 때문에 첫만남부터 싸워댔는데 남망기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고소 남씨 사람이 술을 선물로 들고 가다니.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남망기가 가만히 서서 자신이 뒤로 숨긴 손만 바라보고 있자 금광요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너 말이다... 위공자처럼 맵고 짠 걸 좋아하는 미식가가 이런 걸 들고 가면 반겨줄 것 같으냐?”
아까부터 금광요의 말투는 남망기의 속을 다 알고 있다는 느낌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위무선이 좋아하니 싫어하니 하는 얘기를 남망기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이제껏 그의 마음을 눈치챈 사람은 남희신 뿐이었기에, 누군가가 이 일에 훈수를 두는 건 처음이라서였다.
“너더러 마시라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다른 가문의 사람에게 건네주는 것이고, 마시는 것도 그일 텐데.”
너무도 무료하여 산책을 한답시고 규훈석 앞을 왔다갔다 하다가 가규를 몽땅 외워버린 금광요가 자신 있게 하는 말이었다. 실제로 가규가 지붕으로 이어도 될만큼 방대한 양이라 해도, 거기에 술을 사서 남에게 주는 것도 안 된다는 항목은 존재하지 않았다.
금광요는 절대로 손에 든 것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듯 뒷걸음질을 치며 마지막으로 못을 박았다.
“꼭 내가 일러준 대로 하거라. 누군가의 마음에 들려면 가끔은 그가 좋아하는 일도 해야지. 그게 네 기준에 맞지 않는 일이라 해도 말이다!”
희신광요 망기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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