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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3 20:17
망천화처럼 이연화 해독할 수 있는 약초가 있는데, 형질을 바꾸는 부작용이 있어서 떨떠름해하던 이연화와 그런 게 뭐가 중하냐 하던 주변사람들이 우당탕하는 게 보고싶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혼자 남은 사이, 이연화는 바깥의 기척에 귀를 기울이고 주변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서는 나름대로 체계적인 무공과 진법 훈련 등을 진행하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합 소리의 크기를 보면 그리 대규모 병력은 아닌 듯했지만, 가르치는 자의 실력이나 훈련의 내용들은 꽤 눈여겨볼 만한 수준이었다. 이연화는 내심 코웃음을 쳤다. 십 년 전, 금원맹과 사고문이 반쯤 분해된 이후로 만성도는 꾸준히 득세해 왔다. 비록 이번 반란으로 대부분이 숙청되었다 하나, 오랫동안 쌓인 곳간은 쉬이 비지 않는 법이었다. 그 곳간에 매달려 살던 사람들 역시, 한순간에 모조리 사라질 수는 없었다. 내 혼사로 연극을 꾸밀 만한 가치는 있었네. 완전히 무시할 만한 세력은 아니었어. 이연화가 턱을 괴며 생각했다. 묵직한 사슬이 쩔렁였다.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려, 이연화는 시선만 틀어 문을 보았다. 열린 문 너머에서 작은 아이가 나타났다. 이연화를 보자마자 힉 소리와 함께 달아났던 여자아이였다. 꼬마는 이연화의 눈치를 보며 들어와, 식사가 담긴 쟁반을 침상 옆의 탁자에 올려놓았다. 미소와 함께 바라보던 이연화가 불렀다.
"얘야."
힉! 아이가 또 괴상한 소리를 내며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꼬마가 도망치기 전에, 이연화는 피식 웃으면서 짐짓 억울한 투로 말했다. "넌 나를 볼 때마다 괴물 대하듯이 하는구나. 내 머리에 무슨 뿔이라도 보이느냐? 자, 봐라. 네가 꽁꽁 잘 묶어 놨잖아." 이연화가 억울하게 양팔을 들어 보였다. 아이가 덜덜 떨며 이연화를 슬쩍 훔쳐보았다. 그 눈에는 두려움뿐 아니라 분명 호기심도 배어 있었다. 마른침을 삼킨 아이가 조그맣게 말했다.
"저, 제가, 제가 묶은 게 아니에요."
"음. 지금 보니 넌 날 묶는 건 고사하고 이걸 들지도 못하겠다. 여기서 밥을 잘 안 주는 거냐?"
이연화가 아이를 슬쩍 훑어보고 부드럽게 물었다. 그저 타고난 체격이 작다 하기에, 아이는 지나치게 빼빼 말라 있었다. 꼬마는 금방 대답하지 못하고, 어두워진 낯빛으로 고개를 숙인 채 쭈뼛거렸다. 그 머리 모양을 본 이연화가 눈썹을 살짝 들었다. 각려초에게 잡혔을 때 보았던 아이들과는 사뭇 매무새가 달랐다. 이연화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꼬마를 보았다.
"넌 남윤 출신이 아닌가 보구나. 어디서 왔느냐?"
그 한 마디를 듣자마자, 아이의 턱이 꾹 일그러졌다. 그 눈으로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조금 당혹한 이연화의 앞에서, 꼬마는 이내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연화가 아이고 소리를 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쟁반의 음식이 멀쩡한 것을 확인하고 차를 한 잔 따라 건네자, 아이는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받아 마시고는 계속 흐느꼈다. 들먹이는 어깨를 토닥이면서, 이연화는 다과 하나를 더 집어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다과를 입에 넣어 천천히 씹으며 조금씩 눈물을 멈추었다. 이연화가 건넸던 찻잔까지 다 비우고서야, 꼬마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저는...이 산 아래의 마을에 살고 있었어요. 한 달 전까지는요."
"끌려왔느냐? 아니면 누가 널 팔았어?"
아이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일 년쯤 전부터,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아이들이 가끔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인신매매단의 소행이다, 산에 놀러갔다가 짐승을 잘못 만난 것이다, 노한 귀신의 짓이다 등등의 낭설들이 떠돌았다. 그러던 중, 꼬마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가 사라지자 그 여자아이를 찾아 산을 누볐다. 큰 산에서 미아가 되어 헤매다 비탈을 굴렀는데, 잠깐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이곳으로 끌려와 있었다. 아마도 쓰러진 아이를 만성도 사람이 발견하고 데려온 모양이었다.
이연화의 미간으로 골이 생겼다. 일 년 전이라면, 반란의 후폭풍이 대체적으로 정리되었을 즈음이었다. 만성도가 가장 숨을 죽이고, 인력과 물자 부족으로 허덕였을 시절이기도 했다. 본부에서 부릴 일꾼이 부족해지니, 인근의 마을 아이들에게까지 손을 뻗쳤구나. 이연화가 내심 한숨을 쉬며 꼬마를 바라보았다. 비록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자신의 행동이 불러온 후폭풍을 눈앞의 조그만 아이가 감당했다고 생각하니 영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자, 나는 어차피 입맛도 없으니 먹어라."
이연화가 쟁반을 통째로 아이의 앞에 밀어주었다. 아이는 치열한 갈등이 드러난 눈으로 이연화와 쟁반을 번갈아 보았다. 문을 돌아보는 표정이 퍽 걱정스러워 보였다. 이연화가 일부러 태평하게 웃어 보였다. "걱정 마라, 누가 들어오면 내가 먹였다고 할 테니. 내가 볼품없이 묶여있긴 해도 너 하나쯤은 챙길 수 있어."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아이는 곧 조심스레 숟가락을 들었다.
차로 목만 가볍게 축이면서, 이연화는 아이와 간간이 대화를 나누었다. 먹을 것이 들어가자 훨씬 마음이 편해졌는지, 꼬마는 입을 가득 채운 채로도 묻는 말에 웅얼웅얼 대답했다. 비록 말단 일꾼이라 세부 사항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이연화는 아이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 본부의 크기와 무장 병력의 수를 어림잡아 계산했다. 이연화가 가만히 손끝을 모아 문질렀다. 홀로 빠져나가는 일쯤이야 어렵잖게 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이 '신 만성도'의 수뇌부를 최대한 많이 추포하거나 처치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저기, 그런데 진짜로 하나도 안 드세요? 저녁이 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드셔 두는 게 좋아요."
아이가 입가에 튀김 부스러기를 묻히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연화가 엷게 웃으며 그 입가를 닦아주고는 물었다.
"왜, 있다 저들이 날 데려가서 고문이라도 한다던?"
"그게 아니라요...모르세요?"
뭘? 이연화가 눈으로 물으며 찻잔을 기울였다. 아이가 크게 뜬 눈을 깜박였다.
"원래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는 잘 못 먹잖아요. 그래서...그 전에 뭐라도 드시는 게 좋을 텐데."
컥! 이연화는 독주를 잘못 들이킨 사람처럼 기침을 하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좋아, 뿜지는 않았군. 이연화는 목을 가다듬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가 조금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연화가 억지 웃음을 지으며 한 손을 들었다.
"미안.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 내가 누구랑 결혼한다고?"
"네, 오늘 저녁에 맹주님이랑 결혼하시잖아요. 다들 준비하던데...."
아이의 얼빠진 말에, 이연화는 유령처럼 힘없는 웃음을 흘리며 눈가를 살짝 긁적였다. 반려를 데려다 준다기에, 나를 누구랑 짝짓겠구나 싶긴 했지만 정말 결혼식까지 치르려 들 줄은 몰랐는데. 하긴, 쓸데없이 적통 따위에 연연하는 자이니 그런 절차에 집착한대도 이상할 것은 없지. 그런데 그 대상이 본인이었어? 양심도 없네. 속으로 허탈하게 냉소하던 이연화는, 잠깐 눈을 빛내다가 태연하게 물었다.
"다들 준비한다고? 사람이 많이 오나 보구나."
"네. 결혼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높으신 분들이 며칠 전부터 모여 계셨어요. 아, 진짜 높으신 분들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좀 무섭게 생기거나 좋은 옷을 입은 분들이 많이 와 계세요. 있다 다들 축하하러 오실 거예요. 선물을 가져오신 분들도 많아요."
"저런. 정말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나는 납치당해서 강제로 결혼하게 생겼는데."
재잘대는 아이를 향해, 이연화가 짐짓 풀이 죽은 투로 대답하고는 턱을 괴었다. 아이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면서 이연화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번듯한 음식과 친절한 대화로, 꼬마는 이연화에 대한 경계심을 완전히 내려놓은 듯했다. "되, 되게 무서운 분이라고 들었는데...다, 다 부수고 도망가시면 안 돼요?" 아이가 조심스레 건넸다. 퍽 과격한 제안에, 이연화가 픽 웃었다.
"날 되게 무서운 사람이라고 하던?"
"네. 묶여 있어도 방심하면 안 된다고요. 시, 실수하면...제 목을 꺾어버릴 거라고 했어요."
"뭐, 네가 날 납치한 사람이었다면 공격하려 들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넌 나처럼 납치당한 사람이잖아. 내가 왜 널 해치겠어? 그리고, 이렇게 묶인 데다 독까지 먹었는데 누구 목을 어떻게 꺾는단 말이야."
떨면서 자신의 목을 감싸는 아이를 향해, 이연화가 웃으며 투덜거렸다. 아이가 금세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하지만, 전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오히려...있다 옷도 갖다드려야 하는데."
"옷?"
"혼례복이요. 꼭 입으셔야 한다고 했어요. 안 그러시면 제가 죽는다고...."
아이가 이연화의 눈치를 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날 가둔 사람들은 자꾸 나한테 붉은 옷을 입히려 들까? 이연화가 심드렁하게 생각했다. 아이는 이제 두려움과 죄책감에 압도당한 것처럼 양손을 꼭 마주잡고 있었다. 딱할 만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연민 어린 눈으로 응시하다가, 이연화는 이윽고 꼬마를 향해 건넸다.
"그러면, 얘야. 내가 널 위해 혼례복을 입을 테니, 너도 내 부탁을 들어 주겠니?"
-
"쓸모없는 것."
"그런 말 하지 마, 불여우는 최선을 다했다고."
방다병이 개의 양쪽 귀를 손으로 막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불여우는 적비성의 타박을 알아들은 것처럼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방다병이 보기에, 이것은 불쌍한 개의 잘못이 아니었다. 불여우가 신묘한 기문둔갑술을 파훼할 방법을 어찌 알겠는가? 불여우는 그저 냄새를 아주 잘 맡는 강아지였지 영물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우릴 인도한 것만도 대단한 거야,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는데. 일단 이 산에 그놈들의 은신처가 있는 게 분명하니, 백천원 사람들에게 기별을 해야겠어. 기문둔갑술에 능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전해야지."
방다병이 근처를 맴돌던 새를 불러 서신을 전달하는 사이, 적비성은 참을성 없는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주변을 노려보았다. 방다병 역시 한숨과 함께 안개 자욱한 산을 관찰했지만, 아무래도 들고 나는 길을 발견할 수 없었다. 심지어 슬슬 어둠까지 내려앉고 있어, 시야가 극도로 제한되었다. 아무리 무공이 높다 해도, 진법이나 기문둔갑술에 대한 이해는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차라리 기관이라면 쉽게 간파할 수 있는데. 방다병이 답답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입 다물어."
방다병이 중얼거리자, 적비성이 칼같이 말했다. 방다병은 이제 불여우처럼 조금 억울해져 적비성을 바라보았다.
"소용없는 말이란 건 알아, 그래도 걱정이 되는데 어떡하란 말이야? 너도 이연화가 걱정되잖아, 그래서 이렇게-."
"기척이 들리니까 조용히 하라고."
적비성이 뺨을 때리듯 덧붙였다. 기척? 방다병이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였다.
적비성의 말대로,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재빨리 시선을 교환한 두 사람이 나무 위로 올라섰다. 숨을 죽이고 지켜보자, 그들이 섰던 자리로 곧 한 대의 수레가 들어섰다. 두 마리의 말이 모는 단출한 수레였는데, 생긴 모양새로 보아 아마 식료 따위를 나르는 보급 마차인 듯했다. 방다병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무리 기문둔갑술 따위로 숨겨져 있다 해도, 그 은신처에 논밭이며 축사가 갖춰지지 않은 이상 생필품 조달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마차가 거의 빈 것을 보니 나오는 길인 듯하여, 방다병은 적비성 쪽을 바라보았다. 얼른 저 자를 잡아 심문해보자는 의도에서였다.
하지만 적비성은 보이지 않았고, 아래에서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방다병은 푹 한숨을 쉬고는 나무 아래로 내려섰다. 적비성은 수레를 몰던 남자를 이미 발치에 던져놓고 노려보던 참이었다.
"만성도 놈이냐? 아니면 어룡우마방의 잔당이냐?"
"무,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저는 그냥 산에서 약초나 캐다 파는 양민일 뿐입니다."
"이 시간에, 이렇게 깊은 산속에서? 헛소리 마. 그리고 여기, 만성도의 문양이 찍힌 자루도 있네."
방다병이 코웃음을 치며 수레의 빈 자루를 들었다. 남자의 눈빛이 일변했다. 그가 품으로 손을 넣기 전에, 적비성은 남자의 턱을 한 대 후려차고는 그 손목을 꽉 즈려밟았다. 쓰러진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적비성은 그 비명이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요구했다.
"네가 나온 곳으로 어떻게 들어가는지 말해라."
"몰라요, 모릅니다! 그쪽, 그쪽에서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다고요. 저는 정말 몰라아악!"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적비성이 발에 힘을 주었다. 손목에서 심상찮은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라면 아무리 심문 대상이라 해도 군자의 선을 지키라며 한두 마디 핀잔을 주었겠으나, 상황이 상황이었으므로 방다병은 오히려 적비성의 악독함을 강조하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다("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 너 같은 사람은 손도 안 쓰고 없애버릴 수 있는 마교 대마왕, 금원맹주라고!").
일각 정도가 흘렀을 때, 그들은 남자에게서 몇 가지 정보를 얻어냈다. 하나, 남자는 열성적인 '신 만성도' 사람이 아니며, 그저 고위험에 따른 고수익을 위해 식량 보급 일을 할 뿐이었다. 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신은 정말 기문둔갑술의 파훼법을 몰랐다(남자는 젖은 눈으로 매우 억울하게 적비성을 바라보며 강조했다). 특정 지점에 도착해 자신이 왔음을 알리면, 그쪽에서 확인하고 진입로를 열어주었다. 셋, 이 '신 만성도' 본부는 꽤 오래 전부터 있었던 만성도의 은신처로, 꽤 탄탄한 무장세력과 기관을 갖추고 있었다. 방다병이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끼었다.
"만일 그곳이 이자의 말대로 튼튼한 요새라면, 잠입해서 정보를 얻되 당장 들쑤시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어. 어쨌든 여긴 우리한텐 낯설지만 그들에겐 집이나 다름없는 곳이고, 이연화의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잖아. 함정에 빠지거나 서로에게 인질이 되는 일만은 피해야지."
"너. 안에서 이연화를 본 적이 있느냐?"
적비성이 물었다.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연화요? 그, 과거에 사고문주 이상이였다던 사람 말입니까? 모, 모릅니다. 어떻게 식료나 나르는 제가 그런 중요한 일을 알겠습니까?"
"식료를 나를 때 평소와 다른 점은 없었나? 잘 대답하면 백천원에서도 정상참작해 줄 테니, 잔꾀 부리지 말고 솔직히 얘기해."
방다병이 남자를 향해 쏘아붙였다. 남자는 얼룩덜룩 터지고 부어오른 낯으로 잠시 눈을 굴리다가, 퍼뜩 떠오른 듯 고개를 들었다.
"그, 그게, 오늘 갖다달라고 한 식료의 양이 평소보다 많았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했지요. 일꾼들이 하는 얘기를 얼핏 들었는데, 거기서 오늘 저녁에 결혼식이 있다는 겁니다."
"겨, 결혼식?"
방다병이 살짝 더듬거렸다. 순간 등으로 오한이 끼쳤다. 산에 은밀히 숨어 사는 자들이, 뜬금없이 결혼식을 치른다고 유별나게 군다? 확실한 증거는 없었으나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남자가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거기 높으신 분이랑 누구를 결혼시킨다는데, 좀 이상했습니다. 신부가 어디서 데려온 누구인지는 몰라도, 식을 할 때까지 방에 묶어두고 못 나오게 한다는 거예요. 분명히 욕심 때문에 어디의 귀인을 납치한 게 아니겠습니까?"
방다병과 적비성의 얼굴이 동시에 험악해졌다. 두 사람의 얼굴을 살피던 남자가 헉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엎드렸다. "아이고, 제가 아는 건 이런 얘기밖에 없습니다! 제발 이 불쌍한 사람을 살려주십시오." 자신이 얼마나 귀한 정보를 토했는지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방다병은 조금 전까지의 신중함을 어딘가에 내다 버리고, 적비성을 바라보며 다급히 말했다.
"아무래도 당장 들어가야겠어. 상황이 안 좋으면 다 엎어버리자."
"마교인처럼 이야기하는군. 좋다."
적비성이 코웃음을 쳤다. 금원맹주를 힐끗 흘겨보고, 방다병은 얼른 좋은 옷을 벗어 수레에 감추었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혼자 남은 사이, 이연화는 바깥의 기척에 귀를 기울이고 주변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서는 나름대로 체계적인 무공과 진법 훈련 등을 진행하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합 소리의 크기를 보면 그리 대규모 병력은 아닌 듯했지만, 가르치는 자의 실력이나 훈련의 내용들은 꽤 눈여겨볼 만한 수준이었다. 이연화는 내심 코웃음을 쳤다. 십 년 전, 금원맹과 사고문이 반쯤 분해된 이후로 만성도는 꾸준히 득세해 왔다. 비록 이번 반란으로 대부분이 숙청되었다 하나, 오랫동안 쌓인 곳간은 쉬이 비지 않는 법이었다. 그 곳간에 매달려 살던 사람들 역시, 한순간에 모조리 사라질 수는 없었다. 내 혼사로 연극을 꾸밀 만한 가치는 있었네. 완전히 무시할 만한 세력은 아니었어. 이연화가 턱을 괴며 생각했다. 묵직한 사슬이 쩔렁였다.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려, 이연화는 시선만 틀어 문을 보았다. 열린 문 너머에서 작은 아이가 나타났다. 이연화를 보자마자 힉 소리와 함께 달아났던 여자아이였다. 꼬마는 이연화의 눈치를 보며 들어와, 식사가 담긴 쟁반을 침상 옆의 탁자에 올려놓았다. 미소와 함께 바라보던 이연화가 불렀다.
"얘야."
힉! 아이가 또 괴상한 소리를 내며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꼬마가 도망치기 전에, 이연화는 피식 웃으면서 짐짓 억울한 투로 말했다. "넌 나를 볼 때마다 괴물 대하듯이 하는구나. 내 머리에 무슨 뿔이라도 보이느냐? 자, 봐라. 네가 꽁꽁 잘 묶어 놨잖아." 이연화가 억울하게 양팔을 들어 보였다. 아이가 덜덜 떨며 이연화를 슬쩍 훔쳐보았다. 그 눈에는 두려움뿐 아니라 분명 호기심도 배어 있었다. 마른침을 삼킨 아이가 조그맣게 말했다.
"저, 제가, 제가 묶은 게 아니에요."
"음. 지금 보니 넌 날 묶는 건 고사하고 이걸 들지도 못하겠다. 여기서 밥을 잘 안 주는 거냐?"
이연화가 아이를 슬쩍 훑어보고 부드럽게 물었다. 그저 타고난 체격이 작다 하기에, 아이는 지나치게 빼빼 말라 있었다. 꼬마는 금방 대답하지 못하고, 어두워진 낯빛으로 고개를 숙인 채 쭈뼛거렸다. 그 머리 모양을 본 이연화가 눈썹을 살짝 들었다. 각려초에게 잡혔을 때 보았던 아이들과는 사뭇 매무새가 달랐다. 이연화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꼬마를 보았다.
"넌 남윤 출신이 아닌가 보구나. 어디서 왔느냐?"
그 한 마디를 듣자마자, 아이의 턱이 꾹 일그러졌다. 그 눈으로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조금 당혹한 이연화의 앞에서, 꼬마는 이내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연화가 아이고 소리를 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쟁반의 음식이 멀쩡한 것을 확인하고 차를 한 잔 따라 건네자, 아이는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받아 마시고는 계속 흐느꼈다. 들먹이는 어깨를 토닥이면서, 이연화는 다과 하나를 더 집어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다과를 입에 넣어 천천히 씹으며 조금씩 눈물을 멈추었다. 이연화가 건넸던 찻잔까지 다 비우고서야, 꼬마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저는...이 산 아래의 마을에 살고 있었어요. 한 달 전까지는요."
"끌려왔느냐? 아니면 누가 널 팔았어?"
아이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일 년쯤 전부터,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아이들이 가끔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인신매매단의 소행이다, 산에 놀러갔다가 짐승을 잘못 만난 것이다, 노한 귀신의 짓이다 등등의 낭설들이 떠돌았다. 그러던 중, 꼬마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가 사라지자 그 여자아이를 찾아 산을 누볐다. 큰 산에서 미아가 되어 헤매다 비탈을 굴렀는데, 잠깐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이곳으로 끌려와 있었다. 아마도 쓰러진 아이를 만성도 사람이 발견하고 데려온 모양이었다.
이연화의 미간으로 골이 생겼다. 일 년 전이라면, 반란의 후폭풍이 대체적으로 정리되었을 즈음이었다. 만성도가 가장 숨을 죽이고, 인력과 물자 부족으로 허덕였을 시절이기도 했다. 본부에서 부릴 일꾼이 부족해지니, 인근의 마을 아이들에게까지 손을 뻗쳤구나. 이연화가 내심 한숨을 쉬며 꼬마를 바라보았다. 비록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자신의 행동이 불러온 후폭풍을 눈앞의 조그만 아이가 감당했다고 생각하니 영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자, 나는 어차피 입맛도 없으니 먹어라."
이연화가 쟁반을 통째로 아이의 앞에 밀어주었다. 아이는 치열한 갈등이 드러난 눈으로 이연화와 쟁반을 번갈아 보았다. 문을 돌아보는 표정이 퍽 걱정스러워 보였다. 이연화가 일부러 태평하게 웃어 보였다. "걱정 마라, 누가 들어오면 내가 먹였다고 할 테니. 내가 볼품없이 묶여있긴 해도 너 하나쯤은 챙길 수 있어."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아이는 곧 조심스레 숟가락을 들었다.
차로 목만 가볍게 축이면서, 이연화는 아이와 간간이 대화를 나누었다. 먹을 것이 들어가자 훨씬 마음이 편해졌는지, 꼬마는 입을 가득 채운 채로도 묻는 말에 웅얼웅얼 대답했다. 비록 말단 일꾼이라 세부 사항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이연화는 아이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 본부의 크기와 무장 병력의 수를 어림잡아 계산했다. 이연화가 가만히 손끝을 모아 문질렀다. 홀로 빠져나가는 일쯤이야 어렵잖게 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이 '신 만성도'의 수뇌부를 최대한 많이 추포하거나 처치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저기, 그런데 진짜로 하나도 안 드세요? 저녁이 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드셔 두는 게 좋아요."
아이가 입가에 튀김 부스러기를 묻히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연화가 엷게 웃으며 그 입가를 닦아주고는 물었다.
"왜, 있다 저들이 날 데려가서 고문이라도 한다던?"
"그게 아니라요...모르세요?"
뭘? 이연화가 눈으로 물으며 찻잔을 기울였다. 아이가 크게 뜬 눈을 깜박였다.
"원래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는 잘 못 먹잖아요. 그래서...그 전에 뭐라도 드시는 게 좋을 텐데."
컥! 이연화는 독주를 잘못 들이킨 사람처럼 기침을 하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좋아, 뿜지는 않았군. 이연화는 목을 가다듬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가 조금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연화가 억지 웃음을 지으며 한 손을 들었다.
"미안.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 내가 누구랑 결혼한다고?"
"네, 오늘 저녁에 맹주님이랑 결혼하시잖아요. 다들 준비하던데...."
아이의 얼빠진 말에, 이연화는 유령처럼 힘없는 웃음을 흘리며 눈가를 살짝 긁적였다. 반려를 데려다 준다기에, 나를 누구랑 짝짓겠구나 싶긴 했지만 정말 결혼식까지 치르려 들 줄은 몰랐는데. 하긴, 쓸데없이 적통 따위에 연연하는 자이니 그런 절차에 집착한대도 이상할 것은 없지. 그런데 그 대상이 본인이었어? 양심도 없네. 속으로 허탈하게 냉소하던 이연화는, 잠깐 눈을 빛내다가 태연하게 물었다.
"다들 준비한다고? 사람이 많이 오나 보구나."
"네. 결혼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높으신 분들이 며칠 전부터 모여 계셨어요. 아, 진짜 높으신 분들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좀 무섭게 생기거나 좋은 옷을 입은 분들이 많이 와 계세요. 있다 다들 축하하러 오실 거예요. 선물을 가져오신 분들도 많아요."
"저런. 정말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나는 납치당해서 강제로 결혼하게 생겼는데."
재잘대는 아이를 향해, 이연화가 짐짓 풀이 죽은 투로 대답하고는 턱을 괴었다. 아이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면서 이연화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번듯한 음식과 친절한 대화로, 꼬마는 이연화에 대한 경계심을 완전히 내려놓은 듯했다. "되, 되게 무서운 분이라고 들었는데...다, 다 부수고 도망가시면 안 돼요?" 아이가 조심스레 건넸다. 퍽 과격한 제안에, 이연화가 픽 웃었다.
"날 되게 무서운 사람이라고 하던?"
"네. 묶여 있어도 방심하면 안 된다고요. 시, 실수하면...제 목을 꺾어버릴 거라고 했어요."
"뭐, 네가 날 납치한 사람이었다면 공격하려 들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넌 나처럼 납치당한 사람이잖아. 내가 왜 널 해치겠어? 그리고, 이렇게 묶인 데다 독까지 먹었는데 누구 목을 어떻게 꺾는단 말이야."
떨면서 자신의 목을 감싸는 아이를 향해, 이연화가 웃으며 투덜거렸다. 아이가 금세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하지만, 전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오히려...있다 옷도 갖다드려야 하는데."
"옷?"
"혼례복이요. 꼭 입으셔야 한다고 했어요. 안 그러시면 제가 죽는다고...."
아이가 이연화의 눈치를 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날 가둔 사람들은 자꾸 나한테 붉은 옷을 입히려 들까? 이연화가 심드렁하게 생각했다. 아이는 이제 두려움과 죄책감에 압도당한 것처럼 양손을 꼭 마주잡고 있었다. 딱할 만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연민 어린 눈으로 응시하다가, 이연화는 이윽고 꼬마를 향해 건넸다.
"그러면, 얘야. 내가 널 위해 혼례복을 입을 테니, 너도 내 부탁을 들어 주겠니?"
-
"쓸모없는 것."
"그런 말 하지 마, 불여우는 최선을 다했다고."
방다병이 개의 양쪽 귀를 손으로 막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불여우는 적비성의 타박을 알아들은 것처럼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방다병이 보기에, 이것은 불쌍한 개의 잘못이 아니었다. 불여우가 신묘한 기문둔갑술을 파훼할 방법을 어찌 알겠는가? 불여우는 그저 냄새를 아주 잘 맡는 강아지였지 영물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우릴 인도한 것만도 대단한 거야,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는데. 일단 이 산에 그놈들의 은신처가 있는 게 분명하니, 백천원 사람들에게 기별을 해야겠어. 기문둔갑술에 능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전해야지."
방다병이 근처를 맴돌던 새를 불러 서신을 전달하는 사이, 적비성은 참을성 없는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주변을 노려보았다. 방다병 역시 한숨과 함께 안개 자욱한 산을 관찰했지만, 아무래도 들고 나는 길을 발견할 수 없었다. 심지어 슬슬 어둠까지 내려앉고 있어, 시야가 극도로 제한되었다. 아무리 무공이 높다 해도, 진법이나 기문둔갑술에 대한 이해는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차라리 기관이라면 쉽게 간파할 수 있는데. 방다병이 답답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입 다물어."
방다병이 중얼거리자, 적비성이 칼같이 말했다. 방다병은 이제 불여우처럼 조금 억울해져 적비성을 바라보았다.
"소용없는 말이란 건 알아, 그래도 걱정이 되는데 어떡하란 말이야? 너도 이연화가 걱정되잖아, 그래서 이렇게-."
"기척이 들리니까 조용히 하라고."
적비성이 뺨을 때리듯 덧붙였다. 기척? 방다병이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였다.
적비성의 말대로,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재빨리 시선을 교환한 두 사람이 나무 위로 올라섰다. 숨을 죽이고 지켜보자, 그들이 섰던 자리로 곧 한 대의 수레가 들어섰다. 두 마리의 말이 모는 단출한 수레였는데, 생긴 모양새로 보아 아마 식료 따위를 나르는 보급 마차인 듯했다. 방다병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무리 기문둔갑술 따위로 숨겨져 있다 해도, 그 은신처에 논밭이며 축사가 갖춰지지 않은 이상 생필품 조달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마차가 거의 빈 것을 보니 나오는 길인 듯하여, 방다병은 적비성 쪽을 바라보았다. 얼른 저 자를 잡아 심문해보자는 의도에서였다.
하지만 적비성은 보이지 않았고, 아래에서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방다병은 푹 한숨을 쉬고는 나무 아래로 내려섰다. 적비성은 수레를 몰던 남자를 이미 발치에 던져놓고 노려보던 참이었다.
"만성도 놈이냐? 아니면 어룡우마방의 잔당이냐?"
"무,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저는 그냥 산에서 약초나 캐다 파는 양민일 뿐입니다."
"이 시간에, 이렇게 깊은 산속에서? 헛소리 마. 그리고 여기, 만성도의 문양이 찍힌 자루도 있네."
방다병이 코웃음을 치며 수레의 빈 자루를 들었다. 남자의 눈빛이 일변했다. 그가 품으로 손을 넣기 전에, 적비성은 남자의 턱을 한 대 후려차고는 그 손목을 꽉 즈려밟았다. 쓰러진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적비성은 그 비명이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요구했다.
"네가 나온 곳으로 어떻게 들어가는지 말해라."
"몰라요, 모릅니다! 그쪽, 그쪽에서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다고요. 저는 정말 몰라아악!"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적비성이 발에 힘을 주었다. 손목에서 심상찮은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라면 아무리 심문 대상이라 해도 군자의 선을 지키라며 한두 마디 핀잔을 주었겠으나, 상황이 상황이었으므로 방다병은 오히려 적비성의 악독함을 강조하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다("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 너 같은 사람은 손도 안 쓰고 없애버릴 수 있는 마교 대마왕, 금원맹주라고!").
일각 정도가 흘렀을 때, 그들은 남자에게서 몇 가지 정보를 얻어냈다. 하나, 남자는 열성적인 '신 만성도' 사람이 아니며, 그저 고위험에 따른 고수익을 위해 식량 보급 일을 할 뿐이었다. 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신은 정말 기문둔갑술의 파훼법을 몰랐다(남자는 젖은 눈으로 매우 억울하게 적비성을 바라보며 강조했다). 특정 지점에 도착해 자신이 왔음을 알리면, 그쪽에서 확인하고 진입로를 열어주었다. 셋, 이 '신 만성도' 본부는 꽤 오래 전부터 있었던 만성도의 은신처로, 꽤 탄탄한 무장세력과 기관을 갖추고 있었다. 방다병이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끼었다.
"만일 그곳이 이자의 말대로 튼튼한 요새라면, 잠입해서 정보를 얻되 당장 들쑤시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어. 어쨌든 여긴 우리한텐 낯설지만 그들에겐 집이나 다름없는 곳이고, 이연화의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잖아. 함정에 빠지거나 서로에게 인질이 되는 일만은 피해야지."
"너. 안에서 이연화를 본 적이 있느냐?"
적비성이 물었다.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연화요? 그, 과거에 사고문주 이상이였다던 사람 말입니까? 모, 모릅니다. 어떻게 식료나 나르는 제가 그런 중요한 일을 알겠습니까?"
"식료를 나를 때 평소와 다른 점은 없었나? 잘 대답하면 백천원에서도 정상참작해 줄 테니, 잔꾀 부리지 말고 솔직히 얘기해."
방다병이 남자를 향해 쏘아붙였다. 남자는 얼룩덜룩 터지고 부어오른 낯으로 잠시 눈을 굴리다가, 퍼뜩 떠오른 듯 고개를 들었다.
"그, 그게, 오늘 갖다달라고 한 식료의 양이 평소보다 많았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했지요. 일꾼들이 하는 얘기를 얼핏 들었는데, 거기서 오늘 저녁에 결혼식이 있다는 겁니다."
"겨, 결혼식?"
방다병이 살짝 더듬거렸다. 순간 등으로 오한이 끼쳤다. 산에 은밀히 숨어 사는 자들이, 뜬금없이 결혼식을 치른다고 유별나게 군다? 확실한 증거는 없었으나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남자가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거기 높으신 분이랑 누구를 결혼시킨다는데, 좀 이상했습니다. 신부가 어디서 데려온 누구인지는 몰라도, 식을 할 때까지 방에 묶어두고 못 나오게 한다는 거예요. 분명히 욕심 때문에 어디의 귀인을 납치한 게 아니겠습니까?"
방다병과 적비성의 얼굴이 동시에 험악해졌다. 두 사람의 얼굴을 살피던 남자가 헉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엎드렸다. "아이고, 제가 아는 건 이런 얘기밖에 없습니다! 제발 이 불쌍한 사람을 살려주십시오." 자신이 얼마나 귀한 정보를 토했는지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방다병은 조금 전까지의 신중함을 어딘가에 내다 버리고, 적비성을 바라보며 다급히 말했다.
"아무래도 당장 들어가야겠어. 상황이 안 좋으면 다 엎어버리자."
"마교인처럼 이야기하는군. 좋다."
적비성이 코웃음을 쳤다. 금원맹주를 힐끗 흘겨보고, 방다병은 얼른 좋은 옷을 벗어 수레에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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