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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1 21:41
망천화처럼 이연화 해독할 수 있는 약초가 있는데, 형질을 바꾸는 부작용이 있어서 떨떠름해하던 이연화와 그런 게 뭐가 중하냐 하던 주변사람들이 우당탕하는 게 보고싶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매우 짜증스러운 얼굴로 동굴을 나와, 적비성은 양쪽 어깨에 대충 걸머졌던 남자 둘을 팽개쳤다. 동굴 밖에서 기다리던 일단의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많은 질문들이 동시에 쏟아졌지만, 적비성이 개중 귀를 기울인 사람은 방다병뿐이었다.
"아비, 이연화는?"
"여우와 사라졌다."
적비성이 이를 반쯤 악문 채 대답했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백천원주를 비롯한 몇몇 이들은 사색이 되었다. 백강순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적비성을 가리켰다. "그, 그놈이 문주를 납치했단 말이오?" 적비성은 그저 신경질적인 눈빛을 띠었지만, 침묵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여러 사람들이 납치란 단어에 술렁이는 가운데, 방다병은 주먹에 꾹 힘을 주고는 한숨지었다. 조금 의외롭게도, 그 얼굴에 번졌던 경악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청년이 한껏 낮춘 목소리로 물었다.
"자기 발로 따라간 거지?"
적비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방다병이 다시 한숨을 쉬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방심한 것도 아닐 텐데 끌려갈 리가 있겠어. 이럴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고?"
적비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방다병이 메마른 코웃음을 쳤다. "이연화잖아. 무슨 짓을 할지 완벽히 예측한 건 아니지만, 어떻게든 제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려 애쓸 수도 있다 생각하기는 했어. 내가 너보다는 이연화한테 많이 속아봤잖아." 적비성이 한쪽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냉소 비슷한 표정이었으나 마음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피떡이 되어 널브러진 두 남자를 차갑게 바라보고, 금원맹주는 바라보던 이들에게 말했다.
"이 두 놈은 만성도와 어룡우마방의 잔당으로, 이연화에게 불순한 의도를 갖고 지원한 후보들이다. 다른 후보들에게 비열한 수를 사용하고 나를 공격하여, 일단 혈도를 점해 놓았다."
"혈도만 점해진 게 아닌 것 같은데...."
백강순이 두 남자의 몰골을 보며 웅얼거렸다. 물론 적비성은 그런 쓸데없는 말을 무시하고 이었다.
"마비독에 당한 후보들이 아직 저 안에 있으니, 동굴의 지리에 익숙한 자들은 들어가서 후보들을 찾아 돕도록 해라. 다른 이들은 추적대를 꾸려, 이상이를 납치한 자들을 쫓아야 할 것이다."
모인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웅성거렸다. 그러면 최종 후보 선발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감히 이상이를 납치할 만큼 간 큰 자들이 있는 것이냐, 그자들이 바라는 게 대체 무엇이냐 따위의 소곤거림이 물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운피구가 한 발짝 다가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저 동굴의 출입구는 두 곳뿐입니다. 바로 이곳과, 동굴 최심부의 천장에 난 구멍이지요. 이쪽으로 누가 출입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분명 경공의 고수가 동굴 최심부에서 벽을 타고 바깥으로 나갔을 겁니다."
"대체 어떤 놈이 문주를 데려갔단 말입니까? 외부에서 들어온 놈이었습니까?"
석수가 눈을 치켜뜨고 물었다. 적비성이 냉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추영인이다."
"뭐?!"
방다병이 대경한 얼굴로 빽 외쳤다. 기한불 역시 놀라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추영인의 신원은 확실했소.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그 공자는 정말 문주께 마음이 있는 청년이었는데."
"진짜 추영인은 아니야. 아마도 중간에 바꿔치기한 모양이다. 진짜 추영인이 어디 있는지는, 이놈들을 데려가 묻도록 해라."
적비성이 성대경의 어깨를 발끝으로 툭 찼다. "맙소사, 추 공자의 집안에서 알면 어찌 나올지...철저히 심문하도록 해야겠군요." 부산스레 말한 백강순이, 주변 사람들에게 두 청년을 끌고 가도록 지시했다. 석수는 재빠르게 추적대를 꾸렸고, 기한불과 운피구는 동굴 안으로 진입했다. 백천원주들이 업무를 분담하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다가, 적비성은 곧 경공을 펼치기 위해 발에 힘을 주었다. 방다병이 급히 그 팔을 잡았다.
"잠깐, 넌 어디 가려고?"
"이연화가 불여우를 찾으라고 했다. 이유가 있겠지."
"나도 같이 가."
그렇게 말하고, 방다병은 적비성과 거의 동시에 땅을 박찼다. 두 사람은 날듯이 백천원 지붕에 도착해 이연화의 개를 찾았다.
불여우는 백천원 내부를 자유롭게 누비며 생활하고 있었다. 예쁨받는 일에 익숙해져, 사람을 보면 으레 자신을 만져주거나 먹을 것을 주려니 하고 눈을 반짝였다. 돌아다니지 않을 때의 불여우는 보통 이연화의 처소 주변에서 자거나 먹곤 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마당에 엎드려 누군가가 준 커다란 뼈를 뜯던 참이었다. 불여우는 무서운 기세를 풍기며 다가오는 적비성을 맹하게 올려다보며 꼬리를 치다가, 우악스러운 손이 목덜미를 덥석 잡아올리자 조금 발버둥을 쳤다. 방다병이 그 손등을 찰싹 때렸다.
"뭐하는 거야! 불여우가 겁먹잖아, 내려줘."
"목에 뭔가 있어."
적비성이 눈썹을 찌푸렸다. 개를 내려놓고 그 목을 만져 보니, 작은 지통이 목줄에 매여 있었다. 적비성이 지통을 떼어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이연화가 작은 글씨로 채운 서신과, 작은 향 조각이 들어 있었다. 두 남자의 시선이 서신으로 쏠렸다.
-이걸 보고 있다면, 아마 내가 순조롭게 잡혀갔다는 거겠지. 일단 미안해. 미리 알려주면 반대할 것 같았거든. 최대한 적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어. 내가 잡히면, 날 보기 위해 그래도 중요한 인물이 걸음하지 않겠어? 상황이 좋다면 나 혼자 정리하고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도 생각해야 하니, 내가 사라진 곳으로 불여우를 데려가도록 해. 내 옷에 오래 가는 향을 묻혀 두었으니, 불여우라면 쉽게 추적할 수 있을 거야.
"이 교활한 늙은 여우."
방다병이 투덜거렸다. 적비성은 불여우를 짚단처럼 옆구리에 끼고 날아갈 자세를 취했다. 개는 조금 당혹한 눈으로 적비성을 보았으나, 난데없이 하늘을 날면서도 크게 반항하지 않고 그저 끙끙거렸다. 적비성과 함께 다시 그 동굴을 향하며, 방다병이 어쩔 수 없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이연화는 괜찮겠지? 그놈들이 이연화를 단순히 죽이려는 목적으로 데려갔을 리는 없고, 이연화도 이런 상황을 예측했을 테니-."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놈도 너도, 가끔 보면 너무 순진해."
적비성이 방다병을 돌아보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이연화가 아무리 유들유들해졌다 해도, 적비성이 보기에 그에게는 아직 정파 사람 특유의 순수함이 남아 있었다. 능청스럽고 교활하지만, 정말 저열하고 비인도적인 수단까지 바로 떠올리지는 못하는. "세상은 넓고, 악독한 수법도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아. 모든 경우의 수를 감당할 수 있으리란 자신은 곧 자만이야." 적비성이 차갑게 단언하자, 방다병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입술을 깨물고, 청년은 종전보다 더욱 내력을 실어 몸을 날렸다.
"그놈들은 분명 위장해서 이 지역을 벗어나려 할 거야. 너무 늦기 전에 빨리 찾아야 해."
방다병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옆구리의 불여우를 고쳐 들며, 적비성은 가상의 원수를 보듯 불타는 눈으로 중얼거렸다.
"돌아오면 각오해라, 이상이."
-
아이고, 어쩐지 한기가 드네. 이연화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천장의 모양이 영 낯설었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어쩐지 유쾌하지 않은 기시감이 찾아왔다. 이연화는 손발에 채워진 사슬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몸이 묘하게 물렁한 감각을 보니, 아마 산공독이나 연근산 따위를 먹인 모양이었다. 하긴, 날 잡아두고 사슬만 채우는 건 의미가 없지. 자리에 앉은 이연화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지막으로 갇혔을 때보다는 훨씬 나은 풍경이었다. 널찍하다 못해 광활하게 보일 만큼 큰 방이었는데, 내부 모양새가 마치 각려초의 혼방 같은 느낌을 풍겼다. 끌려온 뒤로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고민하던 이연화의 귀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체구의 일꾼 아이가 들어오던 참이었다.
"아, 마침 잘 왔구나. 여기가-."
여기가 어디냐고 웃으며 건네기도 전에, 아이는 힉 소리를 내더니 휙 나가버렸다. 이연화가 살짝 들었던 한쪽 손을 머쓱하게 내렸다. "날 무슨 괴물이라고 겁주기라도 했던 거야?" 투덜거리며, 이연화는 팔다리를 가볍게 움직여 보였다. 다행히 어딘가가 끊어진 느낌이 나지는 않았다. 일꾼 아이가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단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묵직한 사지를 주무르다가, 이연화는 문을 통해 척척 들어오는 남자들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들은 마치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반듯하게 줄을 맞추어 섰다. 가장 앞에 나선 남자가 공수하며 깊이 허리를 숙였다.
"이 문주. 새로운 만성도의 맹주, 봉림이 인사드립니다."
"오? 봉경 맹주와 무슨 연관이 있으신가 봅니다."
"전 맹주는 저의 사촌형님입니다. 이전에는 제가 만성도의 부맹주였지요."
"그렇다는 건, 당신도 풍아로의 혈족이라는 거로군요. 난 어디 있는 겁니까?"
이연화가 여상스레 질문하며 창을 보았다. 열려 있지 않아 시간이 낮이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봉림이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은 봉경보다 한결 젊은이에 가까운 나이였다. 눈매가 유달리 매섭고 광대가 솟아 있어, 날카롭고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이곳은 만성도의 남은 사람들과, 각 방주를 잊지 못한 이들이 모인 은신처이자 본부입니다. 깊은 산속에 있으며 온갖 기문둔갑술과 기관으로 보호되고 있어, 인근 주민들은 물론이고 웬만한 무공 고수들조차 감히 이곳을 뚫을 수 없지요."
사람이 만든 것치고 뚫리지 않는 방패는 없던데. 이연화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두통이 있는 척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감았다. 이마를 짚은 채, 이연화가 살짝 잦아드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대체 얼마나 잠들었길래 아직도 머리가 아픈지 모르겠군. 오래 이동했나 봅니다."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네 시진 정도였는데, 아마 비걸이 약을 너무 강하게 쓴 모양입니다."
봉림이 진심으로 걱정하는 빛을 엷게 띤 채 말했다. 네 시진이라. 그렇다면 아무리 경공의 고수가 데려왔다 해도, 이동 범위가 그리 클 리는 없었다. 대규모의 기문둔갑술을 펼칠 정도로 거대하면서, 만성도의 옛 활동 범위와도 겹치는 산이라면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이연화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불여우가 따라오기에는 충분한 거리였다. 이연화는 짐짓 상한 심기를 숨기는 표정으로 봉림을 보았다.
"비걸이라면, 아마 그 여우를 이르는 말이겠지요. 추 공자는 어떻게 한 겁니까?"
"추 공자는 백천원 근처에 억류해 두었습니다. 비걸은 계획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후보가 일차적으로 걸러진 시점에서 가장 무해하고 덜 의심받을 듯한 자의 가면을 취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무익한 살생을 목표로 하는 집단이 아닙니다, 문주."
업화동을 이용하려 했던 사람들이 퍽 뻔뻔한 소리를 하는구만. 이연화는 내심 심드렁하게 생각하며 코웃음을 쳤다.
"남의 혼사에 이만큼 어깃장을 놓은 주제에, 꽤 결백한 얼굴을 하십니다. 그래서, 내게 바라는 게 뭡니까?"
봉림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남자는 갑작스럽게, 앞의 옷자락을 휙 날리듯이 걷더니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이연화가 이상한 춤사위를 목도한 사람처럼 그들을 응시했다. 봉림이 열띤 눈으로 이연화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문주. 만성도가 잘못된 증거에 눈이 멀어, 엉뚱한 자를 주상으로 추대하여 모셨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남윤 왕족의 유일한 적장자는 바로 문주셨지요. 부디 남윤의 명맥을 이어, 저희의 새로운 주상이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연화의 표정이 해괴해졌다. 아무리 핏줄이 중요하다 해도, 어찌 보면 나는 만성도와 어룡우마방을 일거에 보내버린 주범이자 남윤의 성공을 코앞에서 저지한 사람인데.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이렇게 묶어둔 것 아닌가? 이연화가 사슬을 보여주듯이 양손을 슬쩍 들며 어이없는 웃음을 뱉었다.
"봉 맹주. 설령 내가 승낙한들 믿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당신이라도 신뢰하지 못할 것 같은데요."
"문주, 문주는 남윤의 오래된 숙원을 이뤄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비록 저희가 무지하여 오래도록 문주와 대립하였으나, 부디 대의의 관점을 취하시어 과거의 은원을 내려놓아 주신다면 한량없이 기쁠 것입니다. 문주의 친모께서도, 숨이 다하는 날까지 그저 남윤의 부흥을 바라셨습니다."
"이연화는 훤비와 관계가 없고, 대의에는 더욱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평화로운 소일과 여행 정도에나 관심이 있는 자일 뿐이지요. 그러니 혼사 따위를 계획하지 않았겠습니까? 봉 맹주, 나는 더 이상 큰일에 얽힐 마음이 없어요. 당신들이 존재하든 말든,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탄압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 소동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날 놓아주는 게 어떻습니까?"
이연화는 안타깝게 타이르는 투로 이야기했다. 물론 상대가 냉큼 그러자고 대꾸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예상대로, 봉림은 조금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동안 간곡했던 표정이 순식간에 냉랭해졌다.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몸을 이용할 수는 있지요."
"와, 내가 올해 들은 말 중 가장 난봉꾼 같은 소리네요."
이연화가 감탄한 얼굴로 대꾸했다. 가까이 다가온 봉림이 이연화의 곁에 앉았다. 그 눈동자는 일견 차분했지만, 염원을 가진 광신도의 번득임을 품고 있었다. 이연화의 오른쪽 팔목을 붙든 채, 봉림은 한 손을 이연화의 아랫배에 얹었다. 이연화가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지그시 문지르듯 누르는 손바닥에, 온몸으로 생리적인 소름이 돋았다. 특정 부위를 훑어보듯 맴도는 내력이 극도로 불쾌했다. 봉림이 집념을 담아 중얼거렸다.
"문주가 잠들어 계실 때 이미 확인했습니다만, 태가 약하기는 해도 생산이 아주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더군요. 풍아로의 비술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이번에는 우리 손으로 확실히 교육하여 제대로 된 주상을 키울 것입니다. 당신의 재능을 이어받은, 남윤의 진정한 주상을 말입니다."
이연화는 내심 풍아로를 향해 욕설을 뱉었다. 3대 비술이나 붙들고 있을 것이지, 대체 뭣하러 그런 쓸데없는 분야에까지 손을 뻗쳤단 말인가? 그리고 이놈은 이미 확인했다면서, 왜 깨어 있는 사람을 불순하게 더듬는 것인가? 이연화가 벌레를 떼어내듯이 상대의 손을 탁 뿌리치자, 봉림은 억지로 힘을 쓰는 대신 순순히 물러났다. 방금 전까지의 무례한 손길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봉림이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문주가 줄곧 반려를 바라셨으니, 곧 원하는 것을 드리지요."
"사양하고 싶군요. 내가 바랐던 건 시험을 올바로 통과한 양인이지, 사람을 마음대로 납치하는 불한당이 아닌데 말입니다."
이연화가 짐짓 흘겨보며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봉림은 그 말에 대꾸하는 대신, 한쪽 입매를 살짝 올려 냉소하고는 자리를 떴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매우 짜증스러운 얼굴로 동굴을 나와, 적비성은 양쪽 어깨에 대충 걸머졌던 남자 둘을 팽개쳤다. 동굴 밖에서 기다리던 일단의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많은 질문들이 동시에 쏟아졌지만, 적비성이 개중 귀를 기울인 사람은 방다병뿐이었다.
"아비, 이연화는?"
"여우와 사라졌다."
적비성이 이를 반쯤 악문 채 대답했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백천원주를 비롯한 몇몇 이들은 사색이 되었다. 백강순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적비성을 가리켰다. "그, 그놈이 문주를 납치했단 말이오?" 적비성은 그저 신경질적인 눈빛을 띠었지만, 침묵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여러 사람들이 납치란 단어에 술렁이는 가운데, 방다병은 주먹에 꾹 힘을 주고는 한숨지었다. 조금 의외롭게도, 그 얼굴에 번졌던 경악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청년이 한껏 낮춘 목소리로 물었다.
"자기 발로 따라간 거지?"
적비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방다병이 다시 한숨을 쉬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방심한 것도 아닐 텐데 끌려갈 리가 있겠어. 이럴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고?"
적비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방다병이 메마른 코웃음을 쳤다. "이연화잖아. 무슨 짓을 할지 완벽히 예측한 건 아니지만, 어떻게든 제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려 애쓸 수도 있다 생각하기는 했어. 내가 너보다는 이연화한테 많이 속아봤잖아." 적비성이 한쪽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냉소 비슷한 표정이었으나 마음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피떡이 되어 널브러진 두 남자를 차갑게 바라보고, 금원맹주는 바라보던 이들에게 말했다.
"이 두 놈은 만성도와 어룡우마방의 잔당으로, 이연화에게 불순한 의도를 갖고 지원한 후보들이다. 다른 후보들에게 비열한 수를 사용하고 나를 공격하여, 일단 혈도를 점해 놓았다."
"혈도만 점해진 게 아닌 것 같은데...."
백강순이 두 남자의 몰골을 보며 웅얼거렸다. 물론 적비성은 그런 쓸데없는 말을 무시하고 이었다.
"마비독에 당한 후보들이 아직 저 안에 있으니, 동굴의 지리에 익숙한 자들은 들어가서 후보들을 찾아 돕도록 해라. 다른 이들은 추적대를 꾸려, 이상이를 납치한 자들을 쫓아야 할 것이다."
모인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웅성거렸다. 그러면 최종 후보 선발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감히 이상이를 납치할 만큼 간 큰 자들이 있는 것이냐, 그자들이 바라는 게 대체 무엇이냐 따위의 소곤거림이 물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운피구가 한 발짝 다가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저 동굴의 출입구는 두 곳뿐입니다. 바로 이곳과, 동굴 최심부의 천장에 난 구멍이지요. 이쪽으로 누가 출입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분명 경공의 고수가 동굴 최심부에서 벽을 타고 바깥으로 나갔을 겁니다."
"대체 어떤 놈이 문주를 데려갔단 말입니까? 외부에서 들어온 놈이었습니까?"
석수가 눈을 치켜뜨고 물었다. 적비성이 냉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추영인이다."
"뭐?!"
방다병이 대경한 얼굴로 빽 외쳤다. 기한불 역시 놀라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추영인의 신원은 확실했소.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그 공자는 정말 문주께 마음이 있는 청년이었는데."
"진짜 추영인은 아니야. 아마도 중간에 바꿔치기한 모양이다. 진짜 추영인이 어디 있는지는, 이놈들을 데려가 묻도록 해라."
적비성이 성대경의 어깨를 발끝으로 툭 찼다. "맙소사, 추 공자의 집안에서 알면 어찌 나올지...철저히 심문하도록 해야겠군요." 부산스레 말한 백강순이, 주변 사람들에게 두 청년을 끌고 가도록 지시했다. 석수는 재빠르게 추적대를 꾸렸고, 기한불과 운피구는 동굴 안으로 진입했다. 백천원주들이 업무를 분담하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다가, 적비성은 곧 경공을 펼치기 위해 발에 힘을 주었다. 방다병이 급히 그 팔을 잡았다.
"잠깐, 넌 어디 가려고?"
"이연화가 불여우를 찾으라고 했다. 이유가 있겠지."
"나도 같이 가."
그렇게 말하고, 방다병은 적비성과 거의 동시에 땅을 박찼다. 두 사람은 날듯이 백천원 지붕에 도착해 이연화의 개를 찾았다.
불여우는 백천원 내부를 자유롭게 누비며 생활하고 있었다. 예쁨받는 일에 익숙해져, 사람을 보면 으레 자신을 만져주거나 먹을 것을 주려니 하고 눈을 반짝였다. 돌아다니지 않을 때의 불여우는 보통 이연화의 처소 주변에서 자거나 먹곤 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마당에 엎드려 누군가가 준 커다란 뼈를 뜯던 참이었다. 불여우는 무서운 기세를 풍기며 다가오는 적비성을 맹하게 올려다보며 꼬리를 치다가, 우악스러운 손이 목덜미를 덥석 잡아올리자 조금 발버둥을 쳤다. 방다병이 그 손등을 찰싹 때렸다.
"뭐하는 거야! 불여우가 겁먹잖아, 내려줘."
"목에 뭔가 있어."
적비성이 눈썹을 찌푸렸다. 개를 내려놓고 그 목을 만져 보니, 작은 지통이 목줄에 매여 있었다. 적비성이 지통을 떼어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이연화가 작은 글씨로 채운 서신과, 작은 향 조각이 들어 있었다. 두 남자의 시선이 서신으로 쏠렸다.
-이걸 보고 있다면, 아마 내가 순조롭게 잡혀갔다는 거겠지. 일단 미안해. 미리 알려주면 반대할 것 같았거든. 최대한 적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어. 내가 잡히면, 날 보기 위해 그래도 중요한 인물이 걸음하지 않겠어? 상황이 좋다면 나 혼자 정리하고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도 생각해야 하니, 내가 사라진 곳으로 불여우를 데려가도록 해. 내 옷에 오래 가는 향을 묻혀 두었으니, 불여우라면 쉽게 추적할 수 있을 거야.
"이 교활한 늙은 여우."
방다병이 투덜거렸다. 적비성은 불여우를 짚단처럼 옆구리에 끼고 날아갈 자세를 취했다. 개는 조금 당혹한 눈으로 적비성을 보았으나, 난데없이 하늘을 날면서도 크게 반항하지 않고 그저 끙끙거렸다. 적비성과 함께 다시 그 동굴을 향하며, 방다병이 어쩔 수 없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이연화는 괜찮겠지? 그놈들이 이연화를 단순히 죽이려는 목적으로 데려갔을 리는 없고, 이연화도 이런 상황을 예측했을 테니-."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놈도 너도, 가끔 보면 너무 순진해."
적비성이 방다병을 돌아보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이연화가 아무리 유들유들해졌다 해도, 적비성이 보기에 그에게는 아직 정파 사람 특유의 순수함이 남아 있었다. 능청스럽고 교활하지만, 정말 저열하고 비인도적인 수단까지 바로 떠올리지는 못하는. "세상은 넓고, 악독한 수법도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아. 모든 경우의 수를 감당할 수 있으리란 자신은 곧 자만이야." 적비성이 차갑게 단언하자, 방다병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입술을 깨물고, 청년은 종전보다 더욱 내력을 실어 몸을 날렸다.
"그놈들은 분명 위장해서 이 지역을 벗어나려 할 거야. 너무 늦기 전에 빨리 찾아야 해."
방다병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옆구리의 불여우를 고쳐 들며, 적비성은 가상의 원수를 보듯 불타는 눈으로 중얼거렸다.
"돌아오면 각오해라, 이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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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어쩐지 한기가 드네. 이연화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천장의 모양이 영 낯설었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어쩐지 유쾌하지 않은 기시감이 찾아왔다. 이연화는 손발에 채워진 사슬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몸이 묘하게 물렁한 감각을 보니, 아마 산공독이나 연근산 따위를 먹인 모양이었다. 하긴, 날 잡아두고 사슬만 채우는 건 의미가 없지. 자리에 앉은 이연화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지막으로 갇혔을 때보다는 훨씬 나은 풍경이었다. 널찍하다 못해 광활하게 보일 만큼 큰 방이었는데, 내부 모양새가 마치 각려초의 혼방 같은 느낌을 풍겼다. 끌려온 뒤로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고민하던 이연화의 귀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체구의 일꾼 아이가 들어오던 참이었다.
"아, 마침 잘 왔구나. 여기가-."
여기가 어디냐고 웃으며 건네기도 전에, 아이는 힉 소리를 내더니 휙 나가버렸다. 이연화가 살짝 들었던 한쪽 손을 머쓱하게 내렸다. "날 무슨 괴물이라고 겁주기라도 했던 거야?" 투덜거리며, 이연화는 팔다리를 가볍게 움직여 보였다. 다행히 어딘가가 끊어진 느낌이 나지는 않았다. 일꾼 아이가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단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묵직한 사지를 주무르다가, 이연화는 문을 통해 척척 들어오는 남자들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들은 마치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반듯하게 줄을 맞추어 섰다. 가장 앞에 나선 남자가 공수하며 깊이 허리를 숙였다.
"이 문주. 새로운 만성도의 맹주, 봉림이 인사드립니다."
"오? 봉경 맹주와 무슨 연관이 있으신가 봅니다."
"전 맹주는 저의 사촌형님입니다. 이전에는 제가 만성도의 부맹주였지요."
"그렇다는 건, 당신도 풍아로의 혈족이라는 거로군요. 난 어디 있는 겁니까?"
이연화가 여상스레 질문하며 창을 보았다. 열려 있지 않아 시간이 낮이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봉림이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은 봉경보다 한결 젊은이에 가까운 나이였다. 눈매가 유달리 매섭고 광대가 솟아 있어, 날카롭고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이곳은 만성도의 남은 사람들과, 각 방주를 잊지 못한 이들이 모인 은신처이자 본부입니다. 깊은 산속에 있으며 온갖 기문둔갑술과 기관으로 보호되고 있어, 인근 주민들은 물론이고 웬만한 무공 고수들조차 감히 이곳을 뚫을 수 없지요."
사람이 만든 것치고 뚫리지 않는 방패는 없던데. 이연화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두통이 있는 척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감았다. 이마를 짚은 채, 이연화가 살짝 잦아드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대체 얼마나 잠들었길래 아직도 머리가 아픈지 모르겠군. 오래 이동했나 봅니다."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네 시진 정도였는데, 아마 비걸이 약을 너무 강하게 쓴 모양입니다."
봉림이 진심으로 걱정하는 빛을 엷게 띤 채 말했다. 네 시진이라. 그렇다면 아무리 경공의 고수가 데려왔다 해도, 이동 범위가 그리 클 리는 없었다. 대규모의 기문둔갑술을 펼칠 정도로 거대하면서, 만성도의 옛 활동 범위와도 겹치는 산이라면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이연화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불여우가 따라오기에는 충분한 거리였다. 이연화는 짐짓 상한 심기를 숨기는 표정으로 봉림을 보았다.
"비걸이라면, 아마 그 여우를 이르는 말이겠지요. 추 공자는 어떻게 한 겁니까?"
"추 공자는 백천원 근처에 억류해 두었습니다. 비걸은 계획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후보가 일차적으로 걸러진 시점에서 가장 무해하고 덜 의심받을 듯한 자의 가면을 취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무익한 살생을 목표로 하는 집단이 아닙니다, 문주."
업화동을 이용하려 했던 사람들이 퍽 뻔뻔한 소리를 하는구만. 이연화는 내심 심드렁하게 생각하며 코웃음을 쳤다.
"남의 혼사에 이만큼 어깃장을 놓은 주제에, 꽤 결백한 얼굴을 하십니다. 그래서, 내게 바라는 게 뭡니까?"
봉림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남자는 갑작스럽게, 앞의 옷자락을 휙 날리듯이 걷더니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이연화가 이상한 춤사위를 목도한 사람처럼 그들을 응시했다. 봉림이 열띤 눈으로 이연화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문주. 만성도가 잘못된 증거에 눈이 멀어, 엉뚱한 자를 주상으로 추대하여 모셨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남윤 왕족의 유일한 적장자는 바로 문주셨지요. 부디 남윤의 명맥을 이어, 저희의 새로운 주상이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연화의 표정이 해괴해졌다. 아무리 핏줄이 중요하다 해도, 어찌 보면 나는 만성도와 어룡우마방을 일거에 보내버린 주범이자 남윤의 성공을 코앞에서 저지한 사람인데.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이렇게 묶어둔 것 아닌가? 이연화가 사슬을 보여주듯이 양손을 슬쩍 들며 어이없는 웃음을 뱉었다.
"봉 맹주. 설령 내가 승낙한들 믿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당신이라도 신뢰하지 못할 것 같은데요."
"문주, 문주는 남윤의 오래된 숙원을 이뤄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비록 저희가 무지하여 오래도록 문주와 대립하였으나, 부디 대의의 관점을 취하시어 과거의 은원을 내려놓아 주신다면 한량없이 기쁠 것입니다. 문주의 친모께서도, 숨이 다하는 날까지 그저 남윤의 부흥을 바라셨습니다."
"이연화는 훤비와 관계가 없고, 대의에는 더욱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평화로운 소일과 여행 정도에나 관심이 있는 자일 뿐이지요. 그러니 혼사 따위를 계획하지 않았겠습니까? 봉 맹주, 나는 더 이상 큰일에 얽힐 마음이 없어요. 당신들이 존재하든 말든,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탄압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 소동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날 놓아주는 게 어떻습니까?"
이연화는 안타깝게 타이르는 투로 이야기했다. 물론 상대가 냉큼 그러자고 대꾸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예상대로, 봉림은 조금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동안 간곡했던 표정이 순식간에 냉랭해졌다.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몸을 이용할 수는 있지요."
"와, 내가 올해 들은 말 중 가장 난봉꾼 같은 소리네요."
이연화가 감탄한 얼굴로 대꾸했다. 가까이 다가온 봉림이 이연화의 곁에 앉았다. 그 눈동자는 일견 차분했지만, 염원을 가진 광신도의 번득임을 품고 있었다. 이연화의 오른쪽 팔목을 붙든 채, 봉림은 한 손을 이연화의 아랫배에 얹었다. 이연화가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지그시 문지르듯 누르는 손바닥에, 온몸으로 생리적인 소름이 돋았다. 특정 부위를 훑어보듯 맴도는 내력이 극도로 불쾌했다. 봉림이 집념을 담아 중얼거렸다.
"문주가 잠들어 계실 때 이미 확인했습니다만, 태가 약하기는 해도 생산이 아주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더군요. 풍아로의 비술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이번에는 우리 손으로 확실히 교육하여 제대로 된 주상을 키울 것입니다. 당신의 재능을 이어받은, 남윤의 진정한 주상을 말입니다."
이연화는 내심 풍아로를 향해 욕설을 뱉었다. 3대 비술이나 붙들고 있을 것이지, 대체 뭣하러 그런 쓸데없는 분야에까지 손을 뻗쳤단 말인가? 그리고 이놈은 이미 확인했다면서, 왜 깨어 있는 사람을 불순하게 더듬는 것인가? 이연화가 벌레를 떼어내듯이 상대의 손을 탁 뿌리치자, 봉림은 억지로 힘을 쓰는 대신 순순히 물러났다. 방금 전까지의 무례한 손길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봉림이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문주가 줄곧 반려를 바라셨으니, 곧 원하는 것을 드리지요."
"사양하고 싶군요. 내가 바랐던 건 시험을 올바로 통과한 양인이지, 사람을 마음대로 납치하는 불한당이 아닌데 말입니다."
이연화가 짐짓 흘겨보며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봉림은 그 말에 대꾸하는 대신, 한쪽 입매를 살짝 올려 냉소하고는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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