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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7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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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붕, 날조, 노잼ㅈㅇ 개연성 없음 ㅈㅇ 문제시 칼삭

 

금릉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고, 길어야 사나흘 머무를 것이다. 말을 타고 이동하겠다는 연화의 주장에, 린신이 양나라로 보내려던 약재와 과일을 실은 마차는 먼저 랑야각을 출발했다. 간단하게 짐을 꾸리는 연화의 뒤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고개를 홱 돌리자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던 린신과 눈이 마주쳤다.

 

거기에서 뭐하고 계십니까?”

외출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제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할까요.”

옷 한두 벌이랑 은자 몇 푼이 전부던데? 옷은 사면 되지만 은자는 부족하면 어떡하려고? 저자 구경을 나가도 그것보다는 많이 챙겨갈 거다.”

 

린신이 어깨너머를 기웃거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연화가 제 의부를 막아서며 시선을 차단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가벼운 대치를 이어가던 중, 린신이 뭔가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품에서 금낭을 꺼냈다.

 

가지고 있는 은자가 부족하면 말을 했어야지. , 명색이 랑야각주와 강좌맹 종주의 수양아들인데 이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어도 가져가. 네가 가진 은자로는 하루 지내기도 빠듯하다.”

 

린신이 연화의 옷깃 사이로 금낭을 집어넣더니 빠르게 자리를 떴다. 물건을 보관하기 적합하지 않은 위치에 연화만 난감해졌다. 이 또한 의부의 사랑이라고 생각해야지 어쩌겠어, 연화가 한숨 섞인 웃음을 지었다.

 

*

연화가 양나라에 간다고 하자 비성도 기다렸다는 듯 따라나섰다. 연화가 없는 랑야각에 비성이 머무는 것은 린신을 포함하여 세 사람 모두 원하지 않던 일이었다. 별말 없이 짐을 챙겨 나선 비성은 랑야산을 벗어난 뒤에야 외출의 목적을 궁금해했다.

 

양나라에 있는 자는 누구인데 랑야각에서 따로 마차를 보내고 네가 직접 찾아가 안부를 확인하는 거지?”

내 의부야. 랑야각주와는 각별한 사이지. 나를 살리기 위해서 애쓴 분이 랑야각주 하나는 아니었거든.“

그자는 강호인이 아닌가? 어째서 양나라에 있는 거지?“

양나라 황제와도 친분이 있어서 당분간 금릉에서 지내셔. 봄은 되어야 돌아오실 거야.“

오래 머무는군.“

적 맹주도 그분을 만나고 싶어? 오늘 동행한 김에 같이 뵙고 오면 되겠네.“

그자는 무공을 못 하지 않나? 나는 적수가 될 수 없는 자에게는 관심 없어.“

그거 반가운 소식이네. 적 맹주가 의부님을 흠모하면 어떡하나, 랑야산과 금릉도 모자라 금원맹까지 오가야 하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했거든.“

 

연화가 과장된 몸짓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성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내가 왜 그를 흠모하지? 설령 흠모한다고 해도 그게 금원맹에 데려갈 이유가 되나? 그자가 랑야갹과 양나라를 오가는 이유가 랑야각주와 양나라 황제가 그를 흠모하기 때문인가?“

흠모보다는 연모에 가깝지 않을까. 그분도 랑야각주와 황제를 마음에 두고 있던 셈이니까.“

 

비성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침묵이 익숙해질 무렵 그가 입을 열었다.

 

그자는 두 사람을 사이에 두고 저울질하는 건가?“

글쎄? 몸은 하나인데 원하는 사람은 둘이니, 시간을 쪼개어 반년은 랑야각에서 지내고 반년은 금릉에서 지내는 거 아니겠어?“

연모한다면서 다른 이에게 보내는 게 아무렇지 않다니 이해할 수가 없군. 그만큼 자신감이 있는 건가, 아니면 약속한 기간이 끝나면 상대방이 정인을 보내줄 거라는 믿음이 있는 건가?“

각자 사정이 있는 것이니 우리가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

 

제 의부와 관련한 일로 입씨름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드물게 냉정해진 말투에 비성도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말 한두 마디로 상대의 성질을 긁을 수 있지만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았다. 연화는 표정을 굳힌 채 말을 달리는 데에만 집중했다. 곁눈질로 연화의 표정을 살피던 비성이 무심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이연화,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만일 네 의부와 같은 상황이라면, 너도 금릉과 양나라를 오가는 걸 선택할 텐가?“

 

연화가 별 걸 다 물어본다는 듯 눈을 뾰족하게 뜨면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눈을 아래로 내린 채 고민을 하더니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내 의부에게 두 사람은 소중한 존재이니 누구와의 약속도 저버리고 싶지 않으셨겠지. 하지만 나는 누구와도 함께 하지 않을 거야. 연례행사처럼 두 곳을 오가는 것도 귀찮고, 어딘가에 매여있는 느낌도 싫어. 난 내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면서 자유롭게 살 거야.“

누군가 너와 함께 유람하겠다고 한다면? 그자와 함께할 텐가?“

흐음, 내 여정에 굳이 함께하고 싶다면 끼워주겠지만 그게 곁을 내주겠다는 의미는 아닐 것 같은데?“

 

연화가 코를 찡긋거리며 장난스러운 눈웃음을 지었다. 비성이 못마땅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는 쉽게 곁을 내주는 법이 없군.“

서운하네, 그래도 적 맹주랑 방소보에게는 나름 잘해줬다고 생각하는데.“

양심이 없군.“

내가 얼마나 더 잘해줘야 적 맹주의 성에 차려나? 설마 누구처럼 교태를 부리고 아양을 떨며 입안의 혀처럼 굴길 바라는 거야? 그런 건 나한테 안 맞는데.“

 

연화가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교태를 부리고 아양을 떠는 이연화라니, 비성도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이 바라는 건 그런 모습이 아니었기에 굳이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건 나도 바라지 않아.“

아무렴, 적 맹주가 그런 걸 좋아하는 이였으면 지금 여기 있지도 않았겠지. 자네는 입에 발린 말은 하지도, 듣지도 않잖아.“

 

연화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소양蘇陽전에 계신 분에게 전해주십시오. 랑야각에서 이연화가 왔다고 하면 아실 겁니다.“

 

금릉에 도착하자 연화가 품에서 나비 조각을 꺼내 황궁의 경비병에게 건넸다. 경비병은 제 손에 든 것을 잠시 살펴보고는 이내 돌려주었다.

 

이 선생에 대해서는 전해 들었습니다만, 일행이 있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 혼자 보내는 게 못내 걱정이었는지 랑야각주께서 호위를 붙이셨습니다.“

그렇군요, 잠시 기다려주시면 소양전에 말을 전하고 오겠습니다.“

 

연화와 가볍게 묵례를 주고받은 경비병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적비성이 못마땅한 목소리를 내었다.

 

내가 언제부터 네 호위였지?“

그러면 적 맹주는 무슨 자격으로 양나라까지 온 거야? 랑야각과 강좌맹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으면서.“

강좌맹? 혹시 황궁에 있다는 네 의부가 강좌맹의 매장소인가?“

그렇다면? 내 의부를 흠모할 일 없다던 말을 주워 담으려고?“

나보다 무공을 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관심 없어. 말로만 듣던 강좌맹 종주가 살아있다니 신기했을 뿐이다.“

운이 좋네, 적 맹주. 내 덕분에 말로만 듣던 강좌맹 종주도 다 만나고.“

 

연화가 뒷짐을 지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자, 비성이 고개를 홱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비병이 궁인과 함께 돌아왔다.

 

이 선생, 따라오시죠. 소양전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선생에 대해서는 저희도 이야기를 많이 들었답니다. 인물도 출중하지만, 문무를 겸비하고 의술에도 조예가 깊으시다고요.“

어깨너머로 배운 수준이죠.“

선생께서 옆에 계신 덕분에 랑야각에서 지내시는 게 아주 즐거웠다는 말씀도 하셨는걸요.“

아이고, 저야말로 의부님 덕분에 걱정 없이 잘 지냈는걸요.“

 

소양전으로 향하는 내내 이어지는 칭찬에 연화가 멋쩍게 웃었다. 겉치레가 잔뜩 오가는군, 비성은 시큰둥한 얼굴로 뒤를 따랐다.

 

중문을 넘으니 매장소가 정원 탁자에 앉아 어느 청년과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연화를 발견한 매장소가 반가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도 손님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연화와 눈이 마주치자 청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연화!“

방소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어째서 네가 금릉에 있어?“

내가 초대했단다.“

 

천천히 일어난 매장소가 연화를 향해 팔을 뻗으며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다가가 손을 잡자 매장소가 환히 웃으며 연화를 제 옆자리에 앉혔다.

 

의부님께서요?“

며칠 전에 금릉 외곽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해 폐하와 외출할 일이 있었거든. 그때 객잔에서 만났는데 식견이 높아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단다. 답례 차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 궁에 방문해달라 요청했는데 마침 네가 오는 날이었구나.“

도움은요. 저는 선생께서 주신 단서를 잘 조합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입이 닳도록 칭찬하셨던 양자가 이연화였습니까?“

 

다병이 눈을 빛내며 두 사람을 향해 몸을 기울이자, 연화가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매장소는 흐뭇한 표정으로 연화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금릉에 함께 오지 못해 못내 아쉬웠는데, 다시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네요. 보아하니, 방 대협도 연화를 알고 계신 것 같군요.“

제가 말씀드렸던, 강호에서 처음 사귄 벗이 이연화입니다. 함께 다니면서 많이 배웠죠. 그런데 선생께서 이연화의 의부셨다니 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을까 싶습니다.“

넌 이게 우연이라고 생각하나?“

 

연화의 뒤에 멀찍이 서 있던 비성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전에 린신과 비성의 다툼을 지켜본 경험이 있는 연화는 당장이라도 그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다병은 이 인간이 무슨 말을 하려나 의심과 흥미가 섞인 눈빛을 보냈다. 반면 매장소는 그의 말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차를 홀짝였다.

 

강좌맹의 종주는 무공을 못 하는 대신 대단한 지략가라고 들었소. 그런 이가 방다병을 만나 도움을 받은 게 우연일까? 내 생각에 종주 정도의 능력이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금원맹주가 눈치가 영 없는 편은 아니군. 하지만 오늘 방 대협을 초청한 것은 순전히 폐하의 뜻이었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오.“

하지만 이연화가 온다는 걸 알고 차를 마시자는 핑계로 방다병을 붙잡아 둔 건 종주의 뜻 아니오?“

자네도 연화를 만났는데 방 대협이 만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나. 나는 적 맹주가 무엇 때문에 이리 못마땅해하는지 도통 모르겠군.“

 

묘하게 날이 선 분위기에 다병이 눈만 이리저리 굴리다 연화를 바라보았다. 그냥 가만히 있어, 연화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작게 저었다. 매장소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적 맹주, 혹시 연화를 독점하고 싶은 거라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을 거요. 알다시피 연화를 원하는 사람은 자네 하나가 아니지 않은가.“



랑야방 연화루 각주종주 정왕종주 비성연화 다병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