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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궁으로 돌아온 염리는 뭔가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음. 한참동안 뭔가 골똘히 생각을 하는듯 하더니 강징에게 혹시 폐하께서 사가에 있을때 표기장군과의 관계가 어땠는지 대해 물으신 적이 없냐고 했음. 강징이 사가에 있을때 표기장군을 은애했냐고 물어보시기에 당황을 해서 제때 대답을 못했더니 화를 내시고 한동안 연희궁에 발길을 끊으신 적이 있다고 사실 그대로를 말했지. 염리가 한숨을 쉬면서 아무래도 폐하께서 투기를 하시는 모양이라고 했어. 강징이 사내 대장부가 고작 그런걸로 투기를 할리가 없지 않느냐고 말을 했다가 염리가 하는 말을 듣고 무척 당황스러워 함. 형부인 금자헌도 염리가 사가에 있을 적에 무선과 가깝게 지냈다는 사실을 알고 계속 불편한 티를 내고 한동안 심통을 부린 적이 있다는 이야기였음. 염리는 폐하께서 정말 투기를 하시는거라면 무선과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괜한 의심을 사선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했음. 강징이 앞으로는 언행에 각별히 조심을 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킴. 잠시후에 염리가 아까 만들어 놓은 밤떡을 내올테니 간식을 먹은후에 같이 자수를 놓자고 함. 강징은 염리가 만든 떡과 차를 마시고 황제에게 줄 향낭에 자수를 놓다가 그만 바늘에 찔리고 말았음. 염리가 피가 맺힌 손가락을 영견으로 감싸고 아프지는 않냐고 물어봄. 강징이 괜찮다고 말을 하자 그 손가락으로 자수를 놓으실 수 있겠냐고 걱정을 했어. 강징이 크게 다친것도 아니니 바늘을 잡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고 향낭에 자수를 계속 놓았음. 염리는 금릉에게 씌울 모자를 만드는 중이었는데 모자에 사슴뿔 자수로 놓는 것을 보고 강징이 무척 신기하게 여김. 염리가 말하길 금릉을 가진지 얼마 안됐을 무렵에 숫사슴이 커다란 뿔로 배를 찌르는 꿈을 꾼적이 있는데 그때 사슴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금릉의 물건에는 꼭 사슴뿔 자수를 놓고 있다고 했음. 강징이 그 말을 듣고 내일은 연꽃이랑 용 자수를 놓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어. 자신도 아이들의 옷에 태몽과 관련된 자수를 놓아주고 싶다고 하니 염리가 흔쾌히 알겠다고 함.




그날 밤 염리는 연희궁의 서편으로 건너가고 강징은 홀로 나한상에 앉아서 서책을 읽고 있었음. 황제가 들었다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반기는데 표정이 영 좋지 않았음. 강징이 정무를 보느라 많이 피곤하셨겠다고 인삼탕을 끓였는데 내오라고 할까요 하고 묻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음. 강징이 눈치를 살피면서 신첩이 폐하께 드릴 향낭을 만들었는데 어떤지 봐달라고 자개함에 넣어둔 향낭을 꺼내서 건넸음. 망기가 강징이 만든 향낭을 대충 살피고는 수고했다고 말을 하고 다탁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음. 그 모습을 본 강징은 서운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어서 향낭을 다시 집어들고는 마음에 안드시냐고 물었어. 그리고는 폐하께 드리려고 향낭을 만들다가 손까지 다쳤는데 하니 다쳤다는 말에 놀랐는지 몸을 기울이고는 어딜 다쳤냐고 살핌. 강징이 손가락을 내밀면서 바늘에 수도 없이 찔려가면서 정성껏 만든 것인데 마음에 안들어 하시는것 같아서 속상하다고 말함. 망기가 한숨을 쉬면서 대뜸 아직도 표기장군과 영녕의 혼례에 가고 싶으냐고 묻는데 강징이 고개를 세차게 저음. 앞으로 폐하께서 싫어하시는 언행은 하지 않을거라고 그러니 노여움을 푸시라고 소매를 꼭 잡고 말하는데 망기는 말도 안되는 투기심 때문에 치졸하게 군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음. 그래서 향낭을 만들어주어 고맙다고 말하고 앞으로 꼭 지니고 다니겠다고 했음. 강징이 그제야 환히 웃으면서 상궁을 불러 폐하께 올릴 인삼탕을 내오라고 함. 황제가 인삼탕을 마시는 동안 강징은 염리가 만들어준 밤떡을 가져오라고 해서 먹었음. 망기가 입가에 묻은 떡고물을 털어주자 강징이 아잠도 드실거냐고 떡이 담긴 접시를 내밀었어. 망기가 고개를 젓고는 그대가 좋아하는 음식이니 실컷 먹으라고 권함. 그리고 그날 밤 강징은 평소처럼 황제의 품에 안겨서 잠이 들었지만 뭔가 찜찜한 기분을 감출수가 없었음.




그 다음날 염리가 금릉을 데리고 수강궁에 문안을 드리러 간 사이 강징은 궁인 몇몇을 거느리고 후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음. 강징이 꽃을 꺾다가 저 멀리서 황제가 웬 여인과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는데 상궁이 황제의 옆에 있는 사람이 영녕군주라고 귀뜸을 함. 아주 오래전에 황실 연회에서 보고 그 이후로 만난적이 없다보니 잠깐 얼굴을 못 알아본거였지. 표기장군과의 혼례가 얼마 남지 않아 혼례 준비를 하기 위해 입궁을 한 모양이었음. 강징은 두 사람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니 뭔가 기분이 이상해졌음. 황제는 강징을 제외한 여인에게 다정한 법이 없었는데 군주는 사촌 누이여서 그런지 퍽 다정스럽게 굴었거든. 강징이 황제와 군주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해야 할지 말지 고민을 하는 사이에 영녕 군주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건네더니 이내 손을 들어서 황제의 어깨를 슬쩍 만지며 환하게 웃었음. 황제가 불쾌한 내색 하나 없이 군주에게 웃어주는 모습을 보고 심장이 쿵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음. 강징의 얼굴이 굳어지자 상궁이 어디가 안좋으신거냐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살폈어. 강징은 어지럽다는 핑계를 대며 이제 그만 연희궁으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먼저 걸음을 옮김. 그리고 궁에 오자마자 세안을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상에 누웠음.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유달리 몸이 무겁고 다리도 퉁퉁 붓고 허리가 끊어질듯이 아파서 혼자 끙끙 앓다가 상궁에게 태의를 불러오게 함. 태의가 와서 진맥을 하고는 쌍생을 회임을 하셔서 몸에 무리가 온 것이라고 말함. 태의가 붓기를 빼주는 약과 고약을 처방해주고 가자마자 염리가 안으로 들어왔음. 그리고는 어디가 안좋으신거냐고 이리저리 살피더니 회임 증상 때문에 몸이 아프단 말에 한숨을 쉬고 통증 완화에 좋은 약을 달여오겠다고 밖으로 나감.





강징은 침상에 기대어 앉아서 궁인들이 해주는 안마를 받다가 염리가 안으로 들어오자 궁인들을 모두 물림. 염리는 손수 달인 탕약을 후후 불어서 식힌 다음에 그릇을 넘겨주고는 강징이 탕약을 다 마시자 작게 자른 생강 정과를 입에 쏙 넣어줌. 염리가 강징의 부른 배를 보고 한숨을 푹 쉬고는 출산을 하신지 얼마 안된 몸으로 또 회임을 하셔서 몸에 무리가 온 것이 아니냐고 걱정을 함. 강징이 자기는 괜찮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염리가 잦은 회임과 출산은 여인의 몸에 매우 해롭다고 하면서 다시 한번 긴 한숨을 쉬었어. 강징이 웃으면서 폐하의 비빈이 된 이상 황실의 자손을 번성케하는 것이 제 책무라고 하니 염리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간택만 아니었어도 저처럼 평범한 사내와 혼인을 했을텐데 하고 중얼거리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음. 강징이 황궁 생활이 고달프기는 해도 폐하를 진심으로 은애하니 괜찮다고 혹여나 자신에게 미안한 감정이 아직 남아서 그런거라면 더 이상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함. 사실 원래대로라면 염리가 강징 대신에 후궁 간택에 참여했어야 했거든. 일정 나이가 된 특정 가문의 여식들은 삼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후궁 간택에 떨어지지 않는 이상 다른 사내와 정혼을 하는 것조차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음. 염리가 금씨 가문의 적자와 혼인을 하게 된 것은 금씨 가문의 인척인 황귀태비와 태황태후가 알게 모르게 힘을 쓴 덕분이었지. 거기다가 강씨 가문에 다른 여식이 남아 있었으니 특별히 예외를 둔 경우였음. 금지옥엽으로 자란 강징은 황제의 후궁이 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지만 이번에도 간택에 나가지 않으면 부친이 처벌을 받기 때문에 억지로 간택에 참여한거였음. 밤새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을 하고도 황제의 눈에 띄였을때 느낀 감정은 절망 그 자체였을거야. 황궁은 여인들의 거대한 무덤이나 마찬가지라서 그 끝이 어떻게 될지 분명했거든. 황제에게 잊혀진 후궁으로 외롭게 살다가 죽거나 운이 좋아서 자식이라도 낳으면 자식에게 기대어 살다가 죽거나. 혹 운이 좋아서 잠시 총애를 얻는다고 해도 다른 비빈들의 질시를 살게 분명했으니까. 황제의 총애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어느 누가 한낱 첩에 불과한 후궁으로 살길 바라겠음. 강징은 회임 때문에 몸이 상한건 맞지만 이렇게 폐하의 아이를 가진건 축복이라고 아이가 없는 비빈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언니는 모를거라고 함. 염리가 그런 강징이 안쓰러운듯 강징의 손을 꼭 붙잡고 출산전까진 각별히 몸조심을 하셔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함.





강징은 염리와 아이들이 쓸 모자에 수를 놓다가 양심전의 태감으로부터 사흘후에 운몽에 계신 조부모님과 부모님 그리고 미산의 외조부모님이 황궁에 입궁한다는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함. 강징이 폐하께서 신경을 써주신게 분명하다고 감사 인사를 드리러 양심전으로 가야겠다고 하는데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더니 황제가 연희궁에 오고 있다는 양심전 태감의 말에 황제를 맞이하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남. 염리가 자리를 비키고 얼마 안되서 황제가 침전안에 들어오자마자 강징이 얼굴에 가득 미소를 띄운채 와락 안겨들었음. 황제가 시치미를 뚝 떼고 갑자기 웬 어리광이냐고 묻는데 제가 이러는 이유가 뭔지 다 아시면서 왜 모르는척 하시냐고 소매를 잡고 흔듬. 그리도 좋으냐는 말에 조부모님을 못뵌지 너무 오래되었다고 눈물이 날만큼 기쁘다고 대답함. 망기가 그런 강징을 보고는 웃으면서 그대는 욕심이 너무 없어서 탈이라고 회임을 했는데 달리 청하는 것도 없냐며 가볍게 타박하고 원하는게 있으면 말하라고 함. 강징이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하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실거냐니까 망기가 뭔지 들어보고 들어줄지 말지는 생각해보겠대. 강징이 그 말에 금세 시무룩해져서 시전 구경을 가보고 싶은데 들어주실거냐고 함. 기껏 생각한게 겨우 바깥 나들이를 하는거냐니까 강징이 눈치를 살피면서 지난번 민정 시찰때 신첩만 빼놓고 다른 비빈들은 데리고 가셨지 않냐고 함. 망기가 그게 섭섭했냐고 묻는데 고개를 저으면서도 안색이 안좋은게 그때의 일이 어지간히 속상했던 모양이었음. 춘추가 스물이 넘었어도 아직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는지라 못이기는척 이번엔 우리 둘이서만 밖에 나가자고 하니까 언제 그랬냐는듯 표정이 밝아지는게 영락없는 철부지 소녀 같았음. 강징이 해사하게 웃으니까 망기가 그렇게 웃으면 사내의 음심을 부추기는 셈이 된다고 다른 사내 앞에선 절대 그렇게 웃지 말라고 함. 강징이 제 미소는 이 세상에서 폐하만 보실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는 까치발을 들어서 입가에 입을 살짝 맞춤. 그래놓고는 부끄러웠는지 수줍어하며 눈웃음을 치는데 회임중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몸을 겹치고 싶을 정도로 거세게 정욕이 일었음. 세필붓으로 그린듯 얇고 긴 눈썹에 살구같이 동그랗고 고운 눈에 오똑한 코 웃을때마다 예쁘게 올라가는 입꼬리 눈처럼 하얀 피부에 선녀같은 몸짓까지 모두 다 가진 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애틋한 눈빛으로 강징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여서 농밀하게 접문을 한 후에 놓아주니 호흡이 딸리는지 용포 자락을 잡고 헐떡임.




강징이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부른 배를 감싸안고는 신첩의 몸이 이래서 당분간 시침을 들수가 없으니 송구하다고 말함. 망기가 송구할게 뭐가 있냐고 피곤할테니 일찍 쉬라고 그대가 자는 모습을 보고 가겠다고 함. 강징이 신첩이랑 같이 침수드시지 않구요? 오늘은 다른 비빈의 처소로 가실거냐고 조심스럽게 묻는데 그런게 아니니 얼른 안으로 들어가자고 함. 망기는 강징이 침의로 갈아입고 침상에 눕는것을 보고 풍한에 걸릴까봐 계수를 꼼꼼하게 덮어주었음. 많이 피곤했는지 일각도 채 안되서 금세 깊은 잠에 빠졌겠지. 아이처럼 순하고 말간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도저히 참고 견딜수가 없어서 작게 욕지기를 내뱉고 하의를 풀어헤치고 잔뜩 성이 난 것을 쥐고 흔들었음. 잠든 이를 보며 수음을 하는 추한 꼴이라니 황제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 육궁에 널린게 여인인데 치미는 욕정을 못이겨 아무나 품는다고 해서 문제가 될리도 없건만 제 정인이 다른 여인 때문에 속이 상해 우는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음. 일전에 강징의 태도에 화가 나서 서비와 영상재를 연달아 찾은 일로 강징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어. 투기를 한다고 남들이 손가락질을 할까 앞에선 차마 내색도 못하고 베개가 다 젖도록 숨죽여 울었다는 말을 연희궁의 상궁에게 듣고 나서부터는 도저히 다른 여인을 품을 엄두가 나지 않았음. 황제는 빠르게 성기를 훑다가 짧은 신음과 함께 비단 영견으로 튀어오르는 사출액을 막아내고 한숨을 쉬었음. 엉망이 된 영견이 하필이면 강징이 서툰 솜씨로나마 직접 자수를 놓아 선물로 준 것이기도 했고 시침을 들 정도로 몸이 회복되려면 족히 반년은 더 있어야 할텐데 그때까지 참으려니 그 기다림이 너무 버거울것만 같았거든. 황제는 젖은 영견을 소매에 넣어 감추고 잠든 얼굴을 만지려다가 손을 거두고 급히 그 자리를 떴음.




그 다음날 강징은 아침 일찍 황제와 함께 마차를 타고 출궁을 했음. 마차에 난 작은 창문으로 바깥 풍경을 구경하면서 몹시 신나하는데 평복을 입은 망기가 바깥에 나가는게 그렇게도 좋으냐고 물어봄. 강징이 폐하와 단둘이 출궁을 하는건 처음이라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가 바깥에서도 그렇게 부를거냐는 말에 아잠이라고 급히 호칭을 바꿨는데 여염집 부인들은 지아비에게 그런 호칭을 안쓴다고 함. 강징이 그제야 깨달은듯 싱긋 웃으면서 낭군하고 고쳐 부르니 망기가 예 부인하고 대답을 함. 강징은 마차가 시전 앞에 정차하지 않고 그대로 시전을 지나치길래 행선지가 어디냐고 궁금해서 물었는데 꽃이 예쁘게 핀 들판이 있다고 거기부터 가자는 말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함. 얼마 못가서 들판에 다다랐을때 눈앞이 펼쳐진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함. 만삭의 몸이라서 마차에서 내릴때 손을 잡고 부축을 했더니 몸이 제대로 안따라주는게 힘든지 잠깐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들꽃이 잔뜩 핀 들판을 보더니 다시 표정이 밝아졌어. 진귀한 보석을 그렇게 많이 안겨주어도 이리 밝은 표정은 좀처럼 보여주지 않더니 수수한 들꽃에 저리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걸 보니 신기하기만 함.



망기가 잠깐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강징이 벌써 꽃을 꺾어다가 눈앞에 내밀었음. 낭군 이것 보세요. 제비꽃이에요. 황궁의 화원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것인데 여기에는 이렇게 많이 피었네요. 강징이 손에 쥔 꽃을 만지작거리면서 좋아하다가 다른 꽃들을 보고는 꽃이 더 많이 핀 쪽으로 다가감. 망기는 강징이 넘어지기라도 할새라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가는데 강징이 꽃을 여러송이 꺾어오더니 이리저리 엮어서 금세 작은 화관을 만들어서 쥐고 예뻐함. 그리고는 이럴줄 알았으면 아린도 데리고 올걸 그랬다고 아쉬워 할거야. 공주에게 씌워주고 싶은데 궁에 가져가자니 망가질것 같다고 무척 속상해함. 망기가 다음번에는 아이들도 데리고 청유를 나오자고 했더니 만족스러운지 활짝 웃음. 망기가 땋은 머리를 비단 끈으로 매듭지어 묶은 강징의 머리카락에 제비꽃을 꺾어다 꽂아주니까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만지작거림. 꽃처럼 어여쁘냐고 묻기에 반쯤 농으로 아니라고 했더니 전보다 살이 쪄서 어여쁘지 않냐고 침울해 함. 망기가 웃으면서 장난이라고 아무리 예쁜 꽃을 가져다 대어도 그대의 미색에 비할게 못된다니까 낯간지러운 말을 잘도 하신다고 툴툴거리면서도 내심 기분은 좋은 모양이었음.





근처에 작은 개울이 있어서 손을 씻을겸 해서 갔더니 강징이 흙바닥에 그대로 앉으려고 하기에 만류했더니 입고 있던 배자를 벗어서 깔고는 신고 있던 신을 벗으려고 함. 부른 배 때문에 몸을 숙이기가 힘들어서 어쩔줄을 몰라하는 것을 보고 직접 신을 벗겨줬더니 발이 퉁퉁 부어 있었음. 어찌 이러냐고 물으니 회임을 해서 그런거라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함. 혼자 고생하는게 보기 안쓰럽고 딱해서 몸이 불편하면 이야기를 하지 그랬냐고 하니까 발이 조금 부은거 말고는 괜찮대. 망기가 몸이 아프면 숨기지 말고 기탄없이 말을 하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임. 조금 붓긴 했어도 희고 고운 발을 개울물에 담그고는 발장구를 치는것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어릴적에 먼발치서 몰래 훔쳐보았던 천진난만한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음. 그때는 잠시 앓고 지나가는 가벼운 열병과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때 그 사람이 어느새 제 아이를 둘이나 낳고 뱃속에 또 아이들을 품고 있으니 가슴이 벅찼음. 이런저런 생각에 잠깐 정신이 팔린 사이에 강징이 폐하하고 부르기에 깊은 상념에서 깨어남. 어느새 치마를 무릎 밑까지 걷어올리고 개울에 들어가 서 있는 모습에 놀라서 그러다 미끄러진다니까 송사리가 있다고 신기해 함. 너무 작고 귀여워요. 아윤이 이 물고기를 봤으면 무척 좋아했을텐데 하길래 괜히 부아가 치밀어서 그대는 눈앞에 있는 낭군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궁에서 편히 있을 공주랑 황자 생각밖에 안드냐고 했더니 당황했는지 아무런 말 없이 눈을 깜빡임. 강징이 바로 물밖으로 나와서 옆자리에 앉더니 젖은 발을 치맛자락으로 감추고는 신첩 때문에 화가 나셨냐고 물어봄. 망기는 괜한 소리를 했단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아니라고는 못하고 모처럼 시간을 내어 궁밖에 나온것이니 오늘만큼은 아이들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함. 강징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알겠다고 하는데 망기는 이젠 자식들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치졸한 사람이 된것 같아서 자괴감까지 들 지경이었음. 잠시후에 망기가 발이 젖어서 춥지 않냐고 물으니까 강징이 조금 춥다고 함. 이제 마차로 돌아가는게 좋겠다고 손을 내미는데 강징이 손을 잡고 일어나려다가 중심을 잃는 바람에 하마터면 앞으로 넘어질뻔 함. 망기가 놀라서 조심하라고 넘어지지 않게 허리를 끌어안아 부축하고 그 이후에는 마차까지 손을 잡고 걸었음.





두 사람은 시전에 있는 객잔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나와 시전을 구경했음. 강징에게 줄 고기 전병을 사왔는데 작은 좌판에서 아이들이 신을만한 작은 버선과 비단신을 보고 있기에 이런건 집에도 있다고 했더니 집에 있는것과는 자수 기법이 다르다고 연꽃이 수놓인 비단신을 잡으며 하나만 사주시면 안되냐고 함. 좌판의 상인이 사람 좋게 웃으면서 부인께서 마음에 들어하시는 모양인데 하나만 사주시라고 하는 말에 못이기는 척 종류별로 다 사겠다고 하니 허리를 굽신거리며 값을 깎아주겠다고 함. 망기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전낭에서 은자 다섯냥을 꺼내 내밀었음. 상인이 생각치도 못한 액수의 돈을 보고 깜짝 놀라서 여기에 있는 물건의 값을 다 치뤄도 은자 두냥값이 채 안된다고 건넨 돈을 받으려고 하지 않음. 그러더니 은자 다섯냥이면 쌀이 여섯섬인데 이리 많은 돈을 어찌 받겠냐고 손사래를 침. 망기는 내 내자가 그대의 물건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만으로도 그만한 값을 한 셈이라고 돈을 손에 쥐어주고는 신과 버선을 싼 종이를 멀찍이 서 있던 마부에게 건네줌. 그리고는 마부가 들고 있던 전병을 받아서 강징에게 건네주었음. 강징은 전병을 보고 눈이 커다래져서 다람쥐마냥 양손에 전병을 꼭 쥐고 야금야금 뜯어먹다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망기의 시선이 민망해져 요즘들어 부쩍 식탐이 늘었다고 보기 흉하냐고 물어봄. 망기가 웃으면서 그대는 먹는것도 복스럽고 어여쁘다니까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전병을 마저 먹었음.



망기가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를 영견으로 닦아주는데 강징이 영견에 놓인 자수를 보더니 영상재가 선물로 드린 영견이 아니냐고 함. 강징이 웃으면서 영상재의 자수 솜씨가 육궁에서 제일이라고 칭찬을 하겠지. 망기는 강징이 별다른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황해서 변명을 줄줄이 늘어놓음. 그대가 준 영견이 더 마음에 드는데 얼마전에 서예를 하다 먹이 묻어서 세답을 하라고 했다고 거짓을 말함. 그리고 얼마전에 강징이 만들어 준 향낭을 보여주고는 이렇게 매일 지니고 다닌다고 그대의 자수 솜씨가 수방의 궁인들 솜씨보다 뛰어나다고 칭찬함. 강징이 그 말을 듣고는 뭔가 묘한 표정을 짓더니 어색한 웃음과 함께 영견을 몇장 더 만들어드리겠다고 말함. 사실 강징은 명문가에서 나고 자란 재녀답게 재색을 겸비하긴 했지만 다른 후궁들과는 비교했을때 재예에 능한 편이 아니었음. 다른 후궁들은 강징에 비해 신분과 외모가 뒤쳐지기는 해도 다들 뛰어난 재주를 가졌거든. 서비는 고금과 비파 쟁을 잘다뤘고 영상재는 자수를 상귀인은 가무에 능했고 심상재는 서화를 심지어 황후는 못다루는 악기가 없을 정도였음. 강징은 어릴때부터 여인들의 재예보다는 무선을 따라다니다 알게 된 검술, 궁술, 창술, 마상무예에 더 흥미를 보였던터라 무선의 도움으로 몰래 무예를 익힌적도 있었음. 그러다 부모님께 그 사실이 들통나는 바람에 크게 혼쭐이 난 뒤로는 더 이상 무예를 배우지 못함. 그래서 남들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부모님이 재예에 능한 선생을 초빙한 후부터 재예를 배우기 시작해서 다른 이들보다는 실력이 뒤쳐지는 편이었지. 강징이 수방의 궁녀보다 자수가 뛰어나단 말에 당혹감을 느낀것도 그 때문이었음. 남에게 내보이기 부끄러울 정도의 엉성한 자수 실력을 칭찬하는 말에 민망하기 짝이 없었지만 황제의 말에 부언을 하는건 불경이라서 그냥 웃고 말았음.





그 시각 경인궁의 황후는 황제가 귀비와 함께 출궁을 했다는 말을 듣고 부아가 치밀어서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잡아서 던졌음. 황후에 책립된지 2년이 다되어가는데 아직도 태기가 없다보니 조부와 부친의 계속되는 닥달에 거의 미칠 지경이었음. 이젠 석녀가 아닌가하는 의심을 받기까지 하여 고명한 의원을 불러서 진맥을 받아보는건 어떻겠냐는 서신을 받았을때는 비참함이 극에 달했음. 조부와 부친께는 차마 황제와 운우지정을 나누는 일이 드물어 회임이 되지 않는다고 아뢸수가 없었음. 황제를 모신적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지경인데 어찌 회임을 한단 말인가. 간혹 가뭄에 콩나듯 시침을 들어도 제가 회임을 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해서 체내에 정을 내는 법이 없었음. 황후는 황제가 오씨 가문의 여식인 자신을 끔찍하게 여긴다는것을 누구보다 더 잘알고 있었어. 그저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을뿐이지. 정궁 황후이면 무엇을 하나. 슬하에 자식이 없으니 이대로 가면 귀비가 낳은 황자가 차기 황제가 될 것이고 황제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황자의 생모인 귀비가 모든 권력을 쥐게 될게 분명했어. 패배자가 되느니 죽는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자 그동안 쌓인 울분에 눈물이 터져나옴. 황제의 성총도 정궁의 지위도 포기할수가 없었음.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황제의 마음이 제게 향하게 해야만 했어. 황후는 상궁을 불러 태극전으로 가 심상재가 알지 못하게 은밀히 심상재의 측근인 운혜를 불러오라고 이름.




화창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더니 장대비가 쏟아져서 망기와 강징은 비를 피하기 위해서 급하게 근처에 있는 객잔으로 들어왔음. 아무래도 비가 그칠때까진 객잔에 머물러야 할듯 싶어서 객잔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객실을 빌리고 영견으로 젖은 몸을 닦아내는데 강징이 낑낑대면서 의복의 매듭과 씨름을 하고 있었음. 궁인들의 수발을 받는것이 익숙해진데다 비에 젖은 의복이 몸에 착 달라붙어서 쉽게 벗겨지지가 않았거든. 강징은 잔뜩 울상을 지은채로 망기를 쳐다보다가 결국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낭군하고 그를 불렀어. 여전히 손가락을 꼼질대면서 의복을 벗겨달라는 말을 꺼내는게 부끄러워서 차마 꺼내지 못하고 죄없는 매듭만 만지작거리다 입을 삐죽댐. 망기가 눈치를 채고 다가와서 상의의 매듭을 풀어서 옷을 벗겨내는데 하필이면 시선이 닿는 곳이 가슴이라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음. 혼인을 한지 얼마 안된 신혼의 부부도 아닌데 젖은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굴곡진 가슴 위를 타고 흐르는 것이 왜 이렇게 외설적이고 낯이 뜨거운지 상의를 벗겨내자마자 미친듯이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강징이 들을까봐 급하게 뒤돌아섰음. 강징이 의아해서 소매를 붙잡는데 망기가 점원에게 부탁해서 탕욕을 할수 있게 따뜻한 물을 들이라고 하겠다고 밖은 추우니 안에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는 급하게 밖으로 나감.




망기는 장막 너머에서 들리는 물소리에 눈을 질끈 감았음. 시전에 있는 객잔이다보니 욕전은 따로 없고 객실 한구석에 욕통을 놓고 얇은 장막으로 가려놓은 수준이라서 무엇을 하는지 다 비쳐보였음. 이미 숱하게 몸을 섞어와놓고 갑자기 내외를 하는것도 우스웠지만 강징만 보면 시도때도 없이 불쑥 치미는 정욕을 참기가 힘들었음. 아이를 가져서 힘들어하는 이를 상대로 제 욕구를 채우기도 죄스럽고 금욕을 하자니 그것 또한 힘들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이었음. 강징은 탕욕을 끝내고 천으로 몸을 감싸고 침상으로 왔다가 망기가 얼굴이 잔뜩 붉어진 채로 식은 땀을 줄줄 흘리는 것을 보고 놀라서 폐하하고 소리쳐 부름. 도대체 어디가 안좋으신거냐고 지금 당장 황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이마를 짚는데 망기가 아픈것이 아니라고 함. 강징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매만지는데 망기는 가까이서 훅 끼치는 강징의 특유의 체취에 눈앞이 아득해짐. 이러다 이성을 잃을것만 같아서 일어나려는데 강징이 뭔가 이상한것을 깨닫고 팔을 붙잡음. 강징이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제가 쌍생을 회임을 해 이전과 다르게 살이 급격하게 찌는 바람에 더 이상 제게 동하지 않으시는거냐고 물음. 망기가 그런게 아니라고 하니 얼굴을 잔뜩 붉히고는 그럼 어젯밤에는 왜 혼자서 수음을 하신거냐고 물어봄. 망기가 당황해서 말을 제대로 못 잇으니까 강징이 후궁이 싫으시면 궁인이라도 품으시라고 연희궁에 새로 들어온 아이가 있는데 제법 자색이 뛰어나니 궁으로 돌아가면 폐하의 시침을 들 준비를 시켜놓겠다고 함. 망기가 계속 그런게 아니라고 하는데도 앞으로는 절대 투기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가슴에 얼굴을 묻고 진주알 같이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림. 자신도 다른 여인과 별반 다를것이 없어 낭군이 다른 여인을 품는게 무척 속이 상하지만 어쩔수가 없다는 것을 잘안다고 출산을 하면 몸매를 예전처럼 가꾸겠다고 함. 졸지에 회임을 한 부인이 살이 쪘다는 이유로 소박을 놓은 나쁜 지아비가 되어버리니 가슴에 큰 돌덩이를 짓누르는듯 했음. 제 속도 모르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면서 우는데 우는 모습마저도 아름다워서 미칠 지경이라 망기는 긴 한숨과 함께 강징을 조심스럽게 밀어냄.



망기강징 망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