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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19:20
쟤는 왜 하필 저딴 새끼랑 사귈까.
멀찍이서 살랑거리는 금발머리를 볼때마다 칼럼은 어김없이 같은 생각을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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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쟤는, 오스틴 버틀러는 꽤 애매한 시기에 온 전학생이었음. 지역을 옮겨 이사한 것도 아니면서 굳이 졸업반이 다 돼서 낯선 학교에 올 필요가? 그런 부분이 첫날부터 꽤 눈길을 끌었는데, 실은 그보다 걔의 화려한 외모가 더더욱 눈을 사로잡았음.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나중에 전해듣기론 전학생이 아니라 편입생이라고 했음. 어릴때부터 내내 홈스쿨링을 했다던데 마지막만큼은 학교생활이란걸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지.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으니 나름의 로망이 있었던것 같은데 내가 쟤 부모였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았을거임. 특히나 저딴 새끼랑 애인이랍시고 붙어다니게 될 걸 알았다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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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 나름 작은 사회라서, 서로 마음이 맞고 어울리는 애들끼리 그룹을 짓는 경우가 많지만 개같이 싫은데도 어쩔수 없이 어울려야 하는 경우도 있음. 바로 나처럼.
이 학교는 럭비로 꽤나 명성이 자자한 곳이라 스카우터들의 눈에 띌 아주 좋은 기회를 자주 잡을 수 있음. 칼럼도 그 기회를 위해 일부러 긴 통학시간을 감수하면서까지 이곳에 적을 두고 있는거고. 하지만 럭비 실력과 인성은 딱히 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단지 럭비팀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딸려오는 인기에 힘입어 자기가 뭐라도 되는양 으스대며 다니는 덜자란 놈들도 많음. 개중 좋은 녀석도 있지만 상종도 하기 싫은 개자식의 비율도 꽤 높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럭비는 팀스포츠라서 말이지. 나혼자 잘해도 안되고 싫은 새끼라고 제쳐도 안되고 그런 새끼들과 척을 지는건 더더욱 안됨. 그건 결국 나한테 해가 돼서 돌아오니까. 팀메이트와 불화를 일으키면 대입에 지장이 생길거고, 칼럼은 그런 사소한 일로 제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 생각따위 조금도 없음. 그러니 아무리 싫어도 적당한 동료애를 보이며 최소한의 사교생활이란걸 해야 했음.



그 최소한의 사교생활 중엔 개소리 들어주기가 포함되는데 보통 누구랑 잤다느니, 앞으로 누구랑 잘거라느니(물론 이런 대화에서 '잤다'라는 고상한 표현은 쓰지 않지만) 하는 내용이 주를 이룸. 대충 한귀로 듣고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여주는걸로 사회성의 최대치를 끌어올리곤 했음. 간혹 아는 이름이 나오면 그냥 듣는것만으로도 굉장히 거북했지만 어차피 저런 새끼들은 졸업해서 볼 일이 없을거니까. 쟤들의 럭비인생은 하이스쿨 선에서 끝날게 뻔함. 어쩌다 운좋게 대학팀에 들어가거나 프로로 진출하더라도 어느순간 연기처럼 사라질 놈들임. 그러니 하나하나 딴지걸어서 잡음 일으키느니 적당히 흐린눈 하고 넘기면서 무시하는게 편하고 이로운 일이었지.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그새끼들 입에서 오스틴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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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은 전학오던 날부터 모두의 눈에 띄었음. 라커룸에서 그 애의 외모를 반찬삼아 도를 지나친 성희롱을 하며 낄낄대는 새끼들을 보며 그냥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넘겨버렸음. 며칠 지나면 사그라들 관심일테니. 하지만 그 관심은 나날이 커져만 갔고 자기들끼리 내기를 벌이는 수준까지 가버림. 늘 그렇듯 누가 먼저 걔를 "따먹느냐"는 걸로.



관심을 끄려고 해도 하루하루 라커룸에서 떠들어대는 목소리들로 생중계를 듣다보니 자연스레 진행 상황을 알게됐음. 보통같으면 벌써 눕혀서 존나 박아주고도 남았을텐데 엄청 까다롭다고, 분수도 모르고 눈만 높아서는 싸가지도 없다며 쌍욕을 섞어가며 말했음. 그냥 막무가내로 들이댔다가 거절당한거면서 자존심에 역으로 욕하며 쎈척하는게 뻔했지. 오스틴에 대해 잘 모르지만 간혹 학교에서 마주쳐 멀찍이서 봐도 조용조용하고 얌전하게만 보이는데 말임. 보통같으면 럭비팀이라는 타이틀만 가지고도 쉽게 낚았을텐데 그게 안되니 자존심 상하고 화가 났겠지. 오스틴 걔 사람 가릴줄 아는구나. 칼럼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음.
아무튼 세번째 주자까지 실패했으니 당연히 이 멍청하고 병신같은 내기는 슬슬 막을 내릴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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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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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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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데이빗 없어.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됐을까. 내가 왜 여기에 끼어들었을까... 칼럼은 오스틴과 나란히 밤거리를 걸으며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나무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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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쉽게 끝날 줄 알았던 그 내기는 네번째로 나선 새끼-데이빗-의 선방으로 계속 이어지는 중이었음. 앞서 관찰한 세번의 실패를 보며 나름 학습이란걸 했는지 접근법을 바꾼거였지. 우연을 가장해 오스틴에게 접근해 통성명을 하고, 오스틴의 취미를 함께 즐기는척 하며 친구가 되고, 인터넷에서 긁어온 오글거리는 대사로 수줍은 척 고백을 하고...
라커룸에서 하루하루 자신이 했던 짓을 업적마냥 늘어놓으면 내기의 무리들은 크게 떠들고 벽을 치며 요란하게 웃어대기 바빴음. 그거 한번 따먹기 존나 힘들다고, 근데 그정도 얼굴을 가졌으니 공좀 들여도 아깝지 않다는둥 또 원색적인 말들을 늘어놓았지.
칼럼과 눈이 마주친 다른 팀메이트 몇몇이 작게 눈썹을 올리며 어깨를 으쓱여보였음. 저새끼들 또 개소리한다 이거지. 정신 똑바로 박힌 놈들은 저런 대화에 끼지 않음. 칼럼도 그렇고. 그런데 평소라면 그냥 개소리로 넘겼을 말들이 이상하게 마음에 하나하나 바늘처럼 날아와 박히는 기분이 들었음. 그냥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이상하게 짜증나고 화가 치밀었지. 자기도 모르게 라커룸 문을 평소보다 세게 꽝 닫고 나가버리자 뒷통수로 저새끼 왜저러냐는 수군거림이 들려옴.



그런데 그땐 몰랐지. 눈으로 보는건 귀로 듣는것보다 몇백배는 더 열받는 일이라는걸.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라커룸으로 들어서던 칼럼은 입구에서 우뚝 멈춰서고 말았음. 안쪽에 오스틴이 수줍게 웃으며 서있었음. 데이빗과 손을 잡고서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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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라커룸에서는 자주 오스틴을 볼 수 있었음. 보통 팀메이트들이 사귀는 애를 여기로 데려오는 일은 잘 없음. 여기서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잘 아니까. 정신나간 새끼들은 지들 맘껏 대화하기 위해 안데려오는거고, 정신 똑바로 박힌 놈들은 그거 들려주기 싫으니까 안데려오는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빗이 기어코 오스틴을 데려오는건 일종의 과시였음. 자기가 따낸 트로피를 자랑하기 위함이었음. 그리고 이 내기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는 데이빗은 '아직' 오스틴을 끝까지 건드리지 않았지. 오스틴은 남자친구가 자신을 그의 친구들에게 소개해주며 관계를 공고히 하고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아님. 데이빗은 지금 저새끼들 앞에서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을뿐임. 내가 곧 얘를 따먹을거라는. 오스틴 걔 사람 가릴줄 안다는거 취소.



칼럼은 그 모든걸 알고있으니 속이 터질 것 같음. 최선을 다해 그쪽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를 써봐도 자꾸만 시선이 감. 나풀대는 금발이, 수줍게 웃는 입꼬리가 자꾸 눈끝에 걸림. 그러다 시선을 느낀 오스틴과 슬쩍 눈이 마주치기도 했지만 칼럼은 빠르게 눈을 돌려버리곤 했음.
사실 칼럼이 끼어들 일은 아님. 저새끼들이 나쁜 의도로 시작한게 맞긴한데 오스틴도 데이빗이 좋다면 어쩔수 없는일임. 사귀는 사이에 잘 수도 있는거고.. 물론 내기를 걸고 하는거긴 하다만 그러다 평범한 연애를 하게될 수도 있는거고. 어쨌든 칼럼이 끼어들 일이 아님. 답답해할 일도 아니고 화가 날 일도 절대 아니란 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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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사교생활 중에서도 칼럼이 주로 피하는 것이 있다면 파티임. 시끄러운게 싫기도 하고 그새끼들이랑 친한척 어울리는 것도 싫어서 매번 집이 멀다는걸 핑계로 참석 안하거나 중간에 빠져나오곤 했음. 그런데 이번 파티가 데이빗과 제일 긴밀하게 지내는 놈의 집에서 열린다는 말에 칼럼은 묘한 불안을 느낌.



그리고 그 불안은 현실이었음. 칼럼은 자기가 방금 뭘 들은건지 두번쯤 더 복기해본 후에야 정신이 들었음. 데이빗은 자신이 그렇게나 공들인 내기의 종지부를 바로 오늘 이 집에서 찍고자했음. 이건 그걸 위한 파티였고. 그리고 그 내기의 증거확보를 위해 카메라를 설치할 계획을 세우며 수군거리고 있었지. 화장실을 찾아 우연히 2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면 절대 못들었을 이야기임.



그래서, 급히 현관을 열었다가 오스틴을 마주한 칼럼은 순간 할말을 잃었음. 당장 걔를 여기로 못오게 할 생각이었음. 근데 연락처도 모르고 집주소도 모르잖음. 나가서 기다리기라도 하려고 일단 밖으로 나가는데 마침 현관에서 딱 마주친거지. 갑자기 열린 문과 문 앞을 막아선 커다란 덩치에 당황했는지 긴 속눈썹을 깜빡이며 올려다보는 얼굴이 마냥 순했음. 비키라는 말대신 인사를 건네는 착한 태도에 칼럼은 말문이 막힘. 너 네 남자친구가 얼마나 개새끼인지 모르지?
마주치면 사실대로 다 말해주고 집에 보내려 했는데 막상 얘 얼굴을 마주하니 도저히 그럴수가 없었음. 그 말들에 잔뜩 상처를 입을 것 같았음. 그래서 그냥 안에 데이빗이 없다는 거짓말을 하고선 다급하게 등을 살짝 밀어내며 바깥으로 이끌었음.



그동안 얼굴이나 봤지 말한번 섞어본적 없으니 둘사이에 할말이 뭐가 있겠음. 대충 데이빗이 일이 생겨서 못오게 됐으니 나한테 너 집에 데려다주라고 했다는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함. 말해놓고도 이걸 누가 믿나 했는데 의외로 오스틴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따라나섬.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고 그냥 조용히 천천히 걸어감.
그렇게 침묵 속에서 나란히 어두운 주택가를 걸어가는데 간혹 어깨가 스칠때마다 흘긋 옆을 살펴보면 오스틴은 늘 그렇듯 조용한 얼굴이었지. 달빛같은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이 뺨과 가느다란 목선 근처에서 살랑이는게 눈에 들어옴. 그러고보니 라커룸에서 애새끼들이 떠들던게 자연스레 떠오름. 얼굴은 반반한데 목석같아서 손만 잡아도 화들짝 놀란다느니, 입술이 통통해서 감촉이 존나 좋은데 혀 넣으려니까 울려고 했다느니.. 오스틴에 대해 알고있는 그나마의 작은 정보들조차 다 그새끼들이 출처라는 점에서 칼럼은 화가 치밀어오름.
그때 오스틴의 휴대폰이 작게 울렸음. 어둑한 밤거리에서 액정이 유독 밝게 빛나며 데이빗의 이름을 띄우고있었지. 칼럼은 아차싶음. 너무 뻔하게 드러날 거짓말을 해버린 스스로가 바보같이 느껴져서 손으로 이마를 짚음. 어떻게 해명하면 좋을지 감도 안잡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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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거 받아?

-.....어?

-나 이거 받아?




그런데 액정의 이름을 조용히 내려다보던 오스틴이 시선을 들어 칼럼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음. 그걸 왜..나한테..? 의아함에 바보같이 어?? 하고 되묻자 오스틴이 여전히 조용한 목소리로 한번더 똑같이 물었음. 가만히 그 파란눈을 들여다보던 칼럼이 말없이 고개를 저어보이자 오스틴이 작게 웃으면서 전원을 꺼버림.
2024.07.02 10:23
ㅇㅇ
모바일
미친!!!!!!!! 센세 이건 어나더를 주셔야만해요!!!!!!!!
[Code: cdda]
2024.07.02 17:05
ㅇㅇ
모바일
나 이거 받아?



아 미친......센세...저는 어나더로 받을게요
[Code: 2013]
2024.07.02 17:06
ㅇㅇ
모바일
ㅁㅣ쳣다ㅠㅠㅠㅠㅜㅜ
[Cod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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