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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23:48
어나더



ㄴㅈㅈㅇ
날조 주의
약캐붕 주의
개연성 없음 주의
급전개 주의







허니의 손이 무신경하게 가이드 서약서를 뒤적였다.
센티넬이 정부 기관으로 차출되는 일은 있어도 정부에서 매칭이 없는 가이드를 들여오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그것도 연방수사국에서 요원으로는 더욱 더. 센티넬이야 가이드가 없어서 업무 효율이 떨어져도 그런대로 활용할 수 있다지만 센티넬 틈에서 가이드가 살아남아 요원으로서의 한몫을 할 거라는 기대치는 낮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중에 매칭 센티넬이 확인되어서 FBI에서 나가기라도 하면 그것도 손해다.
하지만 일반인만큼의 몫을 하겠다며 요원으로서 자발적으로 들어온 가이드는 수사국의 입장에서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저 매칭 센티넬을 확인할 때 FBI 내의 요원을 대상으로 먼저 대조하고, 내부에서 센티넬이 확인된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가이딩하겠다는 서약서에만 서명하면 된다. 센티넬과 같이 나가는 게 아닌 이상은—놓아줄 리가 없지만—사표조차 수리되지 않는다. 그 수가 많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자발적으로 들어온 가이드 중에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하는 인원은 매칭 가이드이자 요원으로 일하게 되는 것이고 실패할 경우에는 가이드의 역할만 수행하게 된다.
허니가 서명한 것도 그 서약서였다. 아카데미 중간 평가 단계에서 센티넬 DB를 스캔할 때 하치너 요원이 확인되지 않은 건 순전히 하치의 매칭 센티넬이 헤일리 하치너로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일 거다. 단순히 가이드로 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남들보다 하나 더 서명한 서약서에는 애석하게도 서약 파기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아마 파기가 되는 유일한 방법은 둘 중에 하나가 사망해야 되는 것일 거다. 허니에게는 이 모든 게 운명의 장난 같았다.

[사건입니다!]

가르시아의 문자에 허니는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여러분을 주말에 부르려니까 마음이 너무 안 좋아요. 하지만 불행 중에 다행인 건 전용기를 탈 필요가 없다는 거죠! 여기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가면 있는 곳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이에요. 지역 경찰이 도움을 요청했고요.”
“전용기 타는 게 오히려 더 나은데.”
“가르시아, 하치는?”
“아, 팀장님은 조금 늦으신대요. 잭이랑 밖에 있다가 잭을 이모네 집에 내려주고 온다고 하셨으니까 기다리면 오실 거에요.”

어느 순간부터 브리핑룸에서 자연스럽게 허니의 옆에 앉기 시작했던 리드가 콧잔등을 집더니 허니의 손을 잡았다. 금요일에 퇴근해서 한숨도 못 잤다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허니를 가만히 응시한다.

“너 파장 진짜 약해. 다른 사람만 도와주다가 진짜 큰일 나.”

리드가 남는 손으로 허니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허니는 눈을 굴리고 피식 웃었다.

“그런 말 할 거면 손이라도 빼고 하세요, 박사님—”
“그렇지, 미안.”

리드가 손을 빼려고 했지만 허니가 힘을 줬다.

“어차피 하치한테 안 쓰니까 괜찮을 거야.”
“늦어서 미안, 가르시아, 시작해.”

허니가 잘못한 걸 들킨 어린아이 마냥 리드의 손에서 제 손을 황급히 빼냈다. 하치는 둘에게 잠깐 시선을 뒀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버지니아 리치먼드에서 총 4명이 살해 당하고 골목에 유기되었어요. 4번째 피해자에 대한 실종 신고가 이틀 전에 이루어졌는데 오늘 발견되었죠. 심하게 맞았고 칼로 여러 차례 찔렸어요.”

가르시아가 피해자들의 신분증 사진과 시신 사진이 차례로 떠올라있는 tv를 등지고 설명했다.

“4명이 성별, 머리 색깔, 인종, 직업까지 다 다르네.”
“발견된 위치도 다르고요.”
“하지만 나이대는 비슷해.”
“연쇄 범죄라고 보는 이유가 뭐래요?”
“사실은 가장 큰 공통점이 있거든. 4명 다 최근 1년 안에 가이드로 발현했어요.”
“가이드에 대한 혐오 범죄라는 건가?”
“공격 양상을 보면 그렇게 보여요.”
“매칭 센티넬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면 언썹이 피해자들이 가이드인 줄 알기 쉽지 않았을텐데.”
“가르시아, 피해자들이 전부 가이드였다는 것 외에 다른 공통점이 더 있는지 살펴봐. JJ랑 리드는 가장 최근 피해자가 발견된 장소로 가보고, 나머지는 경찰서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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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 모두가 시신으로 발견되기 전 5일 이내에 특정 바에 들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특이한 점이 있는데, 유기 장소를 이어서 그리면 원과 유사한 모양이 돼요. 그리고 이 안에는,”

리드가 한 지점에 송곳을 꽂았다. 바는 시신이 유기된 각 지점을 이어서 그린 원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여기를 고른 이유가 뭘까?”
“여기가 언썹에게 유의미한 장소여서일까요?”
“이 근방에서 가장 큰 곳이라 그랬을 수도.”
“언썹의 주거지는 바 근처일까?”
“지리학적으로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 편이 제압해서 납치하기에도 용이하겠지.”
“바에서 피해자들의 어떤 행동이 주의를 끌었을 거에요.”

보드에 붙어있는 피해자들의 사진을 지켜보던 JJ가 두 번째 피해자를 짚었다.

“이 사람은 피해자들 중에 나이가 제일 많은데 가장 최근에 발현했어요.”
“바 직원이 말해줬는데 같이 온 사람이랑 센티넬에 대해 하도 시끄럽게 얘기를 해서 기억하고 있었대요.”
“남자인데다 늦은 발현이고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면 간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죠. 운명적인 만남에 두근거리기까지 했을걸요.”

허니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대꾸했다.

“술도 마신 상태니까 센티넬을 찾을 수 있다는 미끼로 접근하면 충분히 바에서 빼낼 수 있었을 거에요.”
“가장 쉬운 방법은 자기가 바로 그 센티넬이라고 하는 거지.”

언썹은 센티넬과 가이드의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근본적인 신뢰를 이용하고, 흔들어놓고 있었다. 

“데이브, 언썹이 센티넬이라고 보세요?”
“일반인일 수도 있고, 가이드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설득이 쉬운 건 센티넬일 거야. 거기다 공격 수준을 보면 센티넬 정도의 힘은 되어야 가능할 거고.”
“그럼 가이드가 처음 만난 센티넬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는지 알고 있는 사람일 거에요.”
“언썹도 한때 가이드가 있었을 거야.”
“공격성 때문에 떠났겠죠.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었거나요.”
“버림 받은 기분이었을 거에요.”
“분노가 끓어오르겠지. 그래서 매칭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센티넬을 원하는 가이드를 찾아서 죽인 거군.”

하치가 가르시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르시아, 리치먼드에서 매칭이 파기된 센티넬이 있는지 찾아볼 수 있나?”
“찾아볼게요. 어...있긴 있는데 파기된 지 얼마 안 지나서 센티넬들도 다 사망했어요.”
“파기가 되었어도 센터에 신고하지 않았을 거에요.”
“그럴 듯하네.”
“가르시아, 가정폭력으로 신고된 센티넬은요?”
“훨씬 나은 접근이야. 많은 수는 아니지만 있긴 있어. 보냈어요!”
“전부 접수된 건 아니겠지만 프로파일과 대조해볼 가치는 있겠어. 고맙네, 가르시아.”
“언제든지 연락해주세요!”
“프로파일 먼저 전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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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썹은 30~40대 사이의 센티넬 남성입니다.”
“한때 매칭 가이드가 있었지만 지금은 혼자 지낼 겁니다.”
“그 이유는 시신에서도 보여지는 공격성 때문이죠. 가이드를 폭행했을 거고 결국 가이드는 도망쳤지만 언썹의 머릿속에서는 자신을 버리고 간 거나 마찬가지일 거에요.”
“가이드가 도망친 일이 기폭제가 되어 살인을 저지르게 된 걸로 보입니다.”
“그 상실감으로 인해서 발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센티넬을 절실하게 찾는 가이드에게 분노를 느끼고 납치, 살인하는 것이죠.”
“피해자들을 납치하는 곳은 시내에 있는 바로, 언썹이 자주 방문하는 곳입니다. 그곳에 방문한 피해자에게 자신이 매칭 센티넬이라고 속여서 유인하는 수법을 사용합니다.”
“센터와 경찰에 가정폭력으로 신고된 센티넬 목록을 보고 있는데, 강압적인 특성 때문에 아예 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바 주변에 사복 순찰 인력을 강화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권장드립니다. 사회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으니 구체적인 수법은 언론에 유출하지 말아주십시오. 감사합니다.”

팀원들은 다시 회의실로 돌아왔다. 밖은 해가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을 집집마다 방문할 건 아니잖아요.”
“너무 오래 걸려. 당장 오늘부터 경비가 강화되면 언썹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빨리 잡아야 해.”
“그걸 어떻게 하죠?”
“놈이 피해자들을 유인했으니까, 반대로 우리가 유인해야지.”
“저는 찬성이요.”

모건을 시작으로 팀원들이 차례로 고개를 끄덕였다.

“언썹은 센티넬이기 때문에 가이드가 아닌 사람을 투입하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에요.”
“허니가 제일 적합할 것 같은데. 가이드이기도 하고, 어리고, 보이는 데에 마킹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보이는 데에만 없다 뿐인가, 허니의 몸 그 어느 곳에도 흔하디 흔한 마킹은 없었다.

“아무도...허니한테 매칭 센티넬이 있다는 걸 모를 거에요.”

리드가 하치의 눈치를 살피며 덧붙였다. 허니는 하나도 쓸모 없다고 느꼈던 제 정체성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면서도, 동시에 매칭 센티넬을 눈 앞에 두고 그 어느 누구도 매칭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 할 거라는 사실 때문에 참담해졌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이 언더커버를 잘 끝내면 하치가 허니를 제대로 된 요원으로, 가이드로 대우해줄지도 몰랐다.

“파장이 유연하니까 필요하면 가이딩도 할 수 있겠네. 준비해.”

하치의 말에 허니가 눈을 크게 떴다. 그가 가장 믿는 팀원들을 가이딩하게 하는 건 이해할 수 있었지만 생판 처음 보는 데다 내면이 철저하게 망가져있는 연쇄살인범을 가이딩하라는 건 청천벽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자리에 얼어붙어있는 허니를 JJ와 에밀리가 조심스레 끌어왔다.

“애런, 진심인가?”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빨리 막아야죠. 매칭이라고 믿는 가이드를 만나는 게 전에 버림 받았던 이슈를 다루는 데에 도움이 될 겁니다. 제 결정이기도 하고요.”

와이어를 차고 옷을 갈아입은 허니가 밴에 올라탔다.

“키드, 우리가 안에서 지켜보고 있을 거야.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갈 거고.”
“기억해, 언썹이 자네가 진짜 가이드라고 믿게 만들어야 해. 나랑 JJ가 안에 있고 리드랑 에밀리는 밴, 모건은 뒷문, 데이브는 정문에서 대기해주세요.”

허니가 로시와 하치를 차례로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 허니.”

전략은 단순했다. 대동한 사복 경관들과 함께 센티넬에 대해 떠들면 된다. 허니는 특별히 운명적으로 센티넬을 찾고 싶다는 걸 강하게 드러내고, 언썹이 접근할 거라는 게 계산이었다. 하치는 건너편 바 스툴에 앉아 바 전체를 눈으로 훑고 있었다. 음악 소리가 꼭 귀청이 떨어질 듯했다. JJ는 허니가 앉아있는 테이블을 지켜보고 있었다.
20여 분쯤 지났을까, 허니가 음료를 더 가져오겠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5명분의 탄산 음료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허니에게로 깔끔한 푸른색 셔츠를 입은 남성이 다가왔다.

“옆에 오는 사람이 언썹 같아.”

허니와 똑같은 자세로 바에 기댄 남성이 허니에게 말을 걸었다. 하치는 건너편에서 언썹과 대화를 나누는 허니를 보며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피가 끓는 것 같기도, 위산이 올라오려는 것 같기도 했다. 유혹하려는 의도가 명백히 보이는 허니의 눈웃음과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가 신경을 긁었다.

[당신이 제 가이드인가봐요.]
[제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센티넬이 그쪽이고요?]


인이어를 통해 들려오는 대화에 하치가 이를 으득 갈았다. 물컵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서 당장이라도 유리가 깨질 것처럼 잘게 흔들렸다. 뱃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올라와서 그의 이성을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당장 가서 둘을 떼어놓으라고, 놈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으라고 누군가가 속삭였다. 하지만 지금은 근무 중이었다. 허니의 저 행동도 모두 업무의 일환이었다. 그걸 다 알면서도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혈관을 타고 피가 미친듯 질주하는 게 귀에서 들렸다.

겨우 몇 분 이야기를 나눈 건데도, 허니는 남자가 달변가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머릿속에서 프로파일을 되뇌고 있지 않았다면, 매칭 센티넬이 존재하긴 한다는 걸 잊어버렸다면 허니라도 그 말에 속아 넘어갔을 정도로 말을 유려하게 잘 했다. 하지만 집중해서 본 남자의 파장은 꼭 파편 같았다. 부서지고 깨져서, 날카롭게 조각난 파편. 허니는 그에 맞춰 파장을 바꾸면서 남자의 팔에 손을 올렸다.

“저 가이딩 처음 해봐요.”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의식하며 그렇게 말했다. 이제 남자는 밖으로 나가자고 할 거다.
하지만 허니도, 하치도, 다른 팀원들도 계산에 넣지 못 한 건 센티넬의 본능적인 소유욕이었다. 특히 이전에 한 번 버림 받았다가 몇 년 만에 처음 가이딩을 받아 본 센티넬이라면 더욱 강할 소유욕. 남자의 눈빛이 변했다.

“여기서 당장 나갑시다.”

허니는 남자, 아니 언썹의 강한 손아귀 힘에 이끌려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데.”

부서지고 깨져서, 날카롭게 조각난 파편 같은 파장.
그만큼 언썹의 내면도 엉망진창이었다. 언썹이 손으로 허니의 목을 조르며 입술을 겹쳤다. 허니는 언썹을 위해 바꾼 날카로운 파장이 거꾸로 저를 찌르는 것 같아서 그 파장을 더이상 유지하지 못 했다. 가이딩이 사라졌다는 걸 눈치 챈 언썹이 허니를 벽돌 벽으로 밀쳤다.

“다 거짓말이잖아!!”

허니가 모자랐던 숨을 몰아쉬다가 언썹의 정강이를 걷어찼지만 권총을 꺼내 머리를 가격한 언썹의 손이 더 빨랐다.

“FBI!"

허니가 벽을 타고 무너져내리는 순간 모건의 목소리가 들렸다. 왼쪽에 겨눠진 총을 본 언썹이 모건에게 허리를 숙여 달려들다가 뒤로 물러난 모건의 앞에서 쓰러졌다. 하지만 이미 언썹의 칼이 방탄조끼가 채 가려주지 못하는 모건의 배 아랫부분을 벤 이후였다. 모건이 인상을 쓰며 칼을 발로 차 멀리 보냈다. 그 광경을 본 허니가 언썹을 몸으로 눌러서 손아귀에서 총을 빼냈다. 모건이 다가와 수갑을 채워 일으켜세웠고, 허니는 뒷문으로 나온 JJ가 부축했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면서 허니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난 하치의 서늘한 눈빛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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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는 하도 힘을 줘서 아플 정도인 턱과 잘게 떨리는 손을 무시하며 허니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무의식 중에 하치의 시선이 허니의 머리부터 발 끝까지를 몇 차례 훑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건지 비틀거리는 것 외에는 괜찮아보였는데 정작 상태가 안 좋은 건 하치 자신이었다.

나한테 와.

“모건한테 가봐.”

그쪽으로 가지 마.

머릿속에 맴도는 말을 무시한 하치가 모건 쪽을 가리켰다.
큰길로 나오자 도착해있던 구급대원이 모건을 데리고 갔다. 깊은 상처가 아니라 가벼운 처치로 마무리 되자 모건이 감사의 의미로 손을 휘저었다.

“정말 미안해요, 모건. 괜히 저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될지...”

모건에게 다가가서 두꺼운 붕대가 감긴 배 위로 조심스레 손을 갖다댄 허니가 안절부절 못 하며 연신 사과했다.

“괜찮아, 허니. 어차피 금방 나아. 그냥 운이 나빴던 것 뿐이야. 너야말로 괜찮아?”

모건이 손을 뻗어서 길게 찢어진 허니의 이마를 살폈다.

“괜찮아요. 반창고만 붙이면 괜찮아질 거에요.”
“반창고는 무슨, 의료진!”

모건의 부름에 다가온 구급대원이 허니의 이마에 거즈를 붙였다.

“제가 매칭이었으면 더 빨리 나을텐데, 매칭이 아니라 해줄 수 있는 게 덜 아프게 하는 것 뿐이에요.”

허니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자기, 너는 하치만 가이딩하면 돼. 우리는 그냥 보너스일 뿐이야.”

모건이 땀에 젖은 듯 축축한 허니의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하치...네, 그렇죠.”

모건은 저 멀리에 서서 허니의 뒤통수를 눈빛으로 뚫을 듯이 노려보는 하치에게 시선을 뒀다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자신의 배에 올려진 손만 응시하는 허니에게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게 붕대 너머로 느껴졌고 핏기가 가신 얼굴도 눈에 들어왔다.

“허니, 너 상태 진짜 안 좋아보여. 괜찮으니까 가서 좀 쉬어.”
“하치가...가만 안 둘걸요.”
“낯선 사람 가이딩했잖아. 나보다 너 스스로를 더 챙겨야지.”
“괜찮아요. 어차피 저는 이 팀에서 다른 팀원들만큼 중요한 사람도 아닌걸요...”
“허니, 무슨 그런 말을 해.”

모건이 걱정을 가득 담아 허니의 손을 감싸쥐었다.

“사실이잖아요.”
“아냐, 허니. 지금 스트레스 받아서 그래. 언더커버가 그래서 힘든 거야. 언썹 잡았으니까 잊어버리고 푹 쉬어야지. 나도 이제 들어갈 거니까 같이 가.”

옷을 정리하고 일어서는 모건과 함께 발걸음을 떼어놓던 허니를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를 악문 듯 잔뜩 힘이 들어가서 낮게 울리는 위압적인 목소리에 허니가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타.”

하치가 운전석에 타고, 허니와 리드가 뒷좌석에 올라탔다.

“괜찮아?”
“...응.”

리드의 곁에 바짝 붙어앉은 허니는 문자 그대로 덜덜 떨고 있었다. 리드가 허니의 어깨를 감싸안고 반대쪽 손으로 허니의 머리를 감싸 제 어깨에 기대게 했다.

“다 끝났어, 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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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는 백미러 너머로 둘을 지켜봤다. 리드가 허니의 손을 붙잡았다. 꼭 가이딩을 받으려는 것처럼. 하지만 허니에게서는 전원 스위치가 꺼진 듯이 아무런 형질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제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센티넬이 그쪽이고요?’

핸들을 잡은 손마디가 하얘지도록 힘이 들어갔다. 속에서 다 꺼지지 않은 불길이 여전히 그의 머리를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경찰서는 체포된 언썹에 대한 서류 처리로 분주했다. 허니는 앞에 가는 하치와 멀찍이 떨어져서 리드와 함께 걸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아직도 바 안에 있는 것 같아서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는데 자신을 부르는 하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와 똑같이 이를 악문 듯한 목소리였다.

“잠깐 얘기 좀 하지.”

하치가 허니를 불러세운 곳은 비어있는 방도 아닌, 채 정돈되지 않은 파일들이 여전히 널려있는 테이블 앞이었다. 하치가 팀원들은 물론이요, 지역 경찰이나 FBI에게조차 개방된 장소에서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걸 아는 팀원들은 눈치를 보다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무모한 행동을 했어.”

하치가 가슴 앞으로 팔짱을 끼고 허니를 내려다봤다.

“처음부터 가이딩이 전략이었잖아요.”
“다른 팀원을 위험에 빠뜨렸잖아.”
“그건 제 잘못이 맞아요. 모건한테도 사과했어요.”

발을 떼어놓기 전에 끝까지 방 한 쪽에서 허니를 주시하던 모건이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로시를 따라나갔다.

“바 안에서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거야?”
“언썹이 그렇게 강압적인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 했잖아요. 하치도 그런 감정을 가진 적이 없으니까 모르실 거고요.”

하치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허니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치를 올려다보는 허니의 목에는 아마 곧 멍자국이 될 언썹의 손자국이 여전히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여기는 아카데미가 아니라 팀이야. 혼자 뛰어나다는 걸 증명하는 데가 아니라고.”
“네, 그런데 하치가 그렇게 만들잖아요.”
“뭐라고?”

허니가 여전히 팀원들과 다른 경찰들로 꽉 차있는 공간을 한 번 눈으로 훑었다. 어떤 식으로 얘기가 흘러가든 하치에게 불리한 공간이었다.

“여기서는 이 대화 안 해요.”

하치가 허니에게 밖으로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하치가 저보고 그랬었죠, 가이드가 아니라 요원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하치 말대로 BAU에 있을 만한 요원이 되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하면 제가 가이드인 것도 인정해줄 것 같아서요. 근데 아무리 해도 하치는 제가 마음에 안 들잖아요. 오늘도 저는 지시대로 했어요. 근데 돌아오는 건 이런 말이랑 모건 가이딩 해주라는 거 뿐이잖아요.”

허니는 이 팀에서 요원도, 매칭 가이드도 아니었다.

“저는 심지어 다른 사람 가이딩도 제대로 하면 하치가 저를 봐줄까봐 한 거에요. 전부 다, 하치를 위해서.”

허니의 표정이 꼭 울 것처럼 약간 무너졌다. 하치는 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머리가 깨질 것 같기도, 심장이 터질 것 같기도 했다.

“이제 보니까 다 소용 없는 거 같네요. 어차피 하치는 평생 저를 인정하지 않을 거니까요. 그냥 다른 가이드 없나 확인해달라고 해요. 저보다 경력도 있고 하치 마음에 들 사람으로요. 파장도 변함 없는 사람이어야 더 편할 거에요. 여기 있는 네임도 그냥 파버리든지 하죠, 뭐. 하치는 그냥 둬도 되겠네요.”

체념한 듯한 차가운 미소를 짓는 허니를 보자 갑자기 하치의 눈 앞이 아찔해졌다.

“자네는...내 가이드야. 나를 가이딩할 의무가 있다고.”

굳어버린 듯한 혀로 겨우 내뱉었다.

“하치는 그걸 받아들일 의무가 있고요. 처음부터 거절하신 건 하치잖아요.”

허니가 하치에게서 한 발 물러났다. 바 안에서 느꼈던,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센티넬의 뱃속에서부터 다시 올라왔다. 하치는 허니의 팔을 붙잡고 끌어왔다. 허니가 아픈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또 누구 가이딩해주러 가려고.”
“아무데도 안 가니까 이것 좀 놔주세요.”

사람은 불리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노력을 한다. 허니는 하치의 눈에 들기 위해, 하치가 자신을 거부해도 그에게 손해가 가지 않게 열심히 노력했다. 하치가 원하는 걸 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노력은 오히려 허니에게 독이 되었다. 뭘 해도 하치는 허니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벼랑 끝에 내몰기만 할 뿐이었다. 그 시간들이 떠오른 허니는 울컥 올라오는 억울함을 누를 수가 없었다. 허니가 하치의 손을 뿌리쳤다.

“그게 하치가 원하는 거였잖아요, 다른 요원들 가이딩 해주는 거! 하치는 가이딩 필요없다면서요. 한 번이라도 내가 매칭 가이드라고 생각해본 적 있어요? 처음에 왔을 때부터 저는 BAU 공용 가이드밖에 안 됐잖아요!”

공용. FBI에서 손 꼽히는 센티넬의 매칭 가이드 입에 올라온 단어가 공용이다. 위급할 때 차출되어서 별로 있지도 않은 가이딩 능력을 최대치로 개방하고 며칠을 앓아눕는 가이드들. 상성이 맞는 센티넬 아무나 만지고 붙잡고 입을 맞출 수 있는 게 공용 가이드다. 허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걸, 하치는 그제야 상기했다.

“그건 내가 가이딩을—”
“안 받아도 버틸 수 있었다고요? 하치 파장 흔들릴 때마다 피해 가지 않는 선에서 가이딩 해주려고 제가 노력했으니까 지금까지 버틴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그러니까, 허니는 하치가 저를 거부해도 끝까지 붙어있으려고 했다는 말이다. 매칭 센티넬의 상태가 안 좋아지면 안 되니까.

“그건 네 의무니까,”
“제가 단순히 의무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서약서 때문이라고?”

또 한 걸음 뒤로 물러난 허니에게서 히스테릭한 웃음이 터졌다. 억울함에 기어이 눈물이 핑 돌았다.

“틀렸어요, 하치. 하치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그래요. 이 사회에도 중요한 사람이고, 이 팀에도 중요한 사람이고, 하치가 아무리 싫다고 해도, 하치가…저한테 중요한 사람이라서 그런 거라고요. 근데 이제는 진짜 저한테 중요한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가이딩도 안 받을 거면 하치랑 저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요. 그냥 팀 동료일 뿐인데, 하치 눈에는 제가 아직도 아카데미를 제대로 끝내지도 않은 훈련생이니까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린 하치의 입에서 목소리는 안 나오고, 울컥, 핏덩이만 흘러나왔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말이 하치의 심장을 베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허리를 숙여 가슴을 부여잡고 핏발이 선 눈으로 허니를 올려다보자 당황한 허니가 하치의 팔을 붙잡았다.

“하치...?”

내 가이드.
내 가이드. 내 생명줄. 내 사랑, 내 여자, 내 전부.


그동안 부정하고 지냈던 모든 단어가 하치의 머릿속에서 제대로 조합되기 시작했다.

지켜야 해, 잡아야 해. 제발 날 버리지 마. 떠나지 마.

“하ㅊ—”

하치가 허니의 턱을 틀어쥐고 피로 붉게 물든 입술을 겹쳤다. 그를 부르느라 벌어진 입술 새로 혀를 밀어넣고 정신없이 입 안을 탐했다. 무릎을 꿇은 채 허니를 당겨 안았다.
평소와는 차원이 다른 가이딩이 쏟아져 들어왔다. 오랫동안 사막을 헤매다가 오아시스를 찾은 것 같았다. 피 때문에 비릿한 맛이 났지만 아무리 혀를 섞어도 부족했다. 어느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입술이 떨어지면 허니가 사라져버릴까봐, 이대로 그를 두고 도망칠까봐 극도의 불안감이 밀려왔다.
더 세게 붙잡아야 했다. 절대 못 떠나게. 그의 품에만 가둬놓고 싶었다.
허니가 하치의 단단한 어깨를 쥐었다가 이내 주먹으로 등을 두들겼다. 하지만 하치는 꼼짝도 하지 않고 허니를 더 당겨 안기만 했다. 저를 으스러져라 안는 팔 힘에다가 혀뿌리까지 간질일 정도로 깊고 절박한 키스를 버겁게 따라가던 허니의 몸이 얼마 안 가 축 쳐졌다.

“...허니?”


재생다운로드IMG_4674.gif

어느새 허리를 지나 발목을 쥐었던 손이 당혹감으로 스르륵 풀어졌다. 초점이 돌아온 눈으로 살핀 허니는 입술에 그의 피가 멋대로 번진 채로 창백하게 그의 품에 안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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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걸려서 미안해오ㅜㅜ




믣 크마 하치너붕붕
2024.07.01 00:0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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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센세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와주셔서 감사해요ㅠㅜㅜ오늘도 역시나 최고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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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0:28
ㅇㅇ
모바일
하 ㅁㅊ 하치야 왜그랬어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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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0:29
ㅇㅇ
모바일
༼;´༎ຶ۝༎ຶ༽ 센세 나는 언제든지 기다릴수있어
드디어 자기마음을 알게된거냐고 하치 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제 후회절절하게 하고 닦개 박박닦아줘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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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0:33
ㅇㅇ
너무 재밌어......ㅜㅜㅜㅜㅜㅜ
[Code: 174a]
2024.07.01 00:4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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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 이제야 자각했네 큰일났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센세 와줘서 고마워ㅠㅠㅠㅠ
[Code: f29e]
2024.07.01 00:57
ㅇㅇ
모바일
ㅠㅠㅠ최고에요ㅠㅠㅠㅠㅜ 하치 드디어 자각했어ㅠㅠㅠ 하치야ㅠㅠㅠ ㅠㅠㅠ 정신차려서 다행이야ㅠㅠㅠㅠ 센세가 와줘서 그저 기쁘고 ㅠㅠㅠㅠ
[Code: 2471]
2024.07.01 01:24
ㅇㅇ
모바일
미친ㅠㅠㅠㅠㅠㅠ센세 사랑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ad41]
2024.07.01 01:4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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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다 와
[Code: cb4d]
2024.07.01 03: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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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ㅠㅠㅠㅠㅠㅠㅠ
[Code: 493a]
2024.07.01 09:17
ㅇㅇ
모바일
센세 ㅠㅠㅠㅠㅠ 나 센세가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어.... 하치 존나 유능한 팀장인데 팀장이기만 해서 진짜 너무하다.... 허니 힘든 거 비에유 팀원들 다 아는데 하치만 몰라주는 거 너무하다고 ㅠㅠㅠㅠ 이럴 바에야 허니가 다른 사람 가이드 되는 게 더 좋아보인다고 ㅠㅠㅠㅠㅠㅜㅜ 하 이 지경까지 일을 몰고가서야 소유욕으로 돌아버리는 거 봐 이미 늦었다고요 팀장님ㅠㅜㅜ 허니가 고생한만큼 안 받아주고 계속 밀어내서 하치가 계속 굴렀으면 좋겠다... 계속... 계속....
[Code: 871a]
2024.07.01 09:1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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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너무 좋으니까 또 읽어야겠다... 센세 사랑해
[Code: 871a]
2024.07.01 12: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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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de: 1820]
2024.07.02 20: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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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너무 가슴아파 ㅜㅜㅜㅜㅜ 진짜 하치 너무하다고 ㅠㅠㅠ 후회하라고 얼른 ༼;´༎ຶ ۝ ༎ຶ༽
[Code: 8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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