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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22:10

파이브벤 브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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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짙어 묵묵한 새벽녁이었다. 초대받지 못한 장례식에는 띄엄띄엄 사람 몇 명이 앉아있을 뿐이다. 빗물을 걸어온 남자는 쓰던 우산을 접어 비스듬히 장례식장 앞 우산꽂이에 꽂아넣었다. 그 모습은 너무나 여유로워 장례지도사쯤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몇 있을 지경이었다. 20대 초반의 미남자는 다시금 복도를 걸어 익숙한 이름 앞에 선다.



혹여나 닳을까봐 아껴부르던 그 이름을,



어느 종말을 헤매면서도 가장 처음 찾았던 그 이름을,



어쩌면 다시 돌아올거라고 믿었던 그 이름을.




"벤 하그브리스" 



그렇게 읊조린 파이브는 신발을 벗고 올라서, 그가 그리워마지 않던 그의 고향식 절을 한다. 산 자에게는 한 번, 죽은 자에게는 두 번 한다던 절. 절을 알려주던 낭창한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기분이었지만. 파이브는 끝내 두번째 절을 올리지 못했다. 아니, 절을 올리지 못했다. 


그는 차마 절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자세로 웅크려, 새벽 내내 울었다. 그를 위해 울어줄 가족이 없음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낯선 남자가 불쑥 그의 장례식에서 울고있는 꼴이 어떻게 보일지 알면서도 그는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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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는 벤은 4번 잃었고, 그 중 3번의 장례식이 열렸으며, 2번의 장례식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최초의 장례식은 시간여행을 했던 아주 어릴 적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이미 돌아온 곳에서 벤은 동상이 되어있었다. 그러고는 어땠더라, 기억나지 않는 사건들을 겪었고 벤은 그는 알 수 없게 한번 더 떠났다. 떠나던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그에게는 아주 큰 비극이자 희극이었다. 아무튼 보이지 않으니, 그는 믿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셈으로 따지자면 그는 벤을 5번 잃은 셈이다. 이후에 그는 벤과 아주 닮은 남자를 찾았으나 그는 벤이 아니었다. 다시금 돌아온 시간선에서, 서울에서 지내던 벤을 새롭게 만났던 것이 그의 2번째 벤이다. (셈으로 따지자면 3번째지만.)


그의 2번째 벤은 다정하지만.. 어딘가 어긋나있었다. 그는 그가 가진 힘을 두려워했고, 그 힘을 혐오했다. 그래서 파이브는 그 옛날 몸을 맞대고 벤과 연구했던 내용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조절이 되지 않을 때는, 심호흡을 하라던 파이브의 말에 따르던 벤은 그제서야 웃음을 되찾았다. 딱 이 정도의 거리라면, 나는 좋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좋아한다구요."
"....."
".....왜 대답을 안하는 건데요!"




그 앙칼진 물음에 어떻게 다른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벤을 와락 안아버렸고, 아마 그것이 이 시궁창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벤은 매 시간선마다 죽어야만 했던 존재였고, 나는 그 죽음을 말리고 싶었다.




그래서 연구를 위해 잠시 떠났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벤은 없었다. 



나는 코앞에 닥친 종말에도 벤 생각을 했다. 아, 내가 첫번째 벤과 두번째 벤을 같은 이유로 잃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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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상 세번째 벤이라고 생각한, 그 벤은 가정불화로 인해 애정결핍이 심한 아이였다. 아주 어릴 때 그의 부모에게서 빼와 그를 길렀다. 그가 죽음으로부터 가까워지지 않도록, 그 죽음에 다가서지 않도록. 나는 마음 한구석에 나의 감정들을 미루어놓고 벤에게 애정을 퍼붓기 바빴다. 애정결핍이던 벤은 사랑을 받아 나날이 "벤"과 가까워졌고,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벤이 벤이 되면 안되는 거...잖아."



그때부터 나는 그를 나의 "베니보이"로 불렀다. 초등학생이던 아이는 휼륭히 자라 성인이 되어 좋은 대학에 진학했고, 마침내 어떤 IT회사에 합격장을 받아낸 이후로 나와 대면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흐뭇한 어버이의 마음으로 기꺼이 그 아이의 모든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었다. 




"아빠, 저 아빠랑 자고싶어요."



라던 그 아이의 충격적인 발언이 아니었다면, 분명 그 날은 그저 행복한 날로 끝났을 것이다. 벤의 발칙한 멘트에 넘어가지 못하는 법을 아직 알지못해, 나는 그 아이의 부탁을 기꺼이 승낙했다. 아니, 어쩌면 기쁘게. 




침대를 뒹굴던 벤이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그 밤, 나는 복잡한 마음에 발코니에서 담배를 태웠다. 은밀하게 잡입한 커미션의 요원들에 의해 내 아이가 죽는 줄도 모르고. 피 한방울 없이 자는 듯 죽은 그 아이를 끌어안고, 나는 눈물 한방울 흘리지 못한 채 바득바득 이만 갈았을 뿐이다. 눈물은, 아이의 복수가 끝난 이후에 하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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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다른 시간선에 당도한 나는 무결점의 벤과 가까워지지 않았다. 편의상 네번째 벤, 이라고 생각한 벤은 좋은 부모 밑에서 바르게 자란 청소년이었다. 나는 그저 먼발치에서 지켜보다,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나는 것으로 그에 대한 관심을 표했다. 어두침침한 아저씨가 계속 지켜보다니, 최악인데. 생각하면서도 발걸음은 늘 향하던 그 곳이었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벤은 나에게로 가까이 걸어왔고, 나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쳤다. 



"......도망가지 마세요, 아저씨."
"...나 알아?"
"모르는데, 왜인지 익숙한 기분이 들어서요."
"이런, 그 멘트는 시대가 지났지 않나?"
"....아저씨 나 알죠?"
"거기 이름표 있네, 벤 민."



하그브리스가 아닌, 민가. 파이브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아이는 되묻는다. 



"저보고 베니보이, 라고 부르시지 않았어요?"



아, 나는 작은 탄성과 함께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손에는 식음땀에, 심장은 쿵쾅거렸다. 아직 모르는 거겠지? 아이는 작업을 거는 건 아니었다며, 실례했다고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서둘러야겠군, 커미션에게로 작업을 걸어 커미션을 반파시키고 시간선을 반쯤 우그러뜨렸다. 네 명의 벤에 대한 나의 복수는 사소했다고 생각했다. 





설마 그 사이에 벤이 교통사고로 죽을 줄은. 어쩜, 종말에서 세상을 구한 영웅에게 벤 한명 안을 권리를 주지 않는가. 



복수를 끝낸 파이브는 대신 네번째 벤의 장례식장에서 마침내 묵혀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작디 작았던 동갑의 벤은, 어느새 아빠와 아들로, 모르는 아저씨와 학생이 되었다. 처음부터 다시, 모든 걸 시작해야 하는 파이브는 눈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만큼 절절하게 울었다. 








벤 몫의 국화 4개는 파이브의 손에서 떨어지지 못한 채 함께 바닥에 쳐박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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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째 벤은 자신의 앞에서 울고 있는 남자는 쳐다보았다. 그는 아주 잘생긴 미남자였는데, 술도 마시지 않은 채 눈물만 흘리며 걷고 있었다. 





"저기요, 이걸로 닦으세요."



아유, 이 놈의 오지랖. 휴지를 받아든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눈물을 닦아내었다. 



"왜 이렇게 우시... 아니, 저 이상한 사이비 이런 사람 아니고요. 그냥 오지랖 넓은.."
"사랑하던 사람이 죽어서요."



오랜시간 잠겨있었던 듯 낮은 목소리로 그는 그렇게 대답했다. 



"휴지 감사합니다."


감사인사까지 끝낸 그 미남자는 제 갈길을 떠났지만, 벤은 덩그러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완전 내취향이잖아-, 입을 틀어막은 그는 그의 뒷모습을 오래 눈에 담았다. 




어쩐지 그의 뒷모습은 익숙해보인다. 마치 여러번, 그의 뒷모습을 봤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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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와 사랑에 빠지지만 어떻게든 죽어야 하는 벤과,
벤을 사랑하고 싶지만 벤이 죽을까봐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파이브. 


그리고 연구 끝에,
철저하게 타인이 되거나 벤 대신 자신이 죽는 게 아니면 안된다는 결론에 이른 파이브가 
자신의 장례식에 벤만을 초대하는 엔딩
2024.06.29 22:21
ㅇㅇ
모바일
센세 저 지금 가슴이 벅벅 갈리고 찢겼어요 ༼;´༎ຶ ۝ ༎ຶ༽ ༼;´༎ຶ ۝ ༎ຶ༽ ༼;´༎ຶ ۝ ༎ຶ༽ ༼;´༎ຶ ۝ ༎ຶ༽ ༼;´༎ຶ ۝ ༎ຶ༽ 사랑하는데 왜 행복할 수가 없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8f4f]
2024.06.29 22:28
ㅇㅇ
모바일
암쿠라잉༼;´༎ຶ ۝ ༎ຶ༽ ༼;´༎ຶ ۝ ༎ຶ༽ ༼;´༎ຶ ۝ ༎ຶ༽ ༼;´༎ຶ ۝ ༎ຶ༽
[Code: a8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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